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드디어 서브컬처 사태가 트위토와 페이스북, 블로그에서 신문기사와 TV뉴스에 나왔다. 누가 그랬던가? No! Cut!가 이제 드리어 Yes! Cut!로 되었나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Yes Cut는 바로 웹툰작가들이 시초를 열었다. 이번 넥슨사태와 메갈리안 개입에서 나는 처음부터 사회구조적인 부분의 문제 특히 남여간의 문제를 단순히 남여문제로 감정대립을 하는 현실태에 대해 우려를 했다. 이건 단순히 남여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에서 시작된 것이고, 이것은 한국사회의 문제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대립이 이제는 남여의 사이의 프레임으로 변환되었다.


즉 이제부터 마녀사냥이 시작되는 것이다. <캘리번과 마녀>를 내가 자주 인용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인 페미니스트이다. 여성이 고대로부터 희생당한 것을 생각하면,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도 좋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증법적인 관계에서 전진과 퇴보 그리고 그리고 서로간의 충돌로 인한 변환운동이 발발한다. 이번 일에 대해서 가장 큰 원초적인 문제를 뭐라고 할까? 그 꼭대기 층에 남자 있는 것은 분명하고 사실이다.


하지만 남자라고 해서 한국사회 모든 남성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남성 권력층이다. 그리고 여성들도 사회적인 높은 입지를 차지해서 남자들도 거기에 대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나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높은 위치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는 남자라서가 아니라 여자라서 아니라, 단지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결혼문화에서 신데랄라 이데올로기나 온달신화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비슷한 계층이나 권력, 자본력을 가진 자들이 서로 계속 연속적으로 관계성을 맺는 것이다. 어디에 남자가 유리하거나 여자가 유리하다거나는 단지 그런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전에 도서모임에 가서 다른 회원분들과 이야기했다. 대부분 결혼한지 오래되신 분들이다. 그분이 남성이 경제적으로 여성에게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현실적 대립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에 나는 다르게 답변을 했다.


"이미 경제적인 위치에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리를 잡았다. 아주 높은 자리나 계층은 일반사람이 갈 수 없고, 아주 극소수다. 문제는 경제적으로 올라간 여성이 자기보단 못한 남성이라도 함께 해줄 것인가?이다.", 직업이 여자만 하거나 남자만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닌 이상 어디든 남여가 같이 있다. 내가 일하는 엔지니어링 설계관련 업무도 여성의 진출이 많고, 분야에 따라서는 남성보다 여성의 중심이 될 떄도 많다. 이미 경제적인 대립은 늦었다. 


지금 임금수준에서 여성이 낮다고 해도, 그것은 20~30대가 아니라 40대 이상의 노동인력이다. 식당이나 공장의 여성임금 수준은 매우 낮다. 하지만 전문인력은 학위와 자격증으로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 기계의 발전, 프로그램의 진보에서 육체적인 업무는 정신노동으로 변환된다. 즉 여성과 남성에 대한 혐오대립은 이제는 남여의 관계성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 따른 경제적 현실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회사 내 높은 자리는 40~50대 남성이 많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도 40~60대 남성이 주류를 잡고 있다.


하지만 20~30대 남성이 주류를 잡은 것은 아니다. 특권을 잡은 남성이 잡았다고 남성이 잡은 것은 아니다.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있으니 남여간의 대립각은 이상한 조류로 흘러간다. 서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중심 사회가 불만이고, 남성에선 똑같이 대학에 갔는데 2~3년의 차이로 임금과 직급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사회구조에 의한 현실이 상대방에게 화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대립의 각에 놓인 사람들은 주로 미혼이거나 학생인 남여들이다. 내가 결혼하신 분들하고 대화하는 것과 인터넷으로 보는 그들의 관점은 너무 다르다. 결혼하기 전에 여성에게 남성의 임금과 비교하면 부족하면 불만이 생기겠지만,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의 임금이 적으면 불만이 생긴다. 대부분 웹툰과 넥슨사로 대립각을 세우는 부류는 미혼인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 웹툰 소비자 중심이 누구일까?


남성도 많으나, 여성도 많다. 계층으로 보면 학생과 20~30대 직장인이다. 그나마 30대 세대는 한국만화가 제법 융창할 시대의 사람이다. <슬램덩크>나 <후르츠 바스케> 등 스포츠 및 소녀만화 쪽을 많이 접한 세대다. 지금 20대들은 웹툰이 시작된 시대에 같이 자라온 세대다. 10대들은 이미 구축된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다. 그런 조건에서 한국의 웹툰은 한국 만화가들의 노력과 그들을 마지막까지 기다려주는 팬들이 있어서 생긴 것이다.


그런데 넥슨사건 이후 팬들과 넥슨사, 웹툰작가 그밖에 서브컬처 콘텐츠 내부관계자에 큰 파동을 일으킨다. 이 문제는 한국 서브컬처만 아니라 정치적 영역까지 이어지고, 이제는 혐오 사이트의 마녀사냥 명부까지 작성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분명 성적인 부분으로 작가를 매도하는 것은 문제이다. 본인은 그 메일을 보낸 자의 숫자에 따라 상처를 받으나, 그 작가는 자신의 한 말에 수많은 웹툰 향유자를 상처받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웹툰작가 편에서 방송했다.


