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내가 읽은 거 그대로 이해하는게 맞는건지 모르겠지만,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왜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과거는 바로 현재에요, 안그래요?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애써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인생은 그걸 용납하지 않죠.

(과거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 P106

여긴 너무 쓸쓸해. 또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구나. 사실은 혼자 있고 싶었으면서. 저들이 보이는 경멸과 혐오감 때문에 함께 있는게 싫었으면서. 저들이 나가서 기쁘면서. 성모님,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한 거죠?

(혼자 있는건 아편일 수도 있고 쓸쓸할 수 있다.) - P116

길지 않으리, 울음과 웃음,
사랑과 욕정과 증오는.
우리, 죽음의 문 지나고 나면
그것들, 우리에게 더는 없으리니.

길지 않으리, 술과 장미의 시절도.
어느 어렴풋한 꿈에서
우리의 길 잠시 나타났다, 이내
어느 꿈속에서 닫히리니. - P163

전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인간이 되는 바람에 항상 모든것이 낯설기만 하고, 진정으로 누구를 원하지도, 누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어디 속하지도 못하고, 늘 조금은 죽음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된 거죠.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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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6-13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진 오닐의 이 책 너무 유명해서 안 읽었습니다.
새파랑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밤 되세요.^^

새파랑 2021-06-13 22:23   좋아요 2 | URL
ㅋ 저는 유명한지도 몰랐어요 ㅎㅎ 아직 남은 하루를 잘 마무리 해야겠어요 ^^ 언제나 감사합니다 ~!!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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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쉽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내게 무해한 사람>은 최은영 작가님이 쓴 단편 7개가 모아진 책이다. 이러한 단편들의 주제를 관통하는 단어를 고르라면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지 남여사이 뿐만 아니라 친구, 가족, 친척, 연인 등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관계의 유형 속에서,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애태우고, 망설이고, 궁금해하는 우리의 '마음'을 다룬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는 <그 여름>, <601,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 등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감정의 울림을 준다.

하지만 이 중 개인적으로 <그 여름>, <모래로 지은 집>, <아치다에서> 세 작품이 특히 좋았다.



<그 여름>은 고등학교 때 어떤 사건에 의해 만난 두 여성의 사랑과 해어짐을 다룬 작품이다. ("이경"과 "수이" 두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수이'라는 인물이 남자인 줄 알았다...작가님이 의도한 듯...)

"이경"과 "수이"는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게 된 '그 여름'을 시작으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만큼 깊은 관계가 되어, 결국 같이 서울로 올라가지만 "이경"은 대학생으로 입학하고, "수이"는 직업학교에서 정비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러한 배경의 차이와 서로의 성격적인 차이, 특히 "이경"을 좋아하는 "은지"라는 새로운 여성의 등장으로 인해 여전히 서로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약간씩 감정의 간극이 생기면서 그들은 결국 헤어진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경"은 고향에서 그들이 자주 바라보던 강물을 바라보면서 "수이"의 이름을 나직히 부른다. 너무 어렸을 때 만나서인지 그둘은 서툴렀고 그렇게 해어졌지만, "이경"에게 있어서 오랜시간이 지난 후에도 애틋하게 남아있는 "수이"에 대한 추억은  그녀가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보여주는 게 아닐까?



<모래로 지은 집>은 피씨 통신 동호회에서 만난  나(여성), 모래(여성), 공무(남성)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모래는 공무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만, 공무는 자신의 불안한 미래와 오히려 자신과 사귀고 난 후 자기를 알게 되어서 떠날 바에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거절한다.

이 와중에 둘을 지켜보는 나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또는 사랑과 우정이 섞인 관계 속에서 셋은 균형이 잡힌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결국 서로의 갈길로 가게 되고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세사람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며 이야기는 끝난다.

[그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싶었다. 만약 내 옆에 모래가 있었더도 나는 똑같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158페이지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182페이지

사랑과 우정은 어디까지가 경계인걸까? 명확하게 구분하는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이다.



