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 수준별 실력 마스터 고등수학 (하) 고1 - 2009
최용준 외 지음 / 천재교육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기본 다음 다듬기~ 원래부터 선호하는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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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수준별 기본 마스터 고등수학 (하) 고1 - 2009
최용준 외 지음 / 천재교육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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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초 너무 쉽게 만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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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귀 문원 세계 청소년 화제작 3
쎄르쥬 뻬레즈 지음, 박은영 옮김, 문병성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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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심지어는 사람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다. 뭐 유전 탓이라든지, 환경 요인이라든지, 아니면 어떤 사고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책의 주인공인 레이몽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1편을 제쳐두고 2편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레이몽이 전문 학교에 가야만 했던 이유가 매우 궁금했다. 그리고 레이몽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만약 당신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놀림받고 왕따당하며, 선생님에게는 언제나 멍청하다는 이유로 맞고 또 집에 가면 그것 때문에 허리띠로 채찍질을 잔뜩 당하며 이리저리 사정없이 차이는 그런 고통을 몇날 몇일동안 계속 당하면서도 견딜 수 있겠는가? 난 그런 고통을 견디는 레이몽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의 세계에 평화란 없다. 그렇게 함부로 때리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때가 어느 시대인지가 궁금했다. 아마도 어린이 보호법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이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계속 읽다가 마지막 빵집 아저씨가 말하는 부분에서 크게 놀랐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은 아이들을 때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레이몽, 너 그거 알고 있니? 네 아버지한테 말해야 되겠다.

 
   

레이몽은 '선생이 아이를 때릴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 시대에, 단지 조금 멍청하다는 이유로 수도 없이 학대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자랄 것도 아닐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학대를 당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면 레이몽이 하필 죠슬린이 태어난 후부터 학대를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빵집 아저씨가 말하길, 레이몽이 계단 입구에서 트럭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죠슬린을 배고 있던 엄마가 레이몽이 절대로 놀면서 길을 비켜줄 아이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뛰어서 레이몽 위를 점프해 지나가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대로 바닥으로 우당탕 넘어져버렸기에 죠슬린이 그 충격으로 저능아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 때문에 레이몽은 찬밥신세, 아니 동네북이 되어 언제나 맞고 다니게 된 것이다.

나는 레이몽의 부모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자녀에게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결코 그 탓을 레이몽에게 돌리지 않을 것이다. 자식 하나가 엉망이 되었더라도 다른 자식까지 엉망으로 만들면, 더 슬프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샴 썅둥이를 생각해보자. 대부분은 뱃속에서 한 명이 죽어야만 한다. 그러면 부모가 살아남은 한 아이를 다른 한 아이를 죽였다면서 나무라고, 발로 차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정상적인 부모로 인하여 레이몽과 같은 피해자가 생겼다. 

제 3부작 이별처럼 에서 레이몽은 빵집 아저씨의 마지막과 같은 매우 평화롭게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죽음'. 레이몽은 언제나 난 죽지 않을 테야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을 보면 이미 자살하고도 남을 상황이다. 아, 레이몽. 한없이 고통받고 자란 불쌍한 그를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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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09. 6. 7. 일 

장소 : 통영시 

같이 간 사람: 최 승재, 강 선오, 표 진성, 어머니, 아버지

고성에서의 2박 3일을 통영 시티투어로 끝냈다. 통영 시티투어란 버스를 타고서 통영의 유명한 문물들을 직접 감상하는 것이다. 특히 통영에서는 충무공 이순신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충무사와 한산도, 케이블카와 유람선 등을 잔뜩 관람하고 왔다. 



