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누각에 올라

옛 여인들의 웃음자욱을 쫓는다.

간드러지고 방울이 울리는 듯한 소리

수면위를 스치는 학의 발끝과도 같이

 

남아의 가슴에 살짝 자국 내고

도망가는 그이들의 웃음소리는

지금도 먼 풍경마냥 울려온다,

 

수면 위를 휘도는 그 눈매와 입매가

아련하고

제각각의 곷인양

화려한 그 모습이

다시 피어나

 

누각을 거닐 새

그대들의 모습, 나무인 듯 돌인 듯하니

어찌 그리워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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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백' 샀어.

그 말에 뒤돌아봤지.

친구네 얼굴이 아니라

그 가방을.

 

내것도 네것도 명품백

고급백 3초백

다들 같은 가방

 

그거 갖고 싶어서 계를 들었지.

정말 가지려면 계같은 걸 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별 거 아냐.

다들 들고 다니잖아.

근데 그게 내 몸값보다 더 비싸.

 

어쨌든 좋아. 

널 사줄테니

날 더 비싼 인간으로 만들어줘.

 

하지만

유행이 끝나면 어떡하지?

감당할 돈이 없어도

다른 인간에게 밀리기 싫어.

 

결국은 또 다시 시작하겠지.

내것도 네것도 다 명품백

다들 같은 가방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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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를 썼지만, 사실은 저도 가방 좋은 거 좋아합니다.

책 들고 다니기에 좋은 큰 가방 애호자지만...

간만에 제가 가방에 투자할 수 있는 가장 큰 돈(그래봤자 중저가 브랜드지만.)을 투자하고

제 가방을 봤더니.

다들 비싼 가방에 열광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었죠.

저도 속물인가 봅니다.

물론 제 가방은 국산 브랜듭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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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달란트>

 

옛날에 한 부유하고 강한 사람이 있어, 왕자리를 얻기 위해 잠시 집을 떠나 있기로 했다.

그는 세 명의 신뢰하는 종들을 불러서 자신의 재산을 맡겼다.

필요한 경비를 제외한 돈을 3분하여 한명당 각각의 돈을 맡겼는데, 돌아와보니 한 종만이 그 돈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심은데서 거두지 않는 악하고 강한 사람이라서 내가 그 돈을 그대로 땅에 묻어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달란트이옵니다.-

 

그 사람은 그 종을 당장 내쫓아버렸고,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왕이 된 그 사람의 땅은 아무것도 그에게 주지 않았고. 종은 그대로 슬퍼하면서 이 땅 저 땅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성경책을 읽다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기다린지 30분이 넘었는데도 그는 도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톡으로 재촉한지도 벌써 1시간이 넘었다. 도대체 어째서 이 남자는 돈을 갚으라고 재촉할때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 알면서도 재촉하는 내가 미웠다.

항상 이런식이다. 빌려주고, 갚지 않고, 거기다가 또 빌리고, 또 갚지 않고...

내가 잘못이다. 단지 그 외모에 혹해서 다른 친구에게 과시용으로 사귀기 시작했으니까.

나이 서른 넘은 여자가 여자들의 무대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첫째 외모가 빼어나거가, 남편이 잘났거나, 명품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나는 경제관념이 투철한 터라 고등학생 시절부터 상당한 돈을 모았기 때문에 남들이 지금은 손 벌벌 떨어가면서 산다는 명품을 여러개 가질 수 있었다. 빼어난 외모?

나에게 그건 없지만 여자들에게는 한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남자. 자신의 옆에 있는 남편이 성공의 잣대인 것이다. 처음에는 열등감이 좀 들었다. 내가 나 스스로가 뛰어난 인재지만, 남편이란 존재는 없으니까 이 나이 먹도록 싱글이면 그런 면에서 모두가 다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기 마련이다.

 

직업이 모델이라고 했던가.

부족한 외모와 잘난 남편을 둔 친구들이 명품 개수를 늘리는 동안에 느낀 열등감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던걸까.

어느날 무척 취해서 부킹을 한 나는 그 날 취기가 몽땅 다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정말 마술이 빚어낸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남자가 거기 있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듯한 외모, 갈색 피부에 옅은 금색으로 염색한 그 남자는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여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내 취향은 좀더 남성적인 형이지만, 사실 옆에 끼고 다니기에는 이런 외모가 적당했다.

