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모르는 남자들의 심리 - 사랑이 서툰 너에게
이성현 지음, 차상미 그림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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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란 말이 있듯, 여성과 남성의 심리는 너무도 다릅니다. 과연 같은 종(種)이 맞는지가 의심스럽지만(?), 교합 후 2세를 생산하는 걸 보면 섣부른 의심을 할 일도 아닙니다. 자웅 성체가 현격히 다른 모습을 한 걸 두고 dimorphism이라 부르는데, 사람의 경우 공작새나 사자 만큼 차이가 나는 경우는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안타깝게 보는 건, 거 괜찮게 풀리겠다 싶던 커플이 사소한 다툼을 계기로 헤어지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결국 뭐 잘 안 맞았나 보지 뭐." 하고 체념할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미미했던 불화나 오해 때문에 그 지경이 되었다면 그건 제3자가 보기에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관계의 파탄이라는 "사고"를 미연에 막고, 현재 그럭저럭 잘 되어가는 관계라면 더욱 "기름"을 치고, 뭔가 낌새는 있는데 아직 스파크가 안 튀는 단계라면 촉매제를 확 부어 주는 게 바로 이성 심리의 이해입니다.

이 책은 아직 젊은 남성 저자가 쓴, "알 필요도 있고 알아 주었으면 하는 미묘한 남성 심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남자가 여자로부터 일방적으로 배려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여자 입장에서 일단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전략이 뭐가 있을지 코칭해 주는 내용입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다면 한 번은 관계를 가꾸는 게 일차 목표이지, 미숙한 에고만 철벽방어하고 정신승리에 그친다면(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 그걸 어디 어른의 심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남자 입장에서 꼭 챙겨야 할 여성의 심리" 같은 주제는 다른 책에서 찾거나, 아니면 이 작가(크레에이터)께서 언젠가 후편으로 쓸지도 모르죠.

남자들이 여자한테 하는 "귀엽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이 얘기는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여자가 하는 말과는 달리, "사귀지도 않으면서 괜히 부담스러워 할까봐, 또는 못생겼다고 장난치면(사실 장난도 아님) 기분이 나쁠까봐"(p17)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거죠. 대략 이십 년도 전에 벌써 "해명이 나온 주제"인데, 그래도 어느 세대에게나 지난 세대의 지혜(...)를 물려줄 필요는 있습니다. 연애 자체는 낭만이지만, 결실을 보거나 덜 타격이 가는 결말(파국)을 위해선 언제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답장은 꼬박꼬박 하는데 선톡이 없으면, 그건 (역시) 마음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크다."(p27) 안타깝지만 이 역시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 선톡도 가끔 날려서 관리를 하는데, 대부분의 남성은 이 정도의 배려, 꼼수도 쓰지 않기 때문에 판별이 쉽죠. 이렇게 쉬운남자 심리인데도 속을 못 알아채는 이유는, 여성의 경우 그 남자한테 한번 빠져들면 더 심하게 콩깍지가 씌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현실, 해답은 뻔한데 그 여성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영리하게, "현실이 이러므로 꿈 깨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제발 희망고문들 좀 하지 마세요"라며 오히려 남자들에게 충고를 합니다(!). 이처럼 (여성)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공하는 크리에이터가 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ㅋ 아, 물론 "여자건 남자건 쳐내세요(p27)"라고 텍스트상으로는 나와 있으므로 꼭 특정 성별의 독자에게만 어필하는 멘트는 아니겠습니다. 좀 뒤에 보면, 여성 역시 자신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마음이 없으면 초장에 단칼 거절을 하라는 조언이 나옵니다. 역시 희망고문이 가장 나쁘다면서 말입니다(p37).

썸을 타는 건 맞는데 왜 남자는 고백을 안 할까요?(일단 남자가 고백 안 하는 경우부터 분석) 첫째는 거절당하면 다시는 못 만나니까. 둘째 여성이 자신보다 훨씬 나아 보여 자격지심이 있을 때,. 이 두 가지 이유가 주된 것이라고 합니다. 당연하지만 또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남자도 어장 관리를 하지만, 그보다는 "걱정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 혹은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가 진짜 이유라는 거죠. 여기까지는 별 새로운 게 없는 내용인데, 그 다음 조언이 좋습니다. "여자가 먼저 고백을 해 보라"는 겁니다(p33).

