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감정과 내면 표현이 아닌 사회의 객관적 실체를 담아내려 했기 때문에 세밀묘사에 기반해 약간 과장된 형태와 강렬한색채를 사용해서 당대의 불편한 현실과 타락한 사회상을 폭로하려 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가 사는 시대의 증인이 되고 싶어했다. 전쟁에 나갔다가 불구가 된 병사들, 거리의 창녀들, 지식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위선과 부도덕을 폭로하는 그림들을 통해서 말이다


‘실은 이렇듯 젠더적으로 불공평한 시각이 서양미술에서 넘쳐난다. 정의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시선을 던지는 작가라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는 둔감하기 짝이 없다. 젠더 문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없다. 

눈을 될 수 없도록 아름답지만 절대로 순종적이지 않은여자 남자의 말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 여자. "우리가 동등하다.
면 네가 왜 항상 내게 명령하는가" 라고 생각 할 줄 알고 의문을 제기하는 여가, 자신의 성욕을 인정하고 욕망과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 편안하지만 종속적인 낙원을 스스로 박차고나간 여자는 악마로 내몰리고 악마의 더불어 살아간다. 여자를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아담과 사느니 악마와 사는걸 선택했다니, 통쾌하지 않은가! 이로써 릴리트는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가 된다.

현대에는 ‘릴리트 콤플렉스‘라는 단어도 생겼다. 릴리트 로 상징되는 자유 본능‘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문화에서는 남 녀 모두 불균형한 행동과 정신적 고통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 에서 명명되었다. 

요컨대 이 여신들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면 수메르의이난나가 곧 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이고 유대 신화의 아스리테이자 릴리트이면서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로마 신화의베누스, 디아나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과 지역을달리하면서 이름은 바뀌지만 성과 사랑과 다산, 전쟁을 주관하는 신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대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순환하는 것으로 보았다. 땅 이 품지 않으면 씨앗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죽은 사람의 시신이나 동물 사체에서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았으며,
여인의 성과 사랑으로 다산이 이루어짐을 경이롭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어머니 여신은 태초부터 그냥 존재하는 신이다. 그녀의 몸에서 태어나는 모든 것은 선악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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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인간이 기술적·과학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임을 믿던시기에 일어난 야만적인 역사를 예외‘로, 이미 지난 역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타자를양산해내고 혐오하며 추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을 ‘신사실주의New Realism‘라고 부르는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상화한 일상이 아니라 진짜 일상의 흔적인 물건들을 오브제로 제시함으로써 그 시간과 분위기와 대화와 인간관계와 성격 등을 고스란히 보여주니 말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에 덫을 놓아 붙잡아둔 예술, 아, 그래서덫예술인가?

만일 예술이 언제나 ‘인생은 아름다워‘만 보여준다면 그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성적이지 않으며, 강자는 약자를 괴롭히고 착취함으로써 더욱 강자가 되고, 사랑의 맹세는 덧없고, 인간은 스스로의 자리를 파괴하고 더럽히면서 살아간다. 지금도 어디선가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으며, 부는 정의롭게분배되지 않는다. 이렇게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세상의 추한 면면을 예술로 기록한다.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이라는 책에서 "상기하기는 일종의윤리적 행위이며, 그 안에 자체만의 윤리적 가치를 안고 있다.
기억은 이미 죽은 사람들과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가슴 시리고도 유일한 관계이다"라고 썼다. 기억하고 있는 한 우리는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쓸 것이기 때문이다. 」

오토 딕스Otto Dix는 1920년대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시대를 잘 보여주는 작가다. 그의 그림은 신즉물주의 NeueSachilichkeit 양식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New Objectivity라고쓰니 신객관주의 정도로 하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게오르게 그로스George Grosz,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이 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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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환경에서도 앨리슨 래퍼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순응과 체념은 그녀의 사전에 없었다. 장애인이니까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저항했다. 그녀는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미술을 공부해 구족 화가가 되었으며 사진전을 열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힘썼다. 그녀가 맞선 편견에는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녀는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해 장애인 엄마이자 미혼모라는편견을 깨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신체 일부만 가지고도 특별한 긴장을 자아내면서 그 자체로 조형적인 미와 완벽한 가치를 지닐 수 있음.
을 알아차린 예술가들이 있다. 로댕Auguste Rodin 이 대표자다. 그들은 여기서 영감을 받아 하나의 독립적인 주제로 삼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의 팔다리 없는 조각을 보면서 누구도 장애를 문제 삼거나 불쾌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토르소인 앨리슨 래퍼의 육체를 아름답게 보지 않을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앨리슨 래퍼는 자신의 몸을 현대의 비너스‘라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앨리슨 래퍼 조각은 위대한 정신적 승리‘를 이룬 인물에 대한 존경이고, 장애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 정상은 무엇인가 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행위이며, 남성중심의 역사와 사회, 문화에 던지는 젠더적 문제제기이기도한 것이다. 작가 마크 린은 단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려고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탁월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작가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깨기위해 각업을 하기도 한다.

