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
아리시마 다케오 지음, 류리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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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3

어떤 리뷰에서 ‘아리시마 다케오‘가 20세기 최고의 일본 작가라는 이야기를 본적이 있었다. 귀가 얇은 나는 ‘최고‘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궁금증이 생긴다. 그래서 구매를 했다, 그리고 읽었다.....<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에는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1. <사랑을 선언하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선언하다>가 가장 좋았다. 이런 꼬이고 꼬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서간체 소설이어서 재미있엇다.


이야기는 어찌보면 간단하다. 남자인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서로 친구 사이임), 그리고 여자인 Y코 이렇게 세 사람이 주요 등장인물이고, 구성은 A와 B가 서로 주고받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Y코의 편지는 맨 마지막에 한번 등장한다.)


A는 Y코라는 여자에게 반하고, Y코라는 여자를 알고 있었던 B는 친구인 A와 그녀가 잘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후 A와 Y코는약혼을 하게 되지만, A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급격하게 기울어져서 A는 급히 고향으로 가서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향에서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빈궁했던 B는 A의 부탁이 있기도 해서 Y코의 집에 들어가서 하숙을 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꼬인다. B는 A에게 편지로 Y코의 소식을 전해주기도 하고, 두 사람 사이의 조언자 겸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A와 B가 주고받는 편지 속 분위기가 바뀐다. A는 의심하게 되고, B는 설명하려고 한다. 두 사람은 흔들리는 사랑과 우정의 그림자를 주고 받는다. 과연 Y코는 A를 포기하고 B를 마음에 두는 걸까? B는 우정 대신 사랑을 택할 것인가? 멀리 떨어져 있는 A는 그렇게 사랑과 우정을 모두 잃어버리는 걸까?

[자네의 패배 위에 축복 있으라.
Y코의 갱생 위에 동정 있으라.
나의 승리 위에 비탄의 눈물 있으라.] P.174



나는 <사랑을 선언하다>를 그냥 흥미진진한 연애소설로 읽었는데, 해설을 읽어보니 그냥 연애소설은 아니었다. 약혼이라는 사회적 규약을 버리고 도덕까지 넘어서서 내면의 진실에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과 그 시대의 젊은 여성이 가부장적 사회에 대항하여 주체적으로 자기 선택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나는 A가 좀 많이 불쌍했다...






2. <태어나려는 고뇌>

<태어나려는 고뇌>는 이 책의 해설자가 가장 좋다고 평가한 작품인데...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처음에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시작한다. 문학가인 ‘나‘는 우연히 화가를 꿈꾸던 ‘기모토‘라는 학생을 만나고, 그가 그린 그림에 큰 감명을 받는다. 하지만 ‘기모토‘는 먹고살기 위해 고향인 훗카이도로 돌아가서 어부 생활을 해야만 했고,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재회한다. ‘기모토‘는 어업에 종사하는 와중에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나‘는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업이라는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기모토‘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그가 돌아간 후 ‘기모토‘의 삶을 상상하면서 그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다.(액자식 구성의 시작)

[이렇게 2년, 3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어쩌다 자네 생각을 하게 되면 나는 인생 여로의 쓸쓸함을 맛보았다. 어찌 되었든 한번 얼굴을 마주하고 어느 정도까지 마음을 함께 했던 동지가 일단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어, 같은 이 지구 상에 호흡하고 있으면서도 미래에 영겁이 되도록 다시는 해후하지 않는… 그것은 얼마나 이상하고 쓸쓸하고 무서운 일인가.] P.187



여기서부터 내가 이 작품을 별로라고 느낀 부분이 진행되는데, 아무리 액자식 구성 이라고는 하지만 ‘자네는..‘이라고 진행되는 2인칭 시점(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걸까?)의 이야기는 뭔가 이야기가 매끄럽지도 않고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카인의 후예>

<카인의 후예>는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날것(?)의 소작농민 ‘닌에몬‘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는 소작료도 제대로 내지 않고, 멋대로 경작하며, 기분 나쁘다고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아내를 함부러 대하는 불한당이고, 사람들은 그를 무서워 한다. 다른 농민들은 지주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만 ‘닌에몬은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본능에 따라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점점 생활이 어려워지고 동네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데다가 아이를 잃고 나자, 이를 극복하기 지주를 찾아가서 소작농민들의 염원인 소작료 경감을 요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지주의 위엄에 주눅이 들어 한마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나서 부부는 농장을 떠난다. 자신을 둘러싼 계급의 굴레를 벗어던진다. 그런데 눈밭을 해치고 나아가는 그들에게 희망이라는게 있긴 한걸까?

