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34
˝고통은 미친 짓이야. 고통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더 미친 사람이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권 발매 기념으로 그동안 오래 묵혀두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권인 <갇힌 여인 1>을 읽었다. 아직 2편이 남아 있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섣불리 예상할 수 없으나, 9권의 주요 이야기는 알베르틴과 함께 살게 된 마르셀의 사랑과 질투 그리고 의심이다.
[혼자 있을 때면 그녀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는 내 곁에 없었고 나는 그녀를 소유할 수 없었다. 그녀가 내 곁에 있을 때면 나는 그녀에게 말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의 부재로 인해 그녀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잠이들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녀가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으므로, 나는 더 이상 자아의 표면에 살 필요가 없었다.] P.114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음에도, 함께 동거하고 있음에도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은 실시간으로 변한다.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될 때에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어간다고 느끼지만, 그녀의 의심어린 행동을 발견할 때에는 극심한 질투를 느끼며, 차라리 그녀가 아름답지 않아서 아무도 처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가까이 있어도 너무나 멀기만 한 그녀.
[사랑의 고뇌는 때때로 멈추었다가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우리는 사랑하는 여인이 더 이상 공감의 열정을 갖지 못하고, 초기의 애정 어린 은근한 접근도 하지 않음을 보고 슬퍼하며, 어쩌면 그녀가 우리에 대해 잃어버린 열정이나 그 접근을 다른 이와 더불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괴로워한다.] P.166
[어느날 저녁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갈매기 같은 소녀들의 무리에 둘러싸인 채 느린 걸음으로 방파제를 걷던 새가, 일단 내집에 갇힌 몸이 되자, 알베르틴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가질 수 있는 온갖 기회와 더불어 그녀의 빛깔도 다 잃어버렸다. 그녀는 점차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어 가고 있었다.] P.285
[그러나 나의 소망은 알베르틴이 젊거나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 거리에서 뒤를 돌아다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일이 자주 없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질투에 사로잡힌 연인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것은, 젊은 여자를 보살펴 주는 나이 든 부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나이 든 모습이기 때문이다.] P.319
마르셀은 왜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사랑을 놓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현실에서 갇힌 여인은 알베르틴 이지만 마음속에 갇힌 사람은 마르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사랑하는 마르셀이 더 고통받을 뿐이다. 10권까지 읽고 <갇힌 여인> 리뷰를 써야겠다.
˝사랑이란 어쩌면 어떤 감정의 분출을 겪고 난 후, 영혼을 뒤흔드는 소용돌이가 확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