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 - 십대들의 창조적인 인생 밑천 만들기 프로젝트
김종휘 지음 / 양철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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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10대,20대를 볼 때에 그들은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 의해서 정형화되고, 획일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10대의 경우, 학교, 학원, 집을 넘나들면서 부모가 정해준 시간표에 의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어찌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어른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의 저자인 김종휘는 한국 최초의 문화예술분야 사회적 기업인 '노리단'의 단장이며, '사단법인 씨즈'의 창립자이다.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설명만으로 그가 누구인지 잘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쉽게 말해서 다양한 십대들과 많이 생활하고, 같은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좀더 개성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많은 조언을 하여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10대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자신의 자라온 세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이 인생을 살아가는 정답이라고 믿으면서 10대들에게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10대들은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어른들은 10대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편견없이 협력을 해 주면 그들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고, 10대들은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10대들이 자발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10대들에게 " 넌, 누구냐?"하고 물음을 주어야 하고, 그 물음은 10대 자신들이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10대들을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파트너 역할을 해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렇게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10대를 어른과 아이의 이분법적 관점으로 나누어 보기때문이다. 툭하면"너희들은 미성년자라고 안돼" . 때론 "너희들은 아직 그것도 못하니?" 라고 어른, 또는 아이 취급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10대들은 양자 복합체의 존재이기에 그들이 그들나름대로 자유자재로 어린이와 어른의 성향을 통합하고, 거기에서 가능성과 잠재력을 찾는 것이다.


오히라겐은 사람사이의 소통과 교제 과정에서 세대를 핫(Hot), 쿨(Cool), 웜(Warm) 세대로 구분한다. 핫세대는 기성세대 중 더 윗세대, 쿨세대는 우리나라는 386세대, 그리고 웜세대는 10대,20대를 일컫는다.

웜세대, 이들은 핫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소통방식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쿨한 사람들처럼 견고한 자아를 구성하지도 못해 어중간하게 웅크리고 있는 형태의 방어적 소통방식을 취한다. (p85)
'어중간하게 웅크리고 있는 형태의 방어적 소통방식을 취하고 있는' 웜세대.
우린 윔세대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그것은 우리들이 웜세대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꿈꾸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신나게 놀아야 할 것이다.
멍석을 펴놓으면 하던 일도 못한다고 하는데, 공부만 하라고 다구치던 기성세대들이 십대들에게 놀라고 하면 어떻게 놀겠는가?
우두커니 앉아서 먼 산이나 바라보거나, 방 안에 대자로 누워서 시체놀이를 하거나 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십대드리 어떻게 놀면 좋을 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담고 있는 키워드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어정쩡하지 않고 확실하게 놀기, 작은 모임과 작은 공동체 찾아가기. 집나가서 개고생하기, 도와달라고 말할 줄 알기, 찌질이에서 씩씩이로 몸바꾸기, 나보다 경험많은 사람과 연대하기, 서로 다른 세 명이 팀만들기, 먹고 살고 사랑하기, 나보다 먼저 너를 키우기

  
이처럼 놀기란 만만하지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잘 노는 것이 바로 십대들이 잘 사는 방법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창의적인 인생의 밑천이 될테니까.

  
이 항목 중에 '서로 다른 세 명이 팀 만들기'는 3 이란 숫자가 가지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 3이 모이기 위해서는 같은 성향이 아닌 다른 성향. 즉, 경험도, 관심사도, 일하는 방식도, 자신들의 이상도, 모두 다른 사람 3 사람. 여기에서 자신의 길을 찾으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사례들을 들고 있다. 특히,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각종 서적들의 일부 내용이 많이 인용된다. 그외에도, 논문, 영화, 드라마를 통한 사례들이 소개된다.
그중에 인상깊었던 한 부분은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대사이다.