그날 나는 빠르게 그 남자에게 접근했고, 서로 명함을 주고 받은지 2주도 안되어서 사귀기 시작했다.

 

[아직도 멀었어?]

 

카톡으로 다시 재촉한다.

 

[으응. 이제 막 일어났어. 자기야.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 , 어디라고 했더라?]

 

왜 이제와서 성경책을 읽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공식적으로 교회를 안 다닌지 10년이 넘었고, 교회가 말하는 달콤한 진리. 영생을 포기한지도 꽤 되었는데. 물론 영생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불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미란다 커 카페.빨리 와. 그리고 일어났단 이야기는 1시간 전에도 했잖아. 빨리 와.]

 

사채까지 하고 있는 내가 이제와서 다시 교회로 돌아간다고?

사업은 흥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도 있다. 부족할 것이 없는 삶.

? 지금 이 남자에게 뿌리고 있는 돈이란 것도 사실 많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사귀고 있는 남자는 이 남자만은 아니었다.

외모가 빼어난 건 사실이지만, 인간이 빚어낸 것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것이 필요하다.

해결사라던가, 아니면 같은 사업의 입장에 있는 남자라던가.

그래서 총 3명이었다. 물론 나머지 2명은 애인의 입장까지 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자기야, 지금 막 샤워했다. 사진 보내줄게. 기다리는 동안 보고 있어.]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오기나 해.]

 

 

사채를 하는데는 자본금이 많이 든다. 그리고 돈을 제대로 갚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요구도 해야 하는 것이 이 사업이다.

그래서 나는 철없는 동기들 몇 명을 그대로 절망에 빠뜨리기도 했다. 사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 아이들은 모두 남편 자랑을 하면서 은근히 날 조롱했던 아이들이었다.

물론 나는 그에 대한 철저한 복수를 시행했고, 그 아이들은 내가 주는 돈으로 명품에 명품을 사모으거나 남편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주식투자를 하다가 집안이 망해버리거나 했다.

 

[자기야, 난 지금 가방 들었다. 카페까지 가는데 한 30분쯤 걸릴 거야.]

 

[그래.]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데 있다. 정부는 사채에 대해서 강경하게 나오고 있고, 어느 단체에서는 사채를 막자는 운동까지 벌이고 있었다.

사채는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양지에서 운동까지 벌어지면 목이 좁아지고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직적인 사채를 막자는 운동이 오히려 어둠에서 작은힘을 행사하고 있는 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30분 정도라면 기다릴 수 있다.

나는 다시 성경책으로 눈을 돌렸다. 사채를 쓰던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받아낸 채색본 성경책이다. 고상한 취향이었던 듯, 목판화로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 있다.

한구절이 계속 눈에 밟혔다.

나는 이 남자친구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과는 달리 저리로 돈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사채의 특징상 어차피 은행이자보다는 비싸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 남자는 그게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갚지 않고 있었다.

정부가 계속 사채에 대해서 강경세를 보인다면 이 정도 금액이 비는 것도 치명적일 수 있었다.

나도 다른 사채업자에게 최근 빚을 지고 있어서,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소액일수록 빨리 빨리 거둬들이고 이 사업을 접는 게 상수였다.

 

아쉽지만 여기서 끝이었다. 그 예쁜 인형같은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안타깝긴 했지만.

 

도착했어. 어디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펼쳐놨던 핸드폰을 들었다. 멍청하게도 핸드폰을 열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창가자리야. 어서와.”

 

밖에는 해결사 남자친구가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핸드폰을 들면 바로 들어올 수 있도록.

 

, 1주일만이네.”

 

해맑게 웃는 남자친구의 얼굴이 오늘따라 굉장히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게. 돈은 갖고 왔어?”

 

, ? 인간 유혜림이 변했네. 애인끼리 만났는데 대화가 고작 그거야?”

 

그는 말을 빙빙 돌렸다.

그렇게 말을 돌리고 돌리는데 재주꾼이지. 항상 그래왔다.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원금이라도 갚아야지?”

 

, ?”

 

그는 천천히 어깨에 매고 온 가방을 내쪽으로 밀었다.

 

, 원금.”

 

이자는?”

 

원금만이라도 갚으라며.”

 

그는 되려 큰소리를 쳤다.

 

원금이야.”

 

.”

 

.”

