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43
˝일단 이 빌어먹을 땅에 붙들리면 헤어나질 못해요.˝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열다섯번째 작품인 <대지>는 땅, 농부에 대한 이야기 이다. 표지나 제목을 봤을 때는 뭔가 따뜻한 이야기 일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에밀 졸라˝ 작품중에 가장 비인간적이고 가장 선정적인 작품이었다. 650페이지의 두꺼운 작품을 읽는 동안 착하고 정직한 사람은 단 한사라도 등장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이익과 욕망만을 앞세우고, 인간적인 도리나 연민 이런 건 전혀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카르 핏줄인 ˝장˝ 이지만, 이야기의 축은 크게
1. ˝푸앙˝ 영감의 가족(첫째 제쥐크리스트(아들), 둘째 파니(딸), 셋째(뷔토)) 이야기와
2. ˝리즈˝(˝뷔토˝의 아내)와 ˝프랑수아즈˝(˝장˝의 아내)의 자매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1. 나이가 들어 농사일에서 은퇴를 하려는 ˝푸앙˝ 영감은 자식들에게 대대손손 물려받은 땅을 물려주려고 한다. 하지만 ˝푸앙˝ 영감의 누이인 ˝그랑드˝ 할멈은 자식들에게 땅을 물려준 순간부터 자식들에게 버림받을 거라 충고했다. 하지만 ˝푸앙˝영감은 땅을 놀릴 수 없기 때문에 땅을 분배해 주는 대가로 지대를 받으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안락한 노후를 꿈꾼다.
[˝바보 같으니! 했잖아, 조언! 살아 있는 동안에 재산을 포기하는 바보나 비겁한 놈이 하는 짓이라고...나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해... 내 것이 남의 것이 되고, 망나니 같은 자식놈들 때문에 문밖 신세가 되는 꼴은 절대로 못 보지, 암, 못 보고말고!˝] P.47
하지만 땅을 물려주기 위해 공중인 앞에 모인 영감과 자식들은 지대의 값과 상속받을 토지 위치를 두고 한바탕 싸운다. 너무 비싸다고 어떻해든 깍으려는 자식들과 어떻해든 많이 받으려는 부모의 모습에서 ˝푸앙˝ 영감의 미래는 이미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별력 있는 많은 이들이 재산권 포기를 비난합니다. 가족의 유대를 해치기 때문에 부도덕하다고 보는 거죠. 사실 한탄스러운 사례를 말씀드릴 수도 있는 것이, 부모가 재산을 다 나눠주고 빈털터리가 됐을 때 자식들이 아주 못되게 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P.37
결국 자식들에게 땅을 나눠주지만 영감은 이후 지대의 값을 단 한번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이후 ˝푸앙˝ 영감은 부인이 죽자, 자신의 집을 팔고 둘째 딸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돈이 들어오는 아버지를 따뜻하게 대하지만 점점 아버지를 귀찮아하고 박대한다. 결국 ˝푸앙˝ 영감은 딸의 집을 나가고 셋째 집으로 가지만 그곳에서도 결과는 똑같았다.
처음에는 그의 남은 돈을 보고 잘해주지만 돈을 갈취한 후에는 박대한다. ˝푸앙˝ 영감은 다시 첫째 집으로 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결국 다시 셋째 집으로 온다. 그리고 남은 그의 마지막 재산을 모조리 셋째인 망나니 ˝뷔토˝에게 다 빼앗긴다. 그리고 그가 평생을 다해 몸받쳤던 대지로 비참하게 돌아간다. 그는 무엇을 위해 살았던 걸까?
