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이근후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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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의 저자 이근후가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편지를 띄운다. 이근후는 우리나라 정신의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력도 있다. 『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를 읽으며 살아가는 모습, 가족들과의 관계, 사소한 일상 속 생각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기에, 이 책도 궁금한 마음에 읽어보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면 활짝 웃고 있는 저자의 모습과 함께 이런 글이 있다.
"거울 속의 노인을 보고 흠칫 놀랐다. '이게 나라고?' 내 딴엔 거울 속 저 노인보다 젊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털웃음을 짓자 거울 속 노인도 따라 웃는다. 거울 속의 당신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갔다. 그런데 나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젊어 보인다. 그래, 지금의 나를 외면하지 않으면,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먼저 이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우리네 인생을 사계절로 나누어 봄,여름,가을,겨울에 해당하는 시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네팔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생을 100세로 설정하고 이를 4등분하여 인생설계를 했는데, 이 책에서 그 방식을 차용한 셈이다. 삶의 첫 계절 봄은 25세까지로,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 배우고 사회에서 학습하는 시기인데, 이들에게 띄우는 편지가 1부 '세상과 나를 알아가는 그대에게'에 담겨있다. 두 번째 계절인 여름은 50세까지로, 익힌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는 시기인데, 2부 '역할을 감내하며 오늘을 사는 그대에게'에 그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담았다. 75세까지는 되돌아보는 시기인 가을, 3부 '다시 온전한 나를 찾고자 하는 그대에게'에 저자 또한 그 시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편지를 적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사계절이 끝나가는 시기 겨울, 힌두교에서는 76세 이후의 삶을 자유의 시기라고 한다. 4부 '행복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그대에게'에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해당되는 시기에 대한 이야기에만 공감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온 계절인 봄, 현재에 해당되는 여름, 앞으로 다가올 가을, 겨울에 대한 이야기 모두 무엇인가 메시지를 던져주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전 책에서도 느꼈지만,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내 마음과 일치되는 부분이 많다. 현재의 나와 내 주변을 생각하며 점검하기에 좋은 글이다.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 부드럽게 읽어나가다가 문득 어느 한 구절에서 눈길이 멈춘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우리는, 매순간 영원 속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한정된 현재를 영원 속에 새기는 것이 인생이니,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요? (27쪽)

한정된 현재를 영원 속에 새기는 것이 인생이라는 언급에 인생을 깊게 생각해본다.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을까? 왜 지나고 나서야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는 정도로 '현재'에 인색했던 것일까? 현재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다.

 

이 책도 역시 소제목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 많다. 소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용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당신이 사는 세상입니다.' 라는 소제목에서 주는 메시지는 사람들의 관계를 되짚어보게 된다.

'좋은 세상에서 사는지, 나쁜 세상에서 사는지, 그것은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상대방의 세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2쪽)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나의 세상이 바뀌고, 나 또한 그들의 세상에 속하게 됨을 깨닫는다.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이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이야기도 볼 수 있는데, 일반 대중에게 쉽게 전달해주기에 마음에 들었다. 특히 '환자는 가족을 대표해서 앓는다.'는 말이 마음 속에 맴돈다. 대부분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내세우기 때문에 이 말이 더욱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의학 교과서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환자는 가족을 대표해서 앓는다.' 정신과 환자 중 꽤 많은 수가 가정환경과 가족 간 관계에서 병을 얻습니다. 표현이 극단적이지만 가해자는 가족 안에 있습니다. 결국 가정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 마음의 병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환자를 데려온 가족은 자신은 정상이며 환자가 비정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의사는 보호자인 가족 또한 관찰해야 합니다. (157쪽)

 

 

 

 

이 책에서는 캘리그라피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의 대표 작가인 박병철의 작품은 초중교과서 및 각종 제품의 브랜드, 광고, 달력, 출판물에서 볼 수 있다. 캘리그라피 작품이 글 사이사이에 있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상승시켜준다. 바라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천천히 멈춰서서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품이다. 작품 감상을 함께 할 수 있기에 전체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기 수월했고,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근후 박사가 전하는 행복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엿보고 싶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을 점검해보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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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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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라는 단어를 보면 먼저 드는 생각은 '어려운 것'이다. 알고 싶지만 알기 힘들고,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인지 난해해서 변죽만 울리게 된다. 그저 '그래도 계속 접하다보면 어느 정도는 알게 되겠지.' 막연한 생각 뿐이었다. 이 책은 이런 나에게 어렵지 않게 다가온 책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때?' 편안하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조금은 경직된 마음으로 불황의 경제학을 어떻게 바라보면 될지 도전적인 자세로 접근한 나에게 '경제도 우리 삶에서 나오는거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일러준다. 이토록 눈에 쏙 들어오는 경제학이라니! 이 책을 통해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먼저 이 책의 맨 앞에 있는 '폴 크루그먼과 이 책에 대한 세계 언론의 서평'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불황의 경제학』은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지난 20여 년 간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금융과 경제 붕괴의 비극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_로이터

