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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1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3
허먼 멜빌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몸의 온기를 제대로 향유하려면 몸 어딘가가 반드시 추워야만 하는데, 이 세상 모든 특성은 오로지 대조를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은 모든 면에서 편안하다고, 그것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래왔다며 우쫄덴다면 그는 더이상 편안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작품이 있다. 명작이라고 하지만 너무 유명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안생기는 작품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보물섬>, <레 미제라블>, <돈키호테>? 가 그런 예시일거 같은데, 나에게는 <모비 딕>도 그러했다. 뭐 고래사냥 하는 유명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왠지 어린시절에 요약본을 읽어본거 같아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었다.
[왜 늠름하고 건강한 영혼을 지닌 늠름하고 건강한 청년들 대다수는 언젠가 바다로 가게 되길 그토록 열망하는가? 처음 배를 타고 항해하면서 당신과 당신이 탄 배가 이제 육지에서 벗어났다 말을 난생 처음 들었을 때, 그토록 신비한 떨림을 느꼈던 것은 왜인가? 왜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바다를 신성하게 여겼던가? 그리스인들은 왜 바다의 신을 따로 두고 그를 제우스의 형제로 삼았을까? 이 모든 일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 1권 P.40
하지만 우연히 이 책을 선물받았고(내가 골랐지만...), 받았으니 읽어야 하기에 읽게 되었다. 읽고 나서 정말 감탄했다. 이런 엄청난 스케일의 책을 쓰려면 도대체 어떤 경험을 해야하고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해야 하는 걸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포경선의 역사에 대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몇몇 장들은 각주를 세밀하게 풀어쓴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글쓰기 방식 때문에 소설이라기 보다는 논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를 한 번 끝냈다 해도 뒤에는 두번째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두번째 항해를 끝냈다 해도 뒤에는 세번째 항해가, 그뒤에도 또다른 항해가 영원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노고란 그처럼 모두 끝이 없고 견더내기 힘든 것들이다.] 1권 P.135
하지만 이야기의 기본 바탕이 성경이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그렇고, 많은 상징들이 등장하며, 일반인에게는 낯선 해양 용어들과 장비들 때문에 한번 읽고서는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가독성이 좋아서 술술 읽혔다. 번역이 정말 잘되었다는게 느껴졌다.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 이 유명한 첫번째 문장 때문에 ˝이슈미얼˝이 주인공인것 같은데, 그건 이니고 진짜 주인공은 ˝에이헤브˝ 선장이다. 이 작품은 과거 항해에서 ˝모비 딕˝이라는 흰색의 대형 향유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헤브˝ 선장이 복수를 위해 ‘피쿼드호‘를 이끌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향유고래‘ 들을 추격하고 사냥하는 이야기인데, 그의 최종목적은 자신의 다리를 뺏어간 ˝모비 딕˝ 이다. 초반에 멋있게 등장한 ˝이슈미얼˝은 이 작품의 화자 역할을 할 뿐이다.
(˝이슈미얼˝이 작품 초반에는 식인종 출신인 ˝퀴퀘그˝와 브로멘스를 코믹하게 보여주긴 하지만...)
[˝말도 못 하는 멍청한 짐승에게 복수라뇨!˝ 스타벅이 소리쳤다. 녀석은 맹목적인 본능에 따라 선장님을 공격했을 뿐입니다! 미친 짓이에요! 멍청한 짐승 때문에 격분하는 건 말이죠, 에이헤브. 선장님, 제게는 신성모독으로 보입니다.] 1권 P.310
˝에이헤브˝ 선장의 직속 부하로 세 항해사 ˝스타벅˝, ˝스터브˝, ˝플래스크˝ 가 나오는데, 이들은 ‘피쿼드호‘의 포경 보트 세 척을 지휘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1등 항해사 ˝스타벅˝이 바로 그 스타벅스 커피의 유례라고 한다. ‘피쿼드호‘는 아주 큰 대형 어선으로 모선이라 한다면, 포경 보트 세척은 모선에 실려있는 작은 배로, 실제로 ‘향유고래‘를 사냥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자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모든 인간의 정신과 의견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들이 지닌 종교적 신념의 원칙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남의 말을 훔쳐 허세를 부리는 웅변가에게 사상가들의 사상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거대한 지구 자체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독자여, 당신 또한 ‘놓친 고래‘이자 ‘잡힌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2권 P.207
˝스타벅˝을 포함한 대부분은 ‘향유고래‘를 잡아서 돈을 벌어서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게 목적인 일반적인 선원인데 비해, 선장인 ˝에이헤브˝는 돈보다는 복수가 우선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많은 선원들은 결국 리더인 선장의 복수심에 따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피쿼드호‘에 탄 선원 모두는 ˝모비 딕˝과의 일전을 치뤄야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흰 고래를 잡겠디는 너희의 맹세는 나의 맹세만큼이나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에이해브는 심장, 영혼, 육신, 허파 그리고 목슴 까지 그 맹세에 묶여 있다. 너희는 이 심장이 어떤 곡조에 맞춰 뛰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다들 여기를 봐라. 내가 마지막 두려움까지 모두 꺼 줄 테니!˝ 그러더니 그는 거센 입김 한 번으로 불꽃을 꺼버렸다.] 2권 P.396
‘피쿼드호‘와 ‘모비딕‘의 싸움은 마치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 아니면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비유한 것으로 느꼈는데, 과연 인간이 자연과 신을 넘어서는게 가능하기는 할까?
[˝영감 당신은 녀석을 절대로, 절대로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짓을 그만두세요. 이건 악마의 광기보다 더 지독한 짓입니다. 이틀 동안이나 추격했고, 보트가 두 차례나 산산조각났으며, 당신의 그 다리는 또 한번 당신 몸에서 떨어져나간데다, 당신의 사악한 그림자는 영원히 종적을 감췄습니다. 선한 천사들이 떼지어 몰려들어 당신에게 경고하고 있어요. 뭘 더 원하나요? 이 흉악한 고래가 우리를 최후의 한 사람까지 몽땅 힘쓸어버릴 때까지 녀석을 추격해야 하나요? 우리가 녀석에게 이끌려 저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나요? 우리가 녀석에게 이끌려 지옥에라도 들어가야 하나요? 아아, 이 이상 녀석을 쫓는 일은 불경스러운 신성모독입니다!˝] 2권 P.489
내가 예전에 배를 타본적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배라는 것도 하나의 축소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배라는 좁은 공간에서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육지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면서 단 한번의 정박도 없이 거친 파도와 싸워가며 목적을 위해 항해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았고 친근하면서도 두려웠다.
[이제 조그마한 새들이 여전히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는 소용돌이 위를 시끄럽게 울며 닐아다녔고, 시무룩한 힌 파도는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을 때렸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고, 거대한 수의같은 바다는 오천 년 전에 넘실거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 자리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2권 P.513
<모비 딕>은 이야기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문장도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내용 자체가 많은걸 상징하고, 많은걸 담고 있다보니 한번 읽고 완벽히 이해했다고 하긴 힘들거 같다. 한 40% 정도 이해했으려나? 이 작품은 꼭 재독을 해야겠다. (나에게 이런 작품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리고 일러스트가 들어있는 다른 판본도 찾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