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나는 용안을 뵈었다. 근심이 어린 그 눈동자에는 한숨이 가득하였다.

패설사관의 대리를 하는 중이라 바쁘긴 했지만, 전하의 말씀을 어길 수는 없었다.

해안가의 어느 성에 바다 건너 나라의 종교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어느 신을 믿는 족속들이었는데 그들에게는 왕도 없고 백성도 없다고 했다.

전하는 내게 밀명을 내리시며 패설사관이 돌아오기 전까지 문제를 해결하라 하셨다.

존안에 나는 무릎을 꿇고 명을 받들었다.

 

-패설사관 대리 이준안-

 

 

그때의 기록이 정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이준안은 내가 없는 사이에 해안 성곽인 유랑안에 내려갔다가 참살되었다. 왕도 없고 백성도 없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자들이 왕의 신하를 죽였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만큼은 전하께 특별히 말씀드려서 검을 패용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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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경과보고 5

 

 

예전에 적오에 악사들이 사라지기 전, 적오는 물이 풍부하고 상업이 융성하던 도시였다.

물론 지금도 융성하고 있긴 하지만, 상업보다는 도박에 의존하는 정도가 더 커지고 있었다.

내가 아는 장안의 귀족들도 적오의 도박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가산을 탕진했다고들 했다.

나도 예전에 직급이 낮았을 때는 전국을 유리하고 다녔으니, 이곳에 대한 내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민중에서 내려오는 노래는 대체적으로 희망과 미래예언의 뜻을 담고 있는데, 노래가 현실이 일어난 한참뒤에 나온 노래라도 예언형식으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참요다.

장안국이 세워지기 전, 수많은 나라들이 생겨났고 합쳐지고 다시 갈라지는 상황속에서 참요는 실생활에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악사들이 아무리 많아도 적오에만큼은 참요가 뿌리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단 한번도.

 

그것은 지금 성주의 부친이 대에서 효시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온후한 제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 예언하는 노래는 나오지 않았다.

전대 적오가 죽으면서 현 적오가 대로 불러올려져 현 황제 체제에 대한 충실한 교육을 받고 내려간 것이 불과 8년전.

그에 대한 어떤 노래도 불리워지지 않았다. 다만, 악사들이 부르지 않는 대신, 죽임당할 이유가 없는 적오에 도박을 하러 갔던 이들이 부르는 노래만이 전해져 왔다.

요마가 깃들어 사람의 기를 빼앗는다는 목걸이와 적오의 영주들은 대대로 사람이 아니어서 아무리 목을 쳐도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악사들은 어느 누구도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좋은 소식인데 왜 찢으시는 겁니까.”

 

 

나는 담담하게 그녀에게 맞섰다.

 

적오는 대답대신 빙그레 웃었다.

 

 

“제가 이 지방에 내려온지 8년이 넘었답니다. 근데 이제 와서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러 올라오라고 한다면 이 지방은 누가 다스리지요? 오적에게 맡길까요? 그도 굉장히 바쁜 몸이랍니다.”

 

나는 그녀가 왜 황제의 공문을 찢었는지 생각했다. 단순한 반발행위는 아니다. 반발행위에 불과하다면 지금껏 왔던 신하들을 죽였을 리가 없다. 그렇다. 그건 살인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 목걸이가 정말로 그런 힘이 있는 걸까?

 

 

“하여간 오래 가둬놓을 수는 없으니 곧 풀어드리죠. 반가운 얼굴도 보여드릴 겸해서. 내일 잠깐만 묶여 있으세요.”

 

 

그렇게 그녀는 말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치듯이 지나가버렸다.

반란행위의 기초를 목격한 내게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반란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묶여 있었고, 다른 방법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아, 말 한마디 안했는데.”

 

 

다시 그녀가 돌아왔다. 오적의 모습을 한 채로. 그제서야 나는 회담때 만났던 것이 남자 오적이 아니라 진짜 적오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는것도 오래지는 않을 거에요. 첫째 왜 이 곳에는 노래가 울려퍼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전에 왔던 사신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여간 맞춰보도록 하세요. 시간을 죽이는데는 아주 좋은 질문들이죠.“

 


사건경과보고 6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말과는 달리 나는 한밤중에 푸대에 담겨 수로에 던져졌다.

