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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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 역사의 기록에서 전해진 사건들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그런 역사적 맥락은 매우 중요하다. 100년 전 한일합방이나 을사늑약, 200년 전의 신유사옥과 황사영백서, 그 이전에 일어난 일들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2014년 침몰한 선박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비통에 빠져 있을 때, 교황님이 한국에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종교는 없지만, 그 교황을 존경한다. 그분이 오실 적에 한국 가톨릭성인 중에 윤지충이란 인물을 성인으로 봉했다. 1791년 신해년 어머니 권씨 장례를 치루던 그는 어머니의 신주를 불사른 이유로 이종사촌과 함께 참수를 당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앞으로 조선 천주교의 미래에 피 냄새가 진동하는 초석이 되었다. 정조가 죽자 노론들이 1801년 신유사옥을 일으키고, 황사영백서로 조선의 천주교의 대박해가 있었고, 이후 계속 더 심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신해박해와 신유박해는 종교적인 문제보단 정치적인 문제가 더 심했다. 왜냐하면 두 사건은 모두 노론의 정적인 다산 정약용을 노리기 위한 극도의 전략이었고, 전자는 어떻게든 넘어갔으나 후자는 정약용의 가계를 풍비박산을 내었다.


다산 정약용을 파괴한 이유는 바로 그가 정치적으로 남인에 위치했고, 남인들은 당대 권력자들인 노론에게 귀찮은 존재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조선은 심각한 모순에 빠졌다. 그런 모순에서 정치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왕과 사대부들이었다. 문제는 그 사대부양반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할 점이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부터 각종 사화에서 조선은 조용한 나라가 아니라 선비들의 피가 뿌려진 역사였다.


권력을 잡은 사대부들은 호위호식하며 위로는 왕을 속이고, 아래로는 백성을 탄압했다. 공자가 이르기를 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부패한 관료라고 했다. 즉 가렴주구의 현실이 이제 조선의 운명을 몰락의 길로 인도했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어디인가? 예나 지금이나 백성 즉 국민이 신음에 괴로워하고 통곡하면 그 나라만큼 비참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공자의 유학이란 바로 그런 백성의 도탄에서 구하는 것이다. 논어에서 정치가란 농민에게 농사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농사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란 아래 사람을 편안하게 하여 위로 하여금 올바른 정사를 돕는 것이 선비의 자세다.


백성이 변을 당하면 선비의 책임이고, 선비의 변을 당하면 대부의 책임이듯이 조선의 건국 이념은 유교이다. 유교의 공자와 맹자의 이론을 깊이 들어가면 상당히 계급절대적인 사고방식이나 때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어 더 이상 백성 아니 국민들이 도탄에 빠지지 않은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지금 유교문화를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공자의 책을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고, 공자의 사상조차 알아보려고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비뚤어진 유교문화는 우리사회 전반에 뿌리 깊이 못 박혔다.


개인적 내 일화로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래도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가 있다. 딱히 그 종교를 문제 삼자고 한 것은 아니나, 그 집에 놀러가 내 친구의 어머니가 나보고 자신이 다니는 종교에 믿고 한 번 가자는 말에 나는 거부했고, 30분 정도 이런저런 말이 오고갔다. 그런 뒤에 내 친구는 뒤에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싫더라도 우리 어머니가 하는 말인데 조금 심한 것 아닌가.”라고 말이다. 물론 어른에 대한 아랫사람의 말대꾸는 보기 좋지 않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논리는 유교문화에서 시작되고, 그 유교문화와 전혀 접점을 이루지 않은 종교를 나에게 권유하는 친구 어머니에서 우리사회는 유교가 가진 의미적인 부분을 버려도 유교가 가진 모순은 계속 유지했다.


물론 진짜 유교에서 공자는 제자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의견들을 서로 나누었다. 즉 유교는 선비들이 학문을 하여 서로 간의 사고를 정리하여 말하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면 당연히 세상에 실천으로 보임으로 만백성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 취지다. 그러나 공자의 유학은 정치적인 경전이지, 종교적인 색은 없었다. 남송의 주자의 성리학이 여러 가지 종교적 내용을 보강하여 퍼지고, 그것이 조선에 유입되었다. 주자의 논리는 조선사대부에게 유교가 가진 민본중심 사상에서 사대부중심으로 변해갔다. 사대부중심이 된 계기는 바로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자신들의 이권에 큰 위협이 다가오자 이에 대한 방어책으로 나온 것이다.


전쟁에 대한 피해가 결국 사대부의 무능함과 이기심이었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은폐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점에 올리려했다. 그런 점에서 윤휴의 투쟁은 한국에서 왜 제대로 된 토론문화가 될 수 없는지 그리고 왜 아직까지 그게 되는지 보여준 사례다. 조선의 사화에서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런다고 선비나 유학자들이 내놓은 상소나 의견을 두고 사형에 이르지 않게 했다. 설사 귀양이나 관직박탈이 존재해도 목숨까지 빼앗지 않았다.


그런다고 하여 노론의 입장에선 그걸 용인하지 않았다. 국가를 위한 것인지 아니라면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위한 것인지가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노론의 서인이었고, 서인은 동인과 반대되던 당파였다. 서인은 임진왜란 이전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동인세력을 꺾으려 했고, 임진왜란 시기에 동인이던 서애 유성룡이 잦은 정치적 논쟁, 그리고 이순신조차 동인계통이었다. 그리고 서애 유성룡의 가까운 학자이자, 퇴계 이황과 학문적 교류를 나눈 윤복, 개혁유학자 조광조의 친구 윤복의 형 윤구, 이들의 흔적은 예송논쟁이란 희대의 사건으로 이어지는 길이 된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인조반정 대신들은 청에 대한 복수, 그리고 명에 대한 은복을 위해 북벌론을 제기하나, 막상 그 실천을 옮기려 하던 자는 없었다. 북벌론을 제기하던 자들은 효종과 같이 뜻을 모우려 했지만, 효종은 병으로 죽고 만다. 어이없는 점은 아주 강한 의지와 체력을 가진 효종이 그 말을 꺼낸 지 1달 만에 병으로 죽었다. 얼굴에 난 종기를 침으로 제거할 때 혈관을 잘못 찔러 죽었다는 것은 이해가지 않는다. 즉 얼굴에 지나치게 깊이 침을 넣지 않은 이상 출혈쇼크로 사망할리 없다. 효종은 왕궁에서 직접 궁마(弓馬)를 수련했다. 왕이 한 사람의 장수로서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효종이 죽자 그의 장례문제로 남인과 서인이 충돌했다. 두 세력은 인조반정에 기여한 점도 있지만, 남인은 조선의 군주인 왕을 위해 상복을 3년을 주장했지만, 서인은 효종이 장자가 아니기에 1년을 주장했다. 남인은 조선사대부의 군주는 군왕이었지만, 서인들의 군왕은 명나라 황제였다. 그런다고 하여 북벌론을 주장하면서 실천하지 않았다. 이때 굴러들어온 돌이 윤휴였다. 그리고 윤휴와 더불어 윤선도의 공격은 서인들로 하여금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남인의 학자이면서 윤선도는 남인의 영수였다.