여자가 먼저 고백을 하면 가벼워보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오히려 남자는 용기 있는 여성으로 그녀를 생각하며(p43), 자신감 있는 여자라고 더 큰 호감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긴다(p45)는 겁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100% 맞는 말입니다. "가볍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게 글러먹은 놈이죠."라고도 하시는데, 100% 찬성입니다. 용기 있다 이런 걸 떠나 요즘 여성들은 호감이 있으면 빤히 시선을 응시하더군요. (물론 정반대의 경우에도 기가 막혀서 쳐다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결론은 "자존심 때문에 사랑을 놓치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 괜찮은 여자를 대뜸 거절하는 놈은 안목이건 깜냥이건 비전이건 다 시원찮은 놈 아니겠습니까?

"남자는 단순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존심이 세다." 그래서 데이트 비용 등을 낼 형편이 안 될 때, 데이트 자체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저자는 (그런 남성 독자들에게 말하기를), 여자친구는 물질보다 남친 자주 만나는 게 더 좋으니 그런 경우 부끄러워하지 말고 여자에게 기대기도 하라고 말합니다. 근데 정말로 이 충고가 100% 먹히는 관계라면 참 행복한 커플이겠으며, 누구의 충고 없이도 이미 알아서들 잘해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남자는 능력을 자발적으로 키워 나갑시다. 그래야 개념녀를 만납니다.

남자가 질투를 안 하는 이유는 뭔가(남자가 질투를 "하는" 심리는 이 책 앞에서 다뤘고 이 서평에서도 간접 언급했습니다). 이것도 "에휴 그냥 헤어지면 되지"가 있고, 반대로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뭐라도 다 배려하고 참는 심리가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여자는 질투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게 보통이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남자한테 "쌩얼(민낯)"을 보여 줘도 될까? 여자들은 이 경우 못생겼다고 싫어하게 될까봐 많이 주저한다지만, 남자들은 여자친구의 "순둥순둥한(p67)"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초창기, 아직 콩깍지가 씌었을 때 보여줘야 효과가 더 좋다고 저자는 권하는군요. "미리 보여줘서 예쁘다고 머리에 박히게 하라" 거 참 맞는 말입니다.

잔소리의 경우 여자는 "다음부터는 제발 좀 안 이랬으면" 하는 생각으로 하는 건데, 남자는 "안 그래도 잘 하고 고칠 건데 왜 쓸데없이 감정 소모를 하지?" 같은 생각으로 언짢아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대화를 더 자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전여친과 비교하는 남자는, 지금 이 여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전 여친의 환상을 대용품을 빌려 재현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남자와는 과감히 헤어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단칼 충고입니다.

좀 묘한 이야기도 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감수성이 터져서(이 경우는 꼭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가 아니라 반대로 비하 심리도 있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죠) 갑자기 여친에게 전화해서 "나보다 더 나은 남자 만나" 라는 괴멘트를 던지는 경우가 있답니다. 이때 속셈은 여친이 질려서 그냥 헤어지고 싶은 건데 희한한 핑계를 대며 자기기만, 위선을 떠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게 맞는 소린가? 남자 입장에서 잘 생각해 봤는데, 생각해 보니 거 참 대단한 통찰이다. 이거는 허를 제대로 찔리고도 자기 심리를 자기가 몰라 남자들이 대부분 인정 안 할 것 같습니다. 타인 앞에선 물론이고 자기 혼자만의 시간에도 말입니다. 이 책이, 아직 나이 어린 저자의 달달하고 그저 맞기만 한 당연한 상식으로 무슨 바넘 효과를 노리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대목처럼 남들이 채 캐치 못한 지점을 치고 들어가니까, 예전부터 이 크리에이터가 인터넷에서 소문도 나고 조회수도 높고 인기를 끄는 것 아니겠나 싶었습니다.