물론 관점에 따라 방송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 문제는 자기에 반대하면 너는 일베니 메갈이니 하는 사태가 드디어 방송에 나온 것이다. 이번 문제에 대해 나는 신속히 정리하길 원했다. 만약 이게 넷이 아니라 대중매체를 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체정화가 되지 않아 대중문화 영역에 넘어가면 그야말로 국내 서브컬처는 공격의 대상이다. 예전에 화성인 바이러스 씹덕후의 별명이 붙어진 이진규 씨로 인해 국내 서브컬처 향유자들이 받은 상처는 이루어 말할 수 없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로 이지메와 가혹행위를 당하고, 사회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부진아로 낙인 찍힌 것이다. 웹툰의 약진과 웹툰의 영화와 드라마화는 한국 서브컬처 힘을 다시금 찾게 해주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은 안녕이라 말해야 하나? 현재 웹툰작가에 대하여 불만을 말하는 자는 극우성향 사이트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거나 전혀 무관한 자들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남여간의 대립각을 세우는 게 이제는 한국의 서브컬처 생산자와 소비자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어둠에 숨어 조용히 지내야 하는 자들이 겨우 숨통을 열 수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에 가중된 문제는 미디어의 공정치 못한 방송이다. 진짜 이 문제가 어디서에서 시작되었는지 말하지 않고 단순히 프레임에 갇히게 만드는 상황만 만들었다. 1970년대 유산으로 인해 한국만화는 그야말로 검열과 폭력에 시름을 앓았다. 그때 그런 정부시책을 앞선 언론사들이 이제는 서브털처 소비자에게 정론의 언론사로 통한다. 전에 정부의 심의기준 강화에 반발하던 자들이 말이다. 


인터넷의 도서사이트 글을 보면 아쉬운 것들이 있다. 그분들의 논리나 상황파악은 나보다 훨씬 탁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타쿠란 존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말이다. 어쩌다 만화책 한두권이나 애니메이션(그래보았자 미국이나 미야자키 하야오 수준) 한두편 보는 사람들은 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기분을 잘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10~30대들이고, 기본적으로 학생이 많다. 내가 매일 챙겨 보는 일본애니메이션, 가끔 구매하는 만화와 라이트노벨은 대부분 10대 고등학생과 20대 대학생들이 많다. 


도서사이트의 탁월한 지성을 가진 분들이 만일 10~20대 학생을 대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처음부터 10~20대들에게 기존 사회의 남성권력의 부조리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은 지금 이 상황이 불쾌하고, 지금까지 믿은 것을 배신당했다고 믿을 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사회학에 대한 기본지식이나 수준을 갖추면 충분히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현상황에서 그게 얼마나 통용될 것이라 보는 것인가? 박가분씨나 하지율씨가 아무리 글을 잘 적어도 그것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끝날 수 있다. 아는 사람들은 이해가나, 대부분 독자들이 이해갈 정도로 풀어쓸 수 있어야 하는 게 배려라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굴레를 씌우지 말자. 그들은 권력층도 아니고, 남녀 서로간에 사회적인 압력을 준 사람도 없다. 그들은 그저 사회적인 약자이다.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그걸 이용한 강자가 만들어낸 프레임에 놀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물을 엎지른 상태이다. 이번에 부천국제만화축제 가지 못한 것이 다소 아슀다. 내일 미국의 유명한 만화학자인 스콧 맥클라우드가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컴퍼런스 초빙인사로 오신다. 


한국의 토론과 진행을 청강대학의 박인하 교수님, 그리고 비평가라는 선우훈씨가 맡는다. 선우훈씨가 해놓은 트위터를 넷 상에 보며 참으로 답답했다. 비평가라면 논리적으로 해결해야지 공인으로서 보여서는 안될 글을 적었다. 항의차원에서 부천국제만화축제 운영단에 보냈으나 안 올 것이란 점을 안다. 내일 컴퍼런스 참 걱정된다. 웹툰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은 부천만화규장각에서 실시하는 부천국제만화축제와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까지 악영향이 간다. 


행사에 유명작가를 초빙하여 사인회나 전시회를 하는데, 이번 일이 터지니 어떻게 될 것인가? 독자들도 지나치게 비난이나 욕설을 금지해야겠지만, 웹툰작가들이 자신이 말하고픈 글들을 보고 충격받았다. 제발 극히 일부이길 바란다. 이때까지 수면 아래 가려진 모든 폭발물이 동시다발적으로 계속 터지고 있다. 과연 누가 가장 피해를 볼까? 웹툰시장의 규모는 축소되고, 한국 서브컬처 콘텐츠 향유자는 한국 것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눈을 돌린다. 일반인들은 역시 오타쿠들은 안되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일베와 메갈은 어느 순간 비난의 대상과 영웅의 대상으로 교차할 것이고, 한국 서브컬처는 그야말로 최악의 인간만 모여 정신적 자위만 하는 장소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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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공부를 하고, KOSCAS 논문을 제출하려던 주제 중에 하나가 "마녀사냥"이다. 마녀사냥에 대한 마녀프레임은 단순히 魔女에서 여성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될 수 있는 불특정다수 중에 어느 소수자를 골라내는 것이다. 마녀사냥이 이루어진 광기의 유럽에서 희생자는 처음에 고관대작이나 성직자로 시작했으나 점차 아래로 평민이나 농노로 이어진다. 뒤로 점차 가면서 노동력과 생산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노인여성에게 큰 타격을 가한다.


