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대장정
ㅡ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의 신화 - P131

여덟 번째 통일 영웅 - P135

인민해방군으로 이름을 바꾼 홍군 - P135

노동자·농민·지식인 민족부르주아지 대표가 모인 ‘인민정치협상회의‘는 ‘중국인민정부‘를 수립하고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을 선출했다. - P136

최초의 ‘아시아적 전제국가‘를 세운 인물은 기원전 202년 항우를 꺾고 한(漢)을 세운 유방(劉邦)이었다. - P137

민권·민족·민생을 강조한 ‘삼민주의‘를 내세워 전제정치 타도와 공화국 수립을 추진한 국민혁명의 지도자 쑨원(孫文) - P138

장제스는 1928년 베이징을 점령해 군벌시대를 끝내고 난징에 새 정부를 세웠다. 그것을 ‘국민정부‘ 라고한다. - P140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는 말이 전국대회였지 소련이 주도한 공산주의국제연합(코민테른) 참관인 둘을 빼면 참석자가 열둘밖에 되지 않았고 당원은 53명에 불과했다. - P141

장제스를 불신하고 국공합작에 반대한 마오쩌둥은 후난성에서 조직한 농민조합과 광부, 국민당 반란군을 규합해 자기 방식의 투쟁을 시작했다. - P142

주더는 쓰촨성 출신이지만 1912년 제2국민혁명 때 윈난성 신식 군대에서 활약해 공안국 장관이 됐다. - P143

편의상 징강산 일대의 소비에트를 장시 소비에트‘, 공산당 군대를 ‘홍군‘, 국민정부군과 군벌과 민단 등 장제스가 지휘한 병력을 ‘백군(白軍)‘이라 하자. - P144

홍군은 전투를 치를 때마다 무기를 노획하고 병력을 늘렸을 뿐 아니라 ‘중화소비에트 정부‘를 정식으로 수립하고 마오쩌둥을 주석으로 선출했다. - P145

‘항일구국전쟁을 위한 장정‘ - P146

에드거 스노의 기록보다는 홍군 특공대가 마을 주민에게 돈을 주고 구한 배로 강을 건너 북안의 쓰촨성 세관을 점령했다는 『대장정』 (해리슨 E. 솔즈베리 지음, 정성호 옮김, 범우사, 1999), 274~275쪽의 증언이 더 믿을 만하다. - P147

마오쩌둥ㆍ주더ㆍ린뱌오ㆍ펑더화이 등 홍군 수뇌부 - P148

자오핑두와 루딩교에서 치러진 도강작전은 대장정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전투였다. - P149

마오쩌둥의 지략과 홍군의 전술이 아무리 뛰어났다 해도 국민정부가 그처럼 무능하고 부패하지 않았다면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 P150

마오쩌둥이 1938년 5월 강연에서 말한 대로 홍군은 군사적 열세를 정치로 극복했다. - P152

쉬하이둥은 ‘어위완소비에트‘를 세웠고 류즈단은 서북 내륙에서 산시(陝西)·간쑤·닝샤(寧夏) 소비에트의 터를 닦았다. - P153

시안(西安)사건 - P153

입법권과 행정권을 하나로 통합하고 공산당이 지휘 감독했다는 점에서 산시성(陝西省) 소비에트는 ‘붉은 중국‘을 키운 인큐베이터였다고 할 수 있다. - P154

병사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웬만큼 이해했으며 자신이 참여한 전쟁의 정당성을 확신했다. - P156

민족통일전선전술 - P157

사령관 장쉐량은 총통의 각성을 위해 시안 체류를 요청하고 안전을 보장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국민정부가 모든 정치세력과 손잡고 일본과 싸울 것을 요청하는 ‘구국의 요구‘ 8개 항을 제시했다. - P158