▶크루그먼의 솜씨는 대단하다. 복잡한 경제 문제들의 숲과 나무를 함께 보고, 이를 알기 쉽게 해설한다. 어이없을 만큼 간단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독자들은 종종 다음과 같이 자문하게 된다. 왜 나는 이런 생각을 진작 못했던 거지?_보스턴글로브

▶지금까지 경제학의 핵심 명제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공짜 점심은 있다고, 다만 이것을 어떻게 가져오는지 알면 된다고 말한다._가디언

가끔은 책의 추천사를 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읽어보면 앞에 나열한 세계 언론의 서평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프린스턴 대학교의 경제학 및 국제관계학 교수이다. 혹시 교수의 글이 난해하고 읽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면, 이 책은 그런 선입견도 깨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나에게도 그랬으니까.

 

 

저자는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무미건조한 경제학 전문서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딱딱한 방정식이나 어려운 도표, 알쏭달쏭한 전문용어 등은 가급적 피했다. 나 역시 명망 높은 경제학자로서 아무나 읽지 못하는 어려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 또한(나 자신의 것을 포함해서) 그 읽기 어려운 글들이 이 책의 이론적 바탕이 되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행동이다. 이런 종류의 행동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려면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개진되어야 한다." (들어가는 말 中 12쪽)

 

보스턴글로브의 추천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복잡한 경제 문제들의 숲과 나무를 함께 보고, 이를 알기 쉽게 해설한다.' 경제학 서적이지만 '경제는 정치적 배경을 벗어날 수 없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포괄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기에, 전체적인 것을 아우르면서도 세세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언급한다. 세계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아시아 각국의 문제까지, 이 책을 읽으며 하나 하나 짚어보게 된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읽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그 책을 통해 세계를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시켜 살펴본 세상은 좀더 이해하기 쉬웠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는 '베이비시팅 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된다. 이 이야기는 조안(Joan Sweeney)과 리처드 스위니(Richard Sweeney) 부부가 1978년 「통화이론과 그레이트 캐피톨힐 베이비시팅 협동조합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기사의 내용이다. 그 이야기를 적재적소에 끌어들여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었다. 언뜻 보면 그 일화로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잘 들어맞는 표현에 감탄하게 된다. 거창하게 생각하면 어렵기만 한 세계 경제를 베이비시팅 협동조합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주니 이해의 속도가 빨랐다.

 

 

문제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되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아니라고 했던가? 얼핏보면 먹고 사는데에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올까 생각되지만, 불황, 공황, 그런 단어들에 마음이 움츠러드는 느낌이 든다. 다행히도 저자는 공황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세계 경제는 공황에 빠지지 않았다. 현재의 위기 규모가 크긴 하지만 세계 경제는 십중팔구(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공황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공황 자체는 재현되지 않겠지만 (1930년대 이후로 잊고 있던) 불황 경제학이 놀라운 컴백을 했다." 이 책에서는 세계경제상황을 짚어준 이후, 불황 경제학에 대해 말하며, 비상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이야기해준다. 물론 개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이 책의 흐름대로 전체의 큰 틀에서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큰 그림을 보며, 어떤 방식으로 가면 좋을지 방향을 짐작해본다.

 

'경제학'이라는 것을 이렇게 대중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다. 경제에 문외한이라고 생각되거나, 경제를 낯설고 어렵게만 느끼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렵게만 생각하지말고 이렇게 생각해보자. 의외로 간단하다'고 일러준다. 눈에 쏙쏙 들어온다. 편안하게 읽으며 불황의 경제학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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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8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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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해부 - 위대한 석학 22인이 말하는 심리, 의사결정, 문제해결, 예측의 신과학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3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강주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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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내가 모르고 있는 조직이 정말 많다. 엣지 재단에 대한 것은 이 책의 시리즈가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정말 부러운 조직이고, 이렇게 책을 통해 그들의 지식을 엿보는 시간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때로는 이렇게 책 한 권에서 집약된 지식의 정수를 맛보게 된다. 먼저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에는 통섭의 불꽃이 튄다."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 한 줄의 설명이 이 책을 잘 드러나게 해주는 명료한 문장임을 깨닫게 된다.

