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에르의 처음 프랑스어 - 프랑스어 찐 왕초보를 위한 100일 완성 프로젝트
노민주(주미에르)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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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는 우리 주변에서 어휘상으로도 그렇고 제법 쓰일 때가 많습니다. 서래마을 같은 곳만 봐도 프랑스인들이 많이 살며, 심지어는 드라마를 봐도 단어를 알아야 등장인물의 의도를 비로소 정확히 알 수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어는 발음도 어렵고, 철자와 발음이 잘 연결되지 않아 첫 허들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초보자에게 너무 어렵지 않게 기초를 잡아 주는 교재와 강의가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52 같은 곳을 보면 기초 회화 표현을 가르칩니다. QR 코드도 찍혀 있어서, 영상을 보고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지 그 이해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nchante! 라고 하면 반갑다는 인사입니다. 교재에는 저자께서 큰 소리로 따라하며 연습하라고 적어 두었는데, 외국어 공부할 때 가장 필요한 태도가 이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C'est facile?은 "그거 쉬워?"라는 뜻인데, facile은 영어 단어에도 이 말이 있습니다(프랑스어에서 기원). 발음은 다르지만 대체적인 뜻은 서로 같기도 합니다.

책에는 프랑스어의 왕이 명사라고 하고 있으며, 재미있게도 형용사는 명사의 오른팔이라고 합니다. p104를 보면 형용사의 분류로, 기본 형용사, 색깔을 나타내는 것, 맛을 나타내는 것, 감정, 성격을 나타내는 것들이 예시됩니다. 이 책은 모두 17개의 위니떼(unite), 100개의 르쏭(leçon)으로 구성되었는데, 형용사는 위니떼 06에서 leçon33~40을 통해 배웁니다. 르쏭이 100개인 이유는, 이 교재가 학습자의 기초 100일 완성을 목표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학습자가 프랑스어 공부에 보다 편안하게 접근하게 도우려고 "만능 표현"을 가능하면 먼저, 많이 가르쳐 주려고 노력한 편집이 눈에 띄는데, p116의 C'est 같은 표현이 그것입니다. C'est는 "쎄"처럼 발음하며 우리 나라 사람들도 인기 샹송 등을 통해 귀에 익을 구절입니다. 유명한 표현 중에 C'est la vie가 있는데 "인생은 그런 거야"라는 뜻입니다. C'est gratuit?(이거 공짜야?)라고 물어 보자, Non, rien n'est gratuit(공짜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대답이 나옵니다. 이 대화는 뭔가 심오한 느낌마저 줍니다. 비록 문맥상 "이 가게에 공짜는 없다"는 뜻인 것 같지만 말입니다.

C'est si bon이란 말도 있습니다. 1960년대 무교동에 있었다던 음악감상실 간판이기도 하고, 그 전에 프랑스를 비롯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샹송 제목이기도 한데, 이브 몽탕이 원곡을 불렀고 미국에서 딘 마틴 등이 번안하기도 했죠. si는 여기서 "매우"라는 뜻의 부사입니다. 아무튼 책에 나오는 대로 c'est는 정말로 만능의 표현이어서, p116 하단에는 이 어구 뒤에 올 수 있는 형용사 등 일곱 개의 예시를 들고 있습니다. vrai, genial 같은 형용사들이야 그렇다 해도, top 같이 영어에서 유입된 단어도 이 뒤에 올 수 있다는 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C'est tellement intéressant!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 표현을 보면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로 시작하는, 링컨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문이 있습니다. 물론 score 같은 너무나도 예스러운 조수사는 현대에는 거의 쓰지 않으며 미국에서도 four score까지만 말이 나와도 사람들 사이에 벌써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 용법이 영어에 19세기까지 남았던 이유는 프랑스어의 영향 때문인데, 이 책 p135를 보면 87을 읽는 방법으로 quatre-vingt-sept라고 가르쳐 줍니다. 공식으로 풀어서까지 가르쳐 주는데 4×20+7이라는 것입니다. 또 영어에서도 조수사 뒤에 -s가 안 붙는다는 게 토익 등에도 나오는데, 이 책도 p134를 보면, 80은 quatre-vingts라고 해서 -s가 붙지만 81, 82 등은 그냥 vingt라는 점에도 조심하라고 가르칩니다.

