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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삶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N24018
"자거라, 자, 이건 꿈이야, 꿈속의 애무, 꿈속의 입맞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나를 알 수는 없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꺼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다. 또 내가 꺼내놓은게 진실인지도 상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숨겨진 삶을 가지고 있다.
연인의 마음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지, 내가 과거에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나의 마음속에 어떤 금지된 욕망이 있는지, 내가 진정 원하는게 뭔지, 그 누가 알까? 신?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작가라는 존재가 있고 이렇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속마음을 보여주나 보다.
이번에 처음 접한 '실비 제르맹'의 작품인 <숨겨진 삶>은 이런 숨겨진 삶의 이면을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첫페이지를 넘기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한자리에서 읽었다.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을 이제서야 읽다니 깜짝놀랐다. 역시 소설강국 프랑스라는 생각을 했다.
줄거리가 상당히 특이하다. 주인공 사빈과 남편 조르주, 그들에게는 네 아이가 있었는데, 부부는 그렇게 사이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어느날 남편 조르주는 복권에 당첨되는데, 이 복권을 방에 놔두고선 못찾는거다. 남편 조르주는 아내에게 찾아내라고 뭐라하고, 아내 사빈은 이게 뭔 헛소리야 하면서 무시하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주고 받는다. 이후 남편 조르주는 열받아서 차를 몰고 뛰쳐나간다. 그런데 차 뒷좌석에는 딸 마리가 숨어있었다. 남편은 온갖 욕설을 하면서 미친듯이 운전하고, 딸은 숨죽여 있었는데, 도저히 못참겠어서 결국 아빠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깜짝 놀란 아빠 조르주는 왓? 이러다가 나무를 들이받고, 즉사한다. 딸 마리는 한쪽 발목이 짤린다. 복권의 불행인건가?
남편이 죽고나서 그의 물건을 정리하던 아내 사빈은 당첨된 복권을 발견하고(응?), 게다가 내연녀가 있다고 의심되는 물증을 발견한다. 그리고 남편에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누굴까? 해마다 남편의 차 사고가 난 나무에 꽃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사람이 그 내연녀일까?
[투명한 필름지를 덮어 반창고 쪼가리로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고정한 나선형으로 말린 여자의 긴 진갈색 머리카락 한올, 뱅자맹 라비에 책의 책장처럼 첫사랑 소녀에게서 슬그머니 절취한 기념품일까. 아니면 소녀에게서 직접 건네받 은 사랑의 담보물? 어쩌면 조르주 자신도 답례로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을 주었고, 세상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그 가소로운 전리품 역시 서서히 추억이 되어 망각속에 잠겼는지도. ] P.32
이후 아내 사빈을 둘러싼 사람들의 '숨겨진 삶'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읽다보면 충격에 빠지게 된다. 겉으로 봤을때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상처와 아픔, 그들의 욕망들. 독자가 봤을때는 뭔가 삐뚤어져 보이지만 어느 누가 그들의 '숨겨진 삶'을 비난할 수 있을까?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숨겨진 삶'이 있는데 말이다.
'실비 제르맹' 이라는 작가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작가를 이제서야 알게되다니~!!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더 찾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