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산하인물이야기
제니퍼 팬델 글, 오주영 그림 / 산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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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인권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박애주의자, 평화주의자들은 어떠한 종교를 광적으로 믿는다. 그러기에 가능한 것이 바로 이러한 실천들이라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겐 어떤 믿어야 할 존재가 있고, 그 존재를 사람과 동일시할 수만 있다면 어떤 사회적 약자라도 마치 신인 양 보살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도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흑인의 자유를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라면서 바로 인권 운동을 실천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흑인 차별 제도에 대해 매우 강경했고, 흑인들에게 요구되늰 대부분의 사항들을 그는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마틴도 커서 그의 아버지처럼 행동해 보았지만, 개선해야 할 점은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고서 흑인 운동을 위해 연설을 하고,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그가 처음으로 벌인 운동은 바로 '버스 안 타기' 운동이다. 그는 버스에서 선생님과 함께 백인 전용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백인들이 앉을 자리가 없자 버스 운전수가 그들에게 일어나라면서 서서 가라는 말을 듣고, 우선 버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완전히 폐지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흑인 택시 운전수들에게 5일동안 버스 요금으로 택시를 태워 줄 것을 요구하였고, 흑인들에게 다 같이 버스를 타지 말자며 운동을 벌였다. 그러자 버스를 이용하는 주요 고객인 흑인이 버스를 타지 않자 버스 회사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법을 폐지하지 않다가 결국엔 항복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많은 주에서는 백인 우월주의등이 숨어 있었는데, 이들은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해야 할 존재라 여기면서, 어린 아이들조차도 시위에 참가하면 몽둥이로 때리고 짓밟고 탄압했다. 하지만 이들은 폭력을 쓰지 않으며 저항했고, 이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흑인들의 편이 되주어 그들을 지지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아쉽게도 그의 호텔 발코니에서 저격수에 의해 총살당하고 만다. 백인들이 그를 그토록 증오했던 것처럼 필히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그래도 그의 묘비명에서는, 그가 있었기에 흑인들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는 메세지가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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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새시대 큰인물 9
부수영 지음, 이혜주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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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아있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이 아껴주는 당신을 언제나 사랑합니다. 신의 영광 아래 그대에게 복만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아그네스 곤자 보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신의 메세지라 할 수 있는 것을 받고서 신의 사랑을 실처한 위대한 인물이다. 전염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병 환자에게 손길을 내밀고, 그들의 몸을 직접 씻기고, 사랑하고 진정 가족처럼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너무 이기적인 삶 속에 살고 있다. 심지어 우리 가족조차도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법을 잊어버렸는데, 하물며 세계의 힘든 사람들을 자기 가족처럼 여기고 그들을 위하여 온갖 더러운 일들을 무릎쓰고 할 수 있음을 우리는 시인하는가? 

테레사 수녀는 세계의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곳에 어디든지 달려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모두 해냈다. 물론 그녀가 홀로 이 일을 이뤄 낸 것은 아니다. 그녀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옆에서 그녀를 보좌해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들이 있고, 그녀가 보살피는 아이들, 환자들을 위해 기꺼이 힘을 건네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왜 평화주의자를 사랑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들은 주변에서 어떤 사람이 평화를 위해 온갖 일을 실천하고 있다면, 그것이 전염되어 나 또한 평화를 절로 실천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일반 사람들에게 100만 달러를 주며 그들에게 나병 환자를 씻기라고 하면 그들은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마더 테레사에게 이 질문을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유, 저는 10억 달러를 준다고 해도 그렇게 더러우면 못 씻겨요. 하지만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아세요? 그들은 모두 주님이기 때문이죠."

테레사 수녀가 신께로 돌아가는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는지 모른다. 전세계의 어느 누구든지 가족처럼 여기고 아껴준 사람 한 명을 잃는다는게 얼마나 큰 슬픔인지... 그녀처럼 항상 신께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고 싶은 마음은 그득하다.(실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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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새시대 큰인물 7
문명식 지음, 이상권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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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영향력 있는 평화주의자 간디. 그의 일생은 총살로 끝나 버렸으나, 그가 이룬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변호사가 되어 큰 돈을 벌 수도 있는 그였지만, 인도인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 아래 만들어진 수많은 기적의 역사를 살펴보자. 

간디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가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영국에서 법률학을 공부한 후, 인도로 돌아와 법률 사무소를 차렸다가 한 건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한 회사에서 소송 일로 그에게 변호 일을 요청했고, 기차의 일등석 표를 받아서 가려다가 인도인이라며 기차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처사는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인도인은 영국인과는 달리 가난해야만 했으니까. 

그 후 그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다 같이 협동하면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나탈에서 가난한 노동자를 위해 변호를 해주어 수많은 인도인들을 자유의 몸으로, 또는 부당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잇도록 도와주었고, 영국의 악법들을 모두 폐지할 수 있도록 아픈 몸을 이끌고 온갖 시위의 맨 앞자리에 서서 평화롭게 비폭력 운동을 전개했다. 영국은 그를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온갖 일들을 해 보았지만, 평화를 위해, 인도의 독립을 위해 나아가는 그의 당찬 발걸음만큼은 아무도 막아낼 수 없었다. 