 
 꿈은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꿈을 꾼 시간만큼 꿈을 닮아 가면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시도라도 해 본 "꿈".  시도조차 못하고 쳐다만 보는 "별"
무엇을 택해야 할 것인지는 자명하게 느껴질 것이다.
10대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제발~~~ 기성세대들이여!
십대들의 가는 길을 붙잡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10대 들이여!
지금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바라만 보고, 마음 속에 간직하는 "별"이 되지 말고 삽질부터 해보는 "꿈"을 키워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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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2 암자로 가는 길 2
정찬주 글,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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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에 또는 유명사찰을 찾아가는 길에 산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홀로 서 있는 작은 암자들. 때론 물 한 모금 마시려 들리기도 하고, 때론 산세 좋은 곳에 위치해서 수려한 경관에 넋을 잃다 보니 찾아가게도 되는 암자.
그런데, 그 암자들의 이름은 그리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그저 언제 산행길에 들렀던가 할 정도로 그 비중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무심히 들렸기때문인가보다.
기억에 남는 암자래야, 고작 두 군데. 낙산사 옆의 홍련암과 여수돌사 향일암 정도. 그래도 홍련암은 낙산의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경치가 좋아서 여러 번 찾다보니, 그때마다 들리곤 했다. 그런데, 몇 년전에 낙산사에 큰불이 났고, 다행히 홍련암을 피해가 없었다. 그리고, 향일암을 여수에 갔다가 일출을 보기 위해서 우리 강아지까지 대동하고 눈비비며 들렀던 곳.


그런데, '암자로 가는 길 2'에는 너무도 많은 암자들이 소개된다. 그것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서.

나를 설계하는 봄암자
나를 성장시키는 여름암자
나를 사색하는 가을암자
나를 성숙시키는 겨울암자
 

 
 
계절에 따라 영상미가 돋보이는 사진들과 함께 그 암자를 찾아가는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서 고운 글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정찬주'는 스님보다도 더 암자를 잘 아는 '암자 전문가'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다. 십여 년이 넘게 매주 또는 매달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암자를 찾았으며, 지금은 남도 산중에 '이불재'라는 작은 산방을 짓고, 산 속에서 농사도 짓고 집필도 하면서 선인처럼 살아 가고 있다. 그래서 그의 산문이나 소설은 한결같이 명상적인 글들이라고 한다.

 
 
  이 책 역시 읽는내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그런 글들이다. 암자에 얽힌 에피소드나 설화, 그리고 그 암자를 지키는 스님들의 설법까지. 명상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맑은 글들이다. 그리고, 암자를 찍은 사진들까지 영상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암자란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산길을 가다가 기웃거려 보고 싶은 곳이다. 불교만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쉬어가고 싶은 보통명사이다. 수행자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아름다운 모습른 삶이 힘들고 버거운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기도 한다. (p155)
 

자칭 나그네라고 불리는 저자는 "암자로 가는 길을 명상과 성찰을 지팡이 삼아 오르는 마음의 여정이자. 수행이다"(책표지 글 중에서)고 할 정도로 암자를 찾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갖게 된다. 암자를 찾아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사계절의 모습. 그것은 흡사 우리네 인생을 닮아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런데, 나그네는 겨울의 암자를 '나를 성숙시키는 암자'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겨울은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마지막 단계의 모습같지만, 겨울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성숙의 단계라는 의미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산세좋은 곳, 풍경소리, 법당의 모습, 단청, 부도, 불화, 불상... 이 모든 것이 어울려져서 정갈한 암자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산행길에 만나게 되는 작은 암자들. 그러나 우린 그저 스쳐 지나가는 암자들이었지만, 나그네에게는 머무른 암자가 되니, 우리네와는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나그네의 글은 너무도 서정적이어서 암자 가는 길의 묘사는 눈감고 그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을 정도이며, 부처님의 말씀과 불교적 가르침은 읽는 이의 마음을 맑게 정화시켜준다.
  

깊은 산 속에서 암자를 지키는 스님,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암자를 지키는 스님...
스님들이 내 놓는 정갈한 차 한잔과 같은 글들.
나그네는 작가의 오솔길을 통해 다음의 말을 전한다.