서인들의 논리는 왕을 사대부와 같은 직급으로 보고, 사대부의 이익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서인들은 성리학의 절대적 이론을 두고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했다. 성리학에서 주자의 논리 1자조차 건들지 못하게 했고, 만약 건들면 사문난적으로 몰아넣었다. 이때 윤선도는 귀양살이를 가게 되고, 그는 평생 남은 시간을 귀양살이로 마무리하여 노년에 고향 인근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한다. 귀양살이하던 윤선도와 달리 윤휴는 1차 예송논쟁 이후 2차 예송논쟁에도 활약했다.


현종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때 상복은 1년인가 9개월로 할 것인가에서 다시 말썽을 발휘했다. 효종의 죽음은 1년으로 끝났지만, 그 뒤에는 왕의 권력보단 신하의 권력을 우위에 두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남인(청남)들은 왕권을 주장하고, 북벌론을 위해 백성들의 살림을 보전하게 하고, 양반들의 특권을 정리하는 게 옳다고 보았다. 송시열의 서인은 그런 정책을 잘못하면 국가가 어지러워지며, 사대부들에게 군포를 지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고, 게다가 서자의 군역을 나가게 하여 벼슬을 하게 하는 것 역시 특권층의 이익을 반하는 것이었다.


이때 청남에서 가장 큰 대변자가 윤휴고, 그는 서인들과 대항하다 숙종 때 경신환국에서 죽음을 당한다. 그가 죽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인들의 세력이 왕실 척신으로 자리 잡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방해하는 윤휴와 청남세력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남인의 세력에서 윤선도의 죄는 아들에게 연좌될 수준이었다. 남인세력 특히 청남들은 퇴계 이황을 중심으로 몰린 선비로, 왕권 중심을 내세운다. 그리고 왕권을 앞세우고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기에 결국 실학의 거두가 여기서 비롯된다.


윤선도의 경우 학문만 아니라 의학과 음악 각종 예술과 과학에 능했고, 그의 학문은 공재 윤두서와 윤두서의 친구 옥동 이서에게 미친다. 옥동 이서는 조선중기 최고의 실학자 성호 이익의 형이다. 이익의 형인 이잠은 숙종 때 장희빈을 편을 들다 장형으로 죽는다. 그리고 이익의 아버지 이하진은 숙종 경신환국 때 서인에 의해 귀양을 가게 된다. 그런 흐름에서 남인과 노론의 피 냄새가 나는 당쟁이 시작되었다. 서인들은 왕의 독살사건과 사도세자 죽음까지 이어지고, 영조는 평생 노론의 그늘 아래 살아야했다.


노론들에게 우암 송시열을 비롯한 당시 서인 영수들의 권력은 절대적이고, 이들의 권력을 계속 이어져 내려와 특권층으로 된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사대부들이 해야 할 도리였다. 그러나 상소문을 올리고 받는 기관마저 그 이속으로 가득하면 아무 소용없다. 그런 흐름은 계속 이어져 정조 사후는 조선의 빛은 사라졌다. 지금도 이상한 성리학으로 윗사람이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여 아랫사람이 말하면, 감히 어디서라는 말부터 튀어나온다. 바른 말과 정당한 주장만이 답이 아니라 그 세력이 원하는 구미를 얼마나 맞추는가에서 생존까지 달라진다.


선비의 상소는 지금으로 본다면 언론의 기능이다. 백성들 중에서 극소수인 선비만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지식을 가졌기에 아무리 봉기해도 전략과 책술로서 다스릴 수 있었고, 제도적인 요소로서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학문은 배워서 남을 주는 게 공맹의 유학이나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주자의 모순으로 어긋났다. 이런 구조에서 정약용의 유배와 형제들의 변은 이미 예고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지점이 어디서부터인지 찾아간다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터준 것이나, 적어도 피를 흘릴 정도는 아니다.


그 피 흘리는 철저함은 2번의 예송논쟁이었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에서 윤휴의 후손조차 그의 조상을 말하는 것조차 버겁다는 점에서 한 개인의 역사가 먼 훗날 후손에게 큰 짐을 주었다. 정약용도 윤선도의 후손이고, 그의 이종사촌 역시 윤선도의 후예이기에 큰 화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뼈대가 된 성리학의 전체주의적 사상, 권력지향주의, 관료주의 형태는 21세기 한국까지 움직이고 있다. 이 책에서 윤휴가 고문을 받고 서울 동대문으로 나오자 많은 백성들이 몰려와 그의 몰골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전쟁과 가난, 병들은 국가아래 언제나 수탈과 핍박받은 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변호하다 산 송장이 된 윤휴를 보고 통곡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윤휴와 가까이 지내던 윤선도의 경우도 그렇다. 한국전쟁 때 많은 전투가 벌여지자, 예전에 양반들이었던 자들이 한국군과 북한군의 접전 중에 과거 원한을 산 일로 가옥이 불타거나 살해당한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해남의 윤선도 종가는 오히려 보호받았다고 한다. 선비의 본분은 왕으로 하여금 백성을 안위로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주자의 성리학에 빠진 사대부들에 의해 저지되었고, 그들에게 군주는 조선의 왕이 아니라 명나라황제였다. 물론 명이 완전히 청으로 넘어가면서 그들의 황제는 청나라황제였고, 일본에 의해 먹혀 들어간 순간에 아직까지 자국의 독립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에 치중했고, 그런 이기심을 포장하는 사변으로 정치적 명분을 만들었다. 21세기 왕도 양반도 노비도 없지만, 아직도 우리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반이란 신분은 철폐되는 게 옳아도, 양반이란 사대부가 가진 본래의 가치는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윤휴는 백골의 시아버지와 배냇물이 마르지 않은 아이의 군역이 오른 것을 보고 분노를 했다.


