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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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70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왜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국내문학에 손이 잘 안가는데, 아마 너무 주변에 있는 이야기 같아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애장하는 작가님이 몇 분 있는데 그 중 한분이 최은영 작가님이다. 지금까지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은 전부 읽어봤는데 다 좋았다.


이번에 나온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집 <애쓰지 않아도> 역시 너무너무 좋았다. 마치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마음속 이야기를 작가님이 대신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최은영 작가님도 ENFJ인 걸까?


모든 단편들이 다 좋았지만 몇편에 대한 감상평을 써보자면, (너무 짧아서 줄거리는 생략)



1. <애쓰지 않아도>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그런걸까? 주인공인 ‘나‘의 감정이 낯설지가 않았다. 나도 그런적이 몇번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친하고 좋아했었는데 어느순간 멀어져 버린 사람들.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노력하였지만 그럴수록 거리감만 커졌던 순간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의 내 마음을 돌아봤다. 나는 유나의 공감을 바라서 그 말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유나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유나가 나를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라서 그런 말을 했다.] P.23



잊기 위해 원망도 하고 미워하려고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아쉬움만이 남았다.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어느정도 괜찮아 질 수 있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이런건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잊혀지는걸까?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올릴수 있다는걸 알았다면 조금 더 편했을까?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 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P.32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그 사람들은 그때 어떤 마음이었고, 지금은 또 어떤 마음인지...



2. <꿈결>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 가끔 꿈에 나올때가 있다. 어쩌다 생각이 나서 추억을 떠올리다보면 그날 밤 꿈에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꿈을 기억하고 싶어도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사람의 뇌가 원래 그런걸까, 아님 내 무의식이 지워야 한다고 강박해서 그런걸까?

[우리는 네 꿈에서 자주 만났어. 알잖아, 꿈을 기억할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었다는 거. 넌 깨어나기 전에 선택할 수 있었어. 그리고 매번 기억하지 않는 걸 선택했고.] P.67



차라리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말을 안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하곤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젠가는 시들해지고 그래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면, 차라리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오랫동안 함께 하는 것이 좋은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만.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모든 게 수월했을 텐데. 내가 너를 조금만 덜 사랑했더라도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 거야.] P.62




3. <무급휴가>

다른 작가의 작품 리뷰에서도 비슷하게 썼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지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그 사람에게는 당연한게 아닐 수도 있다. 말하지 않는다면 절대 알수없는 보이지 않는 사실들.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오해하기도 하고, 말을 해주더라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공감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다가감을 멈추어야 할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다가가서 조금이라도 이해하는게 필요하다. 그게 바로 사랑이니까.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P.220




쓰다보니 리뷰가 아니라 감성 에세이(?)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하여튼 이 책은 많은걸 생각하게 해줘서 좋았고, 선물로 받은 책이어서 그런지 더욱 좋았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필요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ps. 2022년 오늘 기준으로 70권을 읽었다. 이 추세라면 올해 독서 목표인 150권이 가능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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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5-19 09: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써주신 감상과 최은영 작가님의 글들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예요^^* 작가님도 ENFJ맞을듯ㅋㅋㅋ

새파랑 2022-05-19 07:31   좋아요 3 | URL
마침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책이 옆에 없어어 막 썼어요 😅 이 책 너무 좋았습니다 ^^

bookholic 2022-05-18 1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기세라면 150권 이미 초과달성~~^^
목표 상향 조정 요망^^

새파랑 2022-05-19 07:32   좋아요 3 | URL
아닙니다 ㅋ 후반기에는 좀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페넬로페 2022-05-19 16: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이 좋은 이유는 뭔가 제목만 들어도 그 느낌이 느껴지는걸요.
특히 최은영작가의 소설이라 더 그런것 같아요~~~
벌써 70권이라니!
정말 초과달성 하실거예요^^

새파랑 2022-05-19 17:40   좋아요 5 | URL
일단 이번달 15권 채우는걸 목표로 달려보겠습니다~!! 최은영 작가님 너무 좋습니다 ^^

mini74 2022-05-19 17: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문학소년 ㅎㅎ 넘 좋은데요. 150권!!! 새파랑님 대단 👍

새파랑 2022-05-19 17:40   좋아요 4 | URL
이제 더이상 소년이 될 수 없다는 ㅜㅜ 미니님은 저보다 더 많이 읽으셨을거 같아요~!!

