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사강과 함께다.


그는 자기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고뇌와 근심의 물결을, 전화를 하고 싶은 충동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것은 강박관념이 되었고, 앞으로 닥쳐올 그의 나날을 채울 가장 뚜렷한 특징이 되고 있었다. - P11

그는 한창 때의 청년인 양 행동했다. 조제와 함께 인생에 대해, 책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와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을 고상하면서도 경솔한 방식으로 했다. - P11

한 달 후, 일 년 후, 우리는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될까요?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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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2-18 2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주말
사강과 함께~
୧༼◕ ᴥ ◕༽୨

새파랑 2022-02-19 08:41   좋아요 1 | URL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읽기 시작도 못했어요 😅 오늘은 독서에만 올인하겠습니다~!

청아 2022-02-18 2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강은 역시 평일보다 주말인듯 합니다٩(。•ㅅ•。)ㅎㅎ

새파랑 2022-02-19 08:41   좋아요 1 | URL
미미님은 요일에 상관없이 독서기계~!!

페크pek0501 2022-02-19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
-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음지가 있으면 꼭 양지가 있기 마련이죠.

새파랑 2022-02-19 13:28   좋아요 1 | URL
언제나 좋은일만 있다면 그게 좋은 줄 알 수 없게 되니까 안좋은일도 가끔은 필요한거 같아요 ^^
 
우미인초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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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27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하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는 것과 같은 거겠지."


나쓰메 소세키의 <우미인초>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한권의 철학책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도대체 어디까지 들여다 본 걸까? 책을 읽는동안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책을 다 읽고나서도 한참 이어졌다.

[죽음은 만사의 끝이다. 또 만사의 시작이다. 시간을 쌓아 날을 이루는 것도, 날을 쌓아 달을 이루는 것도, 달을 쌓아 해를 이루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을 쌓아 무덤을 이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덤 이쪽의 모든 다툼은 살 한 겹의 담을 사이에 둔 업보로, 말라비틀어진 해골에 불필요한 인정이라는 기름을 부어 쓸데없는 시체에게 밤새 춤을 추게 하는 골계다. 아득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아득한 나라를 그리워하라.]  P.27

[우주는 수수께끼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마음이다. 마음대로 풀고, 마음대로 안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의심하고 들면 부모도 수수께끼다. 형제도 수수께끼다. 아내도 자식도, 그렇게 보는 자신조차 수수께끼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억지로 떠맡고 백발이 되어도 꾸물꾸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밤중에도 번민하기 위해서다.]  P.61




<우미인초>에 등장하는 인물이 많고, 이야기도 다소 복잡하지만 상당히 재미있다. 혹시나 나중에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인물들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고노 집안]

고노 : 갑부집 아들에 철학자로 물욕이 없으며, 아버지는 외국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인 수수께끼 여인은 계모이다. 상속받은 모든 재산을 계모와 동생에게 주고 집을 떠나 산에 들어가려고 한다.

후지오 : 고노의 여동생, 계모의 딸. 클레오파트라 같은 인물로,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점찍어둔 한량인 무네치카와의 결혼은 거부하고,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데릴사위로 데려올 수 있는 오노와 결혼하려고 한다.

어머니(수수께끼 여인)  :  고노와 후지오의 엄마. 계산적이고 겉과 속이 다르며, 친아들이 아닌 고노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뒷바라지 할 수 있는 오노를 사위로 데려오려고 수를 쓴다.



[무네치카  집안]

무네치카 :  한량에 외교관 시험에 한번 떨어진 경험이 있고, 고노의 친구이다. 고노의 동생인 후지오를 마음에 두고 있으며, 겉보기와는 다르게 가장 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도리라는 것을 안다.

이토코 : 무네치카의 여동생으로 후지오와는 다른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고노를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있고, 그의 고민을 유일하게 이해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출가하려는 고노를 막을 수 없어서 안타까워 한다.



[오노 집안]

오노 :  학식이 뛰어나고 시도 쓰고,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수제다. 하지만 부모님이 없고 가난하여 스승인 이노우에의 도움을 받아 도쿄의 대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스승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자신의 풍족한 미래를 위해 돈도 많고 자신에게 관심있어하는 후지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여인인 사요코가 있었다. 그녀는 오노의 스승인 이노우에의 딸이었다. 하지만 결혼에 관한 어떤 확약이나 계약이 있었던 아니었기에 오노는 사요코를 떠나려고 한다. 이미 마음은 떠났다.