초보자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부담 없이 편한 표현으로, 컬러풀한 편집을 써서 독자한테는 정말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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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DELF A2 - 국내 최초 新유형 반영 프랑스어 능력시험 대비 한 권으로 끝내는 DELF
정일영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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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인 2018년 정일영 선생님의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리뷰를 올렸었고 지금도 제 블로그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은 개정2판이며 판형은 그대로지만 장정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저자 정일영 선생님은 델프 감독관, 채점관 경력도 지닌 분이므로 이 시험을 대비하는 데 최적의 코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원스쿨닷컴에서 듣기영역, 구술영역, 모의테스트, 필수어휘집 pdf 등을 제공합니다. 예전에는 책에 인쇄된 쿠폰(은박을 긁어낸 후 사용 가능)을 등록해야 이 자료들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로그인 후 바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책은 모두 네 파트로 나뉩니다. 1부는 듣기평가(compréhension de l'oral)인데, oral은 여기서 구어,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가리킵니다. compréhension이 "이해"를 뜻하므로(영어에서도 비슷한 모양이죠), 이 제목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 평가를 의미합니다. 반면, 파트 4의 명칭 production orale는 수험자가 직접 말하게 하는 구술 평가를 뜻합니다. 자칫하면 반대 의미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파트 2는 독해, 파트 3은 작문 평가입니다.

듣기자료는 237Mb 분량의 압축 파일인데, 해제하면 433Mb 가량 됩니다. p38 같은 곳을 보면, 전철 역사 안에서 들을 수 있는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A2 등급 시험이므로 말하는 속도는 느긋한 편이고 남성의 목소리로 들려 줍니다. 한 페이지를 넘기면 문제들의 한국어 번역이 나오고, 다시 한 페이지를 넘기면 읽어 주었던 그 스크립트가 프랑스어로 제시됩니다. le TGV va partir a 15 h라는 부분은 열차가 15시에 출발한다는 뜻인데,  15 h라고만 나오지만 이걸 실제로 읽을 때에는 quinze heures, 즉 껭즈 외 정도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실제로 이 음원에 나오는 남성의 목소리도 그렇습니다.

문제가 살짝 함정을 팠다고도 할 수 있을까요?  여기는 분명 역사(驛舍) 안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세 선지를 내놓습니다. 영화보기, 조깅하기, 식사하기. 얼핏 보면 답이 없는 듯하지만, 대본에서는 offre un service de restauration이라고 했었으므로 답은 ⓒ prendre un repas(쁘랑드르 엉 레빠)입니다. 역사라서 식사가 바로 연상되지 않을 수 있어도 기차 안에서 식사 서비스가 제공되죠. 한국이라면 잘 들을 수 없을 안내 내용이긴 합니다.

p128을 보면 라디오를 듣고 문제를 풀라는 취지로 지시합니다. "라디오(radio)"에 프랑스어로는 혹시 무슨 다른 뜻이 있을까 싶어도 우리가 아는 전파방송 라디오 그냥 바로 그 뜻입니다. r 발음은 불어에서 구개수음(uvular)인데 실제로 요즘 불어를 들어보면 특히 두음일 경우 우리가 아는 [r]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오히려 독일어의 어두 r이 특징적인 구개수음이더군요. 이 음원에서도 제 귀에는 그리 들렸습니다. 필수적이라고 할 때 p131 하단에 나오는 indispensable(앙디스뽕사블르)는, 영어에서도 발음만 다를 뿐 저 철자 그대로 씁니다.

요즘 트럼프가 전세계에 관세를 매기면서 tariff가 아름다운 단어라고 했었는데, 영어에서는 tariff가 관세(關稅)라는 뜻이지만, 프랑스어에서는 그냥 가격(price)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어 tariff가 분명 프랑스어 tarif에서 유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뜻이 이렇게나 달라집니다. p271 같은 곳을 보면 그 예가 분명히 나옵니다(가격이 200유로라고 하는 대목). A2를 무리 없이 풀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 단어나 표현들을 잘 알아야 하겠는데, 예를 들어 p299 같은 곳의 les dechets industriels는 p301에 나오듯 "산업 쓰레기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복수형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볼륨도 듬직하고 무엇보다 몇 년 전에 개정된 델프 유형에 잘 맞게 새로 짜여진 교재라서 믿고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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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은 HIM 있게 말한다
임붕영 지음 / 미래지식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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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주장하는 HIM의 본질은, 물론 힘(power)라는 뜻도 되지만 다음의 세 요소를 품습니다. 첫째 humor, 둘째 impact, 셋째 meaning. 이 세 개념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 책에서는 성공적인 대화에 언제나 이 HIM이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일단 여기까지만 읽어 봐도 공감이 되는데, 이 책에서는 더 구체적인 방법론을 독자에게 자상하게 정리해 줍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78을 보면 유대인의 속담에 이런 게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울어라.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는웃어라." 저자는 웃음이 최후의 승자라는 말도 덧붙이는데, 우리 독자들도 자주 듣던 "일류는 힘들 때 웃을 줄 아는 사람이다"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합니다. 웃음의 긍정적인 효과는 경우에 따라 질병도 낫게 하고, 주변에다 일을 잘 풀리게 하는 좋은 기운 역시도 옮긴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한국 속담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도 했죠. 사업체이든 가정이든 웃고 즐겁고 화합하는 분위기라야 직원들에게도 그 긍정의 에너지가 방사(放射)되지 않겠습니까.

