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의 큰 지식은 참 나를 찾으라네

찾아서 찾아지는 참 나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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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카슈미르 소녀

가디아 

 

이 소녀는 아직 8살밖에 안됐지만 직업이 있습니다.

폐유 수집.

자동차 작업장에서 버린 폐유를 한데 모아 옮깁니다.

그것을 팔아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대, 삶이 아프고 고단하다고 생각합니까?

혹, 그 괴로움 호강에 겨운 엄살 아닙니까?


가디아의 이 처절한 손앞에 부끄럽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한 생각 돌이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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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의 큰 지식이 묻는다.

"네가 참 나를 찾았느냐?"

평범한 중생이 대답한다.

"산은 본디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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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의 큰 지식이

참 나를 찾으라니

땡초는 나를 보고

중생은 남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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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13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생은 남을 본다.-
오늘도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
사진도 어쩜 이렇게 좋은지요...

bari_che 2013-05-14 10:28   좋아요 0 | URL
참 나를 찾는답시고
나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다가
건지는 깨달음은 필경 가짜일 겁니다.
이웃 생명이 도량이지요.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열반이고요.^^

저 동물들의 아름다운 공존이
인간을 부끄럽게 합니다.

프레이야 2013-05-1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는 남에게 있다. 깊이 새겨볼 말씀입니다. ^^

bari_che 2013-05-14 10:2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죠? ㅎ

사실 철저히 밀어 붙이면
참 나는 없을 것입니다.
나와 남의 경계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일대사건이
열반일 테니 말입니다.

통속한 기독교가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듯
통속한 불교가 붓다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못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ㅠㅠ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문제가 있다. 붓다 原音이 아니다. 후대인이 만든 모자란 교설이다.

 

삼독에서 嗔이 모자라다. 분노는 무서움에 대한 반응 감정이다. 궁극은 무서움, 즉 恐이다.

 

삼학에서 戒가 모자라다. 貪을 물리치려면 戒 지킴을 넘어서야만 한다. 함께함, 즉 共이다.

 

삼법인에서 苦가 모자라다. 괴로움은 아픔에 대한 선택 반응이다. 근본은 아픔, 즉 痛이다.

 

三學으로 三毒을 물리쳐 三法印 깨치면 涅槃이다. 열반은 모자라다. 自利利他의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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