간디 같은 인물이 살아있었다면, 그는 평화를 위해 더 많은 인들을 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위대한 박애주의자를 다시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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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5 - 대한제국부터 통일운동시대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엮음 / 해와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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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슬슬 외국과의 교류가 시작되어서 당시의 사진을 보면 의복도 서양식으로 갖춰입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 때의 잘못된 외교 정치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서있었다는 사실이다.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일본의 디딤돌이 되주어 전쟁을 일으키는데 큰 밑거름이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순종을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의 역사는 완전히 끝나버리고 만다. 한반도는 대일본제국과 같은 영토라면서, 막상 조선인은 그들과 같은 수준이 될 수 없단다. 엉터리 논리로 억압하려고 하니, 사람들이 울통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독립을 위하여 많은 일들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스스로 독립을 일으킬 이렇다한 변화는 전혀 주지 못했다. 김구가 조직한 독립군이 미처 싸우기도 전에 일본이 항복하여 자주 독립을 못한 게 안타까운 점이다. 게다가  우리문화 곳곳에는 일본의 흔적이 뿌리뽑히지 못하고 남아 있다. 

미국의 원자핵 투하 이후, 일본은 전쟁에서 항복을 선언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돌입한다. 광복은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또 다시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나라들이 그러했듯이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으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북한과 이승만 등을 중심으로 한 남한으로 갈린 것이다. 김구는 그토록 남북의 통일을 바랬지만, 평화를 바랬던 수많은 위인들의 일생의 끝처럼 암살을 당해서 꽃이 지고 만다. 

그 후에 일어난 전쟁이 바로 6.25 한국 전쟁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로 북한측은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남한측은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한참 세력이 밀려들어오고 있는 상황에 UN군의 지원공격이 시작되었고, 다시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가지만 중국, 소련군의 개입으로 지금의 휴전선 위치에서 전쟁을 멈추어야 했다. 

지금 현재의 상황에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사실을 모두 감안해야만 한다. 단지 그 기간이 좀 길어진 것일 뿐, 어느 한 쪽에서 전쟁을 다시 시작하자고 주장하면 어쩔 수 없이 시작해야만 하는게 바로 휴전의 상태다. 전쟁의 공포를 줄이고, 어떻게든지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후손들에게 완전한 한반도의 영토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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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대학 - 세계의 리틀 아이비리그
동아일보 특별 취재팀 지음, 김진경 책임집필 / 동아일보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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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목표를 무조건 아이비리그나 세계의 온갖 커다란 대학들로 정해보지 않았는가? 명문대라 불리는 이런 커다란 대학 속에서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 파묻혀 흘러가듯 지나가는 교수의 강의를 듣고, 가끔은 바쁜 교수대신 조교에게 수업을 듣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람들이 왜 명문대를 찾겠는가? 명문대를 나오면 그만큼 능력이 좋다고 인증이 된, 그만큼 뛰어난 학술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상이 너무 과도해지나보니 이젠 이름뿐인 대학을 아직도 들먹이며 나는 이 대학 나왔으니 일류 엘리트다, 하고 소리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큰 대학은 그만큼 장점도 많지만, 작은 대학에서는 오히려 학생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며 더 많은,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럼 세계의 강한 대학들을 모두 살펴보자. 

대학들은 미국 동부, 미국 중 서부, 아시아, 유럽 쪽으로 나뉜다. 워낙 작은 학교들이라 전부 수천명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작더라도 혜택도 많고, 교수는 많은 데 비해 학생 수는 적어 교수가 마치 초등학교 담임제처럼 학생 하나하나를 관리하기가 매우 쉽다. 어디 그러기가 쉬운 일인가?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대학은 바로 미국의 쿠퍼유니언대이다. 뉴욕에 위치해 있으며, 학비도 4년 전액 면제이다. 그래서 가장 인기가 좋은 대학 중 하나로, 대표적인 작지만 강한 대학이다. 이 대학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교수의 확실한 관리가 시작되기 때문에, '죽을 만큼 공부'를 하지 않는이상 버티기 힘든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그만큼 머리를 쓸 일도 많고, 잠시도 쉴 틈이 없을 정도이다. 그 고난을 이겨내는 것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옆에서 공부하도록 계속 보조한다는 사실이 참 마음에 든다. 

아시아, 유럽쪽에도 대학을 갈 곳은 매우 많다. 특히 유럽은 대학 학비가 무료라고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물론 유럽 내국인에 한해서이다. 세금도 내지 않는 외국인에게 학비를 무료로 대줄 학교가 어디 있겠는가, 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매우 비싼 학비를 내자니 그곳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 참 안타깝다. 

지금껏 커다란 대학만을 목표로 하고 있던 것을 조금 수정해야 할 듯 하다. 커다란 대학을 가는 이유가, 더 많이 공부를 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이지, 그냥 무조건 ~대학 나왔다는 명찰만 흭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규모는 작아도, 결코 작은만큼 안 좋은 대학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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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2010-04-0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이런학교가;잘보구갑니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시고 생각이 깊으시네요 저는 그당시 그러지 못했던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네요

최상철 2010-04-06 10:21   좋아요 0 | URL
d님 따뜻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2010-04-2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쿠퍼유니언대 저희 아이도 갔음 얼마나 좋을까? 하던 학교였는데 최상철님도 생각하고 계셨군요.미래에 저희 딸이랑 함께 다녔으면 좋겠네요.^^

최상철 2010-05-16 23:36   좋아요 0 | URL
현님의 따뜻한 댓글 감사드리며 따님이 꼭 꿈을 이루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