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해야 하나요? - 똑똑한 아이들 참 좋은 생각
브리기테 라브 지음, 마누엘라 올텐 그림, 엄혜숙 옮김 / 계수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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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시시때때로 하는 말.  

양치질 해야 한다, 옷 갈아입고 자거라, 방을 어지르면 안된다,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거라, 텔레비전앞에 오래 있지 말거라...  

명령형, 부정사 명령형, 아이나 어른이나 귓가에 잘 와닿지 않는다. 소리 난 그 때뿐...

왜 그래야하는지 이유를 말해줄 때 무시하다가 커서 그런 것을 스스로 하지 않은 자신을 후회할 때가 있다.  

그런 것들을 왜 꼭 해야하는지, 아이들은 책을 통해 이해할 때가 더 좋은 것 같다.   

권유형의 이야기는 때로는 왠지 안해도 될 듯해서 그냥 넘어갈 때도 많으니까 말이다.

신종플루로 들썩이는 세상. 

개인 위생에 철저해야된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해도 하루 목욕을 좀 안한다고... 손 좀 안 씻었다고...  따뜻하게 입으라고 했지만, 귀찮아서 그냥 입고 있던 반팔이, 심한 감기가 되어 나를  철썩철썩 이틀동안이나 계속 때렸다.  무지 높은 고열로...  

내가 걸렸으면 어떻게 하지?라며 속으로 무지 무지 걱정하면서, 무시했던 어머니 조언(잔소리?)이 3일을 따라다닌 것도 고역이었다.

학교 안 가서 좋았냐고 누가 묻는다면 말할 것이다. 멀쩡하게 건강해서 학교에 가고, 친구들도 만나 즐겁게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똑똑한 아이들, 참 좋은 생각은 그림에서 엄마와 함께 깨우치겠지?  영유아들에게는 괜찮은 그림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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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 책 읽는 고래 : 고전 5
진은영 글, 김정진 그림 / 웅진주니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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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이름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지만, 단지 철학자라고만 막연하게 알고있었을 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연 그의 삶과 책 자체가 연구해볼 만한 좋은 소재일 정도인 그런 인물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원문책을 분석한 이 책은 청소년이 쉽고 간결하게 니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니체. 어릴적부터 독서광이었기 때문에 눈이 장님과 다름없었고, 심각한 편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모순된 제목의 여러편의 이야기들을 실은 그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즐거운 학문'등을 통해서 수많은 작가들과 유명인사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그의 삶에 대해 니체 전문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구페르시아어 식 이름이라고 한다. 진리로 다가가는 한가지 방법중의 하나를 창시한 사람인만큼 그는 오랫동안 학문에 대하여 생각했으며, 그런 그의 사상은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10년이 넘게 진리를 탐구하며 연구하였고, 지혜를 충분히 쌓고서 그 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는 대립된 두 동물, 독수리와 뱀을 '사랑하는 나의 짐승들'이라 불렀으며, 그는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망각을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니체는 여러번 강조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행복하다고 주로 여기는 까닭이, 어렸을 때에는 불행한 기억을 하룻밤 자고나면 모두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망각은 때로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어릴 적에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기억이 있다고 하자. 그 기억을 망각을 했다면 나중에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수영에 도전할 수 있겠지만, 만약 물에 대한 공포심을 조성하게 되었다면, 물 곁에도 가지 못하는 겁쟁이가 될 것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원문을 통해 정오를 추구하는 위버멘시의 이야기 등을 직접 읽어보고 싶다.  어렵겠지만, 원문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철학은 어려워 보이지만 삶이며, 우리의 정신이라서 그런걸까? 그 세계를 조금씩 알아갈수록 점점 궁금증은 쌓여 가기만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니체의 생각과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내 걸음을 한발짝 내딛게 하는 지표가 되어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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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수많은 기록들

2007.2.24  mom-  수원 화성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주니어 김영사의 역사 체험  이벤트에 운이 좋게도 받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역사 체험을 하고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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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 24. 토요일. 맑음

제목:  수원 화성, 용주사, 융릉 탐사 보고서

같이 간 사람:  어머니, 강우영, 나(최 상철)
 

