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42

˝고맙다. 그리고 잘 있어라. 우리는 그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가을에, 겨울에, 봄에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굿바이, 콜럼버스, 굿바이˝


<굿바이 콜럼버스>는 ˝필립 로스˝의 데뷔작으로, 이 책에는 표제작인 중편 <굿바이 콜럼버스>와 여섯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출판된게 1959년인데, 그가 27살때의 일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참 풋풋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립 로스˝도 20대 때에는 엄청난 울분에 차있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이전까지 읽은 필립 로스의 가장 오래된 작품이 <미국의 목가>(1997년 작) 였는데, <굿바이 콜럼버스>는 이 책보다 무려 38년 전에 나왔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목가> 이후 작품들과는 분노 표출이라든지 묘사 측면에 있어서 약간은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필력은 데뷔때부터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 실려있는 모든 작품의 공통된 키워드는 ‘유대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표제작인 <굿바이 콜럼버스>는 같은 유대인이더라도 부자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의 삶은 다르다는 것을, 서로 섞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닐˝은 부모님 곁을 떠나 숙모의 집에서 사는데, 어느날 수영장에서 ˝브렌다˝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둘은 사귀게 된다. 그녀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잘사는 집안의 딸이었지만 그녀의 집안은 ˝닐˝을 배척하지는 않고 그를 순수하게 ˝브렌다˝의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를 초대해서 몇일동안 집에서 머무르게도 한다.

[˝사실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고 소유하게 되었다.˝]  P.37



그런데 젊은 남여가 함께 있다보면 당연히 육체적인 관계도 따르는 법, ˝닐˝은 그녀에게 ‘페서리‘를 할 것을 요구한다.(이게 뭔지 몰라서 인터넷에 찾아봤다...) 처음에 ˝브렌다˝는 이걸 거부하지만(유대교 율법에 어긋나는걸까?), 결국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시간이 흘러가는데, 아뿔싸 ˝브렌다˝의 어머니가 딸의 방에서 이걸 발견한다. 그리고 대판 싸운다. ˝닐˝은 왜 이걸 방에다 숨겨놨는지 화를 내고, ˝브렌다˝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닐˝에게 화를 낸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별이 과연 ‘페서리‘ 때문이었을까? ‘페서리‘는 단지 계기 였을 뿐, 두 사람은 결국 성장 배경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
˝나는 너를 사랑했어, 브렌다, 그래서 걱정을 했던 거야.˝

˝나도 너를 사랑했어. 그래서 애초에 그 빌어먹을 걸 얻으러 갔던 거야.˝

그 순간 우리는 우리가 말한 시제를 들었고, 우리 자신에게로, 침묵으로 물러났다.
-----------------------  P.219





<유대인의 개종>은 유대교에 대한 필립 로스식 의문과 유대율법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을 풍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신앙에 대한 의문을 가진 ˝오지˝에게 선생님과 어머니는 정확한 답변을 못하고 오히려 답변을 회피하고 ˝오지˝를 때린다. 결국 분노한 ˝오지˝는 학교 옥상에 올라가 자살 소동을 일으킨다.

[˝하루의 빛을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동트는 것은 출생, 해가 지는 것, 즉 가장자리 너머로 떨어지는 것은 죽음. 그렇다면 오지 프리드먼이 야생마가 뒷발로 걷어차듯 두 발로 빈더 랍비의 뻗은 두 팔을 차면서 몸을 꿈틀거려 회당 지붕에 달린 문을 통과했을 때, 그 순간에 하루는 쉰 살이었다. 쉰이나 쉰다섯살이라는 나이는 십일월의 늦은 오후를 대체로 정확하게 반영한다.˝]  P.237





<신앙의 수호자>는 같은 유대인이라는 점을 들어서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이를 악용하는 사악한 인간을 군대라는 상황에 적용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막스˝ 하사는 부대에 들어온 신입병 ˝셜던˝이 계속 군인답지 않은 행동을 하지만, 같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편의를 봐주고 거짓말도 눈감아주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그의 악랄함에 결국 그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직접 밀어넣어버린다. 이를 알게된 ˝셜던˝은 ˝막스˝를 반유대주의자라고 비난하지만, 독자는 안다. 누가 나쁜 놈인지. 다 읽고 나서 <휴먼 스테인>, <울분>이 떠올랐다.