[사요코 집안]

이노우에 :  사요코의 아버지이자 오노의 스승으로, 교토에서 생활하면서 아무것도 없었던 오노를 자식처럼 키워서  도쿄의 대학에 보낸다. 그리고 자신과 딸의 미래를 오노에게 맡기고 싶어하고, 딸과 오노가 결혼할 거라 믿는다.(그런 암시가 있었다.) 오노가 도쿄로 떠나고 5년이 지난 후, 딸과 오노를 결혼시키기 위해 교토에서 도쿄로 이사를 가지만, 오랜만에 만난 오노는 어딘가 변해 있었다. 또한 딸에 대한 오노의 애정이 식어버린 걸 어렴풋이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요코 : 이노우에의 딸. 오노가 도쿄의 대학에 가게 되어 5년동안 떨어져 지내지만, 그에 대한 애정을 항상 지키고 있었던 여인. 자신의 속마음을 내색하지는 않지만 이미 오노를 자신의 남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쿄에 와서 만난 오노는 그녀가 알고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자꾸 그녀를 피하는 오노를 보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그를 기다린다. 한번 주었던 마음은 쉽게 회수할 수 없었다.

(등장인물에 대해 간단히 쓰다보니 거의 줄거리가 되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젊은 남녀의 사랑이지만 이것은 단지 소재일 뿐이고, 소세키는 캐릭터가 확실히 구분되는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도리란 무엇인지, 인간은 왜 고독한건지, 인간의 마음은 왜 변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들려준다.

[떠나는 자는 무자비하게 떠나간다. 미련도 배려도 없이 떠나간다.]  P.163

[거짓말은 복국이다. 그 자리에서 탈만 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맛있는 것도 없다. 그러나 독이 있기라도 하면 괴로워하며 피를 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거짓말은 진실을 되살린다.]  P.246

[상상하면 두려워진다. 인정에 진절머리를 치면 칠수록 무시무시한 전개를 직접 보게 될지도 모른다.]  P.300

["내가 보기에 진지함이라는 건 실행이라는 두 글자로 귀착하는 거네. 입으로만 진지해지는 것은 입만 진지해지는 거지 인간이 진지해지는 게 아니네. 자네라는 한 인간이 진지해졌다고 주장한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만큼의 증거를 실제로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네."]  P.406




다만 책의 마지막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무네치카"가 "오노"를 설득하는 장면은 왠지 설득력이 떨어졌고, 이미 한번 돌아서버린 "오노"가 다시 돌아온다고 했을때 이를 받아준 "사요코"의 마음도 공감이 안되었다. 이미 사랑이 식어서 한번 떠났던 마음인데, 다시 사랑하는게 가능할까? 무엇보다도 권선징악 같은 결말이 가장 아쉬웠다.


하지만 소세키가 말하고자 했던게 이야기 자체보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었다면 납득이 가는 결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죽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고노"의 일기는 삶과 죽음에 대한 소세키의 철학이 응축되어 있는데, 소세키의 팬이라면 꼭 읽어봐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10년은 3천6백 일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보통사람의 심신을 피로하게 하는 문제는 모두 희극이다. 3천6백 일 내내 희극을 행하는 자는 결국 비극을 잊는다. 어떻게 삶을 해석할까 하는 문제로 번민하다 죽음이라는 글자를 염두에 두지 않게 된다. 이 삶과 저 삶의 선택에 바쁘기에 삶과 죽음이라는 최대 문제를 방치한다.]  P.433




Ps.  소세키 전작 목표인 14권 중 이제 11권을 읽었고, 세 작품이 남았다. (갱부, 춘분 지나고까지, 명암) 한달에 한권씩 읽으면 5월이면 전작을 끝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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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10 12: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빠지지 않도록 열독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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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2-19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여자들의 생각인 것 같아요.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 옆에서 사랑 받으며 행복하기보다,
불행하더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고 싶은 것. ^^

새파랑 2022-02-19 13:22   좋아요 1 | URL
대부분의 여자들의 생각이군요 🤔 그래도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결말부분이 다소 아쉽지만 소세키가 표현하는 인간의 심리는 정말 대단하다.


"저는 옛날 그대로고, 전혀 변하지 않았대요. 변하지 않았다고…". - P168

"놀라는 동안에는 즐거움이 있는 법이야. 여자들은 즐거운 일이 많아 행복하겠어." - P196

"아름다운 분이네요."

이토코는 후지오를 본다. 후지오는 눈을 들지 않는다.

"네."