 

그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이자는 왜 안 갚느냐고? 그거야, 너는 법정 이자율대로 안 받는 악독 고리대금업자니까 그렇지. 얼마 전에 내가 문의했더니 그런 돈은 원금만 갚아도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말 듣자마자 안 쓰고 모아놓았지. 우리 기왕 헤어지는데 좋게 좋게 헤어지자고.”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해결사 남자친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였다.

 

서로 동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남자친구를 향해서 카페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해결사 남자친구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 뒤에 또 앉아있던 체격 건장한 남자에게 붙들렸다.

 

유혜림씨 되십니까? 서로 동행해주지요.”

 

나는 성경책을 떨어뜨렸다.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당신은 심지 않는 데서 거두는 악하고 강한 주인이기에, 나는 당신의 달란트를 묻어놓았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달란트이옵니다.]

 

그 말이 맞았다. 원금만 남기고 그 종은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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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는 호기심뿐>

 

어떤 남자가 있었어. 혹시 그 남자를 당신도 알지 모르니까 우선은 u라고 부를게.

, 전 남친 이야기 나온다고 기분 상해할 건 없어. 난 당신하고 사귈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이야기하는 거야.

내 나이가 몇인 것 같아? 아니, 뭐 억지로 호감 살 생각으로 젊어보인다고 하지는 마.

그냥 게임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야기도 나중에 하지 뭐.

내 애인으로 장장 10개월을 있었던 남자인데 결국은 헤어졌어.

그래도 기억에는 남더라고. 하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차였으니까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잖아.

 

이거 좀 써주지 않을래?”

 

그 남자는 고양이 귀를 양손에 들고 있었어. 왜 알지? 코스프레 카페같은데 가면 달고 있는 거 말야.

 

싫은데.”

 

좀 써봐.”

 

설마하니 그런 쪽으로 변태 끼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지 뭐야. 하긴 쑥맥으로 굴때부터 알아봤지. 좀 신선해서 데리고 있었더니 별 희한한 성격이더라고.

뭐라더라. 네코미미 뭐라나?

 

써주지 않으면 너랑 헤어지겠어.”

 

그래. 솔직히 고백할게. 신선해서 데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쑥맥이어서 나랑 결혼해줄줄 알았으니 그게 문제였지. 내가 한 3초 정도 고민하고 있으니까 이내 저런 말을 하더라고. 말이나 되는 이야기야?

 

너 그런 것 때문에 나랑 사귄 거야?”

 

“......”

 

말도 안하고 나가버리더라.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중에 문자 온 걸 보니까 그게 딱 어울리는 여자같아서 일부러 접근했다잖아. 세상에!

사랑보다는 호기심이었다나.

내가 벽에 머리를 얼마나 박았던지! 내 눈이 삐었던거야.

 

하여간 그 유 뭐시기는 얼마 뒤에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결혼식장에 네코미민지 뭔지를 달고 결혼식을 하겠다는 여자를 만나서 결혼했어. 그 변태. 청첩장에도 고양이 귀를 붙여놨더라. 세상에.

그래서 내 연애시대 중 가장 긴 시간을 차지했던 연애는 끝났어.

그 뒤에는 뭐,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 신중해지려고 했지만...

처음에는 8개월, 6개월, 3개월...그러다가 한달, 그리고 이틀에 끝나는 일도 생겼지.

너무 자세히 쳐다보진 마. 잔주름까지 보이려니 부끄럽잖아.

뭐 때문에 그런 건진 잘 모르겠지만, 굳이 정리한다면 요즘 세상에 나같은 여자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연애시장에서 승리하는 게 그렇게 쉽진 않다는 결론이 나왔지.

별론 건실한 남자들은 아니었어. 당신도 아마 마찬가지일걸?

나도 반성할 점은 있었지. 가볍게 보였던 거야. 아마도.

근데 왜 연애시장을 떠나질 못할까? 내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sm플레이를 즐기는 남자와 네코미미를 즐기는 남자나 그밖의 성취향이 특이한 남자들이 가끔 뽑기처럼 튀어나오는 그런 연애시장을?

글쎄. 그걸 뽑는 건 운이라지만 난 이렇게도 생각해.

사랑보다는 호기심뿐이라고.

호기심. 그게 오늘도 서로를 간택하는 연애시장의 진리인거지. 잘 들었지?

