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위로할 것 - 180 Days in Snow Lands
김동영 지음 / 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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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병률의 '끌림'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거야'였고, 이어서 김영하의 'stay', 그리고 여행자 시리즈. 또다시 개정판 '끌림' 그리고 다시 김동영의 '나만 위로할 것'.
이런 류의 책들은 그 흔한 여행서에 비해서 특별한 관광지를 둘러보는 그런 이야기들이 아니라서 좋고, 일생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기는 하지만 쉽게 떠나기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작가들처럼 그냥 그저 그렇게 그곳에 푹 빠져서 잠시나마 생활인으로 머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해 준다.
'나만 위로할 것'은 그의 전작인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거야'와 거의 같은 톤의 이야기이다.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거야'가 출간된 후에 조금씩 팔리다가 어느날 한 연예인이  그 책을 들고 TV에 나오게 되자 선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책에서 느꼈던 느낌들은 나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그런 좋은 느낌의 책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나만 위로할 것'도 나에게는 전작의 느낌을 이어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가 보다.
혹자는 이런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저자가 새로운 책을 내기 위해서 떠난 여행은 아니었을까 하는....
누구나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고, 직장에 다니고 휴일에는 쉬고,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하고, 그리고 2세를 낳고....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훌쩍 떠날 수도 있는 것이고, 낯선 곳에서 여행자도 아닌, 생활인도 아닌, 그렇다고 도피자도 아닌, 그 누군가로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와같은 마음 속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의 아일슬란드로의 떠남은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속에는 그만의 외로움과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기에.
그는 아무도 안 가는 길, 그가 처음 발견한 길을 걷기도 한다.

"거기 가면 아무 것도 없어."
그래도, 그는 여행자가 아니기에 그 길을 간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아이슬란드의 눈 속의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왠지 외로움이 묻어있다.
아이슬란드는 아주 조용한 나라야. 특히 백야의 새벽에는 모든 게 새파랗게 물들곤 하지 (P36)

그러나, 길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도 환하고 아름답다.



그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방황(?)을 하였는지 스웨덴 예리보리에서 런던을 가기 위한 출입국 심사대의 여인은

내가 지금까지 여기서 일하면서 본 여권 중에서 가장 낡고 꼬깃꼬깃하지만, 그 안은 화려해서 마치 작은 세계 지도 같네요 (P124)



레이카비크의 카페 '바바루'에서 제일 싼 300크로나 차를 마시면서 하루 5시간씩 일주일에 6일을 자신의 지정 자리에 앉아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찾고, 무엇을 썼을까?
때마침 닥쳐온 재앙인 아이슬란드 남부 산악지대에서 폭발한 2번의 화산 폭발.
뿌연 화산재가 날리는 아이슬란드. 도로가 붕괴되고 공항을 폐쇄되고, 유럽 전체에 항공기 운항마저 끊어져 버린 그곳의 풍경은 작가의 힘겨운 삶의 모습과 너무도 일치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훌쩍 떠나와 머물고 있는 도시의 재앙은 그의 불운을 이야기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여행이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여행에서 만난 마리에게 여행은?