다산 정약용은 그런 군역에 견디지 못해 자신의 남근을 베어버린 갈대밭 남정과 그 남정이 아낙네의 절규를 보았다. 논어에서 공자가 제자의 질문에서 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백성이라 했다. 경제와 군사는 다음 문제다. 백성이 굶주리고 비참함에 통곡하는데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만 보는 것에서 지금의 한국 그때와 과연 다를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귀양과 죽음만 내리고, 이젠 사회적 죽음으로 몰고 간다. 책을 보고 서평을 쓰면서 나에게 오는 것은 정말 짜증나는 분노와 증오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자신의 유배지에서 자신의 남근을 자르는 사건을 보고도 아무 것도 못한 채 나그네 방에서 그저 시 구절 외우는 것으로 달래야 한 점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의 당시에는 패자 그리고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박해를 받은 자들은 먼 후대의 역사에 의해 복원되고 칭송받는다. 세상에 대한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내 시선을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역사적 평가가 있기에 오늘 우리들은 자신의 양심을 걸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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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하 - 완역본 범우고전선 32
투키디데스 지음, 박광순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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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헬라스의 운명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진영 사이의 전투에서 큰 전환점이 일어난다. 상권에서는 전쟁의 발발이라면 하권은 전쟁의 진행에 따른 헬라스 국가들의 운명을 나열한다. 후자의 입장에서 그 역사적 순간은 하나의 인과과정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사회에서는 인과과정이 아니라 운명의 장난이었다. 그리스 사람들, 즉 헬라스 국가 인간들은 인간만이 아니라 신의 존재까지 존재했다고 믿었다. “모든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이신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이시어!”라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전집처럼 인간의 운명에서 헬라스인들은 신과 함께 한다고 여겼다.


급한 전투의 순간에도 또는 당장 원정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헬라스 국가사람들은 신에 대한 축제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신들의 축제를 벌이는 순간, 모든 활동을 중지하는 점에서 그들의 전쟁이란 신의 가호가 있는 전쟁이었다. 물론 투키디데스는 신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부정적인 시선은 보이지 않으나, 그런 부분들이 전쟁의 상황에 큰 기여를 한다. 심지어 점술사의 점괘, 신전의 신탁까지도 모두 받아들였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 그리스 국가에서 인간의 운명은 인간 스스로가 아니라 신의 축복에서 의해서라고 본 것이다.


만약 그런 감정이 없고, 단순히 인간 스스로에 찾게 되면 절망적인 상황에 희망이란 단어를 찾지 못할 것이다. 물론 신의 축복은 전쟁에 패한 전사들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축복은 트로이전쟁에 원정을 나간 아가멤논 왕에게 찾아온다. 바다의 폭우를 멈추기 위해 아가멤논 왕은 자신의 딸을 희생물로 받쳐 무사히 바다를 건넌다. 대신 딸의 죽음은 아내의 배신으로 이어지고, 아내의 배신은 아가멤논 왕을 하데스의 신전으로 인도한다. 인간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을 헬라스 인들은 그리스신화로서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신(아테네 국가라는 이름이 아테네 여신이듯이)들을 외치고 애원해도 인간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은 행동에 파멸을 맞이하고 만다. 아테네는 해상전력이 강력한 것만 믿고, 또는 다른 동맹국가가 자신들의 권위에 복종하여 따라올 것만 생각하여 의외의 복병을 피하지 못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읽게 되면 모든 상황을 아테네인들이 만들었으나, 그 상황에서 파멸의 순간 아테네인들이 지명한 인물로부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큰 회의석상에서 어느 인물들이 무대 위로 나와 연설을 한다. 이들의 연설을 들으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막 소피스트들이 도래하던 시기와 맞물러 그들의 논설은 매우 유창하고 화려하다. 발언대 위의 연설자들은 대중들을 설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 문제는 그 연설에서 인간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점이다. 다른 연설자가 각각 다른 시기에 올라오나, 실제 애국자와 위대한 정치가는 들리는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는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여 대비하는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설픈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명예욕을 자극하고, 안일한 자신들의 생활에 적의 침공을 막지 못해 아테네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런 내용을 보면 나는 왠지 모르게 서애 유성룡이 저술한 <징비록>이 생각났다. <징비록>은 유성룡이 임진왜란 이전부터 끝날 때까지 정리한 내용으로 7년 전쟁의 비참한 상세히 기록했다. 전쟁이 일어난 이유와 전쟁에서 피해를 받은 이유, 그리고 전투에서 계속되는 패배는 단순히 운이 아니라 그 상황을 만들게 한 원인이 있었다.


제일 답답한 순간은 왜군이 계속 북상하고 있을 때 소문으로 조선군 주변에 왜군이 도래한 장면이다. 누군가 계속 왜군이 온다고 이야기해 군영이 소란스러워하자 군사 지휘관은 그 소문발언자를 찾아내 참수형에 처한 점이다. 건강한 장병을 전투에 투입해 승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나 군영의 엄숙함을 지키기 위해 참수형을 선택한 점에서 패배의 원인은 결정되었다. 만약 그 소문을 듣고 왜군의 향방을 알아보기 위해 척후병이나 수색대를 파견했더라면, 왜군의 침투에 큰 피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정보력의 신속성, 지휘관의 판단력이 전쟁의 좌우를 결정지어 버렸다. 현대전은 과거 한국전쟁처럼 총을 이용한 백병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전자정보전이 우선이다. 공중에 전투기를 이륙시켜 적의 기지를 강타하고, 얼마나 많은 전투기를 출동시켜 적의 군사시설과 주요기관을 파괴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군사전은 정보력이 제일 중요하고, 빠른 정보수집과 신중한 지휘관의 명령은 전장의 상황을 바꾼다.


