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주니어 클래식 11
강신준 지음 / 사계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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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교수님의<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를 읽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나는 카를 마르크스 <das Kapital>, 즉 강신준 교수님이 번역하신 <자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딱 1번 다 읽은 적이 있었다. 3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읽으면서 경제학에 대한 개념과 정의, 그리고 경제학으로 알아보는 인류의 역사와 가려진 더러운 진실을 아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자본>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고, 하다못해 다른 학문적 연계성까지 이어져갔다.

 

현대사회는 이른바 자본주의 경제구조체계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체계가 유지가 가능한 이유는 경제적인 구조에서 자본주의를 대체할만한 경제 산업구조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런 만큼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것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정치, 사상, 군사, 외교, 민족, 사회, 예술, 문화 등 다양한 구조와 만나게 되는 점이다. 그런 점을 본다면 왜 <자본>이 우리 시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까? 국내에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겠지만, 이미 영국에서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인가에서 1위로 마르크스로 뽑혔고, 또한 영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는 누구인가에서 마르크스가 1위로 된 적도 있었다.

 

영국이란 나라는 오래된 국가인 만큼 역사, 철학, 경제학, 사회학 등 수많은 학문이 발달하기로 유명한 국가이다. 또한 우리나라 지성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학교수들에게 한국에서 큰 영향을 준 철학가 역시 마르크스가 뽑혔다. 지식인을 가진 지식인들과 일반적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 보는 마르크스는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다소 차별적인 발언일 수 있겠지만, 상식보단 지식을 믿는 편이다. 대다수가 아는 상식이란 결국 정확한 근거와 이성적인 판단보단 단지 쉽게 생각하고 여기는 쪽으로 갈 확률이 높다.

 

여기서 상식이란 길을 걷을 때 쓰레기를 막 버리거나,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고성방가를 지르거나 줄을 서는데 새치기를 하는 행위 등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상식이다. 상식과 지식의 차이는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판단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을 알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 내용을 처음부터 대해야 하며, 그런 지식을 안다는 자체가 그 사회가 가진 거대한 헤게모니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질적 요소로 간주될 수 있다.

 

가령 중세유럽까지는 인간의 존재는 신이 창조했다고 여겼지만, 다윈의 발견과 유전생물학의 발달로 인간은 영장동물 중에 포유류이며, 인간이 언어를 가진 것은 신이 준 것이라 여긴 것이 야생에서 길러진 아이들이 일정 나이가 지나면 언어를 습득할 수 없는 것으로 연구되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곤란한 이유는 그런 사실에 대한 자체가 기존 사회에 대한 하나의 반란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인간이 신의 산물이 아니라면 인간은 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으므로 휴머니즘이 도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의 절대성을 말하던 중세유럽의 교회에서는 매우 위험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창할 때 세계는 그를 비웃었다. 우리가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고, 그 지구조차도 스스로 계속 돈다는 사실은 인류의 역사에서 5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의 지식이 급속도로 발달하였다고 해도 결국 그 지식이 전파되고 통용되는 것은 길지 않았다는 사실이고 또한 전파되어도 간단히 납득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이란 것은 끊임 없이 미신과 싸우고 투쟁하여 인간의 야만을 문명화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야만이란 것을 문명화된 기술로 진보하여도 역으로 퇴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발견한 인류의 역사고, 경제의 눈이다. 경제라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화폐라는 이른바 돈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경제는 돈이라는 화폐를 떠나 인간이 얼마나 작은 일로 큰 이익을 보고, 남은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에서 만약 그 국가에 화폐가 없다면 경제학은 없는 것인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이상한 팬티 1장 거친 원시부족들이 화폐가 없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경제학이 있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판단하는 경제적 척도가 화폐가 되었을 뿐이다. 화폐의 종류에서도 종이화폐 그것도 넘어 은행에 계좌로 남아 있는 금액, 그것을 넘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계좌금액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종이화폐가 없던 유럽에서는 금과 은으로 화폐로 사용했고, 금과 은은 자국의 화폐만이 아니라 타국과의 교역에서도 가능했다. 하지만 귀금속의 가치는 계속 올라가고, 한정되어 있으며, 귀금속 자체가 하나의 소장가치(예술품이나 보물)로서 남는 경우가 있으며, 무겁고 취급이 어려우며 계속 생산이 어렵기에 종이화폐의 등장부터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종이화폐 등장은 엄청난 금액의 화폐를 종이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사람이 사는 일상생활에 계속 유입이 가능하기에 경제적인 이득과 더불어 치명적인 문제점도 있었다. 그것은 인플레이션이란 화폐가치 하락과 그로 인한 물가상승이다. 화폐가 일반 시중에 계속 유입되면 화폐가치가 하락하면 화폐소유의 차이에 따라 소비자의 소비양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예전에 국제적으로 원유가격이 저렴하고 국내에 중공업이 흥행할 때 과소비라는 것이 큰 문제점이 된 적이 있었다. 과소비를 하면 계속 화폐가 시중에 나가기도 하나, 대부분 사치품이 국내산이 아니라 수입물품이란 점에서 화폐가 외국으로 가게 되면 그만큼 국가적으로 부담이 오게 되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과소소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너무 소비하지 않아 시장의 경기가 차갑게 변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생산품은 꾸준하게 나오나, 소비자들이 구매하지 않으면 제품의 재고가 쌓이게 되고, 재고처분이 불가능하면 결국 업체는 부도나게 된다. 아주 예전에는 공급이 적어서 문제였으나, 이제는 소비가 부족하여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제적 문제 역시 자본주의의 한계성이다. 우리가 대체할 수 없는 경제구조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감정과 이성도 없는 존재이나, 문제는 자본의 주변에 있는 인간은 욕심과 이기주의로 풍부하다. 게다가 인간은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국경과 공간을 넘나들 수 없으나, 자본은 국경도 없고 공간적 한계도 없다. 인간들이 어디든 있든지 갈 수 있고, 그곳에서 최고의 권력으로 군림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형성되면 어떻게든 자본주의의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일 심각한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자본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고, 자본에 움직이고 있는 것도 인간이다.

 

결국 마르크스의 <자본>이 금지된 판도라의 상자로 된 사실은 자본주의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파헤쳤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결국 상식이냐 지식이냐 차이로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식이란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하고, 권력은 지식을 생산하나 그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자들은 모두 독점하기 마련이다. 왜 그런 문제가 생기는지 알 수 없다면 그저 인간들은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능력을 그대로 방치하면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우리의 지력이 있다고 해도 그 지력을 방치하면 지성을 얻을 수 없게 되고, 지성의 원천인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쉬운 것만 받아들인다. 보통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들은 어려운 것을 싫어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언제나 좋은 이익을 보려하며, 그런 이익을 보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쉽게 얻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즉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자라는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이기적인 요소와 더불어 이타적인 요소가 가지고 있어도,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런 습성의 타성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내가 평소에도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한 부분에서 가장 공감 가는 것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나 같은 일반인들이 부자로 될 수 있는 확률은 만 분의 1%라도 될까? 최근에 로또가 있지만, 로또에 된다고 잠시 부자가 될 수 있어도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자신보다 더 큰 부자들은 훨씬 많다고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아등바등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게 되나 중요한 점을 놓치게 된다. 부자가 되는 것은 결국 화폐가 많아야 하는 점이고, 화폐는 단순히 혼자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자본력으로 하여 다시 증식시켜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한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싸게 사서 비싼 가격으로 팔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사고를 가지기에 집을 하나의 생활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재테크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대출과 담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집을 사야 하거나 혹은 전세 내지 월세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점은 그렇게 세를 들어오는 사람조차도 집을 하나의 재테크로 생각한다. 자신이 빚을 내어 집을 사서, 그 집을 월세를 주고, 그 빚을 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집에 전세로 사는 경우를 들은 적이 있다.

