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와 함께하는 상상력 충전 캠프>

날짜: 2008년 8월 11일~12일

장소: 파주 화이트밸리

알라딘에서 상상력 충전 캠프를 중학생 이상 모집할 때 꼭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물론 얼마 전에 푸른숲에서 출간된 <있다면? 없다면?>을 재미있게 읽고 리뷰도 썼었다. 꼭 되기를 기도했는데 당첨되어서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무척이나 기뻤다.


출발일 아침 어머니께서 일이 있으시다고 하셔서 나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충정로 역까지 가게 되었다. 막상 가고보니 중학생, 고등학생 모두 보호자의 동반이 있었건만 오직 나 혼자만 쓸쓸하게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막상 떠나보내고 나면 아무도 전화하지 않고 내버려두거늘 어머니는 어찌나 많이 전화하시던지 정재승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도중에 전화를 받고 양치질하는 도중에 전화를 받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캠프는 백점만점이었다.


제일 처음에는 방에 짐을 내리고서 각자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정재승 교수님은 재미있게도 자신의 모습을 캐릭터로 표현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예를 들어 자신은 인크레더블의 아빠라고, 아이들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시작으로 사람들은 자기 별명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애늙은이, 남생이, 아따맘마의 캐릭터 등 재미있는 별명들이 많이 나왔다. 어떤 형은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듯 하다고 해서 쿵푸 팬더의 시푸 사부를 생각해 냈다. 그것이 바로 내 별명이 되었다.

그 후로 브레인스토밍이라는 재미있는 것을 했다. 기발한 조, 엉뚱한 조, 희한한 조라는 세 개의 조로 나누었는데 나는 기발한 조에 속했다. 정재승 교수님은 기발한 조에게 '한 번 웃으면 10분?!'이라는 좋은 주제를 주셨다. 한 방에 둘러앉아서 한 번 웃으면 10분이나 걸릴 때 사회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생각해 보았다.

현재 세계에서는 한 번 웃을 때 많아봐야 1분정도밖에 웃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 겨우 몇 초 씩밖에 웃지 않는데도 많이 웃으면 숨이 차서 웃는 게 참 힘들다. 그런데 10분이나 웃게 된다면? 아마도 숨쉬기가 힘들어 죽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그래서 아마 사람에게는 새로운 호흡기관이 발달하거나 폐활량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또 10분이나 웃는다면 소음이 크게 생기지 않겠던가?

나 혼자서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던 수많은 의견들이 다섯 명의 의견을 모으니 그 생각이 매우 커졌다. 또한 바베큐 파티도 하고 즐거운 순간들이 많아서 다음번에도 꼭 캠프에 참가하고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상철 2008-08-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번 전화한 걸 많이 했다고... 많이 한건가?-_-;;;쩝~ 아예 전화를 하지 말라는 소리겠지? 도착했다고 한통화 해주지~ 매정한 녀석... ㅜㅡ
 

일자: 2008년 8월 7일 목요일~8일 금요일

장소: 대진대, 송암 천문대 

8월 4일부터 이어진 3일간의 특강끝에 목요일부터는 대진대에서 1박 2일 여름캠프로 초대했다. 여름 캠프에서 시원하고 재미있게 공부할 줄 알았건만, 기대 끝에 숙소에 도착해보니 내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기숙사는 원래 머물면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있던 곳인데 냄새나지 않고 깨끗하긴 했지만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조차 없어 열이 그대로 올라왔다. 방에 잠시동안도 머물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형들의 모습도 보였다. 캠프 일정은 그리 특별해보이지는 않았지만, 교내 식당은 예술이었다. 학교 급식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반찬의 질은 훨씬 나았다. 잠시동안 쉬다가 출발한 곳은 바로 송암천문대. 버스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매우 특별해 보이는 천문대가 등장했다.

제일 먼저 체험해 본 것은 바로 에어로켓 발사 체험이었다. 어릴 적에 에어로켓을 만들어 본 적이 있어서 금방 만들었는데 선생님이 페트병이 별로 없어서 입으로 불라고 하셨다! 에어로켓 발사 대결이 있다고 하셨는데 결국 숨을 세게 불지 못하는 사람은 불리하다는 소리다! 결국 화학반에서는 가까스로 3등을 했으나 중등반이 모두 모여 시합할 때에는 7등밖에 하지 못했었다.