[˝누구도 좋은 쪽으로든 아니면 나쁜 쪽으로든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자기를 증명하는 것뿐이야.˝]  P.267





<엡스타인>은 구세대 유대인과 신세대 유대인의 갈등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노인 ˝엡스타인˝은 겉으로는 온갖 바른척을 하면서 아랫사람을 교육하지만, 그도 결국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다 읽고 나서 <미국의 목가>가 약간 연상되었다.

[문제의 발단을 찾아내려면 얼마나 멀리까지 돌아가야 하는 걸까? 나중에 시간이 더 나면 엡스타인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터였다. 언제 시작되었을까?]  P.334





<광신자 엘리>는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유대인 집단을 찾아가 개화 시키려고 했던 한 변호사가 오히려 미처버려서 광신자가 되어버린 이야기이다. 주인공 ˝엘리˝는 유대교의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유대인 집단의 교장인 ˝추레프˝를 찾아가서, 당신들의 복장과 관습이 동네의 불안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추레프˝는 이를 거부한다.

[˝당신 너무 나가는 거야, 엘리. 그게 당신 문제야. 당신은 어떤것도 적당히 할 줄을 몰라. 사람들은 그러다 자멸한다고.˝] P.432



일에 너무 몰두한 ˝엘리˝는 그들의 특이한 의복을 벗게 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좋은 옷을 그들에게 보낸다. 게다가 임신중인 아내에게도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맡은 변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과도하게 집착한다. 결국 미쳐버린 그는 ˝추레프˝ 집단이 원래 입고 있던 이상한 옷을 자신이 입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친걸 알 수 없는 법이다.

[어쩌면 자신이 미치는 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미치는 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다니! 미치는 것을 선택했다면 미친 것이 아니었다. 선택하지 않았을 때가 미친 것이었다. 그래, 그는 정신이 돈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봐야 할 아이가 있었다.]  P.468





처음 읽은 ˝필립 로스˝의 단편집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역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상관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필립 로스˝의 장편이 내 취향에 맞는것 같다. 이야기들이 짧게 끝나서 약간 아쉬움이 있었다.


˝필립 로스˝는 <굿바이 콜럼버스>에서 이미 자신의 작품 정체성을 어느 정도 확립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적인 갭이 크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 삼부작‘이 떠올랐고, 특유의 언어 유희와 약하긴 하지만 그만의 울분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필립 로스˝를 좋아한다면 이 책은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게다가 ‘유대인‘이 쓴 ‘유대인‘을 까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재미있고 더 와닿았다.


Ps. 이제 <필립 로스>의 소설(자서전, 에세이 빼고) 전작도<포트노이 불평>, <유령 퇴장>, <새버쓰의 극장>  세 작품만 남았다.

추가 : 찾아보니 <위대한 미국 소설> 이라는 책도 있었다. 그럼 네 작품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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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2-03-13 18: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세 권 남으셨어요? 대단하십니다 ㅋㅋㅋ저는 첫 필립 로스가 포트노이의 불평 (현재까지) 마지막 할배가 새버스의 극장이라 뭔가 의미있는 남음(?)이네요. 둘다 매콤한 맛이라 책 안 읽는 요즘에도 가끔 장면장면 생각납니다…죽었지만 대단한 할배시여…

새파랑 2022-03-13 18:36   좋아요 5 | URL
제가 세권 남았다고 쓴건 이 책 뒷부분에 있는 문학동네 ‘필립 로스‘ 출판책 보고 계산해 본건데, <위대한 미국 소설>이라는 소설도 출판되어 있더라구요 😅

일단 리뷰에 올린 책들만 읽은 책들입니다 ㅋ

남아있는 작품중 쎈 작품이 남았다니 뿌듯하네요 ^^ 열반인님도 수능 끝나시면 같이 전작 하시죠~!!

