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v/o/volop57/pHu6rw4a.jpg)
만델라가 27년여의 기나긴 세월 동안 영어의 몸이 되어 모진 수난을 겪었다는 사실은 우리 누구나 잘 압니다. 바로 비교의 대상으로 삼기엔 무리지만, 아야툴라 호메이니도 고국 이란에서 추방되었던 시절, 육성을 녹음한 테이프가 국내에 유통되면서 이슬람 혁명의 촉매제가 된 역사도 있죠. 자유를 박탈당한 혁명가의 영혼은, 그를 추종하는 대중과 직접 대면할 수 없기에, "말"과 "글"로 간접소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신, 육성 녹음, 녹취록 등이 그 매개체가 되는데요. 한편 유통 과정(circulation)에서의 본의 아닌 왜곡 때문에 위인의 말은 당초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와전되기도 합니다. 일 이 년도 아닌 27년 동안이나 간접적인 수단으로만 대중과 소통해야 했던 그였기에, 남긴 말은 무척 많지만 과연 그 중 어떤 것이 진짜 그의 육성인지는 그간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책은 만델라가 서신, 메모, 일기 등을 통해 남긴 다양한 소스의 기록에서 뽑은 명언, 잠언들을, 권위 있는 전문가의 손을 거쳐 한 권으로 묶은 것입니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만델라 자신이, 기록광이라고 불릴 만큼 정리 수집벽을 지니고 있었던 덕이 크고, 다음으로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닌, 깊고도 폭이 넓은 도덕철학의 담지자이기도 했던 까닭에, 참으로 다양한 주제를 놓고 심오한 통찰이 배어나는 잠언을 많이 남겼다는 사실이 자리합니다. 이 책은 실제로, 키워드별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상황별로 적합한 말을 참조할 수 있게 키워드 편집을 해 놓은 소스라면, 성경 정도는 되어야 그를 두고 이차 편집이 가능합니다. 단일 위인의 어록이 단순한 시대순이 아닌 주제어별 재분류가 가능하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만델라라는 인물의 크기와 비중을 반증하는 저작이 아닐 수 없네요.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v/o/volop57/Er7JrDa6.jpg)
이 책은 키워드의 선정도 진부하지 않고, (좀 무엄한 표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대단히 재기발랄합니다. 그 중에는, "남탓"이라는 키워드도 있습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그가 왜 흑인들이나 특정 부족의 대변자를 넘어, 보편적 인류의 대의의 챔피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같은 악종의 정책에 대해, 모든 실패와 부작용을 전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손쉬운 핑곗거리를 찾고, 자신을 향한 성찰을 게을리한다면, 그 또한 용납받지 못할 불성실, 직무유기임을 그는 분명히 지적합니다.
같은 페이지에는 그가 초등학교에서 행한 연설의 한 토막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그의 모교이기도 한데, 그는 여타의 위인들처럼 대단히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어떤 심리적 배경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정확히 이해하려면, 자매서인 <나 자신과의 대화>를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책의 p34에 보면, 우리가 알던 기존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에 채 실리지 않았던 원고의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 대목들이 왜 삭제되었는지, 혹은 미발표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주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고하는 내용인데, 자연과 대지를 벗삼아 또래 친구들("식객"이라는 독특한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족장의 핏줄이었으므로 이런 군식구를 집에 두는 일도 가능했을 테죠)과 마음껏 뛰어 놀며, 세상에 대한 이치와, 보다 근본적인 지식을 깨치던 시간들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제도권의 학교 교육이란, 나라는 작은 단위를 넘어 보다 큰 차원의 자아를 형성하는 부족, 공동체의 아이덴티티, 영혼을 심어 주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는 게 그의 결론입니다. 한국의 당국자들도 이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v/o/volop57/SoLyif1N.jpg)
만델라는 또한 그 책의 p76에서, 자신을 포함한 사회 운동가들의 태도에 대한 겸허한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부인 위니 만델라에게 보낸 서신 중에서, 그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작품 < As You Like It >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역경"은 비록 마주 대하기에는 고통스럽고 마뜩찮지만, 그 역경이 인간에게 안기는 과실은 매우 이로운 것임을 역설합니다. 감옥에서 그는 자신의 지난 역정을 돌이켜 보며, 책을 읽고 채 소화되지도 않은 채 머리 안을 떠다니는 섣부른 지식이라는 짐을 덜어내기 위해, 대중 앞에서 자못 열띤 어조로 강론하지만, 그것은 청중의 감동을 유발하기 위한 수단일 뿐, 자신은 전혀 진정한 이해에 도달해 있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군요. 참 겸손한 모습입니다.
흑인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백인들까지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아파르트헤이트야말로, 우리 국민들을 향한 가장 큰 폭력의 근원입니다. (p86)
이 말은 남아공 대통령 보타에게 쓴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각주에 보면 이 보타 대통령은, 남아공 역사상 집행권을 가졌던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보타 대통령은 만델라의 오랜 정적이었습니다. 마치 김대중과 박정희의 관계와도 유사했다고나 할까요. 최초의 집행권이라는 말은, 남아공 헌정은 헌법상 총리에게 집행의 실무를 맡기는 구조인데, 이 권한까지 대통령에게 부여한 헌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외교, 군사는 물론 내치와 경찰력까지 한 손에 쥐게 된 대통령은 사실상 그가 유일했습니다. 만델라는 571페이지의 복수, 허세라는 키워드에 나오듯, 그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잔혹한 위해를 가한 적수도 용서했습니다.
그는 참 문학적 소양도 풍부한 인물입니다. 186페이지의 "민주주의" 키워드에 보면,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의 시를 인용한 대목이 있습니다. 역사와 희망은 대체로 불일치를 이루지만, 때로는 간절한 열망과 정의가 만나 드문 일치를 이룰 때도 있다는 거죠. 명언을 남기려면 거짓 없는 영혼의 진지한 사색과 수련 외에, 풍부한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