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를 보고 그냥 지나가면 아이고, 주워 휴지통에 버리고 가면 어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온통 아이 천지인 셈이다. 내 세금으로 월급 주는 환경미화원이 있는데 왜 내가? 라고 묻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반론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이는 논점을 벗어난 헛똑똑이임이 틀림없다.

 

지지난 일요일인가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던 짝지가 하하 웃는다. 밥집에서 둘렀던 앞치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심코 그 위에 외투를 입는 바람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번 주말에는 앞치마 돌려주려 그 집 가야겠다며 다시 웃는다. 그러자 하고 앞치마를 챙겨 개키는데 크게 뜯어진 솔기가 눈에 들어온다.

 

생각을 되작인다. 일부러 뜯어서 되돌려준다고 생각이야 하겠나만 이대로 돌려주기에는 민망한 꼴이다. 그렇다고 꿰매서까지 돌려주는 일은 지나친 오지랖 아닐까. 이대로 돌려줄 때 음식점에서 바느질해 쓸 가능성은 없다. 이렇게 뜯어진 줄 뻔히 알면서 다시 손님에게 내밀도록 눈감는 일도 그렇다.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생각을 되잡는다. 구멍 난 양말, 해진 한복 바지저고리를 꿰맬 때 사물과 생명을 향하는 내 공경심에 경계가 있는가? 있다면 어디까진가? 이른바 내 것에서 멈추는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내 버려두지 않고 내 시간을 조금 덜어내 바느질하는 일이 마냥 오지랖만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내 5분가웃 꿰매어 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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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지 만 19년이 지난 2005년에 다시 가서 본 미국은 젊은 시절에 본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우선 인종차별이 심각했다. 기가 막힌 것은 중학생쯤 되는 아이들이 그런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것. 코넬대가 있는 뉴욕주 이타카에서 10개월 정도를 지냈는데 나도 아이들한테 서너 번 그런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기분이 정말 더럽더라. 게다가 9/11 사태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사람들 사이에 애국주의가 팽배한 것도, 예컨대 성조기를 달아놓은 집들이 부쩍 많은 것도 보기 싫었다. 유학 생활을 하던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보낸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에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8년 동안 지내며 인종차별도 단 한 번 당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최근에 미국에서 인종주의가 두드러진 것은 신자유주의의 지배로 사람들의 삶이 열악해진 결과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중반 이후에 도입되지마는 그것이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소련의 해체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가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다. 밀워키에서 머물던 동안 미국 인민대중의 강퍅한 모습을 덜 본 것은 사람들이 아직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제대로 당하기 전이었던 점 때문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 초까지는 사회복지의 유산이 그래도 제법 남아 있어서 인민들 간의 유대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보다 더 강했던 것 같다.

지난 26일에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다. 이른 새벽에 프랜시스 스콧 키 대교가 붕괴한 것이다. 볼티모어 항구 외곽을 가로지르는 2.6km 길이의 대형 교량이 무너진 이유는 컨테이너선 한 척이 교각을 들이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다리는 1977년에 건설한 낡은 것이라지만, 그렇다고 교각이 선박에 들이박혔다고 다리 전체가 무너져 내려앉았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데, 다리의 안전성이 그만큼 취약했다는 말이겠다.

