1월 1차 구매한 책 페이퍼를 쓴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자릿수의 책을 구매했기에 페이퍼를 쓴다. 왠지 1월에는 4차 구매까지 가지 않을까? 사고 싶은 책이 점점 많아진다. 북플을 끊어야 하나...

2차 구매때는 새책 2권, 중고책 8권 등 총 10권을 구매했다. 점점 중고의 비중이 늘고 있다. 알뜰한 독서생활이나, 새책을 안사서 땡쓰투를 잘 못하고 있다.


구매한 책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1. 루시 골트 이야기 : 윌리엄 트레버

2. 밀회(새책) : 윌리엄 트레버

<여름의 끝>을 읽고 ˝윌리엄 트레버˝의 팬이 되었다. 국내 출판된 책은 다 모아야 겠다. 그의 국내책 표지들도 하나같이 좋다.


3. 여름비 :  마르그리트 뒤라스

˝뒤라스˝의 작품에 ˝백수린˝작가님의 번역이라니 안살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여름이 들어간 제목의 책이 끌리는것 같다.


4. 플로베르의 앵무새 : 줄리언 반스

˝줄리언 반스˝의 최고작이라길래 구매했다. 아직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연애의 기억>을 못읽었는데...그런데 중고 최상이어서 구매했다. 거의 새책같다.


5. 프랑스 중위의 여자 1 : 존 파울즈

쿨캣님의 리뷰를 보고 읽고 싶었는데, 오프라인 중고매장에 이 책이 있길래 바로 구매했다. 역시 중위는 프랑스 중위가 최고인것 같다.


6. 각성 :  케이트 쇼팽

<실크 스타킹 한 켤레>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의 작가가 ˝케이트 쇼팽˝ 이었다. 그래서 바로 구매했다. 평가도 좋은것 같더라. 기대가 된다.


7. 네메시스 : 필립 로스

말이 필요없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작품. 이미 북플에서도 다 좋다고 하던데, 지금 읽고 있는 미국 삼부작을 다 읽고 이 책을 읽어야 겠다.


8. 원데이 : 데이비드 니콜스

북플의 셀럽 스콧님과 다락방님의 리뷰를 보고 바로 구매했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작품이라는 필이 바로 왔다. 이 책으로 만든 영화도 보고싶다.


9. 빌레뜨 2  :  샬럿 브론테

빌레뜨 1만 있고, 2가 없었는데 오프라인 중고매장에 가니 거의 새책과 다름없는 이 책이 있었다. 이제 1권만 있어서 그동안 못읽었다는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다. 이 책도 곧 읽기 시작해야 겠다.


10. 소리와 분노(새책) : 윌리엄 포크너

이제 ˝포크너˝도 내가 접수한다. 기다려라 다 읽어줄 테니 ㅎㅎ 전에 읽은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가 어려웠지만 흥미로워서 구매했다. 가끔 어려운 책도 땡긴다.



2022년 나에게 주는 두번째 선물들이다. 생일도 아닌데 ㅎㅎ 올해는 나에게 선물을 자주 해야겠다. 그래도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책 살때랑 알라딘 택배 박스를 오픈할 때인것 같다.


이제 <휴먼 스테인>을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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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12 00: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ㅎㅎ
<소리와 분노>도 좋구요 <곰>, <내가 죽어 누워있을때>, ,,다 좋았어요.
단편들도 탁월해요~

새파랑 2022-01-12 07:39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이 인정한 포크너~!! 제가 포크너 책들도 잘 읽어보겠습니다~!!

희선 2022-01-12 01: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자신한테 주는 선물이라니 멋지네요 자신을 자신을 아끼지 않으면 누가 아낄지... 책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새파랑 2022-01-12 07:40   좋아요 1 | URL
저는 소중하니까요 ^^ 나 아니면 아무도 나를 안챙겨주죠 ㅋ 즐겁게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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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읽기 시작. 초반 몰입도는 이 작품이 가장 좋은듯.

오이디푸스: 그 정화 의식이라는 게 어떤 거란 말씀인가? 어떻게 해서 깨끗하게 하란 말씀인가?

크레온: 한 사람을 추방하거나 아니면 피를 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만……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 P1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용모였다. 여자의 이름은 포니아 팔리.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언뜻 끝을 알수 없는 외로움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는 무표정하고 강마른 여러 표정 이면에, 지금껏 어떤 고통과 고뇌를 견뎌냈는지는 꼭꼭 숨겨둔 것만 같았다.

(끝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란.) - P12

의회와 신문 그리고 방송에서는 자기만 옳다는 주장으로 눈길을 끌어 인기를 얻어보려는, 남 탓을 못해, 남의 잘못을 개탄하지 못해, 그리고 그런 잘못을 처벌하지 못해 안달인 볼썽사나운 인간들이 도처에서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다.