 

만약 세를 준 집의 집값이 상승하면 좋겠지만, 만약 하락하거나 또는 지금 사는 집세가 올라가거나, 가장 치명적인 것은 세를 주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이사를 가서 보증금을 줘야 하나, 새로운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흔하지 않으나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크나큰 리스크를 부담이 오더라도 사람들은 계속 빚을 내고 집으로 화폐를 얻으려 한다. 결국 자본의 증식은 자본이다. 이런 꿈처럼 보이는 부자를 향해 우리는 계속 제로섬게임을 하고 있다. 물론 그것으로 통해 성공하거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1명의 부자가 탄생하는 것보단 다수의 실패자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 화폐의 유통은 계속될 수 있으나, 그런다고 그 화폐가 모두에게 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은 자신이 처음부터 소유한 화폐로서 싸울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개미라고 칭한다. 개미가 개미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대규모 자본을 가진 사람들과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개미들은 개미 이상으로 되려고 한다. 이런 경제적 상황과 거기에 보이는 환상을 깨는 것만이 물가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을 막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1달에 일하면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얼마인가? 아무리 일해도 받는 돈은 한계가 있고,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은 한계가 없다. 그렇다면 현실을 제대로 알고 절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원인을 모르고 계속 가속한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모험이다. 그래서 성과 없는 모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모험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처럼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모험으로 통해 성과 없는 모험 대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자본>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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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철학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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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사실 마르크스의 서적들을 읽다보면 그가 철학자임은 분명하나 철학도서로 만들기 위해 철학자로서 활동을 한 적은 없다. 그의 책들은 하나의 사회과학 도서들이다. 혹이라면 정치학 내지 경제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세계의 철학사에서 마르크스의 단원은 매우 중요하다. 근대철학사상에서 마르크스는 프로이트 그리고 니체와 더불어 그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정말 철학자로서 철학을 생산한 것인가? 그래서 나는 이 책 제목을 읽으면서 조금 의아하게 여겼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저술한 임승수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표지를 처음 보면서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라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어가는 사상가들을 보면 많은 철학자도 있고, 사상가, 혁명가, 문학가, 경제학자, 역사학자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철학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예전에 루이 알튀세르의 <철학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예전에 내가 적은 그 책의 서평을 찾아보니 이런 문구가 나왔다.

 

“루이 알튀세르는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적인 견해는 관념적일 수도 없고, 유물론적일수도 없다고 했다. 아니라면 두 가지를 동시에 대립하면 꾸준히 발전해 나가야할 가치라고 했다. 그런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존재하는데, 그 철학이 철학으로서 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철학이 그 자체로 움직이는 것이 옳다는 점이다. 철학에서 철학적이라 하는 것은 단순히 철학만 논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의 생애에서는 그는 분명 철학을 많이 알고 있었으나 그는 비판적인 경제학과 사회과학으로서 행동했다. 그런다고 해서 그가 철학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직접 철학적으로 행동했지만, 그런다고 그는 철학을 철학으로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경제학과 역사학 그리고 정치학에서 철학적인 관점이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본론>과 <공산당선언>을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내지 <프랑스 내전>과 같은 서적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정치적인 시각으로서 마르크스가 적은 도서다.

 

아직까지 나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나 마르크스의 철학적 변화에 대해 많은 설전이 오고간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시점이나 혹은 <자본>과 <공산당선언>에 대한 해석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많은 마르크스주의자까지 분파가 생기고, 여러 가지 형태로 등장한다. 재대로 이해하기 힘든 마르크스주의자 내지 그런 사상가에 대한 연구도서를 본 상태에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을 읽는 순간, 마르크스의 사상적 기본은 잘 쉽게 설명했으나, 마르크스철학이란 단어를 이 책을 읽는 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철학이나 혹은 마르크스주의라는 말만 들어본 정도다. 마르크스 철학보단 차라리 마르크스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지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루이 알튀세르의 <철학에 대하여>에서 나온 그 소절 때문이었다. 루이 알튀세르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 파리고등사범학교 철학을 전공하고, 다시 그 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어 가르친다. 20세기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이도 하나, 철학사상도서에 보면 프랑스 구조주의자로 나오기도 한다.

 

혹은 알튀세르가 아니더라도 <맑스 재장전>을 읽어도 마르크스에 대한 관점이 매우 다르게 서로 해석된다. 물론 임승수 작가본인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란 모택동이나 레닌 등이 한 업적에서 마르크스가 가르친 것과 상당히 다르게 한 것과 그 후에 이어진 것들이 마르크스가 오히려 부수고 싶은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문점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보다 임승수 작가가 더 많은 지식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외국에서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의 서적을 읽은 입장에서 다소 의문스런 것이 당연하다는 점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에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내용이나 발견한 법칙에 대하여 본다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매우 어렵기로 소문난 <자본론>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고, 그런 이론적인 요소에서 실재 현실적 요건을 반영하여 적용했으니 이해가 매우 빠르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연구도서가 독일, 프랑스, 영국, 심지어 미국조차도 나오는 점을 본다면 제목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은 적절하지 못하고 차라리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사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솔직히 말하여 우리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대해 낯설거나 혹은 이상하게 여기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사회시간이나 역사시간이나 우리는 은근히 마르크스주의적인 요소를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하면 역사는 주요인물로서 설명하나, 그 시대의 문화적 조건과 지리적 조건, 환경적 영향을 생각하면 역사에서 유물론적인 요소가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가령 내 개인적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그의 중원대륙에 향한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의 전국전쟁에서 보다시피 다이묘로 필두로 하여 여러 분파들의 귀족들이 대규모의 사병을 가지고 있었기에 절대권력자가 된 토요토미 히데요시 입장에서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신하들이 늘어나면 이들에 대한 포상이 필요하고, 자신이 가진 물자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신하가 서로 좋은 사이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을 조선을 보내면 국내정치적 갈등은 안정될 수 있고, 전쟁 이후 살기로 넘치는 귀족과 무사집단 그리고 사병들까지도 정치적인 위해로 올 수 없다. 조선까지 땅이 넘어오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큰 이득이 온다. 일단 일본은 날씨가 습하고 농사가 어려운 토지이므로, 벼농사가 잘 되는 조선에서 식량을 조달하고, 조선의 문물을 들이면 국가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장한다.