페넬로페 2022-03-13 21: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유대교가 융통성 없기로 유명하잖아요
이 소설이 거기에서 오는 문제들을 다룬 것이군요~~
올해는 꼭 필립 로스의 작품을 읽으려고 결심은 했는데 아직 입니다.
필립 로스의 작품도 이제 네 개만~~
새파랑님은 전작읽기의 왕 이십니다^^

새파랑 2022-03-13 21:24   좋아요 5 | URL
필립 소설의 네개만 입니다 ㅋ 에세이 같은 책이 두권 더 있더라구요 😅 필립 로스가 호불호가 좀 있어서 걱정이긴 합니다 ㅋ 처음 읽기에는 <네메시스> 가 좋을거 같아요 ^^

청아 2022-03-13 2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해야할 일은 자신을 증명하는것‘이 말 멋집니다!ㅎㅎ
몸소 증명하고 계신 새파랑님👍 필립로스도 이제 이렇게나 많이 읽으셨네요. 계속되는 전작읽기 응원합니다😉

새파랑 2022-03-13 22:05   좋아요 4 | URL
전 사람이 아닙니다 ㅋ 야금야금 읽다보니 열권이 넘어갔네요~!! 조금씩 읽다보면 금방 전작 되는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2-03-13 21: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단편은 안읽어봤어요 필립로스식 유머가 단편집에 어떻게 들어가있을지 조금 기대가 되네요.

새파랑 2022-03-13 22:06   좋아요 5 | URL
다른 필립 로스 작품에 비해 좀 가볍게 금방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읽은건 목요일?에 다 읽었는데 늦장 피우다가 이제야 급하게 리뷰를 썼어요 😅 이거 말고 다른 단편은 없는거 같더라고요 ㅋ

얄라알라 2022-03-13 22: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의 세계가 38년의 시간차를 두고 어떻게 깊어졌는지, 변해왔는지,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예민함. 새파랑님의 책읽기 여정을 엿보고 갑니다. 스물 일곱 살 때부터도 글 잘쓰시는 분은 그냥 다른 거군요^^ 아직 필립 로스 입문도 못했는데 새파랑님께서는 막판 스퍼트 각이시네요. 응원과 감탄을 보내고 갑니다

새파랑 2022-03-13 22:27   좋아요 3 | URL
제가 읽은 필립 로스의 작품이 대부분 후반기 작품들이어서 그런거 같아요 ㅋ 그런데 국내 번역된 책들 대부분이 후반기 작품들이에요 ㅎㅎ 글 잘쓰는 분들은 원래 잘썼던걸교 😅 막판 스퍼트를 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희선 2022-03-14 0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책 한권도 못 봤지만, 이 책은 스물일곱에 썼군요 이 책에 나중에 나올 책 분위기도 들어 있다니, 그 책을 먼저 봐서 아시는 거겠습니다 필립 로스는 이걸 쓰면서 알았을지... 어떤 걸 써야겠다는 건 이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03-14 06:52   좋아요 1 | URL
오히려 뒤에 나온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유사점을 찾는 재미가 있었어요 ㅋ 스물일곱에 저는 뭘한건지 😅

coolcat329 2022-03-14 1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단편집도 있군요. 데뷔작이라니 필립 로스 팬이라면 꼭 읽어야겠네요. 계획대로 돌아가며 전작읽기 멋지세요.

새파랑 2022-03-14 12:14   좋아요 1 | URL
앞으로 전작 읽기가 끝나면 무슨 책을 읽을지 벌써 고민입니다 😅

mini74 2022-03-14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전작 읽기는 저의 귀감이 됩니다. 팔랑거리는 귀를 가진 저로서는 아 ~~ 이 책 좋다면 덥석 저 책 좋다면 덥석 ㅎㅎㅎ 북플계의 메뚜기 같은 존재 ㅋㅋㅋ 필립 로스 전작 읽기 응원합니다 *^^* 멋지십니다 !

