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번역이 쉽다고?
김서정 지음 / 책고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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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어린이의 정서 함양과 발달(만)을 위한 책들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기획, 제작, 출판됩니다. 한국도 요즘은 우수한 어린이 책이 많이 나오지만 아직도 아쉬운 점들이 있는데, 그래서 김서정 선생님 같은 전문가의 손으로 해외 우수 어린이 도서들이 특히 번역될 필요가 절실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정이 그런데도, 어린이 책 번역은 막연히 쉽겠거니 하는 선입견을 받기 쉬운 게 또한 현실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김서정 선생님이 p14에서 특히 설명하는 것처럼 그림책의 경우 그림의 고유한 문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게 비전문가가 보기에는 무심히 지나치거나 의미를 곡해하기 쉬워도 전문가의 눈에는 이미 심심상인(心心相印)의 경지처럼 사소한 표현에서도 메시지가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외국 그림책을 번역할 때에는 번역가가 일러스트 안에 작가가 분명히 심어 놓은 메시지까지를 모두 캐치하고 텍스트의 번역에 이를 담아야 하는데, 아동 컨텐츠 번역가는 그래서 문학, 넌픽션, 회화에 두루 소양을 갖춰야 기획의 당초 목표가 달성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제목이 "어린이 책 번역이 쉽다고?"이긴 하지만 저는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p77 같은 곳을 보십시오. 여기서 저자는 성공하는 어린이 책 공통 요소 10개 사항을 자신의 관점과 경험에 의해 추출하시는데, 후~~ 읽고 소비하기는 쉬워도 어린이 책이라는 게 제대로 만들기가 이렇게나 어려운 작업인가, 나아가 여태 내가 제대로 어린이 책을 읽어 온 게 맞나 하는 회의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책 자체가 평소에 어린이 책 출판 과정 일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연구를 거친 독자라야, 저자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린이 책 번역이 쉽다고?'라는 책이 쉽다고? 과연?"이라며 메타 질문을 한 번 더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피터 래빗 프랜차이즈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논의가 p89 이하에 나옵니다.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책 저자 김서정 선생님 같은 최고의 전문가라 해도, 이론상으로 이 분야에 깊은 관심이 있었거나 대단히 열성적인 어머니가 아니고서야 그 성함까지는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996년 한국프뢰벨에서 나왔던 <피터 래빗 이야기>는 아직도 이 고전을 놓고서 한국어 번역본의 결정판으로 꼽히는데, 김서정 선생님과 함께 작업하셨던 신지식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마 아동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분이라면 그 존함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아동문학의 문외한이지만) 독자인 저만 해도 신지식 선생님의 창작 동화(아주 다작을 하신 분입니다)를 읽고 자란 세대입니다. 신지식 선생님은 5년 전 향년 90세로 타계하셨습니다. 아무튼 이 대목을 읽어 보면, 정확하고 올바른 번역이 이뤄지기 위해 어떤 노력이 기울어져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습니다. 

독자인 저는 예를 들어 p93의 ④ 같은 지적을 몇 번이고 읽고 그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대목은 가뜩이나 잘된 번역으로 꼽히는 저 한국어판에 대해, 공역자였던 저자께서 스스로를 반성하며 치밀하게 서술한 곳이라서 매우매우 유익합니다. 지금 김서정쌤의 이 책에 버릴 곳이란 한 군데도 없으나 특히나 압권이라 부를 만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And then he ate some radishes.라는 원문을, 공역자들은 "싱싱한 무도 조금 맛보았지요."라고 옮겼는데, 이제와서 보면 부연(이 자체는 경우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순화, 오역된 부분이 보인다는 겸손한 말씀입니다. 싱싱하다 뭐다 하는 부연은, 이 대목 원저자의 의도를 생각할 때 불필요하게 옆으로 퍼지면서, 행동의 일직선 방향성과 박자를 방해할 뿐이라는 저자의 자성을 읽으며 저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런 지적은, 우리들 일반인이 무슨 아동문학 번역이란 분야에 전문적으로 종사하지 않아도, 영문학을 원어 그대로 감상하거나 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포인트인 것입니다. 

