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여행 - 가족과 함께하는 첫 번째
장정호 지음, 김상화 그림 / 수경출판사(단행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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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을 일러 보통 "성웅"이라고들 합니다. "군웅, 영웅"의 차원을 넘어선 초인적 요소가 그의 생애에는 깃들어 있다는 뜻이죠. 해전에서 그가 적시에 보급을 끊어 반도에 침략, 주둔하던 왜군의 전략에 큰 혼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저쪽에서도 거물급 명장이 등판(?)한 대회전에서 보란듯이 완승을 거둠으로써 적장은 물론 본토의 간특한 왜놈 수괴인 관백 도요토미에게 전의를 상실케 한 공적이란, 누천 년을 두고도 오히려 칭송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허나 저자는 이런 역사적 의의나 관점을 상세히 설명하기보다, "어떻게 해서 그는, 당대 동아시아 세계 대전의 결정적 국면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가" 같은, 구체적이면서도 소박한 질문에 대해 이야기처럼 쉬운 포멧으로 그 답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전략 전술의 능수능란한 구사란, 특히 왜란 당시의 충무공처럼 물량 면에서 절대 열세인 입장에서, 그저 "머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축구에서 아무리 발재간이 좋아도 그 0.1초 동안의 챈스에서 킬러 인스팅트를 발휘하는 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니듯(발재간만 좋은 분은 축구 선수 아닌 분 중에도 꽤 많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오히려 신의 한 수를 구사하는 건 품성 자체가 완성의 경지에 다다라야 가능한 법입니다. 멘탈이 불완전한 자는 오히려 평소에 피우던 잔재주도, 위기에 몰려서는 머릿속이 하얘지며 망각하고 마는 법이지요. 하물며 민족 전체의 존망을 한 어깨에 책임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 책은 충무공의 생을 조명하되, 그의 발자취가 아직도 아스라이 남아 있는 남도(南道) 여러 곳의 명소를 저자께서 직접 답사하여 집필된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미소가 여러 번 머금어졌는데요. 일단 뒤표지를 보시면 책의 발간 취지가 12컷의 만화로 소개되었습니다. 재미도 있을 뿐더러 오늘날 우리가 충무공의 고결한 족적을 왜 되새기고, 앞으로 어떻게 현창해야 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인 독자는 물론 어린 학생들도, "까다롭고 낯선 옛날 역사" 같은 거부감을 떨쳐 내고 성웅의 행적에 한층 편하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대체 이순신 같은 성웅을 배출한 가문은 어떤 내력을 지녔는지 누구나 궁금해할 만합니다. 덕수 이씨이며 서울 건천동 출생이심은 독자인 저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이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근래 새주소명에서 이곳을 "마른내"로 바꾸었다고 적습니다. 건 자가 마를 건(乾), 천 자가 내 천(川)자였나 봅니다(쉽게 유추할 수는 있지만요). 저자께서는 예쁜 이름으로 잘 바꾸었다고 하시는데 저 역시 같은 느낌이며 아마 다들 생각이 비슷하실 듯합니다.

구도장원공인 이율곡과도 같은 문중에 동시대인이시긴 하나 (아무래도 당대의 가세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는지) 왕래는 자주 없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충무공의 조부 이백록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집안이 한미하게 전락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 때문에 젊은 순신이 번번이 입신 양명에 지장을 받았다던 과거의 정설을 잠시 언급하지만, 아주 최근의 학설(정설)은 이런 주장에 딱히 근거가 없다고 본다는 점도 소개합니다. 따라서, 이순신이 (억울한) 역적 누명을 쓴 집안 출신이라는 통념은 수정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백록은 조정암과 고유가 깊었으나, 사화에 연루된 건 아니고 연산(조정암 이전의 폐출 군주지요) 대의 어지러운 정치에 실망하여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책은 설명합니다. 그의 증조부는 연산이 세자 시절 스승을 맡기도 한 이거(李琚)입니다. 우리가 조지서와 허침은 알아도 이거가 연산의 스승 노릇을 한 사실은 잘 모르죠. 이거는 성종 연간 암행어사로 활약하여 탐관오리를 적발하기도 했으니 과연 그 증조부에 그 증손자입니다.

책에는 재미있는 만화가 여러 번 끼어들어 어린 독자층의 이해를 돕습니다. 요즘 가정마다 아동용 전집 몇 질 정도는 다들 구비하셨을 텐데요. 이전에도 전집은 애들 교육을 위해 몇 세트씩 갖춰 두었지만, 요즘은 그 중 상당수가 만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아동 전집에서 눈에 익은 듯한 포맷의 만화가 수시로 삽입되어, 입가에 미소도 머금게 하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주는 게 최고의 장점입니다. 텍스트는 장정호 선생이 집필하셨고, 이런 만화들은 김상화 선생이 담당하셨다고 나오네요. 위 문단의 내용 상당수(일부는 독자인 제가 보충해 넣었지만)도 만화로 설명되었기에, 어린이나 초심자가 읽기 상당히 편합니다.

저자도 말씀하시듯 이순신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늦은 나이인 32세에, 문과도 아닌 무과에 몇 번의 낙방을 거쳐 간신히 급제했습니다. 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기록이 미비하여 현재까지도 명쾌히 해명되지 못하고 있죠. 다만 어려운 가정 형편이 그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가능합니다. 전남 보성에서 수재로 소문 났던 박주선 씨(구 민주당 사무총장, 청와대(DJ 시절) 비서관 등 역임. 현 바른미래당 국회의원)도 동생들을 돌보느라 사시에 늦게 합격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죠. 그가 맡은 첫 공직은 "권지 훈련원 봉사"인데, 책에도 설명이 나오지만 "권지(權知)"는 임시직이란 뜻입니다. 이 시절에도 그는 강직한 품성을 구태여 감추지 않고 원칙대로 일을 처결하다 죄천당하는데, 인사 담당 관리를 탓할 것도 없이 조정의 최고 어른인 임금 자신부터가 못난 아집 분자였으니 이런 초보 공무원 시절은 고사하고 일생 전체가 얼마나 피곤한 여정이었는지는 벌써부터 조짐이 보였다고나 해야겠죠.