세계에서 최대로 부유하다고 하지만 미국은 사회 기반 시설이 정말 형편없는 나라다. 2005년에 미국에 머무는 동안 절감한 점 하나가 제대로 된 도로가 드물다는 것. 미국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 때는 차가 수시로 덜컹거리는 것을 예삿일로 여길 필요가 있다. 도로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함몰된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덕분에 졸음운전 예방 효과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은 어떻게 살까?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 같은 고속도로를 이용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헬리콥터나 자가용 비행기 타고 다닌다. 하지만 인민대중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은 뉴욕의 악명 높은 지하철처럼 완전 방치다. 2005년 8월 말 태풍 카트리나의 도래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시가 온통 바닷물에 잠겨 엄청난 수의 이재민과 재산상의 피해가 생긴 것도 제방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라며 말이 많았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하기도 했지마는 미국은 국방비로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올해 공식 예산만도 8,860억 달러이고, 퇴역군인수당 및 기타 국방 관련 예산을 합치면 1조 달러가 훨씬 더 넘는다. 모두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 아니 유일한 제국주의적 제국 노릇 하느라고 쓰는 돈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일으키고 살상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지금 진행되는 우크라이나전쟁, 팔레스타인 가자 전쟁도 미국이 미국으로 행세해서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퇴시키기” 위해 나토의 동진을 부추기지 않고, 우크의 친나치 세력을 도와 쿠데타를 사주하지 않고 그들이 돈바스 지역 러시아계 주민을 학살하지 않았더라면 우크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고, 팔레스타인에 서방 제국주의의 중동 침략 교두보로 수립되어 그곳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을 축출하고, 가자 지역을 야외감옥으로 만든 이스랄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지원해 그들이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가자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크 전쟁, 가자 전쟁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 전역에 800개소가 넘는 군사기지를 두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 대부분에 원인을 제공한다.

미국이 해외에서 그렇게 많은 군사적 개입을 한다는 사실과 볼티모어 키 대교가 붕괴한 것 사이에는 적잖은 인과관계가 있다. 키 대교의 붕괴는 컨테이너선이 교각을 들이받아 생긴 사고이기는 하나 다리가 튼튼했다면 대형 사고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고는 미국 사회 고질병인 사회 기반 시설의 부실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도로교통건설협회(American Road and Transportation Builders Association)는 지난해 8월 18일에, 미국의 다리 중 대대적 보수 또는 교체가 필요한 것이 36%라고 발표한 바 있다. 36%에 해당하는 교량의 숫자는 222,000개인데, 그중 76,600개가 교체되어야 하고, 42,400개는 특히 상태가 나쁘다고 한다. 미국은 지금 외국에서 전쟁 치르느라고 자기 집안 다리 무너지고 있는 줄 모르는 꼴인 셈이다.

8,860억 또는 1조 달러가 넘는 국방 비용을 나라가 쓰면 꼭 이득 보는 세력이 있다. 이름하여 군산복합체다. 그들이 국내 고속도로나 다리가 낡고 무너진다고 걱정할 리는 없다. 왜? 보통 사람은 차를 타면 덜컹거리는 도로와 교량을 지나다녀야 하지만 그들은 헬리콥터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닐 테니까. 해외에서 전쟁 벌이는데 들어가는 돈을 돌려 사회 간접 시설을 복구하고 건설하는 데 쓰면 미국 인민의 교통 복지가 많이 개선되겠지마는 미국의 지배 블록은 더 많은 전쟁을 벌이고 싶어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날수록 그들에게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니 미 대통령 바이든이 키 대교 재건을 위해 6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아무리 큰 다리라지만 엄청난 비용이다. 하지만 큰돈을 쾌척한다고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키 대교 재건에 무려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존스홉킨스대학의 토목 및 시스템 공학 교수 벤자민 샤퍼의 예측이다. 다리 하나 재건하는 데 600억 달러가 들고 10년이 걸리면 미국 전역에 붕괴의 위험에 놓여있는 수많은 다리, 도로교통건설협회가 말한 “상태가 나쁜” 다리 42,400개를 손 보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예산과 시간이 들까? 참고로 중국은 35,000km의 고속철도를 놓는 데 10년이 걸린 적이 있다. 고속철도와 교량은 건설하는 방식이나 소요 시간이 서로 다르겠지마는 얼추 같다고 보고 2.6km의 키 대교 재건에 10년이 걸리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미국은 35,000km의 교통시설을 건설하려면 13,462년이 필요한 셈이다. 웃자고 하는 말이기는 하다.

