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트 강의 7번째 내용은 미술시장이다. 내가 평소 미술작가와 작품은 잘 모르고, 단지 시대적 흐름에 따라 고전주의,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인상주의 등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역사와 문화적 가치에서 인간이 남긴 유산은 그 시대의 흐름과 풍미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점들이 미술시장의 감정평가 기준에서 미술사적인 요소로서 작용하는 것을 알았다. 미술시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나, 미술시장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들은 정말 알기 힘든 영역이다. 미술 그 자체를 대중문화에서는 낯설고, 고급문화 차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속한 영역은 서브컬처 영역이다. 대중이 이용하는 mass culture와 다르게 서브컬처 역시 대중에게 낯선 존재다. 대중문화는 어느 특정대상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콘텐츠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공존을 파괴하는 것에서 대중문화 현실적 기만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강연자 큐레이터분이 설명하면서 생각했지만, 한국의 화랑 즉 그림을 사고 팔 수 있는 공간에서 갤러리리스트가 부정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값 비싼 미술품이 사치품으로만 바라볼 뿐이고, 이해하기 힘든 작품성과 예술성에서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성은 모순과 부조리를 만들고, 거기서 만들어진 여파는 누군가는 뒤집어쓰게 되는 또 다른 모순으로 이어진다. 미술시장은 예술가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시장으로 연결하여 문화의 풍부한 가치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90% 가량의 미술시장이 일부 30인 정도 작가에 의해 돌아가고, 나머지 10%를 약 25,000명 정도의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연간 대략 6천억의 금액에서 6백억을 25,000명에서 돌아간다 하지만, 실제 그 돈이 작가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예술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 사는 경우가 많다. 예술작품들의 매매시장이 1990년 전후로 갑자기 성장한 점에서 지하경제의 돈이 건설과 금융뿐만 아니라 미술시장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벌이나 비리로서 돈을 상당히 모운 자들의 집이나 혹은 창고에 가면 미술품이 그리 많은 이유는 그때 그 시기의 시대적 흐름에 따른 처세술이라고 할까나? 한국의 처세술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따르기도 싫어하는 편이라 막상 그들 입장에서는 어느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여 먼 미래에 가격이 폭등하면 하나씩 팔거나 혹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과시욕구 자체에 대해 구매계기라 하여 반드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문제는 그 지나친 과시욕인 것이다. 미술시장은 필요한데, 미술시장이란 말처럼 시장은 곧 자본의 이동과 축척, 잉여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란 예술적 가치를 논하면서도 한편으로 상품적 가치를 논해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 쏠리게 되면 작가가 매장당하거나 혹은 매도당하는 상황이 된다. 한국의 미술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미술세계만이 해결해야할 사항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으나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미술세계까지 파고들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안타까운 이유는 18~19세기 시작된 근대산업화가 서구에서 시작했다면, 20세기는 탈근대화로 인해 공업화 내지 산업화가 그 나라의 경쟁력이 아니라 문화적 수준이 경쟁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현대 한국의 대표적 망국병이 1970년대 사고방식을 고수하려는 것이다. 아끼고 절약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당시 한국은 물자가 부족하고 경제적으로 시장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산업사회를 성장하는 것만이 우선사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상품은 과거와 비교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증대했다.

 

대량생산이 된 상품이 소비되지 않으면 공장운영자나 기업자들에게 부도라는 치명적인 악조건이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중심의 공업화를 지나 서비스유통 역시 그 한계성이 드러난다. 말로만 창조경제를 외치지만, 사실 그 이면은 인건비 절약이란 교묘한 수법만 숨어있다. 인건비의 감소는 결국 소비시장의 위축이고, 이것은 또 다른 경제적 악영향을 주는 모순의 순환고리다. 그렇다면 돌파구는 사람들에게 소비하도록 유도하고, 그 소비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을 줘야 한다.

 

직업군에서 기계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인간의 노동력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된다. 노동력을 감소하고 임금을 줄고 한다면 결국 생산과 소비의 관계성은 붕괴된다. 노동력을 감소하면 그 노동의 제공자들은 무직이 되어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들이 쉽게 나올 수 없다. 예술에서 보이는 문화적 가치란 바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하나의 방법이란 점이다. 미술시장의 규모가 작은 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미술가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거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팔지 않는다.

 

순수하게 미술을 하고, 미술품을 제공한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산업사회에서부터 그러하듯이 소비자일 수밖에 없다. 미술시장의 규모가 커지면 다른 관계 업종이 필요하고 거기에 따른 부수적인 경제적 효과를 올린다. 하지만 한국은 문화자본에 대해 투자는 하지 않으려 하면서 문화자본이 상품으로서 전시될 수 있는 미술관이나 전시관만 쓸데없이 크게 비싸게 만들려고 한다. 부산 영화의 전당을 보면서 저 비싼 땅에 쓸데없이 큰 건물만 짓고, 수요는 없고 전시용 행정으로 운영하면 결국 부산시민 세금만 날리는 셈이다.

 

중요한 부분은 그 전시나 공연 혹은 여러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기반적인 인프라를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중문화 위에 고급문화가 있듯이 그 아래에 서브컬처나 다른 문화권이 존재해야 한다. 기둥이 있어야 집을 세울 수 있지만, 기둥을 올리기 전에 기초공사와 지반공사부터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의 예술은 바로 이런 현실이다. 본인이 속한 세계는 분명 서브컬처 영역이나, 서브컬처에 대한 연구와 비평에선 다양한 학문과 결합한다. 가령 미술에서 서양화 내지 회화 계통, 영화와 문학도 포함된다.

 

다양한 기반이 학문적 토대라면 그곳에 성곽을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미술시장보다 더 열악한 것인 서브컬처 시장이다. 한국에서 자체 생산하기보단 일본에서 수입을 하는 편이 많으며, 콘텐츠에서 자국은 열악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바닥에서 기어가고 있을 정도다. 미술세계에서 미술인들은 큐레이터나 미술관의 관장, 비평가만 하려고 하지 시장의 영역에 대해 깊이 고심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볼 때도 서브컬처 영역에서 전문가들은 교수, 비평가, 정치적인 입지만 신경 쓰지 막상 그 시장에 대한 역동성은 관심조차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문이 계속 남아있는 이유는 필요에 의해서이다. 필요한 조건으로 학문의 기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비효율적인 이유로 대학의 학문들이 폐쇄되고 통합되어 사라지는 경우를 본다. 이런 현상이 오히려 역으로 흘러가고 있다. 다양성을 죽이는 것은 그 가능성을 죽이는 것이고, 새로운 아이템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파괴한다. 서브컬처와 관련하여 대학교 내에 만화, 애니메이션학과가 개설되고 있으며, 미술대학은 오래전부터 계속 유지되었던 학문영역이다. 그런데 미술이나 서브컬처 시장이나 모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수요의 문제도 있지만, 수요의 증대를 위해서는 문화적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한데, 그 개선사안이 다양성의 공존이다. 다양한 관점이 사라지면 미술의 작품 수나 형태 그리고 그것을 작업하는 미술작가도 축소된다. 중국이 세계 미술시장의 반을 잡아먹는 이유도 경제적으로 큰 규모가 이르면 더 이상 공업 산업화가 확장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는 문화산업 밖에 없는 점이다. 서구사회 강대국들은 자신의 나라가 선진화되면 될수록 문화재를 보존하고, 문화영역에 대한 투자를 부여했다. 국제사회에서 자본의 유동은 중요하나, 자본의 운동이 단순히 기업의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사람이 하루에 소비할 수 있는 물품은 한계가 있고, 시간적으로 누적되어도 그 한계성이 있다. 문화자본력은 입고,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을 초점으로 두기에 새로운 시장형성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프랑스에서 베르사유궁전과 루브르박물관의 문화상품은 주변 상권을 활성화시키고, 이에 대한 관광자원도 풍부하게 만든다. 전에 메르스 사태 이후 국내 경제를 활성화 한다는 명분으로 휴가일을 늘려 소비를 촉진한다고 하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문화와 특히 문화를 토대로 하는 관광산업은 일시적 효과로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 지속적인 것인 문화산업이 계속 활성화하게 해주는 토대가 필요하다.