영웅의 일생에는 소소한 빌런이 들러붙어 서스펜스 양념 구실을 하는 경우가 왕왕 보이는데, 충무공 본인이야 물론 고달프기 짝이 없었겠습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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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1 - 서울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1
신정일 지음 / 박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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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화 유산은 인적 드문 시골이나 그윽한 산골에만 위치했으리라는 생각은 철저히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물론 도심에 소재한 건조물들은 전화(戰禍)나 경제개발 열풍에 밀려 소실 혹은 이전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쟁 같은 외부로부터의 사변이야 우리 의사대로 통제할 수 없으나, 여타의 정책 조치는 얼마든지 문화유산 보전이라는 목표를 더 상위에 두고 집행될 수 있습니다. 또, 본디 수백 년 동안 국가의 도읍으로 기능해 온 서울이야말로 숱한 문화재와 조상들의 흔적이 온전할 법한 공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회지 속에서 오히려 조상들의 숨결을 찾아내는 안목이야말로 밝은 눈 탁월한 시선이요, 우리들 역시 구태여 먼 벽지로 발걸음하기보다 가까운 곳에서 각성과 감흥을 먼저 찾는 습관이 들어야 마땅합니다.

조선 왕조의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라고 부를 수 있는 삼봉 정도전이 경복궁 과 사대문 등을 설계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저자 신정일 선생님은 역사에 남은 관련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여, <세종실록지리지>와 <신 증 동국여지승람>의 서술이 미세하게 차이가 남을 지적하십니다. 전자에는 숭례문(세칭 남대문)을 "서남(西南)"으로 적으나, 후자는 "정남(正南)"으로 평합니다(p44). 독자인 제 생각에는 이는 호칭이 다소 엇갈려도 무방한 듯합니다(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며 둘 다 맞습니다). 남대문은 현재건 과거 위치건 엄연히 방위상 종묘의 서북쪽입니다. 또 과거 기준 도성의 정중앙에서 봤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경복궁, 광화문 기준으로는 정남향이 맞으며, 이는 요즘도 우리가 광화문에서 스마트폰 지도앱 등을 이용하여 똑바로 남쪽으로 냅다 걷거나, 아니면 세종대로, 삼청로, 사직로 등을 따라 자동차로 이동해도 확인 가능합니다.

요즘도 강남과 강북을 나누지만, 조선의 수도로 기능하던 당시에도 남촌과 북촌의 나눔이 두드러졌던 듯합니다. 남부는 종가(현재의 종로) 이남에서 목멱산에 이르는 지역이며 부유한 상인들이 집결했고, 벽련봉(저자는 현재의 삼청공원 뒷산으로 설명합니다)에서 필운대(현재는 배화여고 경내, 혹은 배화여대 교정 남쪽에 위치합니다) 사이에는 협객(좋은 의미의 건달), 문인들이 몰려 살았다고 합니다. 둘 다 요즘 기준으로는 종로구 일대이며 현재의 강남북 구분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계층과 성향에 따라 거주지가 나눠지는 경향은 놀랍게도 닮았습니다. 운종가(이 역시 현재의 종로죠) 기준 남북촌 구별은 또 미세하게 다른데, 남촌에는 노론을 제외한 사색당파가 섞여 살았으며, 북촌에 노론이 집중 거주했다는 게 매천 황현(단, 구한말 사람임을 유의는 해야겠습니다)의 기록입니다. 북촌에는 또한 천민들도 거주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정쟁에서 패배하여 역적으로 몰려 노비 신분으로 떨어진 화족 출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절도 있는 가문에선 이른바 북촌 천출을 과도하게 부리지는 않았다고 하는군요.

유명한 비숍 부인의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고 저자는 인용합니다.

모든 조선인의 마음은 서울에 있다.... 어느 계급이라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단 몇 주 동안이라도 서울을 떠나 살길 원치 않는다. 조선인들에게 서울은, 오직 그 속에서만 살아갈 만한 삶의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p60)

어떻습니까? 현재 대한민국 국민 거의 모두의 이상한(?) 정서와 별반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부동산 투기바람이고 학군 선호 현상이고 간에, 모든 부작용은 결국 일반 대중의 어리석은 심리가 빚어내는 것입니다. 또, 근거 없고 국가 장래에 해롭기까지 한 무분별한 서울 선호 현상이 얼마나 깊은 뿌리를 지녔는지 이 대목만 읽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성, 한양 등으로 불렸던 당시 서울에는 이처럼 천민, 서민, 중소 장사치뿐 아니라 고관대작, 부호들이 각자 거주 구역만을 달리해서 경내에 섞여 살았습니다. 누구라도 아흔 아홉 간 구조를 넘어서 집을 지울 수 없었으며, 단청 등의 호화 장식도 엄금했다는 점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통설에 따라 "왕실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혹은 검약과 절제를 강조한 유교 이념)"을 말씀하시지만, 그 외에도 이처럼 좁은 사대문 안 공간을 개인이 마음대로 전횡하듯 이용하면 공익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현대의 서울(뿐 아니라 시급 이상 행정구역)에서도 엄격히 토지용도를 제한하고, 재개발을 규제할 뿐 아니라, 엄연히 사적 공간인데도 발코니 확장 등을 감독합니다. 많은 이들이 한정된 구역에 모여 사는 도시에서는 정해진 정책계획을 준수해야 하며, 안전 등의 목적도 별도로 신경 써야만 하죠. 모두 다 조상들의 실용적 지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은 1980년대를 제패한 인기 발라드 가수였던 이문세씨의 히트곡 <광화문 연가>를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건설교통부가 주관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選)"에, 바로 덕수궁 돌담길이 선정되었는데 이곳은 저 히트곡의 노랫말속에도 들어 있습니다. 덕수궁은 본디 경운궁이었는데 이는 을미사변 당시 정비(물론 명성황후라 불리는 바로 그이)의 죽음을 겪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고종이, 이후 경운궁으로 옮긴 데에서 그 뚜렷한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십 년이 지나 고종은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는데 이 일이 잘못되어 퇴위를 강요당하고 경운궁에 영영 거처를 정해버립니다. "덕수(德壽)"라는 허울 좋은 명칭과는 달리 고종은 다시 십 년 후 일제에 의해 암살당했으니, 이 우수 깃든 길목은 의외로 슬픈 역사의 사연이 스며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앞으로는 이곳을 지나도 그 심회가 편치만은 않을 듯하고, 특히 여자친구와는 같이 걷기가 망설여질 것 같아요(고종과 그 배필 되시는 분이 비극적이고 불측한 사변으로 헤어졌으니 말입니다).