키 대교 붕괴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미국의 국내 사정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미 제국주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 전쟁을 일으킨다. 미국의 전쟁은 그들이 침략하는 나라와 인민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인 다수도 그들의 지배 블록, 군산복합체가 해외에서 일으키는 전쟁으로 피해당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결국 싸움은 다수의 인민 대 극소수의 지배 블록 간의 싸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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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이야기하면서 청암동 부군당 문제에 주목한 바 있다. 부군당은 마을 신당이라고 간단히 언급만 했었다. 부군이 부군(府君/府群/符君), 부근(府根/付根), 심지어 부강(富降)으로까지 한자화된 사실에서 부군이 본디 우리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부군당을 신봉하는 마을 사람들은 붉은으로 발음한다고 한다. “붉은밝은은 같은 어원에서 왔으므로 해, (으로 표상되는 존재와 상징)을 숭배하는 무속 신앙과 연결된다는 주장이 있다(양종승). 부군을 중국 무슨 인물 이름에 귀속시키거나 한자 의미를 추적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이런 이치는 국사봉에도 통한다.

 

숲에 빙의되어, 그러니까 미쳐서드나들었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릴수록 소름 끼치는 기억이 쟁여져 간다. 다시 하라면 대뜸 낙장거리할 듯하다. 최근 일요일에 늘 계획이 없는 까닭이다. 오늘도 아무 생각 없다가 버스 타기가 싫어서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국사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숲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왜 국사봉일까, 생각해 본다. 국사봉 북쪽 발치에 양녕대군 묘가 있어 전해오는 이야기는 그가 여기서 아우가 다스리는 나라를 걱정했다고 국사(國思)라 했다는 내용이다. 억지스럽다. 무학이 비보 사찰 사자암을 창건하자 이태조가 그를 기려 국사(國師)라 했다는 말도 있다. 이 또한 억지스럽다. 벼슬아치나 먹물들 유희에 가깝다.



부군이 붉은에서 왔듯, 국사는 굿에서 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는 인왕산 국사당이 굿당임과 같은 이치다. 전국에 있는 여러 국사봉 모두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말과 한자 말이 이런 식으로 왜곡, 전도된 예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말이 나왔으니 다 하고 간다. 국사봉을 우리말로 하면 굿 봉우리가 될 테고, 부역 국어학자들은 봉우리의 봉이 봉()에서 왔다고 주장할 테다. 아니다. 봉우리는 순우리말이다. 봉우리와 봉오리는 다른 말이지만 같은 곳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봉긋하다를 생각하면 대뜸 알 수 있다.



나는 요즘 굳세고 바른 마음으로 우리말을 공부하는 중이다. 제도 교육을 통해 배워 70년 가까이 써온 내 부역 국어 체계에 크게 금을 내려 함이다. 관련 책과 자료를 살피는 동안, 지난해 <말글 부역 서사>를 쓰면서 마주쳤던 분노와 죄책감이 수시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견뎌야 할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사람 자람과 반제국주의 싸움에 끝은 없다 깨우치며 다시 길을 나선다. 글씨체를 바꿨는데 글은 왜 못 바꾸겠는가 말이다. 아직은, 여기 내 글에도 엄연히 들어 있는 부역 풍경조차 엄밀히 걸러내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으려 한다.

 

늘 그랬듯 산마루로 가는 길 마다하고 허리를 크게 한 바퀴 돌아 숲을 나온다. 다음 숲은 강감찬 숲이다. 스트로브 잣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을 갈피 살펴 걷는다. 거의 다 돌았을 무렵 지니고 온 도토리 생각이 불현듯 난다. 적당하다고 여기는 곳에 심는다. 이들이 다 싹 나서 큰 나무로 자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썩어서 흙이 되더라도 돌아갈 곳으로 가는 것이니 나는 그저 오늘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도토리 심기와 우리말 공부는 본성이 같다. 돈이나 명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압제와 살해로 세상을 삼킨 제국에 맞서 작디작은 팡이실이 한두 올 일으킬 뿐이다. 그 한두 올이 내 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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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년 동안 1,300번 내게 침 맞으며 건강을 관리한 마을 시장 상인이 있다. 요즘 들어 뜸하다 싶었는데 폐업했단다. 신고하러 갔더니 그처럼 막다른 길에 선 사람들이 길게 줄 서서 기다리더란다. 바람결 풍문으로나 여기다 막상 직접 들으니, 가슴이 철렁한다.