[분비나무 숲이 건너편에 보였다. 모든 나무가 벌거숭이가 되어 있는데 이 나무만은 음울한 암록색 잎사귀 색을 꾸지 않았다. 곧게 뻗은 나무 기둥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서 하늘을 찌르고 성난 파도와 같은 바람 소리를 담아 내고 있었다. 두 남녀는 개미처럼 작게 그 숲에 다가갔다가 마침내 그 안에 삼켜져 버렸다.] P.351





추가 1) 일단 세 단편 중 두 단편이 좋았다. <사랑을 선언하다>는 재미있고, <카인의 후예>는 강렬했다. 그냥 읽었을때는 몰랐었는데, 해설을 읽고나서 각각의 단편에서 작가가 생각하던 문제의식과 사상적 고뇌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해설을 읽고 난 후에 읽으면 더 좋을것 같다.


추가 2) 생전에 ‘남녀의 사랑이 절정인 순간에 죽는다‘고 말하고 다녔던 작가는 1923년에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기라도 하듯 유부녀(?)와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좀 섬뜩힌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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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3-31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몰입을 방해한 ˝자네˝는 번역의 문제였을까요?

귀가 얇으시다는 새파랑님, 여전히 열독에 상세 리뷰까지 올려주시는 정성을 나눠주셔서 덕분에 호강하고 갑니다.

**소소한 질문 A, B는 A, B 인데 왜 Y는 Y˝코˝라고 하나요, 혹시나 (제가 일본어 전혀 모르는데) 일본어랑 관련되는 접사인가요?^^;; 죄송해요 별걸 다 궁금해합니다. 제가

새파랑 2024-03-31 22:15   좋아요 1 | URL
번역의 문제 보다는 시점의 문제인거 같습니다. 2인칭으로 진행되다보니 현실성이 결여된거 같은 느낌? ㅎㅎ

저도 책을 읽으면서 왜 A, B 인데, Y코만 이렇게 명시한건지 궁금했습니다.. 뭐 따로 설명은 안나와있더라구요~!!

페넬로페 2024-03-3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가 얇은 새파랑님 ㅎ ㅎ
아리시마 다케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최고의 일본 작가라는 말에 저도 솔깃하네요^^

새파랑 2024-04-01 22:35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는 최고는 아닌걸로......

저라면 하루키 소세키 슈사쿠 이렇게 세분 선택하겠습니다~!!
 

몸이 안좋을때 읽어서 뭔가 잘 이해늘 못한것 같다. 다시 읽어봐야 겠다.


한치 나아가면 한 치만큼의 죄가 펼쳐지고 한자 물러서면 한자만큼의 후회가 남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네. - P5

그 후로도 오쓰야를 봤다고 생각한 찻집 앞을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모른다네. 그러던 중 그 찻집이 문을 닫아 버렸지. 그러고서 나의 온 영혼과 온 마음을 흔들어 댔던 오쓰야는 내 마음속에 불완전한 모습을 남긴 채 그 젊은 새댁과 함께 나와는 티끌 만한 교류도 없이 이상한 존재 속으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네. 그것은 그 무렵 나에게는 죽는다는 것보다도 훨씬 슬픈 이상한 사건이었지. 그걸 생각해 보면 지금도 신비해 무서운 신비야.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이젠 절대로 볼 수 없다는 건.. 거기에는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운명의 신비가 있는 게 아닐까? - P18

그저 우연한 만남이 이런 기적을 나타낸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는 이상한 광명 속에 내던져진 맹인과도 같다네. 눈 바깥쪽에는 끊임없이 빛이 고루 비치는 광명이 있네. 하지만 눈 안에는 영겁불괴의 암흑이 있을 뿐일세. - P39

Y코에 대해서는 왠지 편지를 쓸 마음이 들지 않네. 자네의 편지는, 호의로 가득한 편지는 불행하게도 Y코에 대한 것보다 보편적인 이해를 줌과 동시에 보다 심각한 의문을 던져 주더군. 사람을 의심하면 자기 마음이 시궁창이 되어 버리지. - P142