 

미술시장이나 혹은 서브컬처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문화산업이 한국이 부실한 이유는 이런 것들은 처음에 돈이 되지 않거나, 또는 이해하기 싫다는 점이다. 서브컬처 콘텐츠 비평에서 만화애니메이션 산업이 발전하지 않은 이유는 대중들이 그런 것들을 깔보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문화공존이 어렵다는 점이다. 문화산업으로 볼 수 있는 미술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미술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인간의 소유욕과 과시욕은 미술시장의 수요를 만들고 공급도 만들어 나가지만, 그 한계성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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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는 공간은 인간의 자연에서 빼앗아 온 곳을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 인간의 공간인 문화라는 세계는 우리 인간 스스로에 대한 우월감과 더불어 경쟁심을 만들었고, 문화 그 자체는 거대한 서사가 되어 주변의 작은 이야기까지 억압하고 무시하는 현 상태에 이르렀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그 개인으로서 자신의 세상이 존재하고, 그들만이 공간과 삶이 존재한다. 우리 삶에서 예술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면 참으로 결정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나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이상하고 어려운 말이다.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면 모두 낯설어 보이는 대상으로 여기거나 때로는 뭔가 있어 보이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모두 정답인 셈이다. 이중텐의 <미학강의>에서 예술이란 인간의 삶을 광학적으로 본다고 이야기한다. 예술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고, 미학이란 예술을 철학의 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예술이 쉬우면서도 왜 어려운가? 아마도 이중텐의 책처럼 예술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에서 우리 일상이 있기에 충분히 옆에 있는 것이고, 철학적 사유라는 점에서 형이상학적인 관념에 의존성으로 머나먼 세계로도 보일 수 있다.

 

예술에서 대부분 미술을 보면 예술가들의 관념적 세계를 표현한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있는 공간도 시간도 존재도 없는 대상을 우리 눈앞에서 물질적 존재로 표현하여 전시한다. 그러면 전시라는 그 공간적 개념이 배경이 되어, 시간적으로 전시기간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본주의 경제시대에 도래하면서 인간의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다. 우리에게 예술이란 개념이 생긴 시기가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와 밀접하다. 신이란 존재는 시간과 공간 그 밖의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주는 절대적인 영역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을 측정하는 수단이 되고, 신의 영역인 모든 세계에서 시간은 인간의 세계로 분리되었다.

 

시간의 척도는 결국 인간에게 하나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지 그렇지 못하는지 말이다. 이런 세계에서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을 이해하고 혹은 예술가들의 삶을 이해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 예술인은 낯선 존재이면서도 낯설지 말아야 할 존재다. 관찰하는 존재는 그 관찰되어야 할 세상에 반 정도 다리를 걸쳐야 한다. 너무 안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사회가 움직이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시대적 급류에 휘말려 자신의 나침판을 잃어버린다.

 

이와 다르게 밖에만 머물게 된다면 민중의 삶을 바라볼 수 없다. 예술인들이 과거 왕정사회에서는 직업적으로 예술인이 아니다. 그들은 절대적인 신과 왕을 위해 고용된 기술자에 불과하다. 위대한 신, 그리고 그 신에게 절대적 지위를 보장받은 왕, 왕권신수설과 절대주의시대에 만들어진 예술이란 바로 숭고와 경배로서 등장한다. 그것을 만든 자들은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하거나 신성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역사가로서 혹은 주술사로서 활동했다고 말하는 게 타당할지 모른다.

 

거대서사라는 계급적 이데올로기에 반영된 역사는 결국 그 주변에 있던 많은 농민, 상인, 노예 등과 같은 하부계층을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 인간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는 존재다. 내가 이름을 남겨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비록 이 세상에 없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분명 살아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인간이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죽어갈 것이다. 물론 장 자크 루소의 <에밀>처럼 농촌에 살아가는 순박한 농민들은 자연인으로 분류된다. 그들은 문명의 도시와 다르게 자신의 삶을 직접 선택하고 삶도 죽음도 지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들에게 죽음은 과연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 문명의 인간은 다를 것이다. 그들은 자연인처럼 살아갈 수 없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처럼 자신의 사회적 인정으로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행복의 추구에서 식욕, 수면욕, 성욕을 지나치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결국 누구에게 인정받는 삶,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아니라면 플라톤의 <향연>처럼 철학을 하여 지혜를 사랑하는 삶이라면 어떤 것인가? 이렇듯 우리는 우리의 삶에 결정할 수 있는 것조차 난해한 순간이 온다.

 

그렇다면 그 순간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삶을 바라보는 것이 옳은 것인가? 비아트 5번째 강연에서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의 김경화 작가로 통해 한 번 생각해보았다. 이미 시대는 거대서사에서 탈피하여 탈근대적인 사회로 진입했다.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탈근대적 시대에 우리는 거대서사적인 요소 전부를 버릴 수는 없다. 그런다고 거대서사에 가려진 작은 이야기, 그리고 희생된 우리의 과거를 모두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은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다. 늘 내가 생각하지만, 인간의 삶은 이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나 이성보단 순간 자신의 마음에서 움트는 선택이 자신을 움직인다.

 

분명 논리적으로 바르지도 않고 연결되지 않아도 비이성적인 행위나 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논리란 단지 자신의 무의식적 혹은 감정적 에너지를 합리화하게 해주는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현실에 드러난다. 인간의 공간적 세계에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하여 만든 것도 많으나 그렇지 못한 게 많다. 특히 부산이란 도시가 그렇다. 부산은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잔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다. 덕분에 부산의 군사기지는 항만, 철도, 공항 등 다양한 시설이 배치되어 있으며, 한국군만 아니라 미군기지가 계속 배치되어 있다.

 

이런 도시적 기능에서 부산 서면에 위치한 하야리야부대 이전은 아주 역사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강연자가 주장하듯이 100년 가까이 그곳은 한국의 땅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의 땅이 되어야 했다. 침략자에 의해 나라를 잃고, 침략자가 머물던 자리는 다른 강자가 왔다. 환경단체와 각종 시민단체의 이야기도 많고 탈도 많은 그 부대, 우리의 의지가 아닌 우연에 의한 상황이 이 도시를 만들었다. 문제는 그 도시가 변해가면 과거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다시 꺼내어 그 의미를 찾아가야 하나, 자본주의 시대는 모든 역사와 아픔을 돈으로서 은폐시키려했다.

 

하야리야부대는 부산시민공원으로 하여 꽃과 나무가 가득하다. 넓은 부지는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휴식공간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 공간적 의의는 제대로 넘어가지 못했다. 퍼포먼스로서 그 부대에 100여개의 위패를 모신 후 과거시대의 아픔을 되새기는 것은 중요하다. 부산의 도시적 정체성을 묻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발자국을 찾아 가는 게 옳다. 부산의 도시적 기능은 세종시나 혹은 다른 신도시처럼 계획성이 아닌 무계획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피난민들이 내려오면서 낡은 판자촌부터 시작하여 콘크리트 도시로 변하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과 아픔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중의 이야기란 거대서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벗어난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 삶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부산 초량 근대식 최초병원인 벽제병원이 있다. 그 옆에 있던 창고가 시에서 구매하려 했으나, 땅주인은 상품적 가치를 위해 그 건물을 철거하고 대신 대형마트가 들어왔다. 도시의 기능에서 가장 많이 변화하게 만드는 것은 부동산시장이다. 부동산투기는 그야말로 최악의 도시파괴자이다. 어지러운 미로처럼 골목길이 있는 마을은 도시개발사업과 산업단지개발로 형체조차 남길 수 없다. 공간의 상실이란 그 공간을 향유하던 사람들에게 기억과 추억을 부수는 것과 같다. 공간이 없어지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시간적 개념조차 사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주민은 자신의 터전과 삶을 잃게 만드는 슬픔으로 이어진다. 부산 동광동, 거긴 원래 피난 이후 근대화시절 인쇄소로 활발히 활동되는 곳이다. 최근 대형 백화점의 입주와 주변지역의 급격한 변화, 대규모자본이 주변 상권을 장악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한 곳이다. 우리의 이야기란 바로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점점 자본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광고와 드라마로 이끌려간다. 우리가 자본주의시대로 오면서 가장 변한 것은 이웃과의 소통이다.

