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님 작품은 단편도 좋다~!!


나는 내 영혼에게 말했다, 고요하라, 그리고 기다려라 희망없이

희망이란 그릇된 것을 위한 희망일지니, 기다려라 사랑 없이

사랑이란 그릇된 것을 위한 사랑일지니, 그럼에도 믿음은 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과 희망은 모두 기다림 안에 있다

기다려라 생각 없이, 너는 아직 생각한 준비가 안 돼 있율지니

그러므로 어둠은 빛이. 그리고 고요는 춤이 되리라 - P78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 P81

이모에게 그게 진짜냐고, 빗소리가 정말로 사월에는 미 정도였다가 칠월에는 솔까지 올라갔느냐고 물어보자, 이모는 얼굴을 조금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다고, 정말 빗소리가 달라졌다고 대답했다. 그뒤로 이모는 한 번도 그런 빗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매일 밤, 밤새 정감독의 팔을 베고 누워서는 혹시 날이 밝으면 이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자다가 깨고, 또 자다가 깨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러다가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또 움직이면 그가 깰까봐 꼼짝도 못하고 듣던, 그 빗소리 말이다. 바로 어제 내린 비처럼 아직도 생생한, 하지만 이제는 영영 다시 들을 수 없는 그 빗소리. - P90

"나는 너희 엄마를 사량하는데, 너희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닥터강이 덧붙였다. "대개 그런 것이다." - P122

그는 비로소 이 세계에 그토록 많은 고통이 필요한 까닭을 단숨에 이해한다. 그건 고통을 느낄 때에만 인간은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현실은 고통을 원리로 건설됐다. "고 결론내린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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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작가님의 장편우 어렵지만 재미있고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나도 사랑이라는 걸 한번 해보죠."
그 말에 나카지마가 한쪽 눈을 치켜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건 네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야." - P28

"6월이 되면, 아마도"
그녀가 다시 내 말을 따라 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면서 덧붙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럼 그때까지 전 일요일마다 누구의 눈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읽나요?" - P36

그 아름다운 암고양이가 곁에서 사라지자, 나는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혜매게 됐다. 사랑에 빠지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전에 없이 더 또렸해진다는 건 바로 그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아름다움도 그리운 단 하나의 얼굴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P37

먼저 사랑이 오고, 행복이 오고. 질투심과 분노가 오고, 그리고 뒤늦게 부끄러움은 찾아온다. - P51

다만 나는 그 만년필이 정희가 사랑한다고, 내가 그랬듯이 사랑한다고 써서 내게 보내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내가 산 만년필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죽기 전에 그 만년필로 내게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쓰리라는 사실은 미처 짐작도 못한 채로 내가 산 만년필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 만년필이 총영사관 경찰 보조원의 손에 넘어가리라고는 상상조차 한 일이 없었다. 그런 사실들 앞에 나는 무기력했다. 내 손이 최도식의 손만큼 야비하기라도 했다면, 내 입이 사토처럼 비열하기라도 했다면. - P63

그걸 알겠어요.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러기에 말했잖아요. 지금까지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당신과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때, 이 세상은 막 태어났고,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평안 속으로 나는 막 들어가고 있다고.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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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너무 좋다. 작가의 체념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너무 좋다.

거짓말 아니야. 난 정말 여기가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 P73

어떤 첫사랑은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은 악몽이지만 어떤 첫사랑은 가장 이르게 빛나는 셋별처럼 그곳에서 인생보다 더 긴 시간 반짝인다. 가만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그 이유를 이론적으로 풀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명 가능하다고 신기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째서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지 이론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행성들 고유의 아름다움과 신비는 여전한 것처럼. - P100

난 이런 게 진심이라고 생각해. 좋아한다는 말이나 뭐 그런 것보다, 이런 게. - P106

혜지는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혜지를 싫어할 수가 없다. 혜지도 나를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 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난 울상을 지었다. 좋아하고 그 마음이 전부인 사람 앞에서 내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이란 아직 그런 것뿐이니까. - P106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듣고 싶어 하잖아. 고아인 이유, 동성애자인 이유, 사실 이유가 어디 있냐,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사람도 있는 거지. 근데 반드시 이유나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걸 들어야만 납특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 P134

내게로 오고 내게서 떠나는 사람을 내가 어쩔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들 두려있다. 진심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마다 방패를 먼저 꺼냈다. 당신을 사랑한다거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진심에는 노력이, 때로는 가장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 P153

소진이 타고 떠날 기차가 역에 탕기까지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사이 커피는 충분히 식을 것이있다. 더는 욕심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P165

우선 우주한테는 네가 미세 먼지인지 몰라도 나한테는 네가 미세 먼지가 아니야. 나토 미세 먼지가 아니다. 그리고 너나 나나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고 분명히 있어. 또 네 말처럼 우리가 아무리 미세 먼지 같은 그런 존재라고 해도 나는 우리가 사라지는 게 아쉽고 슬프다. - P228

다 같으면 이렇게 많이 존재할 이유가 없잖아. 단 한명이면 되지.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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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님의 소설만큼 산문도 너무 좋다.