"싱싱함"이 불필요한 번역인 줄은 알겠으나, 단, 왜 ate가 부정확한 번역인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스스로 지적(자성)만 하시고 이 책 중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독자인 제가 주관적으로 짐작하여 몇 마디를 이 후기 중에 적어 볼까 합니다. 무를 조금 맛보았다는 건 낱개를 먹고 그 일부를 남겼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상황은, 아마도 무가 쌓여 있고, 그 중에 몇은 완전히 먹어치웠다는 데 가깝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1개의 2/10만 먹고 남긴 것과, 10개 중 2개를 싹 먹어치운 건 다르겠지요. some이란 단어가 한국어로 변용되며 끼칠 수 있는 오해의 양상은 다양합니다. 단, 저자께서 이 파트에서 지적하시는 다른 중요한 오류에 비하면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동화는 기술 서적이 아니기에 기본적인 심상을 해치지 않는다면 한국말의 흐름을 살리는 범위에서 용인할 만한 문장입니다(라는 건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린이 책 번역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방법론과 예시가 많기에 쉽고 가볍게 읽히는 책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꼭 아동문학 관련이 아니라도, 무엇이 영문학 일반의 바른 감상과 독해일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독자라면 흥미롭게 몰입할 수 있는 멋지고 유익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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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인사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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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작가 함정임 선생의 이 신작을 보고 막연히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이란 장편이 생각났었습니다. 2021년 7월 그 작품은 영국의 대거(Dagger) 상도 받았더랬는데, 대략 11년 전인 2013년 11월에 제가 쓴 리뷰도 있습니다. 당시 퇴근길에 허겁지겁 귀가하여 간신히 서평 데드라인을 맞췄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신작 뒤표지에 윤고은 작가의 추천사도 있어서 더 흥미를 갖고, 두 작품을 비교하며 읽게도 되었습니다. 물론 제목에 "밤"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점 말고는 형식적인 공통점이 거의 없으나, 아무튼 개인적 기억에 더 힘입어 몰입감 있는 독서를 하게도 되었네요. "호모 비아토르(떠도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0년 전인 2015년 1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로 인해 프랑스의 만평가인 엡도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분개한 프랑스와 전세계의 시민들이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를 외치며 불관용과 폭력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전개했었는데, p30에 "하나의 현상이 되어 버렸다"며 그 일이 언급됩니다. 허핑턴포스트는 한국에서도 나오고 그 훨씬 전부터 프랑스에서도 나왔는데, 그걸 "허핑턴프랑스"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아킴 롱생(Joachim Roncin)이라는 분(p15 등)이 그 창안자("창시자". créateur. p31)라고 당시에 말들 했었는데 이 소설에도 언급이 됩니다. 미나는 저 창시자라는 말이 눈에 띈다고 하는데 독자인 저는 본문 중에 악상(accent)까지 정확히 박은 섬세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p84를 보면 장(Jean)이, 삼성, 엘지 등 한국 기업 이름을 말할 때 액센트까지 넣는다는 미나의 말도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글자를 잘못 읽고 파리-n으로 봤는데 다시 정확히 보니 파라-n(p17)이었습니다. 요즘 이런저런 독서모임이 많은데 이 그룹은 독특하게도 "묵독(默讀)" 컨셉입니다. 한때 낭독의 발견이라는 TV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독서모임을 갖는 이유는 성원들 간의 대화, 유쾌하고 고양된 감정이 깃든 소리로 채우는 게 주된 목적 중 하나인데, 침묵으로 오롯이 텍스트에 집중한다니 뭔가 특이하면서도 한편으로 그게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이 분위기에 살짝 생경하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phantasmagoria는 침묵 중에 더 잘 구현되지 않겠습니까. 