푸대에는 쇠공이 매달려 있었고, 나는 수많은 모험 소설에 나오는 장군이 아니었기에 속절없이 강바닥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으려고 했을 때 그 푸대를 누가 잡고 흔드는 느낌이 났다.

숨이 거의 막히려는 순간, 그 누군가는 쇠공을 자르고 나를 꺼내주었다.

 

 

“수리!”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이 앞섰다.

 

 

“어떻게 된건가.”

 

 

“저야말로 여쭙고 싶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입니까.”

 

 

며칠전의 수리와 비교하면 인간이 좀 된 것 같았다. 이젠 더 이상 떨지도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같지도 않았다.

 

 

“자네가 날 꺼내줬나?”

 

 

“아니오? 저는 약간 찢어져 있는 푸대 사이로 사관님 얼굴이 보여서 다 찢어드린 것 뿐인데요.”

 

 

“누가 날 위로 끌어올렸는지 아나?”

 

 

“어머니가요.”

 

 

어머니? 장안국에서 물에서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인어.

인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젖먹이는 모습이 인간과 흡사해서 붙은 별명일 뿐이었다.

 

 

“어머니가 저도 끌어올려다주셨습니다. 그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패설사관으로 있으면서 단 한번도 내가 채록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련한 이야기일뿐, 전설일뿐. 날조된 기록일뿐.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어...가 말인가?”

 

 

“사람처럼 노래도 부른다더군요.”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전설에서 인어는 악사들의 어머니였다.

별로 좋은 의미의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전설에 따르면 인어는 본래 인간을 사랑해 결혼했다고 한다.

그 자식은 악사가 되었는데,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었던 인어는 지상을 떠나면서 악사들을 모두 자신의 자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노래부르는 사람은...앗!

 

 

“이제 알았다.”

 

 

나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신들이 공문을 전달하지 못했던 건 인어를 이용한 수법이었다.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인어는 그것이 어느 배건 가리지 않고 덮쳐서 노래를 부르는 인간들이나 그 외의 인간들까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이었다.

공문은 틀림없이 그녀의 손으로 들어갔었을 테고. 그녀는 풍부한 수공예품과 쏟아져들어오는 돈들을 이용해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네, 군에 있을 때 보직이 뭐였나?”

 

 

내 말에 수리가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은 개인적으로만 사용하지만 최근까지 전서구 담당이었습니다.”

 

 

“자네 비둘기도 배를 탔었나?”

 

 

“네.”

 

 

“그럼 부근에 있겠군.”

 

 

“아?”

 

 

“내가 부르는 걸 그대로 받아적어서 날려보내게.”

 

 

“알겠습니다.”

 

 

 

 

사건경과보고 7

 

 

 

전서구를 날려보내고 나서 나는 수리에게 물었다.

 

 

“혹시 전에 봤던 괴물 말인데...”

 

 

“예.”

 

 

수리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괴물에 대한 충격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동료의 죽음은 괴로운 모양이었다.

 

 

“혹시 삼켰다는 보석이 주황색 아니었나?”

 

 

“아닙니다.진홍색이었어요.

그 괴물이 영감님을 잡아먹고는 제 앞에서 영감님 모습으로 변했죠,,,그 보석을 먹고는...“

 

 

울분을 못 참는 표정이 된 수리를 보자 확신이 들었다.

이 성의 주인은 그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여자도 아닌지도 몰랐다.

패설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인간의 정기를 뽑아먹고 사는 요괴가 어떤 보석을 하나 손에 넣었다. 인간의 기를 빨아내거나 뱉어내는 보석으로 인간에게 먹이거나 목에 걸게 하거나, 역으로 요괴가 그것을 가지게 되면 원 인간의 능력과 외모를 가지게 된다.고...하지만 기존에 정해진 성별은 바꿀 수 없다.]

 

 

“전서구 이 동네에 남아있는 게 있다면 다 구해오게.”

 

 

난 수리의 등을 탁 쳤다.

 

 

“자네 덕분에 모든 게 풀렸어.이제 남은 건 진실을 알리는 것 뿐일세. 아무리 선정을 베풀어도, 지방재정을 융성하게 만들어도 올바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배자가 된 자는 자격이 없어. 그것이 인간이 아니기에 더욱! 거기서 더 나아가 옳은 방법이 아닌 폭력으로 지배하고 정복까지 하려는 것은!”