자네의 패배 위에 축복 있으라.
Y코의 갱생 위에 동정 있으라.
나의 승리 위에 비탄의 눈물 있으라. - P174

이렇게 2년, 3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어쩌다 자네 생각을 하게 되면 나는 인생 여로의 쓸쓸함을 맛보았다. 어찌 되었든 한번 얼굴을 마주하고 어느 정도까지 마음을 함께 했던 동지가 일단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어, 같은 이 지구 상에 호흡하고 있으면서도 미래에 영겁이 되도록 다시는 해후하지 않는… 그것은 얼마나 이상하고 쓸쓸하고 무서운 일인가.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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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페이지에 다 밑줄 긋고 싶은 작품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 P20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파인 고랑. - P50

외로움=대화를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쯤에 돌아 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 - P54

견딜 수 없었던 하루. 점점 비참해지는 날들, 울다 - P55

내가 놀라면서 발견하는 것, 그러니까 나의 걱정 근심(나의 불쾌함)은 결핍이 아니라 상처 때문이라는 사실. 나의 슬픔은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나는 모자라는 게 없다. 내 생활은 전 처럼 아무 문제가 없다). 그 무엇이 상처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 P75

그 누구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그것도 대답을 얻으리 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 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 P78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따뜻하지만, 그러나 혼자다. 그리고 이런 밤에 나는 다시 깨닫는다: 이제 나는 이런 외로운 밤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걸, 이런 고독 속에서 행동하고 일하기, 그러니까 저 ‘부재의 현전과 달라붙어서 늘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 P79

오늘 적막한 일요일 아침, 울적하고 암담한 마음속에서:
지금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매우 엄중한 절망적인 테마가 있다: 도대체 앞으로의 내 삶은 그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 P92

나는 외롭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이 필요하다. - P101

이런 말이 있다(마담 팡제라가 내게 하는 말):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 P111

1921년 가을
프루스트는 베로날 과용으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셀레스트: "언젠가 우리는 모두 여호와의 계곡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당신은 정말 죽은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고 믿나요
셀레스트? 정말 내가 마망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난 지금이라도 당장 죽고 싶어요." - P167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 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 P216

그녀의 죽음 이후, 그 무언가를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가는 일‘이 싫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그건 왜일까? 문학, 그것은 내게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다(마망이 그랬던 것처럼). - P235

망각이란 없다. 이제는 그 어떤 소리 없는 것이 우리 안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뿐이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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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utta 2024-03-31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판으로 가지고 있어서 몰랐는데
표지 그림의 떨어지기를 멈춘 눈물이 애도의 꽃잎 같네요

새파랑 2024-03-31 13:45   좋아요 1 | URL
아 그런거군요~!! 주말에 읽었는데 괜히 읽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ㅡㅡ

Calcutta 2024-03-31 14:29   좋아요 1 | URL
부알라(“나 여기 있다.”라는 그 말. 그녀와 내가 평생 동안 서로에게 했던 말).

새파랑 2024-03-31 15:55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조용한 밤에 다시 읽어봐야 할거 같습니다~!
 
백치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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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2

˝당신의 눈을 어디서 꼭 본 것 같군요...... 하지만 그럴 리는 없을 거에요. 나는 한 번도 여기 온 적이 없으니까요. 어쩌면 꿈속에서...˝


100% ‘선‘으로만 이루어진 사람이 과연 있을까?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내면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선‘한 사람에게도 ‘악‘하거나 나약한 내면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다만 이성이나 제도들이 이를 표출하지 못하도록 할 뿐.


반대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악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악‘을 행할 때에도 내면 어딘가에는 반성과 후회라는 ‘선‘한 요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악인을 교화할 수 있다면, 그들은 ‘악‘의 행동을 멈출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100% ‘선‘으로만 이루어진 구원자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과연 구원자라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라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100% ‘선‘으로 이루어진 사람인 ‘므이쉬킨‘ 공작이다. 작품 초반에 그는 가족 하나 없고, 간질 발작 때문에 어린시절에 스위스로 요양을 떠나 있다가 이제 기차를 타고 고향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거짓말은 하지 않고, 언제나 진실과 진심만을 말하는 ‘므이쉬킨‘을 사람들은 ‘백치‘라고 부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므이쉬킨‘은 100% ‘악‘으로 이루어진 사람인 ‘로고진‘을 만나게 된다. 불한당이었던 ‘로고진‘은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졸부였고, 사랑에 대한 야망과 복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로고진‘이 사랑하는 사람은 <백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여인인 ‘나스타시야‘ 였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므이쉬킨‘과 ‘로고진‘은 단 한번의 대화로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페테르부르크 기차에서 헤어지게 되는데...