 

내 경우라고 다르겠나. 4·16 때부터 줄곧 내리막이었고 코로나 이후 바닥 고착화가 완강하게 자리 잡았다. 요즘 살풍경은 코로나 극성기보다 심하다. 이대로 가면 끝이다 싶지만, 워낙 심하게 각다분하니 당분간은 무슨 엄두도 낼 수 없다. 여기도 막다른 길이다.

 

아이고, 서민은 망해 자빠지고 죽어 나뒹구는데 허튼짓만 하고 돌아다니니, ··· 대체 어쩌자는 심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소. 진짜 식민지로 되돌리려 대놓고 이러는가.” 입 있어도 할 말 없는지 못 들은 척하더니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여기도 막다른 길이다.

 

지난 13년 동안 나는 리베카 솔닛이 말한 성가대에 설교하기원리를 어기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사람에게 진실을 전하려 했다. 이 사람이 앞으로도 쭉 제 삶에 반하는 주권을 행사하리라는 진실을 안다. 침 맞으러 주근주근 올 줄도 안다. 어디든 막다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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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한군데 꼭 갈 일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용산. 분명히 산이지만 그 산이 있기는 한가? 정확한 산 자리를 아는 사람은 없는데 용산은 유구하게 뜨르르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 임오군란 때 청군, 식민지 때 일제 조선군, 군정 이후 미제 점령군, 일제 조선군을 계승한 허울 대한민국 국군, 이제는 심지어 허울 대통령실까지 덮쳐서 둥지 튼 악마 십승지(十勝地), 바로 거기 용산이 정말 용산인가? 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어 이리저리 자료를 뒤지며 알아낸 결과만큼 경로를 잡아 일단 용산 걷기를 실행에 옮긴다.

 

제국과 부역 군대, 그리고 정권이 똬리 튼 용산은 가짜 용산이다. 아니, 일제가 본디 용산을 지우고 제 소굴을 ()이라 도둑질해서 조작한 상징이다. 저들이 소굴로 삼은 산은 본디 둔지산이었다. 그 이후 둔지산이란 이름은 사라졌다. 진짜 용산은 오늘날 마포구와 용산구 마주 가장자리를 이루는 능선과 그 자락이다. 이 능선은 안산(鞍山)에서 발원해 애오개를 내어주고 만리재마저 내어주면서도 계속 내달려 마침내 한강에 이르러 우뚝 서 발길을 거둔다. 오늘날 벽산빌라-외인 출입 금지, 경비가 지킴.-와 마포타워가 점령한 벼랑이 남호(南湖) 절경을 이루며 담담정, 읍청루를 불러들인 바로 거기다. 이 용산, 이 이름은 이미 고려 후기부터 있었다.



담담정 자리를 차지한 고급 빌라

 

그 유서 깊은 능선과 자락은 현재 거의 완전하게 숲을 빼앗기고 포장도로와 길가 겨우겨우 살아가는 몇 그루 나무 행렬로만 남았다. 대표적인 길이 백범교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진 새창로8길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가슴을 뒤흔드는 분노와 애통으로 자주자주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용산 마루에 이르러서는 더욱 참담해졌다. 거기에는 천주교 성당이 우람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천주교의 준() 성지에 해당하는 곳이라 한다. 용이 나타났기에 용산이라 했다는 상서로운 곳에서 정작 우리가 목격하는 이 풍경은 식민지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국적 불명 어수선함이다. 숲도 이름도 사라진 산마루 주인이 용산 성당이라니.