새파랑 2022-03-14 21:10   좋아요 2 | URL
저도 북플계의 메뚜기 입니다 ㅋ 오늘은 책을 아직 시작 못했어요. 30분이라도 읽어야 할거 같아요 ㅜㅜ

얄라알라 2022-03-14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새파랑님 지존이라고 하셔도 될 것을 굳이 메뚜기라고^^; 광폭 점핑 가능한 메뚜기이시죠. 메뚜기에 비유하신다면

새파랑 2022-03-14 23:23   좋아요 1 | URL
제가 지존(?)이라고 하기엔 북플에 워낙 엄청난 분들이 많으셔서요 😅 전 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책을 많이 못읽었다.


아버지 마카르는 나약한 여자애처럼 아들에게 빌붙어 살며 아들의 애인들을 눈앞에서 가로채기 일쑤였고, 토요일만 되면 아들의 월급을 빼앗아 쓰려고 그의 작업장 앞에서 기다리곤 했다. 어머니가 늘 맞으면서 뼈빠지게 일만 하다 죽자, 바로 그전에 애인과 파리로 도망간 누이 제르베즈처럼, 그도 무위도식하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쳤다. - P122

농장을 헐값에라도 팔고 다른 일을 했어야 했는데, 아마도 그동안 해오던 일이고 언젠가 변할 거라는 희망, 그리고 열정 때문일까요? 일단 이 빌어먹을 땅에 붙들리면 헤어나질 못해요. - P192

"당신, 다 당신 잘못이야! 야생트에게 돈을 준 게 바로 당신이잖아…… 당신은 나를 사랑한 적이 없어. 당신은 늙은 탕녀라고!" 그가 거칠게 밀쳐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힘없이 나뒹굴어 벽에 부딪히면서 주저앉았다. - P272

아내를 묘지에 묻고, 푸앙 영감은 그들 부부가 오십 년 동안 힘들게 살아왔던 집으로 혼자 돌아갔다. 그는 선 채로 빵 한 조각과 치즈를 먹었다. 그러고 나서 슬픔을 어떻게 삭여야 할지 몰라 텅 빈 건물들과 텃밭을 하릴없이 오갔다. 이제는 할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는 자신의 예전 땅들을 보러, 밀이 잘 자라는지 보러 고원으로 올라갔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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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12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에는 책 읽지 마시고, 눈에도 휴일을 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새파랑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03-13 09:06   좋아요 1 | URL
제가 지금 눈만 멀쩡하고 나머지 부분이 좀 안좋아서😅 오늘은 좀 쉴까 봅니다 ㅋ
 

두께가 엄청나다. 이번 주제는 부동산과 상속이다.

농부들이 붙여준 그 별명을 듣자, 젊은 남자는 미소지었다. 이번에는 그가 소녀를 자세히 살폈다. 봉긋하게 솟은 작고 단단한 가슴, 아주 깊은 검은 눈과 도톰한 입술, 갸름한 얼굴, 익어가는 과일처럼 싱그럽고 발그레한 살갗에서 벌써 처녀티가 흐르는 모습에 그는 놀랐다. - P14

장이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녀가 그의 허리를 잡았다. 그녀는 주인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탐욕스러운 애인처럼, 사람들이 보든 말든 아무 거리낌 없이 장난스럽게 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댔다. - P18

세자르는 준비가 되자 지반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무게로 펄쩍 뛰어 콜리슈에게 올라탔다. 콜리슈는 주저앉지 않았고, 황소는 두 다리로 콜리슈의 옆구리를 조였다. 하지만 암소 콜리슈가 너무 높고 펑퍼짐해서, 암소보다 덩치가 작은 황소는 쉽사리 올라타지 못했다. 녀석도 그것을 알고 다시 올라타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 P20

"이런, 어디서나 손이구먼! 그러니까 네 애인이 마지막 순간에 못찾아 들어간 모양이지!" - P21

"그러니까 푸앙 영감님, 생전에 두 아들과 딸에게 재산을 나눠주기로 결정하신 거지요.?" - P31

"이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별력 있는 많은 이들이 재산권 포기를 비난합니다. 가족의 유대를 해치기 때문에 부도덕하다고 보는 거죠. 사실 한탄스러운 사례를 말씀드릴 수도 있는 것이, 부모가 재산을 다 나눠주고 빈털터리가 됐을 때 자식들이 아주 못되게 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 P34

