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간
데이비드 폴레이 지음, 신예경 옮김 / 알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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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운전을 하고 가다가 아찔한 상황에 직면했었다. 내가 있는 곳은 좌회전과 직진차선이었는데, 우회전 차선에 있던 차가 내 앞으로 확 끼어들었던 것이다. 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 차는 내 앞으로 끼어들었다가 내 차와 부딪힐 것 같아 핸들을 꺾다가 횡단보도까지 침입했다. 그때 횡단보도에는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놀란 마음에 욕이 저절로 나왔다. 보통 남자들은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운전자가 누구든간에 무조건 "이 아줌마가!" 라고 한다지만, 내 경우엔 남녀불문하고 무조건 "이 아좌씨가!"라고 한다. 그런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은 대개 남자들이며 그것도 젊은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사고가 나지 않아서 그냥 혼잣말 몇마디 하고 내가 가야할 곳으로 운전을 해서 가긴 했지만, 금세 잊기로 했다. 예전같으면 운전이 끝날때까지 그 생각을 하면서 투덜투덜대고 있었을테지만 말이다.

운전을 할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난폭 운전자가 무척이나 많다. 자신의 운전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런 사람을 보면 한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짜증을 낼 수는 없다.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그 사람과 마주볼 일도 없고, 나 혼자 끙끙거리면서 화를 내봤자 결국 그 소리를 듣는 건 내 귀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혼자 씩씩거리면서 운전하면 운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기 떄문에 사고위험이 커지는 것도 당연하다.

일단 운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실제로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짜증거리와 마주한다. 가족이나 연인, 직장 상사와 동료, 혹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때문에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이럴 때마다 화내고 짜증을 내면 어떻게 될까. 지구는 온통 짜증내고 화내고 분노하는 사람으로 가득차게 되지 않을까.