 

또한 일본은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므로 타국의 침입이 용이하지 않기에 무역거래의 용이성에서 조선만큼 좋은 영토는 없는 것이다. 임승수 작가말대로 토대가 상부구조를 만드는 것이라 말이 딱 맞는 것이다. 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문화유물론>으로 가면 토대와 상부구조는 다시 상부구조, 구조, 하부구조로 분할된다. 왜 마르크스의 유물론이 이토록 중요한가? 이른바 인류학에서 마르크스주의 역할이 무척이나 크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본론> 이외에도 여러 책들을 보면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는 역사부터 다룬다. 왜냐하면 인류는 생존을 위해 살아왔고, 그것을 위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경제라는 것은 반드시 돈, 화폐만이 아니라 자급자족부터 시작하여 물물교환, 화폐와 상품의 가치교환까지도 포함이다. 문제는 <자본론>에서는 그런 경제적인 역사에서 착취라는 것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착취는 누군가는 일하고 고생하는데, 그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지만, 착취로 인해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고생도 없이 풍요와 쾌락을 보낸다. 그런데 그것이 곧 인간이 문명으로부터 시작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란 점이다. 그런 것을 최초로 밝힌 사람은 마르크스보단 사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마르크스는 그것을 경제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소상히 밝혀내었다. 하지만 인류학이란 학문에서 20세기 최고의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학의 시작은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이라고 한다. 그리고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인류학에서 토대가 되는 것을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고 한다. 인류의 형태는 결국 경제적인 조건, 즉 유물론적인 요소가 필요한 점이다. 따라서 착취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누군가는 그 착취로 이익을 보는 것이고, 착취는 단순히 그 사회만 아니라 다른 사회나 국가로까지 이어진다. 전쟁의 목적은 결국 인간의 광적인 관념이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생존수다이다. 경제학의 영역은 단순히 화폐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성이다.

 

얼마나 적게 일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가? 이것이 경제학이란 점이다. 그래서 원시부족들이 자본을 몰라도 경제적인 부분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유물론적인 조건, 눈앞에 일어나는 현상과 자연적, 지리적 조건 등이 결국 인간의 토대가 되는 점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에서 문화는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인 조건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물질에서 관념이 되는 경우도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풍요롭게 보일 수 있으나 그 풍요로운 세계란 실제 우리가 물리적으로 접근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이루어진 정보에 의해서다.

 

spectacle이라고 하는 흔히 아무 의미도 모른 채 사람들이 말하는 스펙타클, 이미지로 매개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아는 정보는 정말 우리가 아는 정보인지 그것으로 조장된 정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되었다.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가 이미지의 허구라도 그것이 하나의 사실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소 마르크스사상과 무슨 상관이 있을지 모르나, <스펙타클의 사회>를 저술한 사람은 프랑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이란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이다. 자본력의 의해 만들어진 미디어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밝힌 것이 그의 저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연장선에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크대학의 학자들이나 혹은 영국 버밍험대학교 학자들도 그런 의견을 내고 있다. 결국 마르크스가 주장한 인간에 대한 가치가 하나의 인간성에 의해 판단되는 게 아니라 상품으로서 판단되어 인간의 가치가 물품의 화폐로서 결정되는 물신주의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 상품에서 이미지라는 것은 미디어에 의해 생산되므로 이미지가 결국 화폐의 새로운 척도가 되고, 이미지 중에서 상표나 기호 등이 결국 자본력을 좌우한다. 우리는 흔히 TV나 인터넷에서 브랜드 가치 내지 미디어의 상호로서 가치를 매긴다.

 

삼성자동차나 현대아파트나 엘지냉장고 모두 그 상호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고 여기지, 그 생산품에 대해 생산과정의 인간들은 모두 잊어버린다. 인간의 가치가 소실되고 이미지의 기호만이 등장하여, 노동하는 사람들은 상품에 의해 드러나지 않고 숨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몇몇 희생자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우리는 상품에 대해 구매가능하고, 결함이 있다면 교환이 가능하다. 상품의 교체는 가능해도, 인간의 교체는 대체할 수 없다. 이런 문제점이 마르크스는 이해했다. 지금 우리는 인간가 축소된다고 큰 고민을 한다. 그런 고민은 마르크스도 했다. 지나친 과로(18시간 내외 업무와 간간히 진행되는 철야작업)와 열악한 환경(더운 방, 먼지가 가득한 방, 통풍되지 않은 방)에 모두 병에 걸린 셈이다.

 

인간에게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재생산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재생산되어야 사회와 국가가 운영된다. 약 30년 주기로 인구가 사라지면 그 대체할 인구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다. 노동력을 대체인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지나친 노동은 인간수명을 단축시키고, 그 단축으로 인해 노동인구를 감소시킨다. 이에 반해 한국은 지나친 물가로 인해 인구를 감소하고, 노동인구를 단축시킨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자본을 위해 노동인구를 재생산하는 점을 각인하고 어느 정도 경영해야 하나 오히려 그 재생산 과정으로 통해 이득을 보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이 계속 이어지면 사회는 양적인 요소가 붕괴하여 질적인 변화가 온다. 양질관계의 변화에서 마르크스가 제기한 것처럼 우리도 그 문제에 봉착했다. 부부 1인당 1.2 내외의 아기를 가진다면 추후에 한국에 일할 사람도 없어지고, 국방력에서도 큰 문제를 일으킨다. 국방부 군인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육군부대의 규모가 조금씩 축소되는 것으로 아는데, 최근 내가 전역할 때는 군대에 필요한 지원시설에 대해 아웃소싱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재생산이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영속성을 유지하느냐 마느냐이다. 그런데 문제는 피라미드 구조와 빈부격차가 심하면 심할수록 인구감소와 국가적 안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해결대안으로 결국 빈부격차를 줄이고, 인구증가를 위한 지원을 해야 하나, 예산은 어디서부터 나오며 또한 그것을 모우기 위한 방편은 무엇인가? 빈부의 경제적 조건에서 중하위 계층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그들에게 모울 수 있는 금액이 한계가 있고, 상당한 부를 지닌 부자들의 세금을 거두려면 부자들의 반대가 이어진다. 상부구조가 토대로부터 이루어지면 부자들의 세금 추가징수 및 혹은 기업의 제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구는 줄고, 사회적 문제를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변증법적인 대립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마르크스는 이런 변증법적인 관계로 통해 균형을 이룰 수 없다면 그 대치지점에서 축척되는 밸런스의 불균형으로 인해 질적 변화 즉 사회적 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임승수 작가가 잘 지적한 프랑스대혁명의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그들은 프랑스 대혁명의 영웅이고, 법조인으로서 루소의 열렬한 지지자들이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좌파세력인 자코뱅당이다.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부르조아가 최초의 좌파였다는 점이다.