<조선경국전> 같은 아주 오래된 책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여러 풍속을 담은 <경도잡지> 같은 출처에서도 우리 후대인들은 여러 흥미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경도잡지>는 우리도 국사 시간에 배운 실학자 유득공이 지은 책인데, 오늘날 매거진(magazine)이라고 할 때의 雜誌와는 한자가 다릅니다("雜志"라고 쓰더군요). 한양도성의 둘레는 약 18.6km에 이르는데(책 p120), 이 길이는 리(里) 단위로 환산하면 47리 정도입니다. 이 코스를 놀이삼아 하루 안에 완주하는 게 세시 풍습 중 하나였다는데, 잘 걷는 사람은 열 시간 정도에 마칠 수 있다고 저자는 말씀하십니다. 요즘 서울시에서 "차 없는 날", "차 없는 길" 등을 설정하여, 시민들에게 오백 년 도읍의 유서 깊은 고장 곳곳을 직접 도보로 체험하게 권장하는 건, 따라서 아주 바람직한 캠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세먼지만 싹 없어졌으면 더할나위가 없겠건만 말이죠.

사대문과 사소문은 이 긴 성곽을 통과하는 중요 시설이었습니다. 도성의 담장은 높기도 하거니와, 군사 정변을 일으키고자 한 세력조차 쉽사리 넘보지 못하여, 반드시 (적어도) 어느 한 관문을 골라잡아 수문 진영과 연통이 되어야만 진입이 가능했습니다. 이 중요한 시설이 지금껏 남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일제의 간악한 농간으로 인해 상당수가 철거되었지요.

동대문은 본디 흥인문이었는데 고종 연간에 개수하였고, 한참 앞서 세조 연간에 "한성의 동쪽 지세가 낮아 산세(山勢)의 형상을 가진 갈 지(之) 자를 넣어 낮은 지세를 높이고 강하게 만들려 하였다"는 서술이 책에 나옵니다(p138).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동대문(흥인지문)의 지명 유래에 대해 궁금할 때마다 여러 자료를 찾아 보았는데, 기록마다 개명 사실을 개수 사실과 혼동하여 모두 고종 연간으로 서술하여 어리둥절할 때가 많았습니다. 신정일 선생님의 이 책은 이 점을 명확히 분간하여 정리하셨기에, 앞으로 다시는 개인적으로 헷갈릴 일이 없을 듯합니다. 아주 속이 다 시원할 정도입니다!

2권 경기도편에도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중 한 분인 이식에 대한 서술이 나옵니다만, 이 1권에는 월사 이정구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성균관 연화방(蓮花坊) 집터에 그는 절묘한 설계를 베풀어 연못에 딱히 관리를 하지 않아도 항상 일정 수위가 유지되게 했습니다. 계일(戒溢)은 한자를 풀어 쓰면 "넘치는 것을 경계함"인데, p148에는 후학들을 일깨우는 장문의 수상록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요지는, "나 자신의 깨달음(주자 식의 격물치지이겠지요)이 청정함을 유지하면 태도에서 교만함이 사라지는데, 이처럼 베움을 통해 인격을 지키는 처신은 여간한 수양이 아니고서는 힘들며, 마치 저 연못의 상태와도 같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곳을 들를 때 유심히 보아야겠습니다. 위치는 우리은행 연남동 지점과 혜화경찰서 사이입니다.

고려 중기에도 이미 이곳 서울을 남경이라 칭하며 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개경 중심으로 형성된 세력가들의 반대가 심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자 신정일 선생님은 특히나 서울의 지세와 형국이 아름답다고 강조하시네요. "산과 강이 자연스럽게 도시를 감싸며 흐르는(p183)" 곳은 세계에 유례가 없음에도, 사람들은 외국의 산만 좇아 유람을 꿈꾸는 건 사실 실속을 못 차리는 우행에 가깝습니다. 외국에서 아웃도어 명품으로 유명한 어느 메이커가, 한국에서 상당 물량을 소화하겠다며 오퍼를 넣자 농담인 줄 알고 무시했었다고합니다. 주말마다 산을 오르는 엄청난 수의 등산객들을 보고서야 진지하게 계약에 임했다는 일화도 있죠. 서울의 그 숱한 명산을 놓치는 등산가라면 진정 가까운 곳의 보석을 놓치는 청맹과니와도 같습니다. 이 책의 저술 취지 자체가 "지척에 있는 소중한, 천금 같은 문화재부터 살피자"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그저 산수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품은 고장의 명산 명수 답게, 숱한 명유(名儒)의 일화와 사연을 담았다는 게 또한 특기할 만하죠. 김상헌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가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라는 시조를 남긴 바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국어책에서 배운 내용이지요. 병자호란 당시의 기구한 역사에 대해서는 이 책 2권의 남한산성(경기도 광주 소재) 파트에 비교적 자세히 서술됩니다. 삼각산이란 이름을 가진 곳은 두어 군데가 있는데, 이 시조에서 읊는 삼각산은 북한산입니다(그러니까 이 책 1권 서울편에 나오지요). 북한(北漢)은 한성, 혹은 한강의 북쪽이라는 이유에서 그리 이름이 붙었으니 행여 북한(北韓)과 혼동할 일은 아닙니다.

지금도 서울 강동구에 백제 시대의 토성이 여럿 발견되어 문화재로서의 보존과 개인의 사유 재산권 행사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죠. 어쩔 수 없는 게, 이 서울 땅(경기도 일대도 마찬가지지만요)은 백제 시절부터 발달된 문명권이 여럿 자리하여 각축을 벌이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산성 역시 그 무렵으로까지나 역사가 거슬러올라가는 아주 유서 깊은 유적입니다. 개로왕(벡제 21대)과 개루왕(4대) 임금에 얽힌 사연도 언급(p147)되고요. 한음 이덕형 대감은 이곳을 고쳐 지어 도성 외곽을 방어하게 지시한 적도 있다고 나옵니다.

