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 완독하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진정한 명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을수록 감탄이 나오는 작품.

"자, 가라, 티피." 제이슨이 말했다
"이랴, 퀴니." 티피가 말했다. 그 모양들이 계속 흘러갔다. 반대쪽의 모양들도 다시 시작했다. 환하고 빠르고 매끄러웠다. 캐디가 이제 우리가 잠들 거라고 말할 때처럼. - P20

"내 말이 그 말이야." 로스커스가 말했다. "자기 자식 이름도 못 부르게 하는 집안에 재수가 있을 리 없다는 거지." - P44

우리의 그림자가 잔디 위에 있었다. 우리보다 그림자가 먼저 나무에 도착했다. 내 것이 먼저 거기에 도착했다. 그다음에 우리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도착했고, 그다음에 그림자가 없어졌다. 병에 꽃이 한 개 있었다. 나는 다른 꽃도 그 안에 넣었다. - P72

"이제 다 컸네." 러스터가 발했다. "병에 꽃을 두개나 넣어 갖고 놀다니. 너 마님이 죽으면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할지 알아, 잭슨으로 보낼 거야. 거긴 너한테 딱 맞는 데지. 제이슨 나리가 그랬어. 거기서는 다른 미치광이들이나 침 흘리는 사람들이랑 온종일 철창을 붙들고 있을 수 있어. 어때, 좋겠지." - P73

시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뒤에 서 있는 캐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붕 소리가 들렸다. 비가 아직도 오네, 캐디가 말했다. 나는 비가 싫어. 다 싫어. 그러고 나서 캐디의 머리가 내 무릎 위에 왔고 그녀는 나를 붙들고 울고 있었고 나도 울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나는 다시 불을 바라보았고 그 환하고 매끄러운 모양들이 다시 움직였다. 시계와 지붕과 캐디의 소리가 들렸다. - P76

내 너에게 이것을 주는 건 시간을 기억하라 함이 아니라. 이따금 잠시라도 시간을 잊으라는 것이요. 시간을 정복하려고 인생 전부를 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싸움이 성립조차 안 된다. 그 전쟁터는 인간의 우매와 절망을 드러낼 뿐, 승리는 철학자들과 바보들의 망상이다. - P101

우리가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만 했어도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그것 또한 애석하지 사람들은 그렇게 끔찍한 일은 저지르지 못해 정말 끔찍한 일은 절대 저지르지 못해 오늘 끔찍하다고 여긴 일도 내일이면 기억조차 못하지 그래서 내가, 모든 것에서 벗어나면 되죠 하자 아버지가. 아 너는 그럴 수 있느냐. 라고 하였다 - P106

엄마가 캐디를 사랑하는 걸 보면 엄마는 결점이 있는 사람들을 그 결점 때문에 사랑한단다. - P134

여보 난 떠나겠어요 당신이 다른 애들을 맡아요 내가 제이슨을 데리고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로 갈게요 그래야 제이슨이 커서 이 모든 걸 잊을 가망이 있을 테니까요 다른 애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개들은 콤슨 집안의 이기적 기질과 거짓된 자부심 때문에 아무것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애들이에요 내가 두려움 없이 가엽게 생각하는 아이는 제이슨뿐이었어요. - P136

그들은 동시에 떠들어댔다. 서로 고집을 세우고 반박하고 짜중내는 목소리들이 뒤섞이는 가운데 실재하지 않는 것이 가능성이 되었고, 이것은 다시 있음직한 일이 되었으며, 결국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욕망이 말이될 때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행동과 다를 게 없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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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2-19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세 번 완독해도 감탄 나오는 작품이라니,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좀 어렵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새파랑 2025-02-19 11:24   좋아요 0 | URL
지금 네번째 읽고 있습니다 ㅋ 괜히 명작이 아니더라구요~!!

강추합니다~!!
 

역시 김연수 작가의 단편. 어느 하나 안좋은 것 없이 독창적이다.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헤하러 든다는 것은 무모한 열정이였다. 하지만 그런 열정의 대상이 된다는 건 확실히 부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때 나는 그녀가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 P49

이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거지? 이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거 맞지? 기억 속 어딘가에서 내가 소리친다. 및아. 점점 흐릿해지는 낮빛으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더없이 깊은 밤과 꿈결처럼 아득한 어둠 속으로 나는 떠난다. - P61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 이런 면에서 인류가 비겁해진 결과, 삶에 끼친 피해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환상‘이라고 하는 경험, 이른바 ‘영적 세계‘라는 것, 죽음 등과 같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 것들이, 예사로 얼버무리는 사이에 우리 삶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러는 사이 그런 것들을 느끼는 데 필요한 감각들은 모두 퇴화되고 만 것이다. 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 P126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그 하얀 봉우리들은 여름밤의 뒤척이는 잠 속으로 밀려들었다가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꿈의 형상을 닮아 있있다. 완전히 잠들지도, 그렇다고 깨어 있지도 않은 그 어렴풋한 경계에서 간절히 원하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 꿈들은 우리 영혼을 유혹한다. 좌절을 모르는 그 꿈들은 자신을 갈구하는 인간들에게 그 모든 패배의 순간을 전가했다. - P131