사라진 숲을 지키는 거목 하나를 신목으로 삼다

 

빼앗긴 이름, 죽임당한 숲, 용산을 떠나기 전에 나는 결단코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나 더 챙긴다. 사실, 이 걷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 눈길을 가장 먼저 끈 이야기는 청암동 부군당(符君堂) 역사다. 부군당은 서울·경기 일원에 남아 있는 마을 신당이다. 특히 용산에서도 한강 가까이에 유달리 많다. 청암동 부군당은 처음 있었던 자리에서 두 번이나 이전했는데, 그 과정이 아프다. 일제가 도로를 내는 바람에 그렇게 된 일은 식민지 어디서든 일어났으니 그렇다 치더라도나중에 특권층 부역자들이 저지른 협잡은 치졸하고 야비하다. 구의회 의장 부자가 몫 좋은 부군당 부지를 사들여 6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부군당은 길 건너 산비탈 자투리땅으로 내몰렸다. 신당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마구잡이 잡식 양옥으로 시늉만 내고 프린트한 날림 현판을 걸어 놓았다. 일제보다 부역 세력이 더 그악하다는 진실을 유감없이 드러내 준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오래도록 머무르다가 고요히 내 의례를 마치고 떠난다. 이 막다른 좁은 길에서 맞닥뜨린 처연함은 쉽게 잊히지 않으리라.



짜투리땅의 초라하고 생뚱맞은 청암동 부군당(1)



짜투리땅의 초라하고 생뚱맞은 청암동 부군당(1)



청암동 부군당을 내쫓고 들어선 호화 건물



인근 산천동 부군당- 이와 비교하면 청암동 부군당은 간이 화장실 수준이다

 

마침내 가짜 용산 본영으로 간다. 아니. 못 간다. 경찰과 경호관이 길을 막아서다. 삼각지역에서 내려 이른바 대통령실 쪽으로 가는 큰길부터 제지와 간섭이 자행된다. 대통령실 구경할 수 없느냐 물으니 그렇단다. 국방부 건물 뒤를 가리키며 그쪽에 있느냐 물으니 모른단다. 윤석열 집단이 왜 여기를 근거지로 삼았는지 단박에 감 잡는다. 국민과 가까이서 소통하려고 외진 청와대 떠나 항간으로 나왔다면서, 빈 청와대 개방으로 헛생색은 내고, 정작 제 처소는 구중궁궐로 만든 까닭을 삼척동자 아니면 모를 리 없다. 그래, 거기다 저 제국 군대들이 쌓아온 강고한 점령 층위에 올라타 그 철권을 영속화하려는 야심을 묶으면 특권층 부역자 정권이라는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검은 감시자들 눈을 피해 사부자기 반제국주의 의식을 올리고 크게 한 바퀴 돌아 집으로 가는데 금방이라도 누군가 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은 두려움이 옷깃을 파고든다. , 저들이 노리는 바가 이렇게도 작동하는구나.

 

멘토라는 자, 또는 풍수 전문가라는 자, 이들을 끌어들인 자, 그 누가 만들었든 윤석열을 이리로 이끈 내부 서사는 내 알 바 아니다. 모든 정치, 더군다나 부도덕한 정치라면 으레 인류학적 행태를 극단 수준으로 펼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서사 자체가 아니라 신이나 영적 자연이 지닌 권위를 사적 탐욕에 가져다 바치는 자들의 생각 없음, 그러니까 진부성, 피상성이다. 그 진부하고 피상적인 인간 종자들이 경악스럽고 웅숭깊은 악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무섭다. 한나 아렌트는 그러므로 틀렸다. 악은 평범하지 않다. 악인이 평범하다. 평범은 실제로 평범 이하인데, 더 큰 문제는 평범 이하를 비범으로 믿는 과대망상이다. 그 과대망상증 환자 한 움큼이 주제넘게 갈개질하는 허울 대한민국은 찐 식민지로 되 치달아 간다.

 

야울야울 타오르는 공포와 우꾼우꾼 솟아오르는 분노를 다독거리며 가족과 약속한 저녁 자리로 간다. 오늘은 어디 갔다 왔느냐는 물음에 용산이라 답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게 실제 산이냐 묻는다. 내력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도둑맞은 산과 빼앗긴 숲을 걷기로 되찾았노라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빙그레 웃음은 눈에 넘기고 벌컥벌컥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가족인들 어찌 내 전쟁을 속속들이 알겠냐만, 못다 한 속 이야기가 몽글거리는 일 또한 어쩌겠는가. 거푸 한잔 더 마신 막걸리로 몸도 맘도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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