이 책의 저자인 생선에게 여행은?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
음악을 사랑하고, 여행을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이 음악과 함께 흐른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180일의 아이슬란드의 여행에서도 그는 그의 인생의 답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멀지않아 또 지구촌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에 취하고, 음악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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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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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고등학생들은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다 읽지는 못했더라도, 일부분은 독서가 아닌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한, 또는 수능을 대비한 공부로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우리나라의 현대 역사 속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과 인간의 내면성에 대한 탐구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독고준이란 주인공을 '회색인'을 통해서 어린시절부터 대학까지의 모습으로, '서유기'를 통해서는 단 몇 분간의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그려내면서 독고준에 대한 3부작을 쓰려고 했지만 마지막 3부는 쓰지를 않았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필치로 평가를 받는 저널리스트인 고종석이 독고준 3부를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고종석은 이 책의 자서에서
독고준의 미래가 궁금했다고 말하면서 '이 소설은 독고준이 살 수도 있었을 한 삶의 스케치 (이 책의 자서 중에서)
라고 말한다.
소설의 제목부터 타 소설가의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을 빌려 왔다는 것과 기존의 소설의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썼다는 것도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화자인 독고원의 아버지인 독고준이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독고준은 소설가이며 대학교수인데, 74 살의 나이에 14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 자살을 한다.
아버지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은 더 이상 삶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판단때문이었을 것이다. (p17)
그런데 그 날이 바로 전임 대통령이 자신의 집 뒷산 바위에서 투신 한 날이다.
전임 대통령의 자살은 자신의 명예를 건져내고 패밀리를 보위할 최선의 (어쩌면 유일한) 방책 (p18) 이었을 것이다.
한국 문학의 우듬지 역할을 했던 독고준의 자살은 사회적 이슈를 일으켰을 사건이지만, 전임 대통령의 자살로 큰 반응은 일으키지를 못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설의 이야기들이지만, 2부, 3부의 내용은 소설이란 장르로 보기에는 그 누구도 이런 형식을 보여주지 못했던 특색있는 구성의 내용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각각 한 편의 칼럼이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잘 짜여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독고준의 자살이후 그의 아내는 남편이 그동안 썼던 일기장을 딸에게 넘긴다.
단기 4293년 4월 28일 목요일부터 2007년 대통령 선거일까지 47년에 걸친 일기장을.
그리고 그 일기는 4월, 5월..... 3월의 순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독고준의 일기 내용은 사소한 일상의 기록보다는 세계사적인 사건들,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책을 읽은 후의 감상과 작가들에 대한 평에 이르기까지 47년의 한 인간의 일생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4.19혁명, 부정선거, 킹목사 살해, 만델라의 남아공 대통령 당선, 존 F 케네디의 암살, 김일성의 사망, 워터케이트, 닐 암스트롱의 달착륙, 피카소와 여인들, 오승은, 신동엽 등의 문인들.....
외계인
며칠 전 미국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을 밟았다. 우주 공간을 향한 도전에선 소련이 앞섰으나, 달에 제 나라 국기를 꽂는 덴 미국이 앞섰다. 암스트롱과 가가린, 어느 쪽이 더 큰 상징이 될까? 1969. 7.22 화
(P174)
이 모든 내용은 고종석 작가의 일기장이 아니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굵직굵직한 사건과 함께 독서일기, 문학평론 등까지....
읽는내내 작가의 열의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독고준'은 장르가 소설이지만,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해박한 지식들이 토대가 된 독고준의 일기가 주축이 되고, 그의 딸인 독고원이 그 일기에 곁들여서 자신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깔끔하게 펼쳐보이는 픽션이 너무도 잘 어우러졌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독고준의 일기만으로도 작가의 모든 역사의식과 문학비평과 독서일기를 읽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벅차옴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고종석 작가의 시사칼럼이나 에세이를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칼럼이야 이름을 눈여겨 보지 않았기에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찌되었든간에 내 기억 속의 고종석이란 이름은 얼핏 얼핏 본 기억말고는 없었는데, 그의 작품 '독고준'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기뻤다고 해야 할까....
소설로 읽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독고준의 일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두고 두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독고준'을 읽은 한 줄 평을 말해 보라면
나는
"2010년의 마지막 달에, 큰 수확을 얻은 것 같은 느낌에 흐뭇함이 번져 흐른다." 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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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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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팬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던 '렛미인'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와 원작소설. 내 경우에는 영화를 즐겨 보지 않기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소설을 먼저 읽고 보는 영화나 영화를 보고 읽는 소설이나 언제나 소설에서의 느낌이 훨씬 좋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영화 '렛미인'은 보지를 못했기에 여기에서는 소설 이야기만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는 북유럽 작가. 그것도 스웨덴 작가이다. 작가의 이력이 다양하다. 마술사, 스탠드업 코미디언, 텔레비젼 코미디쇼와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
이런 작가가 호러물. 특히 뱀파이어 이야기를 썼다고 하니 흥미로워진다.
'욘 아이비데 린드크 비스트'가 이 소설을 쓴 것은 2002년인데, 그의 첫번째 소설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을 가지고 여러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내용이 너무 괴상하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당하다가 2004년에 출간을 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이 영화화되자 '2008년 가장 인상적인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의 앞 부분에는 작가가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 영화 '장화 홍련'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그밖에 김지운 감독의 '거울 속으로' '여고괴담 - 여우계단'등도 좋아하는 작가라면 '욘 아이비데 린드크 비스트'가 어떤 작가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장화 홍련'은 나도 본 영화이기에 이 책의 작가가 관심있게 생각하는 영화의 장르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렛미인1'을 다 읽은 지금에는 '장화 홍련'의 느낌과 '렛미인'의 느낌이 너무도 닮아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이 자신의 유년시절의 이야기가 바탕인 된 자전적 소설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뱀파이어 이야기를 제외한....
그렇다면, 작가는 '오스카르'가 아니었을까?
이야기는 스웨덴 브라케베리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30년 정도된 교외의 도시. 과거가 없는 도시. 과거가 없는 도시(?)
시작부터 암울하다. 뚱뚱하고 재수없는 아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욘니와 그의 친구들에게 '돼지새끼'라는 놀림을 받으며, 폭행을 당하는 아이 오스카르.
화장실에서 훔씬 매를 맞는 것으로 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욘니 일파에 대한 복수심에서 그는 살인자들의 이야기를 스크랩하기 시작하고, 분노에 칼을 들고 숲으로 가서 나무를 갈갈이 찌르고 잘라 놓는다. 그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은 가엾은 12살 소년 오스카르에게 밝은 빛처럼 나타나는 소녀 '엘리', 그 소녀와의 만남에서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우정을 느껴 간다.
오스카르에게 엘리는 다가가기를 원하는 유일한 존재이지만, 엘리는 오스카르의 모든 것을 받아 줄 수 없는 존재. 
  

