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비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권으로 전면 개정판을 새롭게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둠에 잠긴 비정한 도시, 차가운 말을 툭툭 내뱉는 무심한 탐정,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를 통하여, 자타공인 일본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 스타일리스트 하라 료. 그의 첫 등장을 알린 전설의 데뷔작인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만난다. 화려한 도쿄 외곽의 허름한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가 혼자 지킨다. 오른손을 주머니에 감춘 낯선 의뢰인이 사에키 나오키라는 이름의 르포라이터가 이 사무소를 찾은 적이 있냐고 물은 뒤 20만 엔의 현금을 남긴 채 사라진다. 사와자키는 알 수 없는 의뢰인과 영문 모를 의뢰 내용에 당황하는데 이내 유력 미술평론가 사라시나 슈조의 나라즈카 재무 변호사가 그 르포라이터의 행방을 알기 위해 역시 사와자키를 찾아오고, 르포라이터 나오키의 실종은 당시 세상을 발칵 뒤엎어놓은 사키사카 신야 도쿄 도지사 저격사건과 맞닿아 있음이 밝혀진다. 얽히고 설킨 복잡한 플롯과 수수께끼를 품고있는 매력적인 등장인물, 철저하게 계산된 대사, 현실감 있는 전개가 어우러져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고품격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탐정 사와자키의 활약상은 나오키상을 수상한 『내가 죽인 소녀』로 이어져, 이후 『안녕, 긴 잠이여』, 『천사들의 탐정』,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등으로 계속 이어진다.
사전적 의미로 계란 완숙(Hard Boiled)을 뜻하는 ‘하드보일드’는 자연주의적인 혹은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태도로 마주한 채 불필요한 수식은 일체 걷어내고 신속하고도 거칠게 사실만을 쌓아올리는 문학적 스타일을 지칭한다.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 등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중에서도 특히 레이먼드 챈들러의 광팬임을 자청하는 하라 료는 뒷편에 단편 「말로라는 사나이」를 수록하여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전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페르소나 ‘필립 말로’의 “남자는 터프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부드럽지 않으면 살 자격이 없다”라는 대사를 직접 인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문득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를 찾아 읽어야 겠다고~
2021.5.21.(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