나그네는 어느 소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산문 안이 그윽한 안식의 공간이라면 산문 밖은 열뇌(熱惱)의 세상이라고' (p321)
산사의 기호는 침묵의 덩어리 같은 적막이다. 그 적막은 자기 자신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고, 자연과 가까이 하게 하는 접속 부사이다. (p326)
나그네가 '암자로 가는 길'에 관한 책을 이미 몇 권을 출간했기에, 이제는 그 책을 들고 일부러 암자를 찾아 오는 이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여행길에 기회가 된다면, 유명한 사찰보다는 그 사찰들보다는 더 깊숙하게 숨어 있는 암자들을 찾아 봄을 어떨까.
이처럼 여행길에 절을 찾고, 암자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를 찾기 위함'이라고 한다. '나를 찾는다' 그것은 곧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나를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면, '암자로 가는 길'을 뒤적여 보고 맘에 드는 암자로 길을 떠나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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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 1 - 나로 5907841 푸른숲 어린이 문학 18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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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1'을 몇 페이지 읽다보니, 영화 'A.I'와 소설 '2058 제너시스'가 생각난다.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모습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모든 언행은 인간을 닮았지만, 내장된 프로그래밍에 의해서 움직여야 하는 로봇, 그들에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로봇들도 인간과 같은 감성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로봇이 인간을 지배한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그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로봇에 관한 SF 소설을 쓰게 되는 것이다.
 

'로봇의 별'은 3부작으로 국내 최초의 본격 SF 창작 동화인 것이다.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관심있는 로봇과 우주도시의 이야기.
동태평양 상의 갈라파고스 제도 주의 가장 큰 섬인 이사벨라 섬 한복판에서 하늘로 길게 뻗은 검은 레일이 있단다. 지구와 달사이에 거대한 우주도시 라그랑주까지 가는 레일이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보다 지구는 과연 먼훗날에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도시들은 급수가 낮은 감마인이나 델타인이 사는 지저분하고 병균이 득실거리는 우범지대로 변하고, 도시의 윗부분에 새로운 도시가 존재한다. 그곳은 살기 좋은 알파인과 베타인들이 사는 안락한 곳. 이곳의 사람들은 로봇을 다양도로 이용하게 된다. 부유한 사람들은 사람의 형상을 한 예쁜 로봇을 자식처럼 키우기도 한다. 바로 나로 5970841처럼.

 

나로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6살짜리 지능과 감성을 지닌 최신형 로봇. 그후 5년동안 딸처럼 키워온 엄마와 헤어져서 라그랑주 우주도시로 가야한다.
어떤 계기로 '로봇에 관한 지구 연방법 3원칙'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도망 로봇 신세가 된 것이다.
도망 로봇이 되어 공룔 로봇 루피와 우주 도시를 향해 가는 나로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로봇으로 태어났지만 '그렇게 태어났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 갈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공룔 로봇 루피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로봇만의 나라, 즉, 로봇의 별이 있다고 한다. 장차 로봇들이 지구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로봇의 별!' 하늘 저편 어딘가에 로봇의 별이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우주 도시에서 로봇들이 자유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로봇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P113)
우주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 이제 우리가 나설 때야.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할 때야. (P226)
로봇의 별로 가지 않는다면, 도망 로봇이 되어 폐기될 것이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든 엄마(인간)과의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일.
쿵쿵쿵쿵.
엄마의 심장 소리가 나로의 귓전을 울렸다. 오래도록, 로봇인 나로조차 그 수명이 다하도록, 아니 로봇과 인간이 모두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날이 오도록 결코 잊을 수 없는 소리였다. 자유로운 로봇이 된 나로는 이제 그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었다. 엄마의 영혼도 언제까지나 나로를 간직할 것이었다. 엄마와 나로는 결코 이별하는 것이 아니었다. (P102)

 