(지금도 다르지는 않다.) - P13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미쳐 돌아가고 있는 걸까‘ - P15

콜먼이 그 대학과의 모든 인연을 자발적으로 끊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원인이 되었고 스스로를 유죄로 만들어버린 말실수를 하게 된 것은 정교수로 강의를 맡은 뒤 두번째 학기가 반 정도 지날 무렵이었다. 그것은 오랜 기간 아테나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대학을 운영하는 동안 쏟아낸 수백만 마디의 말 가운데 그를 유죄로 만든 단 한마디였고, 콜먼이 이해한 바로는, 그 한마디야말로 자신의 아내 아이리스를 죽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 P20

"이 두 학생에 대해 알고 있 는 사람 없나요? 이 학생들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요. 아니면 유령들(spooks) 인가요?"

(이 작품의 문제의 발단.) - P20

콜먼의 머리통, 한때는 누구도 감히 공격할 수 없던 학장 그리고 고전문학 교수의 두뇌를 감싸고 있던 머리통은 잘려나간 거나 마찬가지였고, 내가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것은 손발마저 잘려나간 나머지 몸통이 중심을 잃고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 P28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그것이 육체적 질병보다 한층 더 위험한 이유는 그걸 완화시키는 데 모르핀 점적 주사나 척수신경 차단 마취 혹은 환부를 도려내는 근치 수술 같
은 것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단 마음의 병이라는 녀석의 손아귀에 붙들리고 나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는 수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

(마음의 병이란...) - P30

"노포크 창녀촌에서는 검둥이라고 쫓겨났고 아테나대학에서는 흰둥이라고 쫓겨난 거야." - P37

그 지혜는 남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의 지혜라고나 할까. 그게 그녀에겐 지혜고, 긍지이긴 하지만, 그건 소극적인 지혜인 데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줄 그런 종류의 지혜는 못 되는 거지. 이 여자는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내내 삶이 자신을 짓밟아 뭉개려 드는 경우만 겪고 살아왔어. 이 여자에게 배움이라는 건 모두 그런 삶에서 얻어진 걸세."

(지혜란 무엇일까...) - P57

그렇다면 왜, 이 극단적인 은둔의 실험을 고독하지만 모자람 없고, 완전한 생활로 바꿔놓은 다음에, 왜 갑작스럽게 내가 외로워야 하는가? 무엇에 대한 외로움인가?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다. 엄격한 생활 태도를 누그러뜨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자제하고 있던 욕망을 원상태로 되돌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정확히 무엇에 대한 외로움인가? 간단하다. 내가 혐오감을 갖게 된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내가 등을돌렸던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삶에 대한 외로움이다. 삶의 번잡함에 대한 외로움인 것이다. - P90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또한 어떤 것도 소멸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도 소멸하지 않는다.

(소멸하지 않는다.) - P103

단지 두 차례나 전장을 다녀와서 아무런 도움도 없이 혼자 그 후유증을 극복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그는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그는 좌불안석이다. 그는 술을 마시고 있다. 그를 격노해 길길이 날뛰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 P127

베트남에서 복무할 때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나요?"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병사들 중에서 살인을 해보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다던가? 베트남으로 파병된 병사들이 거기 가서 하기로 되어 있던 게 바로 살인 아니었나? - P133

하지만 그런 다음에도 과거의 모든 기억은 지나간 일로 묻히지 않고, 그의 앞길에 진을 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 P147

이스트오렌지고등학교에서는 수석 졸업생이었던 그가 인종차별을 하는 남부에서는 단지 또다른 검둥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종차별이 남아 있는 남부에서는 흑인들에게 개별적인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와 그의 룸메이트도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그저 검둥이였던 것이다. 세밀한 구별 같은 것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 충격은 그야말로 통렬한 것이었다. 검둥이, 그것이 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 P192

"그 백인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가정이 늘 존재하게 마련이다. 말이나 얼굴 표정,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어조, 찌증 같은 것을 통해서, 심지어는 그런 것들과 정반대가 되는 인내나 자비심을 멋지게 드러내는 행동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더라도 말이다. 어떻게든 백인은 너희에게 너희가 멍청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걸 것이고, 그러다가 너희가 멍청이가 아닌 것 같으면 놀라는 거지." - P193

하지만 뒤늦게 누군가가 콜먼을 면전에서 검둥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당하면서, 콜먼은 자신의 부친이 그를 위해 겪어오고 있었던, 위대한 미국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엄청난 장벽의 존재를 마침내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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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1-09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휴먼 스테인, 예전에 니콜 키드먼 나오는 영화 있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인종차별 같은 소재가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요. 한참 된건지 기억이 잘...
새파랑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주말 내내 미세먼지가 좋지 않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2-01-09 23:37   좋아요 2 | URL
제가 영상을 잘 안봐서 모르겠지만 인종차별 내용이 메인 테마가 맞으니 그럴거 같아요 ^^ 영알못 입니다 ㅎㅎ 서니데이님도 마무리 잘하세요~!!