디지털 플라네타리움. 여러가지 영상물을 천장의 거대한 스크린에 쏘아서 마치 실제로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는 것이다. 의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더 실감나게 해주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주를 여행할 때에는 마치 실제로 용을 타고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계에서도 몇 개 안되는 챌린저 러닝 센터.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비행사 이소연도 이 챌린저 러닝 센터를 보기 위해서 두 번 들렀다고 한다. 챌린저 러닝 센터 관리자가 보여준 방에서는 이상한 프로그램이 모니터에 나와있었다. 신기해서 만져보려 했으나 곧 관리자가 협박조에 가까운 말을 했다.

"컴퓨터는 절대로, 절대로 건들지 마세요! 일급 500만원을 받는 외국인 연구자들의 정보가 날아갈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잘못 건드리면, 여러분이 몇 천만원, 아니 몇 억원에 가까운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컴퓨터를 놔두었냐고 물어보자 곧 이어 시청할 <목성 탐험> 영상물을 좀 더 실감나게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이런 것을 직접 가져다 두는 것이 아니라 여러 대의 일반 컴퓨터로 화면만 나오게 하면 될 것을... 어쨌든 마치 컴퓨터 앞에 앉아 직접 탐험선을 조종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우주 비행사가 되어서 컴퓨터를 조작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 이럴 것이다.

500m에 가까운 높이를 특별한 승상기를 타며 체험해 본 후에 도착한 곳에서는 실제로 망원경을 통하여 별들을 보았다. 그리고 하나의 별처럼 보이는 어떤 별은 실제로 주황색과 초록색의 두 별이 어우러져 만들어져 있엇다. 망원경으로 본 달의 모습은 심지어 크레이터까지 보였다.

천문대에서 수많은 체험을 한 후, 숙소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풀었다. 1박 2일 캠프. 또 한번 갔다오고싶은 그런 체험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날짜: 2008. 8. 2. 토요일

장소: 삼성동 코엑스 [현대미술 거장전] 

같이간 사람: 아버지, 어머니, 나, 최승재, 강선오, 조헌우

어제 미처 마치지 못했던 관람을 하게 되었다. 바로 [현대미술 거장전]과 [학생발명품전]이었다.

<현대 미술 거장전>
현대 미술 거장전은 피카소와 같은 오래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최근에 등장한 인물들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예술을 시도하는 예술가 백남준의 작품들이 제일 가관이었다. 그 중 걸리버라는 작품은 우리가 걸리버가 되어 소인국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데, 18개의 소인로봇들의 이름을 짓는 칸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나왔는데, 인도, 중국 등으로 널리 퍼진 미술작품들이 등장했다. 나같은 사람은 도저히 그 가치를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매우 특이하고 멋진 상징적인 그림들이 나왔다. 거기다 중국은 현재 발전하고 있는 나라라지만 알게모르게 국민들이 매우 고통을 겪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중국 미술가들은 작품을 통해서 매우 힘든 중국 사회를 표시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두 남자다. 밝은 빛을 받고 있다지만 막상 입은 검은색이고, 입을 가리고 눈을 보면 그것은 울음과도 같은 웃음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너무 힘든데도, 이런 억압된 사회속에서 웃음밖에 지을 수 없는 그런 고통을 야기한다.

세계현대미술 거장전을 관람한 후 갔던 곳은 바로 1층의 학생과학발명품 전시회였다.



<학생 과학 발명품 전시회>

그곳에서는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금상, 장려상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비록 상의 종류는 달랐다지만 모두가 획기적인 발명품들이었다. 보면서 이런 어려운 점도 있었구나. 하고 내 삶을 다시 되돌아 볼 수도 있었다. 보통 새로운 발명품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만들 수가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해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지금의 지우개달린 연필도 테이프만 있다면 누구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렇다면 왜 그 전에는 지우개달린 연필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 외에도 매우 특별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동 잠금장치가 달린 자전거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급경사를 하더라도 바로 잠금장치가 내려가 안전하고, 고정대를 내린 후에 또 다시 잠금장치를 귀찮게 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상으로는 매우 잘 만든 LED신호등이 있었는데 전기가 절약되어서 대통령상까지 받을 정도니 실제로 설치될 것 같다.