압구정 일대는 본디 한적한 경기 남부의 농촌으로서 번화한 도심과는 아무 연이 없던 고장이었습니다. 책에는 1970년대 당시 현대건설이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강남 일대를 개발하던 이야기가 짧게 언급되었는데, 역사서에 곧잘 기록이 있던 저자도(1950년대만 해도 시민 휴양지로 애용되던)가 어찌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를 설명하기위해서입니다. 이 일대는 한명회 개인의 사유지였으며,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한림학사 예겸(倪謙)이 그의 청을 받아 이리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일화에서 "진압"은 물론 鎭壓이라고 쓰지만, 압구정의 "압"은 오리 압(鴨)도 아니고 狎이라고 씁니다. 비둘기(鷗)를 가까이한다는 뜻이죠.

오늘날 서울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 중 하나인 여의도는 고려 시대에는 귀양지였다고 합니다. 국회의사당뿐 아니라 방송국, 증권회사 등 중요한 시설이 대거 밀집했고 중산층 거주지인 아파트도 잔뜩 들어섰죠. 이곳은 1960년대 후반만해도 원거주자들이 있었으나 "불도저 시장" 김현옥 씨가 급하게 개발을 추진하면서 멀리 관악구 일대로 밀려났습니다. 여튼 양화나루는 한양의 "천연 방어선"을 이뤘는데, 이처럼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도 왜란, 호란 등을 겪으며 무력한 시절을 겪었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양화나루도 그저 한강변의 휴양지 중 하나이기만 한 게 아님을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예사롭지 않게 보일 듯합니다.

보천교라 함은 조선 후기에 우후죽순처럼 생긴 증산교 계열의 신흥 종교였는데, 이를 민심 동요의 한 통로로 파악한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고 그 서울 본거지였던 십일전은 지금의 조계사로 개축되었다고 합니다. 현 조계사 터가 경기도 일원이었으니만치 설령 유서 깊은 사찰이 있다 해도 별반 이상할 바는 없으나, 왜 하필 거기 조계사가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는데 그런 사연이 있다는 걸 책을 보고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이곳은 물론 강남이지만 강북으로 올라와 인사동 쪽을 보면 태화관이 있는데,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 선언을 한 유적지이지요. 서울은 이처럼 근현대사의 주요 족적까지도 곳곳에 품은 실로 매력 넘치는 도시입니다.

현재 마른내로 불리기 시작한 건천동 일대만 해도 바로 충무공이 탄생한, 참으로 뜻깊은 지역입니다. 흔히 큰 인물은 지방에서 난다고 알려져 있으나, 옛 선인들도 상서롭기 짝이 없다고 본 빼어난 풍수를 두루 갖춘 곳이 바로 서울입니다. 그런 서울이니만치 나라를 구한 명장, 삼천리 이백만 생령의 살림을 두루 살핀 명재샹 등 숱한 인물을 베출한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우리들이 서울에 사는 자부심은 그저 문화 혜택을 쉬이 입을 수 있다거나 비싼 곳에 거주한다는 속물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이처럼 천 수백 년에 걸친, 세상에서 가장 오랜 문명권 중의 한 자락에 산다는 참된 자각이 우선되어야 할 듯합니다. 당장 여친(남친)과 시내를 거닐 때도, 아득한 예전 조상들이 풍류를 즐기거나 목숨 걸고 지켜낸 숨결을 혹 의식한다면, 훨씬 더 재미나고 깊은 추억을 남기는 체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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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 한국 KBS, 영국 BBC, 독일 ZDF 방영 다큐멘터리
KBS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제작팀.류종훈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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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내놓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나 남한에서나 최근 부쩍 비호감도가 낮아진 바로 그 사람이겠는데요. 사실 이런 쉬운 답이 과연 타당하기까지 한지는 우리 모두가 다시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2천만을 훌쩍 넘기는 인구가 거주하며, 기근과 빈곤에 시달리기는 하나 이렇다할 반정부 폭동, 소요 없이 근 칠십 년을 유지되는 체제, 정치 단위인데 그저 독재자 한 사람의 이름만 거론하고 그쳐서야 책임 있는 설명이 못 됩니다. 좋건 싫건, 대화의 파트너로선 적성 단체로서건 간에, 우리는 그들의 실체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우리 자신의 생존과 복리를 위해서도, 있습니다.

사실 "독재자 한 사람이 다스리는 국가"라는 규정은 기술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옳지 못합니다. 정말로 그런 나라라면 그건 독재자가 아니라 이미 신에 가깝겠고, 독재자에게 요긴한 도움을 주며 시혜를 받는 여러 보좌진, 충신 그룹이 있을 것입니다. 독재자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체제의 내실을 다져 나가는 데 큰 기여를 하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혹시 이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궐위라도 하면 시스템 전체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은 없는지, 전체 구조를 쓰러뜨리는 비결은 꼭 핵심을 타격하는 게 아니라,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략하는 의외의 손쉬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설령 영원한 동반자로 위상이 재설정된다 해도, 그 상황이라면 오히려 서로를 잘 알 필요가 더 절실해집니다.

김정은이 선언한 풍계리 폐쇄는 비핵화 과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중략).. IAEA의 사찰을 받는다면 더 큰 신뢰를... 재래식 무기 역시 중요한 위협 요소이며... 양측이 병력 수를 50만 수준으로 유지한다면....  (p30)