현대전에서도 이런 조건이 따르는데, 과거 그리스 폴리스 국가시대는 더 심각했다. 적조차 온다는 것도 알 수 없었고, 적의 숫자나 장수 심지어 전투하는 시기에 바다에 폭풍이 오는지 육지에 지진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인들이 결정적으로 패배한 이유는 정보의 부족이었다. 상대방의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점, 자신들의 강력한 힘을 너무 쉽게 의지한 점이다. 전쟁은 무슨 조건에 의해 승패가 어떻데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휘관의 명령은 전군을 멸망시킬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더구나 그 지휘관이 자신의 성과를 너무 추구한 나머지 적진에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서 많은 사상자를 만들기도 했다. 투키디데스는 분명 아테네인이지만, 그의 시각에서 아테네 적 스파르타는 그런 문제를 충분히 넘어선 점이다. 침착한 전투지휘와 확실한 적의 타격은 아테네를 패망의 길로 인도했다. 게다가 군의 지휘관이 간단히 바뀌지 않고, 오히려 왕의 아들이나 왕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돌격하여 책임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테네의 상황은 시민들은 현명한 참여자보단 금방 입맛을 바꾸는 표리부동한 모습만 보였다.


민주주의 정체제가 있기에 아테네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 있었으나, 그들에 결여된 점은 시민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지성이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시민들은 그 사회의 주인이나, 그 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배계층으로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지성과 인성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 아테네의 패배에서 알키비아데스의 배반과 이기적인 행동은 큰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든 것은 니키아스가 알키비아데스의 행동을 저지하려기 위해 군중 앞에 연설할 때 그것을 선택한 군중들이었다.


알키비아데스 같은 유형은 과거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같은 부계 친족들이 어느 업적을 쌓고, 사회적으로 높은 인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 후예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도 알키비아데스는 부계 친족의 명성으로 많은 일들을 벌이고, 결국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알키비아데스의 행위를 보는 것처럼 전쟁이란 어느 한 명에 의해 일어나는 게 아니나, 어느 한 명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큰 타격을 받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투키디데스의 긴 글은 바로 이런 점들을 보여준다. 알키비아데스와 달리 페리클레스의 모습은 진정한 정치가의 모습으로 비추어준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위대한 아테네 정치가 페리클레스 혹은 훌륭한 스파르타 지략가 브라시다스보단 항상 알키비아데스에게 많이 홀린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에게 조롱을 받고, 뒤에는 아테네인들의 잘못된 선택의 책임까지 져야했다. 브라시다스는 아테네에게 열세에 빠진 스파르타의 전세를 역전시켰지만, 그의 공적에 질투하는 스파르타의 위정자들로부터 견제를 받았다.


이렇듯 전쟁에서 각종 인간의 군상이 튀어나오고 그 당시 훌륭한 인물들은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전쟁사에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이다. 알키비아데스가 허망한 행위가 먹혔던 이유, 그리고 스파르타가 이겼던 이유를 잘 보아야 할 것이다. 아테네는 과거의 영광에 빠져, 그 영광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의 위치에 교만한 태도만 취했다. 그리고 스파르타의 영광은 바로 지도자들의 앞잡이다. 칼과 창 그리고 화살이 날라 오는 전장에서 스파르타 왕은 자기의 몸을 아끼기보단 직접 병사를 인솔하여 적진을 함락시킨다.


물론 스파르타 내의 왕을 감독하는 독시관이 있고, 그들도 나름 정치제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위험에 가장 먼저 도전하는 스파르타의 왕과 그들을 따르는 라케다이몬인 전사들에서 지금의 정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관료사회 문제는 관료주의화 되면서 관료라는 직함보단 관료라는 직함으로서 얻어지는 이익에 치중하여 책임을 뒤로 하게 된다. 스파르타는 바로 그런 관료주의 모습이 일체 없었다. 관료주의 폐단이 국가의 부를 감소하고, 국민을 피폐하게 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강한 지도자란 자신과 주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 그 누구보다 위험한 장소에 가서 몸을 날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전쟁으로 인해 플라톤의 저서들은 그가 아테네인이고도 불구하고 각종 서적에 나타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강한 철인군주의 통치가 필요한 것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에 어긋난 것이나, 정치가라면 누구나 그런 플라톤의 정치사상에서 말하는 바를 생각해볼 점이고, 그들을 선출해야 하는 국민들은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같은 실수를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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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상 - 완역본
투키디데스 지음, 박광순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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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전쟁이다. 전쟁으로 인해 어떤 민족과 국가가 역사로부터 사라지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자들이 역사의 큰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란 그런 물결을 기록하고 바라본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역사에서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당연한 일들로 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물로서 정리하여 다시 재조립하여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살아온 인간에 대한 마음을 우리가 알아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시대와 당시의 시대는 분명히 큰 차이점이 존재하고, 우리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난 시대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란, 전쟁이 새겨진 역사란 바로 지금의 시대에도 큰 유산이 된다는 점이다. 인류의 문명은 당시에는 그 시대 삶의 양식이라면, 지금의 문화재고 기록의 결정체다. 우리가 그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존재한 기록과 유물들로서 우리의 현재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다. 

그 중에서 전쟁은 우리 인간에게 큰 가치를 가지는데, 전쟁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물거품으로 변하게 된다. 전쟁을 연구한다는 것은 지금의 시대와 다른 양태라 해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을 가장 연구하기 좋을 시기가 바로 전쟁이다.