쌀쌀맞게 내뱉는다. 무척 나지막한 목소리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을 받았을 때, 상대에게 맞장구치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지 않을때 여자는 이런 방법을 이용한다. 여자는 긍정의 말로 부정의 뜻을 담는 신비한 솜씨를 갖고 있다. - P207

사요코를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도 선생을 보살피기 위해 하루빨리 후지오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노는 자신의 생각에 잘못이 있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남이 들으면 훌륭한 변명이될 거라고 생각한다. 오노는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다. - P214

문명인은 놀라고 기뻐하기 위해 박람회를 연다. 과거의 사람은 놀라고 무서워하기 위해 일루미네이션을 본다. - P217

사요코는 또 머뭇거린다. 도쿄가 좋은지 나쁜지는 지금 눈앞에서 서양 냄새가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청년의 마음 하나로 정해지는 문제다. - P219

책임이 있는 뱃사공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 것만큼 화나는 일이 없는 것처럼 자신의 호오를 지배하는 사람으로부터 모르는 체하는 얼굴로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질문을 받는 것은 원망스럽다. 사요코는 다시 머뭇거린다. 오노는 사요코가 왜 이렇게 시원시원하지 못할까, 하고 생각한다. - P219

아름다운 눈매에 영혼을 빼앗긴 자는 반드시 먹힌다. 오노는 위험하다. 사랑스러운 미소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 자는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후지오는 병오년생‘이다. 후지오는 자신을 위해 하는 사랑을 안다. 남을 위해 하는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시적 정취는 있다. 도의는 없다. - P222

자존심이 강한 여자는 턱으로 신호를 보내면 상대가 곧장 달려오는 것을 좋아한다. 오노는 곧장 달려올 뿐 아니라 올 때는 반드시 호주머니에 시가의 구슬을 넣고 온다. 꿈에서조차 자신을 희롱할 의사가 없고 성심을 다해 자신의 장난감이 되는 것을 영예로 생각한다. 자신에게서 그를 사랑할 자격을 찾는 것은 전혀 모르고 그저사랑받아야 할 자격을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눈썹으로, 자신의 입술로, 그리고 자신의 재능으로 알아차리고 오로지 갈망하기만 한다. 후지오의 사랑은 오노가 아니면 안 된다. - P223

자존심은 사랑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앙갚음은 얼마든지 있다. 가난은 사랑을 굶주림에 말라 죽게 한다. 부귀는 사랑을 사치스럽게 한다. 공명은 사랑을 희생하게 한다. 자존심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랑을 짓밟는다. - P225

이쪽에서 도망쳐 나온 5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쪽에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밤낮없이 풀어낸 실이 사실 가늘긴 해도 붉은 인연의 색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있는 그런 사이인 것이다. - P246

거짓말은 복국이다. 그 자리에서 탈만 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맛있는 것도 없다. 그러나 독이 있기라도 하면 괴로워하며 피를 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거짓말은 진실을 되살린다. - P246

"당신은 그대로가 좋습니다. 움직이면 변하지요.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움직이면요?"

"예, 사랑을 하면 변합니다." - P262

가까스로 해버린 거짓말은 거짓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속일 생각은 없어도, 해버린 이상 거짓말에 대해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다. 분명히 말하자면 그 거짓말에 평생의 이해가 달려 있다. 이제 거짓말은 할 수 없다. 이중의 거짓말은 신도 싫어한다고 들었다. 오늘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거짓말을 진실로 통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 P279

저쪽에 가서 한발 깊게 빠지고 이쪽에 와서 한발 더 깊게 빠진다. 양쪽을 어렵게 여겨 한발씩 양쪽에 잡히고 만다. 결국에는 인정에 얽매이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해? 이해라는 것은 인정의 토대 위에 나중에 씌운 평판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자신을 움직이는 첫 번째 힘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인정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P300

상상하면 두려워진다. 인정에 진절머리를 치면 칠수록 무시무시한 전개를 직접 보게 될지도 모른다. - P300

여자는 순간 하얀 버선 한쪽을 뒤로 뺐다. 갈색을 띤 주황색으로 염색한 고풍스러운 무늬가 선명하게 봄의 한적한 정취를 풍기는 오비 사이에서 구불거리는 뭔가를 억지로 잡아당기듯이 날카롭게 빼냈다가는 뱀의 불룩한 머리를 손바닥에 쥐고 가늘고 긴 황금색을 공중으로 흔드니 심홍색 빛은 탁 하고 꼬리부터 솟구친다. 다음 순간에는 오노의 가슴 좌우에 찬란한 금 시곗줄이 고정된 번개처럼 걸려 있다. - P377

"어머니는 가짜네. 자네들이 모두 어머니한테 속고 있는 거지. 어머니가 아니라 수수께끼야. 도덕이 쇠퇴하고 인정이 메마른 말세 문명의 특산물이지." - P381

"어머니가 나한테 집에서 나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나가달라는 의미네. 재산을 가지라는 것은 넘기라는 의미지.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것은 그게 싫다는 뜻이네." - P382

"5년간 남편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한테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난데없이 거절당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데로 시집갈 수 있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요코는 그런 경박한 여자가 아니네. 그렇게 경박하게 키웠다고 생각하지 않네. 자네는 그렇게 경솔하게 파혼을 중개하고 사요코의 인생을 그르쳐서 기분이 좋은가?" - P392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지킬 수 있는 조건을 빼앗은 사람은 자신이 아니다. 자진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과 방해 때문에 지킬 수 없는 것은 기분이 다르다.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졌을 때 자신에게 그 책임이 없도록 누군가 방해해주는 것은 기쁜 일이다. 왜 가지 않느냐고 양심이 힐문한다면, 가려는 의무감은 있었으나 무네치카가 방해를 해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대답한다. - P398