"난 그 어떤 것도 아니야. 아이가 아니야.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고, 남자애도 아니야. 여자애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p265)

"나 들어가도 되니? 들어가도 된다고 말해줘'" (p347)

그러나, '엘리'와 함께 살고 있는 '호칸 벵츠손'
부녀지간이라고 하지만 실은 '호칸'은 전직 교사인 아동성애자이자 뱀파이어인 '엘리'에게 피를 공급해주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살인마.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며 흥미진진한 내용이 전개된다.
뱀파이어 '엘리', 소녀는 살기 위해서는 피를 마셔야만 한다. 오스카르는 엘리가 뱀파이어임을 알게 되는데,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이젠 엘리가 무서웠고 보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p347) 
 

이 소설은 뱀파이어 이야기이기에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참혹할 정도의 살인사건들이 등장하고 그 뒤에는 엘리와 호칸이 존재한다.
또한,피의 맛을 본 새로운 여자까지 있기에 또다른 피를 부르는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자신을 갖가지 방법으로 폭행을 하면서 괴롭히는 욘니 일파를 죽이고 싶은 마음에 살인의 행동을 스크랩하는 오스카르. 만약 소년에게 기회가 온다면 살인도 불사하지 않을까. 미워하는 마음에서, 복수하는 마음에서....
악랄한 욘니 일파에 대한 복수심은 이해가 가지만,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오스카르는 자신의 살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엘리를 통해서 얻을 수는 없을까.
뱀파이어이기에 살기 위해서 피를 부를 수 밖에 없는 그 소녀를 통해서.
오스카르와 엘리는 상당 부분 일치하는 삶이 있었기에 그렇게 가까워 질 수 있지는 않았을까.
이 둘은 서로의 모습을 서로의 모습에 비추어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왕따 소년이 얻은 단 하나의 삶의 탈출구였던 뱀파이어 소녀와의 만남이 해피엔딩이 되기는 쉽지 않으리라.
뱀파이어는 피를 필요로 하기에. 소녀는 이 세상을 떠나야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것이다.
'렛미인1'은 3부의 중간에서 끝맺었기에 '렛미인2'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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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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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의 작가인 '김훈'과 나와의 책 속에서의 만남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가장 첫 만남은 '책책책 책을 말하다'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때 읽은 책이 '칼의 노래' 그리고 이어서 '남한산성' '자전거 여행' '풍경과 상처' '공무도하'.
그런데,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첫 만남은 너무도 많은 낯가림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항상 내가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그리고 독자들에게 남기는... 사회를 향해서 외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곤 했다.
워낙 역사소설을 좋아하기에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읽을 때에는 정통 역사 소설을 기대했기에 더욱 낯설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우리들이 흔히 기대하는 영웅적이고, 애국적이고, 구국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를 선 보였다.
역사가 가진 무게보다는,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가지게 되는 인간적 고뇌와 번민을 다루고 있었다.
'공무도하'에서도 고전적 주제를 가지고 한 기자의 시각으로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훈의 소설들은 흔히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의 이야기들인 것 같으나 소설 속의 주제나 메시지는 제목에서 떠오를 수 있는 단상들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이야기들은 써 나갔다.
그의 에세이인 '풍경과 상처'는 에세이라기에는 좀 어려운 문체들이 결코 한 문장, 한 문장을 쉽지 않게 받아 들여야 하였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의 빈약한 문학적 소양과 언어 및 문장 실력으로는 쉽게 받아 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김훈 작가의 작품들은 어느새 나에게는 조금씩 조금씩 낯익은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무도하'이후 약 1년만에 출간된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으면서는 완전히 작가의 문장들이 자연과의 합일을 이룰 정도로 세밀하고도 날카롭게 관찰되어야만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한 문장, 한 문장의 아름다움과 그 문장들이 모여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청정지역과 같은 소설로 탄생한 것에 경이로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한 권의 에세이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문장들.
그리고 어찌보면 한 권의 깨끗한... 담고 싶지만 담지 않고 남겨두는 여운이 남는 그런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그런 책이다.
문장의 향연이라고 해야 할까.