 

이웃과 소통을 하는 것은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서로와 같이 즐기면서 살아가는 원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의 단절, 분리된 자아, 그리고 거대한 시장화, 이 모든 게 우리 삶에서 많은 것을 주기보단 그 이상을 가져간다. 레드오션으로 강력한 제로섬인 한국 사회는 포화되어 그 방향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또따또가에서 내가 마음에 든 기획은 못 쓰는 물건을 재이용하는 방안이다. 환경오염은 자본주의 경제체계와 더불어 가속화되었다. 상품의 소비는 필요한 것은 맞으나 필요이상으로 소비하면 폐기물이 발생된다. 폐기물처리에 많은 인력과 부가적인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용하지 못하는 물건을 최종 처리하는 과정에서 2차적인 오염물질이 발생된다.

 

필요 없는 것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우리 주변 환경은 더욱 피폐해진다.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재활용하는 것은 환경적으로 가치가 있으며, 우리가 상품시장에 길들여진 정신을 새롭게 보여준다. 단지 우리의 필요수단으로 물건이 소비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 사회성을 경제적 교환이나 노동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모든 것을 도구적 가치로 접하면 인간 역시 도구로 여긴다. 도구와 인간은 다를지 모르나, 도구에는 인간의 노동이 반영되어 있다. 노동에 의해 태어난 도구들이 그 노동한 사람들과 별개의 존재로서 소비자에게 간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우리 삶에서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이웃이다.

 

물론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장이 활성화가 되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블루오션으로 문화적 사업이 이렇게 필요한 것이다. 폐기물재활용 가치는 환경적으로 중요하나 사회적으로 중요하다. 이차적으로 다시 상품으로 활용하거나 교육, 사회, 경제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 쓰레기를 모아 만든 예술작품도 제법 많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 일상에 있는 많은 것들이 예술로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예술이란 바로 삶에 대한 탐구와 관찰 그리고 새로운 시도이다. 사용하지 않은 집에 콘크리트로 만든 비둘기와 토끼를 1년 동안 방치한 장면에서 그 동물은 동물로서 보여주기보단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자신의 장소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나 여전히 힘든 삶을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은 장수하는 동물을 그린 12장생도와 책 걸이로 삼은 문방도구이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서구화로 인해 우리 전통문화를 등한시했다. 우리 전통문화를 마치 미개하고 미신의 세계로 매도했다. 서구의 문화도 이제 동양과 제3세계를 다르게 보고 있다. 여수에서 열린 엑스포대회에서 각국의 민족이 와서 다양한 전시를 했다고 한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 개최되는 축제나 행사에서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선보이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 흐름에 새롭게 우리 문화를 도출하기보단 여전히 홀대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찾아가 그것을 인정하기보단 부정하고 은폐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와 더불어 성장했지만, 자본주의로 인해 우리의 모습은 없어졌다. 작가님이 말하는 문화적 행위는 우리사회에 원류에 있던 공동체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공동체로 만든 여러 가지 작품이 예술이 되고, 우리 삶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부산의 정체성을 찾자는 슬로건이 부산시청과 문화재단에서 내걸고 있으나, 그것은 관공서의 행정정책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우리 인식을 계속 바꾸어야 그 가치가 실현된다.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하는 말에는 크게 동의는 못하겠다. 그런 작은 시작 그 자체도 어려운 것도 있고, 시작되는 과정에서 소멸하는 경우도 많다.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시작들이 모여 큰 변화로 뭉치는 것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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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영화를 보는 순간 내 머리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독립군과 광복군, 그들은 조선의 독립 혹은 대한이 독립을 위해 몸을 투신했다. 가족들이 있어도 홀로 외국에서 싸우고, 하다못해 시신조차 거두지 못했다. 더욱 비참한 것은 독립운동가란 이유로 가족들이 몰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암살>에서도 그런 모티브가 작용한다. 항일전쟁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기억이 남는 것은 청산리대첩과 봉오리대첩이다. 대한독립군에서 가장 위대한 지휘관으로 백야 김좌진과 홍범도 장군이 있다. 이들은 일본군을 대패한 이유로 일본군에게 원한을 샀다.

 

일본군은 조선인 정착촌을 덮쳐 남녀노소 불구하고 모조리 살해했다. <암살> 영화에서 2990명가량 되는 사람들이 일본군의 총칼아래 꽃처럼 흩어졌다. 그런데 대한민국 독립운동역사를 보면 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대종교 신도였다. 단군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의 얼을 살리고 자주 국가를 위해 노력한 분이다. 하다못해 우리의 한글이 주시경 선생의 도움이 매우 크다. 그분 역시 대종교 신도다. 조선어학회 사건이나 많은 조선역사를 연구하는 분들을 탄압받을 때 그 분 대부분이 대종교 신도였다. 김좌진 장군과 그의 군대 역시 그러하다. 그들이 단군신앙을 토대로 한국의 얼과 글과 문화를 지키려 한 것은 단지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인간이란 정체성에 의해 살아가고 정체성에 의해 죽어간다. 자신이 대한민국의 독립군이란 사실에 부끄러움 하나 없이 빛처럼 산화된 그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역사의 후대에서 그들의 노력은 알아주지 못한 채 오히려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작년 광복절에 나는 백산 안희제 선생을 기념하던 전시관에 갔다. 작은 건물에 얼마 되지 않은 평수였지만, 백산 안희제는 대한민국 독립군의 자금의 젖줄이었고, 대종교의 주요 인물이었다. 일제강점기 시대 대종교 신도의 죽음은 순교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순국이기도 했다. 순교와 순국이 곁 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임오교변(1942)으로 고문으로 서거한 그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최고의 부자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부자라면 이병철과 안희제였다. 그러나 안희제 선생은 돌아가시고 그분의 후손은 가난을 대물림을 받아 살았다. 영화 <암살>을 보면서 나는 안희제 선생이 갑자기 떠올랐다. 먼 이국에서 독립운동만 하다 돌아가신 분들, 어처구니없게도 많은 독립군들이 해방 후 돌아오니 일제 앞잡이 하던 자들이 그들의 마을에 있었다. 그들은 독립운동가와 가족들에게 왜 왔냐는 식으로 말하였고, 경찰과 군인이 되어 권력을 잡았다. <암살> 영화 마지막을 보면 그런 현실이 드러난다. 반민특위, 반민족을 하던 일제앞잡이를 재판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민족주의 운동가들은 정치적 입지가 떨어지고, 미군정과 신탁통치의 광기,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을 등에 업고 있는 북한군의 도발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1950625일로 보고 있지만, 1949년에 북한의 도발로 몇몇 전투가 있었고, 전투로 인한 순국자가 발생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나라 잃은 설움과 동시에 민족을 죽어야 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암살> 영화는 그 이전에 나라 잃은 설움을 보여준 영화다. 영화를 보면 2가지 서사가 작용한다. 전에 이순신장군을 다룬 영화 <명량>은 명량해전처럼 이순신의 죽음으로 그의 신화화된 요소를 부각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은 신이 되었다. 사당을 지어 매해 그의 위패에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한국은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된다는 민간신앙이 있다. 하지만 <명량>은 애국서사만 존재했지, 애족서사는 없었다.

 

조선은 결국 명나라와 더불어 왜군을 무찌르고, 조선왕조는 전쟁 이후 300년이나 견뎌내었다. <연평해전> 역시 애국서사만 존재했지 애족서사는 없었다. 전쟁 속에 죽어갔어도 결론은 승리의 역사였고, 그것은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뒤받쳐주는 헤게모니적 요소가 숨어있다. <암살> 영화는 그런 헤게모니적 요소가 해체된 작품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 앞잡이가 반민특위에서 무죄를 받고 귀가 중에 암살을 당한다. 하지만 그만 암살당했지 그 주변의 관료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반민족적인 인물을 국가 법률에 따른 재판에 의해 응징을 당한 게 아니라 개인적인 암살로 통해 응징을 당했다.