영국의 인클로저 정책은 공유지를 없애는 것이고, 그 공유지가 대부분 삼림, 숲이 우거진 곳이란 점에서 재력이 없거나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은 숲으로 들어가 과실을 먹고, 식물을 채집하며 특히 약초를 연구하여 자신들의 병을 치료했다. 마녀가 숲에 살고 이상한 약물을 만든다는 속성은 바로 이런 과정이 전도된 오류이다. 마녀사냥의 목적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피지배계급을 착취하면서, 피지배계급인 농민이 가진 분노의 칼날을 우회하기 만든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란 것은 결국 사회적 구조에 의한 것이고, 인간은 그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어리석은 스펙타클러가 된다. 스펙타클러란 가장 열정적으로 행동하나, 그 행동에 아무런 의지나 사고방식도 없으며, 반영구적으로 인형놀이의 광대로 활동한다. 파시스트에 물들인 자들이 자신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말로 그런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영웅으로 등극한다. 물론 그들이 도중에 제거되면 사라지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지금 서브컬처 비극은 게임성우, 웹툰작가, 번역자 등 다양한 분류가 있다. 극우성향의 사이트에 대한 미러링이란 대항마라 하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들도 극우성향의 사이트 회원 못지 않은 폭력단원이다. 폭력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인터넷 사이버 세계나, 말과 퍼포먼스로도 가능하다. 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폭력을 가하는 자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너무 위험기 때문이다. 폭력의 정당성은 군중심리와 집단광기와 관련되어 있다.


16~18세기에 줄기차게 이어진 마녀사냥은 집단광기와 군중심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면 여성들이 고생했고, 세계 인류학 서적이나, 몇몇의 페미니즘 학자들의 책을 봐도 안다. 지금 일어난 현상과 세계의 저명한 페미니즘 도서 저자(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어트 테일러 부부, 매릴린 옐롬, 닉 테일러, 실비아 페데리치 등등) 작품을 읽어보면 지금 한국사회에 대한 부분이 이해가지 않는다. 내가 여성이 아니라 하지만, 글에 나온 서양의 시선인지, 아니면 우리가 동양에 국한되어 그런지 알 수 없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여성인권 범주에는 진짜 여성이 없다는 점이다. 어느 극단적 성향의 자의 말을 빌려 그들만의 나라를 세우고 싶다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든다. 왜냐하면 그들의 나라를 만들면 국가정부가 생기고, 관료체계가 생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가를 운영하려 경제구조와 사회적 인프라가 우선이다. 국방군사, 산업, 의료, 교통 등등이다. 바보 같은 점은 어떤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중요한 점은 시설물이다. 구조물이 올라가는 공간에서 시설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집이 있어야 잠을 자고, 집을 지으려면 건설장비가 필요하며, 건설장비를 만드려면 기계기술자가 필요하다. 게다가 토목과 건축기술자가 필요하며, 노동을 할 수 있는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 자재를 운반하려면 선박이 필요하고, 선박을 운영하려면 선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노동력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 것일까? 


언젠가 종로 유진식당에서 조촐하게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때 옆 자리에 계신 분이 나보고 노동결정론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했다. 물론 그런 관점은 누구마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노동할 수 있는 범위와 범주, 그리고 능력이 사회적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사회적 시스템에서 문제가 있는 것들은 교정하고 논의해야 하나, 막상 저들의 논리는 언더도그마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우가 교체되니, 거기에 미친광이처럼 몰려들어 한 목소리를 내고, 이제 그 성우가 충분히 대가도 받고 정식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하니, 이제는 다른 곳으로 칼날을 돌린다. 단지 그런 부류는 다른 누구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들의 이상한 불만을 논하고 싶을 뿐이다. 불만과 불리한 감정이 하나의 정의감이 되어 집단적 광기로 폭력을 부를 때 그걸 집행하는 자들은 정의를 수호한다고 말한다.


특히나 대다수 국민여론이 아니라 다수로 이루어진 소수정예요원인 경우 특히 그렇다. 투사와 광인은 다르다. 투사는 타인에게 공감과 사유를 전해주지만, 광인은 타인에게 불쾌와 반발심만 전해준다. 그들리 말하는 주장에만 일절의 윤리와 논리는 없으며, 오히려 그걸 부정하는 요소를 도리어 논리성으로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틀리면 나 모르오 라는 태도로 임한다. 