이번에 주니어 김영사출판사에서 특별한 초대를 받아 버스를 타고 화성과 용주사, 그리고 융릉(사도세자의 릉)을 보러 가게 되었다.  가기 전날 화성에 대한 책을 읽고 갔는데, 덕분에 체험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더욱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내친구 강우영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갔다. 과연 그 화성은 매우 아름다웠다. 화성의 벽은 시대에 맞지 않게 매우 잘 다듬어져 있거나 딱 맞춰서 끼워져있다. 이 돌이 네모로 반듯하게 쌓인 것보다도 이상한 모양이 서로 끼워져 있는게 더 튼튼하다고 한다. 역시 화성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군사적 목적으로도 매우 유용했는가 보다. 화성에는 옹벽이란 것이 있는데 이 옹벽안에서 활을 쏠수가 있어 방어가 무척 쉬워보였다. 또한 5개의 암문을 통해 그 구조상 몰래 들어온 사람도 쉽게 활을 쏠 수 있고 눈에 잘 띄지 않아 물자를 조달하거나 군사가 드나들 때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성벽에는 현안이라는 물구멍이 있는데 이 긴 물구멍을 통해 뜨거운 물이 나와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 오르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총구도 위로 올라온 부분 위에 세개씩 있는에 양쪽 옆은 직선이고 가운데는 경사지다. 왜냐하면 양쪽은 먼 군사를 공격하고 가운데는 가까운 군사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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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모든 건물에는 총구가 반드시 있다. 특히 화홍문은 7개의 홍예문을 가진 수문이다. 이 화홍문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한다. 화성에서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 여덟가지 중에서 하나가 바로 이 화홍문이다. 이 화홍문은 경치도 아릅다웠지만 그 때 화제가 일어나거나 물이 필요할 때 무척이나 유용했다고 한다. 이 화홍문도 적군이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총구도 있으며 물길은 쇠창살로 막아놓았다.  




화성에서도 화성의 모든 경치를 살펴 볼 수 있는 공심돈은 계단 모양이 나선형이어서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이곳에서도 총구가 있지만 그곳을 통해 먼곳을 살펴보면 정말 멋지다. 특히 봉돈이 하는 일은 5개의 횟불의 갯수를 늘렸다 줄였다 하며 나라의 상태를 알려준다. 그 당시의 전화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화성은 정조 임금때 최재공과 정약용 그리고 조심태와 많은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졌다.

이 화성을 만든 데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다.  

첫번째, 돌아가신 사도세자를 모시기 위해 지었다. 

두번째,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이다. 
 

이 화성안에는 화성행궁이라 하여 임금님이 머무르시는 궁이 있다. 이 화성행궁에 정약용의 거중기가 있었으며 그 때 사람들이 군사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연 석궁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쏘고 창을 내돌리는 모습은 매우 멋있었다. 



화성 답사도중에 연포 갈비란 가게에서 설렁탕 비슷한 갈비탕을 먹었는데 아주 거대한 뼈때문에 조금 불편했지만 그 맛이 일품이었다. 다시 화성을 좀더 둘러보다가 버스를 타고 용주사로 출발했다. 

이 용주사는 사도세자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사찰이다. 이 용주사는 왕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일반 절과는 달리 문짝도 있고 세개의 문이 있으며 가운데 문으로 임금이 다녔다. 이 용주사에서는 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사리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는데 부처를 믿다 죽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이 사리는 불교를 아주 열심히 믿으셨던 할머니에게서 수백개가 나왔다고도 하는데 석가모니에게서 84,000개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아주 빨리 진리를 깨닫고 부처가 되어 수만개의 사리를 만들어내신 석가모니는 역시 매우 대단하신 분 같다. 또한 지장보살에 대해서도 들었다. 이 지장보살은 지옥에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을 때 부처가 되어 어머니를 만나러 가겠다고 부처님과 약속했다.


그래서 이 지장보살은 자신을 도와주는 두 명의 사람을 이끌며 열심히 지옥에서 뉘우치게 하는 일을 맡는다고 한다. 지장보살님이 빨리 어머니를 만나러 가실 수 있게 모두 극락(천국)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또 절에서도 여러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바로 처음에는 중생으로서 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지내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한이 되면 절 안에서 지내며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다시 보살이 된후 최고의 단계 부처에 오르는 것이다.

 
여행비도 많이 들고, 시간을 쉽게 낼 수가 없어 화성에 가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에 다녀오게 되어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다. 아름답고  최고의 방어성인 화성. 그 아름다움은 어느 성도 따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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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조대왕의 수많은 기록들
    from 창동중1학년 2009-10-11 13:15 
    세종대왕도 문화의 왕이었으나, 정조또한 그러했다. 무수리의 아들 출신인 영조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급진적인 개혁 정신을 익힌 정조는 왕이 되어 스스로 검소하게 생활하고, 문화적으로도 전성기를 맞았다. 사극 '이산'도 정조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재위기간까지의 일생을 다룬 것이며, 다소 과장되긴 했으나 정조의 뜻깊은 배려가 거의 닮아있다. 특히 그는 도화서 화원들을 아끼고 온갖 그리믈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장려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역사적인 그림기록이
 
 
dowkv abdhjw 2011-04-0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tndnjdgktjddml eogksznlwmwha wktpglTj한글로 안써줌 니가해석하삼
 