 

그들이 혁명이 가능하게 만든 것은 토크빌의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처럼 프랑스가 국가경제운영의 문제, 미국독립전쟁의 참전, 지방자치제가 아닌 중앙집권화로 이미 루이14세부터 경제적 위기가 시작한 점이다. 예산을 줄고, 세금을 필요한데 귀족들은 계속 납부를 거부하고, 할 수 없이 농민과 상인에게 세금을 거두게 되었다. 게다가 신흥 부르주아 세력은 우수한 두뇌와 재력이 있어도 신분상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도화선이 폭발한 것이 프랑스대혁명이다. 당초 삼부회소집에서 입헌군주제를 삼부회 부르주아 대표들이 요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봉건세력과 신흥 부르주아 세력의 대립관계다. 이런 변증법적인 대립이 역사를 계속 바꾼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르크스를 안다는 것은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고, 인류의 생산과 소비를 다루기에 인류학 영역까지 이어진다. 경제공황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던 시절, 마르크스가 그것을 밝혀내고 경제공황은 소비자는 일정한데 과잉생산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애덤 스미스의 시장경제주의적인 경제학은 생산과 소비가 일치했으나, 실제로 우리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다. 부도가 나는 업체에서 물건을 생산해도 팔리지 않아 상품가치가 없다면 빚더미에 앉을 뿐이다. 양적인 부분이 한계지점에 도달하면 결국 파산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파산되는 것이 자본가인 업체 사장이냐? 그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체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있고, 그 노동자에게 가족이 있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의 주된 출처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이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민경제는 파탄난다. 업체는 망하고, 경기는 침체하고, 돈은 없다면 노동자와 그 가족은 생계가 곤란하고, 그들의 생계로서 살아가는 상인 역시 곤란하다. 경제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나, 진짜 똑똑한 경영인이나 국가지도자라면 어느 정도 다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그래야지 자신의 상품이 팔린다.

 

노동자는 단순히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다른 상품을 구매하고 팔아주는 또 다른 고객이다. 그래서일까? 일본 문화평론가인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도서 어느 부분이 생각난다. 하다못해 노동자에게 국가는 있어도 소비자에게 국가는 없다. 소비자가 결국 기업과 국가를 살리는 것이다. 소비자를 죽이는 기업과 국가에게 미래란 없다. 자본으로 국경을 초월한 기업에겐 다른 시장을 찾으면 그만이나, 국가는 물리적으로 국경이 존재하므로 다른 선택지점이 없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을 읽고 쓴 글이지만, 이 책을 읽는 그 이상으로 말하자면 “우리들에게 날개란 없다(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제목).” 단지 추락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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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제2판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에서 어려운 고전으로 여러 가지 서적들이 있을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게오르크 헤겔의 <정신현상학>,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등등 근대철학만이 아니라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역시 어렵다. 그런 점에서 철학을 알아가는 것은 돈과 명예 등과 같은 이익보다는 역으로 별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려서 오늘날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안 그래도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이 철학인데, 그 어려운 철학마저 접근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렇지만 철학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철학은 결국 인간이 세상을 볼 수 있는 하나의 등불이다.

 

어느 풍랑이 세차게 몰아치는 바다 위에 어떤 한 척의 바다가 있다. 그 바다 위에서는 한 치 앞도 예상하지 못해 이들의 운명은 언제 죽음의 사신과 춤을 춰야 할지 모른다. 그 속에서 한 줄기의 등불이 보인다. 아주 작고 약한 불이지만 그나마 그것으로 통해 앞길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철학이다. 세상을 보는 작은 눈, 하지만 그 작은 눈이 계속 이어지면 풍랑에 위태로운 선박은 운 좋게 낯선 무인도에 잠시 정착하여 파도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란 한 번의 답변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학문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철학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재성 내지 근원 그리고 실존적인 문제에 대면하게 된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이 세상을 두르고 있는 근원과 내가 살아가는 사회란 무엇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란 무엇이며 세계란 또한 무엇인가? 작은 고민이 어느새 큰 물결이 치는 넓은 곳까지 볼 수 있는 것이 철학이다. 하지만 철학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카를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외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생각하면 철학자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들은 중세유럽까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들이 제기한 철학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일련의 군주정치 내지 민주제도라도 소수 귀족에게 그 권한을 두고자 했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제도에서 민주주의라고 해도 그것은 10% 미만의 성인남성이고, 어린아이와 여자 그리고 노예와 이방인에게 제외되었다. 민주주의가 공화주의적인 정치로 본다면, 공화주의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애가 상실된 민주주의 정치란 순 위선에 둘러싼 자기 이름을 살리기란 점이다. 박애만큼 위대한 정신적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박애가 존재해야하지 자신의 자유만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살리고, 인정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애적인 사상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조건 중에 하나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인간에게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날 이 글을 적는 본인과 혹은 내 주변이나, 그 밖에 사람들 대부분이 과연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나는 내 자신이 대해 행복하다고 여긴 적이 그다지 없다. 단지 행복보단 일련의 안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슬아슬한 일과를 보내고, 오늘도 무사히 혹은 이번에도 무사히 자체가 행복이라 여기지 못한다. 단지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한 순간의 안도이다. 행복감은 그런 안도에서 올 수 있겠지만, 근본은 달라지지 않고 또 다른 시련과 고통이 찾아온다. 언제까지 그런 안일한 자기만족에 의한 순간적 안위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인가? 다소 회의적인 발언이 아닐 수가 없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까지 일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잔업과 야근을 해야 하며, 상상 이상으로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그렇게 힘든 일과를 매일처럼 보내고 나온 대가란 이른바 돈이다. 우리는 돈에 의해 살아가고, 돈에 의해 죽어간다. 자본이 매개로 되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살아간다. 자본주의구조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개 소시민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이때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 시스템이 아직 대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특성은 결국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경제구조에 있다.

 

지금 한국인 인구가 5천 만 명을 넘었다. 따라서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므로 언제나 부동산 과잉열기에 인플레이션은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오르고 있다. 이런 시기에 각자가 주거하여 살아갈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소유한 집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많고, 전세나 월세로 어렵게 버티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집을 가지기 위해 거액의 돈을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아, 그 대출 이자만 해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돈이라는 것에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속박 받고 있다.

 

결국 우리 현대인들은 자신이 가진 돈에 의해 인생과 생활 그리고 미래까지 결정 받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구조에서 철학이란 무엇이고, 세상이란 무엇일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신선놀이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망각의 존재로 보이는 철학이야 말로 존재해야지 현재 상황을 바르게 이해한다. 그래서 이 글의 제일 위에 나온 세계에서 어려운 도서 중에 하나로 속하는 서적이 있으니 바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자본론>에 대해 일단 기본적인 설명을 하자면,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태어나고 철학박사를 수여받고, 노동자의 부당한 현실에 대해 분개하여 노동운동으로 활동하다가 당국에 의해 추방되어 영국으로 망명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런던도서관에 머물면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리카도, 제임스 스튜어트 등의 서적을 읽으면서 경제학에 몰입했고, 그렇게 탄생한 게 <자본론>이다. 한국에서 <자본론>과 그리고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면 이상한 사람을 몰리겠지만,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 가면 마르크스는 엄청난 학문을 만든 장본인이다.