희선 2022-05-20 0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쓰지 않아도 되면 좋을 텐데, 애써도 잘 안 되는 게 많기도 하네요 사람 마음은 더 그런 듯해요 애써도 마음이 맞아야 그걸 알지 마음이 안 맞으면 잘 모르겠습니다 안 맞으면 그런가 보다 해야 할 텐데...

새파랑 님 벌써 책 일흔권이나 보셨군요 2022년에 백오십권 다 보시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05-20 07:13   좋아요 3 | URL
전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ㅋ 희선님도 시집까지 하시면 70권 읽으셨을거 같은데~! 한번 세어보세요 ^^

그레이스 2022-05-20 1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합니다

새파랑 2022-05-20 11:17   좋아요 3 | URL
읽고 리뷰남겨주세요. 그레이스님은 아주 좋아하실거 같아요 ^^

책읽기.com글쓰기 2022-06-03 0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까지 상반기 읽은 책 결산해봐야 겠네요ㅎㅎ 저도 소설은 잘 안 읽는데
이책은 오늘 바로 결제해보겠습니다!!!!

새파랑 2022-06-03 06:53   좋아요 0 | URL
전 읽는 책의 90퍼센트가 소설입니다 ㅋ 나머지 10퍼센트는 시집이랑 에세이? 😅 짧아서 금방 읽으실꺼에요. 혹시 최은영 작가님 책을 아직 안보셨다면 <내게 무해한 사람> 을 추천합니다 ^^

책읽기.com글쓰기 2022-06-03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감사해요~~!!!!!
 

책을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보통 나처럼 일년이나 기흉 주사를 맞아온 사람에게는 마취를 하지 않는다. 그의 손가락 끝의 싸늘한 감촉과 진찰복에 묻은 붉은 핏자국에 공포를 느껴 얼떨결에 내뱉었으나, 뱉고 나니 그 말이 생체해부를 하던 날 미군 포로가 수술대에서 애원하며 했던 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 P31

‘모두 죽어나가는 세상 아이가. 병원에서 죽지 않더라도 매일밤 공습으로 죽어가는 거야.‘ 스구로는 토다가 오늘 오후 화난 듯이 중얼거린 말을 떠올렸다. 회진이 끝난 뒤 공동입원실에서는 한바탕 헛기침이 울려퍼지고 환자들이 박쥐처럼 침대를 기어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스구로는 만일 인간의 죽음에 냄새가 있다면 그건 분명이 어두운 방의 악취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 P46

"당연한 거 아이가. 공습으로 죽으면 기껏해야 나까가와 강에 뼛가루나 뿌려지겠지만 수술받다 죽으면 진짜 의학발전에 공헌하는거니까. 아지매도 머잖아 같은 병을 앓는 많은 환자를 구하는 길이 열린다 카면 죽어도 좋다 안카겠나?" - P55

그것이 이 아름다운 부인의 남편에 대한 질투인지, 아니면 본디 자신은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행복에 대한 질투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두운 공동입원실에 누워 있는 환자를 대신한 단순한 의분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 P62

타베 부인은 백치처럼 커다랗게 벌린 입 사이로 빨간 혀를 보이며 쑥 들어간 눈을 부릅뜬 채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체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은 수술 중에 고통스러워했다는 증거였다. 그녀의 복부와 손 그리고 얼굴에까지 온통 피가 튀어 있었다. - P69

자신이 어째서 아주머니에게만 그토록 오랫동안 집착했을까 하고 스구로는 생각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토다가 말한 대로 모두가 죽어가는 세상에서 단 한사람이나마 살려보고자 했던 것이다. 나의 첫 환자, 그녀가 나무상자에 담겨 빗속에서 옮겨지고 있다. 스구로는 이제 오늘부터 전쟁도 일본도 자신도 모두가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다. - P79

"어차피 얼마 안 있어 죽을 환자예요. 안락사 쪽이 환자 본인을 위해서도 훨씬 도움이 되잖아요."