전쟁이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파괴하고 빼앗는 것을 합당하게 만들고, 게다가 자신에게만 그 피해가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주변사람마저 비참하게 만든다. 전쟁에 패배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성까지 사라진다. 그리고 전쟁에 닥치는 위기란 평소 알 수 없었던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게 해준다. 이런 전쟁에 보이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 시대의 상황을 정리한 서적이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펠로폰네소스는 그리스 아테네가 번창하던 시기, 전쟁의 중심지역이 되던 도시이름이다.


아테네가 헬라스 지역의 지배권을 잡고, 주변 폴리스로부터 공물을 받아 그 국가적 위엄을 세울 때, 다른 동맹국이 다른 나라에 대한 갈등이 시작하면서 전쟁의 소용돌이로 이어진다. 헬라스 폴리스들을 알아보면 절대적 강국 아테네, 그리고 아테네의 라이벌인 라케다이몬인이 살던 스파르타가 있었다. 우연히 동맹국들의 갈등이 공물을 받고 헬라스 중심국가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작은 전투와 시가전이 결국 큰 전쟁으로 이어지고, 대규모 해상전과 육상전이 생기면서 헬라스 일원은 전쟁의 도가니로 빠진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히 보자면, 강한 국가의 동맹국에 대한 침입이다. 그런데 왜 동맹국이 그렇게 나서서 전쟁을 나서는가? 사실 펠로폰네소스전쟁에 대한 근본을 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한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인으로 전쟁에 참가한 장수이나, 전투 중의 희비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전쟁에서 물러난 그는 모든 정보를 사서 전쟁을 기록한다.


그의 기록을 보자면 전쟁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 대해 매우 객관적으로 차가운 시선으로 적는다. 다소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문제는 그 인물은 안타깝게 역사의 이슬로 사라진다. 아테네인으로서 느낀 아테네란 국가의 문제점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는 순간 확실히 느낀다. 그가 자신의 국가인 아테네에 대해 매우 객관적인 역사적 전후관계를 서술하면서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는 순간 아테네의 문제를 알아갈 수 있다.

 

그가 전쟁사를 기록한 이유는 바로 이 전쟁에 대한 문제를 후세에 남겨 앞으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역사를 우리가 배우고 생각해야할 점은 역사에 등장하는 인간은 시간과 공간적 상황과 사건이 다르게 발생해도, 그 근본에는 같은 문제점이 숨어있다. 바로 인간이 가진 딜레마란 점이다. 왜 인간은 이런 실수를 하는가? 반드시 실수란 어느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적인 사회적 분위기란 점이다. 전쟁의 시작은 반드시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을 만들게 하는 원인이 숨어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보면 그 시작은 명분이었다. 동맹국의 침입과 보복, 동맹국에 대한 의리와 맹약 등에서 말이다. 그러나 전쟁은 명분과 실리하고 다르게 언제나 다른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전혀 파악하지 못할 기습, 생각하지도 못한 지진과 폭풍, 그러면서도 전쟁에 임하는 헬라스의 전사들까지, 그리고 폴리스에 남겨진 주민까지도 말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이 가진 우월감과 욕망 그리고 공포다. 남들보다 다른 국가보다 자신과 자신들을 위에 있고자 하는 우월심리는 타인과 타국을 의심과 근심거리로 변한다. 이런 심리들은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 여기는 교만심과 자신들에게 반항하는 적들의 반격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려고 하는 순간 더 큰 비극을 도래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게 되면 전쟁의 구조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일단 기본적으로 그리스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투쟁도 존재하지만, 그 시작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장과 시점 그리고 판단력이 작용하나, 나는 문화인류학적인 견해로 보고자 했다. 당시 헬라스 사회는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진행되던 사회이며, 여기서 스파르타는 특이하게 자신의 국가 외의 모든 사람은 모두 죽이는 것으로 나온다.

 

이것을 본다면 스파르타는 국가 자체가 내부적으로 계급이 엄연히 존재했고, 왕은 위대한 전사들의 장수였다. 그리고 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도록 키운다. 이에 반해 아테네는 부유하고 무장할 수 있는 부류는 오로지 시민들만 가능하고, 자신의 무장장비는 스스로가 구매한다. 결국 이런 구조는 그 국가만의 독특한 환경에서 기인된다고 본다. 아테네는 해상무역과 조공으로 통해 국력을 강조했고, 그에 대한 공물론 금이나 은 이외에도 나무나 자원도 있다. 전쟁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과 전술, 그리고 전투력이겠지만, 전쟁하기 위해서는 전쟁물자와 인원이다.


전쟁을 위해 아테네는 해군력을 증가한 게 아니라 해상무역의 이권을 가지기 위해 해군력을 증가했다. 이에 따라 다른 비동맹국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불안요소고, 아테네의 독주는 여러 헬라스 국가들의 안위에 큰 문제가 되었다. 아테네는 수많은 인구와 물자가 있었고, 넘쳐나는 에너지는 결국 다른 국가에 대한 침략전쟁으로 이어진다. 아테네는 겉으로 동맹국의 우호를 위해 전쟁을 참전하나, 그 이면에 사회 내부적으로 그들은 과대한 사회구조를 이룬 셈이었다. 전체 인구 10% 정도만 시민이었고, 그들에게 정치적 발언권과 참전전권이 부여되었다. 나머지는 노예, 어린이, 여자, 외국인 등 피지배계층이었고, 지배계층 10%의 시민권자들만 자신들의 이권을 만들 수 있었다.