미나가 윤중과 카톡을 주고받는 동안 장은 느긋하게 속도를 밟으며 파리 교외 국도를 달립니다. 이대로 어디를 향할까. 리용, 마르세유, 니스만 해도 꽤 먼데 뭐 로마까지 달리자고? 장 다운 얼척없는 제안입니다. 장은 모스크바 체류 시절의 기억을 말합니다. 굼(Gum)이라는 백화점을 느닷 말하는데 키릴 문자로는 Гум이라고 쓰죠. 여기서도 또 발터 벤야민이 나오는데(p84) 독일인이면서도 영원한 국외자로 떠돌았던 그는 볼셰비키 혁명 9년 후인 1926년 이곳을 들러 마트료슈카를 구입합니다. 발터 벤야민과는 달리(?) 여전히 장은 굼의 파사쥬에 주목합니다. 장의 대사대로, 19세기 말도 아닌 공산혁명 직후에도 바로 폐쇄되지 않고 자본주의 허영의 상징(장이 이런 말까지 하진 않았습니다만)을 열심히 디스플레이한 이 백화점의 운명이 기이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니스와 산레모는 그리 멀지 않은데 서울에서 가평까지의 직선거리보다 짧습니다. 그러나 산레모는 중세부터 제노바 공화국 소속이었고 근대 들어서는 피에몬테 왕국에 병합되었던 이탈리아 영토입니다. p110에서 언급되는 사랑의 아픔, 원제목은 책에도 나오듯이 Je suis malade인데 묘하게도 저 앞의 조아킴 롱생의 챈트하고도 어구가 일부 겹치네요. 미나는 저 노래에 대해 산레모 가요제 참가곡인 것처럼 말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세르주 라마(이분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가 이 노래로 산레모에 출전한 적은 없습니다. "조금만, 이대로.(p151)" 좁은 공간에서 장과 미나의 키스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영원히 지속될 듯한데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둘의 자유로운 영혼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밤의 진실을 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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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 너의 별은 특서 청소년문학 42
하은경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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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경 작가님이 간만에 쓴 청소년 SF물입니다. 비록 배경은 우리 은하 전체에 걸쳐 다른 행성들을 넘나드는 범위지만, 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근래 들어 국경과 문명 사이에 높고 험한 장벽을 쌓아올리는 미국이란 나라의 고립주의, 폐쇄주의가 바로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힘들게 국경을 넘어온 엄마한테서 아이을 뺏고, 간신히 호구지책을 마련한 노동자에게 불법이민자의 낙인을 찍으며 쫓아내고, 심지어는 범죄자의 누명을 씌우기까지 합니다. 1923년 일본의 간토 지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민심이 흉흉해지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며 집단 광기, 살인을 부추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어지러운 세상에서 소수자와 이방인은 가장 손쉬운 희생양이 되기 마련이죠.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영미법에서 쓰는 용어 중에 alien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방인, 외국인이라는 뜻도 되지만(한국인들은 어느 SF 프랜차이즈의 영향으로, 입에서 강산성액을 내뿜는 우주 괴물을 바로 떠올리겠죠) 대개는 불법체류자를 가리킵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격인 알마는 실제 다른 별(아르파라)에서 오기도 한 처지이며, 원 거주자들에게 핍박받는다는 이유에서도 alien이 맞습니다. alien이라면 품은 꿈도 박탈당해야 할까요? 알마처럼 나이가 어린 영혼에게 일어난 곤란이고 비극이어서 지켜보기가 더욱 가슴 아픕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알마에게 살인 혐의가 던져지자 친구 김윤설은 크게 분노합니다. "어떻게, 잘 알아 보지도 않고...?" 

돌아가신(마약범과의 총격전 중 사망. p95) 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경찰직을 젊은 나이에 지원하는 젊은이. 현실에서나 픽션 속에서나 자주 우리들이 접하며 이 소설에서도 강시오가 그런 역할입니다. 그를 바라보는 서 국장, 생전에 강시오의 부친과 둘도없는 친구이기도 했고 살벌한 치안 유지 업무 수행에 있어서도 서로를 의존했던 직장 동료였습니다. 서 국장은 강시오를 무척 아끼지만,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 사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인내가 부족한 걸 안타깝게도 여깁니다. 

