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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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서재가 궁금하다. 서재를 어떤 책들로 어떻게 꾸밀지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어찌보면 그 사람에 대해 잘 볼 수 있는 것이 서재다. 그러기에 잘 모르는 사람이 나의 서재를 본다는 것은 내 속을 들여다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주저하게 된다. 내 서재를 남에게 보이는 것은 꺼리게 되지만, 다른 사람의 서재를 보는 것은 호기심 가득한 일이 된다. 어찌 되었든 그 사람에 대해 한 걸음 다가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시절 지식인들의 서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엿보고 싶었다. 특히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그 분들의 서재가 궁금했다. 2015년을 맞이하여 정말 아끼는 책을 모아 내 서재를 채우고 당당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싶은 생각을 하던 차였기에, 이렇게 조선 지식인의 서재에 관한 책이 나왔다니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머릿말부터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이 책의 저자 박철상의 서재 이름은 '수경실'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의미를 알기 힘들다. '수경'이라는 한자가 낯선데, '긴 두레박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출처와 함께 그 의미를 들으니 그 이름이 탐난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려면 두레박줄이 길어야 하듯이 옛사람의 학문을 탐구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항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해야함을 경계한 말이다.' 역시나 서재 이름을 탐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고, 다른 선생님들께 서재 이름을 지어준 일화를 보니, 서재는 단순히 책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전체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재의 이름은 조선 문화를 탐색하는 하나의 실마리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8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2년 반 동안 『국회도서관보』'서재이야기' 코너에 매월 연재했던 것이다. '서재이야기'는 본래 조선시대 지식인의 서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실으려고 기획되었지만, 서재 자체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은 탓에 서재의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형식으로 바꿨다. (10쪽_머리말 中)

 

이 책에 실린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는 다음과 같다.

정조의 홍재, 홍대용의 담헌, 박지원의 연암산방, 유금의 기하실, 이덕무의 팔분당, 유득공의 사서로, 박제가의 정유각, 조수삼의 이이엄, 남공철의 이아당, 정약용의 여유당, 김한태의 자이열재, 서형수의 필유당과 서유구의 자연경실, 심상규의 가성각, 신위의 소재, 이정리의 실사구시재, 김정희의 보담재와 완당, 초의의 일로향실, 황상의 일속산방, 조희룡의 백이연전전려, 이조묵의 보소재, 윤정현의 삼연재, 이상적의 해린서옥, 조면호의 자지자부지서옥, 전기소와 유재소의 이초당.

 

 

 

먼저 궁금했던 담헌 홍대용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 소장 그림인 <연행도 유리창>그림을 보며 그 시절의 분위기를 가늠해본다. '유리창은 조선 사신들이 서책과 서화를 사기 위해 꼭 들르던 명소였고, 이곳에서 청나라 문사들과 많은 교유가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곳에서의 일화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담헌이라는 호를 가진 홍대용의 서재 이름도 역시 담헌. 지금 우리 시대 지식인의 진정성이 바로 다음 세대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에서는 연암산방이라는 장소가 그의 문학의 산실이며, 일생을 지배한 마음의 고향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곳엔 연암의 해학과 유머가 가득했고, 이는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는 설명에 동의하게 된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힘들고 어려울수록 웃음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서가가 다소 딱딱하고 경건하게 흘러가지만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 책에서는 잘 모르던 조선 지식인들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 중 황상의 일속산방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일속산방'은 '좁쌀만한 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어나갈수록 좁쌀 하나가 단순히 좁쌀 하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처가 말한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는다"는 의미와 걸맞는 세계를 보게 된다. 황상은 일찍부터 은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다산에게 그 방법을 묻기도 했는데, 다산이 알려준 방법이 아주 자세하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다산이 생각한 은거는 단순히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나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247쪽)

 

소치 허련이 황상에게 그려준 일속산방의 모습

 