이들의 이권을 늘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전쟁만이 아니라 전쟁 이전의 정치적 행위다. 이들은 어느 폴리스에 이주가거나 혹은 과거 빼앗은 폴리스에 많은 아테네인들을 이주하여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해갔다. 그렇지 않으면 동맹국을 삼아 그들에게 공물을 요구했고, 이들의 행위는 주변 헬라스국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세력을 넓히는 이유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확장하기 위한 방도이며, 그 확장을 위해 군수물품의 소비가 일어난다. 전쟁에 소비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새로운 약탈이 이루어지고, 다시 또 세력을 확장해간다. 아테네가 일으킨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시작은 바로 그들이 확장하고자 하는 내부적 욕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점으로 극단적인 감정과 행동이다. 아테네인들은 민주주의국가로서 시민들의 입장과 표결로서 운명을 결정했다. 그런데 그 시민들이란 사람들은 작은 사건에 크게 동요하고, 어느 작전과 임무에 임명되는 자들을 꾸준히 활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만약 전투나 임무에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해임하는 것도 모자라 아테네에서 추방하는 방식에서 그들의 민주주의 정치제의 한계성이 드러난 점이었다. 정치적 안건에 공익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 내지 명예욕으로 물들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시작하게 되고, 헬라스는 전쟁으로 비극의 시대, 그리고 영웅의 시대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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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어? - 내일을 바꾸기 위해 오늘 꼭 알아야 할 우리 시대의 지식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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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어>라는 책을 보면서 내가 처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품은 시절을 생각했다최근 대법원관 선정과 관련하여 청문회 증인에 선택한 사람 중에 국회의원 정형근이 있었다그 사람은 내가 사는 시의 다른 구의 국회의원이었다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학부에서 통계조사하러 가면서 일반 사무실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아무 것도 모른채정형근 지역구 사무실에 들어갔고 당시 보좌관은 우리 학부생에게 쌍욕을 퍼붓으면서 우리를 밖으로 내쫓았다아마 이때부터 정형근 위원이 몸담은 당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정치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아주 어이 없거나 황당한 일에 말려 피해보거나 욕을 보이면 정치에 혐오감을 가지고그 혐오감을 주는 자에 대한 끊임없는 배타심으로 이어진다.


 

 

그런 문제의 한계는 반대의 반대로 이어질 뿐이고결국은 해결되지 않은 딜레마에 빠진다내가 만약 대한민국헌법을 모르거나 헌법의 기원그리고 프랑스대혁명을 모른다면 민주주의 국가체계를 알 수 있을까어느 보수논객은 프랑스대혁명을 범죄로 보는데한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라면 그 헌법의 기원이 프랑스대혁명이란 점을 보면 그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 체계조차 부정한 셈이다정치에 대한 논지에서 기본적으로 철학적 기반 없이 논하는 것은 나는 바보 혹은 거짓말쟁이라고 스스로 드러내는 셈이다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관계에서 소유권이 재산과 자신의 몸에 대한 신체란 점에서 오묘하게 돌아가는데문제는 자유의 논지는 몸과 마음이 포함되어야 하는데한국은 자본의 크기로서 비례된다.


 

 

이상하게 불리한 것은 평등유리한 것은 자유라는 슬로건은 이상한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다. <생각해봤어>는 14가지의 테마를 가지고 전문가를 초빙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반정치교양도서다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기본적으로 플라톤부터 존 롤즈까지 다양한 프레임과 관점을 보는 게 정당하겠지만그런 책들을 일일이 잡고 보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무리다그래서 <생각해봤어>는 일반인들도 진짜 이해하기 쉽게 만든 도서고어려운 단어나 내용을 최대한 배제했다거의 일반적인 상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연 그렇구나하는 정도로 만든 도서다.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입구가 너무 화려하거나 전위적이면 보통 사람에겐 그 문을 열어볼 자신이 없다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우리 일반적으로 뉴스나 미디어에서 나오는 문제그리고 당장 우리가 부딪히는 시급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정치라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겐 너무 낯설어 보이지만그 낯선 대상은 우리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배회하고 있다단지 그 스위치가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부당함그리고 그 이상으로 분노하는 우리 가족에 대한 피해는 그동안 무감각하던 정치적 세포를 살리는 기폭제가 된다.


 

 

정치에 관심 없다며 정치혐오 내지 자신이 중립이라 선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나는 책임이 없다라는 방식은 오히려 현재의 상황을 더욱 가속시키는 일이다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은 무관심한 사람들이 늘기를 바라며계속 프로파간다라는 선전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그러나 한국에서 상위10% 이내를 제외하면 결국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상위 1%면 처음부터 걱정이 없으나나머지 9%는 99% 중에서 투쟁으로 얻어지는 자리다.


 

 

자신이 그런 좌석에 앉아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여전히 위기감을 느끼고삶을 만인에 대한 개인의 투쟁까지 이어진다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단지 그 개인들의 이권을 찾아가기 위해 만들어놓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지금 한국에서 국민 내부투쟁에서 한편으론 미래에 대한 걱정물가에 대한 걱정삶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다그렇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남의 걱정은 쓸데없는 일이라 여긴다그러나 그 남도 당신에게 또 다른 남이란 점에서 공존 없이 경쟁으로 가는 것은 공멸할 뿐이다.


 

 

물론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고자신의 노력이 되어 보상받는 것은 정당하다단지 그 기회나 그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문제다. <생각해봤어>는 우리 사회의 전반에 널린 문제를 다룬 도서다일일이 그 문제와 상황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다들 우리 사회가 문제라고 여기면서 그 문제에 대한 근본은 생각하지 않는다아마 그것은 <생각해봤어>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내 이익에 대한 관점보단 더 넓은 영역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바르다는 점이다.


 

 

내가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분노에서 정치적인 관점의 형성이 되는 과정은 바로 그런 영역이다내 친구는 나보고 너무 편파적이라 하지만중립의 기준은 판단력에 대한 기준이지윤리적 기준은 아니다미디어의 영향과 일방적인 정보게다가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심리내부의 믿음은 세상에 대한 눈을 가려버린다옛날 말에 민심은 바람에 눕는 풀보다 먼저 자리에 눕는다는 말이 있다문제는 다른 바람이 불어도 풀은 올라오는데민심은 전혀 요지부동인 경우가 많다.