<아치다에서> 는 먼 이국땅인 아이슬릴드에서의 브라질 청년 "랄도"와 한국인 여성 "하민"의 우연한 만남과 서로에게 설래임을 느끼지만, 결국 둘은 관계를 유지하기 보다는 가장 애틋한 순간에 해어지는게 좋겠다고 판단하여 결국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서로가 분명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그렇게 돌아서야 하는걸까? 아마 둘 사이의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고국에서의 상처 때문에 먼 타국으로 온 그들은 자기만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도 벅찼을 텐데, 그 당시에 사랑은 어쩌면 사치처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쉬워서, 보고싶어서, 걱정되어서 무작정 '라페스트'로 "하민"을 찾으러 간 "랄도"의 마음과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너무 안타까웠다.

[(사람과의 만남이) 이 정도로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대체 왜 우리는 그렇게 수없이 만나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거지.]  295페이지

[괜찮아, 랄도. 꼭 계속되어야만 좋은 건 아니잖아]  298페이지

그렇게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게 되고,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책을 다 읽고 이 책에서 말하는 '내게 무해한 사람'과 '내가 사랑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내가 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으로, 이러한 감정은 어떤 사건이 생기거나 나의 감정 변화로 인해 나의 일상에서 잊혀지거나, 언젠가는 내가 미워하게 될 수도 있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사람으로 바뀔수도 있다.

하지만 '무해한 사람'은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영향력으로 인해 내가 상대방에 대해 가지는 감정으로, 더이상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며, 가끔씩 접었던 마음을 펼칠 때마다 내게 힘이 되어주고 소중한 추억을 눈앞에 펼쳐주는 사람이지 않을까?  마치 소울메이트 처럼.

"당신에게 무해한 사람은 어떤사람 인가요?" 한번씩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는지를.

<Damien Rice> "Delicate"
https://youtu.be/VnL3NfhOs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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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13 15: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내게 무해한 사람,,,,
이라고 딱히 규정하고 인간 관계를 쌓지 않아서 ,,,인지 모르지만
새파랑님의 생각에 무척 놀라는 부분이
[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며, 가끔씩 접었던 마음을 펼칠 때마다 내게 힘이 되어주고 소중한 추억을 눈앞에 펼쳐주는 사람]이라는 건
정말 인생에 소중한 사람중 한명 아닌가여 ㅎㅎㅎ

사회생활 하면서 MSG가 없는 인간 관계가 없지만 남한테 해코지나 등에 *을 꼽지만 않는다면
우리 모두다 무해한 사람 !!ㅎㅎㅎ

엔딩 요정은 !데미언 라이스!
신곡 !목빠지게 기다리는 1人 !!

새파랑 2021-06-13 16:17   좋아요 5 | URL
스콧님은 북플의 무해한 AI 이시죠😊😊
책 마지막에 데미언 라이스가 언급되서 한번 넣어 봤습니다. 저는 1집(O) 완전 좋아해요 ^^

페넬로페 2021-06-13 16: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번역된 외국작가들이 쓴 소설 읽다가 모국어로 쓰여진 한국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한 번씩 눈물이 나요. 그 편안함과 바로 느낄수 있는 감정들과 깊은 공감이 너무 좋아서요. 그 중에서도 최은영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더할 나위 없죠~~내가 사랑한 사람과 무해한 사람의 새파랑님의 설명이 넘 좋네요😍😍

새파랑 2021-06-13 17:08   좋아요 5 | URL
프루스트의 난해함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잠시 한국작품 읽기^^ 바로 이해되는 감성이 너무 좋았어요😊😊

미미 2021-06-13 17: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새파랑님 이 작품들로 많은것들을 얻으신듯 느껴져요.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수 있도록.‘ 이 구절이 달달하니 너무 좋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데미언 라이스도 처음들어봐요.🤭