이 책을 읽고나니 역시 지식인의 삶에서 서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그의 인품과 그 모든 것이 드러나는 공간이고, 그들의 삶과 연관지어 이렇게 흥미로운 책 한 권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재라는 소재로 조선 지식인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의미 있다. 그들의 서재를 보고 나서 내 주변을 바라보게 된 다. '나중에 정리해야지.'라며 미루기만 하던 나의 서재에 눈이 간다. 서재의 이름은 뭐라고 할까, 어떤 책으로 채워나갈까, 고민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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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만한 공부는 없다
권오진 지음, 권규리 그림 / 예담Friend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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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사람들은 놀이에 인색하다. 논다고 하면 할 일을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무언가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잘 노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한술 더 떠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놀이에서 배운다."

아이를 놀이로 키우고자 결심하고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좋은 엄마, 좋은 아빠의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바로 하루에 1가지 놀이를 실천하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아이들에게 놀이만 한 공부는 없다. (프롤로그 中 2014년 12월 아빠학교 교장 권오진)

 



아이가 노는 꼴을 보기 싫어 이리저리 스케줄을 만들어 밖으로 돌린다는 엄마도 있다. 경쟁사회에서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한 심리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놀이만한 공부는 없다고! 이 책을 통해 놀이의 중요성과 놀이 방법의 무궁무진함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권오진. 아빠학교 교장이자 놀이 교육 전문가로 인성발달연구소와 행복가정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운 아빠로서 직접 개발한 5천여 가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기 재능을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이 책은 그동안의 노하우를 집약한 열 번째 저서이다.

 

아이와 놀아주기로 일단 결심하더라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할 것이다. 특히 아빠들이 그럴 것이다. 나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열심히 놀아준다고 놀아줬는데,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 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 책에서는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3가지 놀이 철칙을 명심하라고 일러준다.

아이의 마음을 기다리는 부모가 되라.

한 발 뒤에서 함께하라(앞서가지 말라)

함께 놀이를 즐겨라!

 

 

 

이 책에서는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에 대해 언급한다. 놀이를 가장한 학습, 목적을 위한 놀이, 즐거움이 없는 놀이는 모두 가짜 놀이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놀이 프로그램 역시 진짜 놀이와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문제는 많은 부모가 가짜 놀이를 놀이로 생각한다는 점. 놀이는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놀이를 통해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아이의 평소 행동을 훈계하겠다는 마음은 부디 접기를 당부한다. 아이에게는 느낌이 있다. 아이 스스로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즐겁게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놀이의 효과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정말 놀라게 되는 것은 이렇게 아이와 놀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었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은 핑계일 뿐이다. 여기에 소개된 놀이들은 돈들지 않는 것들이며, 시간이 없다면 아주 짧은 시간을 하거나 그 마저도 여력이 없다면 아이가 잠들었을 때에도 가능하다. 아이와 놀아주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부모에게 이 책이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챕터 4에서는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는 상황별 놀이 훈육 Q&A'를 들려준다.

 

 

아이의 속마음을 읽으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의 폭을 넓혀본다. 아이와의 놀이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 희생 봉사했다는 생각으로 부모는 놀고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놀아서는 안된다. 아이도 즐겁고, 함께 시간을 보낸 부모도 즐거워서 온가족이 행복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아빠가 놀이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법을 일러준다. 놀이 재미의 8할은 아빠의 연기력이라는 점!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놀이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노느냐에 달려있다. 이 세 가지만 알면 놀이의 재미가 쑥쑥 올라갈 것이다.

우렁찬 목소리

할리우드 액션

적시 적소 추임새

대단한 놀이만이 놀이가 아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야만 제대로 놀았다고 생각면 안된다. 이 책을 보며 사소한 일상에서 건져낼 수 있는 다양한 놀이에 놀이초보 엄마 아빠들이 자신감을 얻으리라 생각된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낸 시간이고, 거기에는 놀이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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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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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으며 천천히 곱씹어보며 읽는 맛을 느꼈다. 포장되지 않은 솔직함이 매력적이었고,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담백한 느낌에 푹 빠졌다. 미사여구 필요없이 핵심을 찌르는 단순함에 꾸미지 않은 숭고함을 느꼈다. 별로 중요치 않다는 느낌에 기억에서 편집되어버린 사소한 것들에 대해 잘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 쓴 책이라면 그의 글을 좀더 읽어보고 싶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도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읽게 된 그의 책이『공항에서 일주일을』이다.