 

법적인 절차가 아니라 범죄적 수단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 명령을 내린 자는 김구 선생으로 나온다. 김구 선생은 영화 마지막에서 반민특위가 열린 1949년 장교 안두희에 의해 살해당한다. 안두희 역시 권력자의 손길에 의해 승승장구하다 박기서라는 사람에게 살해당한다. 김구 선생은 총에 의해 서거당하나, 안두희는 몽둥이에 의해 암살당한다. 역사에서 그 당시 패배한 자는 자신의 이상을 펼치지 못한 채 이슬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후대의 역사에서 희비가 엇갈려도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하늘이 주어지는 당연한 처사이므로, 후세에 부끄러움 한 점 남기지 않도록 살아가는 것이 선비의 정신이고 지식인의 의무였다.

 

하지만 현실적 배경에선 그게 어려울 경우가 많다. 영화 <암살>에선 조선에 주둔하는 장군과 그 옆에서 아첨하는 친일파 거부를 제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암살을 주도하는 주인공과 살해대상자 및 주변 인물들은 가상이라 할 수 있지만, 막상 그 요소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었다. 영화는 심각한 내용이나 감독이 전형적으로 영화에 대한 볼거리를 주로 제공하다보니 전개는 경쾌하고 순간적으로 흘러갔다. 특히나 플롯의 전개에서 사전에 복선을 집어넣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 뒤 상황을 잘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해 놓았다. 그런 점에서 대중적인 영화에선 좋은 평가겠지만, 영화라는 예술적 접근에선 미묘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강인국 사장의 딸인 미치코가 죽는 장면은 너무 무리수가 강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장면만 부드럽게 진행되었다면 조금 더 높은 완성도를 보였을 것이라 여겼다. 아마 감독은 영화를 너무 어렵게 여기게 만들기보단 액션 장면을 잘 조합하여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심어 넣으려 했던 것 같았다(권총으로 사격하여 원 샷 원 킬로 죽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래도 복선에서 주어지는 미세한 조건과 상황설정은 도망자와 추격자의 상태를 잘 보여준 것 같았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독립군에 대한 내용이므로 과거에 장동건이 주연한 <아나키스트>와 비교하면, <아나키스트>는 매우 딱딱한 영화다.

 

우울하고 절망적이며, 배우 장동건이 맡은 세르게이는 절망으로 인해 마약에 빠지고 아나키스트 활동 중에 일본군에게 살해당한다. 당시 동료들도 모두 죽는다. 독립군의 분파와 계파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영화 <암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시작된 조직이라면, <아나키스트> 영화의 경우 단재 신채호와 이회영 같은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이 해외에서 활동할 때 그들의 사상에 심취된 자들의 이야기다. 테러에 의한 살해와 공작행위, 그들도 자신의 한 일에서 조국이 해방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목숨 걸고 싸우는 이유는 자신의 현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비참함과 우울증은 충동으로 얼룩져 술, 마약, 섹스로 가득하다.

 

대한민국 독립운동 하던 분들의 특징을 보면 그들은 남루한 옷을 입지 않았다.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고 하얀 와이셔츠에 수염까지 아주 댄디하게 길러 다녔다. 그들은 항상 옷차림에 신경 쓰고 멋지게 꾸몄다. 그 이유는 언제 죽을 줄 모르므로, 그들의 양복은 곧 그들의 전투복과 장례식복이었다. 희대의 멋쟁이로 보여 마치 거리를 활보하는 신사로 보여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청춘과 목숨을 민족에게 바치고 사라졌다. 나라를 잃은 민족, 그들은 나라는 없지만 민족은 있었다. 국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이다. 국민이 없다면 국가란 없다. 국가가 생기기 전에 그 지역에 살아간 인간들은 인민(peoples)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가가 설립되면 인민은 국민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삶을 살지 못했으나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정신을 만든 그들은 이름도 밝히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을 위해 죽어간 동료들은 자신들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옆에 같이 있던 자신들을 말이다. 역사에서 그들의 이름은 사라져도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오늘 내가 여기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그것만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잊어지는 것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은 미래, 자신이 있었다는 것조차 사라지는 망각, 그들은 그것이 두려워했다. 인간은 개인적으로 죽지만, 그 인간이 살아있던 사회는 계속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을 기억해주지 않고 망각하는 세상이란 그들에겐 오히려 철저하게 싸우던 그 때보다 더 서러운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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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baal 2015-08-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종교라는 부분에 관심이 가는데요.

만화애니비평 2015-08-21 08:49   좋아요 0 | URL
역사학자 위당 정인보,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 시일야방성대곡 위암 장지연, 천연두 지석영 선생도 여기 대종교 인물이죠. 종교적 형태를 현대사회에 갖춘 것 같기도 하나, 조선말기와 광복시기까지는 완벽한 독립군 단체죠...
 

도시라는 이름으로 강연을 들을 때 내가 생각난 것은 국내 헤비메탈 그룹 블랙홀 5집 앨범 <City Life Story>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나온 앨범으로 대표적인 곡은 <바람을 타고>란 곡이었다. 뮤직비디오가 막 떠오르던 시기, 많은 대중가수들은 자신의 곡을 인기곡을 포장하기 위해 뮤직비디오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다. 그러나 '바람을 타고'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 어느 남자가 이런 말을 한다. “저요? 낮에 일하죠. 가스배달해요. 저는 음식점에서 일해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아무것도 부럽지 않게요. 바람처럼 달리는 거죠.”

 

도시라는 공간은 과연 어떤 공간인가? 블랙홀 5집 그 '바람을 타고'를 듣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옆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존재들을 보게 된다. 길가에 보면 되도 않은 양아치들이 경적소리 내고, 억지로 머플러를 개조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어두운 거리를 달리는 사람들을 본다. 물론 나라도 달린다.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대신 차로서 달린다. 대신 내 차는 일반적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오토매틱 기어가 아니라 수동 기어로 달린다. 달려도 내 손과 발이 끊임없이 쉴 새 없이 차를 조작한다.

 

바람을 느낀다는 것, 어찌 보면 내가 감각적으로 공기의 저항을 맞으며 차가운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알 수 있는 행위다. 단지 그 행위가 '바람을 타고'에서는 오토바이를 타는 유저다. 단지 그들은 멋진 차를 몰거나 좋은 옷을 입는 게 아니다. 음식점에서 배달가거나 가스통을 맺고 달리는 바이크족, 그들은 현실에서 보자면 소외된 계층이고, 그들 나름대로 배고픔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자유롭게 달린다는 그 솔직한 말은 나는 살아있다 라고 말한다.

 

비단 '바람을 타고'만이 아니다. '앵벌이 합장' 같은 경우, 지하철에서 거주하는 거지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새벽의 DJ'는 어두운 밤과 새벽에 고독에 지친 인간이 기대는 것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DJ의 목소리다. 아마 소통이 없는 냉혹한 도시 공간에서 인간은 고독과 고립이란 감정에 좌절한다. 마지막 곡은 노래가 아니라 기타 반주곡 ‘비가 오는 도시 위에는 달의 강이 흐른다’로 마무리 된다. 블랙홀은 시나위와 부활하고 더불어 한국 전통메탈의 선구자다. 그들이 연주하는 앨범에서 항상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과 아픔을 기타와 목소리로 토해내었다. 나이가 먹어도 긴 생머리를 흔드는 그들에게 우리 사회란 그들에게 여전히 아픔의 공간이다.