한국에서 게임과 웹툰은 서브컬처를 넘어 청소년의 여가생활이고, 일반대중의 오락이다. 나는 저들의 행동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행동범위는 문화콘텐츠로서 이른바 문화적 향유로 대중을 접하기 떄문이다. 따라서 공공성이란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으며, 특히 웹포탈 사이트인 다음이나 네이버 등과 같은 공중매개체로 대중들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뭐가 문제고, 무엇이 잘못되어 그것을 조금이라고 느낀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용이다. 예전에 어느 극우성향 사이트 회원이 아이들의 젖꼭지 병을 물고 있는 사진이 노출되자, 소비자들은 불만을 제기하고 그 회사에 항의했고, 회사의 이미지는 실추되었다. 그렇다면 그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의 경영에 큰 손해를 준 것이다. 그래서 그 직원은 강제로 해직되었다. 


지금 레진코믹스는 그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 만화문화콘텐츠 산업의 선두자가 무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각종 만화관련 학회나 세미나를 참석하면서 레진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만화관련 대학교 교수들의 강연에서도 레진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만화작가들이 제대로 대우받고 계약조건이 탁월한 곳이 그나마 레진이었는데, 이런 상황에 놓였다. 레진 입장에서는 경영문제와 더불어 만화문화에서 보자면 그들의 행동은 큰 치명적 타격이다.


만일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나 성폭행, 혹은 노동착취나 임금체불, 회사 부조리 신고에 보복으로 저항했다면 당연히 납득해야 겠지만, 오히려 그것과 무관한 일로 파시스트로 가고 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고, 오해할 수 있으나, 적어도 그런 것에 대한 명료한 답변을 들으면 스스로 생각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 게 없다면 답은 없다. 


이것과 무관하나 어제 뉴스기사에서 마음이 아프고 씁쓸한 기사를 보았다. 어느 미혼모 여성이 아기가 죽자 모텔에 숨기고 나와 결국 경찰에 잡힌 이야기다. 무책임한 남자친구는 나몰라라 하고, 미혼모의 부모는 그녀를 집에서 내쫓았다. 물론 그런 무책임한 남자와 아무 생각없이 같이 보낸 그녀의 마음가짐에도 아쉬움이 있겠지만, 적어도 태어난 아기에겐 죄가 없다. 일단 아기가 태어난 이상 미혼모를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하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또 다른 이야기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마트의 계산원들, 마트에 가면 내가 불편하게 보이는 광경 중에 하나가, 계산대에 의자가 없다는 점이다. 하루에 몇 시간에 가만히 일어서서 계산대에 있다는 것은 다리와 허리에 무리가 간다. 그런 사람들 중에 편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임금문제나 대우문제로 영업주에게 항의하다 불리한 일들을 당하는 경우다. 영화 <위로공단>을 보면 이 나라의 약자들이 누군지 알 수 있다.


광기에 젖은 그들은 이런 분들을 제대로 보려고 할까? 이런 분들이 고생하는 것은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이다. 권력을 가진 자에겐 진심으로 저항하지 않으면서, 우리 일상주변에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에 대하여 독수를 날리는 인간을 보면, 마녀사냥을 조작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재생산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난 후 자신에게 만일 불리한 처우가 온다고 해서 그들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나 의무는 없다. 타인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은 자에겐 그건 허울 좋은 망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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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ㅈㅈㅇ 2016-07-22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왕자가 필요 없다˝는 티셔츠 입었다고 성우가 교체된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되는 미친 짓인데 그 얘기는 쏙 빼놓고 잘난 척하고 있네. 여기다 좋다고 눌러댄 인간들이나.

ㅈㄴㄱㄷ 2016-07-25 16:0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휴.. 여기도 몰려드나봐요.
 


부산광역시 가덕도 신공항에서 부산시장의 실수는 항공법 시행규칙을 제대로 간파하고 주장해야만 했다.


항공법 시행규칙 제186조의5(계기비행방식 등에 의한 비행·접근·착륙 및 이륙)

 조종사는 군비행장에서 이륙 또는 착륙하거나 군기관이 관할하는 공역을 비행하는 경우에는 해당 군비행장 또는 군기관이 정한 계기비행절차 또는 관제지시를 준수하여야 한다. 다만, 해당 군비행장 또는 군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국토교통부장관이 따로 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김해공항은 일단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시행령에 따라 전술항공작전기지로 정했다. 공군기지의 공역에서 가덕도공항은 이미 중복된 상태다. 공역에서 군사공항와 민간공항의 우선권에서 군사기지의 비행관제를 받아야 한다.


지금 밀양이냐 가덕도이냐 이전에 항공법,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등의 법규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으니 그게 문제다. 환경적인 부분으로 보자면 환경부와 지방환경청 협의 시 과연 제대로 협의해줄까 의문이다. 4대강 사업으로 환경부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정권맞추기 식으로 협의났는데, 이번 공항사업에서도 환경부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또 다시 리스크를 짊어지려할까? 산을 깎으면 능선축 생태축의 훼손으로 발목잡히고, 바다를 메우면 공유수면매립으로 해양수산청과 해역이용영향평가센터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어디를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단 어디를 하려면 어떤 법적인 절차들이 걸리는 생각해볼 필이다.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하면서 대부분 개발기본계획 수립 전에 환경부와 지방환경청과 협의하지만, 밀양이든 가덕이든 어디든 환경적으로 좋지 않다.