엣지 재단 (Edge Foundatiion Inc.)

"지식의 최전선에 닿는 방법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세련된 정교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은 다음, 스스로에게 묻곤 했던 질문들을 서로 주고받게 하는 것이다. 그 방이 바로 엣지다."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석학들이 한데 모여 자유롭게 학문적 성과와 견해를 나누고 지적 탐색을 벌이는 비공식 모임인 엣지는 1996년 존 브록만에 의해 출범했다. 현대 과학이 이룬 지식의 첨단에 다가서기 위해, 과학과 인문의 단절로 상징되는 '두 문화'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지식과 사고방식, 즉 '제3의 문화'를 추구한다.

 

 

 

먼저 '베스트 오브 엣지(Best of Edge)'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컬처 쇼크』를 통해 문화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살짝 두꺼운 느낌의 책인데, 다양한 시각으로 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서 의미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이기에 글 읽는 호흡이 아주 길지 않아서 틈틈이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이번에는 『생각의 해부』를 통해 위대한 석학 22인이 말하는 심리, 의사결정, 문제해결, 예측의 신과학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 책 역시 두꺼운 책이어서 무게감을 느끼게 되는데, 다양한 분야의 대표 석학 22인이 '생각'에 관한 자신들의 연구와 학계의 동향을 직접 설명해주는 것을 엮은 것이기에 막상 책장을 펼쳐보면 다양한 시각과 주제의 글이어서 '이런 것이 있었구나!' 새롭게 알아가게 된다.

 

 

 

특히 시몬 슈날의 '청결감과 판단'에 대한 글은 그동안의 생각과 판단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껏 "직감적으로 이게 맞는 것 같아"라는 식의 느낌 등 우발적 요인들이 합리적인 생각보다 훨씬 힘이 클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는데, 이 책을 보며 그 영향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순간의 느낌에 따라 어떤 행위의 잘잘못에 대한 결정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우리는 자신의 결정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이 도덕적이고 무엇이 비도덕적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실제로 이처럼 우연적인 것들에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감정이 도덕성 판단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의견은 이제야 기초적인 연구를 하고 있을 뿐이라지만, 감정이 결정과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로 흥미로웠다.

 

 

필립 테틀락의 '예측에서 승리하는 법'도 인상적이었다. 필립 테틀락은 2005년에 발표한 『전문가의 정치적 판단』에서, 장기적으로 정확한 정치적 예측은 근사치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테틀락의 작업은 사회과학 분야의 획기적인 결과물로, 정치학과 심리학 두 학문 분야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183쪽) 전문가와 경영자는 자신의 판단에 대해 신비감을 유지하지 못하면 신분을 유지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 이 책에서 보게 되는 그들의 민낯에 이해가 되기도 하고, 살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흥미로운 영역임에 분명하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삶은 되돌아볼 때에야 이해되지만, 앞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라는 키르케고르의 명언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부분이다.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의 책을 두 번째로 읽고 나니, 이 시리즈의 다른 책도 꼭 읽어보고, 앞으로 출간되는 책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된다. 이 책 『생각의 해부』는 현재의 다양한 연구를 지루하지 않게 엮어낸 책이기에, 이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많다. 지적으로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핵심을 뽑아낸 구성에 읽는 기분도 색다르다. 두껍지만 한 명의 저자가 길게 풀어나가는 글이 아니기에 두껍지만은 않은 느낌을 받은 책이다. 세상의 새로운 면을 보는 느낌이다. '생각'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짚어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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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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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했던 때에 관람하러 간 적이 한 번 있다.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에 가보았다. 진경시대 그림을 보기 위해서 그날 하루 즐기기로 했다. 점심 시간에 줄 서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 밥 먹으러 간 사이라 일찍 들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여기부터 전시장까지 2시간 걸립니다'라는 표지를 보고 '설마 그렇게까지 걸릴까?' 생각했는데, 그 이상을 기다리게 되었다.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데 몇 시간을 기다리며 기나긴 길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리는 상황, 지루한 시간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왜 간송미술관의 전시회에 오는 것일까? 어쩌면 봄과 가을에 보름동안 잠깐 문을 열기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것이고, 전시장 내의 인원을 제한하면서 기다리게 하기 때문에 악으로 깡으로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정작 전시장에 들어가니 에너지가 고갈되고 말았다. 막상 간절히 기다리던 그림 앞에 서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기다렸나 허무해지기까지 했다. 전시장 안에도 역시 인원을 제한하긴 하지만 사람들에 치이고, 작품 하나 하나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치이고 밀려가다보니 그저 '그림이구나!' 생각할 밖에.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감상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산산히 부서졌다. 하긴 나도 밖에서 2시간 이상 기다렸으니, 지금껏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얼른 보고 나가야겠지? 결국 전시장에서 나와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나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이 책 『간송미술 36』은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읽어보게 되었다. 가장 앞에 나오는 '편집자와의 대담'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2008년도 가을 간송미술관에 관람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온 적이 있었는데, 전례가 없던 엄청난 인파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과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혜원 신윤복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시에는 겸재, 추사, 단원 등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서화가들의 작품이 다 나와 있었는데, 오로지 혜원, 그것도 <미인도> 하나만 찾는 대중 모습에 화가 나셨다고.