쑨원의 처제이자 장제스이 아내인 쑹메이링(宋美齡) - P160

국민당과 공산당은 각자 이득을 봤다. - P161

장제스는 소비에트를 제외한 중국 전역에서 확고한 권위를 세웠다. - P162

마오쩌둥은 백군의 봉쇄망을 풀어 물자와 인력을 보충하면 항일전쟁과 내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 P162

그러나 중국은 광활한 나라였다. 100만 일본군도 점(도시)과 선(철도와 도로)밖에 점령하지 못했다. - P163

‘신4군 사건‘은 장제스의 철수 명령을 받고 일본군 배후지역으로 이동하던 신4군 정예 9천 명을 국민정부군 8만 명이 포위 공격해 궤멸한 사건이다. - P164

1949년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마오쩌둥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 P165

장제스는 대만의 원주민을 학살하면서 중화민국을 세웠다. 1975년에 죽을때까지 지킨 총통 자리는 아들 장징궈가 물려받았다. - P166

레닌은 혁명조직에서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고 공언했지만 마오쩌둥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을 ‘새로운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 P167

스탈린이 ‘사회주의 차르‘가 된 것처럼 마오쩌등도 ‘사회주의 황제‘가 됐다. - P168

인민이 굶어 죽은 대참사가 벌어진 뒤에야 마오쩌둥은 실용주의자 류샤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鄧小平)에게 각각 국가 주석과 당서기 직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 P169

덩샤오핑 이후 권력자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마오쩌둥 때와 같은 개인숭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 P170

빈부격차는 여느 자본주의사회못지않으며 공직사회의 부패는 어떤 자본주의 사회보다 심하다. - P171

그러나 정치체제만큼은 마오쩌둥이 ‘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설계한 그대로다. - P171

"20세기는 태양 아래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은
‘역사의 시간‘을 체감하기에 좋은 100년이었다.
그토록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생겨난 100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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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러시아 혁명
ㅡ 아름다운 이상의 무모한 폭주 - P69

핀란드역에서 - P73

레닌의 러시아 귀환 과정과 핀란드역 연설은 『핀란드역까지』(에드먼드 윌슨 지음, 김정민·정승진 옮김, 실천문학사, 1987), 407~425쪽을 참조해 서술했다. - P73

레닌이었다. 본명이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Viadimir lich Ulyanov)인 그는 ‘2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아내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Nadlezhda Krunskaya)와 함께 스위스 취리히에 있었다. - P74

한 사람의 기질과 의지와 목표의식이 역사에 그토록 크고 깊은 각인을 남긴 경우는 흔치 않다. - P74

데카브리스트(12월) 반란 - P75

알렉산드르 2세
해방자 황제 - P76

‘브나로드(인민 속으로) 운동‘이 허망한 실패로 끝나자 나로드니키는 사회혁명당을 비롯한 여러 징치단체와 비밀결사를만들어 정부 요인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다. 계몽군주 알렉산드르 2세를 죽인 것도 그들이었다. - P77

피의 일요일
1905년 1월 22일(러시아력 1월 9일) 일요일 - P78

혁명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던 가폰 신부가 몰래 귀국해 다시 경찰과 손잡았고 ‘배신자‘를 사회혁명당 당원들이 ‘처단‘ 한 것 - P80

레닌은 차르 정부를 타도하고 세울 정부를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또는 절대다수의 소수에 대한 독재‘라고 했다. - P81

레닌 그룹은 볼셰비키 (Bolstheviki, 다수파)를 자처하면서 반대파를 멘세비키(Mensheviki, 소수파)라 했다. - P81

포템킨호 반란사건 1905년 6월 - P81

트로츠키는 ‘피의 일요일‘ 직후 망명지에서 돌아와 불같은연설과 빛나는 글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반면 레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 P82

러시아를 집어삼킬 듯했던 혁명의 파도는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 P83

‘유능한 독재자‘ 스톨리핀은 ‘건전한 독재‘를 했다. - P84

니콜라이 2세는 보통 사람에게 미치지 못할 만큼 나약하고우둔했으며, 자신보다 더 어리석은 독일 출신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휘둘렸다. - P85