"내가 보기에 진지함이라는 건 실행이라는 두 글자로 귀착하는 거네. 입으로만 진지해지는 것은 입만 진지해지는 거지 인간이 진지해지는 게 아니네. 자네라는 한 인간이 진지해졌다고 주장한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만큼의 증거를 실제로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네." - P406

"전 모르겠어요. 나가고 싶은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뭐라든 나가고 싶은 거니까요. 그게 어머님께 폐가 될 리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아무리 비가 내린다고 해도 어머님은 비에 젖을 리 없으니까 상관없지 않나요?"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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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세키 작품은 좋다.




"어느 틈에 이렇게 높이 올라온 거지? 빠르구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하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는 것과 같은 거겠지." - P20

죽음은 만사의 끝이다. 또 만사의 시작이다. 시간을 쌓아 날을 이루는 것도, 날을 쌓아 달을 이루는 것도, 달을 쌓아 해를 이루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을 쌓아 무덤을 이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덤 이쪽의 모든 다툼은 살 한 겹의 담을 사이에 둔 업보로, 말라비틀어진 해골에 불필요한 인정이라는 기름을 부어 쓸데없는 시체에게 밤새 춤을 추게 하는 골계다. 아득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아득한 나라를 그리워하라. - P27

고통의 기념이 필요하다면, 백발이 될 때까지 해아려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터져서 뼛속으로 들어가 사라질 만큼 많다. - P27

마음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는 동안은 죄가 되지 않는다. 돌이킬 수 있는 수수께끼는 법정의 증거로는 좀 약하다.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뭔가 있었다는 것을 묵인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안심하고 있다. 천하는 태평하다. 어떤 사람도 뒤에서 손가락질할 수 없다. 손가락질한다면 그 사람이 나쁘다. 천하는 어디까지나 태평하다. - P45

우주는 수수께끼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마음이다. 마음대로 풀고, 마음대로 안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의심하고 들면 부모도 수수께끼다. 형제도 수수께끼다. 아내도 자식도, 그렇게 보는 자신조차 수수께끼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억지로 떠맡고 백발이 되어도 꾸물꾸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밤중에도 번민하기 위해서다. - P61

오노는 왼손을 뻗어 책상에 기댄 채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조금 전에 받은 편지 봉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멀리서 바라보았으나 쉽사리 봉투를 뒤집지 않는다. 뒤집지 않아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다. 짐작이 되기에 뒤집기가 힘들다. 뒤집었다가 짐작한 대로라면 그거야말로 돌이킬 수가 없다. - P81

내 세계와 내 세계가 엇갈렸을 때 할복을 하는 일이 있다. 자멸하는 일이 있다. 내 세계와 다른 세계가 엇갈렸을 때 둘 다 무너지는 일이 있다. 부서져 날아가는 일이 있다. 혹은 길게 열기를 끌며 무한한 것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있다. 생애에 한 번 굉장한 엇갈림이 일어난다면 나는 막을 내리는 무대에 서는 일 없이 스스로가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 P122

자신의 세계가 둘로 갈라지고, 갈라진 세계가 각각 움직이기 시작하면 괴로운 모순이 일어난다. 대부분의 소설은 그 모순을 자신만만하게 그린다. 사요코의 세계는 신바시 역에 부딪쳤을 때 금이 갔다. 다음은 깨질 뿐이다. 소설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지금부터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의 생활만큼 딱한 것도 없다. - P155

사요코는 다가갈 수가 없다. 손을 뻗어도 닿을 것 같지 않다. 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오노는 자신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 P159

떠나는 자는 무자비하게 떠나간다. 미련도 배려도 없이 떠나간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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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2-02-16 2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미인초> 강렬한 작품이었어요. 자줏빛 표지도 정말 예뻤지요.
심리묘사가 탁월한 작품들이라 읽으며 음미하는 즐거움도 있을 거예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새파랑님.^^

새파랑 2022-02-16 23:12   좋아요 1 | URL
소세키가 그리는 인간의 심리는 정말 감탄입니다. 통찰력이 어마어마한거 같아요~!!

scott 2022-02-16 2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파!
새파랑님에게는 책!책!책!

우미인초 번역 하셨던 번역가 송태욱님
이 책 번역 하다가
넘 ㅎ 힘드셨다고 합니다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썼다능 소세키옹 ^ㅅ^

새파랑 2022-02-16 23:13   좋아요 2 | URL
소세키는 정말 짱입니다 ㅋ 약간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번역이 넘 좋았는데 그런 어려움이 있었군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