위의 그림에 등장하는 두가지 테스트에서는 내가 타인으로부터 받는 분노, 화, 짜증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와 내가 타인에게 분노하고, 화를 내고 짜증내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나의 경우 테스트 결과 첫번째 테스트에서는 67점, 두번째 테스트에서는 39점을 획득했다. 첫번째 테스트의 경우 "당신은 타인의 감정공격 때문에 심신이 무척 지친 상태이다"라는 결론이, 두번째 테스트의 경우 "당신의 타인의 감정에 신경 쓰는 사람이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으로 내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부정적인 피드백이든 긍정적인 피드백이든 어느 것에 상관없이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물론 부정적인 피드백의 경우에도 상처를 많이 받지만 무반응을 무시 혹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은 그런 것이 좀 덜해진 편이지만 20대때만 해도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 그렇다 보니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분노하고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종로에서 빰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랄까. 이렇듯 이 두가지 테스트는 동떨어진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에는 직장동료, 상사, 가족, 연인을 비롯한 다양한 관계속에서 주고받는 감정공격과 그에 대처하는 방법들에 대한 것이 나온다. 어떻게 보면 직장문제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직장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자제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폭발적으로 쌓이는 곳이 된다. 그 스트레스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스란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터뜨리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식의 해소는 점점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 타인의 감정 공격, 그리고 내가 타인을 상대로 하는 감정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음 근육이 잘 발달된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공격에 대해 무난히 대처하고, 그것을 다른 곳으로 풀지 않는다. 요즘은 마음 근육이 잘 발달된 사람들이 드물다. 어떻게 보면 나약해진 정신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다는 뜻도 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한 사람의 개인이 겪어야 할 스트레스의 정도와 노출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음근육을 강화시켜 타인의 감정공격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도 타인에 대해 감정공격을 하는 것을 완화해줄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바로 그것이 3초법칙이란 것이다.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는 만큼 다양한 3초법칙이 존재한다. 물론 나의 사례가 이들의 사례와 딱맞아떨어지란 법은 없지만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자신의 사례에 적용시켜볼 수 있다. 3초란 시간은 무척 짧지만 감정을 완화시키는데에는 충분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3초법칙이 너무 다양해서 그때마다 생각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고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심호흡을 먼저 하고 3초법칙을 떠올려 보면 무난히 극한의 상황을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마음근육이 잘 발달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피드백에 대해 더욱 견고한 탑을 쌓아올릴 수 밖에 없다. 만약 내가 그렇다면, 상대가 그런 입장이라면 상대의 굳어버린 마음이 말랑말랑해질 때를 기다리자. 어쩌면 그건 너무나도 쉽게 풀릴 문제일지도 모른다.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고도 하지 않았던가. 먼저 내 마음의 마음 근육을 강화시키면 상대의 부정적인 피드백도 그다지 아프게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부드러운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서면 상대의 마음도 풀리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방법이 먹히지 않을 때도 있다. 상대가 억지를 부릴 경우이다. 그런 경우에는 적절한 무시가 최고의 방법이다. 억지부리는 상대를 두고 이래저래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프고 스트레스만 쌓인다. 그럴 경우 상대를 설득한다거나 상대의 태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난할 필요도 상대의 감정공격에 일일이 대처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감정근육의 적절한 관리, 그리고 상대의 공격에 대해서는 적절한 무시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상대의 감정공격에 내가 크게 다칠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사람은 이성과 감정이 공존한다.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경우 일일이 대처하려 하다가는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는다.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감정근육을 강화하고, 대책없는 상대의 감정공격에 대해서는 적절히 무시하는 방법이 우리의 인생을 조금더 활기차고 밝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18p, 22p, 104p, 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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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일의 첫사랑 4 - 오노데라리츠의 경우,B애+코믹스 034
나카무라 슌기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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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사랑은 무참히 끝나버렸다. 그래서 기억저장소를 뒤적여 떠올려 본 (사실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첫사랑은 지금 생각해보면 미소가 배시시하고 새어나오지도 않고 애틋한 감정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남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왠지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첫사랑과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거나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풋풋한 아이들의 사랑일 경우에 한정되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첫사랑 이야기는 일종의 기대치를 동반한다. 물론 첫사랑 상대를 오랜 세월이 지나 만났을때 그 사람이 정말 멋지게 변한다는 걸 조건으로 하지만... 그런데 굳이 어린 시절의 사랑이 첫사랑이지만은 않다. 때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을 때 진정한 사랑이란 걸 배우기도 하니까. 그럼 고교 시절의 첫사랑과 재회한 오노데라 리츠와 서른이 되어 처음으로 사랑을 배우게 된 키사 쇼타의 이야기를 살펴 볼까나.

이대로 가다간 정말 무너져 버리고 말거야 : 오노데라 리츠의 경우

아버지의 출판사에서 근무하다 다른 출판사로 옮겨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자 한 오노데라 리츠. 하지만 꼬여도 이렇게 꼬일수 없다. 원하던 부서인 문예부가 아니라 순정만화편집부에 배속받은 걸로도 모자라 첫사랑의 그가 편집장으로 있다니. 이거야말로 최악의 직장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일도 익숙치 않아 매일매일이 고달픈데 편집장 타카노는 리츠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아프게 끝나버린 첫사랑의 기억때문에 타카노가 너무나도 어려운 리츠였지만, 타카노의 말,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여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영업부의 요코자와는 대놓고 리츠를 경계한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갈 무렵 연말연시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연말부터 정초까지 연휴에 들어가는 인쇄소때문에 마감이 앞당겨져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리츠는 요코자와에게서 타카노의 생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크리스마스, 생일... 연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날들이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리츠는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타카노와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에 대해.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었지. 그런 특별한 날들이 다가오면 혼자서 맘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곤 했으니까. 물론 마음속으로 그려본 시뮬레이션이 현실적으로 정확히 반영된 적은 없었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의 리츠에게 있어 그건 아픈 기억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휴일을 타카노와 함께 보내게 된 리츠. 생일선물이라 치고 함께 드라이브에 나서자는 타카노에게 끌려나가게 되는데...

