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읽고 싶었으나 아껴둔 한강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이제야 읽었다. 예전에 읽을걸 너무너무 후회된다. 이건 뭐 설명이 필요없다. 최고.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고통스럽기는 처음이었다. 노벨상 수상은 당연한 거였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 P13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 P17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울 거다. 나자신까지도. - P45

어디선가 누나의 혼도 어른거리고 있을 텐데, 그곳이 어딜까, 이제 우리한텐 몸이 없으니 만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을텐데. 하지만 몸 없이 누나를 어떻게 만날까. 몸 없는 누나를 어떻게 알아볼까. - P51

어머니가 부쳐준 올배쌀을 공기에 담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않았다.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지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 P85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 P89

마침내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귀를 틀어막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고개를 건지도, 신음하지도 않았다. 다만 너를 기억했다. 너를 데리고 가려 하자 너는 계단으로 날쎄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너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 P92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P95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P99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른지 못 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꽃은 양초 불꽃들이. - P102

지금은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그 말을 절반은 믿있습니다. 죽을수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겠지만, 어쩌면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뿐 아니라 조원들 대부분이, 특히 어린 친구들은 더 강한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도부를 이끌었던 대변인이 전날 외신기자들을 만나 했다는 말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패배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지요. 반드시 죽을 것이며,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지요. 고백하건대 나에게 그런 초연한 확신은 없었습니다. - P113

김진수의 생각에 대해선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죽으리라고 예상하면서도 도청 밖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왔던 걸까요. 아니면 나처럼, 죽을 수도 있지만 살 수도 있다는 생각, 어쩌면 도청을 지킬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평생 동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낙관에 몸을 실었던 걸까요. - P113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P114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럽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 P114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아품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P117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런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던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던 걸 증명한 거야. - P130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나 역시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 P134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움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움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 P135

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 줄라고 온 것인디, 늙은 내가 너를 놓쳐버렸어야. 시장통 좌판 사이로, 골목골목으로 한시간을 뒤지고 댕겨도 없어야. 무릎 속이 쑤시고 어질어찔 골이 흔들려 바닥에 주저앉았다이. 허지만 동네 사람이라도 만나먼 큰일인게, 아직 어지러워도 땅을 짚고 일어섰다이 . - P179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 암것도 아닌 그 말이 들기 좋아서 나는 네가 시인이 될라는가, 속으로 생각했는디. 여름밤 마당 평상에서 느이 아부지하고 삼형제하고 같이 수박을 먹을 적에. 입가에 묻은 끈끈하고 다디단 수박물을 네가 혀로 더듬어 핥을 적에. - P191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끝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 P192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서아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씨주세요. - P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개의 이야기가 이어지른 김연수 작가님의 단편집. 작가님의 애정어린 시선이 언제나 좋다.

내가 아는 나의 얼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웃음을 머금은 케이케이의 눈동자에 비친 얼굴이었다. 양쪽 눈동자에 하나씩, 모두 두 개의 얼굴. - P10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 나라마저도 내게는 미칠 듯이 사랑스러있으니까. 우린 연인이었다. 그 나라에서 케이케이가 왔다. - P12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에게는 아이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건,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뜻이었다. - P27

요즘 들어서, 살아오는 동안 안 하고 넘어간 일들이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청년은 아직 이게 무슨 기분일지 모를 거야. 한 일들은, 그게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한 일들은 해봤자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잊히질 않아요. 왜, 하지도 않은 일이 잊히지 않는다니까 우스워요. - P79

누군지는 끝내 알 수 없게 됐지만,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도 당신만을 생각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영영 말해줄 수 없게 됐지만, 언젠가는 그 사람도 알게 되겠죠. 시인이 한때 이런 시를 썼다는 거. 그 메타세쿼이아가 두 사람이 갈 수 있었던 가장 먼 곳이었다는 거. - P80

미래를 바라봐온 십대, 현실과 싸웠던 이십대라면, 삼십대는 멈취서 자기를 바라봐야 할 나이다. 이젠 좀 솔직해져도 괜찮은 나이다. 축하를 위해 세 잔의 맥주를 마시자. 뭐, 그런 내용. - P96

그 순간만은 그 누구라도 내가 바라본 노을을 그러니까 엄마가 죽던 날의 노을을 바라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고통을 오직 진통제만이 이해했듯이 내 슬픔은 그 노을만이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고통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과 슬픔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 P1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시 가즈오 이시구로. 처음 읽었을때보다 훨씬 좋다. 깊이가 다르다. 직업의식과 정의, 인간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한때 열일곱 명의 직원을 거느렸턴 사람이다. 그리고 이곳 달링턴 홀에서 스물여 명의 직원이 일했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그런 집을 네 명의 직원으로, 다시 말해 가장 최소한의 인원으로 굴릴 방안을 짜보라니 생각만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딴에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나의 회의적인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 P16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만 물론 나도 옛날 방식을 지나치게 많이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각에서 목격되듯 단지 전통 그 자체를 위해 전통에 매달리는 식의 집착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 P16