 

 

사건 경과 보고 8

 

 

그리하여 적은 진짜 적오가 되었다.

두 마리의 요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공문을 정식으로 전달받은 진짜 적오는 제후들의 제사에 참가해 황제를 배알하였다. 그는 더 이상 광기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주민들도 노래부르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

지금 적오는 평화로운 노랫소리로 가득하다.

이 이야기는 패설장에 한 줄 더 늘여서 기록한다.

후에 그들과 더 부딪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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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과번호 4

 

 

수금 타는 소년은 노래를 무척 잘 불렀다. 하지만 억양이라던가, 강세가 적오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평탄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소년에게 고향이 혹시 대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본래 대에서 자랐습니다.”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게 되었나.”

 

 

“대에서 악사가 되기 위해서 교육받던 중 동무를 잃었습니다. 그 뒤에 악사가 되길 포기하고 이길 저길 다니다보니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여기서 수금을 타지 않나?”

 

 

나의 순수한 호기심은 패설사관을 오래 지닌 것에 연유한다. 하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는 안 물어볼 걸 그랬다.

 

 

“도둑패인지 모르고 끼어들었다가 체포되었었지요. 그러다가 수금을 잘 탄다는 걸 안 성주가 제게 저분의 안위를 맡기셨습니다.”

 

 

“성주를 직접 만났단 말인가?”

 

 

연금된지 닷새가 넘는 동안 오적의 얼굴도 보지 못했고, 여성주가 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적오의 본래 법상 여성주에게도 통치권이 주어져 있다는데, 그동안 장원국에 편입되어 있다보니 경계가 좀 불분명해진 부분도 있는 모양이다.

 

“예. 머리가 새하얗고 긴 데다가 비녀를 하지 않고 머리를 땋아올렸습니다. 그걸 적오식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성주님은 이름이 따로 없으셔서 성이름을 따서 부른다고 합니다.”

 

 

“아하. 근데 왜 저 사람의 안위가 자네에게 달려 있는가?”

 

 

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귀공자는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괴물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참으십시오. 도련님!”

 

 

소년은 수금을 타면서 귀공자를 달랬다.

 

 

디링~

 

 

말 목을 닮은 수금 머리부터 끝까지 소년이 한번 쓸어내리자 귀공자는 격심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그아아아아아아아

 

 

“멈춰. 음악을 멈춰. 멈추지 않으면 네놈들 둘다 꼬치에 꿰어버릴테다.”

 

 

귀공자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길게 기른 손톱을 휘두르며 우리쪽으로 달겨들었다.

5보 정도의 거리였으니 그가 위해를 가하려고 했으면 충분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아, 또 내가 정신을 잃었었나?”

 

 

귀공자의 목에는 진홍색의 아름다운 보석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귀공자가 광기를 일으킬 때마다 그 목걸이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었다.

나는 그 목걸이가 예전 패설에 나온 목걸이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입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저것이 진정 패설에 등장하는 목걸이라면 사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었다.

 

 

“적님! 괜찮으십니까!”

 

 

문이 덜컹 열리면서 나를 가두라고 명했던 오적이 들어왔다.

 

 

“아, 괜찮...적오님은 어디 계시오?”

 

 

“...곧 오실겁니다.”

 

 

가짜 오적은 날 매섭게 노려보았다.

 

 

“엉뚱한 생각 마시오. 패설사관.”

 

 

“......”

 

 

나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 그. 목.걸.이. 라면?

이내 사락사락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오적과 닮은 여자가 들어왔다. 성주인 듯 했다.

머리를 땋아 올리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절도가 있고 품위가 있었다.

 

 

“패설사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웃는 적오는 한손에 내가 가지고 온 공문을 들고 있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셨군요.”

 

 

그리고 그녀는 한 손으로 그 비단 공문을 빡빡 찢어버렸다.

엄연한 황제에 대한 반발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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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과 번호 3

 


대의 부두에서 출발해 적오에 도착했지만 성주와의 접견은 금지되었다.

장원국의 예법상 여자는 성주는 될 수 있어도 사신과 직접 접견이 안되도록 되어 있는데, 적오도 한 지방이니만큼 그 정도 예법은 지키는 듯 싶었다.

이내 적오의 수하 중 하나라는 오적이 들어왔다. 상인회의 수장이자 수공예 공단의 감독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는 손가락에 굵은 옥반지를 끼고 머리는 비녀를 꽂아 고정하고 자주색 머리띠를 둘렀다.