새파랑 2021-06-13 17:12   좋아요 5 | URL
미미님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 확실합니다 ㅎㅎ 그리고 데미언 라이스 1집 처음 나왔을때 샀었는데, 지금까지도 듣는 앨범이에요. 전곡이 다 감성적이고 좋아요 😀😀
(이게 영업인가요? ㅎㅎ)

scott 2021-06-13 20:30   좋아요 3 | URL
데미언 라이스
영화 클로저 메인OST
영화랑 데미언 음악이랑 찰떡!!
책보다 데미언 음악 부터 ฅ́˘ฅ̀

미미 2021-06-13 20:53   좋아요 3 | URL
그 영화 봤었는데 OST였군요! 확인할겸 다시 봐야겠어요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6-13 17: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미앤 라이스 노래 좋아해요.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해로움을 감수할때도 있죠?!!

새파랑 2021-06-13 19:24   좋아요 5 | URL
해로운줄 알면서도 마음이 가는건 어쩔 수 없는거 같아요 ^^ 책은 해롭지 않음~!

scott 2021-06-13 20:30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
책은 해롭지 않은
무해한 존재 ㅎㅎ

붕붕툐툐 2021-06-13 20: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해한 사람이란 표현이 너무 신선했어요. 이런 표현 일상적으로는 잘 안 쓰는 거 맞죠? 저는 저한테 해를 가하는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
이 책 읽었는데 새파랑님이 요약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정말 기억이 안 나네요~ 감정 뭉클뭉클하며 읽었던 기억은 또렷해요~^^

새파랑 2021-06-13 20:26   좋아요 3 | URL
요약 실패? ㅋ 금욜날 다 읽었는데, 좀 늦게 써서 내용이 날림일수도 있어요. 툐툐님은 워낙 성자 이셔서 누가 해를 가할수 없죠~!!

희선 2021-06-15 0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잊고 싶지 않은 걸 접어두었다 펴 보는 때가 오면 좋겠지만, 접은 걸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이 소설에 담긴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을 다시 펴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없고 생각하면 슬프기도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았던 때도 있었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1-06-15 18:41   좋아요 1 | URL
희선님 표현이 딱 맞는거 같아요. 지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때는 정말 좋았을테니까 생각날때마다 펴볼수 있는것만으로도 좋은거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읽고 좋았어요 ^^

공쟝쟝 2021-06-15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빵)브래드는 피트고요 ㅋㅋ 역시 (밥)라이스는 데미언 라이스 ㅠㅠ 델리케이트. ㅠㅠㅠ

새파랑 2021-06-15 18:43   좋아요 0 | URL
공쟝쟝님 원픽 작가님의 책 너무 좋네요~!! 그리고 라이스는 역시 데미언이죠^^ 저 이책 읽고 나서 데미언 라이스 앨범 세번은 들은거 같아요 ^^
 

희곡인데 잘읽히고 흥미진진. 다만 밑줄긋기가 쉽지가 않다ㅎㅎ

인생이 우리에게 저질러 놓은 일을 우리가 어쩌겠니. 깨닫기도 전에 일은 이미 저질러져 있고, 우리로선 달리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단다. 마침내 모든 것이 다 끼어들어 우리와 희망 사이를 갈라놓을 때쯤이면, 진정한 자아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지 .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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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모자 2021-06-13 0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희곡이죠ㅋ 초반에 아들이 아버지한테 너무 막 대해서 식겁했었던 기억이 나네요ㅋ

새파랑 2021-06-13 09:31   좋아요 2 | URL
어제 책볼시간이 없어서 아직 절반밖에 안읽었는데 잘읽히고 몰입되는거 같아요. 뒷부분이야기 완전 궁금하네요 ^^ 황금모자님 이 훌륭하다고 하시니 더궁금 ~!!
 