만화 한국사 이야기 5 - 조선시대전기 삼성출판사 만화 한국사 이야기 5
이이화 원작, 김형호 구성, 원병조 그림 / 삼성출판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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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비로소 시작된 조선의 역사. 당시 조선은 이성계의 정책에 따라서 친명정책을 펼쳤고, 심지어는 나라 이름을 조선, 회령중 어느것으로 할지 명나라에게 골라달라고 요청까지 해 태조는 역사에 명나라에게 나라의 이름까지 고르게 했다는 오명을 남겼다. 그러나 친명정책이 오히려 우리나라에게 잘된 정책일지도 모른다. 중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속국이 되거나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조선 초기는 역시나 왕이 달라져서였는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나라를 건국하고 바쁘게 살았던 태조는 아들들을 두었는데 세자의 자리를 막내아들에게 넘겨주어 나라에 대한 공이 컸던 이방원은 특히나 이를 갈았고, 결국 왕자의 난을 일으켜 장남인 방간을 왕의 자리에 앉혔으며 그가 바로 결단력 없는 왕, 정종이다. 방원에게 시달려 결국 그에게 왕의 자리를 념겨주니, 그는 문화의 아버지 세종의 아버지이기도 한 태종이다. 

세종 때 수많은 인재들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휘황찬란한 역사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문종은 원래 체력이 약하여 결국 왕의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2년 만에 죽었으며, 그 뒤를 이은 단종은 문종이 오래 살지 못한 까닭으로 겨우 12살이었다. 권력을 잡게 된 수양대군은 단종에게 압력을 가해 결국 그에게서 왕권을 탈취,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그가 바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세조이다. 물론 그만큼 개혁을 많이 폈으나, 살인에 대한 업보인지 늙어서 피부병에 시달렸고, 불교에 깊이 매달렸다고 한다. 

조일 전쟁, 임진왜란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악운. 히데요시의 음모로 인해 결국 명과 일본 사이에 껴서 완충역할을 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던 우리나라의 악운이 어떠하였는가? 또 얼마 안있어 광해군의 자리를 빼앗고 왕이 된 인조는 후금에 대한 강경책을 펴서 결국 남한산성에서 항복을 하는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 전기부터 이렇게 수많은 난을 겪었다는 것이 참 슬프다. 하지만, 그만큼 빨리 단결하고 이겨내는 것이 우리나라의 특징이다. 조선시대 후기 이야기도 얼른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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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국사 이야기 4 - 고려시대 삼성출판사 만화 한국사 이야기 4
이이화 원작, 김형호 구성, 원병조 그림 / 삼성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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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영어식 이름은 Korea다. 발음하면 대충 코리아인데, 영어권에서 다른 나라의 이름이 정해지는 것은 그 나라의 본토식 발음이 최초로 전해졌을때의 이름이라고 한다. 당시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와 교류를 했으며, 그들이 영어권에 우리나라를 코려라고 전했고, 그렇게 고려는 코리아가 되어 우리나라 이름이 되었다. 일본도 니폰이란 발음이 영어권에서 어느새 재팬으로 바뀌어 그들의 영어식 이름이 되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영어식 이름이 되는데 바탕이 된 고려의 역사는 어떠할까? 고려는 후삼국시대에 온화한 정책덕분에 후백제와 신라를 모두 흡수한 왕건이 건국한 나라이다.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지방 호족의 딸들을 모두 부인으로 맞이하여 스펀지처럼 그들 세력을 모두 흡수한 왕건의 넓은 기량 덕분에, 고려가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고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신정권이 일어났던 때이다. 의종때에는 천대받던 무신들이급기야 문신 김돈중이 수염을 태워 그 수치를 잊지 않고 있었던 정중부를 중심으로 무신의 난을 일으켰고, 이의민, 최씨 권력이 차례로 정권을 잡고 원나라에 강경책을 취하여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원나라는 수차례 고려를 침략했고, 이 때 부처님의 힘을 빌기 위해서 최씨 정권의 지도 아래 팔만대장경을 제작했다. 앞뒤로 새겼기 때문에 정확히는 16만장이라 해야 하나, 당시 불교에서는 80000이 가장 큰 수라 여겼기 때문에 팔만이라 하였다. 

몽골군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나라 왕들은 이름에 충자를 붙여 몽골에 충성해야 했던 것처럼 몽골에게 상당히 많이 시달렸다. 그러나 신돈, 공민왕등의 드라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공민왕 시대에 이르러서야 몽골의 지도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차츰 주변 환경 덕분에 고려는 원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려는 또다시 이성계에 의해서 이름이 바뀌게 되었으나, 이제는 새로운 왕조의 시작을 의미한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만나러 다시한번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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