p140을 보면 모든 갈등은 타인의 감정을 잘 살피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고 합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절실하게, 감정을 담아 말을 한다고 하는데, 상대방은 그 말을 오해하고 기분이 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더 큰 원인이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 있다 해도(즉, 상식적으로 바른 말을 했을 뿐인데 상대가 곡해하는 상황), 나 역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좀 더 무난하고 덜 공격적인 표현을 택할 수도 있었으니, 이 역시 내게 잘못이 없다 어찌 단정하겠습니까. 대화의 기술은 아무리 다듬고 다듬어도 개선시킬 여지가 남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효과적인 소통에 (의지는 충만한데도) 실패하는가. 첫째 지나치게 재미있게만 말을 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외워서 준비한 후 남들 앞에서 풀어놓는 조크는 오히려 역효과만 부르기 쉽습니다. 유머 감각은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공감하며 빚어지는 것이라야지, 억지로 자신이 주목 받으려는 의욕 과잉은, 그게 의도한 대로 효과가 안 날 때 거꾸로 당사자에게 자신감을 빼앗아갑니다. 둘째는 과거의 좌절, 실패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안 될 것이라는 자기세뇌도 한몫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남은 잘하는데 나만 이렇다고 불필요한 비교를 하는 데에도 세번째 원인이 있으며, 넷째로는 내 감정을 내가 조절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이 외에도 p164 이하에서 저자는 두 이유를 더 짚어 줍니다.

저자 임붕영 교수는 한국유머학회 회장직도 맡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씀을 그렇게 재미있게 하십니까?" 저자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중학생 때부터 탈무드를 읽어서 그렇습니다."라고 답한다고 합니다(p185). 이어 탈무드가 왜 유머의 원천인지에 대해 일곱 가지의 원인을 저자는 제시하는데,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이처럼 저자가 토픽마다 딱딱 몇 가지로 보기좋게 정리를 해서 독자들에게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독자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이 정도는 나도 따라할 수 있겠다며 자신감도 생기는 것입니다.

요즘은 컴퓨터, 디지털의 힘으로 세상 자체가 굴러갑니다. 이런 세상에 아날로그적인 무엇을 들이대면 비웃음이나 사기 쉽고, 시계도 디지털 표시에만 익숙해진 요즘 어린이들은 1부터 12가 새겨진 아날로그 방식의 장치는 못 읽어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그 근본이 아날로그 구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호소, 매력, 추억 상기에 어쩔 줄 몰라합니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립고,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건 여전히 아날로그(p239)이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명쾌한 분석입니다. 이 아날로그 감성을 대화에 물씬 반영하는 게 임붕영 교수님처럼 말을 잘하게 되는 비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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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쿠데타 - 글로벌 기업 제국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클레어 프로보스트 외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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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 시인 청마 유치환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란 천재적인 시구를 만들었습니다. 깃발이 펄럭이는 음향이 사람 귀에 안 들리는 건 아니지만, 깃발이 아우성치는 그 맹렬한 기세, 그 안에 든 다량의 메시지까지는 일일이 고막에 못 담는다는 뜻이겠습니다. 세상사는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충격파와 움직임이 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기업은 군대와 달리 토착민들에게 달콤한 미소를 띠고 접근합니다. 그들이 제공할 서비스와 상품은 지금의 삶의 질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향상시킬 듯 현혹합니다. 맥도널드나 코카콜라 같은 달콤하고 간편한 상품은 그것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분위기 등과 언제나 일체가 되어 어필하며 젊은층은 그런 브랜드가 자리한 장소에 젊음의 활기와 낭만이 함께하는 듯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감언이설 교언영색으로 타국에 진출한 기업들, 글로벌 제국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주권을 잠식하며 어느새 현지의 정치적, 산업적 헤게모니까지를 장악합니다. 저자들은 이런 장기간의, 은밀한 권력 교체를 일러 "소리 없는 쿠데타"라 일컫습니다.