이상은 미국 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브루스 베넷 박사의 의견 발췌인데, 사실 무엇이 "미국의 입장"인지는 민간기관의 개인이 정할 수 있는 게 못 됩니다. 국가원수라는 사람 말이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판에 일개 전문가 레벨에서 뭘 확언할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이 단행한 그 시설의 폐쇄 조치에 어떤 진정성이 담겼는지, 혹은 대외용 전시 제스처에 불과한지는 시간을 두고 더 지켜 볼 필요가 물론 있겠죠. 책(그리고 KBS 등에서 제작 방영한 특집 다큐)에서는 이런 다양한 의견들을 소개하며, 마냥 순진하게 믿을 것도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실제 처지나 속내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는 과연 무엇이었는지도 진지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코멘트로 시작합니다.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정확히 측정, 판단하려면, 나의 무지에 대한 점검과 인정 단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일단 권력 승계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점을 책은 지적합니다. 김정일만 해도 1980년대부터 사실상 실권자로 자리했을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그의 부친과 파워 게임을 벌였을 만큼이었으며, 많은 소생을 둔 데다 후처 김성애가 현직의 퍼스트레이디로서 군림하던 실정에서, 순전히 자신의 능력과 수완(아무리 잔혹하고 떳떳지 못한 것이라 해도)으로 권좌를 쟁취한 건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 기나긴 승계 과정에서 이미 권력 구조의 교통 정리 역시 자연스럽게 끝나 있었을 겁니다. 반면 김정은의 경우 외부에서 그 존재 자체도 분명히 몰랐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유명했던 다른 아들들을 더 선순위에 올려 놓는 예측을 하는 중이라서, 그의 승계 소식은 더 충격적인 뉴스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김정일이 이미 통치 기간 후반부에 중병으로 몸져 누웠던 사실을 지적하는데, 왕실의 적통자로서 많은 호사도 누렸겠으나 사람됨의 그릇이 과연 권력 투쟁 와중에서 그 고뇌와 압박 가득한 과정을 견뎌낼 만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업적과 결과를 이뤄 내어도 큰 대가(건강의 상실 등)를 결국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튼 홀로 병상을 지킨 두 자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정은과 여정 남매였습니다. 이때 각각 스물 넷, 스물 둘이었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권력 서열이라는 게 존재했는데, 인민과 노동자 대중을 위한다면서 이런 음침하고 반민주적인 기제로 권력을 가동한다는 게 아이러니 중 아이러니입니다. 특이하게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이 서열을 발표하지 않는데, 그래서 외부 매체에서는 행사 등에의 등장 횟수 같은 걸 따져 간접으로 추론하곤 한다는군요(이 책이 미디어 종사자들의 시선에 의해 쓰여졌음을 유의해 주십시오).

김정은이 아무리 짧은 준비기간을 거쳐 권좌에 올랐다고는 하나 부친에 의해 확실한 낙점을 받은 게 사실이므로 최고지도자의 사망 후 혼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역시 꼼꼼한 통치자였으므로 젊은 아들이 갑자기 권력을 잡았을 때 혹 주변에서 정변 따위를 일으켜 질서를 위협하지 않을지, 심사숙고와 배려를 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김정일의 관을 운구한 "7인방"은 그가 생전에 가장 신뢰하던 인사들이었으며, 예전으로 치면 "고명대신" 같은 존재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임금과 신하 사이의 충성이란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퇴색하게 마련이며, 사마의 같은 이도 황제가 친히 손을 잡고 당부까지 했건만 기어이 사변을 일으켜 역적질을 벌였던 것입니다.

책은 현재 "당시의 7인방" 중 자리를 지킨 이가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특히 장성택 같은 이는 김정은의 고모부이기까지 한데도 무참히, 극단적인 수단으로 처형당했습니다. 현재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냉정히 수를 두는 그의 스타일이나 기질, 국량을 볼 때 우리가 모르는 무슨 사정이 있었으며, 당시 서방 언론의 관측처럼 일시적 변덕이나 정신적 불안정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음도 우리는 족심스레 떠올려 보게 됩니다. 즉 상대 측에서 어떤 모션, 무브가 있었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패륜적, 비인도적 악행임은 분명하지만, 냉정한 현실정치에서 윤리 도덕이 우선 잣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도자의 깜냥은 그 밑에 어떤 사람들을 부리는지로 재어 볼 수 있습니다. 무능한 통치자는 한편으로 컴플렉스 때문에, 한편으로 안목의 결여 때문에 주변에 아첨꾼들만 득실거리게 방치합니다. 이런 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애쓰고, 정식 계선 조직보다는 비선 라인에 조언이나 의사 결정을 의존하다 재앙을 자초합니다. 현재 국무위원회 국장, 조선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 등의 직함을 지닌 마원춘(오원춘은 아닙니다!)의 경우, 책에 나온 대로라면 "어떤 건축물이라도 한 번 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원가 계산이 가능한 특출한 재능을 지닌" 인물이라고 합니다. 충성도보다 능력을 우선시하는 지도자라야 비전이 서 있고 자신감이 충만한 그릇이라고 할 수 있죠. 책에는 이처럼 새로이 실세로 떠오르는 인물들에 대해 정부직과 당직 두 가지를 병기하는데 북한 체제의 특성상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그리고 연계 다큐)에서 발언을 인용한 북한 출신 인사(탈북민 등)들에 의하면, "전에 잘 못 듣던 인사들로서 아마도 실무 능력 위주로 등용된 듯"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서 창업자 김일성의 카리스마는 확고부동하며, 제작진이 러시아 등과 접촉하여 확인한 문서에는 김일성 대위가 1930년대 만주에서 "문화 수준이 높은" 조선인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항일 투쟁을 벌인 기록이나 문서를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일성 자신의 자필 서명이 과연 어떤 신빙성을 새로 확보하는지는 알 수 없으며(인물 사진 같은 것도 없이), 김일성이라는 인물이 혁혁한 공적을 세운 건 간도 일대의 동포들이 일찍부터 입을 모아 동의했으나 문제는 그 김일성 장군과 지금 이 사람이 동일인이냐는 점입니다. 군사정권 시절 반공 선전 출처 여부와는 아무 관계 없이 그것대로 당연히 객관적 검증이 되어야만 하며, 결코 북한 측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서 좋을 게 하나 없을 연변 동포 전문가 상당수가 여전히 "가짜설"을 근거에 의해 제시한다는 점 유념해야 합니다. 물론 학문적 연구 결과 의심의 여지 없이 항일 행적이 결론 난다면 지체없이 수용해야겠지만 말입니다.