얄라알라 2022-01-10 0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 작품의 문장으로 구성된 365 일력인가봅니다. 저는 올려주신 인용문 중에서 무려 2개나 처음 들어본 단어들을 만났어요^^;;

작년에 북플에서 뜨거웠던 <휴먼 스테인> 2022년에 새파랑님께서 열기를 이어가주시네요^^

새파랑 2022-01-10 06:01   좋아요 0 | URL
민음사 세계문학 일력 이에요 ㅋ <휴먼스테인>이 작년에 뜨거웠군요~ 뜨거울만 한거 같아요 ^^ 잘 읽어보겠습니다~!!
 
여름의 끝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N22005

˝그는 떠날 것이고,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지금 아짐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그가 있다는 사실인 것처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리면서 시작하는게 바로 사람이고, 사랑이다. 결과를 걱정해서 시작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다가온 사랑, 아무도 모르게 시작한 사랑, 아무도 모르게 끝난 사랑, 하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사랑. ˝월리엄 트레버˝가 <여름의 끝>에서 써내려 간 사랑은 이런 사랑이었다.



1. ˝엘리˝

부모가 누구지도 모른 채 수도원에 버려져서 자란 ˝엘리˝는 성인이 된 후 농부 ˝딜러헨˝의 집의 가정부로 들어가게 된다. ˝딜러핸˝은 자신이 일으킨 사고로 첫번째 아내와 아이를 잃은 사람으로, 마음속에 큰 슬픔을 간직한 채 사람들과의 교류를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집에 들어온 ˝엘리˝에게 애정을 느낀 그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엘리˝는 이를 받아들인다. 사랑에 의한 결혼이 아닌, 상황에 의한 결혼을 한 그녀.


˝딜러헨˝은 그녀에게 잘 해 주었고 그녀가 어디 불편한게 있는지, 생활이 무료하지는 않는지 항상 배려를 해준다. 하지만 ˝엘리˝는 이런것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무엇인지 모를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사진을 찍고 다니는 ˝플로리언˝이라는 남자를 보게 되고, 비슷한 또래의 그에게 왠지모를 호감을 느끼며 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다. 그는 어디서 온 걸까? 그는 누구일까?

[그가 궁금했고,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궁금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가 안녕하세요, 하고 말했을 때 누구인지 바로 알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P.111



우연한 기회에 둘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이 있음을 알게되며, 다른 사람의 눈에 뛰지 않는 장소에서 둘만의 만남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고, 매일 ˝플로리언˝에 대한 생각만을 하던 그녀는 이제 더이상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플로리언˝으로 가득차 있었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을 때 그녀의 외로움은 그의 외로움이 되었다. 그러다 그는 지나친 욕심을 부려 우정에서 너무 많은 무엇을 바람으로써 위태로운 사랑이 피어나는 것을 무심히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그에게 왔고, 이제 더 커진 죄책감은 연민을 더욱 키웠으며, 죄책감에는 연민이 가진 어떤 위엄까지 드리워졌다. 무모한 착각은 오늘 일어난 일로 인해 조금 덜 무모해 보였고, 가망없는 갈망은 조금 더 설득력을 지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고 시간은 멈춘 듯했다.]  P.254



하지만 ˝플로리언˝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가 미리 말해주지 않은것에 대해 아쉬워하지만, 그동안 너무 순진하게 살아왔던 그녀는 지금 누리고 있는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 떠날 결심을 한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강렬함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엘리˝는 과연 현재를 포기할 수 있을까?

[그날 밤 엘리는 잠결에 울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릴까봐 애써 잠에서 깨어났다. 베개가 젖어 있어 뒤집었는데, 아침이 되어 보니 눈물은 마치 꿈속에서 흘렸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음을 그녀는 알았다.]  P.190



그녀는 상점에서 녹색 여행가방을 사고 이를 헛간 볒집 속에 숨긴다.




2. ˝플로리언˝

이탈리아인 어머니와 아일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 ˝플로리언˝,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지금 그에게 남아있는건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 한 채 ‘셜해나‘ 뿐이었고, 이마져도 부모님이 함께 물려주신 빚 때문에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가 살림을 잘 했더라면 그런 상황까지 안갔을 수도 있지만, 그는 생활력이 높지 않않았다. 그동안 너무 방만하게 살아왔던 삶.


모두 미술가였던 부모님은 아들인 ˝플로리언˝ 역시 미술적 재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고, 미술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그가 물려받은 재능은 없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맞출 수 없었고, 수줍음이 많고 사람과의 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던 ˝플로리언˝은 외로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어린시절 부터 좋아하던 ˝이사벨라˝로부터는 더이상 편지가 오질 않았다. 이제 그와 관계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부모라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너무나 대단하게 보았다. 플로리언은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의 기억 속에는 실패만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속상했지만 나중에는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집에는 책이 가득했고 그는 책을 많이 읽었다.]  P.46



이렇게 외롭고 무료한 날들 속에서 그는 ˝엘리˝와 길에서 무언가를 물어보기 위해 우연히 대화를 한 이 후 거리에서 그녀를 보게 되고 그때마다 큰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어느 상점 앞에서 두번째 대화를 하게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플로리언˝은 그녀가 결혼한 사람임을 늦게 알게 된다. 그녀의 손에 결혼반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좀 더 친해진 후에 알게 된다. 그가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초반의 만남에서는 반지를 숨겼던 걸까? 하지만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약간의 죄책감이 있었지만, 그는 그녀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감을 알 수 있었다.