에피소드 32에 남자는 "자신을 좋아해 준 사람과, 좋아한 사람 중 누구를 더 못 잊나요?"란 질문이 있습니다. 마치 예전, 수학자 레이먼드 스멀리언의 책 어느 구절처럼,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같은, (철학이 아니라 연애사의 영역에서는) 결정적이고도 근원적인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단언하건대, "둘 다 생각은 나겠지만, 더 못 잊는 건 압도적으로 후자이다"라고 합니다. "좋아해준 여자를 못 잊는" 건, 그저 미안해서일 뿐이라고 합니다. 거 참 가슴 아프지만 맞는 말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나쁜 놈들(...)은 그런 미안한 감정조차도 없어서 아예 잊어버립니다. ㅋㅋㅋ

"자신이 좋아한 여자는 추억 속에서 곱씹지만
자신을 좋아해 준 여자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랑거리로 삼을 뿐이다."

우리가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매 페이지 페이지마다 새로운 통찰이 들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아는 상식을 확인하고 싶어서도 있습니다. 연애사만큼 빤히 되풀이되고 처방이 잘 알려진 영역도 없지만, 그 안에 빠져 고민하는 당사자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번민과 절망과 열정에 숨막혀합니다. 오죽하면 영어의 passion이, 그 어원 면에서 "고통"이란 뜻이었겠습니까. 허나 이런 책을 읽고 한번쯤은 나 자신을 객관화하며, 결국 별것도 없는 관계와 애정 속에서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찾다가 한 세상 마치는 거겠습니다. 망상은 금물이며, 늙은 닭대가리한테나 끼고 살라고 안겨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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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 한현민 이 사람 시리즈
김민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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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훌쩍 더 컸던 그는 초등학교 2학년때 야구부에 들어갔다."

이처럼 한현민은 어렸을 때부터(지금도 어리긴 하지만) 야구를 사랑했고, 지금도 자기는 청주 한씨라며 한화 이글스를 무척 열렬히 응원합니다. 야구는 통계 스포츠이기에 야구팬들이 흔히 그렇듯 그 역시 한화 팀과 선수들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줄줄 외우고 다닐 만큼 몰입하는 팬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어갈 수 없었는데, 야구는 워낙에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며 그의 가정은 이를 금전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죠.("양준혁 야구교실" 회원이었다고 하는데 왕년의 레전드가 펼치는 멋진 프로젝트에 이처럼이나 직접 수혜를 입은[선수는 아니라고 하나] 유명인이 이렇게 이른 시기에 나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현민이 워낙 어려서인 까닭이 크지만요)

"네가 야구를 하면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어."

가슴 아픈 말씀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야구를 계속하고 심지어 프로팀 드래프트에서 지명까지 되어도 내내 2군에서만 머무르다 은퇴 아닌 은퇴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며, 1군 정규 멤버라고 해도 팬들의 뇌리에 장기간 남는 선수는 극히 드뭅니다. 요즘은 유복한 집안에서 운동을 시키기 때문에 귀염성 있는 외모까지 갖춘 스타 재목이 많지만, 이들 역시 워낙 치열한 프로 세계의 경쟁 속에서 쓴맛을 보고 쓸쓸히 퇴장하기도 합니다. 1군 선수가 그럴진대 하물며...

여튼 이런 기나긴(어른들이 보기엔 짧지만) 고뇌의 시간이 그의 영혼에 남긴 아픔의 열매가 그 나름 보람을 낳은 덕인지, 혹은 타고난 좋은 체형 덕분인지(후자가 크겠지만), 한현민은 모델계에서 바로 주목 받아 현재 활동 중이고, 이런저런 TV 오락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춰 많은 이들이 알아보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도 말입니다.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이는 중학교 선배, 축구부 주장이었습니다. 늘씬한 체형에 (어린 한현민의 눈에는) 비할 수 없이 하이패션을 하고 다니는 그를 보고, 소년은 바로 롤 모델로 삼게 되었지요. 이때 이후로 그의 꿈은 자타공인 모델이었습니다. 헌데 모델도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이 분야를 지망하는 대부분의 또래들처럼 무슨무슨 아카데미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한현민이 누구인지 아는 이들이라면 설명 없이도 짐작이 가능하겠으나, 모르는 분들이라면 "아 타고난 체형 조건이 그렇게 좋다며 대체 뭐가 도전이고 아픔이었다는 거냐?"라며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나이지리아인 아버지를 둔 혼혈인이며, 요즘 우리 시대의 핫 이슈 중 하나로 부상하는 "다문화 가정" 출신입니다. 한국처럼 텃세가 심하고 폐쇄적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기 쉬운 문화권에서 아무리 유리한 체형을 타고났다 한들, 하물며 넉넉한 집안 출신도 아니라면, 좋지 못한 경로로 (그의 잘못이 아니라 환경의 탓으로) 엇나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훌륭한 직업인으로서 지금 세상의 주목을 받는, 성공의 일보 직전까지 다다라 있습니다.

