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버스는 세 대씩 몰려다닐까 - 일상을 지배하는 머피의 법칙의 비밀
리처드 로빈슨 지음, 신현승 옮김 / 한겨레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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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이런 날이 있었던 적이 있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의 토사물을 밟고, 어머니에게 받은 용돈을 어느 샌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또 열쇠까지 잃어버렸다. 어린 날이지만 그 세 차례의 불운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뇌리에 남은 그 불운한 일들. 과연 이것이 우연의 일치였을까? 이 모든 일이 누군가의 음모라고 생각했던게 그때부터였지만 어느날부터 머피의 법칙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일은 내게 일어난 행복한 일에 비하면 그 경우의 수가 더 적다. 또한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이 머피의 법칙을 만들어낸것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이다. 왜 꼭 자신이 선 줄만 제일 길다고? 나는 한 번도 그런 경우를 느껴본 적이 없다. 결국은 자신이 생각하기 마련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인간의 두뇌는 놀라우리만치 무섭다. 행복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면 알아채지 못해도, 불행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면 어떻게든 그 둘의 관계를 연결시키려 애쓴다.(작가가 내새운 예가 있는데 읽고 웃겨서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사라졌다.) 

버스는 왜 세 대씩 몰려다닐까? 그건 나도 궁금했던 점이다. 물론 세 대 모두 내가 타고 싶은 차가 아닌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xxx번, xxx번, 그리고 xxxx번이 한꺼번에 도착한다.(심지어 다섯 대가 오는 경우도 보았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버스에서 버스를 내보내는 시간은 항상 일정하지만, 버스는 손님을 태우고 그 뒤 버스는 손님을 태우는 수가 줄어들어 그만큼 거리를 줄여서 결국 나란히 달리는 것이다. 

머피는 우리의 일상을 곳곳이 점령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이 생각하면, 그것도 모두 당연한 이치이다. 이제는 머피의 법칙을 이기는 방법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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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경제 수첩 양철북 청소년 교양 1
크리스티아네 오퍼만.한대희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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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정말 재미있고 신기한 학문이다. 사람의 직업부터 기초적인 물물교환까지, 그 분야는 너무나 다양하다. 본래부터 혼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니, 모든 학문의 시초는 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경제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돈은 사람의 목숨과 권력을 결정한다. 

하지만 아직은 경제에 대해서 너무 깊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청소년 경제 수첩을 마침 필독도서여서 읽어보았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온갖 경제 지식들을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잘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간 궁금해 했던 온갖 경제적 원리에 대해서 깨우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고민을 많이 한 것이었지만, 왜 사람들은 돈을 많이 찍어내서 사람들에게 모두 많이 나누어주어 부자로 만들어주지 않는 걸까? 그 이상적인 상상이 그 당시에는 무척 위험한 발상이었다는 것을 난 알게 되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재화의 양은 같은데 화폐만 늘어나게 되면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돈의 가치를 잃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인플레이션이다. 반대의 경우 디플레이션이 있는데, 잘 일어나지 않으므로 저자는 설명을 생략했다. 

인간은 왜 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을까? 그 옛날에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시절에는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돈에 의해 생기는 온갖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인류에게 커다란 발전을 이바지한 이 종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폐라는 것이 생김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생산자의 비중이 그만큼 줄어들어 버렸다. 

과학자의 실험에서 한 번은 이런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5마리의 쥐가 있다면 그 중 두 마리는 지배적 위치에, 다른 두 마리는 피지배적 위치,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지금 사회의 지배적 위치와 피지배적 위치, 그리고 천덕꾸러기는 누구일까? 지식인을 무조건 지배층으로, 농민과 공업 종사자들을 피지배층이라 볼 수는 없다. (물론 지식층은 직접 생산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하긴 하다.) 책에서는 경제란 말을 부족한 재화를 알맞게 배분한다는 의미로 표현했지만 과연 그것이 경제의 끝일까?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 

모든 학문이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고, 결국 모든 학문끼리 연결이 되어있다. 정치가 단 두명의 사람만 있어도 시작되는 것과 같이 경제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있더라도 가동되기 시작한다. 경제에 더 흥미를 가지고,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경제의 무서운 신비를 밝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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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6
앙드레 지드 지음, 이충훈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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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에 깊히 몰입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종교라는 것은 어쩌면 속박의 굴레처럼 보여졌고, 종교라는 굴레로 인해서 금욕적인 생활을 이어감으로써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맞보는 연인의 이야기는 정말 한없는 슬픔을 느낄 수 밖에 없도록 하였다.  과연, 이렇게 서로에 대한 깊은 마음만을 이어가다가 공허하게 그 사랑이 사라진다는 것이 종교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일도 맞는지 의문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해서 내가 읽은 [좁은 문]은 종교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관해 비판적인 눈이 되도록 했다.