마치 한국의 대기업에서 구 "기조실" 같은 게 전략 구상의 사령탑이었던 것처럼, 북한의 노동당에선 "조직지도부"가 파워 엘리트, 핵심 실세가 집결한 조직이라고 합니다. 전 인민군 고위 장교 출신이라는 장광일(가명)의 의견으로는,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의사와 약사의 관계"에 비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령 조직지도부에 비해 부차적 위상이라고 해도, 당이든 정부든 정상적인 시스템에서 "선전선동부" 같은 게 그처럼 실세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게 납득이 안 됩니다. 정부나 지도자는 국민에게, 무언가 공리와 효용을 누릴 수 있는 실체, 실물을 쥐어 주는 게 의무이지, 현실은 시궁창인데 기만과 선전만 일삼아서 뭘 어쩌자는 건지요. 한국에서 실세 부처는 재정경제부 같은 곳이 아닙니까.

김정일은 과거 열차를 타고 러시아 등을 방문하곤 했는데, 이때 그를 직접 본 전 러시아 극동전권대사 콘스탄틴(퇴마사 아닙니다~) 폴리코프스키의 증언이 나와 있습니다. "수완 있는 딸이 있는데 나이는 20대이다." 이 딸은 김설송을 가리켰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북한 같은 가부장 체제에서 여성이 권력을 승계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김설송은 김정일의 결재 사항까지 일일이 대행했다고 하는데 서명만 김정일일 뿐 실제는 그녀의 처리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이의 진부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김일성이 "인정"한 유일한 며느리의 소생이라는 점에서 긍정하는 의견이 있고, "전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치는 이가 있는데 이 사실이 중요한 건 북한 권력 구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하나의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죽기 전 두 딸, 즉 설송과 여정에게 정은의 보좌를 각별히 부탁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헌데 지금 우리가 보다시피, 권력의 실세이자 지근거리 보좌역으로는 후자만 요란하게 눈에 띌 뿐입니다. 서류를 들고다니거나 의자를 뒤로 빼 주는 시중은 더 낮은 직급에게 시켜도 될 텐데 뭐하러 그런 것까지 친동생에게 맡기는지 모를 일이기도 합니다. 살세는 더 비밀스러운 포지션에서, 머리를 더 쓰는 업무에 몰두하는 게 정상이죠.

"달러벌이 일꾼" 이야기는 과거 김일성, 김정은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이때 스웨덴 외교관들이 위폐 유통, 심지어 마약 밀수에까지 손을 대다 추방당하는 극도의 망신도 당했죠. 경제 제재가 수십 년 동안 이어졌는데 리비아나 이란, 쿠바 등과 달리 아직도 체제가 유지되는 걸 보면 의외의 강점, 건강성 등이 내재한 게 북한 경제입니다. 이 책에서는 소위 "달러 히어로즈"를 거론하며, 그저 세뇌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 나름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발휘인지 세계 최악의 고립 경제 단위인 북한을 떠받치는 노동 계층의 실상을 조명합니다. 예상하던 바이지만 이들 노동자들의 생활상은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고 합니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정작 노동자가 이처럼이나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는 현실, 북한의 엘리트 상층부가 가장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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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사면초가 2 - 완결
소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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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될 듯하다가 이 2권 시작(27화)부터 뜬금없이 이남이와 여주가 가까워질 조짐이 보이고, 학교 안에서도 이미 일남과 여주를 공인 커플로 여기는 터라 놀라움의 분위기가 싹 쓸고 지나갑니다. 한편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면서도 정작 둘이 가까워질 기미는 전혀 없는 사남과 나비 사이에서는 우습고 황당한 대화가 오가는데요.

"그거 실존인물이었어?"
"애써 찾은 새 사랑이 더러운 니네 집안 핏줄이라니!" (p12)

일단, 자기가 먼저, 직접 눈으로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삼남 이야기를 꺼내놓고, 사남이 "그거 우리 셋째 형이야!"라고 하자 비로소 그 실존 여부를 따지는 저 말이 너무 어이가 없지만 귀엽긴 합니다. "존재감이 없다"는 게 꼭 매력 없다, 무시받아 싸다 등과 같은 뜻만은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설령 맘에 들어도 존재감 없다는 느낌은 그것과는 또 별개임을 이 컷이 우습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얘 입장에선 일단 여주에게 가버린 일남이한테 상처를 받았고, 바로 곁에 있는 사남이는 남자로 안 느껴지고, 그래서 설레게 된 "새로운 남자"는 전혀 다른 출신이었으면 했는데 하필 또 같은 형제 중 한 멤버였다는 게 충격일 만하죠. "더러운"이란 표현은 이 순정 가득한 형제들에게 전혀 안 어울리기에, 혹은 반대로 돌고도는 근친관계에의 불만도 담았기에 절묘하다는 느낌입니다. 그 실망하는 마음은 알고도 남지만 그렇다고 그런 극단적인 형용사를 쓰는 상대에게 경악하는 사남의 표정이 볼만합니다.

편의점에서 그냥 싸니까 원플러스원 칫솔을 고른 건데 이남이는 혹시 여주가 커플 아이템이라도 챙기는 것 아니냐며 마구 설레어합니다. 삭막한 원플러스원(가장 비루한 절약 패턴이자 동시에 결국 돈 낭비)에 그런 의미를 둘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고, (조금 뒤에 언급하겠지만) 유독 과자를 좋아하고 편식 습관을 못 고치는 이남이는 여주의 다른 한 마디에 또 심쿵합니다.

외모 하나만은 형제 중에 가장 볼만한 이남이는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멋대로 편할 대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인데, 생각을 좀 담아 두거나 성숙시킬 줄 모르고 마구 발설하는 태도가 보기에 민망합니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상대한테 던지는 말이 "있잖아, 넌 왜 귀여워?"입니다. 물론 모든 언행은 여주를 갖고 말겠다는 동기에서 비롯하는 지극히 단순한 기제입니다.

헤어질 이유가 딱히 없는데 일남과 여주는 합의 하에 친구로 남기로 별 뒤끝도 없이 결정해 버립니다. 이 웹툰의 가장 큰 매력인데, 서사도 딱히 없고 대화도 설명도 다 생략되지만 독자들은 급격한 상황의 변화에 일일이 납득하고 공감합니다. 전형적인 순정 만화의 필체이고 때로 짱구는 못말려 같은 명랑만화체로 단순화되지만 자신도 미처 캐치 못한 복잡한 감정의 변화, 변덕을 우리 독자들 역시 캐릭터들의 "눈빛"만 보고도 다 눈치챌 것 같습니다(이게 과연 가능한지).