 

공항은 여행지에 도달하기 위해 거치게 되는 통과의례이다. 그동안 그저 어쩔 수 없이 거쳐야하는 곳이기에 어떻게 하면 공항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아쉽다. 모든 여행의 시작과 끝은 공항이고, 공항에서의 느낌을 좀더 구체적으로 기록해놓아도 좋았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보니 공항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을 콕콕 잘도 짚어준다.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당연히 가야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16쪽)'

알랭 드 보통은 2009년 여름, 공항을 소유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런던에서 가장 큰 공항의 두 활주로 사이에 자리잡은 최신 탑승객 허브인 터미널 5에 작가 한 명을 일주일동안 초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출발 대합실의 D 구역과 E 구역 사이에 특별히 배치한 책상에서 탑승객과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게 될 것이라는 점. '혼돈과 불규칙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터미널은 우아함과 논리가 지배하는 훌륭하고 흥미로운 피난처로 보인다.' 그가 묘사한 공항 터미널을 보니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명분은 없다고 보인다. 내가 작가라도 덥썩 물고싶은 작업일테니.

 

공항에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무래도 알랭 드 보통의 문체에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하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어떤 방을 배치받았는지, 룸서비스에 대한 감상은 어떤지, 공항체험의 극히 사소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이야기를 펼치는데, 그 이야기에 흥미로운 마음으로 몰입하게 된다. 작가가 어디 어디를 여행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공항에서 보이는 풍경만을 묘사했을 뿐인데도 그것이 의외로 재미있는 것이다. 특히 룸서비스 메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일본 에도 시대에 하이쿠 형식을 완숙 단계로 끌어올린 마쓰오 바쇼의 이런 시구조차 소피텔의 케이터링 사업부 어딘가에서 일하는 익명의 장인이 지은 시구에 비하면 단조롭고 환기하는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햇볕에 말린 크렌베리를 곁들인 연한 채소,

삶은 배, 고르곤촐라 치즈

진판델 비네그레트 소스로 무친 설탕 절임 호두 (27쪽)

단순히 메뉴판을 집어들고 메뉴를 선택해 수화기를 들어 9번을 넣고 주문을 넣으면 끝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붙들어잡고 글로 옮기는 능력이 작가에게는 있다. 비행기의 여행 일정을 알리는 스크린을 보며 무한하고 직접적인 가능성의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일러주고, 보안구역에서 느낄 법한 것을 길게 풀어낸다. 모든 인간을 항공기 폭파범 후보자로 보는 보안요원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보안구역을 무사히 통과할 때 마치 고해를 한 뒤 교회를 떠나거나 속죄의 날에 유대교 회당을 떠날 때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해방감이었을까? 공항검색대를 통과하고 이제 쇼핑센터만 보이는 곳으로 위치 이동을 하게 될 때 무언가 무게감이 훅 달아나는 것은?

 