이후 앞에서 이야기한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인 ‘나스타시야‘가 등장한다.어린시절 지배계층의 횡포로 인해 부모를 잃은 그녀는 고아로 자라게 되고, ‘토츠키‘라는 거부가 그녀를 키우게 되는데, 그녀는 어린시절에 ‘토츠키‘로부터 유린당하고 그의 정부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똑똑하고 똑부러진 그녀는 성장하면서 아름답고 강한 여인으로 크게 되고, 더이상 ‘토츠키‘의 정부가 아닌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협박하고 괴롭힌다.


‘토츠키‘는 자신의 위신과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였던 그녀를 ‘가냐‘라는 인물과 정략켤혼 시키려고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가냐‘는 자신의 출세와 지참금이라는 경제적 보상을 위해서 그녀와의 결혼을 받아들인다.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고선 말이다.


그리고 ‘가냐‘의 집에서 앞에서 언급한 네 사람, ‘므이쉬킨‘, ‘로고진‘, ‘나스타시야‘, ‘가냐‘ 가 처음으로 함께 만나게 된다. ‘므이쉬킨‘은 한 눈에 ‘나스타시야‘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알아보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응?),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그녀를 구원하려고 한다. ‘나스타시야‘ 역시 그를 알아본다, 그의 선함을 알아본다. 그와 함께 한다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느낀다. 더이상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괴롭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마음속에 품는다.


하지만 그녀는 100% ‘선‘인 ‘므이쉬킨‘ 대신 100% ‘악‘인 ‘로고진‘을 일단 택한다. 당연히 정략결혼의 대상자였던 ‘가냐‘에게는 모욕을 준다...그녀는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대신 왜 절망을 택했을까? 아마 그건 자신이 ‘므이쉬킨‘을 선택한다면 자신 때문에 ‘므이쉬킨‘이 타락할 거라고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미 타락한 자신은 이제 구원받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해서 인지도 모른다.




구원받을 수 있었지만 구원받는 걸 포기한 ‘나스타시야‘, 그녀는 ‘로고진‘과 함께 떠나지만 아직 선한 내면이 남아있었던 그녀는 ‘로고진‘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도망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선‘과 ‘악‘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인간의 마음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스타시야‘는 자신의 이상향인 ‘므이시킨‘이 ‘아글리야‘라는 자신과는 달리 순결한 여인과 결혼할 수 있도록 물밑작업(?)을 한다. 그렇게 해서 ‘므이시킨‘과 ‘아글리야‘는 가까워 지긴 하는데... ‘나스타시야‘는 자기가 물밑작업을 해놓고선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질투를 한다. 이것 또한 사랑과 질투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인간의 마음처럼 말이다.


과연 ‘나스타시야‘는 ‘선‘(므이쉬킨)을 택할까? 아님 ‘악‘(로고진)을 택할까? 변덕과 변덕을 거듭하는 ‘나스타시야‘를 보면 좀 속이 터지긴 하지만, 원래 인간의 마음이라는게 변덕과 모순 덩어리 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해도 된다. 결말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진다. 절대 ‘악‘인 ‘로고진‘은 이런 변덕스러운 그녀를 과연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줄까 있을까?


그리고 절대 ‘선‘인 ‘므이쉬킨‘이 ‘나스타시야‘에게 느끼는 감정은 연만밀까, 사랑일까?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이 가능하긴 한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주인공인 ‘므이쉬킨‘이 백치로 불렸다는 점과, 이 작품의 제목이 <백치>라는 점에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양쪽의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내면을 이처럼 잘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 ‘선‘한 사람의 영향력이 주변을 변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구원할 수는 없다, 구원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추가1)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백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수다스럽고, 개성도 매우 강하며, 여성들(특히 부인들)의 입김은 완전 쎄고, 어떻게 보면 다 정신이상자 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오히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추가2) 예전에 처음 읽었을때는(열린책들 버젼) 이해하기도 힘들고 잘 안읽혔는데, 이번에 재독하니(문학동네 버젼) 확실히 예전보다 이해도 잘 되고 훨씬 잘 읽혔다. 역시 좋은 작품은 재독해야 한다는걸 새삼 느꼈다.