 

조금 의아한 점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사회과학 도서로서 경제학을 말하지만(도서관에 가면 사회과학 분류도서로 앞자리에 3을 부여받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다르게 보면 철학도서와 같다. 세계 3대 경제학 도서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케인스의 <일반이론>이 있다. 물론 애덤 스미스의 경우 경제학자 이전에 윤리도덕학자였고, 케인스도 경제적 문제가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민생활에 큰 여파를 주므로 기본적으로 철학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자본론>은 이 2가지 서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본론>은 순수하게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고찰 도서이고, 그 고찰로 통해 자본의 유무로 인해 고통 받는 약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집에서 <자본론(도서출판 길, 번역자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강신준 교수)>을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공장감독관에 의해 기록된 보고서를 읽게 되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하루 24시간 중에 12시간 노동은 예사고, 주말도 없을 때도 있으며, 심지어는 18시간 넘게 노동을 시킨다. 어린아이는 이제 4~5살부터 시작하여 잠도 재우지 않으며, 좁은 공간에 더러운 공기 속에서 장시간 노동착취를 당해야 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실로 지옥이 어디냐고 신이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지옥이 있는 곳은 사람의 관념 속에 자리 잡은 곳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할 터이다.

 

신이란 있는 것인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온 유명한 문구가 있다. “신은 죽었다!”, 정말 신이란 존재가 존재성을 두고 생각하자면 있을지도 모르나, 그 신이란 인간의 운명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그냥 구경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 든다. 신은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TV에서 쇼프로그램을 보고 즐기고 있듯이 구경하고 있는 방관자라고 생각할 뿐이다. 왜냐하면 신이 정말 존재하여 현실에서 심판을 한다면 죄 없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거나,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억압과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내 머리 속의 이성과 지식이다. 물론 인간은 감정에 변하기 쉬우며, 무의식적인 요소로 순간 잘못된 길을 선택한다. 초자아라는 슈퍼에고, 이드라는 무의식 사이에서 자아는 늘 갈등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사회구조 역시 그렇다. 문제는 이드로 인해 조장된 현실이 이상하게 슈퍼에고로 위장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작가나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현실의 문제에 대해 개선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최근 생활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우리는 언론에 통해 많이 접하게 된다. 그들의 비참함의 종말은 소설 겸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코제트의 어머니가 생각날 정도다.

 

문제는 빅토르 위고가 그렇게 저술한 당시가 마르크스의 <자본>이 나오는 내용 그대로라는 점이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이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나, 막상 그것이 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현실에 대한 각인에서 자신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일목의 관심도 없으면서, 사건이 터지면 마치 자신은 착한 사람인양 걱정을 한다. 도대체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을 막아내지 않은 사회와 국가기관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참으로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이런 사건이 터지는 것은 미디어로 통해 타인의 죽음을 접하나, 직접적으로 나와는 무관하기에 그것은 하나의 미디어라는 매체로 통해 이루어지는 감정소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평소 남에게 박애정신을 가지지 않은데, 왜 이럴 때에만 자기는 인간인척 하는 것일까? 인간이란 위선과 모순을 가지는 게 당연하지만, 그것마저 거부한다. 결국은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 존재하려 하고, 그 이기심에 의해 타인들에게 비난당하지 않도록 순간적인 가면을 쓸 뿐이다. 감정적으로 안타깝다는 기분은 실제이나, 무의식적으로 나는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구조에서 자본주의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인간의 생활양식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생각하기 어렵다. 지금의 생산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비체계 역시 어렵다. 대량적으로 생산되기에 우리는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런 소비적 관계에 모순이 발생했다. 생산하는 것에 비해 소비가 가능한 사람들의 입장이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경제구조가 있어야 모두 살아갈 수 있다고 하나, 최근에 자살한 가족들이나 혹은 어려운 환경에서 매일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들이 백만 명 중에 1명이라면 문제가 안 되나, 과연 1명이 백만 명에서 1명일까? 아니면 천이나 만 명 중에 하나인가? 빈곤층의 증가로 최근 양극화 더불어 사회적 문제도 발생한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의 폐해다. 개인의 능력과 개발을 위해 경쟁적인 요소로서 자본주의는 절대 부정적이라고 여기지 않으나, 문제는 그런 점까지도 모두 부정하는 자본주의로 된 것이다. 이전에 존 롤즈의 <정의론>을 읽다보면 최소수혜자에 대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지원을 해주어야 정의로운 사회가 되며, 만약 최소수혜자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경제적 지원이 없다면 그들은 정치적 자유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한다. 정치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지식이 필요하고, 지식을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하나 적정한 교육이 없다면 정치적 선택사항이 멀어지고, 그 선택지점에서도 경제적 문제로 인해 일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수정보완가능한 자본주의라면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국가가 자본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운영을 한다. 빈곤층에 대한 문제는 국가의 문제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자본은 이미 국경을 초월했다. 기업은 국가의 기업이 아니라 기업의 기업이다. 임금문제나 환경오염, 시장독점이나 경제공황 역시 이런 문제에서 발생한다. 많은 경영자들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말하나, 지금은 그런 경제활동이 <국부론>과 어울리지 않고, 처음부터 애덤 스미스는 경제활동에서 공정한 상거래야 한다고 했다. 타인의 생계나 생명을 짓밟는 행위에서 애덤 스미스는 납득이 가능할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회적 구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무엇이 가로막고 있고, 그 무엇은 어떻게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지 말이다. 따라서 자본은 경제학을 다룬 사회과학도서이나, 그 실존적 문제를 대해 과학적인 법칙을 설명한 철학도서일 수 있는 것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자본론>은 매우 어려운 책이다.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의 서적은 몇 권 읽어봤고, 특히 <자본론>은 동아대학교 강신준 교수가 번역한 도서로 읽었다. 예전에 서울대학교의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은 읽지 않았다. 이번에 읽어본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작가가 서울대 출신인지 김수행 교수의 도서로 인용했다.

 

<자본론>을 1차례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기에 나는 그 책이 어려운 책이란 사실을 안다. 그런데 원숭이가 이해할 수 있다니 무슨 말인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상당히 <자본론>을 쉽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 분량은 1-1권과 다른 권에 있는 일부라는 점이다. 3,000(글자 수가 빽빽한)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200(글자 수가 큼직함)페이지 분량의 도서를 다 커버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본론>이 초반에 무엇을 다루고자 하는지에 생각하면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다고 원숭이도 이해한다고 해도 진짜 원숭이가 아니라 작가 본인이 원숭이로 캐릭터처럼 나온 점에서 원숭이라고 나는 여긴다.

 

원숭이라는 작가, 하지만 작가 본인은 서울대학교 출신이고, 서울대가 아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국민들이다. 그래서 원숭이로 나온 작가의 모습은 왠지 이율배반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그러나 적어도 모두가 꺼리는 <자본론>을 이렇게 쉽게 책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점은 매우 놀라웠다. 특히 착취에 대한 잉여노동시간과 물건의 가치를 화폐로서 정하는 부분은 <자본론>을 읽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마르크스가 발견한 법칙이 아직까지 21세기에도 보이고, 21세기인 지금도 세계 명문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설사 마르크스주의자까지 아니더라도 마르크스의 영향은 철학, 경제학, 문학, 미학, 예술까지 영향을 주고 있으니 한국에서 보는 마르크스와 세계의 마르크스의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마르크스를 알아보기란 매우 어렵다. 아니 오히려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안 좋게 보는 사람도 한심하게도 마르크스에 대해 엄청나게 영향을 받은 사람의 서적을 추천했다. 서적명은 <문화의 수수께끼>,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던 마빈 해리스 교수의 저명한 서적이다. 문제는 마빈 해리스는 <문화유물론>이란 서적으로 통해 자신의 문화인류학의 연구결과에서 <문화유물론>이란 도서명은 결국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대한 헌정이라고 했다. 마빈 해리스의 서적을 추천한 사람이 평소 적어대는 글과 그가 추천한 책을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그것도 제법 한국에서 인지도 있고, 유명한 사람인데도 그런 행동을 한다. 이게 한국의 지식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수준이다.