책의 원제목은 Silent Coup인데, 영어에서는 그냥 coup라고만 해도 프랑스어 원어의 coup d'etat를 뜻한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쿠데타란, 주권자인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정체불명의 소수가 권력을 탈취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글로벌 기업은 한편으로 현지의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중을 세뇌하여 그공중의 참된 이익이 무엇인지 판단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시민들은 다국적 기업의 탐욕이 향하는 곳에 곧 국가와 사회의 이익이 있다고 착각하게 길들여집니다. 군대가 주도한 쿠데타는 사람들의 주의를 쉽게 끌고 지탄을 받다가 좌초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기업들이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 찬탈은 미리 감지하기도 어렵고 쿠데타가 끝난 후에조차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자유의 투사 만델라가 노력한 끝에 남아공 국민들은,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은 노예에서 주권자의 위치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경제적으로도 완전한 자유를 찾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p63을 보면 남아공 마리카나 주민들이 빈약한 임금을 사실상 강요당하며 얼마나 어려운 삶을 영위하는지가 잘 고발됩니다. 투자자-국가 소송이라는 게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며 강대국의 강요 비슷하게 개발도상국에도 규범으로 속속 도입되었는데, 이게 현지의 실정법과 거주자, 토착 기업의 이해를 얼마나 침해하는지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번 다국적 기업의 눈에 나면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데, 조만간 한국인들도 그 무서운 위력을 구경하고 거액의 국부가 밖으로 유출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미얀마는 영토도 광활하고 인구도 많으며 부존 자원도 넉넉한, 하늘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근세 이래 이 땅의 국민들은 풍요로운 삶을 누려 본 적이 없었습니다. 군부는 경제특구(p191)를 설치하여 외국 자본을 유치하려 애쓰지만 부패한 군부와 유착한 해외 자본이 어쩌다 이 제한지역에 발을 들여 놓아도 그들은 현지의 자원과 이익의 착취에 혈안이 되었을 뿐입니다. 정통성과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한 군부가, 자주적이고 국민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한 계약을 맺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수백 년 전부터 서유럽의 자본은 카리브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하여 단일 농작물(상품 작물)만 재배하게 강요했습니다. 이를 플랜테이션 농업이라 부르며, 정작 현지인들은 일용할 양식조차 부족하여 빈곤선상에 내몰렸습니다. 이처럼 자본이 국경을 넘어 활보할 때 기층 민중의 생활은 더욱 곤궁해지며 마치 자본이 전제군주나 되는 양 그에게 세공을 바치며 자유를 박탈당하는 게 상례였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바로 우리의 주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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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백끼 - 미식의 도시 홍콩에서 맛보는 100끼 여정
손민호.백종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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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도시 홍콩에서 맛보는 100끼 여정!" 크~ 사람에게는 역시 먹는 낙이 있어야, 살아야 할 이유가 매번 생성됩니다. 물론 당뇨가 있다거나 한 분들은 칼 같은 의지로 조심하셔야 하겠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은 역시 혀 끝에서 느끼는 쾌감이 있어야 뇌도 활성화하고 스트레스 대미지 누적도 리셋되는 듯합니다. 당뇨 있으신 분들이라 해도 이 책의 레시피를 조심스럽게 보면, 본인에게 잘 맞는 음식을 고를 수 있습니다. 그 기름진 중식을 다룬 책 중에 피해서 갈 길이 어디 있겠나 싶어도, 엄밀히 말해 중식과 홍콩 미식은 각각의 결이 제법 다릅니다.