"그는 매력적인 모델로 기억되고 싶었다. 어떤 옷을 입든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는 모델이 되고 싶었다."

모델계에 투신한 후 그가 롤모델로 삼은 이는 김원중이었습니다. 이 김원중씨가 그에게 해 준 말이, "포즈를 더 건방지게 해 봐."였답니다.  이 "건방짐", 다른 모델과 영원히 대체 불가 포인트를 만드는 개성이,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스웨그(swag)"입니다. 이는 또한, 남들이 알지 못했고 영원히 알 수도 없을 그만의 상처와 아픔을 당당히 극복하는 영광의 훈장이기도 합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유망주가, 유망주 꼬리표를 이처럼이나 빨리 떼고 대뜸 특정 트렌드의 아이콘으로까지 자리매김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그저 타고난 외모 조건이 빼어나 벼락 출세를 한 경우로 봐서는 곤란할 듯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그는 유독 배타적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다문화 배경 일각을 대표하여 유명세를 탔으며, 이 다문화 배경이라는 게 출세나 주목끌기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예가 거의 없습니다. 혼혈 출신 배우, 가수 등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편견, 따돌림, 손가락질 등에 시달린 후에야 유명세를 탔으며, 유명인이 된 후에도 완전히 꼬리표를 못 떼기가 일쑤였죠. 다음으로, 무슨무슨 아카데미를 다닐 만한 사정이 못 되었기에, 그를 가르친 선생들은 대부분이 "유튜브"였습니다.

다문화, 계층 양극화, 인터넷 미디어 등, 그의 출세 과정에는 이 시대의 여러 사연과 모순과 기회를 대표하는 극적 요소가 고루 담겼고, 어쩌면 그의 영혼이 이런 상처, 혹은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부터 고루 양분을 빨아들였기에 이런 성공이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분위기"라는 게 거저 생기지 않고,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과 호응을 보내는 건 그의 인성과 영혼에 이 시대의 크나큰 공감대 하나가 자리해서입니다. 한현민의 "스웨그"가 이 시대를 통째 삼키고 포옹할 수 있는 거대한 웨이브로 진화하길 기대해 봅니다. 아직 그에게는 시간이 너무나 많이 남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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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해석학 첫걸음
허민 지음 / 경문사(경문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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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분과 정적분은 사실 개념상 배타적이라거나 병렬 관계에 놓일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분은 "일종의 공식"이고, 정적분은 그 공식에다가 숫자를 대입한 값입니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부정적분은 넓이는 구하는 식이고, 정적분은 그 식에다가 숫자를 대입해서 실제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넓이를 구해 놓은 구체적 결과입니다. 이 맥락에서 영어의 indefinite와 definite는 면적의 수치가 구체적으로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우리말(한자어)의 "부정(不定)"과 "정"의 사용례와는 너무 달라서 가벼운 혼란이 오는 것뿐입니다.

"넓이'에는 음(陰. 마이너스)의 값이 있을 수 없으므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마이너스 값은 일일이 플러스로 바꿔 준 후 그 총합을 구합니다. 중학교 들어가면 "절댓값"의 개념을 배우는데 학생들이 절댓값의 개념은 어려워해도 저 앞의 경우처럼 "넓이에는 마이너스가 없다" 같은 이치는 쉽게 받아들입니다. 사실 절댓값도 이런 구체적 상황으로부터 일반화를 시켜 도출된 개념이므로, 아이들에게 이해를 시키려면 이런 예를 들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정적분은 "넓이'라고 거칠게 정의내렸으나, 넓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게 정적분에서는 x축 밑으로 내려간 곡선 부분은 (-) 값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어느 책에서건, "반드시 f(x)≥0가 가정되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뉴턴의 위대함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문제를 두고, 그저 숫자 대입 몇 번만으로 바로 답을 구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해 내었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미적분학은, "어쩜 그렇게 엄청난 원리를 찾아내었을까?" 같은 놀라움, 발견 과정의 지난(至難)함이 대단한 것이지, 그 결과는 일반인이 배우기에 그리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걸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쉬운 결과로 바꾸어 놓았기에 그가 위대한 거죠.