 

 

아마 그것은 정체성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인간은 이성과 감정에 의해 살아가고특히 이성적 판단에 의해 선택한다고 하나사실 인간은 이성의 판단조차 자신의 정체성에 이해 결정된다정체성이란 자신이 현재 살아있는 그 자체내가 살아가는 목적혹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고귀한 존재일 것이다한국의 정체성은 아직 20세기 끝도 아닌 그 앞에 머물러 있다. 21세기가 도래하고다시 한국전통문화를 찾아가려해도 그 단절의 공간이 여전히 우리사회의 갈등을 일으킨다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여기든 결국에 그 방향은 어떻게든 우리 생활을 변화하게 만든다변화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거꾸로 가는 현실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봤어>를 읽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면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진짜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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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네 여자 - 그리스도 기원 이래 가톨릭교회의 여성 잔혹사
기 베슈텔 지음, 전혜정 옮김 / 여성신문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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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네 여자>를 읽으면 그동안 우리 인류가 가지고 오던 문화유산의 암흑적인 부분을 알게 된다인류문명의 진보는 단순히 문화기술생활양식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게 아니었다때에 따라서는 오히려 그 이전보다 못한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었다이 책에서는 지금의 세계가 오면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수난을 당했는지그리고 그들의 죽음과 비참한 운명의 기록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알게 해주는 도서였다신에게 필요한 여자란 정녕 신이라고 불리는 관념적인 존재가 요구한 인간이 아니었다.

 

단지 신의 이름으로 향하는 인간들이 만든 치졸한 행위였다인간이 신의 명령에 따라 신의 진리에 따라 행동한다 하지만그 인간이 진짜 신의 말을 들었던 혹은 듣지 않았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그가 말을 하는 순간그것은 신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서 타인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신이란 존재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은 관념적 존재이므로 인간의 무의식적 내면에 있는 존재다바로 신이란 인간의 이성의 영역에 존재하기 보단 인간의 집단 무의식적으로 잔존하는 본능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군중심리에 따른 집단광기는 희생제의라는 독특한 문화적 현상을 만들고이 제의에서는 언제나 대속이란 희생양을 만들게 된다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적 요소들은 인간이 자연적인 존재즉 인간이 수렵과 채취로 통해 살아가는 미개한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들은 서로 침범할 일도 없이남자나 여자 모두 평등하기에 각자가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취할 수 있었다하지만 인구가 늘어나고공동체 규모가 커지며가족단위가 부족단위 그리고 더 나아가 민족단위로 이어지면 국가라는 체계가 생겼다.

 

끊임없이 대지를 이동하며 풍요로운 자연의 은총을 받았던 인간들은 이제 그 자연의 한정적인 자원 때문에 서로에 대해 칼과 창을 겨누게 되었다플라톤이 추구하던 <국가>라는 서적처럼 인간사회는 결국 전쟁으로부터 언제나 자국을 지켜야만 했고강력한 정신력과 육체가 필요했기에 남성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이어졌다하지만 그리스폴리스 시대라도 남성중심의 사회라도 그나마 여성에게도 나름 권리가 있었다인류에서 가장 용맹하고 사나운 남성으로 스파르타 전사를 손꼽을 수 있다스파르타 용사들은 그 누구의 명령을 듣지 않고용감하게 전장을 향하여 돌진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유일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스파르타 용사의 아내였다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진정으로 강한 남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더 강한 용사가 아니라그들보다 육체적으로 약했던 그들의 아내였다이 부분에서 <신의 네 여자>는 다소 지나친 오도를 범한 것이다루소의 <에밀>에서 여성은 남성즉 남편에게 복종하게 위해 존재해야 그를 반여성주의적 요소를 드러나게 했으나사실 <에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면가정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식탁에서 그 자리의 권한과 관리는 모두 여성이었다.

 

다소 부엌에 권한을 지니게 한 점이 아쉬울지도 모르나, <에밀이전에 루소의 <신엘로이즈>에서 생 프뢰와 데탕주 쥘리의 편지를 읽어보면 과연 루소가 반여성주의적 성향 혹은 남성우월주의라고 생각할 수 없다. <신엘로이즈>는 이성과 감성에서 르네상스 이후 유럽은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에서 이성을 절대화를 추구했으나루소는 오히려 계몽주의자이면서 반계몽주의자로서 대변한 것이다. <신의 네 여자>가 아쉬운 부분은 바로 이런 요소다여성이 당하던 부조리와 모순들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비참하고 끔찍하다.

 

그림 한 장도 없는 책이지만여성에게 가해진 고문과 폭력을 텍스트를 읽는 순간 내 머릿속에 흘러 오르는 이미지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나치게 여성피해에 대한 강박관념이 지나치다고 여겼다물론 그 피해가 있었고그 피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여성에 대한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한다하지만 모든 문제를 과거 교회의 시작인 가톨릭 중심에서 시작되지만글을 보면 남녀 차별문제로 지나치게 강요될 가능성이 높다예전에 읽어본 <캘리번과 마녀>의 경우마녀사냥에서 여성이 당한 수모와 고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만그 원인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에 대한 모순에서 극대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신의 네 여자>에서도 그런 부분을 인용하고 있으나모든 부조리가 교회에서 시작되고지금의 교회가 그렇지 않더라도 예전부터 전래된 문화적 양식이 계속 덫이 되고 있음을 설명한다책의 끝은 교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하나내가 보기엔 단순히 여자의 억압하던 존재는 교회만이 아니라 교회가 그동안 결탁해온 권력에 대해 공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책에서도 마녀사냥에 대한 본보기가 단순히 마녀사냥이 광적으로 이루어진 16~17세기만 아니라 고대국가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현대의 마녀사냥이 아닌 마녀사냥의 대상은 여자들이 많이 당하고 있지만남자들도 만만치 않게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의 네 여자>는 이때까지 여성이 당한 억울함을 충분히 짐작하게 되겠지만그 대안방법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현대사회에 여성들이 공직자로 오면서 고위공직에 남성이 틀어막는 모습이 있다는 것은 안다하지만 이와 다르게 계속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직업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다투는 현실이 되었다이런 부분은 단순히 여자의 인권만 보는 것이 맞는 게 아니라 소외된 중하위층 남녀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왕이 정치하고교황이 정치에 큰 압박을 가할 때는 전 근대적 사회였고이 시기에 부당한 위치에 놓인 여성이라면 그 처지는 분명 99.9% 부당하고 억울하다하지만 지금은 왕이 지배하는 세계도 아니고교황은 세계평화나 인류애를 말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물론 아직까지 꽉 막힌 사고로 말이 통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여성들은 투표권이 있고자유롭게 연애할 권리도 있다연애할 권리결혼할 권리심지어 아이를 낳을 권리마저 박탈된 게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조건이 된다면 충분히 결정할 수 있다이 책이 2004년에 번역되었다고 하나 1990년대 말이라도 충분히 위의 조건들은 한국에서 가능했고한국보다 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유럽이라면 두 말할 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신의 네 여자>는 과거의 여성수난사에 대한 서적으로 탁월해도 미래에 대한 여성에겐 그다지 의미가 없다유럽에서 여성들이 구교인 가톨릭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으며설령 믿고 있더라도 자신들만의 삶을 반영하여 종교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종교라면 아마 미래에 도태되어 존폐의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른다여성은 남성보다 생체적 조건에서 불리하나생물학적(추위나 더위가 여자가 남자보다 강하다)으로 불리한 게 아니다경제적 조건에서 극한의 상태가 아니라면 충분히 생계가 가능하고적당한 교육과 환경이 주어지면 좋은 학자도 되고정치가도 될 수 있다.