 

비아트 강의 3번째를 정리하면서 공간이란 시각적 정보를 블랙홀의 음악이란 청각적 정보를 대비한 이유는 인간의 감정은 시각보다 청각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물론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노래한 4집 수록곡 ‘마지막 일기’는 지금도 들어도 애절하다. 한국이란 사회 그리고 그 한국에서 도시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비극은 치유되지 못한 채 계속 이어져간다. 인간의 기록인 역사 안에서 공간은 계속 그 곳에 존재하는 고정식이나, 사실 시간적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는 존재다. 영원성과 이동성이 같이 공유하는 공간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블랙홀의 음악을 내가 화두로 던진 이유는 우리가 바라보는 도시라는 공간은 언제나 세련되고 활기차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장소로 기억된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강의 3번째에서 제시한 주제, “예술과 장소 그리고 공간적 실천”과 적합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완성은 자연의 파괴고, 노동의 착취의 결과다. 노동을 하고 그것을 쌓아올린 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놓았는데도 그것의 주인으로서 행세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노동력만 제공한 것에서 끝나버린 사회적 소외자이다. 블랙홀 5집 ‘바람을 타고’에서 음식점에서 일하는 그들은 우리 도시에서 흔히 말하는 중국집의 철가방일 수 있고, 피자배달도 될 수 있다. 가스배달은 우리 가정에서 사용하는 프로판가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했지만, 우리 사회가 각종 변화가 일어난다. 혁명이든 전쟁이든 뭐든지 말이다. 혁명과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그 사회의 혼돈을 보겠지만, 그 혼돈조차 유지되려면 늘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하다. 겨울이라면 난방시설을 이용해야 하고, 계절을 넘어 하루에 식사를 꾸준히 해야 한다. 나라의 기능이 마비되거나 없어지거나 또는 사라져서 새로 탄생해도 사람들의 입속에 빵은 항상 들어가야 한다. 바로 그것을 제공하는 것은 그 누군가의 노동이다. 우리는 노동을 제공하여 살아가고 노동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노동으로 만들어지고 노동으로 돌아가는 공간, 그게 바로 도시다.

 

도시가 아닌 농촌과 어촌도 노동은 필요하나, 그 노동의 성과물은 그 나라 정치체제가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닌 경우 그 노동을 실행하는 자에게 돌아간다. 노동자와 노동의 산물이 분리된 게 아니라 하나라는 점이다. 농경산업과 그리고 농경산업 이전의 수렵채취산업 시대에는 인간의 노동이 곧 실행자에게 부여된다. 하는 만큼 대가가 돌아온다. 도시의 노동은 자기가 하는 만큼 오는 게 아니라 그것이 임금의 형태로 돌아온다. 강의주제에서 노동과 임금체계를 말하려던 것은 아니나, 결국 도시라는 공간은 노동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란 점이다. 노동이 가진 의미는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그 사회의 종속적 존재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구조적인 요소다.

 

강의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바로 시간의 개념이었다. 농경산업에서 농부들은 공간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찾아낸다. 비가 오면 집에서 쉬고, 날이 밝으면 논에 나가 어두워지면 집에 와서 잠을 잔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개념은 자연이란 공간에서 시작된다. 자연의 변화가 곧 인간의 삶으로 연결되었기에 인간은 자연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자연적 인간이란 숲 속의 동물처럼 미개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그 누구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

 

도시의 발전과 농촌의 파괴 그리고 시간의 개념, 이게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조건이었다. 도시의 이야기에서 강의자가 나누어준 자료에 마르크스주의자인 루이 알튀세르와 앙리 르페브르가 등장했다.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문화비평가로서 길을 걸으면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의 학문을 벗어날 수 없다. 특히 공간에서 마르크스주의에서 보는 관점은 인간의 노동이 집중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가둘 수 있는 주거가 필요했고, 그 공간에서 거주하는 인간은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들 역시 공간이란 점이다. 인간의 존재가 하나의 목적과 대상이 아니라 물적 조건을 성립시키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변모된 점이다. 그것을 확실하게 만든 것은 바로 시간이란 개념이다.

 

도시는 시간이란 개념으로 움직이고, 그것이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시간은 자연적 흐름에 의해 계산되는 게 아니라, 시계의 초침과 분침으로 구분되게 된 점이다. 도시는 시간이 곧 재산이고 법칙이다. 시간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측정하게 되는 척도가 된다. 도시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생계수단을 위해 일을 한다. 일을 하는 것은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고, 노동은 시간으로 측정된다. 시간의 흐름에서 일정시간에서 생산된 것은 곧 자신의 임금으로 가겠지만, 그 임금 이상으로 고용주에게 큰 이익이 돌아간다.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란 도시에서 곧 자본을 움직이는 수단이 된다.

 

자본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자신에 대한 재생산이 필요하다. 생물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음식을 먹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의상과 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으니 취미생활과 문화생활이 생긴다. 인간의 시간은 그 누구에게 공평하게 24시간이 주어지겠지만, 인간은 영원불멸로 24시간을 사용할 수 없다. 일정 수명이 되면 사망하고, 사망한 자를 대신하여 새로운 인간이 필요하다. 도시의 생성과 발전 그리고 유지는 인간의 재생산으로부터 시작되어 생산되는 것이다. 인간이 생산하는 것은 계속 도시의 팽창으로 이어지고, 그 팽창은 도시의 발전과 더불어 빈부격차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된다.

 

강의하는 분과 강의 자료를 보면 도시에 대한 언급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루소가 생각났다. 루소의 <에밀>을 읽으면 농촌생활이 인간의 심신에 좋고, 도시는 온갖 죄와 병으로 가득하며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공간인 점을 묘사한다. 인간이 태어난 이상 공동체 이상으로 사회라는 큰 조직에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인 점을 감안하여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저술하여 도시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가치관을 제시했다. 그러나 적어도 루소의 사상을 공부하면 루소는 도시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루소가 가장 잘 지적한 말은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는 인간이라고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인간이고,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기 어려우니 그럴지도 모르나, 가장 인간에게 필요한 게 인간이고, 그래서 인간의 가치는 가장 저렴했다라고 말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가장 소모성이 강하며, 밀과 치즈처럼 일상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것이다. 인간이 그렇게 소모되어야 하는 점에서 인간의 운명은 비참한 수레바퀴에 영원히 맴도는 비극에 처한 것이다.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루소가 바라보던 도시는 매우 비참했다.

 

“산업이나 기술이 보급되고 번영됨에 따라 남의 멸시를 받으며 사치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조세를 짊어지게 되고, 더구나 노동과 기아사이에서 일생을 보내게끔 되어 있는 농민은 논밭을 버리고, 본디 그가 그곳에 가지고 가야 할 빵을 구하러 도회지로 간다. 도회지가 백성의 우둔한 눈을 경탄케 하면 할수록 논밭은 버림을 받고, 토지는 황폐해지며 한길에는 불행한 시민들이 우글대는 모습을 보고 한탄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민들은 거지나 도둑으로 변하여 언젠가는 수레로 찢어 죽이는 극형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도시의 발전은 과학기술과 산업 활동에 의한 산물이다. 그게 바로 가난한 자들의 고통으로 이룩한 신기루 같은 현실이다. 참고로 루소의 사상에 대한 연구에서 그의 탄생 200주년(1912년)에 루소가 칸트와의 관계성을 놓고 봤지만, 250주년(1962년)에는 루소를 마르크스와 놓고 연구했다. 루소와 마르크스의 관계를 놓고 보면 관계성이 의아할 줄 모르겠지만, 리오 담로시의 <인간불평등발견자, 루소>는 루소는 마르크스, 프로이트, 로베스피에르의 아버지라고 한다. 몇 년 전에 타계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역사와 흐름을 설명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설명에서 마르크스의 시점은 헤겔 좌파라고 하나, 막상 마르크스는 리카도학파 좌파와 더불어 자코뱅파 좌파로부터 이어진 것이고, 자코뱅파에서 대부분 인물들은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에게 영향을 받지만, 그 안에서 최고인 자는 루소다. 루소의 사상을 토대로 엥겔스 편을 보면, 엥겔스는 영국 맨체스터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엥겔스는 영국 신흥 공업도시인 맨체스터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비참한 현실을 정리할 때 이미 루소의 사상을 상당히 인용한 점이다. 도시라는 공간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 장소는 물질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면서 한편으로 이념이란 시스템이 우리의 무의식마저 지배한다.

 

게다가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관념에 의해 존재하지만,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공간이란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착오라는 단어와 더불어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공간착오가 우리 사회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내가 가장 짜증나는 것은 거리에 나부기는 깃발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깃발이 넘실거리는데, 이미 그 당시 새마을운동은 도시화를 위해 기존 낙후된 마을을 산업화의 영향으로 바꾸자는 슬로건이다. 대도시를 비롯한 많은 국토가 이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채워져 있고, 마천루의 도시는 바벨탑처럼 솟아올라 인간의 욕망은 이미 신을 초월했을지 모른다.