한편, 알마한테 살해당했다고 의심되었던 희생자는 젊은 클론이었는데 이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박영모(p33)라는 사람은 클론을 만들어낸 장본인인데, 미래 사회에서 클론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는 있으나 전혀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이며 이 참상을 만들어낸 박영모가 큰 비판을 받는 이유입니다. 여튼 이래서 클론 인권운동가(p65)라는 직분까지 생겼을 정도죠. 

한편, 도심 한복판에서 외계인들을 추방하라는 혐오 시위(p45)가 자주 벌어지고, 이는 발크란 행성 같은 타지에서 지구인들이 잔혹하게 처분된 실제 사례 때문에 더 큰 동력을 얻습니다. 발크란 같은 강력한, 불의한 타자(他者)의 존재가 사회의 극우화를 더욱 부추기게 마련이죠. 전아린 센터장도 지구인인 이상 혐오 시위대의 주장에 전혀 귀를 닫을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지성인으로서의 양심이 우선입니다. 

이 소설의 세계관에서도 언제나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입니다. 왜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일까요? 자기 나라에 없는 자원이 묻혔거나, 그 자원을 손쉽게 가공할 수 있어서입니다. p92에서 서 국장은 강시오의 부친이 왜 죽었는지 그 진상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암브로시오라는 쌍떡잎식물이 마약의 원료로 쓰이고, 미나바르 행성인들과 잘못 엮여 결국 그런 사고가 터졌음을 알고 시오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한편 타르칸 제국은 은하를 지배하는, 매우 폭력적인 성향의 집단인데, 알마는 그들의 강요로 인해 자신이 추구하지 않는 방향성을 무용에 표현할 처지에 몰립니다. 마치 박 정권 하에서 대통령 찬가 작곡을 강요받았다는 신중현의 예도 생각나게 되네요.   

이 소설에서 스마트링크(p17, p141 등)라는 인프라가, 마치 우리들이 쓰는 인터넷이나 인트라넷처럼 소설에 자주 등장합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사람의 거친 욕망이나 불의한 충동은 미래에도 전혀 변하지 않아 씁슬하지만, 시오의 정의롭고 예리한 지성은 사건의 진상을 백일하에 드러내기 위해 쉬지 않고 목표룰 향해 나아갑니다. 마지막에 전혀 예상치 않았던 반전이 있어 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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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아빠와 떠나는 민주주의와 법 여행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양지열 지음, 박유나 그림 / 특별한서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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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중앙일보 기자이며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양지열 변호사가 저술하고 박유나 작가가 일러스트를 곁들인 책입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대성한 전문가들이 자녀분에게 나긋이 들려 주는 듯한 내용으로 이어가는 책은, 아무 관계 없는 독자가 보기에도 흐뭇하고 마음이 뿌듯해지는 느낌입니다. 대한민국은 반 세기를 훌쩍 넘기는 긴 시간 동안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그런 희생과 분투의 산물이자 선물이니, 기성 세대가 그 의미에 대해미래 세대를 향해 들려 주는 이야기는 대단히 유익하고 교육적이라 하겠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모두 9일에 걸쳐 아버지가 딸 민주와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민주주의 일반론, 기본권론, 통치구조론, 시민참여, 선거제도, 재산법, 가족법, 형법, 노동법 등의 주제로 모두 아홉 파트를 이룹니다.헙헌법은 모든 법의 아버지와 같으므로 책의 절반이 넘는 분량이 할애되었습니다. 저자의 평소 관심사를 반영하듯 선거와 시민참여, 노동자의 권리 등에 대해 큰 비중이 놓인 게 눈에 띕니다. 또 사람 사는 세상의 기본적인 질서를 규정한 민법에 대해 제7장과 8장에서 자세히 풀어 주는 것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법은 당위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에서 작동되는 유효한 규칙과 질서이기도 하므로 어린 세대는 이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생존에 유리해지고 정당한 권리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p96) 권력 분립을 설명한 코너에 이 제목이 붙었습니다. 씁쓸한 말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애초에 사람이 같은 동료, 동족을 온전히 믿을 수 있었다면 법이나 공권력이라는 게 필요 없었을 터입니다. 권력이 한쪽에 집중되면, 그 권력은 모두의 공공복리와 행복 추구를 위해 작동하기보다 그 반대 방향의 해악을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입법, 집행, 사법(재판) 등으로 세 분야에 갈라 놓은 헌법제정권자의 결단이라는 건데, 아무리 법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었다고 해도 신성불가침 무제한은 아니라서 국회가 헌재에 두고 그 파면 여부를 탄핵소추할 수 있음이 헌법에 보장되었다고 변호사 아빠는 딸에게 가르칩니다.