'로봇의 별'에는 권별 화자로 안드로이드 로봇. 즉, 명품 로봇이 등장한다. 나로, 아라, 네다. 이 세 로봇은 22세기에 단 세 대밖에 없는 인간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그리고 뛰어난 지능지수를 가진, 그리고 감성지수까지 갖춘...
이 세 로봇은 자신들의 성장 환경을 토대로 하여 세 로봇 나름대로의 꿈을 쫓아 가는 과정을 작가의 상상력과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헤쳐나가는 모험담을 토대로 이야기를 펼쳐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에는 로봇이지만,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감추어져 있음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 주종관계나 인간과 기계라는 차원을 뛰어 넘는 아름다운 마음씨도 들어 있는 것이다.
인간이 로봇을 사랑하고, 로봇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런 세상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상상 속의 이야기라고요?
아니, 상상만이 아닌, 먼훗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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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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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든, 어떤 평가도 내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 회장의 자살도, 경제난에 허덕이다가 선택한 가족의 동반 자살도, 세상을 살아가기 힘겨워서 허덕이던 노숙자의 초라한 죽음도, 자연 재해에 의해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죽음이 덮쳐 온 경우에도......
어린 시절에 동네어귀에서 초상이 난 경우가 있었다. 그당시에는 마지막 순간을 가정에서 보내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집을 떠나서 객사를 하면 큰 일이 나던 시절이었으니까... 초상난 집에 달려 있던 등이 너무 음산하고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장례가 있은 후에도 한참을 그 집앞을 지날때면 등골이 오싹했던 것이 나의 가장 오래된 죽음에 대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여간에 죽음에 대한 느낌은 언제나 찌푸린 겨울 하늘과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발하게도 '텐도 아라타'는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죽음들을 찾아 다니면서 애도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심도있게 다루는 묵직한 장편소설 '애도하는 사람'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텐도 아라타'의 그동안의 작품 경향은 아동 학대문제, 여성에 대한 폭력 등 세상의 모든 아픔에 대한 치유와 가정의 의의를 생각하게 하는 약자의 편에서 현대인의 정신적 어둠을 묘사하는 작품을 써왔다.
'애도하는 사람'은 처음 작품 구성,스케치에서부터 7년이라는 세월에 걸쳐서 완성된 작품이라고 하니,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런 작가의 작업을 생각하니 더 꼼꼼하고 소중하게 읽게 되는 것이다.

'애도하는 사람'은 작가 스스로도 '정점에 이른 작품'이라 평했으며, 평단에서 역시 '21세기 최고의 걸작'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책날개, 작가 소개글 중에서)
 



'애도하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시즈토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죽은 사람들을 애도한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가족들도, 시즈토 자신도 확실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만, 친구의 죽음을 접하면서 오히려 자신보다는 이 세상에 살아 남아야 하는 사람은 친구였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이 돌보던 소아병동의 아이들의 죽음, 어느날 보았던 길가의 어떤 죽음에 대한 꽃다발 등등.... 누군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자신도 정확한 답변을 할 수는 없다. 다만, 한 두 죽음을 찾아 다니다 보니 이 세상의 모든 죽음에는 경중이 없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애도를 받을 자격이 있는 죽음이라는 것....
그 죽음을 기억해주고, 애도해 주고 싶다는 것뿐이다.