결국 내가 최근들어 겪었던 모든 난제들의 중심에 바로 이 인력 부족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 볼수록 점점 더 명백해지는 사실이 있었으니 이 집에 무한한 애정을 가졌을 뿐 아니라 타의 모범이 될만한, 요즘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프로 정신을 갖춘 켄턴 양이야말로 달링턴 홀의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인력 관리안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라는 점이었다. - P20

차분한 아름다움, 절제의 미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다. 마치 땅 자체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대함을 자각하고 있어 굳이 소리 높여 외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에 비해 아프리카나 미국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은 전율에 가까운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꼴사나운 과시욕으로 인해 객관적인 관찰자에게는 저급하다는 인상을 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P47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힘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배분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취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그 옷을 벗을 때는 오직 본인의 의사가 그러할 때뿐이며, 그것은 어김없이 그가 완전히 혼자일 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품위‘의 요체다. - P71

영국의 풍경이 오늘 아침 내가 보았던 것과 같은 최고의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나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최고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나 같은 이치다. 그런 이들과 마주치면 내가 지금 위대함을 면전에 두고 있다는 것을 그냥 ‘알게‘ 되니까 말이다. - P73

그러나 정말 뿌듯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하는 말이지만 달링턴 나리께서 내 눈과 귀를 우려하여 무언가를 숨기려 하신 적은 결코 없었다. 모 인사가 말을 하다 말고 나를 향해 경계의 눈길을 던질라치면 나리께서 "아, 괜찮습니다. 스티븐스 앞에서는 무슨 얘기든 해도 돼요, 내가 보증합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경우가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 P118

"켄턴 양, 부친께서 방금 작고하셨는데도 올라가 된지 않는다고 막돼먹은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말아 주시오.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아버님도 이 순간 내가 이렇게 처신하기를 바라셨을 거요." - P174

어쨌거나 때늦은 깨달음에 의지해 과거를 뒤져 보노라면 그러한 ‘전환점‘들이 도처에서 눈에 띄게 마련이다. 우리의 저녁 모임을 중단하기로 한 나의 결정뿐 아니라 그전에 내 집무실에서 있었던 일도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얼마든지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그녀가 꽃병을 들고 들어왔던 그날 저녁에 만약 내가 약간 달리 반응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 P268

달링턴 경의 노력이 잘못되있을 뿐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했음을 세월이 입증해 주었다고 해서 어떤 면으로든 어떻게 내가 비난받아야 한단 말인가? 내가 그분을 모신 세월을 통틀어 증거를 저울질하고 나아갈 길을 판단한 것은 바로 그분 자신이었으며, 나는 다만 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극히 온당하게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가히 ‘일등급‘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수준에서 내 능력 닿는 데까지 직무를 수행한 것밖에 없다. - P312

"하지만 어르신이 걱정되지도 않소? 당신이 진심으로 아끼는 분이라고 방금 전에 그랬잖소. 그분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니오? 최소한 일말의 호기심이라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영국 총리와 독일 대사가 당신 상전의 주선으로 저렇듯 심야에 밀회를 나누고 있는데 궁금증도 생기지 않는단 말이오?"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 일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제 직분에 어긋나는 겁니다, 도런님." - P340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애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적한 실수를 저질렀던가‘ 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 P364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 P364

언제까지나 뒤만 돌아보며 내 인생이 바랐던 대로 되지 않았디고 자책헤 본들 무엇이나오겠는가? - P3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재미있는 작품. 쉴새없는 수다와 도박판 속에서도 교훈을 준다.

예를 들어 장사보다 더 나쁘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인가? 백 사람 중에 한 사람만이 돈을 따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뽈리나 알렉산드로브나는 오늘 판돈을 절반씩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고집했고, 내게 80프리드리흐스도어를 주면서 감으로 이런 조건으로 계속 도박을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절반의 돈을 딱 잘라 거절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도박을 할 수 없는 것은, 내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십중팔구 돈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녀가 돈 때문에 그와 결혼하려 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뻔뻔스럽게 드러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의라곤 찾아불 수도 없고 격식을 차리려고 하지도 않았단 말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할머니에 관해서는 더 여처구니 없고 추악한 것이, 어명게 쉴새 없이 전보를 보내면서 죽었나? 죽었어? 하고 물어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예?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뽈리나 알렉산드로브나?

그리고 오늘 남작의 불평을 끝까지 들어 주고 또 그의 이해타산에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장군님께서는 스스로 이 모든 일에 휘말려 들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전 늦어도 내일 이른 아침 안으로 남작님에게 직접 요구하겠습니다. 문제를 일으긴 상대가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마치 자격이 없거나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에 버린 채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상대한 이유에 대해 정식으로 설명해 줄지 것을 요구하겠다는 말입니다.

드 그리외는 모든 프랑스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득이 생긴다거나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쾌활하고 친절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싶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따분해지는 것이다. 프랑스인이 천성적으로 다정한 경우는 보기 드물다. 언제나 명령에 따르듯이
그리고 계산 속에서 다정하게 구는 것이다.

하지만 이할머니는 우리 모두보다, 그리고 호텔보다도 더 오래 버티겠어! 아 이런, 이제 우리들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우리 장군은 이제 어떻게 된단 말인가! 이제 그녀는 호텔을 온통 뒤집어 놓고 말 것이다!