이 책은 처음부터 마음을 확 사로잡는 것은 아니었다. 쓰윽 읽겠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건성으로 읽었던 부분을 다시 눌러읽으며 곱씹어보게 된다. 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세상 일은 아무 것도 아닌 듯한 사소한 일에서 역사에 점찍을 만한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평범한 듯한 일상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공항을 지난다는 것은 그저 사소한 일일 수도 있으나, 그곳만을 의미 있게 부각시키면 그것 또한 엄청난 의미가 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된다. 접근, 출발, 게이트 너머, 도착 등 네 파트로 나뉜 글 속에서 공항의 현재를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떠나는 사람들과 도착하는 사람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삶의 소리를 내는 부산한 곳이다. 나또한 공항에 가면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곳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들려주는 공항체험담에 웃고 공감하기도 하고, 씁쓸했다가 미소짓기도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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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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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호기심이 가득해지는 책이었다. 맛집 폭격이라니! 소설 속에서는 맛집에 얽힌 무슨 일이 벌어지는걸까? 궁금했다. 이 소설은 제목에서 어느 정도 이 책에서 펼쳐질 이야기의 소재를 다 알려주는 셈이지만, 설마 그러리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조금은 당황하다가 다시 한 번 작가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어렴풋이 알 듯 말 듯 했다. 『맛집 폭격』은 배명훈 작가가 2년 만에 내놓은 장편 소설이다. 이 책으로 배명훈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어보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처음 읽기에 어떤 필치로 이야기를 펼치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요리는 무엇입니까?"라는 작가의 질문도 보인다. 머릿속에 가득 떠오르는 음식 중에 '가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음식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막상 '가장' 맛있는 요리 '하나'만 선택하려니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 여전히 선택하지 못하겠다. 책 표지 앞에서만 한참을 머뭇거리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이 책의 처음에는 마살라 도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아, 나도 그 음식 좋아하는데......' 민소가 설명하는 마살라 도사를 떠올리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남인도 여행을 하며 그곳에서 맛있었던 음식을 떠올리면 마살라 도사가 가장 먼저 떠오르면서도 민소처럼 맛깔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페이지에 걸쳐 마살라 도사 이야기에 침을 꼴깍 넘기며 바라보다보면, 곧바로 폭격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집이 저기야. 종로 321-2. 어젯밤 미사일 공격으로 잔해만 남고 이 빠지듯 가운데만 무너져버린 저 3층 건물 2층에 그 식당이 있었어. 다행히 인명 손실은 없다는데, 그래도 당분간 그 집 마살라 도사를 맛보기는 어려울 거야." (14쪽)

 

소설은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있을 법하긴 하지만, 그러기엔 어마어마한 사건이 펼쳐진다. 어이없게만 느껴지는 맛집 폭격 사건에 처음에는 뜬금없었다. 맛집에 얽힌 맛있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펼쳐들었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읽다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소설가의 상상력은 일반 독자와는 달라야겠구나, 생각했다. 예측할 수 없이 펼쳐지는 이야기가 원하던 내용의 뻔한 글보다는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느낌은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느끼게 되었다. 이 소설은 이상하게도 한 박자 늦게 반응이 온다. 처음에는 마살라 도사에 대한 설명에서 입맛 다시다가, '이게 뭐지?'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한참을 지나고 보니 뒤늦게 '헉!'하는 반응이 온다. 낮에 들은 유머를, 낮에는 하나도 웃기지 않다고 했던 유머를,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 떠올리고는 킬킬거리고 웃는 듯한 느낌이다.

 

두 번째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그저 맛집에 대한 민소의 이야기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음식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확실히 군침이 돌았으니까. 마살라 도사, 오렌지 샐러드, 짬뽕......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 기억처럼 민소는 짬뽕을 먹다가 문득 기억을 더올린다. "맞아. 전부 원래 내가 좋아해서 간 식당이 아니라 그 사람이 좋아했던 식당 중에서 다행히 내 입에도 맞았던 식당들이야. 지금은 그런거 다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내가 좋아해서 간 식당인 것처럼 기억하고 있지만. 그러니까 몇 안 되지.' (80쪽)