푸앙 역시 자식들이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할지 내심 불안해서 그들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게을러 빠진 술꾼보다 다른 두 자식의 지독한 탐욕이 더 불안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렸다. 서로 잡아먹는다 해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 P35

"아! 못된 종자 같으니! 저런 놈을 키웠다니, 내가 너희들 입에 들어가는 것을 빼앗기라도 했냐!…… 정말이지 정나미가 떨어진다! 내가 죽어서 벌써 흙속에서 썩고 있었으면 좋겠다…… 너희가 이렇게까지 각박하게 굴어야겠니? 너희는 550프랑만 주겠다는 거냐?" - P40

"바보 같으니! 했잖아, 조언! 살아 있는 동안에 재산을 포기하는 바보나 비겁한 놈이 하는 짓이라고...나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해... 내 것이 남의 것이 되고, 망나니 같은 자식놈들 때문에 문밖 신세가 되는 꼴은 절대로 못 보지, 암, 못 보고말고!" - P47

그 누구도 정확하고 완벽한 조세 목록을 작성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 왕으로부터, 주교로부터, 영주로부터 날아들었다. 몸 하나에 세마리의 탐욕스러운 육식동물이 달려들었다. 왕은 호구조사와 인두세를, 주교는 십일조를, 영주는 이 모든 것을 부과하면서 어디서나 돈을 끌어냈다. 농부에게는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았다. 땅도 물도 불도, 그들이 숨쉬는 공기조차 그들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언제나 돈을 내야 했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계약할 때도, 가축떼를 위해서도, 장사할 때도, 즐거운 일에도 돈을 내야 했다. - P97

"그런 게지! 그런 게야!" 푸앙 영감은 계속 말했다. "젊을 땐 뼈빠지게 고생하다가 어렵사리 흑자를 볼 때쯤이면 늙어버려 떠나야 하지..... 그렇지 않아, 로즈?" - P105

그녀는 농장 일꾼들에게는 몸을 내주며 실컷 즐기게 해주었지만, 주인에게는 자신의 힘을 높이기 위해 감질나게 주면서 자극했다. 그날 아침에도 눅눅한 그 방에서, 그는 그녀의 체취가 밴 흐트러진 침대에 누워 분노와 욕망에 사로잡혔다. 오래전부터 그녀가 자신을 끊임없이 배반하는 기미를 느껴오던 터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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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3-11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펄벅의 대지 인줄 알고 👆 ^^

새파랑 2022-03-12 09:32   좋아요 0 | URL
전 아직 펄벅의 대지를 안읽어 봤어요😅 (누군지도 모름 ㅎㅎ)

서니데이 2022-03-12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지, 보고 펄벅의 대지만 생각을. 근데 이 책은 에밀졸라의 책이네요.
새파랑님, 즐거운 주말과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2-03-12 09:33   좋아요 1 | URL
에밀졸라의 책인데 상당히 두껍네요.주말에 바쁠거 같아서 이 책 한권만 읽으려고 합니다 ㅋ 좋은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2-03-13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제목 보고 펄 벅을 생각했는데, 에밀 졸라였군요 에밀 졸라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새파랑 님 남은 주말 책과 함께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2-03-13 09:04   좋아요 1 | URL
ㅋ 대지는 펄벅의 것이었군요~!! 오늘은 비가 오네요 ㅋ 희선님도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
 
마리안의 변덕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9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음, 김도훈 옮김 / 연극과인간 / 201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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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41 오랜만에 읽은 희곡. 마리안의 변덕 때문에 흔들리는 클로디오, 셀리오, 옥타브 세 남성의 이야기가 웃프게 그려진다. 가장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결국 피해자가 된다. 분량 자체가 짧고 이야기는 명쾌하지만, 해설을 보니 담고 있는 내용과 의미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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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1 1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피해자 ㅠㅠ 는 맞는 듯 합니다 ㅠㅠ ~

새파랑 2022-03-11 13:20   좋아요 3 | URL
이 책 너무 얇아서 100자평을 쓸까 말까 하다가 그냥 간략시 남겼어요. 다시 희곡에 대한 애정이 생겨야 하는데 😅

청아 2022-03-11 1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명쾌한데 깊이가 있는 작품 좋아하는데 별이3개라 고민됩니다. 80페이지에 가격도 착하네요😁

새파랑 2022-03-11 13:49   좋아요 3 | URL
깊이가 있다는건 해설보고 알았어요 😅 저는 그냥 생각없이 읽었습니다 ㅋ 시간되시면 그냥 가볍게 읽으시면 될거 같아요. 구매는 비추 입니다~!!