 

그런 도시에서 새마을운동 깃발이 매우 넓은 대로 양쪽 깃발꽂이에 몇 ㎞나 계속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공간착오라는 개념이 바로 저런 것을 알 수 있다. 대도시화된 현실에서 더 이상 1970년대 사고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지만, 아직도 살아가기 바라는 점이다. 지금은 산업화로 인해 파괴된 자연을 복원하고,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여 건강한 자연생태조건이 도시와 어울리는 것이 도시계획의 목표다. 그런 현대적인 도시계획과 다르게 전혀 다른 가치와 구시대적 산물이 여전히 도시를 아우르는 점이다. 문제는 그런 가치들은 다양성을 추구하기보단 계몽주의가 아닌 계몽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점이다.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인간의 삶 자체가 도시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에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의 법칙이 아니라 도시가 그래던 것처럼 그 사회의 관습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는 당연히 이래야 해라는 가치관마저 도시의 이념에 만들어진 것이다. 도시는 많은 인간들이 상주하고 있고, 도시는 사회적 공간으로 작용한다. 사회적 공간에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눈에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은 약속에 얽매인다. 공간은 인간의 이성과 더불어 무의식에도 작용한다. 가령 부산이란 도시는 1950년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내려와 만들어진 도시다. 그 이전인 일제강점기에는 경제수탈을 위한 병참기지로 활용되었다.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는 경부선, 부산항과 영도대교 역시 일본이 경제수탈을 위한 도구로 만들었다. 공간적 재현이 바로 그들의 이익에 연결되었다. 그러나 경부선을 한국에서 가장 이용이 많은 철도구간이고, 부산항은 많은 경제적 가치를 지니며, 영도대교는 많은 관광객들이 다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온다. 친일적인 사고에서 일본이 만들어낸 근대화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근대화가 이룬 성과가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자수탈로 이어졌고, 이익을 본 자는 극히 일부였고, 그들은 일제의 억압에 고통 받는 민중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 맥락에서 올라가면 서울이란 대도시는 조선개국 태조 이성계가 도읍으로 정하여 한강과 넓은 평지를 도시적 기능을 살려 왕조로 이어갔다. 서울에 남아있는 지명이나 행정구역은 현대적인 요소가 아니라 과거에 존재했던 기능과 지명에 의해 남아진 것이다. 그래서 도시는 움직일 수 없는 고정식이라도 그 형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연속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그 기능은 강연에서 말하듯 공간적 재현일 수 있고, 혹은 재현적 공간일 수 있다.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합리적 공간이 존재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도 있다. 부산이란 도시는 피난민들이 내려오면서 도시로 발전하고, 유명한 국제시장 역시 피난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모여든 곳이 그런 명소로 된 것이다.

 

루소가 바라본 파리라는 도시는 처음에 화려한 궁전과 귀족들이 넘치는 아름다운 곳으로 여겼지만, 그가 본 것은 가난한 거지들이 모여 빈민촌이 생겼고, 몸을 파는 여자들이 모인 창녀촌도 있었다. 그들은 결코 원하지 않은 현재의 삶을 살았고, 그것이 공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재현적 공간은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가들이 활동하여 그들은 자연이란 공간을 보존했다. 도시의 팽창은 공유지를 없애고 사유지로 전환되며, 가난한 자들은 계속 멀리 도시 안에서 외부로 내쫓고, 외부의 공간마저 도시가 점유하기 시작한다.

 

16세기 양모 산업이 영국에서 발전하면서 농민들이 농지를 잃고 도시로 흘러 빈민촌을 형성하고, 빈민들은 거지가 되어 구걸하다 국가에 의해 처벌을 받고, 심지어는 사형을 당했다. 도시에서 바로 자본의 차이에 따라 계급이 형성된다. 토지를 많이 가진 자, 조금 가진 자,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들까지 말이다. 블랙홀 5집의 ‘바람을 타고’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자유란 물질적인 자본이 아니라 단지 차가운 밤하늘을 가르는 바람이었다. ‘바람을 타고’는 유일하게 그들이 도시에서 가지고 있는 자유다.

 

삶에 대한 애착에서 유일한 해방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공간에서 공기의 저항이란 자연적 조건이다. 도시는 인간의 피와 땀을 빨아먹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부분에서 보여준 사진이 인상이 깊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나 그 작가는 자신의 아내가 국경 없는 의사회 일원이었고, 아내의 해외봉사를 가면서 그도 따라간다. 그곳에 본 가난한 도시빈민들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내었다. 컬러사진 아닌 빛과 조명을 왜곡시킨 흑백사진에서 비참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환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미지의 인간처럼 보였다. 그 중에 인상 깊은 사진 2매가 있다. 광산에서 채굴하는 노동자들이 개미떼처럼 모여 있는 것, 고층건물을 짓기 위해 안전장치 없이 골조비계를 타고 올라가는 나이 어린 노동자의 모습이다.

 

그들의 삶에는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들의 입장을 너무 비참하더라도 불쌍하게 봐달라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삶의 기억과 경험은 많은 것을 잡아 댕긴다. 건축은 도시의 승리를 상징하는 물질이다. 건축의 존재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어진 사실은 은폐한다. 회사 다닐 때 옆에 같이 근무하던 동료의 아버지가 어느 대단지 고급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추락하여 사망했다. 그 동료가 상주가 되어 장례식을 지키고 있을 때 나 역시 조문하러 갔다. 그리고 장례식을 마치고, 복귀하여 그 사고를 대해 물어보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런 현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식으로 대답했다. 도시의 승리는 과연 위대했다. 인간의 목숨을 잃어도 그런 비극은 어디서나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현실이 틀려도 인간들은 문제의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나와는 무관하다는 식이다. 도시의 인간은 공동체적인 삶이 아니라 각자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 소개된 사진 중에 마치 기숙사처럼 보이는 건물에 많은 노동자들이 창가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들은 원래 시골에 올라온 사람들이고, 시골에 가면 저녁에 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한 방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눈다.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하여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자신의 옆에 있지 않았다. 단절에 의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고립되어 고독한 도시를 느끼는 것이다. 아파트 주거환경에서 아파트는 과거 부의 상징이었으나, 아파트는 인간을 분리된 존재로 만들고, 숫자로 매겨버린다. 아파트는 그 사람의 생활수준과 봉급 그리고 계급까지 구분한다. 이런 도시의 모습은 우리 일상생활이 되어 그 자체가 당연성이 되었다. 참고적으로 앙리 르페브르는 프랑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그룹과 상당히 친밀했다. 그 중에 라울 바네겜이란 <일상생활의 혁명>의 저자가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한 동기가 바로 앙리 르페브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골목, 거기서는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커피와 술을 마시고 있었으며, 가난한 이들의 터전이었다. 도시계획의 목적은 도시정비와 발전이나, 또 한편으로 가난한 자들을 멀리 내쫓는 것이다. 현대의 인클로저 현상이 도시계획과 많이 연관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정비를 하게 되면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여 좋겠지만, 막상 그 보상금으로 다른 곳에 집을 얻으려도 부족하고, 그 자리에 다시 올라간 집에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도시의 확장은 계속 빈민을 몰아내는 것이다. 빈민들이 모인 골목에는 다양한 상점이 들어서고 그들의 자리를 없애는 대신 백화점이 들어선다. 골목상권을 지키자 그리고 합리적 소비생활을 하자고 슬로건을 외치는 현실이나, 막상 그런 게 불가능한 것은 도시의 형태가 이미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공간의 배치에서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가는 것이 당연하고, 교통의 흐름을 이용하여 직장과 학교,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그 공간을 누가 배치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생활환경은 크게 변한다. 예술의 역할은 바로 그 공간성을 어떻게 보고 설정할 것인가이다. 예술은 시각적 정보로서 많이 드러낸다. 음악은 재생장치가 없는 이상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각적인 정보는 그 자리를 메우는 공간이 된다. 인간 개인 자신의 삶에 주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란 어렵다. 하지만 그 자신의 의지와 목적을 이룰 수 없더라도 그 가치조차 가질 수 없다면 그 세상은 매우 따분하고 지루할 것이다. 지루한 세상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 권태만 존재한다. 물론 그 권태로움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인간들은 영원한 방관자 spectator가 되어 수동적인 인생을 살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로서 충실하나 그 충실함이 여실할수록 권태의 지배만 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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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7-1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전 제가 청각보다는 시각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공감각적인 거였네요. 내용이 제겐 좀 어려워 범접하기 힘들지만 생각을 해볼 단초를 제공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벅~(__)

만화애니비평 2015-07-20 10: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음에 이햐가 쉽도록 작성해야겠네요

양철나무꾼 2015-07-20 10:14   좋아요 0 | URL
아뇨~, 충분히 이해하기 쉽도록 잘 써주신 좋은 글인데, 다만 제가 그동안 이쪽으로 생각이 고착되어 있어 어렵게 느껴졌나 봅니다. 몸과 마음뿐 아니라 생각도 유연하게 해야겠다 다짐을 해봅니다, 불끈~!