"죽게 되어 있더라도 죽일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어요. 하느님이 무섭지 않나요? 당신은 하느님의 벌을 믿지 않나요?" - P109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도 역시 나처럼 한꺼풀을 벗기면 타인의 죽음이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가. 약간의 나쁜 짓이라면 사회로부터 벌받지 않는 이상 별다른 가책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살아왔는가. 그리고 어느날 그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 P136

그러나 공동입원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어둠속에 희붐하게 늘어서 있는 세줄의 침대 위에서 환자들이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자 스구로는 다리에 힘이 풀려 후들거렸다. 그는 눈을 내리깐 채 곧바로 침대와 침대 사이를 지나 빠져나갔다. 나는 이제 이 환자들을 똑바로 볼 수가 없어. 그는 마음속으로 신음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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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도 역시 좋다. 최은영 작가님 사..아니 존경합니다 ^^


"넌 좀 어른스러워. 항상 웃는데, 그게 가끔은 슬퍼 보이더라." - P18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의 내 마음을 돌아봤다. 나는 유나의 공감을 바라서 그 말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유나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유나가 나를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라서 그런 말을 했다. - P23

유나에게 느꼈던 선망은 내 오래된 열등감의 다른 말이었다. 나는 유나를 증오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 P30

유나가 무슨 마음으로 내 비밀을 퍼뜨렸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유나가 겉과 속이 달라서, 교활해서, 내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단정짓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유나가 내게 악감정을 지녔었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P31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 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P32

윤이는 우리의 삶이 학교라면 한 학년이 15년이라고 말하곤했다. 태어나서 열다섯까지가 1학년, 열여섯부터 서른까지가 2학년, 서른부터 마흔다섯까지가 3학년…….명이 길어 아흔까지 산다면 6학년을 졸업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 P59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모든 게 수월했을 텐데. 내가 너를 조금만 덜 사랑했더라도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 거야. - P62

요즘 잠은 잘 자?

윤이가 묻는다.

9년 만에 보는데 꼭 최근에도 만났던 사람처럼 물어본다. 그렇게 답하고 나자 정민은 윤이와 떨어져 있던 시간이 실감 나지 않는다. - P64

우리는 네 꿈에서 자주 만났어. 알잖아, 꿈을 기억할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었다는 거. 넌 깨어나기 전에 선택할 수 있었어. 그리고 매번 기억하지 않는 걸 선택했고. - P67

자기 마음을 배울 수 없고, 그렇기에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채로 살아간다. - P95

좋은 마음이 언제나 좋은 결과가 될 수 없는지 연희는 초조한 슬픔을 느꼈다. - P134

문동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연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 P134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가 서로를 기억한다면, 그때는 슬픔보다도 그리움이 더 큰 감정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겠지요. 그때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면 저를 알아봐주세요. 저도 그때는 당신을 알아볼게요. - P164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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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69

˝인간이 음양화합의 성과를 올리는 일은 머지않아 다가올 음양불화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에가나 명암은 있다. 아무리 밝아 보이더라도,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밝힐 수 없는 어둠은 있다. 그런데 그 어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당신은 옆에 있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소세키의 마지막 작품이자 현암사 소세키 소설 전집의 마지막 작품인 <명암>은 미완성 작품이다. 만약 완성되었더라면 소세키 작품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 역시 그동안 소세키가 주로 다루었던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있는데, 겉으로 들어나는 밝은 ˝명˝과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어두운 ˝암˝을 평행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책을 읽어나갈수록 도대체 감추고 있는 어두운 ˝암˝이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몰입감이 대단했다.