제가 21년 10월 1차 구매한 책(15권) 중에 이 책만 안읽어서 마져 읽었어요 ㅋ 드디어 한박스 치웠습니다 😅

scott 2022-03-11 2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N22041 ]요 표시는
새파랑님 서재방 보유 책들!숫!자 !😉

새파랑 2022-03-12 09:35   좋아요 1 | URL
만약 저한테 저렇게 많은 책이 있었으면 바로 북카페를 차렸을거 같아요 ㅋ

저 숫자는 저 나름대로 읽은 책들 정리하려고 붙인 거에요 ㅋ
22년에 41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
 

필립 로스의 데뷔작. 중편과 단편이 수록된 책. 이후 필립 로스가 내놓는 명작들의 뼈대가 이 책에 들어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몇몇 작품이 떠올랐다.






마음은 예언자에 버금간다.

사실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고 소유하게 되었다. - P38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대에게, 세상에게 바치며, 삶을 찾아 그대에게로 간다. 그리고 그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게, 그대 콜럼버스에게, 우리는 고맙다고 말한다. 고맙다. 그리고 잘 있어라. 우리는 그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가을에, 겨울에, 봄에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굿바이, 오하이오 주립대학, 굿바이, 적과 백의 엠블럼, 굿바이, 콜럼버스……… 굿바이, 콜럼버스……… 굿바이…..." - P172

"나는 너를 사랑했어, 브렌다, 그래서 걱정을 했던 거야."

"나도 너를 사랑했어. 그래서 애초에 그 빌어먹을 걸 얻으러 갔던 거야."

그 순간 우리는 우리가 말한 시제를 들었고, 우리 자신에게로, 침묵으로 물러났다. - P219

나는 분명히 브렌다를 사랑했다. 그러나 거기 서서, 이제는 그녀를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내가 그녀를 사랑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꽤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리라는 것도, 내가 다른 누구에게 그런 정열을 그러모을 수 있을까? 무엇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을 낳았든, 그것이 그런 뜨거운 욕망 또한 낳은 것 아닐까? - P220

하루의 빛을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동트는 것은 출생, 해가 지는 것, 즉 가장자리 너머로 떨어지는 것은 죽음. 그렇다면 오지 프리드먼이 야생마가 뒷발로 걷어차듯 두 발로 빈더 랍비의 뻗은 두 팔을 차면서 몸을 꿈틀거려 회당 지붕에 달린 문을 통과했을 때, 그 순간에 하루는 쉰 살이었다. 쉰이나 쉰다섯살이라는 나이는 십일월의 늦은 오후를 대체로 정확하게 반영한다. - P237

누구도 좋은 쪽으로든 아니면 나쁜 쪽으로든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자기를 증명하는 것뿐이야. - P267

문제의 발단을 찾아내려면 얼마나 멀리까지 돌아가야 하는 걸까? 나중에 시간이 더 나면 엡스타인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터였다. 언제 시작되었을까? - P334

"당신 너무 나가는 거야, 엘리. 그게 당신 문제야. 당신은 어떤것도 적당히 할 줄을 몰라. 사람들은 그러다 자멸한다고." - P432

희생의 삶에서 한번 더 희생한다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희생 없는 삶에서는 한 번의 희생도 불가능한 것이지요. - P435

어쩌면 자신이 미치는 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미치는 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다니! 미치는 것을 선택했다면 미친 것이 아니었다. 선택하지 않았을 때가 미친 것이었다. 그래, 그는 정신이 돈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봐야 할 아이가 있었다.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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