이젠 그만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구. 뱀파이어씨. 나도 꼬리를 말고 돌아갈테니 말이야.

평범한 이야기라고 항의하진 마. 어쩌겠어. 이게 다 연애인 것을.

사람이라는 걸 사랑하게 되면 당신같은 수컷이나 나같은 암컷이나 같은 거 아니겠어?

, 내 나이? 천백오십세. 그것도 20살 깎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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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는 호기심뿐. 은 소녀시대의 런 데빌 런 의 가사에서 따왔습니다.

사랑해요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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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독.

 

아이돌이 되겠어요.

 

 

 

아이독은 본래 아이돌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세상의 사람들은 항상 두 부류로 나뉜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거기서 더 나가면 아이돌이 되고 싶은 사람과 되지 않고 싶은 사람으로 나뉘는데...

아이독은 그러니까 아이돌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이돌이 되고 싶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나의 교생시절을 기억하고 찾아온 건 그러니까 1년전 이야기다. 나는 잘 팔리지 않는 가수였고, 그래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 선생의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물론 나는 지금도 잘 안팔리기 때문에 학교 선생 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아이독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하면서 놀래거나 아이독의 사인을 받아달라며 내 책상위에 수북히 쌓아두기도 한다.

 

아이독이 어쩌다가 아이돌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아이독은 시를 랩처럼 읽는 아이도 아니었고, 춤을 그렇다고 멋들어지게 추는 아이도 아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눈에 띄는 짓을 하는 대신 묘한 열정을 가지고 하나의 동작이 언어가 되게끔 하는 것, 그 점이 달랐다.

그래서 가끔 난 그 아이가 연필 깎는 것조차도 힘겨워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독이 어느 날 내게 춤을 보여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막춤이나 추겠지 싶었다.

그 아이는 무용과도 아니었고, 어떤 예술적 끼도 내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아이독의 하얀 팔이 교실 절반을 가로질러 내게 향했다. 실내화 대신 토슈즈를 신고 아이독은 하얀 공기를 갈랐다. 발끝이 빙글빙글 도는 동안 그 눈동장에는 안개 비슷한 것이 끼었다.

그 색소옅은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생각하는 순간, 아이독은 내 팔을 붙잡고 한발은 서고 한 발은 공중에 띄웠다. 마지막. 마지막이에요. 선생님. 좋아해요.

그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날의 일을 비밀에 붙였다.

 

 

그러다가 나는 그 학교를 떠났고 나이들어 같은 여교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내가 가끔 기타를 치거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순진한 여자였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독과는 달랐다. 아이독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 그것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야말로 안전, 평균에 상응하는 여인이랄까.

 

요즘 아이독의 기사를 자주 본다. 아이독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사랑스럽고, 사랑스럽다기보다는 한 시절의 아기처럼 달콤했다. 이 아이가 내가 그때 본 아이가 맞았을까?

토슈즈를 신고 마지막 피날레를 내 손을 잡고 하던 그 아이일까?

아이돌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다 혹은 그 시대의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뭔가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아이독의 눈동자에서도 과거의 그 점은 깨끗하게 씻겨나가고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젠 아이독도 대학생이 되어간다.

그녀가 아이돌이 되는데에는 가족들의 경제사정이 컸었다고 하는데 괜찮아지면 그만둘 생각이었을까? 그 눈빛이 되살아나는 건 언제쯤일까.

잠시나마 내 가슴을 떨리게 했던 아이독의 그 열정은...

아이돌이 물론 열정이 없어서 하는 길은 아닐 거다.

오히려 끼만큼이나 세상에 대해서 더 잘 알아가야 하는 길일수도 있다.

아이독을 언젠가 길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나는 만나면 늘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반가워하면서 사인을 요청했고, 그 무덤덤한 아이는 선글라스를 낀채로 팔에 진부할 정도로 다양한 팔찌를 흔들며 사인했다.

그리고 위악스럽게도 거기에 입맞춤을 했다. 진한 루즈가 도화지 가득 묻었다.

기자들이 와 소리를 내면서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었고, 아이들은 아이독과 내가 같이 서 있는 잡지를 사들고 와서 인증샷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나는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돌 비슷한 무언가는 항상 되고 싶었다.

아이독의 모습을 좋아하게 된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사랑한다. 나의 아이돌. 진정한 세계의 너로 언젠가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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