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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평점 :
N24036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타인과 조우하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믿고 읽는 백수린 작가의 초창기 작품은 어떨지 궁금했다. 문학동네 북클럽에도 가입한데다, 이 책이 이달의 도서? 이길래 문학동네 북샵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바로 읽었는데, '엄청난 작품이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아주 괜찮았다.
사실 내가 이 작품에 대해 기대한 분위기는 <여름의 빌라> 였는데, <여름의 빌리>와는 다른 면이 많았다. 우선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좀 쎄고(?),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작품도 많았으며, 작가가 의도를 꼭꼭 숨겨놔서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던 건지 숨은 의도를 찾는 고생도 했어야 했다. (해설이랑 인터뷰를 보면 답이 잘 나와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작품을 꼽는다면 표제작인 <폴링 인 폴> 이었다. 이 단편은 완전 내 취향 이었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에 대한 짝사랑의 아쉬운 감정을 너무나 잘 그려낸 작품이었다. 이건 작가님의 자전적인 작품(?) 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해본다.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한국어 강사인 나의 수업에 재미교포인 '폴'이 참가하게 되고, 처음에는 그를 꺼리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개인적인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어느 순간 그를 신경쓰게 된다. 삼심대 중반인 나, 그리고 이십대 중반인 폴. 극 I인 나와 극E인 폴.
폴 역시 나를 좋아하는게 아닌가 라는 착각은 만남이 거듭할 수록 옅어졌다. 그는 나를 친누나 같다고
했고, 어느날 폴은 술자리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유리코라는 일본 여학생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폴과 유리코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고독해진다. 하지만 결코 이 마음을 폴에게 말할 수는 없었고 나는 폴에게, 폴은 결코 알 수 없는 나만의 작별인사를 준비한다. 폴은 내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나는 폴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의 이름을 다급히 불렸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이제 두번 다시 나는 이런 감정으로 그를 바리볼 수 없을 것이다. 한 번도 그럴듯하게 명명된 적이 없는 초라한 내 사랑. 이제 와 고백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만큼은 건네고 싶었다. 삼 십대의 사랑은 그렇게 쉽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니까. ] P.65 <폴링 인 폴>
언제나 궁금했었다. 짝사랑은 언제 시작되는건가? 짝사랑 당하는 사람은 짝사랑 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모르는척 하는 걸까? 만약 알고 있었다면 어느 시기가 되서야 알게 되는걸까? 물론 짝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이전까지의 이야기 이지만...
이렇게 쓰고 나니 이 작품이 단순한 짝사랑 이야기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작가는 짝사랑 이야기에 미국인인 폴과 이민 1세대인 폴의 아버지와의 갈등, 이민 2세대의 모국에 대한 마음과 역사 인식을 절묘히 섞어놨는데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아주 매끄러웠다. 살짝 <눈부신 안부>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그 다음으로 <거짓말 연습>이 좋았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언제나 진실말을 말했던 걸까? 아니 타인에게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스쳐 지나가면, 나만 놓아 버리면 끝인 사람들인데? 필요에 따라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이 꼭 나쁜것 만은 아니다. 나쁜건 나를 떠나버린 사람들이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P.15 <거짓말 연습>
Ps. <폴링 인 폴> 작품집을 읽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훨씬 좋아한다는 것을. 그런데 하루키는 왜 좋은걸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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