멀리, 눈 쌓인 자등령에 아침햇살이 닿으면 잇달린 봉우리들은 솟아오르는 태양의 각도에 따라서 자줏빛에서 분홍빛으로, 분홍빛에서 선홍빛으로 바뀌었다. 바람이 는성을 훓을 때, 솟구치는 눈의 회오리 속에서도 분홍빛과 자줏빛의 눈가루들이 들끓었다. 들끓는 빛의 가루들을 몰아가는 회오리가 능선을 따라서 북방한계선을 건너갔다. 자등령이란 이름의 붉은 자는 겨울 아침에 지어졌을 것이다. (...) 겨울이 가야 봄이 오는 것이 아니고, 겨울의 숲이 봄을 기다라는 것도 아니었다. 숲은 겨울을 기다리지 않았고, 겨울의 한복판에 봄이 이미 와서 뿌옇게 서려 있었다.(P85~86)
숲에 눈이 쌓이면 자작나무의 흰 껍질은 흰색의 깊이를 회색으로 드러내면서 윤기가 돌았다. 자작나무 사이에서 복수초와 얼레지가 피었다. 키가 작은 그 꽃들은 눈 위에 떨어진 별처럼 보였다. 눈 속에서 꽃이 필 때 열이 나는지, 꽃 주변의 눈이 녹아 있었다. (P1150)
진달래꽃의 색깔은 구겨져서 바래었고 작약의 색깔은 기름졌다. 늪가의 물안개 속에서 핀 도라지꽃의 보라색은 젖어서 축축했고, 한낮의 패랭이꽃의 자주색은 팽팽했다.  (P120)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의 소설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세밀화가인 조연주,
그리고 비리 공무원으로 가족들에게 별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또한 아내 역시 '그 인간..'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위치에 있는 아버지.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아니 싫어하지만 그 연을 끊지 못하고 끌려가는 듯하면서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 그러나, 딸에게 밤마다 전화를 해야만하는...
또 두 사람, 김중위와 안요한.
조연주가 다가갈 것같으면서도 다가가기를 스스로 자제하는...
이처럼 인간의 삶의 테두리에는 가족관계로 얽혀 있어서 끊을 수 없는 인연도 있고, 새롭게 어떤 계기로 연결되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연주와 안요한은 낯가림이 심한 닮은꼴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서로 다가갈 수 없는...
민통선 안쪽의 자등령 숲의 수목원.
조연주가 세밀화가이기에 자연을 보는 눈은 그 누구의 눈보다 더 날카롭고 섬세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문장들로 '쟁쟁쟁~~' 울려 퍼지고....
그 문장을 읽는 독자들은 자연의 모습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음에 작가에게 찬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그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한국전쟁의 참상이 빚어졌던 자등령 기슭에 흙먼지를 겨우 뒤짚어 쓴 책 잠든 수많은 백골들.
그 백골을 꽃을 세밀하게 바라보던 눈으로 그려야 하는 일.
역사의 추악한 모습인 전쟁이 너무도 담담하게 쓰여져서 백골의 이미지에서 느낄 수 있는 섬뜩함마저 느낄 수 없게 해준다.

산맥에 흩어진 백골들 중에서 한 점 백골의 단면을 그리는 일과 억만 년은 피고 지는 무수한 꽃들 중에서, 한 떨기 꽃의 개별적 생명의 현재성을 그리는 일과, 젖니빠진 신우의 그림을 지도하는 일은 결국 같거나,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한 줄로 엮여 있는 것과 같았다. 마음의 일은 결국 몽매하다 (P207)
'내 젊은 날의 숲'의 문장들은 만연체와 화려체들이지만...
그 어떤 문장 하나 군더더기없이 쓰여져야 할 내용에 적확하게 쓰여진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허세에 찬 할아버지에서 안요한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을, 아니 겨울을 닮은 것처럼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잘못 얽힌 관계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한 것처럼....
그 흔한 사랑이야기 한 문장없이....
그러나, 그 외로움의 색깔은 각각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 외로움을 나타내는 방법도 다른 것이다. 아니, 인간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외로운 존재들이기에 이렇게 자연의 묘사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 김중위가 내민 명함 한 장. 그것은 또다른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대로 가방 속에 오래도록 담겨 있다가 정리되는 한낱 종이일 수도 있는....
작가는
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나는 갈구한다.(P343)
화자인 연주는 일상에서의, 아니, 할아버지의 잔상과 아버지, 그리고 엄마의 관계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인연을 위해 자등령 숲의 세밀화가의 계약직으로 1 년간의 자연을 관찰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젊은 날의 숲'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며, 숲의 자연 속에서, 그리고 또다른 인연들과의 관계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그 무엇을 얻었을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지 독자들은 나름대로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연주의 ' 내 젊은 날의 숲'이라기 보다는 약 1년 여의 시간을 전국 방방곡곡의 숲을 벗삼아 다닌 김훈 자신의 '내 젊은 날의 숲'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아직도 '쟁쟁쟁'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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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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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서이지만 자전적 소설이 가미되어서 읽기 편한 책.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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