하지만 그즈음, 그는 어럼풋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러니까 꿈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패배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것을. - P133

하지만 그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해도,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삶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 P141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념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니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 - P177

마흔 살이 넘어서면서 성재는 세상의 일들을 짐작히는 버릇을 그만뒀다. 세상의 일들은 늘 짐작과는 달랐다. 하늘을 날던 그 새들이 갈매기일 수 없듯이. 해림에는 바다가 없듯이. 더이상 세상의 일들을 집착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인생이란 그저 사소한 우연의 연속처럼 보였다. 이제 성재에게 인생이란 납득하는 일이지, 따져보는 일이 아니었다. - P230

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비망록이 씌어지는 곳은 그 사람의 마음속이니 사랑하고 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 P284

세상 가장 작은 소리에도 쫑긋 귀를 세우는 사람들로, 세상에는 그렇게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꽃이 피었다가는 또 져버리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어찌 봄이 왔다고 해서 그렇게 많은 꽃들이 피어오르겠는가 말이야. - P77

사실 전쟁은 재미있지만, 전쟁 이야기는 재미없어. 전쟁에는 진실이 있지만, 전쟁 이야기에는 조금의 진실도 없으니까. 내가 전쟁이란 삶을 닮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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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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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12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써내려간 정치소설인 <악령>은 오늘날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미래를 예측한 것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급진주의와 허무주의는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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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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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11 선동(표트르), 공허(스타로브긴), 허황(스테판), 무신(키릴로프), 허영(바르바라)이 난무한 혼돈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대답. 아이러니속에 숨어있는 진지함을 찾는 재미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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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2-08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으론 도선생님 전집 사놓으셨고 완독하신 새파랑님 이제 민음사로 다시 시작하시나요?
문학동네 죄와벌도 좋다고 하던데요?

새파랑 2025-02-09 18:23   좋아요 1 | URL
<악령>은 열린책들로 읽었었는데 다른 출판사 책도 나와서 재독하고 있습니다 ㅋ 다시 읽으니까 확실히 더 이해가 잘되네요~!!
<죄와 벌> 저는 문학동네로 읽었었는데 나쁘지 않았었던거 같습니다~!!
 

완벽한 작품이다~! 감탄에 감탄

여러분의 발걸음은 당분간 오직 모든 것이, 즉 정부와 정부의 도덕성이 와해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오직, 권력을 접수하기로 미리 예정된 우리만 남게 될 겁니다. 현명한 자들은 우리에게 합류시키고 멍청한 자들이라면 그 위에 올라타고 갑시다. 이 점을 곤혹스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세대를 자유에 걸맞도록 재교육해야 합니다. - P261

"하지만 정확하게 대답해 줘요. 우리가 이 세상 딱 하나만의 유일한 5인조인가요, 아니면 정말로 수백 개의 5인조가 있는 건가요? 고상한 의미에서 물어보는 겁니다, 표트르 스테파노비치. - P263

정말 멍청한 인간이로군! 정말이지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텐데, 하나든 수천 개든. - P264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그의 의지이고 나는 그의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없다면, 모든 것이 나의 의지이고 나는 자유 의지를 천명할 의무가 있어. - P278

"나에게는 신이 없다는 것보다 더 높은 관념은 없다. 나를 위해서 인류의 역사가 존재한다, 인간은 자살하지 않은 채 살기 위해 신을 고안해 내는 일을 했을 뿐이다, 여기에 지금까지의 전 세계사가 모두 들어 있다, 나는 전 세계사를 통틀어 신을 고안해 내는 것을 처음으로 원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모두 단번에, 영원토록 알게 될 것이다." - P279

‘마침 그곳 산기숙에는 놓아 기르는 돼지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마귀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마귀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가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읍내와 촌락으로 도망쳐 가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보러 나왔다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예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이 일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마귀 들렀던 사람이 낫게 된 경위를 알려 주었다." - P341

오, 내가 누구든, 무엇을 했든! 기필코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행복을 알아야 하며, 매 순간 어딘가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위한 완전하고 평온한 행복이 이미 존재함을 믿어야 합니다. - P357

"아니, 종잇장들의 공표 이후가 아니라 공표 이전에 하루 전, 한 시간 전, 어쩌면 위대한 발걸음을 내틴기 직전에 흡사 출구를 찾듯 새로운 범죄에 몸을 내던질 겁니다, 오직 종잇장의 공표를 피하기 위해서!"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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