담임쌤은 아이들의 성화 때문에 마지못해 상담 세션을 결정하는데, 이남이는 이 와중에도 여주 생각뿐입니다. "전혀 공부를 안 하는 것 같던데 성적이 좋네?" "찍었어요." "대학은 어딜 가고 싶지?" "그녀가 가는 곳 어디라도." 한편 나비더러는 "성적이 정말 쓰레기"라며 직설적 평가를 서슴지 않으시는데, 나비는 여주, 이남, 사남이 생각에 정신이 완전히 딴데 팔려 있습니다. 멋도 모르는 담임은 나비의 표정이 금방 밝아지는 걸 보고 "회복이 빠른 아이"라며 속단해 버립니다.

이남이와 첫키스를 나눴지만 어느새 여주는 다시 일남에게 생각이 기웁니다. "좋아하는 애한테 내가 한번이라도 먼저 다가간 적 있었나?" 이런 기특한 생각을 품고 1권에서 바로 일남이를 손에 넣은 여주입니다. 사실 이 단계를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데, 고1은커녕 대학생, 심지어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이 간단한 기본이 너무도 넘기 힘든 장벽으로 남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주가 독자의 성원을 한몸에 받는 건 여주(여자주인공) 보정을 받아서가 아니라, 아닐 것 같으면서도(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빠는 자주 근무지를 옮기는 등 상처가 큼) 이처럼 성격이 시원하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혹은, 원래 안 그런(안 그러던) 애가 우리 바로 보는 앞에서 "잘 크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죠.

언제나 동생 같은 사남이는 그새 키가 1cm 자라서(사실은 더 큰 듯 보입니다) 누나 누나 하며 계속 여주 주위를 맴돌지만 자신도 우리 독자들도 얘한테는 기회가 없겠음을 잘 압니다. 이남이는 한편으로 다시 일남에게 향하는 여주의 마음을 읽고 노심초사합니다. "이거 먹어." "괜찮아." "내가 일남이 혼내 줄까?" "아니(!).." "두 번 먹어!" 아무것도 아닌 듯하면서 짧은 말로 캐릭터들의 심리를 너무 잘 표현한 대사들입니다.

"그땐 왜 헤어졌던 거지."
"나는 뭘 어쩌고 싶은 걸까." (p165)

왜 사람은 좋은 머리를 갖고서도 자기 마음의 정체와 방향을 모르는 걸까요. 이 와중에 내 자신이 상처 안 받게 갈 길을 잘 챙기기도 해야겠으나, 저 아이의 형편도 살펴야 하니 숙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내 마음도 갈무리를 못하면서 남의 마음은 어떻게 돌본다는 걸까요. 그래도 그게 맞다는 걸 애들도 알고 밖에서 구경하는 독자들도 다 압니다.

이 형제들은 스타일과 성격이 판이해도 자신들의 마음을 참 자주 들킵니다. 들키는 게 아니라 알아 주기를 바라는 거겠지요. p75의 편의점 씬에서 이남이는 여주가 당연히 과자 좋아하면 충치가 생기기 쉽다는 상식을 말한 건데, 자기 입 안 최근에 생긴 충치를 어떻게 알았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매우 부끄러워합니다. 어른들은, 상대가 당연한 추론에 의해 내린 결론도 그저 운이나 요행으로 치부하기 일쑤일 만큼 부정직하고 어리석은 데도 말입니다. p179에서 삼남이는 "이러다 여주가 더 좋아지면 어떡하지?" 라며 걱정합니다. 형들이 이미 찜한 여자고 여주 역시 그들을 (적어도 자신보다는) 더 좋아한다는 걸 아는데 괜히 민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너무도 착한 마음의 발로입니다. 임자가 있는 몸을 놓고, 한때의 이기적인 쾌락을 위해 눈독을 들이는 추한 어른들과 너무도 대비되죠. 갑자기 "(다친 팔이 빨리) 좋아졌으며 좋겠다"고 말한 여주 앞에서 마음을 들키려고 작정한 삼남이의 놀라는 표정을 보십시오.

인공지능처럼 타인과 세상을 어색한 과정을 통해 이해하는, 존재감 제로였던 삼남이가 결국은 최후의 승자로 남습니다. 이 역시 놀라운 반전이지만, 등장 인물은 모두 둘의 앞날을 축복하며 우리 독자들도 마치 "일이 마땅히 그리 풀려야 했겠거니" 라고나 하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름들은 여주, 일남, 삼남.. 처럼 무심히 붙었으나, 얘들은 결국 독자의 가장 보편적인 공감대를 터치하며 누구나 한때 지녔던 초심과 순정에의 향수를 마구 자극합니다. 하긴 이 장르는 본래의 소명이 이런 쪽이었으니까요. 가장 착한 마음이 실상은 가장 성숙한 마음인 법이고, 성장을 거부하는 이들이 알고 보면 가장 이기적이고 못된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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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사면초가 1
소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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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쯤은 인기가 많아지는 순간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그게 지금인가 보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왜 인기를 의식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튼 아이들은 자신이 학급에서 인기 있는 편인지, 보통인지, 아예 왕따에 가까운지 무척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공부 잘하거나 장차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능력을 기르는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한 듯하고, 왕따를 당하거나 부적응자임이 드러나면 인간적 가치를 모두 부정 당한 듯 괴로워합니다. 사실 그 나이에는 모든 체험과 감정적 반응이 버겁고 아프고 힘겹게 마련이겠으나, 이때 한번 큰 상처를 입거나 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회복이 힘들게도 보입니다.

이 웹툰(도서판)의 주인공은 여성 틴에이저이며, 이름은 "이여주"입니다. 그러니 여주가 "여주"인 셈이며, 고등학생으로 보낼 앞으로의 몇 년 동안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던 그녀는 잘생긴 네 남자가 한꺼번에 자신을 좋아하는 뜻밖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네 아이가 쌍둥이 형제들이란 건데, 그래서 저 제목에 나오듯 "말그대로 사면초가"입니다. "즐거운 비명" 같은 게 아니냐며 마뜩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겠으나, 좋은 건 좋은 것대로 결정(장애)의 순간이 괴로운 법이며, 누구에게는 환희를 안기겠으나 다른 이들(적어도 세 명)에게는 아픔을 주게 될 자신의 처지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아직 순수한 영혼이라서 그렇겠으며, 어디서 세파에 찌들고 못된 것만 가려 배운 썩은 영혼에게는 당치도 않은 고민이나 갈등이겠습니다.