(*북유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04를 보면 "차찬텡"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챕터가 시작됩니다. 차찬텡은 茶餐廳(차찬청)을 광둥식으로 읽은 건데(보통화라면 차좐팅이었겠죠), 저자의 말씀이 재미있습니다. 홍콩에는 집밥이라는 게 없고 모든 음식을 밖에 나와서 사먹어야 한답니다(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 이유가, 세계에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비싸다 보니 집에 부엌을 둘 수 없고, 이 차찬텡이라는 업소에 들러서 사 먹을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홍콩의 살인적인 렌트 수준이야 우리 모두가 알지만, 차찬텡 유형의 영업 번성에 그런 배경이 깔렸다니 뭔가 덩달아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차찬텡 고유의 풍미 발전은 사회 구조 모순의 부작용인 셈입니다. 다행히 모든 메뉴가 60 홍콩달러를 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역시 면 하면 세계 양대 산맥이 이탈리아의 파스타, 그리고 중식의 모든 면류입니다. 그런데 p159에서 저자들은 "차원이 다른 면 요리"로써 이 홍콩 고유의 메뉴들을 꼽습니다. 이 책에서는, 밥상에서 국수가 밥을 이기는 유일한 나라(지역)가 홍콩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한국에서) 순대를 시켜도 기호에 따라 돼지 간을 뺄 수도 있는데(반대로 더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홍콩에는 라면에다가 이 돼지 간을 얹어 먹는 猪潤麵(저연면)이 있다고 합니다. 홍콩에서는 쭈연민이라 발음하나 봅니다. 한국에서도 수원처럼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우육면(牛肉麵)이라는 걸 만들어 파는데, 저자들은 "홍콩의 우육면은 이름도 맛도 모두 달랐다"고 합니다. 牛腩麵(우남면)이라고 쓰는데, 저 "남"이라는 글자가 예스24 같은 데서는 구현 안 될 수 있어서 잠시 설명하자면, 고기 육(달월) 변에 남녘 남 자를 씁니다. 腩이 양지라는 뜻입니다.

p211을 보면 저자들은 "홍콩 음식 하면 딤섬부터 떠오른다. 그러나 막상 홍콩에 가 보니 훠궈의 도시라고 할 만했다."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수원 같은 데 가 보면 사방팔방이 훠궈집이라서 아주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한자로는 火鍋(화과)라고 쓰는데, 음식점 간판에는 火锅라고 간체자로들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들은 재미있는 말씀을 합니다. "훠궈의 뿌리는 홍콩이 아니고 심지어 광둥 요리도 아니다. 쓰촨이다." 사천성은 한국인들이 너무도 사랑하는 명대 소설가 나관중의 <삼국연의> 등에서 나오듯 유비의 촉나라가 자리했던 서북의 먼 변방입니다. 그런데 수원역 같은 데를 가 보면, 어떤 사천요리 특선 가게가 辣妹子라는 간판을 달고도 있죠. 사실 랄매자(라메이즈)는 후난[湖南]성 여성을 주로 가리키는 말이지만 뭐 사장님이 지가 스스로 라메이즈라는데 남이 시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라탕이라고 할 때에도 한국식으로는 가운데 글자를 랄(辣)이라고 읽어야 원래는 맞습니다.

p322 이하에서는 로가닉이라는 레스토랑이 소개되는데 사이먼 로건이 홍콩에 직접 오픈한 곳이라고 나옵니다. 책에도 설명이 있듯이 자신의 이름 로건에다가 오가닉(organic. 유기농)을 합성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하네요. 이름하여 지속가능한 미식을 표방한다는데 솔직히 저는 심드렁한 느낌입니다. 여튼 이 책에서는 해당 레스토랑을 비중 있게 소개하기 때문에 독자인 저도 저자들의 태도에 따릅니다. 재료를 보니 감자는 윈난[云南], 가리비는 홋카이도[北海道]에서 공수해 온다고 합니다. 명품 식당답게 글로벌리 리소스풀합니다. 윈난 성은 정체자로는 雲南이라 쓰지만 책처럼 저렇게 표기하는 건 간체자죠.

요즘은 특히 여성들이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뷰(view)가 좋은 업소를 또 선호합니다. p460 이하에서는 유카 드 락(yucca de lac)을 소개하는데, 빅토리아 피크의 라이언스 전망대에 위치했으므로 뷰 관련해서는 최고로 꼽힙니다. 유카는 용설란의 일종으로 식물 키우는 분들이라면 알 수 있는 나무이고 lac은 프랑스어로 호수, 영어의 lake입니다. 한자로는 雍雅山房이라 쓰는데 두 이름 사이에 특별한 관계는 없습니다. 독자의 호기심과 관심사를 잘 간파한 우아하고 영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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