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이 오는 때가 영영히 도달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내가 정원에 있다는 걸 안다,
시간의 정원.
모든 나뭇잎은 황금색에 접어 흩날리고, 사과들은 시들어서 떨어지는법 없이 붉게 물들어만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조금은 침착해져서, 곧 다가올 순간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빨간 사과를 손에 든채로 아삭아삭한 사과의 맛을 즐기면서.
그리고 그렇게 서 있다보면, 주변의 감나무나, 귤나무에 매달려서 기다리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보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의 정원에서는 침묵이 법칙이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나눠본 적이 없다.
때론 예쁜 여자아이들도 보이고,, 내 또래 친구들도 많이 보이던데 말이지. 아쉬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된 시절까지 계속 지속되어 오는 이 시간이 있기에 난 서두르지 않는다.
사과라도 따먹다 보면 그 시간이 다가오겠지. 시간의 정원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길고 , 지루하지만 이 시간을 지나와야 과연 인생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니? 앙? 꼬마야.
너, 또 사과나무 밑에서 사과나 따먹고 있으면 내가 너네 엄마한테 혼난다고.
그렇게 잘났는데, 어째서 사과나무 지기같은 거 하느냐고 물으면...
그거야 여기가 내 시간의 정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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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울면 사람들은 나를 지게에 지고 산봉우리에 올려놓았다. 나는 붓에 바늘을 꿰어 하늘을 향해 던져 올렸다. 용의 그 커단 몸에 붓이 휙 하고 지나갈 때마다 비늘에 실이 꿰였다.
붓이 지나갈 때마다 몸에 붓자국이 생기고 그 붓자국마다 조그마한 실들과 바늘구멍이 생겼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흰 종이를 꺼내어 용을 그리기 시작했다.
용의 몸을 그릴 때마다 몸에 묻힌 실자국들이 그대로 찍혀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신필, 혹은 용사냥꾼이라 불렀다.
그렇게 실자국이 다 묻혀 나오면 그림에 손을 갖다대고 슬슬 문지르면 실이술술 뽑혀나오면서 용의 비늘이 하나하나 떨어져나왔다.
용의 비늘이 다 떨어지면 그 다음은 뿔이 떨어져 나온다. 비늘과 뿔이 다 떨어져나온 용이야, 이무기에 불과하니 그 다음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문제였다.
나는 그렇게 다시 지게에 짊어져져서 내려와 마을을 내려온다.
이번 용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긴 신필이 그려서 올리고, 신필이 잡는 용이니 오죽 만족스럽겠냐만은. 언젠가 한번은 화룡점정해서 잡히지 않을 용을 그리고 싶은 것이 화가의 마음이니까.
그게 밥벌이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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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윤승아의 데뷔때 다시 그 소년이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길원택은 이빨을 갈았다. 왜 하필 저 녀석이 또 나타났지?
아니 하다못해 그때 그 수술비라도 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버지였잖아.
근데 왜 졸라서 그때 그 수술을 제때 시키지 못해서 저 여자애 아버질 죽게 만들었어?
하필이면, 어째서, 왜!
그것은 순수히 윤승아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 수술비를 자신이 대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별다른 큰 어려움 없이 음악계에 진출했을 것이다.
그리고, 승아도 아버지를 잃지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그 아버지라는 작자를 설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 소년은 그저 잠깐 소꼽동무만 잃었을 뿐이었다. 길원택은 그래서 조금 수를 쓰기로 했다.
그 소년이 예매한 공연에서는 샹들리에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건 철두철미하게 오페라의 유령을 패러디한 공연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앉은 자리에 바로 그 샹들리에가 있었다.
실제 대표는 크게 반대했지만 길원택의 계속되는 설득에는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공연 당일, 소년이 있던 자리로 샹들리에가 떨어져내렸다.

7.

샹들리에가 떨어진 그 순간, 윤승아가 무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길원택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윤승아를 막고, 그대로 소년을 밀치고 샹들리에를 얼굴로 막았다.
뜨거운 조명이 얼굴을 지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윤승아를 꼭 안고 중얼거렸다.

 

"나는 널 꼭 지키고 싶다..."

