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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쉽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내게 무해한 사람>은 최은영 작가님이 쓴 단편 7개가 모아진 책이다. 이러한 단편들의 주제를 관통하는 단어를 고르라면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지 남여사이 뿐만 아니라 친구, 가족, 친척, 연인 등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관계의 유형 속에서,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애태우고, 망설이고, 궁금해하는 우리의 '마음'을 다룬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는 <그 여름>, <601,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 등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감정의 울림을 준다.
하지만 이 중 개인적으로 <그 여름>, <모래로 지은 집>, <아치다에서> 세 작품이 특히 좋았다.
<그 여름>은 고등학교 때 어떤 사건에 의해 만난 두 여성의 사랑과 해어짐을 다룬 작품이다. ("이경"과 "수이" 두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수이'라는 인물이 남자인 줄 알았다...작가님이 의도한 듯...)
"이경"과 "수이"는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게 된 '그 여름'을 시작으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만큼 깊은 관계가 되어, 결국 같이 서울로 올라가지만 "이경"은 대학생으로 입학하고, "수이"는 직업학교에서 정비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러한 배경의 차이와 서로의 성격적인 차이, 특히 "이경"을 좋아하는 "은지"라는 새로운 여성의 등장으로 인해 여전히 서로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약간씩 감정의 간극이 생기면서 그들은 결국 헤어진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경"은 고향에서 그들이 자주 바라보던 강물을 바라보면서 "수이"의 이름을 나직히 부른다. 너무 어렸을 때 만나서인지 그둘은 서툴렀고 그렇게 해어졌지만, "이경"에게 있어서 오랜시간이 지난 후에도 애틋하게 남아있는 "수이"에 대한 추억은 그녀가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보여주는 게 아닐까?
<모래로 지은 집>은 피씨 통신 동호회에서 만난 나(여성), 모래(여성), 공무(남성)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모래는 공무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만, 공무는 자신의 불안한 미래와 오히려 자신과 사귀고 난 후 자기를 알게 되어서 떠날 바에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거절한다.
이 와중에 둘을 지켜보는 나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또는 사랑과 우정이 섞인 관계 속에서 셋은 균형이 잡힌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결국 서로의 갈길로 가게 되고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세사람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며 이야기는 끝난다.
[그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싶었다. 만약 내 옆에 모래가 있었더도 나는 똑같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158페이지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182페이지
사랑과 우정은 어디까지가 경계인걸까? 명확하게 구분하는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이다.
<아치다에서> 는 먼 이국땅인 아이슬릴드에서의 브라질 청년 "랄도"와 한국인 여성 "하민"의 우연한 만남과 서로에게 설래임을 느끼지만, 결국 둘은 관계를 유지하기 보다는 가장 애틋한 순간에 해어지는게 좋겠다고 판단하여 결국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서로가 분명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그렇게 돌아서야 하는걸까? 아마 둘 사이의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고국에서의 상처 때문에 먼 타국으로 온 그들은 자기만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도 벅찼을 텐데, 그 당시에 사랑은 어쩌면 사치처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쉬워서, 보고싶어서, 걱정되어서 무작정 '라페스트'로 "하민"을 찾으러 간 "랄도"의 마음과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너무 안타까웠다.
[(사람과의 만남이) 이 정도로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대체 왜 우리는 그렇게 수없이 만나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거지.] 295페이지
[괜찮아, 랄도. 꼭 계속되어야만 좋은 건 아니잖아] 298페이지
그렇게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게 되고,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책을 다 읽고 이 책에서 말하는 '내게 무해한 사람'과 '내가 사랑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내가 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으로, 이러한 감정은 어떤 사건이 생기거나 나의 감정 변화로 인해 나의 일상에서 잊혀지거나, 언젠가는 내가 미워하게 될 수도 있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사람으로 바뀔수도 있다.
하지만 '무해한 사람'은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영향력으로 인해 내가 상대방에 대해 가지는 감정으로, 더이상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며, 가끔씩 접었던 마음을 펼칠 때마다 내게 힘이 되어주고 소중한 추억을 눈앞에 펼쳐주는 사람이지 않을까? 마치 소울메이트 처럼.
"당신에게 무해한 사람은 어떤사람 인가요?" 한번씩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는지를.
<Damien Rice> "Delicate"
https://youtu.be/VnL3NfhOsB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