이 사람은 누구에게 사랑받고,누구를 사랑했을까요? 어떤 일로 사람들이 고마워 했을까요?
이것이 모든 죽음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 물음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삶이었고,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삶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는 죽음을 찾아 다니면서 이상한 행동과 함께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
어쩌면, 그의 행동을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모든 죽음에 대한 애도와 죽음을 자신만이라도 기억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일 것이다.
나는 돌아가신 분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애도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p165)
모든 죽음에 대한 애도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의 소재가 된다는 것은 확실히 기발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텐도 아라타'는 아동학대, 아내 폭력, 학생들의 집단 구타 등 약자들의 이야기도 은연중에 작품의 내용 여기 저기에 비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는 3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곳에는 빠짐없이 나타나서 기삿거리를 낚아채 가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먼 가십거리에 가까운 기사를 쓰는 기자인 마키노.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이혼의 상처를 안고 방탕하게 살아간다.
우연히 만난 '애도하는 사람'을 만난 후의 변화와 그의 헤어진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블로그를 보면서 느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아들의 블로그에 실린 '인터뷰하는 사람'이라는 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친 아빠는 기자엿다. (...) 아주 훌륭한 기자엿다고 엄마가 그랬다. (...) 하지만 친 아빠는 죽었다.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외롭지 않다. 엄마와 지금의 아빠가 있기때문이다. 끝. (p220)
또, 한 사람은 애도하려 가는 길에 만난 '유키꼬'이다. 그녀 역시 성장과정과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르는 어떤 절의 주지와의 결혼을 하게 되고, 남편의 요구에 의해서 사랑하는 남편을 살인하지만, 항상 그의 오른쪽 어깨에서는 남편의 망령인지, 망상인지가 빈정거리면서 그녀를 힘겹게 만든다. 그녀 역시 '애도하는 사람'과 같이 죽음의 현장들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 가게 된다. 자신의 어깨에 있던 무거운 짐, 그녀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내려 놓을 수 없었던 죄책감에 대한 망상을 내려 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은 시즈토의 어머니인 '준쿄', 아들의 뜻모를 '애도하는' 여행을 묵인해주지만 말기암에 걸려서 아들의 모습을 꼭 한 번 보기를 원한다.
'준쿄'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과는 무관하게 낙관적이고, 자신의 병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이다. 미혼모가 될 딸의 출산과 자신의 남은 인생이 엇비슷하다는 것이 또한 어떤 결말이 이루어질 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묵묵히 걸어가면서 각양각색의 사연이 담긴 죽음을 애도하는 시즈코의 말과 행동은 마키오에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로 만들어 가게 해주고, 자신의 사랑과 살인에 대해서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던 유키요에게도 자신이 가졌던 사랑이 결코 집착이 아닌 사랑이었으며, 그녀의 남편이 보여준 행동도 결국에는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만들어 준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시각이 이처럼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현재까지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 기억할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 어떻게든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없을까하고 ... (p256)
고인을 기억할 때, 죽음의 비참함과 비애가 아니라 그 사람의 긍정적인 면만 기억하기로 했다고 한다. 긍정적인 면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겠지만, (...) 어떤  인물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 가지  여건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누구를 사랑했는가? 누구에게 사랑을 받았는가? 누군가가 어떤
일로 그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는가? (265)

'텐도 아라타'는 준쿄의 말기암에 대처하는 부분을 너무도 긍정적이고, 죽는 날까지 그녀가 하던 봉사활동이라든가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삶을 마무리하는 부분을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3개월, 한 달, 3주, 며칠..... 점점 줄어드는 시간들을 딸의 출산을 기다리면서 맞이하는 모습이 어쩌면 더 슬프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신체의 기관들마저 멈추어가는 순간들, 모든 기관들이 마비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다는 청력.....
준쿄의 귀에 들리는 아련한 소리들... 딸의 출산의 소리, 자신의 스려지는 모습을 안스러워 하면서 하는 이야기들,  미안해, 엄마...., 잘 참으셨군요,
귀에 익은 목소리, 애타게 기다리던 목소리가 '늦었습니다.' 한다. 희미하게 남은 힘을 그러모아 눈을 뜬다. 정말로 보이는건가. 진짜 현실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p640)
준쿄가 마지막까지 기다리던 아들 '애도하는 사람'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안스러워서 나는 한 줄기 눈물을 흘린다. 끝까지 아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무언의 응원을 보냈던 엄마는 아들의 애도를 받으면서 이 세상끝으로 떠나간다.
 당신은 ... 나를 사랑해 준 사람입니다., 당신은 ... 내가 깊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사랑입니다. (p640)

아들의 애도를 받으며 떠난 세상을 바로 이와같은 세상인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누구나 차별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누구나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서로에게 사랑받는 것이... 서로에게 감사하는 것이 전해진다. (p641)



한 작가의 머리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장편소설 '애도하는 사람'은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독자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사랑과 집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준다.