타인만이 우리를 구윈한다. 고독이 아편처럼 느껴질지라도.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타인에 의해서만 구원이 있다...) - P26

고요

거대한 대도시에도 이따금 고요가 깃들어
바람결에 실려 온 지난 해 낙엽이
소멸을 향한 끊임없는 방랑을 지속하며
보도에서 뒹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고요와 낙엽...) - P64



너는 단지 죽었을 뿐이니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리.
너는 항상 아홉 살일 테니
마지막으로 산에서
널 보았던 그 순간처럼.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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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6-12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오늘은 시집이네요.
잘 모르는 시인이지만 제목은 좋은 것 같아요.
즐거운 주말과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1-06-12 23:02   좋아요 2 | URL
저도 잘 모르는 시인이라는 ㅎㅎ 다른 책하고 같이 읽고 있어요 ~ 서니데이님 좋은 밤 되세요^^

희선 2021-06-13 0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나온 건 가장 위에 쓴 시를 나타내는 거였군요 다른 사람이 만든 게 있어서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겠습니다 음악이나 소설은 위로를 주기도 하지요


희선

새파랑 2021-06-13 16:22   좋아요 1 | URL
시는 잘 모르지만 읽어보고 싶은 분야 같아요^^ 위로가 되더라구요 ㅋ
 

작가의 감정이 잘 느껴진다. 무해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러한 글을 쓰는 작가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걸까? 궁금하다.
(다 읽음) 와 이 책 너무 좋다ㅜㅜ






어린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 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어렸을때 만났던 사람들의 의미) - P97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른이 되어서는 기다려도 기다리는건 오지 않는다.) - P99

그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싶었다. 만약 내 옆에 모래가 있었더도 나는 똑같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언젠가 다시 펴볼수 있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 P158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그러나 모래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 P163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거야. - P179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 P182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 - P222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마술. 그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는 가지만 다시 무에서 유로는 가지 않는 분명한 법칙을 따랐다. 그 룰을 알고 있는 이상 꽃이 필 때 웃고 비둘기가 손등에 앉아 있을 때 감탄할 일이었다. - P223

그러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면. 사실 사라졌다는 것이 너무도 교묘한 트릭이라면 어떨까. - P224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쉽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너무너무너무 멋지고 와닿는 문장이다ㅜㅜ) - P225

(사람과의 만남이) 이 정도로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대체 왜 우리는 그렇게 수없이 만나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거지.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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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6-12 0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ㅠㅠㅠ 떠낸 문장만 읽어도 또 좋으네요ㅠㅠ 최은영 돌아와…

새파랑 2021-06-12 07:49   좋아요 2 | URL
공쟝쟝님의 1픽 작가님의 이책 너무 정말 좋네요^^ 왜 이제 읽었는지 안타까웠어요 ㅜㅜ

페크pek0501 2021-06-12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25쪽의 글. 저도 너무 와닿습니다.
제 식으로 문장을 바꿔 쓰면 -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면 사랑하게 되고, 잊기로 마음먹으면 잊게 되는 게 마음이라면 인간은 지금보다 합리적인 인간이 되리라.

새파랑 2021-06-12 16:46   좋아요 2 | URL
비슷한 부분에 공감이 되니 반갑네요. 마음이라는게 항상 생각대로 되는게 아니어서 가끔은 슬프지만 그래서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는거 같아요^^

scott 2021-06-12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은영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이라서 더더욱 호감!!


새파랑 2021-06-12 16:56   좋아요 1 | URL
스콧님이 호감이라니 전 극호~!! 오늘부터 팬시작 해야겠어요^^ 리뷰 써야되는데 ㅎㅎ

희선 2021-06-13 0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소설집이 나온다는 말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아직 소식은 없네요 몇해 전에 《쇼코의 미소》 보고 좋게 생각했습니다 이 책도 만났습니다 다른 한국 소설은 좀 어렵기도 한데, 최은영 소설은 어쩐지 슬픕니다 슬픈데 보는... 그러고 보니 한동안 소설을 못 썼다는 말 본 것 같네요 어디에서 그 말 봤는지...


희선

새파랑 2021-06-13 16:24   좋아요 1 | URL
저도 <쇼코의 미소> 보고 이 책 읽었는데, 이책이 저는 40퍼센트 만큼 더 좋네요. 신작나오면 바로 달려가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