 

전부 그러한 것은 아니나, 적어도 세상을 보는 눈에서 다양한 관점이 중요하다. 마르크스의 서적을 읽으면 내가 읽지 않은 시기에 한 생각이 나온다. 자꾸 중소기업이 망하고, 대기업만 흥행하면 대기업의 일자리는 한정적이고 중소기업에 일하는 사람들이 해고되면 결국 경제문제가 대두되지 않을까? 그것은 사실로 나타났고, 지나친 노동이나 혹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의해 사람이 망가지는 것은 옆에서 봤기에 충분히 공감되었다.

 

따라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 위해서는 결국 관점을 새롭게 보고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 그중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다. 19세기 저술된 서적이라 오래된 것이 아닌가 하나, 적어도 애덤 스미스보다 1세기 후에 나왔다. 아직도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에서도 배우고, 경제역사학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다. 어째든 인간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한 것이나 인지하지 못한 것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아마 그 걸음마로서 좋을 것이다. 단지 이 책을 보고 이해하기 쉽다고 하여 <자본론>이 이해가 쉬울 것이라 여기면 안 되나 말이다. 그래도 한 번 추천한다. <자본론>을 이제 막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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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다시 읽기 -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돌베개 한국학총서 15
이호룡 지음 / 돌베개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신채호 다시 읽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한 영화가 생각났다. 예전에 영화배우 장동건 씨가 출연한 <아나키스트>라는 작품이었다. 한국이 일제강점기 시대 아나키스트들의 활동과 그리고 죽음,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잊어진 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보면 전형적인 모던보이였고, 그래서인지 항상 멋진 양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쓰며, 술집 미녀아가씨와 농담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대의 암울함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거기에 빠진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은 겉과 다르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멋쟁이 미남청년들은 알고 보면 술과 노래, 패션을 좋아하는 모습은 물론 좋아하기도 하나 그 이면에는 항일운동을 하던 자였다. 일본군의 주요인물을 살해하거나 또는 공작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아나키스트>처럼 아나키스트들은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자였다. 단지 작품에서 장동건 씨가 맡은 역에서 마약을 흡입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처한 운명과 현실,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는 젊은 지식인들의 고뇌가 숨어 있다.

 

그런데 이 아니키스트의 정신은 어디서부터 시작인가?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래저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서 주요 단체나 조직을 보면 제일 유명한 것이 상해임시정부부터 시작하여 김좌진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이 운영하던 항일유격대, 그리고 종교단체로는 대종교, 정치적인 체제에서도 좌우 이데올로기 역시 같이 참가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는 모호한 면이 있다. 아나키스트는 자유주의이나, 모든 억압과 소속을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권력이 지식을 생산하고, 지식이란 체계가 누군가에게 권력을 독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권력에 대한 관계에서 지식은 누구만의 소유가 아니라 전체가 나누거나 공동체적으로 가져야 할 것이란 점이다.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미셀 푸코의 담론이 생각났으며, 거기에 대한 대안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요소가 생각났으나, 그런다고 아나키스트는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체계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자나 농민이 단합하여 하나의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는 것이라면 아나키스트는 그것마저도 해체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이가 그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란 점이다.

 

생소하고 너무나도 낯선 한국의 아나키스트, 한국에서 아나키스트라는 존재를 그다지 접해보지 못했으며, 그들의 극단적인 자유주의는 현재 신자유주의라는 자유주의와 전혀 다른 자유주의다. 무정부주의는 작은 정부도 아닌 정부가 없는 것을 추구한다. 단재 신채호라는 이름은 독립운동가 이름 중에서 나오는 이름으로 민족주의 사상가이면서 역사학자다. 그런 그가 한국의 아나키스트 운동가 중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았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단재 신채호라는 인물은 조금 알아보던 계기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많은 인물 중에서 대종교에서 활동한 점이다. 신채호와 활동하던 인물 중에서 대종교 3대 교주인 윤세복이란 이름이 나온다. 당시 대종교의 주요 인물들 중에서 독립운동이나 한국의 민족주의를 위해 헌신하지 않은 분이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 역시 대종교에서도 활동을 했고, 그동안 한국역사를 가려진 곳에 있었는데, 다시 복원하려고 했다. 특히 조선시대도 그러하나 우리나라가 사대주의사상에 가려져 자기민족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음을 크게 염려했다.

 

그래서 김부식이 집필한 삼국사기를 비판하고,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잡기 위해 순암 안정복 선생의 동사강목을 비롯하여 다양한 역사서적을 연구했다. 특히나 광개토대왕비를 직접 보러 가거나 각종 역사문헌을 참고하여 한국역사를 복원하려 했다. 당시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를 사회진화론으로 보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강력한 국력을 중시했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다소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국가주의로서 접근했다. 구국적인 가치를 국가주의로서 당시 고구려시대의 영웅들을 칭송했다.

 

을지문덕이나 양만춘 장군과 같이 중국의 거대한 병력을 지혜와 용기로 물리친 장군을 소재로 글을 적었다. 초반에 신채호 선생은 나라를 구하는 것은 용기와 지혜 있는 몇몇의 영웅으로 생각했다. 사회진화론적인 가치와 더불어 일제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은 영웅이란 점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게 되었다. 러시아혁명과 삼일운동을 보면서 국가가 있는 것은 국민들에 의한 국가주의가 아니라 국민 그 자체 아니 민중이라는 그들이었다.

 

그런 역사적 가치관이 처음에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역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고, 역사의 중심은 특정인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이어야 하는 점이다.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아나키스트적인 정신은 남녀노소라는 신체적 조건을 떠나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도 모든 것이 민중이어야 한 것처럼 생각했다. 그가 바란 세상은 오직 모든 것에서 해방이기에 처음 그의 목표는 대한민국 독립만이 아니라 독립 후에도 모든 것을 해방하기를 원했다.

 

그런 해방적 미래를 위해 동양의 아나키스트를 모은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가 적대한 국가는 일본이나, 일본 내에도 아나키스트들이 있었고, 그가 아나키스트가 되려는 것은 고토쿠 슈스이의 <장광설>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접했고, 일본 내에서도 일본천황을 암살하려던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다. 적대하는 국가에서도 어느 정도 동조한 인물이 있었다. 동양의 아나키스트들은 자금을 모아 무기를 제조하는 공장과 보급책을 획득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만들기도 하고, 수많은 인파들 속에 일본관료나 군장성이 오면 암살작전을 실행한다.