 

사실 나도 그런 대중 중의 하나이기에 대중의 심리 또한 이해가 된다. 아는 것은 별로 없고, 어쩌다 이슈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어 휩쓸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드라마가 나왔을 때 남장여자라는 설정에 처음에는 기가막혔지만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되었다. 이렇게 대중 문화는 그 영향력이 커서 왜곡되면 위험한 것이겠구나, 생각했기에 이 책이 반갑다. '대중과 더불어 즐기고 공감을 받는 것'을 생각하고, 기왕이면 왜곡되지 않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쉽고 올바른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의 말에, 지금이라도 관련 지식인으로서 대중과의 소통을 꿈꾸고 이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대중을 위한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진 책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예술가들의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때로는 작가의 시선으로, 때로는 그 당시에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으로, 세세하게 작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책에 실린 그림의 화질이 뛰어나고, 관련 지식에 대한 설명이 술술 풀어져나가기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아는 것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될 수가 있어요. 게다가 자기가 알아낸 것도 아니고 남이 알려 준 거잖아요. 그때는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금방 쉽게 잊어버립니다. 한계가 명백합니다. 산수화는 그저 멋진 경치를 보듯, 인물화는 사람을 대하듯, 화조화는 주변의 꽃을 보듯 그렇게 시작하면 됩니다. 어떤 꽃을 감상하는 데 심오하고 정확한 생물학적인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그림과 소통하다 보면, 그걸 누가 그렸는지, 왜 그렸는지, 어떤 시대였는지 등등 궁금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되고, 공부가 깊어지면서 아는 게 더 많이 보이고. 이런 게 더 선순환적인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이 책은 이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더 알고 싶다,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8쪽)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이 책을 읽은 시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전혀 관심없던 그림에 조금씩 눈길이 가고 관심이 생기고, 현대 미술관에도 가고 옛그림에도 눈이 뜨이면서 조금씩 호감을 갖고 있었다. 옛그림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었으나 기억에 희미해질 즈음, 이 책이 그림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붙여준다.

 

그림 하나 하나를 읽어나가는 시간이 유익하다. 간송미술관에 직접 갔을 때에는 그저 그림을 봤다는 기억만을 안고 왔는데, 지금은 방 안에서 찬찬히 시대를 아우르며 그 당시의 분위기와 이들의 마음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그렸는지, 그들이 담고자 하는 세계는 무엇이었는지, 그 그림에 담긴 속뜻은 무엇인지 하나 하나 알아가게 된다. 이 책으로 신사임당을 시작으로 이정, 이징, 조속, 김명국, 윤두서, 정선, 변상벽, 유덕장, 조영석, 심사정, 강세황,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김정희 등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에 대해서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는 인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사실《혜원전신첩》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일본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인 세키노 다다시가 『조선미술사』에서 <주유청강>과 <상춘야흥>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당시 《혜원전신첩》은 우리 땅을 빠져나가 도미타 기사쿠라는 일본인 수장가가 소장하고 있었다. 후일 간송 선생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되찾아오긴 했지만, 혜원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었던 셈이다. (258쪽)