 

“어서 오시지요.”


 

목소리는 아직도 변성기가 덜 지난듯 여자처럼 부드러웠다. 하지만 키는 후리후리하니 컸다.


 

“전하의 공문을 가져왔소.”


 

그 말에 오적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뭐 어떤 공문인지는 얼핏 봐도 알겠군요. 하지만 여성주를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어린 소녀에게 제사에 참례하란 말씀이십니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요.”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물에서 일어나는 일보다는 나을게요.”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때까지 그 공문은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그 내용을 아는 것이 첫째 수상하고, 둘째 지금까지 왔던 자들이 익사하면서 내용물을 잃었다면 적어도 한 개쯤은 발견했을텐데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고...”


 

“그건 우리가 그자들을 익사시켰단 말입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모함을!”


 

오적은 펄쩍 뛰면서 부인했다.


 

“수상한 건 당신입니다. 패설사관. 대에서 같이 온 선장 말에 의하면 괴물에게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말에 부인했다던데...수로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런 식으로 대했습니까? 당신은 우리의 수호신을 모독했습니다.”


 

“수호신? 그런 게 어디 있소. 엄연히 천자께서 살아계신데!”


 

“적오에서는 적오의 법이 지배합니다!”


 

오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하들에게 외쳤다.


 

“패설사관을 사신관에 연금시켜라. 성주께서 결정을 내리실 때까지 조금의 틈새도 보이지 말고 감금하라!”


 

이렇게 해서 나 미축은 수금을 타는 한 소년과 함께 사신관에 연금되고 말았다.

사신관에는 그 소년말고도 오적을 무척 닮은 한 청년이 침대에 누워 괴로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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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과 번호 2

 
 

장원국의 중심인 대에서 적오까지는 빠른 육로로는 14일, 배로는 약 8일이 걸린다.

이 서류도 배에서 꾸미고 있다. 수리는 그동안 충격에서 제법 헤어났는지 밝은 표정이지만 여전히 말을 걸면 괴물에 대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

나도 어지간해서는 수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동안 빠른 나룻배로 물을 건너다 비명횡사했다던 신하들의 전례를 밟지 않기 위해서 대에서 큰 배를 빌렸다. 느리고, 적오에 도착하면 모래톱에 걸리고 암초에 의한 난파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공문을 잃어버리고, 물에 빠져 죽어나갔다던 자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사관님 사관님!”

 
 

배가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는데 억지로 참고 있으려니 고역이었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시원스럽게 토하기에는 체면이 있고...

더더군다나 수리는 한술 더 떠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왜 그러시나.”

 
 

“큰 물고기가 배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물고기가 배를 공격한다는 이야기는 바다에서나 들리는 줄 알았다. 물론 한번도 수상로를 겪어보지 않는 나이기에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진짜로 수상로에 이런 괴물이 있을 줄이야.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아니면 여자를 내쫓던지요. 혹시 사관님이 데려오신 저 희여멀건한 친구 여자 아닙니까?”

 
 

수염이 없고 곱상하게 생겨놨더니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수리는 생기를 얻었다. 일어나 자기 가슴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모든 원인은 제게 있습니다. 제가 가서...”

 
 

“...앉게나. 수리. 별 일 없을 걸세.”

 
 

“사관님.”

 
 

선장은 울상이 되었다. 

 
 

“정 안 믿기시면 바깥에 나가서 보시지요. 얼마나 큰지 죽을 지경입니다요. 이럴땐 제비를 뽑아서 제물로 바쳐야 해요.”

 
 

“그게 무슨 말이오. 안 될 말인지 알고나 있소?”

 
 

“답답하시군요. 궁에만 계시니 밖에 이런 기이한 일들이 있는지 모르시는게 당연하죠.”

 
 

그렇게 선장과 입씨름 하는 동안 선원들과 승객들이 모여서 내게 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한 10분쯤 그렇게 입씨름을 해서 내가 그들의 요구를 승낙하고 제비를 뽑는 순간 밖에서 풍덩하고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배가 잠잠해졌다.

수리가 물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제비 뽑던 사람들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 자리로 돌아갔다.

수리를 건져내려고 했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선장의 말로는 그 큰 물고기가 수리를 삼켰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패설사의 한 장으로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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