그렇다,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들이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삶이 모든 사람에게 소중하고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삶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게 해 준다.
다소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내내 삶에 대한 단상들이 이것 저것 떠오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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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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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기전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인이 한국에 살면서 한국 고아를 입양하여 살아가는 잔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책의 분량도 230 여 페이지에 달하기에 그저 그런 흔한 고아 소년의 성장기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이질적인 문화로 다가오는 이슬람 문화. 이슬람 문화의 성격이 그래도 좀 완화되어 있는 터키. 그곳의 사람들은 한국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의 삼촌이, 아저씨가..... 뭐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친척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와 형제의 나라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국전쟁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터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낯선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몸에 큰 흉터를 지닌 하산아저씨.
그리고 그가 고아원에서 입양한 한국 소년 역시 몸에 많은 흉터들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도 보기 흉할 정도로 큰 흉터. 그 흉터는 소년의 기억에도 없는.... 그러나, 그 흉터로 많은 마음의 흉터가 더 크게 남아 있는.....

지옥에서 살았던 사람이 지옥이외의 곳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지옥일뿐이겠지. (p27)
네 흉터는 그냥 흉터가 아니란다. 그 흉터는 역사가 날염된 것이야. 내몸의 모든 흉터들 역시 내 개인사가 날염된 것들이지. (p221)
이 두 주인공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는 근처의 후락한 마을에 살고 있다. 그 허름한 골목에 모여 사는 사람들. 그들의 인생도 찌그러진 인생임에는 틀림없다.
하산아저씨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그대로 눌러 앉아 살고 있는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 허름한 충남식당의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말더듬이 유정. 기억력이 상실된 사람....   그들은 모두 마음의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밖에도 소년이 있었던 고아원의 벙어리 신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상이 아닌 말더듬이, 벙어리. 기억력이 상실된 사람 등 소외되고 장애를 지닌 그런 인물들이다.
특히, 하산아저씨는 이슬람신도이기에 모스크를 찾기도 하고 기도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슬람교에서 금기시하는 돼지 정육점을 한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난도질하는 유일한 무슬림이 아닐까....
소년은 상처투성이 몸과 마음을 가진 누굴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다. 해외로 입양이 되어 입양가족에게 장기를 제공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 않고 하산아저씨와 살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아이이다.
이런 하산 아저씨와 1인칭 화자인 '나' 즉 소년이 그렇다고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고아원에서 입양은 해 왔지만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 소년은 동물의 말을 알아 듣는 유정과 그리고 하산아저씨, 야모스 아저씨, 안나 아주머니와 부대끼며 살아간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들 중간 중간에 환상 소설이 아닐까 하는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소재들의 이야기를 슬쩍 끼어 넣기도 하면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름답지도 않고 흉터로 보기싫은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쁘지도 않은 세상을 그려나간다. 이야기속의 사람들의 삭막하고 피폐한 마음을 소년의 눈을 빌어서 차분하게 그려나가기에 더욱 서글픈 마음이 들도록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산 아저씨와 소년의 몸에 있는 비슷한 흉칙한 흉터.
하산 아저씨는 고아원에서 왜 소년을 입양했을까.
하산 아저씨와 야모스 아저씨는 전쟁중에 어떤 일을 겪었을까.
소년이 왜 얼굴 스크랩을 할까.
"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끈을 발견한 것 같구나."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아저씨예요. 보세요. 아저씨, 아저씨 얼굴을요. 아저씨는 어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고 어떤 터키인보다 더 터키인 다워요"
" 한국인인지 터키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맞아요,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는거잖아요. "
   (....)
"안다고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랑, 우정, 평화, 자유.... 그런 말은 알지만 그걸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처럼요. "    (p220)
사람은 본성적으로 누군가를 인종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없다. 그건 우리가 곧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는 능력만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했다. (p222)
이런 모든 의문점을 작가는 속시원하게 확 풀어 놓지를 않는다.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읽는 이들이 스스로 풀어나가도록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그래서 소설의 줄거리보다는 작가의 섬세한 인물묘사와 비유적인 표현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그런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첫 문자은 '내 몸에는 의붓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시작하여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끝맺음한다는 것이다.
이 두 문장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읽은 후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 '이슬람 정육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장소설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런 소설.

 

구부정한 거인을 연상시키는 하산 아저씨의 뒷 모습은 매번 이별을 하는 사람처럼 아득하고 쓸쓸했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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