이 엄청난 작품들 사이에 내 작품도 볼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번 전시회에서 매우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즐거운 귀향길에서 새로운 발명 아이디어도 생각해 보았다. 이런 즐거운 박물관 여행은 어느 세상에도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날짜: 2008. 8.1. 금요일

장소: 경기도 광주시 관요 박물관, 남한산성

< 경기도 관요 박물관> 


마지막 날인 오늘은 아침을 값비싼 황태 해장국으로 간단하게 먹고 우리나라의 도자기에 관한 관요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맨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수많은 글들과 화려함과 수려함을 돋보이고 있는 수많은 도기, 자기들이 보였다. 도기와 자기를 합쳐서 도자기라고 하는데 이 그릇의 종류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한다. 토기는 점토로 만들어졌으며 연한 성질이어서 연질도기라고도 한다. 도기는 2차점토로 성형했으며 비교적 욘도변화와 충격에 강하다고 한다. 석기는 돌과 같이 매우 단단한 그릇으로 변화가 풍부하다고 한다. 또 자기는 반투명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맑은 소리를 낸다. 그릇에도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던 이 도자기들이 모두 무척 중요한 실용성 자원이라고 한다. 잘 알지는 못했었지만, 플라스틱, 유리와 같은 자원보다 도자기의 경우 천연으로 아주 쉽게 되돌아가며 불과 충격에 유리나 플라스틱보다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도기와 자기중에서도 여러 갈래로 나뉜 종류의 수를 보고 눈이 희둥그레졌다. 도기는 무유, 시유로 종류가 나뉘는데 무유에는 연질도기, 침탄도기, 경질도기로 나뉘고 시유에서는 회유도기, 연유도기로 나뉜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사전을 찾지 않으면 잘 모를 말들이다. 최초의 도자기는 BC 3000~4000년 사이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도 BC 3000년 경에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갈수록 화려했지만 초창기에는 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가 제일 초라해 보이기도 했었다.



조선백자와 분청사기는 조선을 대표하는 두 가지 자기였다. 백자 문화는 아시아의 삼국 - 일본, 중국, 한국을 중심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분청사기는 우리나라만의 특유한 기술로 만들어진 자기인데, 분청사기를 주로 만들어내 조선 중기에 성행했으나 갑자기 나라에서 조선 백자에 엄청난 지원을 하자 조선백자가 성장을 하면 그 반비례로 분청사기는 쇠퇴해갔다. 우리에게 유행이 이리저리 바뀌듯이, 도자기도 그 역사가 갈수록 바뀌는 것 같다.
 

가끔 도자기중에서 보면 검은색과 푸른색 무늬를 가진 자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산화코발트를 이용한 염료를 그려넣은 것과 국내의 산화철로 만든 염료를 그려넣은 것이다. 산화코발트의 경우에는 페르시아와 중국을 거쳐 수입해야 했었는데 두 번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그 값이 무척 비쌌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어느날 모든 과정을 산화코발트에서 산화철로 바꾸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산화철로 바뀐 무늬라 하더라도 단지 색깔이 바뀌었던 것 뿐이지 사기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였다.



그 곳에서는 가마터의 모습을 인형의 모습으로 만들었던 것이 있는데, 있는 모습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낸 듯 했다. 도자기를 깨는 사람과 가마를 이용해 굽는 사람, 흙을 밟는 사람, 흙으로 자기를 빚는 사람등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중에서 도자기를 깨는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한다. 도기공중에서도 가장 눈이 높은 사람이 임금님께 진상할 가장 좋은 품목을 골라내어서 바쳤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가장 실력이 좋은 사람이 도자기를 깨고 골라내는 수 밖에 없었다. 



<남한산성>

그 후에 갔었던 곳은 바로 병자호란의 치욕이 남아있던 곳이자 그러나 가장 단단했던 요새인 남한산성이었다. 남한산성내에는 수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의외로 높아보이는 산은 얼마 전에 막 음식을 먹은 나에게 정복욕심을 심어주었다. 결국 거의 경쟁하다시피 하며 정상으로 올라갔었는데 정상에서는 서울 모든 것이 다 보이는 것 아닌가? 거기다가 멀리에는 남산타워의 모습까지 얼핏 보였다. 서울이 엄청 크다고 생각했지만 높은 산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한낱 거대한 개미의 둥지만할 뿐이었다.

그 후에 먹었던 냉면은 꿀맛이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배고픈지라 먹는 음식이 더욱 맛있었다. 곧 있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피로감이 내 몸을 급습했다. 비록 힘든 하루였지만, 다음번에는 또 도봉산 정상을 정복하는 꿈을 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날짜: 2008년 7월 31일 목요일

함께 간 사람: 아버지, 어머니, 나, 승재, 선오

장소: 경기도 광주 곤지암 소망교회수련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