[플로리언은 거짓을 물리치며 부드럽게, 가능한 한 다정하게 그렇게 말했다. 거짓은 시간이 지나 진실이 드러나며 상처에 상처를, 고통에 고통을, 수치심에 수치심을 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의 엄중한 지혜가 두 사람 모두를 벌할 터였다 무자비하게.]  P.234



하지만 ˝플로리언˝ 역시 그녀에게 숨겼던, 아니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가 곧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는 초반에 그 사실을 말 할 수 없었다. 그는 둘의 관계는 결국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 깊어져 버린 감정 때문에 그는 갈등한다. ˝플로리언˝은 그녀가 자신과 함께 떠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차마 말하지는 못한다.

[침묵하는 이유는 엘리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일까? 혹은 시작은 그렇지 않았으나 이제는 기쁨이 된 관계를 갑작스럽게 끝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과거에도 자주 그랬듯이 뭐든 숨기고 싶어 하는 성향이 우세했던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미루고 있을 때는 그게 옳다고 느꼈지만 숨긴다고 해서 어떻게 해볼 수 일이 아니며, 자신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일어날 일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P.183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과 함께 떠나고 싶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셜헤나˝의 지붕 위에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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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가 <여름의 끝>을 81살에 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다소 놀랐다. 노년에도 이러한 감성으로 글을 쓸 수 있다니. 어쩌면 나이가 드는 건 육체일 뿐 감성은 결코 사라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표현을 안해서 무뎌진 것일 뿐이지.


˝월리엄 트레버˝는 이 책에서 등장인물의 감정을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담담하게 그린다. 다만 독자에게 상황과 대화를 통해 등장인물의 감정을 직접 상상하고 느끼게 한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여운이 강하게 남는다. 초반부의 다양한 인물들만 잘 이해하고 넘긴다면 ˝윌리엄 트레버˝가 선사하는 따뜻한 문장이 주는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처음이었던 ˝엘리˝의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이해가 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플로리언˝의 돌아서는 모습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서 결핍을 채울 수 있었기에 잠시나마 행복했었고, 설레였었고, 간절했었기에, 어쩌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한건 아닐까?


뜨거운 그들의 여름은 그렇게 끝났고,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가겠지만 두 사람이 간직한 여름날의 추억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Ps 1. 주인공 두 사람만을 구분하여 그들이 느꼈을 감정의 흐름으로 리뷰를 써봤는데 줄거리 요약보다 어려웠다. 이게 다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은 탓이다. 개인적으로는 <펠리시아의 여정> 보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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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1-09 13: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김동률 노래와 리뷰가 참 잘 어울려서 놀랐어요! 단편모음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나의 장편소설이었군요. 81살에 이런 작품을 쓰다니...전작하고픈 작가가 되었습니다 헤헷😄👍

새파랑 2022-01-09 13:11   좋아요 3 | URL
오늘부터 트레버의 책을 하나씩 사모을 예정입니다 ㅋ 저는 이 책 너무 좋았는데 미미님에게 맞으실지는 모르겠어요 ㅋ 약간 잔잔합니다 ^^

청아 2022-01-09 13:15   좋아요 4 | URL
저도 다 사려고요🙄(중고로!)잔잔한 이야기도 좋아합니다.엣헴^^

새파랑 2022-01-09 13:19   좋아요 3 | URL
역시 안좋아 하시는게 없으신 미미님 ㅋ 또 사신다구요? ^^ 전 미미님 리뷰 읽고 <밀회>도 구매했는데 이건 다음주에 읽어봐야 겠습니다~!!

페넬로페 2022-01-09 14: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81세 쓴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니~~넘 대단해요^^
잔잔한 사랑노래라서 더 좋을듯요.
제 취향일 듯 해요~~
김동률 노래처럼요^^

새파랑 2022-01-09 14:59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은 이 책 괜찮으실거 같아요 ^^ 이책이 중간중간 시점이 바껴서 햇갈리기도 하던데 두 남녀 주인공을 중심으로 잡고 읽으면 괜찮아요 ~!!