일본인이 혜원의 그림을 가져갔지만, 후일 간송선생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되찾아왔기에 현대의 안목으로 우리가 직접 그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인정을 못받았던 그림이지만, 간송선생의 노고에 지금은 후손인 우리가 그 예술성을 다시 재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가 짚어줘야 그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일반 대중이기에, 지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림을 폭넓게 바라보는 안목을 제공받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 초대받는 느낌이 들었다.『간송미술 36』을 통해 36폭의 회화 작품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과거 시대상을 가늠해본다. 깊이 있는 감상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이 책이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서 편안하게 옛그림을 바라보며 옛 그림 36폭에 얽힌 속깊은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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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찬장 구경 - 달그락 달그락 젊은 마님들의 그릇 이야기
장민.주윤경 지음 / 앨리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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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보면 앞치마를 하고 호박이랑 두부를 썰어넣어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음식을 하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사람 모두 행복해보인다. 보고있는 사람에게도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요리를 하고 달그락 달그락 그릇을 꺼내며 식사 준비하는 시간은 일상의 평범한 행복이다. 먹음직스럽게 담긴 음식이 가족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행복하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드라마와 현실은 조금 다른가보다. 찬장에 정리되지 않은 그릇이 달그락 달그락, 늘 사용하는 그릇만 사용하게 되고 나머지는 보관용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하루 세 번 식사 시간은 왜이리 금세 돌아오는지, 음식을 그릇에 담으면 설거지 할 일이 많아져서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에 푸념이다. 애착을 가지게 되는 그릇이 별로 없어서일까? 그릇이 예쁘면 부엌에 발길이 더 잦게 되고, 그러면 요리에도 취미가 붙어 자연스레 깔끔한 부엌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닌가 역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단지 남의 집 찬장이 궁금해서 이 책 『남의 집 찬장 구경』을 읽어보게 되었다. 다른 집에서는 찬장을 어떻게 정리해놓았을까, 우리 집 찬장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한 책이다. 그런 나의 의도에는 조금 빗겨나간 책이었다. 찬장 정리가 아닌, 찬장 구경을 위한 책이니 말이다. 이 책을 보니 젊은 마나님들의 개성 넘치는 찬장이 눈을 즐겁게 한다. 세상에나, 이렇게 탐스러운 그릇이 가득하다니! 그릇의 브랜드조차 생소한 나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에 들어온 듯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이 책에서는 열 명의 부엌을 보여준다. 제각각 자신만의 그릇 취향이 있고, 그 사람의 분위기에 잘 맞는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릇을 보며 그 사람의 그릇에 대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여자들이 그릇을 들이는 이유에 대한 글이 마음에 들어온다.

여자들이 그릇을 들이는 이유도 어찌 보면 비슷하다. 명품백처럼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고, 비싼 커피처럼 마시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자신을 위한 위로, 다독임 혹은 약간의 호사로 예쁜 그릇을 찾는 것이다. 또 가족들을 위해서는 안전한 식기, 효율적인 도구, 향미를 풍부하게 해주는 겹겹의 냄비를 산다. (25쪽)

 

또한 이 책에 소개된 '시인 안도현의 「무밥」'은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시각과 청각을 되살리는 글귀라는 생각이 든다.

 

들척지근하고 삼삼한

이 한 저녁을

나는 달그락달그락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_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2008)

 

 

요리하는 남자의 화사한 그릇도 눈에 띈다. 의류업체 운영 중인데 본업보다 취미인 요리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컬러풀한 스톤웨어가 가득한 찬장이 인상적이다. 깎은 감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는 백자, 직접 빚은 백자 주전자, 눈에 쏙쏙 들어온다. 개성 넘치는 그들의 찬장에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깔끔한 백자가 마음에 들다가도, 가끔은 컬러풀하게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고, 그렇다고 이 많은 그릇을 다 가질 수는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그저 이들의 찬장을 구경하는 것으로만 위안을 받아야겠다. 눈이 즐거운 시간이다.

 

 

맨 마지막에 그릇이 아닌 것까지 사용의 폭을 넓히는 셰프의 예술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그릇만이 그릇이라고 생각했는데,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그릇은 아니지만 그릇으로 사용되는 것이 흥미롭다. "다만 본래 그릇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에는 샐러드나 케이크 등 열이 없는 음식을 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좋다. 식기가 아니라면 뜨거운 음식을 담았을 때 유해한 성분이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라는 조언은 잊지 말아야겠다.

 

이 책의 중간 중간에는 Tip이 나온다. 마트에서 그릇 잘 고르는 법, 그릇 쇼핑, 어디로 갈까?, 도자기 공방 나들이, 레스토랑용 그릇 사는 법 등 유용한 정보도 곳곳에 있으니 그릇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것이다. 다음 번에 마트에 가면 그릇에 관심을 갖고 바라봐야겠다. 이 책을 통해 남의 집 찬장 구경을 톡톡히 했다. 그릇의 세계는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부엌 살림을 엿보는 시간이 되었다. 음식이 담긴 그릇 사진을 보며 행복한 부엌을 떠올리고, 예쁜 그릇을 보며 하나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달그락 달그락 행복한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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