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장이 길원택을 부른 건 1시간 뒤였다.

 

"유선생이 입원했어. 급한 김에 유선생이 맡던 애들 좀 맡아줘. 요즘 주가 떨어진 승아보다 애네들이 낫거든. 메인으로 올리게 신경 좀 써 줘봐."

 

너때문에 윤승아 인기가 떨어졌어.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길원택과 윤승아가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고는 해도 딱 한장면 뿐이다.
특히나 얼굴까지 다친 가수와의 연애는 깜짝 소재로는 쓸 수 있어도 아이돌을 제대로 키우는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특히나 조유나는 내가 미는 애야. 이번에 유선생이 지도를 잘 해서 대작 뮤지컬에 주인공으로 선정되다시피 했거든? 윤승아도 거기 참가했다지만 아무래도 밀리..."

 

"윤승아를 보내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사장인 내 선에서 결정된 건데."

 

"무슨 일이 있어도 승아가 그 뮤지컬에 나갈 겁니다."

 

"야! 길원택!"

 

"......"

 

"음악밖에 모르는 널 이만큼 키운 게 누군데,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

 

"윤승아를 그 뮤지컬에 보내건 말건 이미 결정된 거니까 억지 부리지 말고 유나나 잘 챙겨줘.
너도 프로니까 사감없이 레슨을 시킬 수 있는 거 아냐."

 

"알겠습니다."

 

길원택은 그렇게 말한 후 천천히 자기 레슨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중간에 조유나를 만났다.

 

"어머, 이번에 레슨 선생이 바뀌었다더니. 저, 뮤지컬 나가는 거 잘 부탁드려요."

 

"......"

 

길원택은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딱 한마디 했다.

 

"넌 못 나가."

 

"네?"

 

"못 나간다고."

 

그리고는 가타부타 더 할 말도 없다는 듯이 길원택은 나가버렸다.

 

"뭐야. 저 또라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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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커플이 되면서 윤승아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졌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가 몰인정하고 어이 없는 어린애라고들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구해달라고 한 적도 없고, 하필이면 그 샹들리에가 중우씨 자리에 떨어진 것 부터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진중우는 이 사고로 인해서 형에게 한동안 보디가드를 꼭 붙이고 다니고, 아니면 아예 출입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윤승아는...

 

"넌 음이 깨끗하지가 못해. 요즘은 아이돌만 해가지고는 먹고 못 산다고. 이번에 새로 올라갈 뮤지컬의 주역으로 올라갈 준비를 해. 연습하라고."

 

길원택에게 달달한 연애과정을 거치기 보다는 가수대 가수로 일대일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고, 괴롭히는것처럼 레슨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곡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고,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럴수록 윤승아는 진중우가 언제 공연에 올 것인지, 또 집에 갇혀 있는지만 궁금해했다.

 

9.

 

"길선생 성공했네요."

 

혹독한 레슨을 본 다른 선생이 길원택에게 시비붙이듯 했다.

 

"품속에 그렇게 오다싸고 있으니  어떻게 돌아가는지나 알아? 당신네 공주님이 맨날 당신 눈치만 본다잖수. 연애야 아이돌이니까 본래 못 한다지만 애초에 자기 여자로 도장이나  찍고 말야. 그것도 사고를 위장해서 말이지."

 

그 말에  상한 얼굴을 그쪽으로 돌린 길원택은 다짜고짜 말도 없이 선생의 멱살을 잡았다.

 

"뭔 소리야."

 

"내가 모르는 줄 알아. 진중우씨 의자에 샹들리에 떨어지게 만들어놨잖아!"

 

길원택이 살짝 입가를 올렸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거 범죄라고."

 

"난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어. 예를 들어볼까? 지금 네 목 잡았으니까 그대로 넥타이로 목을 죄는 거 못할 거 같아?"