 

교회가 만들어온 열등한 여자창부성녀바보 같은 여자들은 만들어서는 안 된다이제까지 신이라는 이름을 대는 교회에서 그렇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자본주의와 미디어가 생산하고 있다교회가 신의 이름을 대신하여 돈이라는 자본주의가 우리의 새로운 신이 되었다아직까지 그런 과거의 유산이 보인다는 점은 분명하다교회에선 늙은 여성들의 지식과 삶의 지혜를 두려워했다그녀들이 의학기술과 민간요법은 마을의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늙은 노인들을 혐오하게 만든 것은 그녀들이 마을공동체에서 영향력을 박탈하게 하고늙은 여자는 마녀의 이미지화 시켰다.

 

디즈니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인 <백설 공주>에서 늙은 마녀가 나와 독이 든 사과를 백설 공주에게 건네준다독이 든 사과를 만든다는 것은 독 자체가 하나의 약품에서 시작되고 사과는 철분과 비타민이 많은 과일이다독이 든 사과로 독살하는 장면처럼 음식과 약초로 통해 의학기술을 가진 여자들을 악적인 존재로 전략하게 한 것과 같다백설 공주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고생식력을 가졌기에 필요한 존재였다왕자의 키스에서 모든 운명을 맡기는 것처럼 여자는 아무 것도 필요 없고남자에게만 복종하는 것이 맞는 것으로 보여준 것이다.

 

물론 신화적으로 백설 공주는 근친상간을 하다 어머니에게 내쫓기고어머니는 백설 공주의 계략 아래 잔혹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신화와 동화는 겉과 속이 서로 다르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내지 민간에서 자신들의 입장에 맞게 금 전해온다문제는 현실에서 우리는 백설 공주처럼 살아가기 바라는 여성이 많다는 점이다한 번 꿈을 꾸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백마 탄 왕자는 현실에서 부르주아고그들은 일부 극소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들이다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남의 권력에 의지하는 여성도 있고아닌 여성도 있다.

 

과거의 여성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입장을 다지기 위해 여성 자신도 주체적인 존재로 되어야 하나자신의 이익에 치중한다면 마녀사냥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다한국에서 최근 극우사이트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일화를 들으면 지나치게 심각하나그 혐오대상이 되는 여성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단지 그것을 너무 확대하여 일반화시키는 것 자체가 논리성을 찾아보기란 무리다이런 현상에서 사회는 남녀의 대립적 관계로 몰아가기 위해 서로를 적으로 만들고서로 골을 상하게 만든다마녀사냥의 토대 역시 그러하다대부분 농민의 토지가 몰수되고한파와 가뭄으로 몰아치면 그 책임에 소재를 자연적 재해가 아니라 대속의 존재를 찾게 된다.

 

대속의 존재가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신의 네 여자>를 보면 부패한 기득권층이 행한 방식과 그 철저한 모습을 보고 반추하여 이에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이에 대한 대안 역시 누차 강조하듯이 좋은 결말을 줄 수 없을 것 같다광신적인 행동이란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빠지고바보 같은 인간은 여성만 아니라 남성도 적용된다이성적 문명의 유지 아래 비이성적이고 잔인한 행위들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며그 죄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에 대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그런다고 하여 그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고 해도 그 비참한 역사는 지금의 여성이 아니라 과거의 여성이 받은 것이다과거를 부정하고 잊으라는 것이 아니다그 부당함에 대한 책임에 대한 보상심리를 바라는 것이 문제다부당함 현실은 보상심리로 당장은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나그것은 다시 불화를 일으켜 다른 방식의 마녀사냥으로 도달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녀사냥의 희생자는 항상 약자이고사회적으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다그들의 희생을 정당화되는 점에서 그 대상자는 이제 여자만이 아니라 단지 약자인 자들이다남녀차별로 희생당한 여성들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여성의 권리만 보는 게 아니라 약자의 입장을 보는 게 타당하다. <신의 네 여자>에서 억울하게 마녀로 지목되어 참혹하게 고문당한 주부의 유언에서 사랑하는 자식에 대한 걱정이 참 안타깝다마녀로 지목된 여자 중에서 처음에 늙은 여자에서 과부와 주부가 많았다그들의 죽음에도 여전히 집에는 그녀들의 아이들은 남아있고아이들은 배고픔과 외로움그리고 광기에 빠진 마을주민에 의해 고독한 삶에 분명 절망할 것이다.

 

마녀사냥이 사라진 지금도 마녀사냥이 아닌 마녀사냥에 희생된 사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런다고 멍청하게 TV만 보고 인형처럼 살아가는 것 역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자신의 약한 부분을 이용하여 편리를 추구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결국 여성들은 자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삶의 주인이 되는 게 이 모든 비극을 마무리 지는 길일 것이다물론 그건 여성의 노력만 아니다한국사회에 보면 꼰대 같은 남성들이 여전히 기득권층에 속하며그들의 비논리적인 말과 행동이 하나의 법칙이 된다과거 <신의 네 여자>를 만들고 유지하려 한 자들인 만큼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나 별 반 차이는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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