 

<한산도 제승당> 

제일 먼저 유람선을 탑승했다. 이름은 신태양호. 물론 약간 낡아서 그리 멋진 호화 여객선은 결코 상상할 수 없으나, 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나아가서 도착한 한산도에서 충무공 이순신의 그 깊은 뜻과 영웅정신의 기를 받을 수 있었다. 한산도의 만은 잘 보면 하트 모양이다. 해설자가 설명하길 이는 조국과 임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효율성을 위해 이렇게 만들었을 뿐, 실제로 그런 뜻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후 몇 백년된 정자에 앉아서 해설자에게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통영이 이순신의 도시이므로 가기 전에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었다. 이 책 속에서 이순신이 얼마나 훌륭한 위인이었는가를 설명해 준다. 이순신은 뛰어난 병법가임과 동시에 수완 좋은 정치가였으며 쉽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학자였다. 그런 만능인인 이순신이 백성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씨까지 가졌으니 과연 대단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또 이순신의 해전은 세계 4대 해전에 속한다고 한다. B.C 480년경 테미스토클레스의 살라미스 해전때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에서 그리스라는 한 국가의 패망이 걸려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그리스 군사들이 열심히 싸운 덕택에 기동성이 약한 페르시아의 거대한 배들은 스스로 무너져 엄청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또 영국의 칼레 해전에서 드레이크 제독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명령 아래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둔다. 또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이 있는데, 넬슨 제독은 이순신과 비슷한 점이 많은 장군이다. 전략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또 이순신과 같이 선상에서 저격을 당해 해전이 모두 끝난 후 '나는 20세의 약속을 지켜 행복하게 죽는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선상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 모든 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이다. 이 대첩에서 일본군이 자기 군의 피해를 문서로 8600명 넘는 사망자를 보고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실을 두려워하여 적게 보고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추측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상대적으로 조선 수군 사망자는 최소 1000명은 되어야 한다. 그럼 실제로 몇명일까? 사망자는 19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배 한척 깨지지 않고서 상대방을 전멸시킨 이순신은 전세계적으로 해군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나 또한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존경하며 닮고 싶다.  

<전혁림 미술관>

다시 유람선을 타고 돌아와 통영을 빛낸 예술인인 전혁림 할아버지의 예술관을 둘러보았다. 현재도 살아계시는데, 올해 나이가 95살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장수하시는 예술인이니, 아주 오래 오래 살아계셔서 좋은 작품을 하시면 좋겠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거친 붓결에서 예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모두 만나고서, 바닷가의 식당에서 먹는 아구찜을 먹었다. 아구양이 매우 적었기에 거의 콩나물 무침이라 생각하면서 밥과 반찬만 먹었다.   

<미륵산 케이블카>

그 후 케이블카를 타고서 산의 전경을 둘러 보았다. 높은 곳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니 참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좋은 구경을 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온 후, 버스를 타고 충무사로 향했다.   

<해저터널>  

입구와 그 내부 모습 - 바다 밑으로 이런 터널을 냈으니 그 때 일했던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마음이 아팠다.

<착량묘,거북선> 

충무사는 400년도 넘은 것인데, 어떻게 일제 시대에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었냐 하면 일본이 경외하는 조선의 장군이 바로 이순신이기 때문이다. 세종로에서 나쁜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설치한 동상의 주인공도 이순신인 이유가 이것이다. 충무사에서 영웅 이순신에게 참배를 한 후, 바로 앞에 위치한 거북선을 둘러보았다. 몇 번 온 곳이긴 하지만, 다시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거북선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겼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이 웅장한 배에게 감사해했다. 

<세병관, 향토역사관> 

마지막으로 세병관을 들렀다. 원래 이 세병관은 통제지의 중심인데, 그 주변이 일제 시대에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세병관이 컸기 때문에 서당으로 쓰여서 겨우 보존될 수 있었다. 얼마나 잘 만들었던지 400년 전에 건물 상층벽에 새겨진 선녀의 눈썹조차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사람의 손이 다 닿을 수 있는 곳은 문양이 거의 지워져 좀 안타깝게 여겨졌다. 