이 책의 줄거리는 복잡하지는 않다. 주인공인 ˝쓰다˝는 직장이 있지만 풍족한 삶을 위해 부모님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고 살아가는 젊은이이고  그에게는 이제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부인 ˝오노부˝가 있다. ˝쓰다˝는 처음에는 연말 보너스 같은게 나오면 부모님께 돈을 갚는다고 약속을 하고 생활비를 받았지만, ˝쓰다˝는 부모님이 그냥 주는 돈이라 생각하고 돈을 갚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처럼 그냥 물쓰듯이 돈을 쓴다. (조크 입니다.)

[˝올케언니하고 결혼하기 전의 오라버니는 좀 더 정직했어요. 적어도 좀 더 솔직했어요. 근거도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싫으니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겠어요. 그러니까 오라버니도 제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오라버니는 올케언니하고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한테 이번 같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나요?˝]  P.299



이에 열받은 ˝쓰다˝의 아버지는 생활비 송금을 끊어버리는데, 하필 이때 ˝쓰다˝는 치질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당장 돈이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부인인 ˝오노부˝는 이러한 상황을 크게 염려치 않고 평소의 풍족한 삶을 이어나가려 한다.

[이 육체는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 아니, 지금 바로 이 육체안에 어떤 변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P.18

[정신세계도 마찬가지다. 정신세계도 전적으로 마찬가지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변하는 것을 본 것이다.]  P.19



하지만 ˝쓰다˝는 자신의 불편한 속내를 결코 부인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와 결혼할때 자신의 부를 과장해서 표현했고, 그녀에게는 언제나 과도하게 자신만만한(무심한?)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부인에게는 언제나 밝은 ˝명˝ 만을 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인에게 결코 말할 수 없는 ˝암˝이 분명히 있었다. 과연 그 ˝암˝은 무엇일까?

[오히데의 입에서 새어 나온 뜻밖의 문구 중에서 맨 처음 오노부의 귀를 때린 것은 ‘사랑‘ 이라는 말이었다. 이 진부하고 흔해빠진 한마디가 얼마나 오노부 앞에 복병처럼 새로운 정취를 느끼게 했는지는 전후의 맥락 없이 단독으로 돌발했다는 것이 주요 원인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두 사람 사이에서 아직 대화의 소재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P.376



사실 ˝오노부˝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 고모부인 ˝고바야시˝ 집에서 자랐지만 어릴적부터 풍요롭게 성장했던 그녀는 특출난 외모는 아니지만 총명함으로 인해 주위로부터 선견지명이 있고 사람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칭찬을 듣고 자랐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했던 ˝쓰다˝ 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명˝ 만 있을 것 같은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결혼해서 반년 넘게 살고 있는 지금, 쓰다에 대한 오노부의 생각은 변했다. 하지만 쓰다에 대한 쓰기코의 생각은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쓰기코는 어디까지나 오노부를 믿었다. 오노부도 이제 와서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할 여자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선견지명으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소수의 행운아로서 쓰기코 앞에 자신을 내세우고 있었다.]  P.197



하지만 ˝오노부˝는 결혼을 하고 나서 ˝쓰다˝에게도 ˝암˝이 존재함을 느끼게 되지만, 언제나 뛰어난 선견지명이 있다고 주위의 칭송을 받던 그녀는 자신의 결혼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남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남편에게 어떤 ˝암˝이 있는지 예상조차 못한다. 그리고 남편 주위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자신만 모르는 무언가의 비밀이 남편에게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아무도 그녀에게 속시원하게 이야기 해주지 않고 자신이 없을때 뒤에서만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묻지도 못한다. 과연 ˝쓰다˝가 가진 ˝암˝은 무엇일까?