뭐가 어떻게야? 기차를 타고 왔지. 철도는 왜 있겠어? 너희들은 내가 뒈져 버리고 유산을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난 자네가 이곳에서 전보들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 이곳에서 전보를 보내려면 돈이 꽤 들텐데, 자네 그 돈을 대느라고 고생했겠구먼, 어쨌든 내가 부리나케 달려왔잖은가, 여기 이렇게 말이야.

뽈리나! 내게 한 시간만 줘요 여기서 한 시간만 기다려요. 그러면 돌아오겠습니다! 이건..이건 꼭 해야만 돼요! 곧 알게 될 테니, 여기 있어요, 여기 있으란 말입니다!

그때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뽈리나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는지 안떠올렸는지는 기억할 수가 없다. 그 당시에 나는 내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은행권들을 긁어 모으고 움켜쥐는 기쁨, 뭐랄까 도저히 어떻게할 수 없는 기쁨 같은 것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가령 빨간색이 열 번이나 나오고 나면 또다시 빨간색에 걸려고 결심하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다. 하지만 노련한 노름꾼들이라면 빨간색의 반대인 검은색에는 걸지않을 것이다. 노련한 노름꾼은 그것이 <우연의 변덕> 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오고 나면 열일곱 번째에는, 예들 들어 열여섯번 발간색이 틀림없이 검은색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풋내기들은 검은색에 우르르 몰려들어 돈을 두배 세배로 올려 걸지만, 결국참패를 당하고 만다.

당신의 생각이 마음에 듭니다. 당신의 말씀 속에서 전 과거의 현명하고 열광적이고 또 냉소적인 친구를 발견말 수 있어요. 그렇게 모순된 것들을 동시에 겸비할 수 있는 사람은 러시아인뿐이지요. 무릇 인간이란 아주 훌룡한 친구기 자신 앞에서 모육당하는 것을 볼
좋아하게 마련이랍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정이란
것도 바로 그 굴육감을 바탕으로해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것은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예로부터의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낙심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전 정말 기쁩니다. 어디 말씀해 보세요, 도박을 그만두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5-03-03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에서 책을 선정할 일 있을 때 노름꾼을 추천해야 겠습니다.^^

새파랑 2025-03-03 22:56   좋아요 1 | URL
도스토예프스키 중단편중에 재미는 확실히 있습니다~!! 도박하면 왜 안되는지 교훈을 잘 보여줍니다 ㅋ
 

리커버판 다시 구매하고 재독했는데, 다시 읽어도 좋다.




상대가 자기가 만든 물건을, 그리고 자기가 상대가 만든 물건을 사적인 보물로 삼는 일이 어떻게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P36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몸서리처지는 것을 애써 억누른 체 혹시 우리 중 하나가 우발적으로 자기 몸에 닿을까 봐 겁에 질려 있었다.

루스의 말이 옳았다. 마담은 우리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거미를 겁내는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를 겁내고 있었다. - P69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해.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같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애기를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얼마 안 있어 헤일섬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 - P146

이윽고 그녀는 외설스러운 자세를 취한 모형을 책상위에 올려 둔 채 갑자기 몸을 돌리고는 우리가 성교하는 대상에게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병에 걸릴까 봐서가 아니라 성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감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 P150

근원자 이론의 이면에 있는 기본 개념은 단순한 것으로 별다른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 각자가 일반인에게서 복제된 개체인 만큼 바깥세상에는 우리의 근원자가 살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의 근원자를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밖, 즉 시내나 쇼핑센터, 휴게소 같은 곳에 나가면 줄곧 신경을 곤두세워 자기나 친구들의 근원임직한 사람들, 곧 ‘근원자‘를 찾아보곤 했다. - P243

절대로, 결단코 그 여자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근원자가 될 리가 없어요. 생각해 봐요. 그 여자가 도대체 왜 그런 걸 하려 들겠어요? 우리 모두 사실을 알고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사실을 회피하고 있는거예요. 우린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복제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복제된 것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 P290

‘그래, 이제 우리가 이걸 하고 있군. 이렇게 돼서 기뻐. 하지만 이렇게 늦게야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안타까워.‘ - P408

"왜냐하면 작품이란 그걸 만든 이의 내적 자아를 드러내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나? 너희의 작품이 너희의 영혼‘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 P432

장기 교체로 암을 치유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어떻게 그 치료를 포기하고 희망 없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겠니? 후퇴라는 건 있을 수 없었지. 사람들은 너희 존재를 거북하게 여겼지만, 그들의 더 큰 관심은 자기 자녀나 배우자, 부모 또는 친구를 암이나 심장병이나 운동신경질환에서 구하는 거였단다. 그래서 너희는 아주 오랫동안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되도록 너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너희가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이지. 그것이 우리의 작은 운동이 시작되기 전의 실상이었단다. - P448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 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둥켜 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서로 헤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안타까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 P482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흐느끼지도, 자제력을 잃지도 않았다. 다만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치로 돌아가 기야 할 곳을 향해 출발했을 뿐이다. - P4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