테일러 정리를 발견한 브룩 테일러도 뉴턴 그 다음 시대에 활동한 수학자인데, 공대에서 테일러 급수가 얼마나 자주, 요긴히 쓰이는지를 생각하면 의외로 인지도가 낮은 편입니다. 이 정리의 놀라운 면은, 어느 미분가능하며 매끄러운 함수("매끄럽다"는 건 수학 용어입니다. 무한 번 미분이 가능하다는 뜻이고, 따라서 저 앞의 "미분가능"은 잉여적 표현입니다)를 놓고서도, 다항함수의 멱급수로 나타낼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식까지 제시해 둔 것입니다. "매끄러운 함수"가 식이 복잡한 경우를 넘어서서, 아예 뭔지도 모를 경우에조차 근사식을 구할 수 있다는 정리이죠. 단 한 개의 점에서 이런 놀라운 식의 도출이 가능하니, 근대적 이성의 위력에 시대가 경의를 표한 건 당시로서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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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해석의 기본
이창영 지음 / 교문사(청문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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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분에서, 뉴튼의 방법이다, 심프슨의 방법이다 해서 다양한 기법들이 쓰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법들은 엄밀한 공식을 통해, 그야말로 0.00000001의 오차도 없이 값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근삿값을 통해, 정답에 가장 근접한 숫자를 얻고 만족하는 거죠.

심프슨의 방법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책의 3부 8장에서 다뤄지는데요. 존재하는(혹은 상상 가능한) 함수들 중 상당수는 역도함수를 찾아 적분할 수가 없습니다. "역(逆)도함수"는 예전 중등 교과 과정에서 원함수, 또는 원시함수라 부르던 것의 다른 이름입니다. 물론 미분이 안 되는 것도 꽤 많지만, 적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어찌 보면 "원칙적으로 안 되고 운이 좋아야 가능한 것"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삼각함수 중 지극히 예외적인 형태, 무리함수의 대부분 등은 원시함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은 역도함수(antiderivative)를 못 구합니다. 공학용 계산기에 넣고 돌려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부 과정에서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아무리 그 겉모습이 복잡해도, 결국엔 답이 나오도록 출제자가 고민해서 짜낸 것들입니다.

안되는가 보다 하고 말 게 아니라, 본래 적분(식, 값)을 구하는 목적은, 함수의 그래프를 그리고 그 곡선 아래 부분의 넓이를 구하는 데에 있습니다(정확하게는, 그 곡선의 아래로부터 내려와서, x축으로 둘러싸인 부분까지의 넓이). 그렇다면, 꿩 잡는 게 매라고, 결과에서 극히 작은 차이만 날 뿐이라면, 근삿값을 구해서 (실제에) 응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고, 오히려 전쟁에서 성문을 정면 돌파할 수 없으면 개구멍이라도 찾아서 돌파하는 요령이 칭찬 받아 마땅한 것(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천재)입니다. 애초에 적분의 목적이 이쪽이므로 머리 좋은 학자들은 근삿값을 정밀히 구하는 기법을 일찍부터 발전시켜 왔습니다. 근삿값이라고 하면 초 5, 중 1 정도에 마지막으로 배우고 이후에는 본격(?) 정밀 수학만 제대로 쳐 주는가 보다 처럼 여길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근삿값 기법 역시 수학의 한 본령을 이룹니다. (공학 수학에 더 가까운 성격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뚜렷한 분화가 이뤄지지 않았겠죠)

미적분의 기초에서 다항함수(엑스의 제곱, 세제곱, n제곱 등등의 곱과 합으로 표현되는 것들)을 미분, 적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정도는 고교에서 문과생들도 다 다루는 것입니다(7차만 제외). 방법은 매우 쉬우므로(구구단보다 쉽습니다. 구구단은 72개의 긴 식들을 외우는 과정이라도 거치죠), 누구나 다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서 쉽게 갖고 놀 수 있습니다.