[˝제발 저를 안심시켜주세요. 도와준다 생각하고 안심하게 해주세요. 저는 당신 말고 기댈 데가 없는 여자니까요. 당신이 떠나면 저는 그것으로 무너져야 하는 불안한 여자니까요. 그러니 제발 안심하라고 말해주세요.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까 안심하라고 말해주세요.˝]  P.451



겉으로 보이기에는 너무나 잘어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하는 부부이지만 사실 서로에게 안좋은 면은 철저히 숨기고 솔직하지 못한 그 둘의 관계,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서서히 두사람을 압박해가면서 두 부부 사이에, 그리고 주변사람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길래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은 다 알면서도 나만 몰라야 하는 사실이 존재해야만 하는 걸까?

[자기 일밖에 생각할 수 없는 오라버니하고 올케언니는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친절을 받아들일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다시 말해 남의 호의에 감사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절하되었다는 뜻이에요. 오라버니하고 올케언니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어디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자신들한테 엄청나게 불행한 일이 될 거예요. 인간답게 기뻐하는 능력을 처음부터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이거든요. ]  P.325



치질 수술을 마친 ˝쓰다˝는 어떻게든 과거의 아픔인 ˝암˝의 세계로 돌아가서 이를 해결하려고 하고, ˝오노부˝는 자신의 선택이 옮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쓰다˝를 ˝명˝의 세계로 끌어 올리려고 한다. 과연 두 부부의 미래에는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까?

[˝자네한테는 너무 여유가 많다고. 그 여유가 자네를 너무 사치스럽게 만드는 거라네. 그 결과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자마자 곧바로 다음 것을 원하게 되지. 좋아하는 것을 놓쳤을 때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하는 거고.˝]  P.488





소세키의 <명암>은 독자에게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어려운 인간의 마음,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밝은 ˝명˝만 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절반도 채 모르는거다. 언제나 드러나는건 아주 일부분이니까.

[˝러시아 소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을 거네. 사람이 아무리 미천해도, 또 아무리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때로는 그 사람의 입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만큼 고마운, 그리고 조금도 겉으로 꾸미지 않은 지고지순한 감정이 샘물처럼 흘러넘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거네. 자네는 그걸 허위라고 생각하나?˝]  P.106



소설이 미완성이다보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도대체 소세키가 그린 <명암>의 결말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파국이 아니었을까? 소세키의 작품중에 해피엔딩인 작품이 별로 없었으니까. 누군가가 소세키가 끝내지 못한 이야기의 끝을 맺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Ps. 드디어 현암사 소세키 시리즈를 완독했다. 이제는 아직 못구한 책 세권을 구매하고, 종합 페이퍼를 써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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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5-17 1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통하지 못하는 부부를 통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이야기네요. 미완성이라 ‘암‘은 결국 밝혀지지 않나요?
새파랑님 현암사 시리즈 다 읽으신거 축하드리고 대단하세요.
저도 이 작품 맘에 드네요.

쓰다 조크 웃겼습니다. ㅋ

새파랑 2022-05-17 13:08   좋아요 2 | URL
뒷부분에 약간 밝혀지는데 그러다가 끝나버려서 아쉬웠습니다 ㅜㅜ 역시 사람 이름은 잘지어야 하나봅니다~!! 갠적으로 좋았는데 미완이다 보니 읽으시면 아쉬움이 남으실수도 있습니다 ^^

청아 2022-05-17 1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명암이 이런 의미였군요? 첫 발췌문에 압도되었습니다.👍 미완성 작품이라니 사람마다 이 책을 읽으면 떠올리는 결말이 다 다를것 같아요. 드러난 건 극히 일부분이란 말씀에 공감해요. 그래서 서로들 오해도 많이하고 상처도 받겠죠. 그래서 또 그걸 다 포용하는 사람은 더욱 빛나나봅니다.ㅎㅎ