절반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살아온 날만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절반을 살았다고 말해도 될까요. 종이를 반으로 접듯 인생을 반듯하게 접어봅니다. 스무 살의 나와 마흔 살의 내가 만납니다. 반으로 접은 인생을 다시 반으로 접어봅니다. 열 살의 나와 서른 살의 나도 한자리에 모입니다. 그렇게 계속 접다보면 나는 점점 작아지고 인생의 모든 순간은 한 점에서 만나겠지요. 죽음이란 어쩌면 그런것일까요.
(6월) - P117

당신의 슬픔보다 내 슬픔이 중요해진다면 나는 나의 사랑을 의심할 것이다. 울고 있는 당신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보다 당신 책임을 따지거나 빈정거리는 말이 먼저 터져나온다면 내 사랑은 끝났음을 절감할 것이다.
(6월) - P142

나는 사랑이 필요하다
당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P144

모르시겠지요. 당신을 향한 사랑은 당신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만들어졌고 나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내 안에 장기처럼 붙어서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사랑. 이별이 모든 것을 휩쓸고 망가트릴수록 어떤 사랑은 괴물처럼 부풀어 올라 자기를 과시합니다.


가끔은 그런 나의 사랑이 징그러워요,
그러나 그것 없이 살 마음은 없습니다.
(7월) - P149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와 스콜이 다가올 조짐이 느껴지면 허연 시인의 시집 불온한 검은 피를 꺼낸다. 시집을 펼치면 단번에 칠월이 나타난다. 여름 내내 책상 귀퉁이에 그 시를 펼쳐둔다. 글을 쓰다가, 글쓰기를 멈추고 벽을 바라보다가,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다가, 연필을 찾다가, 달력에 써놓은 일정을 살피다가, 메일함을 열고 그럼 제가 원고를 언제까지...


라는 문장을 쓰다가, 너무 힘든 날에는 와인을 따라 한 모금 마시다가, 귀퉁이의 시를 망연히 바라본다. 내가 펼쳐놓았으나 스스로 책꽂이에서 걸어나온 것 같은 시.
(7월) - P152

이별은,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지 않는 게 좋다. 할 수밖에 없다면 잘하고 싶다.

사랑에 관해 어떤 말을 해야 할 때, 내가 꼭 하는 말이 있다.
헤어지자는 말은 가장 나중에 할 것.
이별을 고했다면 다시는 만나지 말 것.


길을 걷다 우연히 너를 만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모른다.
(7월) - P157

행복하자고 함께하는 사랑이 아닌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함께하자는 사랑에게
나는 졌습니다.
(10월) - P239

최선을 다해 니의 사상을 지킬 것이다. 하찮아지지 않도록, 숭고하게, 존엄하게. 이런 나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집착이나 광기라고 말한다면, 기꺼이 미친 사람이 되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은 변한다. 나의 희망은 거기 있다. 당신을 사랑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10월) - P246

누구에게나 말한 수 없는 비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당신의 오래된 비밀 때문에 나는 당신을 존중하고 존정한다. 예의를 갖춘다.
(10월) - P259

당신이 당신으로 살아온 그 모든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당신으로 살아갈 그 모든 시간의 일부이길 원합니다.
(1월) - P333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어요.
(1윌) - P355

친절하라. 네가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니.
(2월)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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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실비 제르맹~!! 이 책은 정말 좋았다. 아름다운 문체, 묘사, 내용까지 완벽했음.

적절한 때에 이야기되지 않은 것은
다른 시대가 오면 순전한 허구로 간주된다.

어머니, 그녀의 목소리는 숨이 짧고 날카롭게 울린다. 아들에게 가족의 영웅담을 들려주던 시절 그 목소리에 깃들어 있던 따뜻한 억양은 사라지고, 웃음소리에 담겨 있던 문고 투명한 울림도 더이상 찾을 수 없다. 영웅담은 쓰레기가 되고, 기쁨 또한 모두 소진된 것이다. - P50

난파한 나치 독일에서 살아남은 이 어린 침입자 앞에서 하넬로레 외숙모는 어떤 감정토 드러내지 않는다. 그곳 독일에서는 마침내 하느님이 찬양을 받고 통켈탈 부부는 파멸하고 만 터였다. 그녀는 아이가 사건의 전모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부모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 달갑지 않은 이 조카를 조심스럽고도 세심하게 살핀다. 그러나 아이에게 대놓고 묻는 일은 삼간다. 클레멘스의 슬픈 종말에 대해서도, 아들이 떠나고 몇 주 뒤에 세상을 떠난 테아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다. 그녀는 부모와 나라와 이름을 모두 잃은 이 아이에게 동정과 불신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낀다. 곧 열세 살이 되는 소년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환경이나 새로운 신분을 제공한다고 해서 아이에게서 추악한 역사의 오물을 씻어낼 수 있을지, 아이가 겪은 이중의 상에서 헤방시킬 수 있을지 그녀는 의심한다. - P56

두사람은 도버 절벽 위에서 일어난 비극을 그후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마그누스 역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 저마다 자신이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조심스레 감당한다. 그들은 그 무엇도 부인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전부 털어놓고 싶다는 소망은 헛된 것임을 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상대방 없이, 상대방과 관계없이 경험한 것을 공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이 사랑이든 증오든 간에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현재이며, 각자의 과거 역시 이 현재의 눈부신 그늘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낼 따름이다. - P208

여기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어떤 이야기와도 닮지 않은 이야기다. 응축될 대로 응축된, 그래서 단어들이 당기만 해도 모두 부서져버리는, 그런 현실 속 삶의 응결체다. 아무리 저항력이 강한 밀도 높은 단어들을 찾아낸들, 괴리된 시간으로부터 온 이 이야기는 정신 나간 허구로 비칠 것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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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10-31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덕분에 실비 제르맹에게 입덕했어요^^

새파랑 2024-11-01 17:40   좋아요 1 | URL
앗 그러시군요~!! 영광입니다 ㅋ 매력적인 문장을 쓰는 작가인거 같아요 ㅋ 청아님의 리뷰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