김해공항 역시 좋은 것은 아니나, 환경영향평가 협의절차에서 환경영향은 인간만이 아니라 주변 생태계도 본다. 이번 사례에서 제일 웃긴 것은 김해공항이 민간공항이 아니라 군사공항이란 사실을 제대로 주지시키려 한 언론이나 전문가는 없었다. 김해공항에 공군기지에서 언론에 내비추듯 피스아이 사업으로 B-737 4대를 도입했다. 공군부대가 현상 유지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항공작전을 수행하니 그만큼 기지가 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곳에서 공항시설이 주변에 와도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경제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법적인 검토와 행정적인 조건의 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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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2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우리나라는 뭘하고 있는지를 모르겠어요. 엄밀히 말하면 박근혜 정부죠. 대체 왜 그러는 거죠. 뉴스를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참기가 힘들어요. 왜 보통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을 못 하는건지 이해도 되지가 않구요.

그런데 정말 만화애니비평님은 정체를 알기는 했지만 대단하십니다. 거의 `전인`에 가까우시네요. 어첨 이리 지식의 확장이 넓으신건가요...아!!! 대단하시다....

만화애니비평 2016-06-24 16:01   좋아요 0 | URL
원래 이번 정부가 그런 것은 한두번도 아니니 놀랐지도 않아요.

제가요. 김해공항에 위치한 공군기지 출신입니다. 김해공항에서 신활주로 보수 및 유도로 보강공사 및 구활주로 재포장공사할 때 이래저래 공사행정을 맡았기에 압니다.
 

영화를 보면, 어떤 지역을 제목으로 내세운 작품은 그렇게 좋은 내용으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영도는 흔히 부산에서는 영 아일랜드라고 불리지만, 실제 그 의미는 그림자 섬(影島)이다. 예전에 절영도(絶影島)라고 불리는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전쟁터였으며, 한자어가 불리게 된 동기는 여기는 원래 섬이기 때문에 말을 키우기 좋고, 여기서 달리는 말들은 매우 빨리 달리기 때문에 탄생한 단어가 절영도이다. 하지만 영도만 보면 그림자 섬이고, 영어로는 Shadow Island이다. 빛이 가려져 그림자가 남은 어둠, 사실 영화 <영도>는 주인공이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저주받은 운명 아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제목을 잘 관찰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다. 영화 곡성, 사실 곡성군은 전남에 위치한 작은 시골이다. 곡성은 사실 외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다. 전남에서 유명한 동네면, 해남 배추, 강진의 다산초당, 보성녹차 순천과 여수 정도만 알려질 것이다. 말 그대로 전남 일대는 산과 논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곡성군의 곡성(谷城)이 왜 곡성(哭聲)이 되었는가? 내가 영화 <영도>를 거론한 이유는 영도라는 곳은 교량이 없으면 주변이 바다로 이루어진 지역이고, 부산 안에서도 가장 구석에 위치하여 더 이상 어디를 갈 수 없는 형태다. 물론 교량을 이으면 충분히 교두점이 될지 몰라도 교량 없는 영도는 고립된 곳이다.

 

영화 <곡성>에서 배경지역인 곡성은 한자어처럼 골자기로 이루어진 성이다. 즉 지형을 생각해본다면 산이 주변으로 에워 쌓여 밖으로 나가기도 혹은 들어오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런 지역에서는 이상한 살인사건이나 기묘한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실은 모르나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장르를 보더라도 주변과 가로막힌 곳에서는 괴상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법칙이 있다. 영화 <곡성>에서 주변 지형을 보면 온통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영화는 처음부터 어두운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곡성>이란 영화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대중영화의 형태를 따라가지 않았다. 흔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매년 자주 나오는 장르 중에 하나이다. 이른바 B급 정서를 가진 영화다. B급 정서라면 좀비나 흡혈귀 같은 것들이 출몰하고, 잔인한 장면과 동시에 어이없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서 B정서를 가진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오히려 대중영화시장을 보면 대부분 거대자본력을 가진 업체들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

 

예술영화나 인디영화에 B급영화가 잘 등장할리 없다. 영화 곡성의 최대 매력은 B급 정서를 가진 작품이 대중영화 매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은 아마 한국의 웹툰 시장이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중매체 콘텐츠는 TV와 영화에서 모든 것을 대중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스릴러 영화조차 그렇다. 하지만 <곡성>같은 영화가 등장한 배경을 보자면, 그만큼 한국 내 문화콘텐츠가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려면 그 기반이 되어야 하는 작가나 시나리오 라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곡성>은 리얼리즘에 대한 상당히 많은 요소를 집어넣었다. 일단 한국 내 곡성군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영화에서 등장하는 많은 건물과 지형들은 실존하고 현재도 충분히 그 기능을 수행한다. 영화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다르게 실사영상 중심이 되므로 리얼리티 요소를 반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리얼리티와 리얼리즘은 다르다는 적이다.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어떤 식의 리얼리즘에 따라 작품성은 달라진다. <곡성>은 현실적 조건에서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있지만, 또 하나로는 마술적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것 같다. 마술적 리얼리티는 분명 미신이나 불명확하지만, 그 지역과 그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하나의 사실인 점이다.