서구의 합리적 주체는 언제나 ‘나와 다른너를 통해 주체를 형성했다. ‘나‘를 정상이자 기본으로 놓고나와 다른 사람들을 철저히 타자화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선
‘정상‘ 이었고 지금도 정상인 그녀의 몸이 유럽으로 와서는 ‘비정상‘으로 타자화된다. 다른 피부색, 커다란 엉덩이와 유방, 다르게 생긴 얼굴 모양은 야만이자 비정상이며 기형으로 치부되었고 유럽인들은 이것을 구경함으로써 자신들이 얼마나 정상인지를 확인하고 안도했다. 보라, 괴물 같은 인간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안전하고 정상이며 문명인이다.

사르키 바트만은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의 세상에서 살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노예였다. 야만인을, 괴물을 어떻게 자유롭게 풀어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에 가두고 ‘동물‘이라며 조롱하던 19세기 사람들은 정작 그녀의 몸을 따라 엉덩이가 부풀려진 페티코트를 입었다. 이건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매춘부를 혐오하던 사람들이 정작 매춘부들의 의상과 화장을따라 하면서 유행을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성의 몸은 그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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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 분화가 같은 영양단계에 있는 생태적 조건이 유사한 종들 사이의 경쟁 회피 전략이라면, 포식은 먹이그물의 위로부터 아래로(top-down) 강제된경쟁 조절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가 15세기까지유럽 정치와 경제의 중심 무대였다면, 16세기부터는 유럽 정치와경제의 무게중심이 북쪽의 대서양 연안 국가들로 옮겨가게 된다.
카를 슈미트가 말한 대로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이본격화된 것이다.

생태적 한계에 봉착한 유럽을 벗어난 식민지 개척자들은, 마치 천적이 없는 외래 침입종이기하급수적으로 서식지를 넓혀나가는 것처럼 단시간 내에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에스파냐 정복자가 전광석화처럼 신대륙을 정복해나간 과정은 생태학자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외래침입종이 확산한 과정을 연구한 결과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그러나 이러한 세력 확장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었다. 이후 중남미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에스파냐 정복자와 인디오 간의 착취적 관계는 한쪽의 이익을위해 다른 쪽의 생존 욕구를 억압하는 주인과 노예 사이의 예속적관계로 볼 수 있다. 

환경사학자 제이슨 무어(Jason Moore)는 1557년부터 1763년까지의 기간을 브로델과월러스틴의 ‘장기 16세기에 상응하는 ‘장기 17세기‘로 보고, 이때네덜란드가 단지 초기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기틀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값싼 자연"(cheap nature)을 착취해서 자본-권력-자연의 ‘세계-생태‘(world-ecology) 체제를 수립한 최초의진정한 자본주의 국가였다고 평가한다.


일평생 이성의 힘으로 인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스피노자가 제시한 공존의 비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모든이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제한된자원을 두고 벌이는 다툼과 그로 인한 갈등은 불가피하다. 단지이성에 따라 타인도 나처럼 살고자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내적인 죽음을 초래하는 군주와 노예의 관계 대신에 대등한 자유인들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 자유인에게는무엇보다 용기와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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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선하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존재로 파악했다. 이러한 개인이 사회를 이루는 순간 불평등한 관계로부터 각종사회적 모순과 억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사회계약을 통해서만 현재의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각 개인의 "인격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 할 수 있다고 루소는 주장한다.

스피노자가 살았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근대적 인류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누구보다 스피노자 자신이 바로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해방을 얻기 위해 싸운 근대적 자유인의 전범이었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그가 가졌던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뿌리를 두고 있다. 그가 이해한 인간의 본성은 너무나 유명한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으로 잘 설명된다. 자연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생존을 위해 천부적인 권한을 행사하려 든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능력은 대동소이하므로 사람들 사이에서 생존에 필요한 희소한 자원을 두고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같은 것을 놓고두 사람이 서로 가지려 한다면, 그 둘은 서로 적이 되고, 이런 생존 경쟁의 공포에 짓눌린 인간의 삶을 홉스는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고 표현했다. 홉스는 항구적인 전쟁 상태를 피하고 모두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으로 사회계약을 제안한다. 

 만약 집단적 지식이 개개인 모두에게 골고루 전파된 사회라면, 현명한 개인들에 의해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회적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반복해서벌어지고 있는 많은 비합리적인 사회현상을 냉정한 분석자의 시각으로 살펴보면, 가시적인 폭력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던 이전 시대보다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어떤 생물이 서식지 내에서 다른 생물이 넘볼 수 없게 자기만의 고유한 자리를 차지한다면경쟁을 피하거나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태적 니치(niche) 개념이 의미하는 바이다. 니치가 다르면 한 나무에도 먹이나 다른 서식 조건이 비슷한 여러 종의 새들이 둥지를 틀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나무라도 줄기의 수직적위치에 따라 주로 서식하는 새의 종류와 그 먹이가 약간씩 다르다.
면, 즉 니치가 분화(differentiation)되어 있다면, 다른 종의 새들이 한 나무에서 공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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