시베리아 출신 정교회 수도자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이 황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P85

서른여섯 살의 엘리트 정치가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말했다. "장관들을 체포하고 우체국, 전신전화국, 철도역, 정부 청사를 점령하라!" - P88

선진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라 러시아 같은 ‘자본주의 세계제제의 약한 고리‘에서 일어난다. 그게 법칙이다. - P90

 레닌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을 비롯한 수정주의자‘ 와도 싸웠다. - P91

볼셰비키혁명 - P93

1905년에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를 이끌고 1917년 ‘붉은 군대‘의 총사령관이 될 사람, 트로츠키였다. - P93

레닌이 케렌스키를 피해 핀란드로 도망가 있는 동안 볼셰비키를 명실상부한 다수파로 키웠고, 귀족·지주·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우파가 외국의 지원을 받으며 혁명정부를 공격했을 때는 붉은 군대‘를 지휘해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 P95

제2차 노동자·병사 소비에트 전국대회는 혁명의 승리를 선포했고 레닌은 ‘노동자 농민의 정부‘ 인민위원장이 됐다. 이 사건을 ‘10월혁명‘ 또는 ‘볼셰비키혁명‘이라고 한다. - P96

볼셰비키혁명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바꿨다. - P98

레닌과 볼셰비키는 말과 글로만 존재하던 꿈을 실현하려고 했다. - P99

첫째, 사회혁명은 구체제가 스스로 무너진 뒤에 일어났다. - P99

둘째, 사회혁명은 구체제보다 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낳았다. - P100

셋째, 사회혁명은 열병과 같아서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을정도로 잔혹한 행위를 했다. - P100

그들의 ‘위대한 실험‘은 끔찍하고 허망한실패로 끝났다.
이유는 공포정치와 경제의 비효율 - P103

4
대공황
ㅡ 자유방임 시장경제의 파산 - P105

뉴욕의 ‘끔찍한 목요일‘ - P109

19세기부터 여러 차례 심각한 불황을 겪었지만 그토록 길고 파멸적이고 세계적인 불황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대공황(大恐院, Great Depression)이라고 한다. - P110

침체(recession)는 가볍고 불황(depression)은 심각하다. 불황이 갑자기 찾아와 모든 경제주체가 공포에 빠지면 공황(panic)이고, 그런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위기 (crisis)라고 한다. 대공황은 이례적으로 깊고 길게 이어진 불황이었다. - P111

연방준비은행(FEB)이 1913년에 출범했지만 은행의 연쇄파산을 막을 만한 권한이 없었다. 금융 시스템이 마비되자 기업 도산의 회오리가 불어닥쳤다. - P113

대공황은 시장경제의 특성과 결함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시장은 인간의 ‘필요(need)‘가 아니라 지불능력이 있는 소비자의 ‘수요(demand)‘에 응답한다. - P114

만인이 저마다 자기 욕망을 충족하게끔 허용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사회 전체의 부를 최대로 키워준다고 한 애덤 스미스(Adamn Smith)의 이론은 틀리지 않았다. - P115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는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면 가격변동을 매개로 한 ‘자동 조정 시스템‘이다. - P116

자본주의체제와 주류 경제학은 파산했다. - P120

케인스혁명
루스벨트와 히틀러의 대증요법이 효과를 낸 이유는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hard Keynes)가 1936년에 출간한『고용, 이자와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설명했다. - P120

언론인과 정치인은 의심했지만 젊은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 P123

거시경제이론은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난 1970년대 후반까지 미국과 유럽 국가의 경제정책을 좌우했다. 혁명이라고 해도 될 만큼 세상에 영향을 줬다. - P124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소중히 여긴 영국·프랑스 미국은 ‘정부의 보이는 주먹‘으로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수정했지만, 후발 산업국인 독일·일본·이탈리아는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전체주의 또는 파시즘(fascism)으로 내달렸다. - P125