책에 등장한 목사의 말씀은 처음 읽었을때에는 참으로 옳다고 생각했다.
“넓은 길은 편히 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지요. 그러나 천국에 결코 이르르지 않습니다.”
옳소이다. 나 또한 넓은 길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좁은 길은 압력으로 당신을 매우 조이는 힘든 길이기 때문에 매우 적은 사람들만이 이 길을 택합니다. 그러나 천당에 이르르게 됩니다.”
그럼 나는 당연히 좁은 길을 택해서 좁은 문을 열고 넓은 천당의 세계로 가길 희망했다. 주인공도 나와 같았나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촌누이 알라사를 사랑하면서도,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 서로 같이 좁은길을 걸으며, 서로에 대한 좁은 문을 열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알라사의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제롬은 그의 사랑을 공허하게 떠나보낸다. 차라리 미치도록 사랑하며 결혼해서 떠나보내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을... 알라사와의 사랑이 그렇게 끝나고, 제롬의 참을성있는 행동은 단지 쓸데없는 짓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직 어린 소년, 소녀의 대화가 너무 진지하다 싶을 정도였으나, 그들이 믿는 종교가 그들을 얼마나 비극적으로 만들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어릴적부터 그렇게 종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 그랬던 듯 하다. 항상 서로에게 기다릴께라는 말만 하면서, 서로에 대해 참고, 또 참으며,  사랑을 키우고, 그 사랑을 억누르며 속으로 사랑한다. 그렇게 힘든 사랑의 열정을 참아 속에 쌓아둔 채였건만,  사랑의 상대는 마주볼 수도, 소리라도 들어볼 수 없는 하늘로 가버렸으니....  알라사가 그렇게 된 것은 사랑이란 열병으로 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종교적인 순종과 반발 사이에서 겪은 커다란 갈등을 이 책에 표현함으로써, 종교인에 대한 이상이 완전히 사라짐을 느꼈다. 독실한 신자에게 이 책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적어도 현실적인 책이라고 볼 수는 있다. 그들은 차라리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읽으며 더욱 슬픔이 가해진다. 참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슬픈 비극으로써 작가가 일깨워줌을 고마워하면서도 그가 가져다준 슬픔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다. 좁은 문이 천국으로 가는 길임을 과연 누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일까? 좁은 문은 그냥 톨스토이 문학에 등장하는, 땅에 대한 욕심을 부려 끝까지 견디고 삽을 끌어서 결국 제풀에 지쳐 죽은 남자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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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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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이라는 건 말 그대로 악성 리플의 줄임말이다. 악성 댓글과 같은 말로, 게시자가 올린 글에 비방하는 내용을 담거나 고의적으로 누군가를 비방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 트루먼 스쿨에서 진실한 신문을 만들어보려던 소녀 제이비는 아무르와 함께 트루먼의 진실을 만들고, 누구나 언론의 자유를 가지고 글을 작성할 수 있다는 이 사이트를 이용해서 한 사람을 퀸카에서 모두가 무시하는 왕따로 만들려는 크나큰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인터넷이라면 서로 얼굴을 마주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그만큼 대담해지고, 용기 있어져 현실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곳이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방패삼아 남을 마구 헐뜯는게 지금의 세상이다. 나는 법이 조금 더 명확해졌으면 싶다.
‘표현의 자유를 부과하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비방하는 글을 쓴 자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부여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 한 명을 있는대로 망쳐서 결국 자살에 이르게 하고 나서야, 그제서야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사이버 수사를 시작하고 악성 댓글을 단 사람들을 처벌한다. 그러다가 전부 잡지도 못하면 그렇게 악성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은 한동안 활동하지 않다가 사이버 경찰을 얕잡아보고, 다시 남을 헐뜯기 시작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아무도 모른다는 익명의 파워를 이용해 거리낌없이 남을 괴롭히는 이 세계. 가끔가다가 서재 블로그에서 내가 올린 글을 정확한 이유도 없이 무조건 욕만 잔뜩 달아놓은 댓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냥 이런 블로그를 만들고 싶은 내 또래 친구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일까? 남을 헐뜯는 것을 더욱 못하겠다. 남에게 피해만 주고, 막상 자기가 당하면 너무나 기분나빠하는 이 모순의 논리가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트루먼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앞으로는 악성 댓글이 달리는 일은 잠시 없겠지만, 결국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런 이유로 사이트를 폐지하려하면, 금방 표현의 자유니 뭐니 하면서 시위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막상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이 아닌 그냥 멋진 블로그를 만드는 일반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정말, 이런 비열한 사람들이 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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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rder.dongascience.com/Web/MDSMain.aspx  

착불비 2500이면 예비창간호 수학동아를 무료 증정이라고 하네요.  사이트 들어가셔서 참고해보세요 



<창간호 리뷰> 

수학의 신비함과 그 미스테리를 더없이 좋아하는 내가 이번에 수학동아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마치 물만난 고기와 다름이 없다. 10월 1일 창간이라는 점에서 일찍 만난게 매우 반가우나, 그만큼 11월까지 오래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견디기 힘들다. 차라리 9월에 왔으면 좋았을 것을... 견디기 힘든 마음을 꾹 억누르고, 10월 호를 차근차근히, 좋아하는 부분부터 재미있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이야기의 시작은 수학에서 제일 중요한 문자라 할 수 있는 x를 시작으로 한다. 에 대부분의 미지수가 x인지는 나도 매우 고민했었다. 여러 가지 추리를 해 보았지만, 그 중에 x가 알아내지 못했다는 뜻을 가지므로 미지수의 줄임말로 가장 적합하다는 추리가 가장 정답에 근접해보였다. 이집트에서는 이 x와 같은 존재가 아하였으며, 이 x의 사용을 시작으로 식이 엄청나게 단축되어 수학의 발전이 더 빨리 이루어졌음이 사실이다. 

피타고라스.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학자중 한명이다. 물론 그가 너무 높은 위치에 서게 되어 종교적인 하나의 신앙을 만들게 된 점이 매우 안타깝지만 말이다. 결국 너무 정치적으로 눈에 띄는 그는 추적자들의 손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의 제자들은 그의 뜻을 이어받아 강의와 연구를 계속한다. 

수학은 고대의 인류들이 오래전부터 연구해 온 학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수학을 배우는 정확한 까닭은 수학을 푸는 과정을 통해서 사고력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곧 실생활에 적용되는 예를 찾기는 어렵더라도 사고력의 증진을 위해 일부러 배우는 것이다. 그만큼 수학은 우리의 생활속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학동아를 읽음으로써 수학에 대한 흥미가 매우 많아졌다. 앞으로도 수학동아가 출간되면 꾸준히 읽는 애독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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