저자는 기자 출신이라서인지 책 곳곳에 언론 관련 사항을 첨가하여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p128 같은 데를 보면 게이트키핑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헌법에도 언론의 자유가 규정되었으므로 이는 헌법 내용 본연의 사항 설명이기도 합니다. 가짜 뉴스는, 세계적으로 망 연결이 완성되다시피한 기술적 발전과, 소셜미디어에의 의존도 증가에 힘입어, 이제 지구인들의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자유와 권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그 편익만 향유하고 의무를 방기하려 든다면 이는 개인의 윤리적 타락과 사회의 아노미 상태를 유발할 수 있겠습니다. 게이트키핑은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를 지키기 위해 필요할 수 있다는 점 독자들이 유념했으면 합니다.     

p179에서 어린 민주가 아빠에게 묻듯, 요즘은 음식점에서 밥을 사먹어도 키오스크 등을 써서 주문을 완료하곤 하며 이 과정이 숨쉬듯 자연스럽기에 무슨 법적 절차 같은 것이 낄 여지가 없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변호사 아빠는, 대부분 일상처럼, 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정상적으로 진행되기에 간과하기 쉬우나, 행여 불법적이거나 상례를 벗어난 일이라도 발생하면, 그때부터는 재산법(그 중에서도 계약법)이 개입합니다. 이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어서, 법의 원리가 생활 곳곳에 이미 스며들어 시민들의 평온이 깨어지지 않게 암암리에 작동 중입니다. 어린 학생들은 이를 모르기 쉽지만 사실 아침에 학교에 평화롭게 등교하는 것도 시민법(civil law)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죠.

나에게 먼저 위해를 가한 범죄자에 맞서 내가 내 신체를 지키려 드는 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형법도 이런 권리를 보장하는데 이게 정당방위이며 한국 형법에서는 제21조에서 규정합니다. 법은 지나치게 당연한 이치에 대해서는 일일이 명문화하지 않는데, 21조의 진짜 의의는 (이 책 p232에서도 암시하듯) 오히려 거꾸로 정당방위의 요건을 엄격히 정해, 위법성 조각사유를 남용하여 새로운 불법이 무한정으로 확산하지 않게 배려하는 데에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아빠가 딸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 형식이라서 내용이 쉽고 친근하게 다가와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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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보다 재미있는 디자인
최경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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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이면서도 심오한 필치와 내용의 머리말을 읽기만 해도 우리 독자들은 이 책이 담은 멋진 내용과 주제를 미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미술과 디자인은 둘이 아닌 하나였다.(p5)" 그러던 것이 20세기 들어서 실용적이고 산업적인 용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른바 순수미술로부터) 디자인이 분화했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20세기에 태어나 자란 이들은 이런 비정상적인 양상을 정상인 양 착각할 만한 환경에서 자라고 살아 왔던 거죠.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자 최경원 교수님은 최근 들어 "대중의 엘리트화"가 두드러진 트렌드로 부상한다고 진단합니다. 대중의 기호를 만족시키려 실용적으로 분화했던 디자인은, 이제 다시금 고도의 예술성을 추구하게끔 변모를 시도합니다. 책 제목은 저렇게 "미술보다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붙었으나, 사실은 작금의 디자인이 미술과의 일체였던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중이니 디자인이나 미술이나 똑같이 재밌어지는 분야라고 하겠습니다. 현대인이란, 무릇 재미를 놓치면 현대에 살 자격이 없어집니다.