미국은 대공황 시기에 의미 있는 제도 변화를 이뤘다. 마뜩잖게 여긴 이들은 ‘복지국가‘ 시대가 왔다고 개탄했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의 제도 개혁은 사회를 어느 정도 바꿨다. - P127

참혹했던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연 속에서 끝났다.
사회주의자들의 희망사항인 자본주의체제 붕괴는 없었다. - P128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진 1990년 이후 자본주의는 ‘더나은 대안이 없는‘ 경제체제가 됐다. - P129

인간은 자신이 요술램프에서 불러낸 거인을 다루지 못하는 소년과 같았다. 오늘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 P129

우리의 20세기와 전환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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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지음

서문 - P5

오래된 책을 다시 펴내며 - P5

이 책은 20세기 세계사의 열한 가지 큰 사건을 다룬 보고서다. - P5

역사를 안다고 해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마는, 나는 그저 아는 것 자체가 좋아서 다른 나라 역사를 공부했다. - P6

‘1980년대 지식 청년의 지적 반항‘ 이라는 평을 들은『거꾸로 읽는 세계사』에는 예전의 내가 있었다. - P7

돌베개

20세기 세계사의 위대한 성취인 민주주의와 디지털혁명의혜택을 한껏 누리며 글을 썼다. - P8

나는 교과서와 언론이 소홀하게 취급하는 몇몇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고 어떤 사건은 다른 시각으로 서술했다. 그래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다. - P9

1
드레퓌스 사건
ㅡ 20세기의 개막 - P17

반역자 드레퓌스 - P21

군사기밀을 누설한 내부자를 적발하려고  - P21

이스라엘은 사건 자체에 초점을 두고 관련 문서와 증언 등 사료를 검토해 육군 정보부가 처음부터 드레퓌스를 표적으로 삼아 음모를 꾸몄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 P21

범인의 태도였다. 드레퓌스는 단 한 번도 혐의를 시인하지 않았다. - P22

우연히 진실을 발견한 조르주 피카르 중령은 그 진실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드레퓌스 사건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25

국방부와 합참본부 장군들이 피카르의 보고를 제대로 처리했다면 드레퓌스는 1896년 여름에 풀려났을 것이다. - P26

드레퓌스의 형 마티외는 동생의 이름을 다시 세상에 불러내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 P27

에밀 졸라의 고발 - P28

그때 작가 에밀 졸라(Émile Zola)가 참전해 전황을 단숨에 바꿨다. - P30

드레퓌스의 결백을 증명하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자 재심 반대파는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사실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 - P32

그것은 전 인류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할, 우리의 비열함에 대한 고백록인 셈이다. - P35

졸라와 피카르 중령뿐 아니라 드레퓌스 사건을 조작하고 진실을 은폐했던 국방부와 참모본부의 장군들도 소송에 휘말렸고, 그 소송 하나하나가 저마다 만만치 않은 정치적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 P36

국방부는 사관학교 연병장에서 드레퓌스의 육군소령 복귀식을 열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 P37

드레퓌스 사건을 오래 기억하는 까닭은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를 알린 사건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P39

드레퓌스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 국민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깊이 체득했다. - P40

드레퓌스 사건은 ‘지식인과 언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 P41

드레퓌스 사건은 유럽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P43

2
사라예보 사건
ㅡ 광야를 태운 한 점의 불씨 - P45

사라예보의 총성 - P49

저격범은 열아홉 살의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 피해자는 오스트리아ㅡ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였다. 황태자비 조피는 즉사하고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 암살사건을 ‘사라예보 사건‘ 이라고 한다. - P49

보스니아ㆍ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등으로 흩어진 세르비아 민족은 오스만제국의 세력이 약해진 19세기 초에 무장 독립투쟁을 시작했고,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이 부딪친 두 차례의 ‘발칸전쟁‘에서 러시아 편에 서서 싸운 끝에 1882년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어 세르비아왕국을 수립했다. - P50