AgalmA 2015-07-20 0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문 중 말씀하신 사진 작가는 세바스티앙 살가도로 추정됩니다. 말씀하신 사진은 <workers>에 수록되어 있을 거고요. 살가도가 난민과 빈민들 사진 찍다가 문명에 대해 낙담하고 실의에 빠져서 사진 찍기를 포기했었죠. 그리고 다시 재기하여 환경 운동과 함께 그런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뜻을 전달하고 있죠.

만화애니비평 2015-07-20 08:51   좋아요 1 | URL
세바스티앙 살가도로

맞네요. 검색하니 그 작가입니다. 환경운동가를 하는 것조차도 강의에서 들었습니다.
환경공학 전공자로서 참 부끄러워지는군요.

마립간 2015-07-2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에 만화애니비평 님의 댓글을 인용했습니다. 맥락상 왜곡이 있다면 댓글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7-25 10:00   좋아요 0 | URL
특별히 문제없어요. 저 생각은 저나 신해철씨나 많은 분들이 여기는 부분이니깐요
 


 

위 사진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희생자를 초모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일반적으로 미술작가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 만화작가가 하나의 일러스트를 그린 것처럼 그려놓았다. 그런 점에서 위의 그림이 만화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면 예술로서 보는 것이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은 것인가? 2014년 7월 23일에서 29일까지 안산시 단원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비아트에서 2번째 강연을 개최했다. 1번째와 다르게 2번째는 유입물 대신 영사기를 하얀 벽면에 비추어 전시된 작품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주제는 만남이란 것이다. 만남 그것은 어떻게 보는 것이 맞을까?

 

우선 예술에 대해 내가 공부하기론 이중텐의 미학강의에서는 예술을 삶을 광학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삶 자체가 예술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예술로서의 인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삶에 들어있는 인간의 미적 가치를 끓어 올려 주어 그것이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에게 전달하여 그들에게 미적 즐거움을 주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 그런 예술적인 요소로 본다면 무엇이 부족한가? 예술에 대한 정의는 다분하지만, 전에 강의에서도 그러하듯이 우선 예술은 대중과의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 글을 적는 필자의 경우 서브컬처에 의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서브컬처 향유자 겸 아마추어 비평가로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에 대해 바라본다. 인간의 시각에서 자신이 속하여 있는 사회나 조직에서 그 안에 갇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그 주변이나 변두리에 존재하는 인간이야말로 대다수의 인간이 속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을 관찰하는 이와 비판하는 이는 항상 소수의 입장이거나 격리된 존재로 보일 것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그런 대다수가 속한 세계의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떤 점에서 바를지도 혹은 무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어려워하는 이유가 있듯이 예술은 또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란 이런 역설적 관계가 놓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을 같이 즐기기란 이런 난해한 역설적 관계에서 줄 달리기를 하는 점이다. 그런데 우선 저번 강의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지적하고 싶은 것은 왜 대중에게 예술이 전달이 어려운가라는 점이다.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이른바 서브컬처로서 대중문화 아래에 존재하는 문화를 향유하나, 그 문화는 대중들의 입장에서 천박하고 유치하고 이상한 것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무시당하거나 천대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반대로 고급문화와 더불어 서브컬처로 들여다보면 입장이 다르다.

 

서브컬처 안에는 인간이 겉으로 보이지 않은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인간 근원에 대한 요소를 보여준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안다고 했다. 예술에서 말해주는 것이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점에서 전후맥락 관계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전후맥락을 생략한 채 예술가들이 입장만 강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난감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중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에게 특히 현대예술이란 영역에서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공감이나 교감이다.

 

대중은 무지할 수 있다. 이른바 중의주의적인 요소와 토크빌이 지적한 것처럼 민주주의는 가장 전체주의가 되기 쉬운 정치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은 일반 대중하고 분리되기 보다는 오히려 대중으로 하여금 현실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부족한 것은 대중에 대한 현실적 상황판단이다. 20세기에 도래하면서 영상매체 발달은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대중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정보를 찾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받기만 하는 수동적 인간형이 되었다. 비아트 1번째 강연에서 전성욱 교수가 나누어진 유입물을 자세히 봐야 할 이유는 바로 스펙타클의 사회에서의 모습이다.

 

대중들이 왜 예술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가? 강연에서 <인터스텔라>를 본 관객들이 그 영화에서 나온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점, 그리고 그 작품이 아니더라도 흥행한 작품이나 또는 여러 가지 매체에 등장한 예술이나 오브제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하면 영화에서 기념이 되는 장소에 체험하는 것은 좋지만, 그 자체로 자신을 거기에 가두는 현실이 된 셈이다. 가령 영화 <변호인>에서 작중의 김영애씨가 순애연기를 할 때 아들인 진우를 찾다가 지쳐 골목에 등장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때 송변호사가 골목계단에 앉아 있는데, 그 배경이 부산 영도구 영선동 일대의 주택지역이다. 그곳에 가면 <변호인> 촬영장소로 표시되어 있다.

 

<국제시장> 흥행 후 실제 부산 중구 부평동 일대가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물론 작품을 흥행에 따라 부산지역 관광객 유치에 좋을지 모르나, 실제로 거기가 촬영지라도 하여도 영화와의 관계성이 적다. 인증으로 온 관광객들이 넘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어째보면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광장의 경우 영화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적 공간에서 중요하다. 프랑스대혁명이 바스티유감옥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어 바스티유광장에서 수많은 인간들이 키요틴의 칼날 아래 이슬로 사라진다.

 

그러나 역사적 공간에서 그 역사적 감동과 현실적 공간에서 많은 생각을 전달해준다. 물론 단순히 프랑스에서 비싼 요리만 먹고 향수만 구매하려는 분들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 공간에 가서 경험하는 것이란 새로운 전율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단순히 미디어에 흥행한 이유로 찾아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보단 자신들의 주변에 나온 이야기를 찾는 열렬한 수동적인 인간만 양성한다. 따라서 예술이란 것은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해야 하는 점에서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문제는 예술이 대중에게 어렵다는 점과 강연하신 분이 프랑스 사회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텍스트를 인용하듯이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학력과 지식수준에 따라 소요시간이 다른 점이다.