모나리자 2022-01-09 16: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궁금해서 책 소개를 보니 목차가 없는 도서라고 나오네요.ㅎ 맨 부커 후보상에도 여러 번 오른 대단한 작가네요. 요즘 잃시찾 읽느라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지 못한지가 꽤 된 것 같아요.
어서 마무리 하고 저도 재미있는 명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네요.
작가의 감수성이란 젊을 때나 나이들어서도 간직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자 무기겠지요.^^

새파랑 2022-01-09 17:26   좋아요 4 | URL
찾아보니까 정말 목차가 없네요 😅 1장부터 33장인가? 로 표시되어 있던거 같은데~~
이 작품보다는 잃시찾 읽기가 더 좋죠 ^^ 전 잃시찾을 이제 잃어버렸습니다 ㅜㅜ

scott 2022-01-09 22: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름의 끝!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새파랑님 트레버 옹 전작 읽기에 돌입 하실 것 같습니다
2022년 첫 번째 열독 주자로 트레버 옹!👆^^

새파랑 2022-01-09 23:23   좋아요 4 | URL
윌리엄 트레버 완전 제 취향이더라구요 ㅋ 여름에 이 책을 안읽은게 한입니다 ^^

그레이스 2022-01-09 22: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젠 새파랑님 전작읽기 놀랍지도 않습니다
이 책은 이미 장바구니에 있지만 언제 살지는 모르겠습니다^^

새파랑 2022-01-09 23:24   좋아요 4 | URL
내일부터는 전작하고 싶은 작가 작품 읽기를 하려고 합니다 ㅋㅋ 윌리엄 트레버도 리스트에 넣었습니다 ^^

그레이스 2022-01-09 23:28   좋아요 4 | URL
👍

독서괭 2022-01-09 2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펠리시아의여정>보다 좋으셨다니 오오 궁금합니다!! 윌리엄트레버 전작 가시나요!

새파랑 2022-01-09 23:26   좋아요 6 | URL
완전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ㅋ <펠리시아의 여정>보다 읽는 재미는 떨어질 수 있어요 ㅋ 그래도 전 이런 이야기가 좋더라구요 😅

mini74 2022-01-10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주인공 둘을 리뷰하니까 더 좋은데요. ~ 결국 잠시만의 꼭짓점을 남기고 각자의 길을 가나요 ㅠㅠ 김동률 ~ 목소리가 넘 좋아요. ~~

새파랑 2022-01-10 12:05   좋아요 2 | URL
이책도 좋고 김동률도 좋습니다. 여름도 끝나고 만남도 끝나고 ㅋ 생각해보니 제목도 너무 좋네요 ^^

오늘도 맑음 2022-01-10 14: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리면서 시작하는게 바로 사람이고, 사랑이다. 결과를 걱정해서 시작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이 부분이 너무 좋네요^^ 이 문장으로 책 한권이 축약되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81세에 집필하셨다는 이야기에 월요일 오늘 처음으로 미소지어봅니다.ㅎㅎ
시간이 지날 수록 새파랑님의 리뷰가 정말 훌륭하네요~!!
저는 사랑 이야기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데, 또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새파랑님 멋진 글 감사해요~!!

새파랑 2022-01-10 14:17   좋아요 3 | URL
리뷰가 점점 훌륭해진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글을 못써서 항상 걱정인데 ㅎㅎ 저는 사랑이야기가 제 취향인거 같아요 ^^

희선 2022-01-12 0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동률 노래와 소설이 잘 어울리는군요 노랫말... 윌리엄 트레버가 여든한살에 이 소설을 썼다니... 몸은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아주 다르지 않기도 한 듯해요


희선

새파랑 2022-01-12 07:41   좋아요 1 | URL
저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이 먹는건 싫네요 ㅜㅜ 노래도 완전 좋아요^^

유부만두 2022-01-13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다 읽었어요. 초반에 조금 지루해서 쉬었다가 새파랑님 리뷰 덕에 이어서 읽었죠. 감사합니다. 후반부 엘리의 심경 변화 묘사, 남편과의 ‘그 대화 장면‘의 긴장감!!!
중간 중간 행동이 조금씩 끊어져서 나오는 것도 너무 우아하고 또 ‘밀당‘의 맛이 있더군요.
트레버 더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좋네요. 아, 이런 게 진짜 소설 읽는 느낌이죠.
리뷰 정말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2-01-13 16:34   좋아요 1 | URL
앗 ㅋ 방금 유부만두님 글 보고 왔습니다~!! 초반이 좀 애매하긴 합니다 ^^ 전 강한(?) 것보다 이런 차분한 설레임(?)이 좋더라구요~! 저도 유부만두님을 따라 트레버를 찾아 읽겠습니다~!!
 