 

왜 그런 것인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소설인 <백년의 고독>을 읽어보면 도저히 우리 인식능력을 그 작품에서 말하는 조건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남미의 세계, 그 원주민이 살아가는 세계는 그렇다. 가령 아주 오랜 문화를 지키고 있는 원주민들은 자신들에게 조상의 영령이 다가와서 예언과 힘을 준다는 믿는다. 우리는 그것을 두고 미개하거나 미신이라고 말할 수 있어도 그들 스스로에겐 그 믿음이란 사실이다. 영화 곡성이 그런 마술적 사실주의가 반영되었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샤머니즘이 영화 소재로 나오기 때문이다. 박수무당이 등장하여 잡귀신을 몰아내는 굿판에서 이미 무당의 역할은 무속신화로 통한 본풀이가 아니라 제령의식이다.

 

귀신의 실존성에서 실제 영화 <곡성>에서는 귀신이 있다는 설정을 두었다(문제는 귀신이 너무 예쁘다는 게 특징이다). 영화를 보면 곡성의 마을이 점점 어느 누군가의 위협으로 사람들이 점차 죽어나가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이상하게 난폭하고 공격적이며, 심지어는 사람을 공격한다. 곽병규(곽도원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마을의 경찰로 등장한다. 어느 집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사람을 죽인 사람은 이상하게 눈을 보고 있으며, 사람이 있으면 여기저기 물기 위해 달려든다. 그리고 그 이상한 병에 걸린 사람은 계속 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난폭하게 굴다가 어느 순간 경직이 멈추면 죽는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곽병규는 이상한 여자를 만난다. 옛날 남자군복 상의를 입은 하얀 원피스 아가씨는 이상하게 그에게 돌을 던진다. 돌을 던지는 이유는 뭔가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 나오지만, 그녀는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가고 있는 귀신이다. 처녀귀신인 것은 분명하나 특이한 점은 하얀 한옥이 아닌 점이다. 귀신을 대하여 생각하면 무속신화와 같이 시대와 같이 변천한다. 한국의 귀신들을 보면 대부분 조선시대의 의복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귀신이 존재했다면 고려도 삼국시대도 있었을 것이고,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귀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천우희 씨가 맡은 역할에서 귀신 역시 사회적인 변천을 통해 인간의 의식공간에서 재탄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의 역할을 무엇인가? 작품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행동하는 장면이 큰 힌트가 된다. 내가 발견은 2가지다. 맨 처음 내가 의문을 가진 게 곽병규가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에 가는데, 말린 나뭇가지 것들이 마루에 걸려 있었다. 그것은 귀신이 동네주민에게 해가 나지 않기 위해 걸어놓은 주술이었다. 처음 곽병규가 괴물에게 습격당할 때 무사하게 집에 갈 수 있었던 이유도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있다. 왜 곽병규는 실제 당한 일을 꿈에서 꾼 악몽처럼 떠오른다. 인간이 지나친 충격이나 공포를 느끼면 자신이 당한 일들이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라고 여기고 싶어 한다. 이때까지 곽병규를 괴롭히던 꿈들은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이고, 꿈을 악몽이라며 믿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인간의 습성이다. 다른 1가지는 황정민님이 맡으신 박수무당이다. 내가 중간에 약간 의심 가는 장면이 있었다. 박수무당집으로 찾아 간 곽병규는 그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한국남자가 입는 하의 속옷은 일반적으로 삼각 내지 사각 팬티다. 혹은 전통한복에서 남성은 속고의와 속저고리만 입는다. 결국 한국 전통한복에는 일본의 훈도시 같은 의상을 남자들이 입지 않는다. 박수무당이 입은 훈도시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해야 했다. 인간을 습격하던 붉은 눈의 괴물이 나체에 훈도시만 입었던 것이다. 훈도시를 입은 점에서 박수무당은 이미 마을주민을 살해하는 음모세력하고 공범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품에서 조금 의아한 장면이 있다. 괴물에게 감염되어 좀비처럼 된 사람의 옷을 보면 모두 귀신이 상의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병규는 박수무당의 말을 듣고 귀신이 범인이라 여겼을 지도 모르나, 시기적으로 보면 군복상의를 입은 사람은 산에서 조난당한 사람이다. 귀신이 힌트를 준 것인지 모른다. 누가 지금 괴물에게 감염되어 죽어가고 있는지 말이다.

 

<곡성>에서 이런 전개과정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은 박수무당과 일본인이 펼치는 굿판이다. 굿판에서는 무당은 악령을 제거하기 위해 악령은 박수무당을 막기 위해라도 하나, 사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박수무당이 곽병규 집으로 왔을 때 귀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신을 본 박수무당은 코와 입에서 피를 나오고,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계속 피를 토한다. 그날 굿을 한 것은 박수무당과 일본인의 대결인 것처럼 보였지 사실은 원래 살던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귀신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귀신이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괴물이었지만, 인간 그 자체는 견제할 수 없었다. 마지막 장면은 3번 닭이 울면 위기가 벗어날 것이라 했지만, 결국 병규는 귀신의 터부를 어기고 집으로 돌아갔고, 딸은 이미 괴물의 전염에 완료되어 결국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한다. 작품을 보면 병규의 딸 효진이의 모습에서 그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유진이가 TV를 보고 있을 때 항상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그 장면은 강력한 맹수가 자신보다 힘이 없는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다. 맹수처럼 되어버린 효진이는 가족을 살해하고, 마지막에는 괴물의 지배를 받는다.