 

단재 신채호의 독립운동방식으로 테러적 직접행동론을 민족해방운동의 방략으로 체계화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아나키즘 정신으로 수용했으며, 1936년 민족전선론을 폐기할 때까지 단재 신채호의 사상을 수용했다. 그래서 갑자기 생각난 영화가 바로 <아나키스트>라는 작품이다. 그들은 은거하거나 위장하여 군장성을 살해하는 테러행위를 벌인다. 그들의 테러는 자신을 위한 테러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억압에서 해방하기 위한 테러였다. 그러나 시대와 혹은 이상한 교과서나 어느 특정사람들은 그들은 단지 테러리스트로 보려 했다.

 

그렇지만 왜 그들은 테러를 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조명과 민족의식이 있다면 당연히 납득될 사항이다. 자국을 지키려면 자국민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기반하는 것은 자국민이란 역사적 민족적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분명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진화론에서 사회개조론으로 진보하여 보편적인 인류의 자유를 위해 그는 온 몸을 바치고 결국 뇌일혈로 서거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교도소에서 서거한 후에 고국으로 돌아올 때 자국의 땅에 묻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무덤을 만들려는 사람에 대해 감금과 구속, 고문이 이어졌을 정도니 말이다. 다행히 그의 육신의 불길에 나온 하얀 가루는 땅에 심어져 그의 안식처는 찾았다. 그러나 그가 진정 원한 세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상에 무조건으로 동의할 수 없고, 그 방식이나 행동조차도 옳다고 볼 수 없다. 단지 그가 바란 모든 것에 대한 억압이 끝이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세계는 결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향하여 계속 향할 뿐이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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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윤선도 평전 - 정쟁의 격랑 속에서 강호미학을 꽃피운 조선의 풍류객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고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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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권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남도기행이다. 그리고 그 기행의 시작점은 강진군이고, 다음으로 해남군이다. 강진과 해남, 왜 그는 그곳을 선택했을까? 그 책에는 이런 문구가 은근히 기억난다. 한국에서 먹물을 좀 먹었다는 인간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아마 우리 한국역사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치를 물어보자면, 2012년 세계 유네스코 인물에서 우리나라 첫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학문적 연구 가치로 따지자면 한국 역사와 철학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고, 동아시아권의 국가에서 다산의 학문을 연구한다.

 

그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이란 인물이 얼마나 후대에 이르기까지 깊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약용 선생이다. 유흥준 교수나 혹은 먹물을 좀 먹었다는 사람들처럼 존경하는 게 아니라 다른 루트로 통해서 나는 그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약간 중간에 길을 벗어나는 것처럼 들리지만, 내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기를 지금은 힘이나 돈이나 되는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그 흔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나, 결론적으로 그것이 지금도 이어지고 앞으로 간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보수와 진보라는 말을 떠나 그것은 하나의 전통을 말하는 것이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자기집안이 족보를 보는 시점이 언제냐고 생각하는지 생각하면, 아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제법 일가친척들 사이에서 행사에 참여하여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질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집안 족보를 고등학교부터 봤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나도 처음 보고 정말 놀란 사실이고, 아직도 그것이 딱히 누구에게 자랑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 문중의 족보에는 다산 정약용이란 이름이 2번 들어가 있다.

 

한 문중에 같은 사람이 2번이나 올라가 있다니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어느 권력자는 자신의 딸을 시집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또 다른 여자가족 1명을 시집보낸 일이 있다. 그런다고 그런 부당한 일도 아니고, 전부 가족 간의 친분이 있었던 사람끼리 혼인을 정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학연과 학유라는 아드님이 계셨고, 그 외에도 따님이 있었다. 정약용 선생의 아드님의 후손은 아직도 경기도에 살고 계시고, 따님은 정약용 선생이 귀양살이하시던 강진에서 자신의 친구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2사람은 결혼하여 조선후기 고전문학자인 방산 윤정기 선생을 태어나게 했다.

 

바로 그 다산 정약용 선생의 따님이 결혼하신 곳은 해남윤가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갓집 역시 해남윤가다. 그리고 나 역시 해남윤가다. 물론 핏줄이 직접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해남윤가 내에서 8대 공파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따님이 시집가신 곳이 나하고 같은 공파였다. 그래서 집안 족보 중에 파보를 보면 정약용이란 이름이 내 이름과 같은 책에 올라가 있다. 집안내력에서 내 직계의 할아버지가 그 당시 다산초당에서 정약용 선생에게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다산초당의 주인이던 윤단의 후손분과 친구였다고 한다.

 

이런 관계를 두고 조금 의아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지금 다산초당의 주인이고, 찻집 다신계 주인인 분은 윤단의 후손으로 지금도 다산초당 인근에 자란 야생차를 따서 녹차로 만들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머나먼 후손에게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다신계라는 것은 정약용 선생이 해배될 때 그분의 제자 중에 18분이 계를 만들어 스승인 다산 선생에게 차를 보내고, 서로 간의 우애를 다지자는 모임이었다. 한국 다도문화에서 다신계절목이란 기록은 매우 중요하고, 다도문화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치는 매우 높다. 실제로 다산 선생의 시조 중에 탁월한 시들이 많으나, 차시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살이 하던 강진 귤동마을, 그곳 산장 주인 역시 해남윤가다. 그런데 그 윤가는 다산 선생의 외갓집의 공파에 속했다. 그리고 그 공파 안에도 나와 다산 선생의 관계처럼 작은 파가 형성되어 있다. 그래도 다산 선생을 위해 다산초당을 제공하고, 음식과 술, 그리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하게 해준 이유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증조부가 조선화가 삼재 중인 하나인 공재 윤두서였고, 윤두서 선생은 고선 윤선도의 후손이었다. 즉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인생에서 해남윤가의 영향은 엄청났고, 그곳은 아직까지 유효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당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고산 윤선도의 영향이 컸다. 그는 조선 병자호란 전후의 남인 영수였고, 예송논쟁으로 우암 송시열과 다툼하다가 귀양살이한 사람이다. 다산 선생이 존경하던 성호 이익의 경우, 그의 큰형은 장형으로 죽고, 아버지는 귀양살이하다 죽는다. 당파싸움에서 남인과 노론의 관계에서 고산 윤선도가 벌인 싸움은 매우 컸다. 성호 이익 선생의 형인 옥동 이서가 공재 윤두서와 친구였고, 해남 녹우당의 현판의 휘호는 옥동 이서의 작품이다. 해남의 녹우당은 아직도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 살고 있다.