 

그리고 진짜로 길원택은 그의 목을 졸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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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십일홍의 경제학
 

미디어에 따르면 여자는 25세가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기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신체도 나이를 먹고, 정신은 더더욱 노화되어 간다. 결혼 적령기를 운운할 때가 이맘 때이고, 그 시기가 더 지나가면 어느새 폐품이라는 소리까지 듣기 마련이다. 아, 요즘은 듣기 좋게 골드미스라고도 불러주던가?
아서라. 그건 돈 있는 사람한테나 하는 소리일 뿐이다.
그나마도 서른 넘어 사십에 이르면 그 박대의 정도는 심해져서 어느 책의 저자에 따르면 유목사회에서는 오히려 지참금을 두둑히 받아도 신부로 맞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거 이거 나이에 대한 핍박이 이 정도면 최악이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 들어보았나 모르겠다. 25세때 너무 아름답고 지혜로웠던 여왕이 점점 나이들면서 늙어가는게 억울해지자 그 나이보다 더 어린, 아마 16살이었던 것 같다. 소녀와 몸을 바꾸고 신분을 바꿔서 살아가는 이야기. 근데 애는 애대로 이빨아파, 머리 아파, 세상 돌아가는 거 모르겠어! 타령이고 여왕은 주름진 얼굴이나 갈수록 빠져가는 머리카락이 아쉬울 지언정 그걸 장식하던 보석이 그리워진거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는 다시 바꾸는데 여왕이 말한다.

"아, 25세만 되었어도 바꾸지 않았을 것을!"

글쎄. 25세 이야기,뻥 아니냐고?
어디 가서 물어보라고,

-------------------------------------------------------------------------------2005년 25세인 나, 소주란은 한숨을 쉬면서 한손에는 졸업증명서를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이 포즈, 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졸업앨범에 사진이 있다고 설명해도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느네 사촌 언니 졸업했을 때 얼빠지게 앨범사진 안 찍은 것도 모르니?"

 

알지. 사촌 언니 말에 의하면 그날따라 시험이  2개나 있어서 다 치고나니 기운이 빠져서 한잠 자려던게 그만...이었다니까.
얼이 빠지긴 빠졌던 모양이다. 잠을 잤으니까. 그냥 잠만 잤던가? 졸다가  졸다가 소화전에 얼굴이 부딪혀서 얼굴이 깨졌으니 어머니 말 뒤에 숨겨진 말의 의미는 알만한 것이었다.

 

"엄마는. 이제 그만 사진 찍자. 허리도 아프고 돈도 너무 많이 들어."

 

"안돼. 더 이쁘게 나온 걸로 골라야 된다. 적어도 아양이보다는 이쁘게 나와야지."

 

왜 엄마는 딸보다 겨우 4살 많은 조카에게 그렇게 경쟁심을 갖는 걸까?
4살 차이니까 물론 같은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시기심이 들기도 하겠지만.

 

"엄마. 누가 내 얼굴이 아양이 언니보다 못 하다고 그래?"

 

"그럼 그 세숫대야는 도대체 누가 데려간거라니. 걘 그 사고 난 후에 성형수술해서 찍은 사진이라..."

 

이 시대의 모든 여성들이 한번은 지나간다는 시험대. 성형 수술.
물론 나도 조금 손을 보긴 했다. 아직 틀이 덜 잡혀서 그렇지 나름 깨끗하게 된 편이라고 자부도 하는 편이고.

 

"엄마는..."

 

"이제 25살. 한참 꾸며서 시장 나가야 될때지. 이때 아니면 누가 데려간대니."

 

아양이 언니가 재벌 3세급과 결혼한 건 전 캠퍼스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더 놀라운 것은 아양이 언니가 그렇게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었는데다가 신랑도 마찬가지였다는데 있었다.

 

"개구리같이 생겨서들...."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어머니가 입을 오므렸다.

 

"이런."

 

엄마가 말을 하기가 무섭게 길바닥에 개구리 한떼가 개굴개굴 거리면서 뛰어간다. 철 모르는 개구리가 그저 얼어죽지만 말아야 될텐데.

 

"개구리네..."

 

그 말에 뒤에 있던 한껏 치장을 한 대학원 졸업생들이 질겁을 한다.
-------------------------------------------------------------------------------
아양이 언니 이야기를 다시 들은 건 훨씬 뒤의 이야기였다.
내가 졸업한 게 2005년도. 그리고 지금은 2015년도니까. 정확하게 언니 나이 40세.
근데 사람들 말에 의하면 졸업때만 해도 개구리같이 피부가 늘어지고 주글주글해서 화장을 아무리 예쁘게 해도 50대는 되어 보였다고 했다, 최근에는 마치 25세처럼 아름다워졌다고...남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돈을 얼마나 퍼썼으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는 덜컥덜컥 국을 소리나게 펐다. 아버지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양이가 그렇게 싫나? 당신?"