윌리엄 트레버의 <여름의 끝> 재미있다. 여운이 남는 결말. 여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부모라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너무나 대단하게 보았다. 플로리언은 그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당시에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다른 예술 분야에 도전해보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매번 결과는 부정적이었고, 그래도 부모님은 기대를 버리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기억 속에는 실패만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속상했지만 나중에는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집에는 책이 가득했고 그는 책을 많이 읽었다. - P46

코널티 양이 광장에서 그 사람을 가리켰을 때에야 그녀는 깨달았다. 캐시앤드캐리에서 그가 미소 지었을 때도 알았다. 햇살을 받으며 함께 서 있었을 때, 그가 담배를 권하고 그녀가 고개를 저었을 때 그녀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함께 있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띌 수 있었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 P75

플로리언은 꿈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다시 잠을 청했다. 어릴 때도 자주 그렇게 해봤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개는 침실 문 너머 층계참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꿈의 자세한 내용은 점점 흐려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 P86

고통의 시간은 끝났지만 그녀는 그 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기를, 항상 무언가가 남아 있기를, 움츠림이나 떨림, 아직 풀리지 않은 분노의 일부라도 남아 있기를 소망했다. - P104

그가 궁금했고,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궁금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가 안녕하세요, 하고 말했을 때 누구인지 바로 알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 P111

그는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엘리는 자꾸만 그에게로 눈길이 향하는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 번은 눈이 마주치자 그가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녀는 자기 마음을 알까 궁금했다. 모르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P113

엘리는 캐시앤드 캐리에서 그를 만났을 때 자기도 모르게 반지를 숨기지 않았을까, 오늘 아침에도 그러지 않았을까 자문해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는 일들을 조심해야 한다, 수녀님들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무슨 일이든 그걸 행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 P117

침묵하는 이유는 엘리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일까? 혹은 시작은 그렇지 않았으나 이제는 기쁨이 된 관계를 갑작스럽게 끝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과거에도 자주 그랬듯이 뭐든 숨기고 싶어 하는 성향이 우세했던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미루고 있을 때는 그게 옳다고 느꼈지만 숨긴다고 해서 어떻게 해볼 수 일이 아니며, 자신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일어날 일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 P183

그는 떠날 테고,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지금 아침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그가 있다는 사실인 것처럼. - P185

그들은 코리 호수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함께한 이 여름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플로리언은 그렇게 말했다. 라이어의 어스름한 숲도, 올러리의 미로도, 라벤더나 나비들까지도. 그의 클룬힐, 그가 머릿속에 그려본 곳, 그리고 그녀의 셜해나. "모든 것이." 그가 말했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P186

그날 밤 엘리는 잠결에 울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릴까봐 애써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자기가 우는 소리를 들었지만 겨우 깨어나 보니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었다. 베개가 젖어 있어 뒤집었는데, 아침이 되어 보니 눈물은 마치 꿈속에서 흘렸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음을 그녀는 알았다. - P190

그가 주는 것을 받는 일은 그녀는 남고 그는 간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뭔가를 주고받는 일은 이별의 표시, 이별의 확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 P222

플로리언은 거짓을 물리치며 부드럽게, 가능한 한 다정하게 그렇게 말했다. 거짓은 시간이 지나 진실이 드러나며 상처에 상처를, 고통에 고통을, 수치심에 수치심을 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의 엄중한 지혜가 두 사람 모두를 벌할 터였다 무자비하게. - P234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을 때 그녀의 외로움은 그의 외로움이 되었다. 그러다 그는 지나친 욕심을 부려 우정에서 너무 많은 무엇을 바람으로써 위태로운 사랑이 피어나는 것을 무심히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그에게 왔고, 이제 더 커진 죄책감은 연민을 더욱 키웠으며, 죄
책감에는 연민이 가진 어떤 위엄까지 드리워졌다. 무모한 착각은 오늘 일어난 일로 인해 조금 덜 무모해 보였고, 가망없는 갈망은 조금 더 설득력을 지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고 시간은 멈춘 듯했다. - P254

엘리가 깨달은 또 하나의 서늘한 진실은 그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사실을 말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이 겪어서는 안 되는 그런 고통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이었다. - P273

그리고 침입자도 라스모이를 떠나버렸으니 엘리 딜러핸과 그녀의 우정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정은 더욱 돈독해질 것이며 두 사람 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말하면 안 되는 일, 결코 말하지 않을 일에 대해서는 둘 다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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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스타킹 한 켤레 - 19, 20세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선
세라 오언 주잇 외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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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04

 

"어쨌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다들 잘 모르고 사니까요 무슨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여러작가의 단편 모음집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읽고 나서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고 싶은데 더 이상 읽을 작품이 당장 없다면 왠지 아쉬울것 같아서이다. 이번에 내가 읽은 <실크 스타킹 한 켤레>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좋은데, 짧은 단편 하나만 읽고 끝내야 한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 책에는 19/20세기 영미 여성작가 10명의 단편들이 한 편씩 실려있다.

 

10명의 작가 중 "윌라 캐더", "이디스 워튼",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은 읽어본 적이 있지만 단편은 처음 접했고, 이 책에 실린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고한 대령의 딸들>은 그녀의 다른 단편집에서 이미 읽은 작품이었다. 다른 6명의 작가는 처음 접했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출판사에서 엄선된 단편들을 선정해서 그런가 보다.