쌍둥이라지만 우리도 봐서 알듯 생김새도 다르고(만약 같다면 여주 등을 걱정하기보다, 밖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엄청 곤란을 겪을 우리 독자들이 문제겠습니다) 어쩜 그렇게 성격들이 차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괜찮은 아이들이라 누굴 선택해도 행복할 것 같지만, 여주는 이 선택의 과정이 사실은 나(여주)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임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됩니다. 누구와 함께 지내야 지금이나 먼 장래에나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겠으며, 그 와중에서 무엇을 얻게 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네 아이 중 각자가 여주에게 잘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도저히 안 되는 게 있겠으니 말입니다) 꼼꼼히 따지는 게 보통 어려운 대목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행복, 만족, 즐거움, 보람을 위해서 삽니다. 여주(혹은 누구라고 해도)가 제 마음에 가장 드는 아이, 혹은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 아이를 고르는 건 하나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인생은 바로 이 미션을 어떻게 만족시키느냐로 그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설령 돈을 많이 벌고 출세 가도를 달려도 이 부분에서 실패한 사람은, 겉보기나 평판이 어떠하든 스스로 불행한 인생임을 자신부터가 부인 못 합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만나고, 또 그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해도, 과연 그걸로 다일까요? 이 1권에서는 여주뿐 아니라 나비 등 여러 주변 인물들을 통해 "영리하게 사랑을 차지하는 것"의 가치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기적인 사람으로만 남지 않는 과제"까지 동시에 지적, 부각하고 있습니다.

p270을 보면 나비네 집에 "여장(!)"을 하고 들어간 사남이가 나비와 나누는 대화가 있습니다.
"넌 일남과 여주가 서로 사귄다고 했을 때 괜찮았어?"
"응, 난 착하니까."
이 말을 듣고 사남은 눈물을 쏟습니다.
"왜 울어?"
"난... 나빠서....."

세상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만큼 착한 사람, 때가 덜 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마지막으로 절망했던 때가 언제일까요? 돈이 없어서, 경쟁에서 패배해서, 비전이 없어서, 머리가 나빠서 자신이 미워질 때야 늙어 죽기까지 수시로 맞습니다만,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빠서, 못돼서" 내가 너무 싫어지고, 슬퍼졌던 때가 과연 얼마나 아득한 망각 속의 과거였는지. 우리가 진정 눈물을 뿜어야 할 때는, 세속적인 무엇인가를 놓치고 분해하던 그 순간이 아니라, "그 좋았던 내가 대체 어디로 가고 없지?"를 깨닫는 부끄러움의 시간이라야 할 겁니다.

나쁘다는 건, 특히 여기서는 "이기적인 것"을 뜻하더군요. 못난 인간은 때를 가리지 못하고 무작정 이기적으로 굴고, 이기적으로 구는 자신이 수준이 향상되었다거나 각성을 한 결과라고 엄청난 착각을 합니다. 사실 이런 인간은 구제불능이며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순정의 세계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그러지 말아야 할 때, 혹은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을 때에 이기적으로 굴거나 그러기 직전인 자신에 대해 몹시도 부끄러워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정직하지 말자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마땅히 챙겨야 할 건 챙겨 가면서, 한편으로는 더티하거나 치사해지지 않고 언제나 근사함, 쿨함을 유지하는 것, 이게 그들이 원하는 경지입니다.

웹툰 연재 당시에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끈 비결은 이처럼 뭔가 마음이 싸해지는 청순한 주제의 강조 말고도 깨알같은 위트가 있겠는데, 예를 들면 p272에서 가발(여장의 일부)이 훌러덩 벗겨진 사남이 나비의 엄마와 바로 마주쳐 (두 사람 다) 엄청 놀라는 장면입니다. 우리의 예상을 비껴가며 나비의 모친께선 "숏컷도 예쁘네?" 라는 말과 함께 어색한 상황을 마무리짓습니다(배려라기보다, 캡션의 해명대로 "정말 눈치를 못 채신 듯"). 이런 모든 "에피소드"를 일일이 네 컷 안에 장악해 넣은 솜씨도 정말 놀랍습니다.

"사실 내가 준 건데" 이는 마치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애서 주인공이 왕자를 구해 주고도 크레딧을 남에게 빼앗긴 채 말도 못하고 상황을 바라만 봐야 했던 대목과도 비슷합니다. 삼남은 생각만 가득할 뿐 전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연애 포함 모든 것을 책에서만 배운 타입입니다. 책으로만 배웠다는 건, 달리 말하면 제대로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나 같습니다.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면 구태여 귀찮게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존재까지 모르는 건 너무 서운한" 게 이 삼남의 안타까운 마음인데, 네, 참 그렇네요.

여주는 중반쯤에 마침내 여튼 "종합 점수가 높은(p206에 다른 누구의 입을 통해 이 표현이 나오죠)" 일남을 선택하는데, 말이 쌍둥이지 일남은 왜 자신만 생일이 다른지 내내 알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진실과 마주합니다. "앞으로 누가 너에게 상처를 주려 하거든...." 우산을 건네며 그녀가 해 주는 충고, 혹은 위안입니다. "공포를 잊는 데에는 과연 남 이야기가 최고인지" 수련회에서 낙오한 둘은 수다 끝에 지쳐 나란히 잠듭니다. p215의 이 장면은 마치 알퐁스 도데의 <별>의 결말을 보는 듯합니다.

챕터마다 이 순정만화의 분위기와는 전혀 안 어울릴 듯한 고사성어, 사자성구, 혹은 속담 등이 인용되어 제목을 장식하는 스타일도 재미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문예도, 가볍게 소화하는 장르에서 이런 반어적 장식을 갖다 쓰며 묘한 미학적 대비효과를 내게 하는 기법을 보곤 하는데, 한국 웹툰의 스타일링이 (그런 것들로부터 딱히 영향을 받았을 법하지도 않은데) 자체 진화를 거쳐 이 정도에까지 이른 사실에 다시 놀라게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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