 

<윤선도 평전>을 보고 적는데, 다산 정약용 선생과 붕당정치의 비극, 그리고 해남윤가의 이야기가 나와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은가 하나, 모두 <윤선도 평전>에 담긴 내용이다. 단지 나는 이 책을 보기 전에 이미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윤선도 평전>을 서평하기 위해 풀어놓았을 뿐이다. 이미 고산 윤선도라는 이름은 고등학교부터 아버지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유너머의 저명한 인문학자인 고미숙 선생이 과연 윤선도라는 인물을 어떻게 평전을 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책을 구매하여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나왔다. 아는 것은 고산(孤山)이란 호가 외로운 산이란 것처럼, 그는 평생 외로움의 유배 살이를 보냈으며, 70대의 노년에도 귀양살이를 가야만 했다. 지금의 70대와 조선시대의 70대는 조금 다르다. 지금 70대 어르신들도 건강하고 정정한 분들이 많으나, 당시의 70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귀양으로 인한 유배 살이를 한 이유는 너무 입이 강직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후에 광해군이 정권을 잡았을 때, 당시 실세인 이이첨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하여 미움을 샀고, 효종의 스승이어서 효정이 집권할 때, 많은 질투의 대상이 되었으며, 효종 승하이후 상복을 1년인가 3년인가에서 불리할 것을 알고도 싸웠다.

 

어떻게 말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화가 미칠 것을 알면서도 상소를 계속 올린 자가 고산 윤선도다. 그의 상소문을 보면 직설적이라 당시 권력의 실세가 보면 매우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 귀양을 인생의 반을 가야했던 그의 처지는 알면서도 싸운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성격이 아주 강직한 성품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면이 있었다. 또는 엉뚱한 면도 있었다. 조선시대는 사대부가 집권계층이던 시대다. 그런데 그는 사대부라도 조금 특이한 면이, 종에게 심부름을 보낼 때 가정이 있는 노복에 대해서는 심부름을 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즐기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일 가슴이 찡한 장면은 조선시대는 신분체계가 모순되고, 남존여비에다가 천한 신분의 여성은 양반에게 강제로 첩이 되어야 했다. 게다가 그 첩에서 나온 자식은 비천한 신분이 되어야 했고,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으로부터 사랑은커녕 학대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고산이 유배 가던 때에 첩에게 나온 8살 아이 미가 어린나이에 죽자, 매우 통곡했다고 한다. 그때 지은 기록과 시의 일부분을 보면

 

“미는 천출로 태어난 나의 자식이다. 나면서부터 총명하여 내 사랑을 온통 다 기울였다. 기묘년(53세) 중춘에 영덕의 유배지에서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오던 중, 20일 아침 경주의 요강원에 이르렀을 때, 미가 천연두를 앓다가 이달 초하루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통하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여 그 애통한 심정을 이루 다할 수가 없었다. 말 위에서 시어를 엮어 나의 슬픔을 토로했다.”

 

“(중략) 네가 없으니 감싸 쓰다듬어줄 수가 없고, 네가 병들었으나 약을 써보지도 못해, 이 때문에 내 슬픔 더욱 크고, 애통함은 비할 데가 없구나, 밥을 먹어도 눈물이 수저에 오르고, 말을 타면 눈물이 고삐를 적시네, (중략), 비록 나의 악업 때문이라지만, 하늘은 무슨 일로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나.”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체면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부인과 자녀들에 대한 가족과의 우애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아버지와 남편의 딜레마였다. 그런데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그것도 첩의 자식인데도,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그의 모습에는 너무 인간적이었다. 지금도 이 정도의 부성애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성격인지 보길도에 기거할 때, 자신의 아들이 찾아오면, 배가 도착하기 전에 나루터에 먼저 도착하여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아들을 반겼다고 한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희생자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뽑을 수 있는 인물이 고산 윤선도다. 그런 강직한 성격을 가진 자가 가족에 대한 애정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시조는 이율배반적인 요소를 가졌다.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넘어 자신이 보고 있는 어민과 백성에 대한 모습을 어부사시가로 표현할 때 한국의 국문학에서는 큰 업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의 자연미라는 것은 일반 조선선비들이 누리던 자연 그 자체를 두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자연의 조형미를 만들어서 자연미가 아닌 자연미를 만들었다. 작은 호수를 만들고, 조경을 꾸미는 모습에서 그만의 독특한 미학을 남긴 것이다.

 

시에서도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으나, 그가 접한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아니라, 그가 만들어진 자연이다. 자연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인위적인 자연성은 그의 정치적 미학이 반영되어 있다. 바른 쓴말과 직설적인 상소로 정치적으로 탄압받아 머물 곳이 없어 머물던 보길도에서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정치적 미학이 있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여 대체할 수 있는 요건이 보길도의 자연미다.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정치적 목적은 왕도정치였다. 조선시대 정치적 당쟁에서 왕권을 중심이냐? 혹은 신권을 중심이냐? 라는 문제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왕은 권력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하로부터 견제가 심했다. 임금의 정치적 색이 합당하지 않으면 반정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독살설도 나온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조이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서 정조의 왕도정치와 남인의 목표가 나오지만, 문제는 그 이인화는 기호남인을 생각했어도, 다산 정약용 선생은 기호남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조선후기에서 노론의 후예가 조선 말기를 혼란하게 했는데, 그 연결고리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어째든 조선시대의 임금은 권세를 잡은 신하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 언제라도 내칠 위험이 도살아 있었다. 그리고 정권의 균형이 무너지면 어느 한 쪽은 참수와 유배, 형벌이란 무서운 보복이 살아있었다. 삼족을 멸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예송논쟁은 바로 기년상과 3년상에서 효종의 죽음이 왕권을 얼마나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대립이었다. 지금 입장에서 붕당파벌이라고 하나, 당시로서는 국가의 대사가 걸린 문제였고, 거기에 목숨 걸던 사람들이 많았다. 한 마디로 세상이 사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당쟁에서 고산 윤선도가 택한 것은 왕권의 강화인데, 이이첨의 사례나 혹은 실세들이 지나치게 권력을 잡아 부정부패를 일삼고, 그로 인해 백성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군주정이 아니라 민주정이라고 하나, 과연 민주정에서 국민의 대표가 국민 아무나가 될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런다고 군주의 위치인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줄 수도 없다.

 

지나친 권력이 모이면 결국 독재정치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지나친 권력을 잡아 자신의 이권만 누리면 정치적으로 혼탁하게 되어 결국 국가와 국민은 피해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당시나 지금이나 국가와 국민의 이름을 아주 미화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입맛으로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혼자 돈키호테처럼 덤비는 것은 누가 봐도 알만한 결과이나, 그래도 멈추지 않았기에 역사에 이름을 생긴다. 단지 이이첨과 같은 간신배로 남지 않고, 조선시대 정치가나 또는 시조의 대가로서 말이다.

 

그런다고 고산 윤선도가 정치적 풍파를 많이 맞아도, 정치생활 자체는 길지 않다. 유배로 계속 살았고, 그 후로 몇 년씩 은거했기에 실제 정치적인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정치에서 학문을 연마하던 사대부였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인이면서도 문인이었다. 학문에 능통하지 않으면 과거에 급제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과거시험 문제가 이미 유출되어 그 자료를 고산 윤선도에게 달라는 어느 실세의 일화를 보면 참 웃기고도 안타깝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자료를 끝까지 주지 않기 위해 갖은 답변을 하던 고산 역시 재미있다. 이런 역사적 아이러니가 되풀이되니 고산 윤선도의 이름은 개인적으로 내 입장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잊어지기 어려운 인물이다. 물론 국어 교과서 국문학에서도 빠질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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