추가3)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책 표지 뒷면에 나온 것처럼 이 책의 1부 이야기 전개는 정말 대단하다. 등장인물 이름만 햇갈리지 않고 1부를 집중해서 읽는다면 2~4부는 술술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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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25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백치는 아직 못 읽었는데,,, 새파랑님 글 제목이 끌리네요. 열린책들로만 있는데,,, 요즘 문학동네에서 도스토옙스키를 새롭게 펴내고 있나봐요.
제가 알기로 새파랑님은 전작읽기 끝내셨는데,,, 도스토옙스키 사랑은 영원하리! 맞습니까?^^

새파랑 2024-03-25 13:34   좋아요 1 | URL
전작을 하긴 했지만 전작한 기분이(?)가 안들어서 다시 읽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출판사 책이 나와서 안살수가 없었습니다~!!

책친놈 2024-03-25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과악에 대한 소재는 늘 흥미로운것 같아요.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등등 입체적인 캐릭터가 더 많이 나오다보니, 100퍼 선으로 나오는 인물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새파랑 2024-03-25 13:35   좋아요 2 | URL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린 가장 아름다운 인간인 ‘므이쉬킨‘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강추합니다. 기왕이면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을 순서대로 읽으면 좋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4-03-25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버전이 읽기가 조금 쉬운 것 같아요. 출판사마다 세계문학을 번역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제목인 백치의 뜻이 그런 거였군요.
선과 악을 왔다갔다하는 나스타시야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한데요^^

새파랑 2024-03-25 13:51   좋아요 2 | URL
열린책들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번 문학동네 버젼도 좋더라구요. <악령>도 어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ㅋ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중에 해피엔딩이 있었나? 싶습니다. 원래 인생은 결국 비극 아닌가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4-03-26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요새 다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읽어나가시는 것 같아서 괜히 반갑네요. 저도 이어서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들이 많아서 자꾸 늦어지고 있습니다ㅠㅠ 좋은 작품은 재독해야 한다는 것 저도 동감해요.
저는 아직 독서 초보라 초독이 대부분이지만 좋은 책들은 다시 읽어야지 생각하며 따로 정리해두고 있는데 언제 재독할 수 있을까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습니다!ㅎㅎㅎ

새파랑 2024-03-27 12:33   좋아요 1 | URL
거리의 화가님이 초보시면 저는....? ㅋㅋㅋ

요새 책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검증(?)된 책 위주로 읽으려고 합니다~!!

청아 2024-03-26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을것 같아 새파랑님 리뷰 절반만 읽었습니다.ㅎㅎ 극과 극의 두 사람이 만나 어떤 일이 생기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저는 선과 악의 경계에 관심이 있어요.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지를요. 도선생님은 그런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캐릭터로 그려내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4-03-27 12:35   좋아요 1 | URL
ㅋㅋ 도스토에프스키는 사랑! 입니다! 이책 읽다보면 아 뭐 이런 사람들이 있지? 이럽니다 ㅋㅋ
가장 극단을 잘 표현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구름모모 2024-03-26 1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출판사 모두 읽으셨네요. 읽지 않은 작품이라 솔깃해지네요.

새파랑 2024-03-27 12:35   좋아요 1 | URL
소장하는 겸 해서 두 출판사 버젼으로 다 읽었네요 ㅋ 도스토예프스키 장편들 순서대로 읽는걸 추천합니다~!!

희선 2024-03-31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구원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겠지요 자신이 그걸 바라야 누군가의 도움도 받아들일 텐데...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사람은 말이 많군요 도스토옙스키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도 조금 듭니다 도스토옙스키 안에 있는 여러 사람...


희선

새파랑 2024-03-31 11:15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 실제로 만나면 엄청 수다쟁이일듯 합니다 ㅋㅋㅋ 이런 수다스러우면서도 깊이있는 성찰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최고인거 같아요~!! 현 시대에 신이 재림해도 타락한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백치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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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1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려낸 가장 아름다운 사람 '므이쉬킨' 공작에 대한 이야기. 그는 백치였지만 이상적이었고, 타락한 러시아인들은 그를 만나고 난 후 잘못된 가치관을 바꿔간다, 희망을 꿈꾼다, 혹은 그를 더립힐까봐 가까이 가지 못한다. 작품의 끝에 희망이 있을지 절망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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