두 번째 읽을 때에도 내가 보려고 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보였다. 맛집에 관한 것만 더 읽겠다고 집어들었는데, '헉, 이게 이런 뜻일 수도 있겠구나!' 깨닫게 된다. 내가 예측한 부분 이외의 것을 보게 되는 책이어서 신선한 자극이 된다. 가볍게 읽으면 한없지 가벼운 소설이다. 하지만 가벼운 것 같지만, 가볍지만은 않고, 그 무게는 이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달렸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은근히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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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詩 -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엮음 / 마음의숲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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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을 맞이하여 시를 좀더 다양하게 읽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다양한 테마로 여러 시인의 시를 묶어낸 책이 출간되고 있다. 테마로 읽는 시는 눈에 쏙 들어오고 골라읽는 재미가 있다. 한국대표시인 49인이 쓴 '엄마'에 관한 시 『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와 박광수가 건네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시 100편을 모은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에 이어 정끝별이 엮고 해설한 돈에 관한 시 『돈 詩』를 읽어보게 되었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가난으로도 살 수 없다."라는 레오 로스텐의 말이 있다.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다고 더더욱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돈에 대해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 어쨌든 우리 시대에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돈이 있어야 따뜻한 밥에 반찬이라도 더 먹을 수 있고, 이렇게 컴퓨터에 서평을 남기려면 전기요금과 인터넷 비용이 든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필요한 세상이다. 돈은 우리 삶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이 책을 엮고 해설한 사람은 정끝별.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드물게 돈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시이고 드물게 돈으로 안되는 것 중 하나가 시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돈에 관한 시를 보면 통쾌했다. 그렇게 눈여겨보기 시작한 시편들이 모이면서 '돈-詩'라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이 책에 실린 시를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돈에 대해 쓴다는 것 역시 삶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시인'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언가 가난한 이미지이다. 돈이 생기면 기분 나는대로 술 마시고, 계산 속이 하나 없어서 이리저리 뜯기는 그런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속이 답답하기도 하다가 통쾌하게 웃기도 하며 책장을 넘긴다. 엮은이의 해설도 맛깔스럽게 담겨서 읽는 맛을 더한다. 돈을 테마로 한 시에서 우리네 인생을 들여다본다. 사는 것이 다 돈이 필요한 것이니 그런가보다.

 

이 책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돈에 관한 시가 담겨있다. 이 책에 담긴 시는 각각 그 맛이 다른데, 중간중간 깔깔깔 웃으며 큰 소리로 읽어주게 되는 시가 있다는 점이 좋았다. 시를 경건하게만 접했던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느낌이다. 아름다움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 안에서 씁쓸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묘미가 있다.

 


 

 

권혁웅 시인의 〈김밥천국에서〉는 한 끼 때우는 목적으로 김밥 한 줄 먹었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김밥천국에서 김밥들이 가는 천국에 대해 논하는 것을 왜 생각지도 못했던 것일까? 일상 속 반전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다. 김밥을 먹는다는 것이 멍석말이를 해서 토막내는 일이며, 이들의 순교를 생각하니 한동안 김밥 먹기가 싫어질 것 같다. 하긴 요즘에 김밥을 먹지 않은지 한참 되었으니 그다지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에 담긴 시는 이렇게 한참을 웃다가도 무언가 씁쓸한 뒤끝이 남는 시가 많다. 아무래도 돈에 얽힌 시라서 그런가보다.

 

김영승 시인의 <이방인>도 기억에 남는 시이다. 버스비 900원이 버스 타서 죄송하다고 백배사죄하며 내는 돈이라니! 살아가는 것이 이리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인가? 여운으로 길게 남는 시였다.

 

정끝별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살다(生)'에서 온 '산다'와 '사다(買)'에서 온 '산다'는 발음이 같다. 우리는 사면서 사는 존재들이고, 한발 나아가면 인생이 돈이기도 하다.

(책을 펴내며_4쪽)

모 광고에 보면 '그녀는 오늘도 잘 삽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또한 '산다'는 것이 인생을 사는 것과 물건을 사는 것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소비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기에 이 책에 담긴 시에서 공감과 씁쓸함을 함께 느끼게 되나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돈에 관해서는 여전히 밝히기 싫은 것, 아직까지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돈에 관한 시를 찾아서 묶어낼 여력이 없지만, 이렇게 이 책을 통해 한 권으로 다양한 시인들의 시를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되어 의미 있었다. 이 책으로 돈과 관련된 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시인들이 돈에 관해 어떻게 다루었는지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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