이번에 나오는 리츠와 타카노의 이야기는 겨울 특집편이라고 해도 될 듯. 그도 그럴 것이 특별한 행사가 두 번이나 있으니까 말이다. 근데 달콤한 특별한 날이 아니라 여전히 어렵고 머뭇거리게 되는 특별한 날이라니. 정말 나같아도 이런 상황이면 어색해 죽을 것 같은데 말이지. 게다가 집에서 정해준 약혼녀까지 나타나 주시니... 빈정상한 타카노는 요코자와에게 간다고 리츠의 마음을 아프게 콕 찍어준다. 오오, 근데 리츠. 드디어 행동개시? 드디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질 용기가 생겼나? 글쎄, 워낙 우유부단한 녀석인데다가 자신의 감정을 각성한건지 아닌건지도 잘 모르는 눈치코치없는 녀석이라... 이들의 사랑은 당분간 험난할 듯.

그는 정말 날 좋아하는걸까 : 키사 쇼타의 경우

이제껏 엔조이한 관계만을 즐겨왔던 키사 쇼타. 올해로 벌써 서른이다. 그런 그가 한눈에 반한 상대가 있었으니... 바로 서점에서 알바를 하는 미대생 유키나 코우. 나이도 아홉살이나 차이가 나지, 평범한 자신에 비해 왕자님 포스가 철철 넘쳐흐르는 유키나 곁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키사는 유키나의 배려와 이해심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어째 바가지 한 번 긁지 않나 싶은 것이겠지.

연인이 너무나도 바쁜 사람이라면, 그래서 만날 시간이 부족하다면 보통은 바쁘지 않은 쪽이 두려움을 느낀다. 도대체 일이 더 중요한가 싶어 심술도 나고 빈정도 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일이냐 나냐를 두고 경쟁을 시키기도 하는데... (어린 시절의 나도 그랬다) 근데 유키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키사의 모든 일을 이해해준다는 것이지. 고작 21살의 나이에? 내가 그 나이였다면 절대 유키나처럼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정말 유키나는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은 타입이기 때문인걸까,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인걸까. 키사의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간다.

고교 시절의 첫사랑 상대와의 재회를 그려 그 사랑이 다시 이루어져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오노데라 리츠와 타카노 마사무네의 이야기와 서른에 드디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워가는 키사 쇼타의 이야기는 큰 테두리에서 보자면 첫사랑 이야기지만 세부적으로 보자면 굉장히 다른 첫사랑 이야기이다. 보통 첫사랑이라고 하면 오노데라 리츠의 경우같은 이야기가 많지만, 요즘은 사랑이란 걸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기에 키사 쇼타의 이야기가 내겐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근데 그렇게 늦게 사랑을 배우면, 더 두려워질텐데... 스무살에 받는 상처와 서른에 받는 상처의 크기와 깊이, 그리고 극복과정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작은 상처도 쉽사리 낫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도 그렇겠지. 어쨌거나 첫사랑의 애틋함과 행복함보다는 상처에 대한 두려움에서 허덕이고 있는 두 커플의 이야기, 앞으로도 계속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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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미스터에서 - 뉴 루비코믹스 1005
시마지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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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표지 예쁘다. 이 작가의 작품은 별로 읽어본 적이 없지만 표지 일러스트를 참 예쁘게 그리는 작가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BL계 작품은 야릇한 포즈로 꽉 끌어 안고 있는 일러스트가 많지만 이 작가의 경우 절제된 표지 일러스트를 그린달까. 일상과 비일상의 사이, 편안해 보이지만 둘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작품집에는 두 커플의 이야기가 나온다. 완벽하게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고, 누가 중심 인물이 되느냐에 따라 전개가 좀 달라질 뿐이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인물은 소꿉친구인 쿄헤이와 치카이며, 또 다른 커플은 유다이와 모모다.