프린치프는 보스니아 서부 시골 마을에서 무슬림 지주의 땅을 소작하는 세르비아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 P51

프린치프가 쏜 총알은 바싹 마른 들판에 던진 불씨였다. 그때까지 본 적없는 화염을 일으켜 유럽을 불태우고 세계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 P52

유럽의 화약고 - P53

사라예보 사건은 여러 단계를 거쳐 ‘국제전‘으로 번졌다. - P54

합스부르크제국‘은 중세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이 빈에 거주지를 두고 수백 년 동안 지배한국가를 통칭한다. 이 글에서는 맥락에 따라 합스부르크제국, 오스트리아ㅡ헝가리제국 또는 오스트리아라는 국명을 사용했다. - P55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식민지 쟁탈에 혈안이 된 ‘부르주아 정부‘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 P57

400만 노동자의 이름으로 - P57

독일을 중심으로 한 진영을 ‘동맹국이라 하고 영국·프랑스쪽을 ‘연합국‘이라 하자. - P59

제국들의 무덤 - P61

‘평화원칙 14개 조항‘을 발표 - P62

① 공해의 자유 항해권 보장, 평등한 국제무역 체제 수립
② 군비축소
③ 식민지 문제의 공정한 해결
④ 러시아 내정에 대한 불간섭
⑤ 벨기에 주권 회복, 알자스-로렌의 프랑스 귀속, 폴란드 독립 보장
⑥ 민족적 자립 원칙에 의거한 이탈리아 국경 재조정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민족문제 해결
⑦ 발칸 지역의 민족적 독립
③ 오스만제국의 튀르크인 영토주권 존중과 여러 민족의 자치 보장
⑨ 국제연맹 창설 - P62

민족자결주의 - P63

사라예보 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사건이 제1차 전쟁의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 P64

영국 경제학계의 이단아 존 홉슨(John Hobson) - P65

제1차 세계대전은 돈과 권력을 향한 탐욕이 과학혁명의 날개를 달고 벌인 참극이었다. - P67

"과학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정신은 진보하지 않는다." - P67

독일 역사가 레오폴트 폰랑케(Leopold von Ranke)의 말은 진리가 아니어도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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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들이 저 지경이 된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탓일지도 모른다.  - P24

추리소설의 여왕 P. D. 제임스가 쓰단 한 편의 SF

2
2021년 1월 5일 화요일 - P27

무인지대 - P28

C두 자매의 삶은 아주 달랐다. - P29

그러나 조지 경은 사격 솜씨가 뛰어났다. 어머니도 그 점은 인정했을 것이다. - P31

긴 여름방학 몇 주간 잰의 부모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 P33

그는 내가 그 나들이를 꺼리는 이유가 실패를 향한 두려움과당혹감과 수치심 때문이 아닌 양 말했지만, 잰 역시 그게 정확한 이유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P35

잰도 나도 어른들의 판단에 은근히 동의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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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8일 월요일 - P39

나는 잰이 자기 아버지를 준남작 말고 다르게 부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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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 P377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스카와가 물었다. "니레이가 스기에의 실험실에 드나든다는 거 말이야. 언제부터 알았어?" - P379

화가 나서 죽였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라고 미네기시는 생각했다. - P380

‘내일 2시 근육조직 검사, 중식 후 비타민제 대신 첨부한 약을 먹을 것‘ - P381

"닛세이팀의 가타오카 트레이너." - P383

그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은 저 니레이에게 자신이 살의를 품었다는 사실이었다. - P383

그걸 마스터하지 않고서는 니레이가 될 수 없어. - P385

그토록 수많은 시간을 들여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자신이 끝내 손에 넣지못한 것을 그 시스템‘이라는 것으로 쉽게 얻어낸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 P386

쇼는 완전히 니레이의 복제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쇼를 죽일 수 없다. - P387

하지만 저는 훨씬 이전부터 약을 바꿔치기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 P388

거짓말 - P389

전부터 그가 사이버드 계획을 어쩌면 알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었으니까요. 딱히 근거는 없습니다. - P390