 

작품의 시나리오를 보고 리뷰하자면 여기까지는 단지 1차적인 글에 불과할 것이다. 영화라면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Context적인 맥락 관계를 볼 필요가 있다. 작품에서는 마을이 죽어가는 것이고, 그 원인이 외부에서 찾아온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마을을 붕괴하는 것은 외부의 인물 일본인이고, 그것에 의해 마을주민들은 죽어가는 것이다. 마을에 단순히 여행이 목적이라 하는 그는 마을을 파괴하는 원흉이다. 그런데 마을을 파괴하는 것은 단지 외부인인가?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에 대해 주변을 속일 수 있는 속임수가 있었다. 일본인의 방에는 온갖 주술적인 도구와 희생자의 사진이 있었다. 그가 펼치는 것은 한국의 무속의식과 같았으며, 그의 공범자인 박수무당 역시 무속의식을 보여준다. 무속의식은 서로 다르게 진행되나, 서로의 목적지는 같았다. 희생자들을 노리고 계속 음모를 꾸미는 것이다. 마을의 몰락은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외부의 침략을 동조할 수 있는 내부의 내응이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서로 혼란을 겪으며 파멸을 맞이한다.

 

그 파멸은 우리가 이때까지 믿고 있던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 점이다. 사실 박수무당이라면 그 마을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처녀귀신의 편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 병규는 자신의 가족을 모두 죽은 효진이의 모습을 보고도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의 가족과 자신마저 죽이던 효진이를 마지막까지 지켜주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계속 믿어왔던 그 근본이 틀린 것이라 말한다. 병규는 주변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증세와 공격성을 기억해도 자신의 딸이 그런 행동을 보여도 자신의 딸에게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박수무당에게 찾아간 병규는 묻는다. 왜 나의 딸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지 말이다. 박수무당의 말은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낚시를 하는데 낚시꾼이 자신에게 걸린 물고기가 어떤 것인지 신경이 쓰이는지 물어본다. 절대 낚시꾼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자기가 낚은 물고기가 좋은 것이면 그만이다. 자신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닥쳐도 세상을 원망하더라도 불행은 내가 피해가고 싶어 피해가는 게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운이 좋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그 운이 다했다면 어떤 비극의 씨앗이 올라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비극이 닥치면 인간은 받아 들이야 하겠지만, 현실의 인간들은 그 비극이 일어나는 순간조차 외면한다는 것이 진정한 비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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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1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글은 너무 좋은데 괜히 읽었어 ㅋㅋ 저 이 영화 아직 안 봤단 말이에요 ㅋ 아 괜히 읽었어 ㅋㅋㅋㅋㅋ

그래도 정말 뛰어난 리뷰입니다. (엄지 척) 흠 대체 만화애니비평님은 뭐하시는 분인 걸까..덕후인가 오타쿠인가 히키코모리인가...아니면 이중적 생활을 즐기는 변태인가..의문이 가시지 않습니다. 흠 정말 오랜만에 좋은 덕후를 만났다는 이 전율! 아 리뷰 재미지다 ㅋ

저도 지지 않기 위해 덕후력 기르고 있어요. 기대해 주세요!

곡성보다 더 미스테리한 건 만화애니비평님의 정체...

만화애니비평 2016-06-19 22:35   좋아요 0 | URL
이 정도면 그렇게까지 스포 많이 하지 않았어요. 거의 제가 집어낸 이야기는 영화보던사람들이 집어내지 않은 장면입니다. ㅎㅎㅎㅎ

덕후이고 오타쿠이나 히키코모리는 되지 못한 일인입니다. 직장인이다 보니 내일 출근이 두렵군요..ㅎㅎㅎ

그런데 변태는 맞습니다. 군대 갔을 때 내무실 고참과의 대화내용 잊을 수 없네요.
˝너 담배피나?˝
˝안 핍니다˝
˝너 술 좋아하나?˝
˝술 평소에 안 마십니다˝
˝너 여자는 있나?˝
˝여자 없습니다˝
˝당구는 칠 줄 아나?˝
˝칠 줄 모릅니다.˝
˝아니 이 새끼 완전히 변태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 사는데.˝

그렇습니다....ㅎㅎㅎ



루쉰P 2016-07-16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곡성>을 보고 다시 한번 리뷰를 읽었습니다. 더 확확 읽히네요. 곡성을 다 보고 어렴풋이 무명과 박수무당, 일본인의 관계에 대해서 알았는데, 리뷰를 읽으니 더욱 명료해 지네요.
마치 <곡성>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다양한 해석을 내리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 대해 많은 해석이 있더라구요. ㅋ
근데 전 만화애니비평님의 마지막 문장이 참으로 맞다고 생각해요.