새파랑 2022-05-17 13:11   좋아요 3 | URL
첫문장 맘에 드시는군요. 생각해보면 다 그런거 같아요. 소세키는 정말 철학가 같아요 ㅋ 다 읽고 나서 화도 좀 났습니다. 아니 여기서 끝나는거야? 이런 마음~ 소세키 작품은 후반기로 갈수록 더 성숙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

거리의화가 2022-05-17 13: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새파랑님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려요^^
인생의 명암. 사람의 명암. 여러 생각이 들게 합니다. 가까이 붙어 사는 사람들도 서로를 다 알지 못하죠. 자기 자신도 잘 모를 때가 많잖아요~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을지... 어려운 일 같습니다. 통합 페이퍼 기다려지네요^^ㅎㅎ

새파랑 2022-05-17 13:13   좋아요 2 | URL
예전에 읽은 책들이 몇권 있어서 금방 읽었습니다 ㅋ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게 사람 마음인거 같아요 ^^ 제가 언제 날잡아서 한번 써보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2-05-17 1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의 작품은 현암사 것이 최고 최고!!!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라는 문장을 최근 저도 썼었네요. 그런데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지요.

새파랑 2022-05-17 13:34   좋아요 2 | URL
소세키 읽으시려면 현암사가 최고 맞습니다 ^^ 저도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지 하다가도 보이는것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

mini74 2022-05-17 17: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쓰다의 동생 완전 촌철살인의 대가인데요 ㅎㅎ 새파랑님 축하드리옵니다. 소세키완파 도장 꾸우욱 😊

새파랑 2022-05-17 17:23   좋아요 3 | URL
어디 스티커 같은 거 주면 좋을텐데 ^^ 주인공인 ˝쓰다˝는 자신이 지식인인지 아는데, 주변 사람들이 더 똑똑한거 같아요. 냉철하기도 하고 ㅋ

페넬로페 2022-05-17 19: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명과 암에 대해 이렇게나 포인트를 잘 살려주시다니. 역시 소세키 완독자 포스가 넘쳐 흐르십니다**
저는 여자라서 그런지 오노부가 안되어 보이더라고요.
오노부 주변에 적이 너무 많고 쓰다는 좀 우유부단한 남자같았어요.
말 그대로 쓰다? ㅎㅎ
마지막에 온천으로 떠나는것도 그렇고^^
현암사 전집 완독!
감축드리옵니다^^

새파랑 2022-05-17 19:32   좋아요 3 | URL
잘쓰려고 해봤는데 막상 쓰려니까 힘들더라구요 ㅋ 등장인물도 많았는데 다 빼먹었습니다 😅 저도 오노부가 안타까웠어요. 마지막 온천이야기는 거기서 딱 끝나니 많이 아쉬웠어요 ㅜㅜ

파이버 2022-05-18 0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혼 전 연애 시절에 밝은 모습만 보여주는건 이해가는데 결혼하고나서도 ‘ 암‘을 숨기는건 답답하네요 결말이 나지 않은 소설이라 두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을지 더 궁금해집니다

새파랑 2022-05-18 08:10   좋아요 2 | URL
아마 알면 큰일날까봐 그런거 아닐까요?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ㅋ 저 혼자만의 이야기 결말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

희선 2022-05-20 0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썼다면 쓰다와 오노다는 헤어졌을지... 끝까지 못 쓰다니...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르죠 밝아 보여도 그건 그저 보이는 것이기만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어둠이 있을지 그것도 모르는 거죠 있을지도 없을지도...

새파랑 님 소세키 책 다 보셔서 좋으시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05-20 07:15   좋아요 2 | URL
다 읽어서 좀 아쉽습니다 ㅋ 더 읽을 책이 없어서요 ㅜㅜ 아직 단편집이 한권 더 남아있긴 하지만요~!

그레이스 2022-05-20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 👏 👏 👏 👏 👏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2-05-20 11:18   좋아요 1 | URL
먼저 다 읽으신 그레이스님을 선배님으로 모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