 

 

이중에서 인상적인 두 작품을 선정해 보자면 "세라 오언 주잇"의 <백로>와 "케이트 쇼팽"의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였다.

 

 

 

1. 백로

 

 

뉴잉글랜드의 한적한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실비아", 그녀는 늙은 암소 한마리를 키우면서 그곳의 자연과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숲속에서 젊은 사냥꾼을 만나게 되는데,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던 그녀는 사낭꾼에게 처음에는 경계심을 느꼈지만 점점 호기심을 가진다.

 

[아이의 가슴 속에 잠들어 있던 여자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꿈으로 희미하게 떨려왔다. 그 위대한 힘의 어떤 예감이 발소리를 죽이고 가만가만 숭고한 삼림을 가로지르는 젊은 두 사람의 마음을 휘저으며 뒤흔들었다.]  P.29

 

 

샤냥꾼은 소녀의 집에 잠시 머물면서 자기가 이곳에 온 이유는 백로를 사냥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사냥한 백로는 박제를 할거라고 하면서 백로의 둥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냥꾼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백로 둥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면 10달러를 주겠다고 한다. 백로가 대략적으로 어디있는지 알고 있었던 그녀는 그 이야기를 들은 밤에 10달러로 살 수 있는 것들을 헤아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날 "실비아"는 사냥꾼과 함께 백로를 찾아 나서는데, 그와 함께 할수록 설레임을 느낀다. 하지만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그녀는 그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설레임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자연과 함께 살아왔던 그녀가 사냥꾼에게 백로의 서식지를 찾게 해주는게 괜찮은 걸까?

["이 따분하고 보잘것없는 삶에 처음으로 밀려온 인간적 관심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자연과 말없는 삼림에 가슴을 맞대고 살아가는 삶의 만족감을 휩쓸어가야 하는 것인가!"]  P.31

 

 

다음날 그녀는 혼자서 집을 빠져나와 백로 둥지를 찾기 위해 반마일 떨어진 숲 가장자리에 있는 가장 큰 소나무 위로 올라간다. 나무도 잘 타는 "실비아"였던 것이다. 그녀는 가장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자신이 그동안 지냈던 곳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백로가 날아가는 모습과 둥지의 위치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소나무 꼭대기에 올라가기 전과 180도 바뀌어 있었다.

[그렇다, 저기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가 있고, 그 장엄한 동쪽을향해 매 두 마리가 천천히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다. 아래에서 올려다보기만 했을 때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까마득히 높이 뜬 검은 점 같았는데 이 높은 곳에서 보니 얼마나 낮아 보이는지.]  P.32

 

 

[그녀가 놓친 보물이 무엇이든 숲과 여름이여 기억해주렴! 이 외로운 시골 소녀에게 선물과 은혜를 가져다주고 너희들의 비밀을 말해주렴.]  P.35

 

 

소나무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온 "실비아"는 백로 둥지의 위치를 결국 말하지 않는다. 백로의 생명을 뺴앗을 수 없었던 그녀. 실망한 사냥꾼은 다음날 그녀의 집을 떠나고, 그녀의 설레였던 마음은 이제 길을 잃었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2.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어느날 기대하지 않았던 15달러를 손에 쥐게 된 "서머스 부인"은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한다.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일 없이 오직 가족을 위해만 온 생각을 집중해서 살았던 그녀는 이 돈을 가족들의 물건을 사기 위해 쓰기로 결심하고 할인행사장에 간다.

[그녀 자신은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불건전한 일을 하는 법이 없었다. 과거에 빠져 있을 시간이라고는 일분일초도 없었다. 지금 사는 일에 온 힘을 다 쏟아야 했다. 미래가 흐릿하고 수척한 괴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면 간혹 질겁하는 일은 있었지만, 다행히 내일은 오지 않았다.]  P.115

 

 

하지만 할인행사장에서 우연히 반짝이는'실크 스타킹'을 보게 되고, 그녀는 무엇에 홀렸는지 '실크 스타킹'을 사게 된다. 그리고 구속진 곳으로 가서 그녀가 신고 있던 '면 스타킹'을 벗어 던지고 새로 산 '실크 스타킹'으로 갈아입니다. 사리를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그녀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갈아입자 그녀는 왠지 모를 변화를 느끼게 된다.