생긴 것만 봐도 까다로운 삼각함수, 로그함수 들 중 상당수 불가능한 꼴은, 이 다항함수 중 가장 근사한 식을 찾아서, 그 다함함수의 정적분으로 값을 구해내면 됩니다. 이와 그 취지가 비슷한 것 중에 테일러 급수(전개)라는 것도 있는데, 이 책의 2부 4장에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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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 내 삶을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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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를 쓰고 돈을 벌며 경쟁에서 승리하려 애 쓰는 건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손에 쥔 효용보다 써 버린 자원, 희생한 기회비용이 더 크다면, 그런 삶은 결코, 누구의 관점에서도 잘 산 삶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버린 인생, 주객이 전도된 분투의 과정은, 당사자의 노력에 불구하고 결국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남들 시선을 따라 일단 내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종착점이 무엇인지 먼저 그 기준을 바르게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행복, 행복"이라 말은 쉽게들 하지만, 대체 이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자고 합니다. 사전을 아무리 찾아 봐도 행복의 정의에 대해 거창한 설명은 많지만, 이 심오한 설명을 깊이 궁구한다고 해서 어떤 깨달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깨달음이 혹 온다 한들, 문자 그대로 내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사전의 해명 중에는, "우연히 찾아오는 복"이란 말도 있다고 합니다. 책에도 나오지만(p31), 영어의 happy 역시 haphazard("닥치는 대로의")라는 단어에도 그 형태소 일부가 들어 있듯, 인생의 목표가 그저 우연에 기대는 것이라면,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는 허망한 결론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말로 이렇게 믿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까지 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인생은 무가치한 오탈자, 솜사탕 먹다가 이빨은 물론 잇몸을 통째 잃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잉여 단위일 것입니다.

저자는 조건이나 정의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체험"에 행복의 본질이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하긴 아무리 철학자의 신묘한 통찰로 행복의 정의를 구성했다 쳐도, 그 철학자 본인이 감정으로 육신으로 마음가짐으로 행복해 본 적이 없다면 이는 일개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그런 말의 성찬은 다른 누구에게도 작은 효용조차 가져다 주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이란 단어에 그저 행복의 "조건"만이 표현되었다면, "쾌족(快足)"이란 단어를 통해 행복의 "체험"을 담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은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행복의 측정 기준도 제시하는데, 이 중에 PANAS(positive and negative effects after schedule)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positive의 항목들에는 "관심있는, 신나는, 강렬한, 자랑스러운, 정신이 맑게 깨어 있는" 등이 포함되는데, 저자는 이 중 놀랍게도 "행복한"이 정작 빠져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는, 행복하기 위해 정말로 "행복함"이란 단일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다른 부수적인 긍정 정서를 두루 경험하면 족하다는 뜻(p37)도 됩니다.

저자는 이런 지적도 합니다. 흔히 지식인들은, "행복"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니체는 "행복? 그런 것은 영국 치들이나 추구하는 거야!"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머리가 좋고, 범인들이 꿈도 못 꾸는 경지를 내다볼 능력이 있어도 그 자신은 지독히도 불행한 삶을 사는 게 보통인데, 어쩌면 이런 예외적인 경우는 그 불행 속에서 오히려 쾌감을 찾아내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편이며, 대다수의 사이비들은 말(물론 거짓말)로만 달관을 가장할 뿐 속으로는 끊임없는 불안과 자기기만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낼 뿐입니다. 이런 사이비들은 머리 속에 최소한으로 채워 넣은 지식도 없으면서 주워 들은 말로 거짓된 에고를 꾸미는 게 고작입니다.

책은 이어서, PANAS에서 제시하는 긍정, 부정 항목의 하나하나를 잘게 해설합니다. 순서가 중요하지는 않으나 여튼 긍정 섹터의 처음에 오는 것은 "관심있는(interested)"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몰입할 때, 반드시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여튼 감정과 지적 능력이 가장 활기를 띠는 건 사실이죠. 저자는 여기서, 니체 같은 사람이 행복의 "피상적이고 얕음"을 비웃었으나 설령 그런 이도 이 "관심있는" 상태를 두고 그런 비난을 할 수는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실제 니체 역시, 그의 영감어린 저작을 구상하고 신들린 듯 글을 써내려갈 때 가장 "관심있는(무엇을 향해서건 간에)" 상태였으며, 또한 가장 "행복"하지 않았겠습니까? 독자인 제 생각이지만 PANAS의 구성자들은 아마도 니체 같은 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일종의 방어논리까지 다 고려하여 이런 체계를 만들어낸 듯합니다.