`현실의 인간들은 그 비극이 일어나는 순간조차 외면한다는 것이 진정한 비극일 것이다.`

이 문장보고 소름이 쫙!!!!!!!!!! 만화애니비평님의 존재야 말로 저에게는 곡성의 무명과 같네요. 후후후 어찌 이런 리뷰를...통찰력이 대단하십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7-17 19:40   좋아요 0 | URL
아 영화보셨습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아직이라 뭐라 할 수 없지만,
영화는 아무 것도 도움이 되는 게 없다! 라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소름이라니..그런데 무명의 천우희씨 이쁩니다..ㅎㅎ
 

(자작 단문소설입니다!)서울시 집은 아파트 전세 24평형 사는 평범한 부부, 그들이 어렵게 결혼 후 이제 첫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남편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가장, 아내는 원래 같은 회사에 다녔지만, 출산에 따라 일을 그만 두었다. 육아 퇴직과 관련하여 회사에서 나온 퇴직금과 전송금으로 출산비, 산후조리원비용, 아기 옷이나 예방접종비 등을 계획했다. 병원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힘들게 자연분만하던 아내가 드디어 첫 아기를 보았다.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산모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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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1>

간호사 : 축하해요. 잘생기고 멋진 왕자님이 태어났어요.

아내 : (남편을 향하여) 오빠! 큰일 났어요. 우리 아이 특목고에 명문대를 가지 못하면 삼성에 취직못해 평생 고생하고 솔로로 살 것 같에요. 군대 가서 사고사 당할까 무서워요.


<상황2>

간호사 : 축하해요. 이쁘고 귀여운 공주님이 태어났어요.

아내 : (남편을 향하여) 오빠! 큰일 났어요. 우리 아이 길가다가 낯선 남자에게 성폭행당하고, 살해당하면 어쩌죠.


(소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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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읽어본 괜찮은 서적으로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가 있었다. 마녀사냥을 두고 페미니즘 운동가이면서도 노동운동가인 그녀가 저술한 마녀사냥은 여러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마녀사냥은 결국 권력자드이 자신의 권력을 누리기 위해 장치적으로 태어난 현상이다. 과거의 마녀사냥은 용인되어도 지금은 법이 있기에 사법처리된다. 이번 일도 비슷한 사회구조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마음에 드는 이유는 마녀사냥 희생자가 여성도 있지만, 그 여성 중 특히 중년이나 노년의 여성의 희생을 잘 보여준다.


책에서 권력자의 횡포나 전쟁의 상처는 젊은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게 만들고, 그것을 목격하는 살아남은 여성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역사가가 된다.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사건은 언제나 그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부조리에 의해 계속 재생산되어 새롭게 보여질 뿐이다. 신해철의 유고에서 이런 식의 문구가 생각난다. "여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살기에 진짜 X같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남자도 X같다." 여자들이 진짜 X같이 힘든 것은 인정하지만, 남자도 역시 X같은 일들이 많다는 점이다. 단지 여자들에게 더 많은 X같은 피해가 많을 뿐이다.


미국의 저명한 페미니즘 학자 매릴린 옐롬의 <유방의 역사>를 읽다보면 여러모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적 문화를 알 수 있다. 그런다고 그 교수가 남자와의 투쟁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남자와의 이성과 사회적 관계로서 대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남녀가 결혼을 하든지 말든지는 개인의 권리이나, 하지만 사회의 재생산성을 생각한다면 계속 자녀는 필요하다(그분은 자녀가 4명이나 있으니 언행일치).


어디 갈 때 버스와 지하철 타려면 운전기사가 필요하고, 그것을 수리하는 정비사가 필요하다. 어디 가서 커피 한잔 마실 때 응대해주는 종업원이 필요하고, 그것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이번 사건을 두고 미래의 우리사회를 위한 대안으로 가는 것을 원하나, 현실적 문제해결은 필요하다. 그런데 피해의식만 무장하여 외치기만 한다면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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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5-24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의 꽁트 ; 어느 산부인과에서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 아니고,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상황 같은데요.

만화애니비평 2016-05-24 11:46   좋아요 0 | URL
이미 현실은 일어나고 있죠. 요새 산부인과에서 만나는 아기의 집안끼리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으니 말이죠.

이번 사건에 다른 추모글보다
자기집 딸 2명을 둔 어느 아버지의 추모글이 짠하고 다가오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진짜 어찌 해야 합니까. 이래도 지옥 저래도 지옥.

만화애니비평 2016-05-24 16:06   좋아요 0 | URL
헬조선인데..
문제는 근본원인을 찾는 것을 계속 놓치고
남혐여혐 서로 가지고 노는 것이죠.

전에 아는 동생과 김치녀 이야기하면서
김치녀를 만드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잘 먹고 잘 사고 남의 입장 따위 개나 주라는
그런 남자들이 만든 것이라 이야기했죠.

솔직히 딸 가진 주변사람 보면 대부분

내 딸은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 보낼거야
이런 마인드부터 시작하니...참...헬헬헬헬..

마립간 2016-05-25 07:56   좋아요 0 | URL
여성들이 `내 딸은 (또는 나는)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 보낼거야 (갈꺼야)`등의 마이드로 남성 중심 가부장제 사회의 형성에 여성들이 기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싫은 것이죠.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