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작가님의 전작읽기를 진행중이다. 한번 빠지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인지라 매주 한권씩 야금야금 사서 읽고 있다. 북플에서는 인지도 대비 그렇게 많이 언급되시는 작가님은 아닌데, 나는 그저 좋다. 왜 좋냐하면 일단 비슷한 나이대(라 믿고싶다..)에 비슷한 취향(음악?), 그리고 비슷한 감성 때문이다.
작가님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우울하다. 이렇게 우울해서 어찌 살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해피엔딩인 작품도 없고, 교훈도 없고, 희망은 희박하고, 주인공은 다 상처투성이에다가, 작품이 끝난 이후에도 과연 행복이란게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다 읽고 나서 찜찜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왠지 위로가 된다. 작가님만의 특유의 위로 방식이라고 해야할까?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는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 위안 속에는 사랑이 숨어있다.
읽은 책들을 간단히 리뷰해보자면...
<어떤 비밀>
절기별로 쓴 최진영 작가님의 24개의 편지와 그 이야기들. 진정한 계절 산문이다. 내용은 다 다르지만 한결같이 독자에게 위로를 전한다. 매월이 시작할때마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산문집.
˝누구에게나 말한 수 없는 비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당신의 오래된 비밀 때문에 나는 당신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예의를 갖춘다.˝ (10월)
<쓰게 될 것>
최진영 작가님의 세번째 단편집. 첫번째 단편집인 <팽이>는 아직 못구했다. 장편을 잘쓰면 단편이 좀 취약할 수 있는데 작가님의 단편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 단편집의 키워드는 ‘미래‘다. 작가님에게 미래는 희망찬 미래가 아닌, 불안하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쓸쓸하지만, 내가 선택한 미래다. SF 느낌의 ‘쓰게 될 것‘과 ‘인간의 쓸모‘는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홈 스위트 홈‘은 읽고 나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단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 (홈 스위트 홈)
<비상문>
짧은 단편이지만 상당히 무거운 작품이다. 작가님은 ‘자살‘이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비상문‘이라고 생각해서 제목을 이렇게 지은걸까? 유서도 없이 자살한 동생 신우,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신우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찾을수는 없었다, 어디에서도. 남겨진 사람들은 이유를 알았더라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까란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살아있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말로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게 있다고. 내겐 빛니는데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그런거.˝ (65p)
<오로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예약한 제주도 숙소를 주인공인 ‘오로라‘가 쓰게 되고, ‘오로라‘는 그곳에서 제주도 살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음을 치유한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했는데, 결국 이별하고, 그리고 나서 이를 회복하는 이야기. 주인공이 묻은 것은 새가 아니었고, 이젠 열어봐서는 안될 자신의 비밀이었다. 2인칭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특이한 구성이지만, 이런 구성이 좀 더 주인공의 심정을 잘 전달해준다.
˝누구나 감추고 삽니다. 한 명쯤은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홀로 사랑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묻어버려요. 마음에 심장처럼. 그럼 들키지 않고 그는 당신이 됩니다.˝ (57p)
<겨울방학>
작가님의 두번째 단편집. 장편에 비해 단편은 비교적 따뜻하다. 겨울방학이라는 표제작의 제목처럼 서늘하지만 나름의 휴식이 숨어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휴가때 어디 여행을 가서 읽기에 딱 좋은 단편집이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보다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라고 말하지만, 작가님은 이 작품집을 통해 반대로 말한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다 같으면 이렇게 많이 존재할 이유가 없잖아. 단 한
명이면 되지.˝ (250p)
<원도>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죽지 않고 계속 살아도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님의 긴 답변‘이라고 하고싶다. 주인공의 이름은 ‘원도‘다. 어린시절 (죽은)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하고 ‘만족스럽다‘는 유언아닌 유언을 낙인처럼 지니고 살아가는 ‘원도‘, 타인에게는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나에게는 애정을 주지 않은 어머니를 가진 ‘원도‘,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따뜻한 말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던 ‘원도‘, 무엇보다도 모든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익숙한 ‘원도‘. 마지막에 그는 왜 죽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을까?
작가님 작품 중 가장 어두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 읽고 나서 찝찝함이 오래갔었다. 그럼에도 한번씩 주인공 ‘원도‘가 떠올랐다. 이기적이고, 비호감이고, 찌질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그럴수도 있었겠구나란 연민이 들었다. 누군가가 따뜻하게 안아줬더라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텐데...그래도 죽는것 보다는 사는게, 사랑하는게 구원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야 언니에게>
작가님 작품중 두번째로 어두운 작품. ˝끔찍한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 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저 평범한 소녀였지만, 단 한번의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인 ‘제야‘를 둘러싼 모든게 무너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일기형식이지만 시간순서대로 배열된건 아니고 주인공인 ‘제야‘가 (고통의) 기억을 떠올리는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읽어 나가면서 ‘아 안돼, 제발‘ 안타까웠고, 다 읽고나서는 분노할 수 밖에 없다.(혈압주의 작품이다.)
왜 가해자는 떳떳하고 피해자는 숨겨져야 하는가, 왜 가해자는 행복을 누리면서 피해자는 매순간 고통속에서 살아야 하는건가. 언젠가 제야에게 치유의 날이 올 수 있을까? 제야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잘해주는 게 아니라 걱정하고 아끼는 거야. 노력해야 해.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 마음을 쓰는 거야.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161p)
<해가 지는 곳으로>
작가님 작품중 세번째로 어두운 작품. 작품의 내용은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시스템이 파고되고, 살기 위해 ‘해가 지는 곳‘으로 도망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잘 기억해야 한다...) 스토리 자체로만 본다면 작가님 작품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한편의 디스토피야 영화를 본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어둠 그 자체이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었다. 바이러스나 전쟁이 무서운건 어쩜 사람이 많이 죽어서라기 보다는 ‘인간성‘이 파괴되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전 영원하지 않아. 그냥 난 알아 버린 거아. 좋았다가 없어지면 외로워진다는 걸.˝ (121p)
여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작가님의 초기작(당신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과 유명작(구의 증명, 단 한사람, 내가 되는 꿈)은 이미 읽었다. 지금까지 13권 읽었으니 나름 열성팬이라 자처해본다. 다른 책들도 부지런히 구매하고 읽어서 또하나의 전작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