PANAS에는 부정적인 감정 역시 포함되는 점 앞에서 본 바 있습니다. 저자는, 사람이 행복을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체험의 pool 안에 부정적 감정이 일정 부분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게 PANAS의 암묵적 전제로 깔렸다고 말합니다. 하긴, 내내 몽롱하게 행복하기만 한 체험의 연속이라면, 종국에 가서는 그게 행복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지루함으로 변환되어, 일종의 고통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습니다. 단맛은 쓴맛과 대비될 때 자신의 정체성을 더 분명히합니다. 바버라 프레드릭슨(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교수이며 올해 54세입니다) 등은 2013년의 한 실증 연구에서, 행복과 불행이 대략 3:1 정도의 비율로 섞이는 게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는군요. 이런 연구를 두고 아주 피상적 태도로 비난하는 자도 있으나, 실증 연구에 제대로 몸 담아 본 적도 없는 철저한 무식자나 쉽게 내뱉는 비난이며, 예컨대 "튜링 테스트" 같은 건 인공지능 이론 중에서 가장 주관적이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자의적 설정이라는 점을 전혀 이해 못하고 함부로 날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에 캐나다로 이민 간 분들이 꽤 많습니다만, 설령 "행복의 나라"에 간다고 해도(한대수 씨의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그 구체적인 개개인이 꼭 행복해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어느 연구 결과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는 답을 내어놓습니다. 출신국(꼭 한국이라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등 여러 나라)에서는 현저한 불행을 체험했던 이들이, 새로 정착한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평균적 시민이 누릴 만한 수준의 만족을 체험했다는 거죠. 저자는 이를 두고 "사회의 질이 유전의 힘을 이길 수 있다(p75)"는 멋진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물론 사회의 질이 뛰어나도 유전자의 질이 워낙 나쁜 닭대가리의 경우 끝없는 허언과 망상을 통해서나 그 못된 천성의 해악을 감당해낼 수 있죠.

과연, 유전의 힘은 생각 외로 강하기도 합니다. 책 p81에는 필립 브릭먼의 등의 1971년 연구를 인용하며, 이른바 "hedonic treadmill(번역은 '쾌락의 쳇바퀴')"라는 개념이 소개됩니다. 일시적으로 어떤 자극을 받아 감정이 고양되었다고 해도, 마치 인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듯,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균형점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이런 균형점은 누구라도 자신의 고유값을 가지며, 가령 예를 들면 복권 당첨이란 극단적 체험을 해도("행복이 요행"이라는 고전 정의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봐야겠죠), 사람이 칠칠치 못하면 제 타고난 복이 고작 그것이라고 거금을 탕진한 채 도로 출발점으로 돌아오곤 하는 게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혹은, 어설픈 독후감이 신문 독자 투고란 같은 후미진 구석에 게재되거나 판촉 공모 행사에 당첨되어 푼돈의 상금을 받은 후 흡사 작가 반열에나 오른 양 큰 착각과 나댐에 빠졌으나, 결국 제 초라한 실업자의 분수가 전에 비해 다를 바 하나 없어진 걸 깨닫는 초라하고 씁쓸한 자각과도 같죠

행복은 과연 환경의 힘, 유전의 힘 중 어디에 더 크게 좌우되는가? 행동유전학자들은 후자의 연구에 보다 치중하고, 환경론자들은 전자를 변수화하여 구체적 상관관계를 계산해 내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다만 인생의 특정 국면을 보다 정밀하게 들여다 볼 어떤 계기를 마련해 줄 뿐입니다. 이후 책은, 환경론자의 방법, 그리고 심리학자의 방법을 번갈아 가며 소개합니다. 전자는 행복을 위해 먼저 환경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이며, 후자는 "그저 마음 먹기에 달린 거야!" 같은 내용입니다. 저자는 분명 심리학자이지만, 개인에게 역으로 과부하를 안기는 후자의 방법에 대해 일정 정도 한계선을 긋고 논의를 전개합니다. 즉, 개인의 행복에는 "환경의 변수"가 큰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소박한 상식에도 크게 부합하는 결론입니다. 성인, 초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인격 수양이나 의지만으로 평정의 경지에 도달하겠습니까. 절대 불가능이죠.

