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외 그림, 황보석 외 옮김,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식 각색 / 미메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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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지급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024년 4월 30일 작가 폴 오스터는 타계했다. 최근 그의 마지막 책을 읽었다. 그전까지는 이름만 익히 들었고 몇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을 뿐이다. 1주년이 된 시점에서 만난 도서는 작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도서였고, 한편으로는 부드러운 문체로 읽는데 어렵지 않았다. 오늘 만난 <뉴욕 3부작>은 익히 들었지만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나에게 웹툰으로 읽는것이 생소하면서 두근거렸다. 도서는 세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각각의 내용 같지만 이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몽환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아닌지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었다.

소설은 작가 퀸이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폴 오스터 탐정을 찾는 전화 하지만, 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전화가 걸려오리 않을즘 퀸은 오히려 그 전화를 기다리고 결국 자신이 폴 오스터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한 작가의 삶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여준다. 탐정 블루에게 블랙이라는 남자를 감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의뢰인의 요청으로 감시를 하지만 하면 할 수록 블루는 공허함을 느끼고 반면 블랙의 존재가 생각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반전을 맞이한다. 마지막 작품은 작가인 한 남자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의 아내와 아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것만 같았지만 이 역시 생각지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일반적인 소설이었다면 그 흐름을 이해했을텐데 <뉴욕 3부작>은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보여준다. 오히려, 이런 점이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또한, 허구와 진실이 섞어졌고 각 단편마다 그림이 다른 점이 그 작품에 깊이 파고들게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방황하는 인간을 보여줌으로써 정체성의 복잡함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읽는 내내 쉽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내면을 볼 기회가 되기도 했었다. 무엇인가 나에게 모호한 작품인 <뉴욕 3부작> 하지만 그 끝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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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 방랑길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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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몇 년 전 국내 판타지 소설을 읽었는데 잔잔하면서 뭉클함을 줘서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오늘 전과 비슷한 느낌을 준 도서를 만나게 되었다. 전국 곳곳을 떠돌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조선판 셜록과 왓슨!!!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문장에 먼저 솔깃 할 것이다. 그동안 장르소설을 접해와서 살짝 심심하지 않을까 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 대신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소설은 총 7편으로 각 단편마다 주제는 다르지만 등장인물은 동일하다. 먼저, 윤 대감 막내 아들인 효원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상하게 윤 대감 집안은 아들들은 명이 짧았다. 첫 째를 보내고 둘째 마저 생사를 헤맬때 누구간 밖에서 아이를 데리고 온다면 살 수 있을거라는 말에 그 끝에 찾아낸 것이 바로 서자인 효원이었다.

그리고 효원이 들어온 뒤로 병세가 나아진 둘째 제원.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효원이 평소 친우라고 지내던 자의 집에서 요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집안의 명물인 두꺼비가 도망쳤다. 이를 시작으로 여종이 실종되면서 효원은 호기심에 친우의 집에 방문하고 그곳에서 이상한 일을 해결해 준다는 사로 라는 남자를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사로는 효원을 대할 때 뭔가 과거에 연이 있는 듯 한데 효원은 전혀 모르는 눈치다. 세상을 돌고 싶다는 아들의 소원은 떨쳐낼 수 없었던 윤 대감은 사로에게 부탁까지 하며 길을 떠나게 해주게 되었던 것이다.





소설은 두 사람이 방방곡곡을 돌면서 이상한 일을 해결하는 것인데 목적지는 늘 사로가 멈추는 곳으로 기이한 현상에 대해 사로는 마치 알고 있듯이 무덤덤하고 반면 효원은 호기심과 함께 겁먹은 모습을 내비친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소설을 즐겁게 읽게 했다. 특히, 사로를 여우라고 하는데 정말 그는 여우인 것일까? 책장을 넘길 수록 정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 편 한 편 넘기면서 오래 전 효원과 사로의 만남이 나오면서 궁금증이 해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효원의 형인 제원의 능력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기묘묘 방랑길>은 제원과 관련된 큰 에피소드 없이 두 사람이 여행하면서 부딧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흐름상 다음 편이 있을 거 같은데 후속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로와 효원의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제원이 어떤 역할로 활약을 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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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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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피츠제럴드하면 <위대한 개츠비>가 먼저 떠오른다. 고전 소설의 작품은 허구가 아닌 인간의 심리와 삶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작품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삶의 유추할 수 있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 또는 현재 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게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저자의 삶을 투영한 것이기에 작가와 소설의 배경을 알고 나면 독자는 두 가지를 얻게 된다.