 

"...싫긴."

 

말이야 맞는 말이지. 언니가 엄마한테 잘못한게 뭐가 있다고. 시집 잘 간 덕분에 놀러올때마다 비싼 선물이야, 덕담이야 입에 한금 물고 오는 사람한테.

 

"그냥 어처구니 없어서 그래요. 걔 나이가 벌써 40줄인데 다시 25살. 말이나 되는 소리에요? 피부과에 돈을 얼마나 퍼나르면..."

 

"여보!"

"엄마!"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다시 취업준비를 하러 대학 도서관을 가는데,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전에 언니가 얼굴을 갈아버렸다는 호수전 거기에 한 아름다운 소녀가 서 있었다.

 

"......"

 

"너, 사지 않을래?"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 눈동자는 까맣고 반들거리고, 입술은 마치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붉다. 속눈썹은 자연스럽게 내려와있고, 풍성하기그지없었다.
마치 어린 시절 아양이 언니 같은 얼굴이었다.

 

"미성년성매매는 불법이야."

 

"내 나이는 이제 25살인걸."

 

내말에 소녀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소화전에 얼굴을 갈아붙인 후 변하면 아무도 모를거야. 대신 넌 나한테 안정된 자리를 줘야해. 돈같은거."

 

"얼마면 되는데?"

 

"글쎄...얼마나 될까. 너 혹시 졸업 앨범 찍었니?"

 

"응."

 

"그럼 안되지."

 

소녀가 빙긋 웃었다.

 

"재벌이랑 결혼해서 그 돈을 나한테 다 줄 거 아니면 안되고 말고..."

 

소녀는 소화전에서 뛰어내렸다.

 

"요즘은 선불이 아니라 후불인데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네...별 수 없지. 빈익빈 부익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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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탑으로 함께 떠나요.
환상의 그 탑으로.
황혼이 영원히 머무는 황혼의 궁전이 마주 보이는 그곳에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타고 나와 그대와
마법의 램프를 피워요.
램프 끝에서 연기 피어나면 콜록거리면서
소원을 빌어봐요,

 

 

저 먼 바다로 가봐요.
먼 바다 저 끝 바다의 손길이 올려놓은 창백한 동상위로 올라가봐요.
마녀가 빚어놓은 저 마신을 타고 저 하늘 끝까지 가봐요.

 

 

램프의 불빛이 꺼지면 그리고 우리 다시
우리의 궁전으로 돌아와요.
그리울거라 생각하지 말아요.

나이가 들면 떠나야 하고, 떠나면 다시 되돌아와야 하니까요.

 

나와 그대, 여행을 떠나야 해요.
그리고 다시 돌아와요. 꼭 이곳 아니더라도 둘이 있을 곳으로

우리의 궁전으로
다시 돌아와요.
우리 둘만의 새로운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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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이 오는 때가 영영히 도달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내가 정원에 있다는 걸 안다,
시간의 정원.
모든 나뭇잎은 황금색에 접어 흩날리고, 사과들은 시들어서 떨어지는법 없이 붉게 물들어만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조금은 침착해져서, 곧 다가올 순간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빨간 사과를 손에 든채로 아삭아삭한 사과의 맛을 즐기면서.
그리고 그렇게 서 있다보면, 주변의 감나무나, 귤나무에 매달려서 기다리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보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의 정원에서는 침묵이 법칙이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나눠본 적이 없다.
때론 예쁜 여자아이들도 보이고,, 내 또래 친구들도 많이 보이던데 말이지. 아쉬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된 시절까지 계속 지속되어 오는 이 시간이 있기에 난 서두르지 않는다.
사과라도 따먹다 보면 그 시간이 다가오겠지. 시간의 정원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길고 , 지루하지만 이 시간을 지나와야 과연 인생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니? 앙? 꼬마야.
너, 또 사과나무 밑에서 사과나 따먹고 있으면 내가 너네 엄마한테 혼난다고.
그렇게 잘났는데, 어째서 사과나무 지기같은 거 하느냐고 물으면...
그거야 여기가 내 시간의 정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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