1.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

이 역시 우리가 흔히 듣는 지침과는 반대방향을 걷는 명제입니다. 오히려, 좋아하고 않고는 주관적 착각일 수 있으니 객관이 검증해 놓은 "잘하는 일"에 매달려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많이들 권하죠. 둘이 일치하는 사람은 가장 운 좋은 편이겠으나, 많은 경우 이는 불일치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젊은이들의 클리셰라면서)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란 주문에 정말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하긴 한 번뿐인 인생, 어떤 여한이 남아서도 내내 불행하지 않겠습니까.

2. 되어야 하는 나보다 되고 싶은 나를 본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당위를 위해 실존을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양,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양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자기 부인(self-denial)이란 결국 고통과 인욕의 과정이며, 대체 그렇게나 큰 대가를 치르고서 얻는 완성, 성취라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한 번쯤은 의심을 품어 봐도 됩니다. 책에는 첼리스트 요요마의 일화가 나오는데, 자신이 오래 준비해 온 연주가 "매우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게 19때의 일이라고 회고합니다. should를 want to로 바꾼 것이, 연주자로서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 그리고 이 전환점이 59세가 아닌 19세에 마련되었던 게 얼마나 큰 행운이냐는 그의 말도 있습니다. 근데 독자로서 저는, 이처럼 성취의 과정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게, 행복한 연주자로서 그의 능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예에서 배워야 할 건 "말 자체"가 아니라, 그가 뿌듯이 느끼는 행복감 그 자체에 전염되는 체험이기 때문이죠.

요즘 소확행이란 말을 흔히 듣고 씁니다. 영어의 savoring은,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는 행복한 삶의 기술이라고 합니다.(p132). "젊어서는 쾌락이요, 나이 들어서는 의미"라는 말도 참 멋집니다. 그런데, 기왕이면 젊어서도 의미를 함께 탐구하고, 늙어서도 적절한 관리와 절제를 통해 쾌감을 함께 누리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물론 망령이 난 닭대가리처럼 나잇값 진상을 떠는 건 곤란하겠지만 말입니다. 특히 저자는, 한국인들처럼 "어떤 의미"를 중시하는 민족에게 이 과정은 특히 깊이 탐구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p182에는 안니발레 카라치(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입니다)의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는 명화가 나오는데, 헤라클레스는 이 그림 속에서 두 여인을 두고 고민합니다. 한 여인은 고통스럽지만 의미로 가득한 탁월한 자의 삶을 살라고 권유하며, 다른 여인은 한 번뿐인 인생 즐겁고 신나야 하지 않겠냐고 합니다. 근데 저자는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왜 이 둘 중 반드시 택일을 해야 하느냐며 반문합니다.  앞 문단에서 제가 미리 예측한 결론대로, "삶은 택일의 문제가 결코 아님"을 깨닫는 게 참된 행복의 시작이라는, 책의 훌륭한 통찰이 비로소 전개되는 겁니다.

저자는 삶의 4대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일, 사랑, 영혼, 초월

이 명제는 ROBERT A. EMMONS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가 정립하였으며(이 책 p282의 후주에 나옵니다), 그 외에도 자계서 저자로 유명한 폴 피어슬 박사의 저서에도 등장합니다. 일 없이 성취 없이 망상으로만 오탈허송세월하는 자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그저 불행의 원천일 뿐입니다. 가족에게 배척당하고 불륜상대나 찾아다니는 노파에게 행복이 있을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다 한들 제 영혼을 잃고 수전노 신세로 떨어진다면 그 사람은 자신 아닌 남의 행복을 간수하는 불쌍한 노예입니다. 초월에 대해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미천한 짐승입니다.

행복은 물론 자기 자신의 행복이 메인입니다만, 자기 중심성을 극복 못하는 자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심오한 역설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마치며, 책의 명제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반드시 자신만의 자작곡을 지어 볼 것을 권유합니다. 하긴 행복해지겠다면서 남의 행복론만을 암송하는 모습도 엄청난 모순이죠. "굿 라이프"란 결국 어깨에 힘 빼고, 집착을 버리고, 내면의 정직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웃과 소통하는 가운데 발견하고 이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저자의 <프레임>도 함께 읽어 보시면(이미 베스트셀러지만)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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