오늘 만난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는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삶과 글 사이에 분투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작가로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이라는 것을 고전 작가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즐거움이 아닌 살기 위해서 또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글쓰기다.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는 저자가 쓴 글들을 엮은 책으로 짧막한 문장이 많다. 서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지만 작가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과 단어 선택 등 글쓰기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들을 담아냈다.



여러 소주제로 나뉘어 묶은 글을 읽고 있으면 독자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 같다.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꾸준히 써보지 않아 어렵다고 했다. 위대한 작가라도 그들 역시 끊임없이 문장과 단어를 분쟁을 했음을 안다. 단지, 천재가 아닌 무한한 노력의 과정을 통해 결실을 맺은 그 열매를 독자는 너무나 탐스럽게 먹어치운다. 때론 서신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하는데 글쓰기의 고된함을 깊은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으면 헤엄치는 일과 같다라고 했을 정도로 피츠제럴드의 개인적인 감정까지 드러나 볼 수 있었다.

고전 작품을 보면 인간의 깊은 내면을 절실히 보여주는지 놀랍다. 탐욕이든 욕망이든 아님 애정이든!! 그 깊은 탐구를 어떻게 써내려 가는지 늘 궁금했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글쓰기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지만 글쓰기가 인간에게 있어 삶의 밑바탕이란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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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체면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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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의 책은 오래 전 한 권의 책으로 읽게 되었다. 당시, 국내 장르소설이 지금처럼 광범위 하지 않을 때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저자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있다. 그리고 저자의 직업 역시 소설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미권 장르 소설을 보면 대부분 관련 된 업종을 지닌 작가가 많다. 그렇다보니 소설은 더 깊이 있고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오는 만난 <법의 체면> 역시 그렇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책을 읽기도 전에 단순히 선과 악 또는 권선징악이 아닌 결국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못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총 6편의 단편으로 묶어진 소설은 SF도 있다는 사실. 그러나 SF든 아니든 인간에 대한 윤리, 사회적 규범, 도덕적 관념 등을 다 포함시키고 있다. 장물을 우연히 사게 되었지만 과거 범죄 이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의 범죄가 되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진실을 밝히고자 변호사를 찾아갔기에 누명을 벗겠지 했는데 이야기는 단순히 해결 방향성으로만 가지 않았다.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불법 실험을 하는 이야기, 행복을 원하고 바랐지만 이뤄질 수 없었지만 그는 행복을 찾았다. 그런데 과연 행복일까? 허황된 것이 아니기에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만 남았다. 


각 소재마다 가볍지 않은 작품은 단편이었지만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장르소설을 좋아하지만 오락성이 아닌 사회파 소설은 현실과 맞닿아 다가오니 읽고서 묵직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법의 체면>은 제목에서 먼저 체감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마치 선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 감정이 섬뜩하게 다가왔고 동시에 법이 무엇인가? 이 존재 자체가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이 되는지 이 생각이 멈춰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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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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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국내에 출간 된지 25년이나 되었다는 <아인슈타인의 꿈> 도서를 난 이제서야 만났다. 물리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시간'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쓴 첫 소설이다. 띠지에서 먼저 '시간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문구가 궁금했었는데 책장 넘기면서 그동안 의식하고 생각했던 '시간'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다. SF소설이라기 보단 뭔가 몽환적인 느낌이랄까? 그리고 동시에 철학적으로 다가온 소설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한 젊은이가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인슈타인과 친구 베소가 등장해 서로의 이야기와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시간들이 등장하고 그 시간은 다양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보여지고 누군가는 미래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조용히 고독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반복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조차 알 수가 없다. 인간은 한 번의 생애밖에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동일한 시간이 나뉘어져 어느 선택을 하듯 그 선택한 삶을 다 살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는 누구나 하는데 소설에서는 이것만큼은 '후회'가 없다. 그렇다면 그 삶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은 누군가에는 빠르고 다른 이에겐 느리게 적용이 된다. 그런데,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아닌가? 다만 그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도서는 '시간' 주제로 글을 써내려갔지만 철학적 요소를 볼 수가 있다. 시간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누군가는 시간을 겪으면서 세월의 흔적을 느끼지만 반대로 홀로 그 정체된 곳에선 시간의 멈춰져 젊음만 있을 뿐 무엇도 느낄 수가 없다면 어느 쪽이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상대성으로 비교 되는 '시간'과 관련된 단편들을 읽고 있으면 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문득 떠오른다. 그 순간 그들의 삶은 행복했을까? 아님 실수한 제 삶을 완벽하게 하게 되어 행복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어떤 삶이 옳고 그르다는 것 보단 그 주어진 시간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란 걸 다시 한번 의식했고, 책을 덮고서도 여러 '시간' 속을 살고 있는 그 순간들이 나에게 생각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ekida_library
@dasa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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