 

예술이 너무 어려운 점에서 학력이 낮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금방 나오나, 억지로 거짓말로 자신이 본 시간보다 더 늘린다. 하지만 이미 충분한 지성을 갖춘 자들은 그 시간을 굳이 거짓말 할 이유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예전에 계층과 계급, 지식수준이 이제 문화자본의 구분까지 나눈 것이다. 가령 우리가 아는 플라톤, 호메로스, 칸트 등과 같은 위대한 저자들의 책을 아는 자들이 많지도 않고, 그들의 서적을 읽은 자들은 더 작으며, 그들의 사상을 논하는 자들은 더욱 적다. 예술에서 문학과 철학의 연계성이 결국 하나의 모티브로 전동되나, 대중에게 철학자와 문학자들의 이야기란 낯설고 거부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대중들은 결코 자신들을 무지하려 보이지 않는다. 억지스럽게 미술관에 가서 돈만 쓰고 나오는 형태는 미술예술가들의 권력을 드높게 하는 문제도 있다. 현대미술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기존 모더니즘에서 아방가르드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해체에 따라 없어졌다. 포스트모더니즘 해체로 이루어진다. 즉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한계성은 이야기가 없다. 관객들 중에 어느 정도 예술적 지식이 있는 자들은 그것을 이해하거나 또는 이해하고자 하나 대중은 그렇지 못하다. 이야기가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2번째 강연 주제가 만남이라면 만남은 소통의 시작이다. 소통이 시작되기 전에 만남에서 낯선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강의 후 토론시간에 나 같은 경우 그런 현실적 괴리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아니라면 서브컬처에 있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덧붙이자면 그 당시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중요한 소재는 이때까지 서구사회에 의해 억눌린 동양과 제3세계다. 그들의 문화는 생동감이 있고, 야생적이며, 독특한 미학이 있다. 레비 스트로스가 <슬픈 열대>에서 원주민들의 장식구를 수집하면서 그것은 원주민의 생활습관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 혹은 주술적 요소를 반영된 기구다. 하지만 인류학자에게 그것은 새로운 문화의 결정체고, 예술적인 작품이라 보던 것이다.

 

한국에서 그런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어느 작가가 유명한지 나 같은 일반인도 아닌 서브컬처 향유자는 알 수 없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현대미술이 일반인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점이다. 게다가 나는 뒤풀이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국내에서 다소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대구지역에 피카소 전시회가 열려 많은 이들이 보러 간다. 피카소는 프랑스 미술가로 프랑스의 자랑이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가다. 한국에서도 중고교 미술교육시간에 피카소란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피카소는 마르크스주의자고 프랑스 공산당으로 활동했다. 그의 작품에는 그런 정치적 입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프랑코 독재정치에 반대하고, 게다가 1937년 스페인 내전에서 활동한 레지스탕스들의 비참한 죽음과 프랑코의 학살에 분노하여 만든 ‘게로니카’는 분명 중요한 가치가 숨어있다. 피카소의 작품은 그림에서 이해하기 힘든 큐비즘이라 해도 그 안에 이야기는 간단하다. 아무 힘 없는 약자들이 학살당하는 점이다. 1953년 한국전쟁에서 민간인들이 군인들에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 우리는 그림이 이상하게 보이나, 그 내용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이다. 피카소의 예술은 사상적으로 어렵지 않다. 오히려 간단명료하고 리얼리즘을 배제한 인상적인 요소를 남긴다.

 

지금의 예술인들이 만드는 작품이 왜 피카소와 같이 공감이 없을까 라는 점에서 그들은 아마 대중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대중들이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강연 중 사진들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실제 보지 못했고, 그 작가를 모르며, 옆에 다른 분들은 이미 그 작가를 알고 있는 분이 많았기에) 점이 많으나, 어느 공동체 마을에서 계단손잡이에 쟁반을 옆에 붙여 거기에 막걸리나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계단이 의자로 활용한 작품이 있었다. 예술이 곧 삶이란 공간에 녹아있는 것이다. 목연포차를 보면 마트 생활오브제로 활동하는 것이다.

 

이런 상상력을 동원한 재미난 도구들이 대중의 삶으로 흘러가는 게 현대예술가들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은 안다. 내가 예술에 대한 부분에서 현대미술보단 차라리 만화애니메이션 같은 서브컬처가 예술적 기능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고 용이하다 했다. 가령 국내 최고 만화작가인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 <아기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100℃>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장면을 해학적으로 또는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100℃>의 경우 2014년 경남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최규석 작가 전시에도 올라온 작품으로 1987년 6월 항쟁을 그려낸 작품이다.

 

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저런 공감대가 필요한 이야기다. 만화가 지닌 강점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만화는 누구나 만들고 그리고 즐길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이 남긴 말로 “만화는 대중문화가 아니라 대중들의 의한 문화이다”라고 한다. 물론 모든 작가가 만화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어렵고 난해한 작품들도 나름 그 특성이 있어야지 다양성을 유지하고, 다른 작가들의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모티브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예술을 논하려면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성적인 영역에서 예술은 지식인들에게 통하는 것이지만, 그러지 않은 이상 감정코드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가 세월호 추모전시회로 보자.

 

내가 세월호 전시회에서 인상적으로 본 작품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을 재각색한 작품이다. 누구에 따라 광주 사태, 광주민주화운동이라 하겠지만, 나라면 광주민간인학살사건이라고 부르고 싶다. 군인은 헌법에 의해 대한민국을 지키고, 그 이유는 국민들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나, 오히려 국민들을 총칼로 살해한 것은 군인의 본분을 어긴 것이다. 군인은 오로지 계급에 의해 상부의 지시에 따르므로, 세월호 사건에서 해결되지 않은 진실규명은 결국 권력자들의 압력이 가해진 점이다. 만화가와 웹툰작가, 그밖에 작가가 모여 만든 전시회가 예술로서 그리고 대중에게 접근이 가능한 것은 그런 공감능력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도래하면서 예술은 대중을 지배해야할 대상 혹은 계몽대상이 아니라 같이 느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대중의 이성적 논리를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논리는 윤리적 가치를 선행되지 않으면 논리로서 가치가 없다고 한다. 단지 기계적 논리는 자신의 주머니에 얼마나 많은 돈을 줄 것인지 혹은 자신에게 얼마나 편할 조건만 찾는 것인지에 관심을 둘 뿐이다. 내 옆에 어느 작가분이 자신의 전시회를 이야기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다니는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아 그 길을 향하여 다른 사람들과 같이 걷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생각난 것이 기 드보르의 <나체의 파리>라는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도시는 구역정비와 도로의 일괄적 분류로 가난한 자들로부터 도시에서 추방하고, 감시가 용이하고 통제가 유리한 구역으로 만들었다. 골목길이 많고 어지러운 건물 배치는 가난한 이들이 뭉치고, 예술인과 문학가들이 모인다. 알베르 카뮈나 장 폴 사르트르가 파리에 거주하면서 가난한 거리에 거주한 이유 도로가 정비된 곳은 부동산이 비싸 살기가 어렵고, 복잡한 가난한 마을은 다양한 무리들을 와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기 드보르의 <나체의 파리>는 그런 도시계획이 정비된 길이 아닌 골목이나 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 서로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바로 삶의 주인공인 일반 대중으로 보는 것이고, 도시화에 따른 공간은 결국 가난한 약자들에게 가혹한 곳으로 변한다. 자본주의 문제점은 돈의 차이로 인권과 자유까지 차이난다. 헌법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것처럼 말하나, 그것은 말의 요식이 지나지 않는다. 최근 영화 <연평해전>에서 정치적 문제가 드러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연평해전>에서 사망한 수많은 병사들은 의무복무로 해군에 지원한 것이고, 그들의 죽음은 단순히 그 대상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일반 대중 혹은 서민들의 죽음이다. 또한 같은 시기에 개봉한 <소수의견>에서 철거민 아들과 의경복무자 역시 알고 보면 우리 주변의 소시민이다.

 

소시민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기 보다는 편을 가르고 싸워야 하는 시기에 예술적 기능은 바로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지만, 윤리적인 입장에서 상대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최근 한 의원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을 이야기하고,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는 대한민국 헌번 제1조 제2항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주인은 우리 그 자신이나,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군림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개인의 주체자로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개인은 수동적 자세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관련 없는 열렬한 스펙테이터(spectator)가 되었다. 예술이 대중과 따로 논다는 것에서 예술조차 스펙테이터의 열렬한 행위로 수동적으로 변해간다.

 

기 드보르가 보여준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행동에서 대표적인 게 영화다. 그 중에서 <사드를 위한 절규>는 1시간 정도의 필름에서 단 4차례의 대화만 잠시 등장하고 검정 화면만 나왔다. 관객들은 분노하고 환불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즉 SI(시튀)들은 모두 만족하면서 성공했다고 한다. 아방가르드극장에서 관객들은 아방가르드라는 작품을 보길 기대했으나, 실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관객의 예술을 무참하게 박살내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의 강연으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예술가들은 대중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강연자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보다 토론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보다 그것을 보고 내가 판단하여 정리한 내용이지만, 조금 생각해 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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