[그들 모두 그의 말에 귀기울이면서도, 분노하고 벌주는 하느님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실리적인 사람들답게 마음속으로는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않았다. 악마라는 생각이 벌써부터 우습게 들리는 판에, 바람, 우박, 천둥이 복수하는 주인의 손에 달렸다고 더이상 믿지 않는 판에, 두려워 떨고 납작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담. 그건 분명히 한가한 시절 이야기지. 지금 제일 강한 이 나라의 공권력을 존경하는 게 더 낫지.] P.343
2. 자매의 이야기는 더 비참하고 비현실적이다. ˝리즈˝와 ˝프랑수아즈˝는 나이차이가 있지만 너무나 살갑고 사이가 좋았다. ˝리즈˝는 친척인 ˝푸앙˝ 영감의 셋째 아들인 ˝뷔토˝의 아이를 임신중이었다. 하지만 망나니 ˝뷔토˝는 그녀와의 결혼을 치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자매가 알짜베기 땅을 상속받게 되자 ˝뷔토˝는 땅 욕심 때문에 결국 그녀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땅 욕심 뿐만 아니라 성욕도 엄첨났던 ˝뷔토˝는 그녀의 여동생인 ˝프랑수아즈˝에게 찝쩍되고, 어떻게든 그녀를 가지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명목상 주인공인 ˝장˝ 역시 ˝프랑수아즈˝를 사모하고 있었고, 그녀 역시 ˝장˝에게 마음이 있었으며, 망나니 같은 ˝뷔토˝의 성추행을 어떻게든 거부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뷔토˝의 추행은 극심해지고, 계속해서 강간을 시도한다.
아직 미성년자였던 ˝프랑수아즈˝는 성인이 되기전에 ˝장˝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매가 상속받은 땅을 모두 언니에게 빼앗기기 때문 어떻게든 언니의 집에서 살아간다. ˝뷔토˝와 ˝리즈˝는 ˝프랑수아즈˝가 결혼을 하면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녀의 결혼을 막고, 언니인 ˝리즈˝는 동생이 자신의 남편 손아귀에 있는게 더 좋다고 생각해서 남편의 개망나니 짓을 오히려 옹호한다.
성인이 된 ˝프랑수아즈˝는 ˝장˝과 결혼을 하고, 재산분배 때문에 ˝뷔토˝ 가족의 재산은 반토막 나며, 그동안의 임금 체불에 따른 소급 적용으로 그들이 살던 집도 내주게 된다. 결국 자매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고, 원수처럼 살아간다. 이후 ˝프랑수아즈˝는 임신을 하고 겉보기에는 화목하고 열심히 농사를 짓지만, ˝뷔토˝ 부부는 만약 임신한 ˝프랑수아즈˝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녀의 재산을 자신들이 다시는 가져올 수 없다는 악랄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결국 아이를 없애기 위해 언니인 ˝리즈˝는 ˝뷔토˝가 ˝프랑수아즈˝를 겁탈하여 아이를 지우려는 계획을 세우고 남편의 겁탈을 돕기까지 한다.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자매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무엇이 ˝리즈˝를 악마로 만들을까? 게다가 겁탈 후에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데 그 집은 그녀를 기쁘게 하지 못했다. 그녀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속이 불편했다. 해질녘에 드는 우울한 기분 탓인지도 몰랐다. 그녀와 남편은 감히 초를 켜지도 못하고 여전히 어둠 속에서 이방 저 방을 기웃거렸다.] P.504
‘대지˝라는게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인간에게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하지만, 때로는 가혹한 자연재해로 인간에게 고난을 주고,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결국에는 마지막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인자해 보이지만 결국은 잔인한 곳. ˝에밀 졸라˝는 <대지> 라는 작품을 통해 욕망이라는 ‘대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미워하고 싸워봤자 인간은 결국 자연 앞에서는 미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걸까?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가 자연주의 소설로 유명하긴 한데, <대지>를 읽으면서 이걸 자연주의 소설로 볼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에밀 졸라˝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주요 인물들의 경우 처음에는 나름 정상적인 사람이었는데 환경과 유전적 영향에 의해 이후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사악한 인물들도 있지만 선한 인물들도 나온다.
그런데 <대지>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비정상적이고 욕망만 가득하며 모두 이 욕망에 굴복한다. 인간이라기 보다는 짐승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연민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 <대지>는 자연주의 소설이라기 보다는 막장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루공 마카르‘ 총서 중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작품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Ps 1. 그래도 역시 막장 이야기는 읽는 재미가 있다. 설마? 설마! 하면서 책을 읽었다.
Ps 2. 지금까지 ˝에밀 졸라˝ 책은 아홉권을 읽었는데, 아직까지는 <인간 짐승>이 가장 좋았다. 다음번에는 완전 기대되는 <제르미날>을 읽어봐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