화랑 LUMINEO. 저는 가 보지 못했지만 이 임대 화랑은 신주쿠역 서쪽에 위치했다고 합니다(p45). 전시의 컨셉에 맞게 날카롭고 세련되면서 고급진 외관을 연출해야 하는데, 저자의 시각으로는 "조형 요소를 모두 제거하여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듯하나 주변들과 역동적 관계를 이루며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앙상한 골격(과 텍스트)만 남아 허공을 배회하는 모양인데도 공간을 최대한으로 채운다니 대단한 역설입니다. 비결이 뭘까요? 나의 공간이 비었으니 그 틈을 타(他)가 촘촘히 밀고들어오는 이치입니다. 디자인의 효과와 원리를 통해 세상사의 새로운 이치까지를 배우는 듯합니다. 

p201을 보면 행사 포스터 1점이 소개됩니다. 한눈에 봐도 "뜨거운 한국 희곡 일본 초연!!!(느낌표가 세 개입니다)", "인류 최초의 키스(공연 제목)" 등의 한글이 들어옵니다. 저자의 해설에 의하면 이 연극에 실제 키스 장면은 없고, 감호소를 배경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블랙을 통해 어두움과 두려움을 (압도적으로) 부각하면서도 화이트를 통해 일말의 희망을 남겨 두었다는 게 저자의 해석입니다. 왜 사람의 얼굴 옆모습이 저렇게 크게 배치되었나. 디자인의 기본 테크닉 중 하나이지만 (실제로는 극중에 안 나오는) 키스를 암시하려는 의도라고 저자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디자인의 문법을 독자들은 이런 실례를 통해 귀납적으로 배울 수도 있습니다.

p100을 보면 소프트방크에서 내놓은 트로피칼이라는 휴대폰 광고가 있습니다. 휴대폰 광고로서뿐만 아니라 광고 일반의 관점에서도 대단히 파격적이고 관찰자을 당혹하게도 만드는 도안입니다. 다소 산만한 듯도 하나, 누구 눈에도 유쾌하고 즐거워 보이는 인상인 건 분명합니다. 또 정신없는 와중 이 핸드폰이 방수(防水) 기능을 갖추었음도 분명히 다가옵니다. 효과적인 디자인은 그 기능성에 대해서도 남김없이 유감없이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이 점에서도 성공적입니다. 저자는 "딱딱하고 기술집약적인 게 보통인 전자제품 광고에서 이런 자유분방한 광고가 주는 효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p237에는 의류브랜드 Dean M의 포스터 하나가 나옵니다. 해체주의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대뜸 자크 데리다를 떠올릴 텐데, 등을 돌린 채 뒤를 돌아보는 여인의 모습을 잡았는데 얼굴의 일부가 흰색으로 지워졌고 그것도 구도의 중심부가 그리 처리되어 충격을 줍니다. 이 기획에서 해당 브랜드는 일관되게 deconstruction, 즉 "해체"를 메인 컨셉으로 잡았는데, 그 "해체"의 액션이 화면 안에서 불규칙합니다. 저자는 바로 이를 두고 동아시아 고유의 여백의 미, 혼돈 속의 역동성이 잘 표현되어, 서양인 모델의 외모 개성과 팽팽한 긴장 속에 조화를 이룬다고 평가합니다. 저자의 시원시원한 해석과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디자인이 얼마나 재미있고 영감을 자극하는 분야인지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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