 

이 사건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남겨, 팬들에게서 길원택, 윤승아 이쁜 사랑 하세요. 라던가, 결혼해! 길윤. 이라는 패러디를 남기기도 했다.

길원택은 아직까지는 가수로서도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얼굴을 다쳤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그대로 가수활동을 접었다.

하지만 대신에 그에게는 윤승아라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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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갔다. 하필이면 어째서 자신이 의사를 그만두려는 시점에서 이 소녀의 아버지는 돈이 떨어져버린 걸까.

 

"무슨 소리냐. 의사를 그만두겠다니."

 

"......"

 

"음악이 제 천성인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의사는 안되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때까지 잘 다녀와놓고서는!"

 

"하지만..."

 

"안돼!"

 

아버지는 그대로 쓰러졌다. 용서받지 못했다. 허락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길원택은 그대로 집을 나와 작업실을 꾸렸다. 양방언계는 아니었다. 업계에서 짝퉁을 허용해줄리도 만무했고, 양방언이나 류이치 사카모토같은 사람이 두번 나올 정도로 업계가 호황인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양방언이건 류이치 사카모토건 처음부터 자기 세계를 추구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길원택은 그대로 가요계로 향했다.

 

4.

 

소녀의 아버지는 익명의 독지가가 보낸 돈으로 심장수슬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이 너무 늦었던 탓으로 아버지는 그대로 죽고 말았다. 소녀는 소녀의 친구의 아버지에 의해서 다른 사람의 양녀로 들어갔다. 물론 소녀의 양부는 친절하고 양심적이었다. 더더군다나 그도 건강이 좋지 않아 소녀가 18살이 되던 해에 사망하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소녀에게 갈 곳은 마땅하지 않았다. 얼굴이 아름답고 목소리가 아름답기 때문에 성악대를 지망할 예정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장학금으로 갈만큼 소녀의 목소리는 성량이 풍부하진 않았다. 더더군다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방도도 없었다.
그렇다면? 얼굴, 몸매, 노래가 다 받쳐주니 가수를 해보자.
과연 가수가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건가 싶지만 그녀에게는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를 꾸준히 레슨해주던 정체모를 선생님이 그녀에게 길 그룹이라는곳으로 가보라고 해주었던 것이다.

 

"거기 가면 넌 대스타야!"

 

5.

길원택의 길은 처음부터 순탄하진 않았다. 몰래 지켜보고 있던 소녀의 아버지 수술비가 없다는 말에 우선 가지고 있던 작업실을 팔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탐욕스럽게 지켜보던 조폭의 모 대표에게 몇년간의 계약서를 쓰고 바지사장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밑에 수많은 재능없는 아이들을 가수로 키워내고, 그 아이들이 정치가나 영향력있는 사람 옆에서 기생노릇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 어느 아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돈이 들어가면, 이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눈은 탁해져갔고, 돈이 벌리기는 할 지언정 진정한 스타로서의 아우라는 점점 잃어갔다.

 

"다 똑같다..."

 

그렇게 점점 의욕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동안 조심스럽게나마 끈을 연결해두었던 소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넌들 오죽하겠니 싶었는데, 이 아이가 4차원인걸까? 눈매 하나 안 상하고 싱싱하기 그지 없었다.
레슨 선생이 호들갑을 떨면서

"그 앤 진짜라니까요. 간만에 보석을 주워왔네요. 길선생." 할만했다.

길원택은 그래서 다시 음악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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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카모토 키요시는 들고온 노트북으로 그녀의 옛 DVD를 틀었다. 그녀가 마치 크리스틴처럼 복장을 한 채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이었다.

 

[당신의 음성.]

 

그녀의  음성을 한숨처럼, 마치 깃털을 떠받들듯이 그가 따라불렀다.

 

[당신의 음성.]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그녀의 곡 모두는 자신이 키를 낮춰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곡들이었다.

 

[날 움직이게 해. 날 다시 살게 만들어줘.]

 

[날 움직이게 해. 또 다시 불러줘. 내게.]

 

단지 가사만 조금씩 바꿔서. 뮤지컬의 넘버처럼.

 

[날 멈추게 하지 마. 그대로 불러줘.]

 

길원택이 꺽꺽 거리면서 다시 대꾸했다.

 

[날 멈추게 하지마. 이대로 멈추게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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