다만 그가 제발 자수했으면 하는 심정이었어요. 범행 동기를 충분히 알고 있는 만큼 저도 괴로웠으니까요. - P391

"아뇨, 그건 아닙니다. 자수를 권하는 편지는 썼지만, 경찰에 밀고하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 P392

"이렇게 미적거리고 있다가는 다음 을림픽 때 하라공업팀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부터 죄다 떨어진단 말이야." - P393

인건비가 아까워 스태프도 제대로 채용해주지 않는데 수천만 엔, 아니, 어쩌면 수억 엔이 들지도 모를 설비를 승낙해줄 리가 없는 것이다. - P394

사이버드 시스템 - P396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사와무라는 생각했다. - P397

왜냐면 우리가 니레이와 계약한 내용중에 약물 관련 테스트는 일절 없다는 조항이 있었어요. - P398

또다시 특별한 트레이닝을 받으러 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 P399

‘쇼는 대체 이 시간에 혼자서 뭘 하려는 거야.‘ - P400

야구방망이를 마구휘두르며 CPU며 제어박스를 차례차례 때려 부수고 있었다. - P401

넓고 고요한 실험실에 사와무라와 상처 입은 쇼, 그리고 파괴된 컴퓨터가 있을 뿐이었다. - P402

쇼가 시스템을 파괴해버리는 바람에 ‘사이버드 시스템 엘름‘은 환상이 되고 말았다. 이제 어느 누구도 니레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 P403

"컴퓨터를이용해 스킬을 마스터하다니, 그게 정말 가능한 거냐?" - P404

헬스장에서 나온 사람? - P405

그날 밤 니레이가 헬스장에 있었다….
그게 이번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라고 사와무라는생각했다. - P406

미네기시의 살인 계획을 미리 알았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 - P407

니레이 선수는 틀림없이 그걸 헬스장에서 발견한 독극물과 연결해서 생각해봤을 겁니다. - P408

니레이 선수는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 독약을 먹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어요. - P409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가 실제 독약을 먹은 것은 점심식사를 한 직후가 아니라 조금 더 나중이었다는 거예요. - P410

그 형사도 짐작만 할 뿐이야. 결코 나를 몰아붙일 수 없어. - P411

"쇼를 위해서야."
그녀의 귀에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 P412

"쇼를 위해서야!"
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자신의 집착 때문이라는 것을 유코는 알고 있었다. - P413

후카마치는 먼 곳을 보는 눈빛을 하더니 뭔가 안 좋은 기억이떠오른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유코, 이제 와서 새삼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어떻게든 그건 중단시키는 게 좋아." - P414

모두 다 그 무선기의 잡음을 무의식중에 들었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여버린 거야. - P415

일종의 발잡 - P416

미쳤다. 쇼도 아버지도……. 유코는 기계 뒤에서 파들파들 떨었다. - P417

미야노모리 경기장에서의 그사건 - P418

이대로 니레이가 죽는다면……. - P419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에게 속아 넘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 P420

쇼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어머니와 누나의 얘기를 들었다고도 듣지 않았다고도 말하지않았다. - P421

그 기계가 아니었으면 니레이의 발꿈치도 못 따라갈 놈 주제에. - P422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 P423

스기에 씨가 갑자기 스키점프계를 은퇴하겠다고 - P424

인간다운 스포츠 - P425

그리고 새가 된 자신의 모습을 사와무라는 상상했다. - P426

옮긴이의 말

천재를 뛰어넘어 - P427

스키점프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 선수 니레이 아키라,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재능으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다. - P427

수사를 맡은 사쿠마 형사, 니레이의 연인 유코, 코치 미네기시, 그리고 니레이의 재능에 밀려 만년 2위였던 사와무라 선수까지 4인의 시점에서 번갈아 사건을 지켜본다는 치밀한 구성이다. -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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