 

[그러고 나서도 서머스 부인은 할인 행사 매대로 가지 않았다. 승강기를 타고 여성 휴게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의 구석진 곳으로 가서 면 스타킹을 벗고 방금 산 실크 스타킹으로 갈아신었다. 그녀의 예리한 정신이 작동하지도 않았고, 사리를 따져보거나 그러한 행동의 동기를 만족스럽게 설명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생각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그 고되고 피곤한 작용에서 벗어나, 그녀의 행위를 지휘하며 그녀의 책임을 덜어주는 어떤 기계적인 충동에 몸을 맡겼다.]  P.117

 

 

 

이후 그녀는 가족을 위한 물건을 사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싶던 신발, 장갑, 책들을 산다. 그리고 혼자 식당으로 가서 비싼 음식을 시켜서 먹고, 식후에는 혼자서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본다. 지금까지 그녀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탈 아닌 일달. 연극이 끝나고 이제 꿈에서 깨어나 집으로 가야 하지만 그녀는 이 꿈이 깨지 않기를,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연극은 끝났고, 음악도 멈췄고, 관객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P.120

 

[전차 건너편에 앉은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그녀의 창백한 작은 열굴을 관찰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에서 본 것을 해독하지 못해 당황스러워했다. 사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전차가 아무데도 결코 멈추는 일 없이 그저 계속해서 한없이 자신을 태우고 가주었으면 하는 그녀의 애끓는 소망, 강렬한 갈망을 알아챌 수 있을 마술사가 아닌 다음에야 말이다.]  P.120

 

 

'실크 스타킹' 하나로 인해 소박한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서머스 부인", 여성이라고, 어머니라고 해서 항상 삶에 억눌리고 자기 자신을 버리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지 강요가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전차를 타고 돌아가더라도, 다시 그리고 자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생각해보면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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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작품 외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메리 윌킨스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는 결혼을 통해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결혼을 포기하는 비혼주의 여성의 선구자적인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고, "윌라 캐더"의 <감상적이지 않은 토미>는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남자보다 더 확실하게 일을 하고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강한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

 

 

"수전 글래스펠"의 <여성 배심원단>과 "엘런 글래스고"의 <제 3의 그림자 인물>. "조라 닐 허스턴"의 <땀>은 폭력적이고 계산적이며 개차판인 가해자 남편에 대한 피해자 여성의 복수를 그리고 있다.

 

 

"샬런 퍼킨스"의 <누런 벽지>와 "버지니아 울프"의 <벽의 자국>은 모두 벽(벽지)를 소재로 하여 이를 바라보는 여성의 복잡한 심리와 억압된 생활을 그리고 있는데, 나의 짧은 독서력으로는 두 작품이 가장 난해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이 멋진 리뷰를 써주실 거라 믿는다.

[일단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결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아, 세상에! 삶은 어찌나 불가사의한지! 사고는 어찌나 불확실한지! 인류는 어찌나 무지한지! 한평생 살면서 상실하는 것들을 몇 가지만 떠올려봐도, 우리가 가진 것조차 얼마나 마음대로 하기 힘든지,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삶이란 결국 얼마나 우연적인지 알 수 있다.]  P.210 (버지니아 울프, 벽의 자국)

 

 

 

두껍지 않은 책이었지만 한번에 10명의 작가의 훌륭한 작품을 읽을 수 있었고, 당시 여성들이 경험했던 갈등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에 실린 여성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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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1-08 16: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밑줄 담으신걸 보니 사놓길 잘했더라구요. 여러 작가들의 단편인만큼 다양한 개성이 우러나있을것 같아요 특히 복수하는내용 기대되네요!^^*

새파랑 2022-01-08 16:33   좋아요 4 | URL
컴퓨터로 리뷰는 처음 써보는데 (페이퍼는 한번 써봤어요ㅎㅎ) 쓰기가 어렵네요 ㅜㅜ 거기서 쓰고 북플에서 보면 다르게 뜨더라구요 ㅋ

모든 작품에 밑줄이 있지만 모든 작품 다 쓰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두개만 썼어요 ㅋ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극적인 복수라기 보다는 잔잔한 복수여서 강렬한 미미님께 잘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

페넬로페 2022-01-08 17: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실크 스타킹 한켤레‘, 내용 너무 공감되고 좋은데요. 주부라면 자신에게 돈 쓰기가 사실 쉽지 않거든요^^
식구들 똑같이 재난지원금 받아도 저는 맛있는 고기나 영양제 같은걸 사니까요.
아, 저 너무 착한것 같아요 ㅎㅎ
‘벽의 자국‘과 ‘뉴잉글랜드 수녀‘는 읽어봤는데 단편도 나름의 임팩트가 있어 좋았어요^^

새파랑 2022-01-08 18:32   좋아요 3 | URL
역시 착한 페넬로페님~!! 전 <실크 스타킹 한 컬레> 읽고 바로 ˝케이트 쇼팽˝ 책 구매했어요 ^^ 이 책 단편들은 다 재미있네요~!!

mini74 2022-01-08 17: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실비이에게 10달러는 큰 돈이었을것 같은데요. 서머스 부인의 모습ㅎㅎ 표현이 멈 좋은데요. 이 책도 찜. ㅠㅠ 언제 다 읽지요 ㅎㅎ

새파랑 2022-01-08 18:33   좋아요 3 | URL
10달러는 저에게도 큰 돈~!! 책 한권 살 수 있겠죠? ㅋ 미니님도 기계 쪽이시니까 금방 읽으실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