 

통영 곳곳에서 사람들의 정기를 느낄 수 있었다.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바다의 도시이자 충무공의 도시인 통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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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2009-06-0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 소중한 체험의 시간이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최상철 2009-06-09 11: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 내용 꼼꼼하게 써주신 <한려수도 이순신이 싸운 바다>
배송되면 잘 읽겠습니다~
 

날짜:2009.06.05. 금요일 

장소: 경남 고성 '공룡 세계 엑스포' 

같이 간 사람: 어머니, 아버지, 승재, 선오, 진성, 나 

아침 6시, 일찍 일어나 출발할 준비를 했다.  학교까지 빠지고 3일간의 빽빽한 일정이 계획된 앞으로가 매우 기대되었다.  그렇게 붕~뜬 마음을 품고서 고성을 향해 출발했다.  이번 설에는 눈이 많이 와서 경기도를 채 벗어나지도 못하는데 13시간씩이나 걸려서 못갔지만, 이번에는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었다. 중간에 어머니가 나와 승재 선오의 핸드폰을 모두 걷어갔는데 그 사실 때문에 나중에 위기에 처한다.  고성 할아버지댁에 도착해서 절을 한 후 점심은 짜장면을 먹고서 경남 고성 공룡 세계 엑스포로 향했다.  

 

 

재작년에도 오고, 초등 4학년 때도 온 적이 있으나, 그 때는 번번히 엑스포 행사기간이 아니었기에 이번에 관람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우리는 거북선 열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팜플랫에 3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기본 코스와 심화 코스를 적절히 섞어 관람키로 하였다. 

 


제일 먼저 가 곳은 백악기공원관이었다.  지붕에 앉아 있는 브라키오 사우루스의 웅장한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동굴로 들어가기까지 좋았는데, 원시인들을 보고서 바로 유아들을 위한 곳이란 걸 알았다.  공룡은 중생대에 출현했고,  인간은 그보다 훨씬 후인 신생대에 출현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공룡을 사냥하고 있는 모형은 말이 되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백악기공원을 빠져나와 다음으로 간 곳은 고성문화체험관.  

이 곳에서 우리는 솟대 만들기 체험을 하였다.  반동으로 움직이는 파랑새가 완성이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4명이서 계속 가지고 놀았다.  또 각자의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려고 압화를 이용한 꽃누르미 열쇠고리 만들기 체험도 하였다.  




다음으로 중생대 공룡관을 관람했다.   중국에서 온 온갖 종류의 공룡들이 전신되어 있었다.  



그 후 출구로 나와서 한반도공룡발자국화석관으로 갔다. 한반도의 공룡발자국화석관을 구석 구석 살펴보며 함께 전시되어 있던 세계화석.광물도 살펴보았다. 

우리는 간식을 먹고 한숨을 돌린 후 멀티미디어관으로 향했다.  레이져를 이용한 3D 영상쇼인데, 폭포와 레이져 빛으로 공룡 영화 한편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광경을 안고 올 수 있었다.     

옛날부터 공룡과 함께 해왔다는 철갑상어전시관도 둘러보았다. 작은 상어가 둥근 수조에 담겨있었는데 왠지 손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옆에는 철갑상어를 이용한 요리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철갑상어 알(캐비어)가 250000원. 세계 3대 요리 중 하나에 입맛만 다시며 살아움직이는 상어들을 구경하고 나왔다. 

  

  

 

  

 

 

대망의 쇼.  4D주제관이 남아 있었다.  멀티미디어관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으 정도로 재미있었는데(물론 레이져쇼가 훨씬 아름다웠다만)의자 앞 뒤에서 강한 바람과 물줄기가 나왔고 이리저리 흔들려 실제로 영화 속 중생대 백악기 그 장소에 있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 그대로를 가지고 나와 각 층에 설치된 소리와 움직이는 거대 공룡 모형을 보니 정말 살아움직이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곳을 나와서 (산비탈길에 설치되어있다) 자연사 박물관 앞까지 아주 길게 연결이 된 미끄럼틀을 신나게 타고 내려왔다.  엉덩이가 약간 타는 듯 했지만 정말 신나는 체험이었다.  파랗게 아름다운 해안가를 끼고 펼쳐진 인도와 차도.  우리는 인도로 주차장까지 맹렬히 경주를 하며 이 날을 체험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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