소꿉친구에서 연인이 되기 까지 : 쿄헤이 X 치카

소꿉친구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설정이다. 난 어린 시절엔 이사를 자주 다녔기 때문에 소꿉친구가 전혀 없다. 물론 이사하고 얼마 후까지는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금세 연락이 끊겨 버렸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기 떄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꿉친구 사이란 말을 들으면 괜시리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실은 부러워서 그런거다.

게이바『Mr.』의 입주 점원인 치카는 요즘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나름대로 잘 나가는 직원이건만, 소꿉친구였던 한살 아래의 쿄헤이가 요즘 매일매일 치카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고 금세 실망할 거라 생각한 치카는 어떻게 해서든 쿄헤이를 멀리 하려 하지만 쿄헤이는 은근히 끈질기게 붙어 있다. 치카가 게이인 것을 인정하긴 싫지만, 소꿉친구로서 치카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치카가 쿄헤이에게 까칠하게 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쿄헤이를 좋아하지만 상처가 두렵다. 이게 치카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사랑하면서 상처받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치부하려는 사람은 사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많이 사랑할수록 상처받는 게 두려워진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세상 어떤 사람이 주는 상처보다도 깊고 날카롭기 때문이다. 쿄헤이를 좋아하면서도 멀리 하고 싶은 치카, 치카의 성향에 대해 완전히 수긍할 수 없지만 그래도 치카가 좋은 쿄헤이.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런지 치카가 까칠하게 굴다가도 갑자기 무너지고, 또다시 방어벽을 세우는 모습이, 함께 살자고 하는 쿄헤이에게 억지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 확 와닿았달까. 치카는 분명 겁쟁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랑앞에서 겁쟁이가 되지 않을 사람이 있기나 할까.

바의 오너와 마스터 : 유다이 X 모모

게이를 혐오하는 주제에 게이바를 운영하는 유다이. 그는 바람처럼 불쑥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오너이다. 그런 오너 대신 게이바를 맡아 꾸려 가고 있는 건 모모. 모모와 유다이의 관계는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유다이같은 마초타입 남자는 별로다. 무조건 마초타입 남자가 싫단 건 아니지만 폭력성향이 있는 남자를 싫어한달까. 그런데도 유다이가 매력적인 건 그의 약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유다이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모모 역시 유다이의 감정을 잘 캐치하지 못하고 있달까. 주기적으로 자신을 찾는 유다이를 보면서 모모는 그저 한순간의 바람이라 생각해 버리니까. 하긴 유다이처럼 폭언에 거친 행동을 일삼는다면 유다이의 마음을 짐작하기도 힘들겠지만...

쿄헤이와 치카 커플은 소꿉친구란 설정이 있어서 그런지 어른들일지라도 소년같은 풋풋함이 느껴졌다면, 유다이와 모모의 사랑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열정적이다. 이 둘 사이의 이야기중에서 특히 인상에 남았던 건 사라졌던 유다이가 나타났던 소리에 지워버린 전화번호를 떠올리려 애쓰던 모모의 모습이다. 저 사람은 내 사람이 되지 않을거야, 라고 결국 포기해버리기로 하지만, 속마음은 끝끝내 유다이를 놓지 못했던 모모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건 역시 사랑은 참 어렵다, 란 것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사랑을 하면서 산다. 사랑이란 한 단어로 묶어 버리기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존재한다. 이들의 사랑도 그랬다. 시마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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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세계의 너와 나 - 슈퍼 루비코믹스 070
나오노 보라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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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세계의 크기는 모두 다르다. 나같은 경우 고양이의 세계와 비슷한 편으로 비록 나만의 세계는 작지만 그것으로 완결되어 있고, 그안에 누군가를 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허락된 단 몇 명만이 내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좀더 넓은 세계를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의 경우는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수많은 교집합 상태의 세계를 가진다. 반드시 다른 세계의 어떤 부분과 교감하고 교류하고 있달까. 나에겐 이런 것이 너무나도 어렵기만 해서 결국 난 내 세계에 콕 틀어박히고 말지만, 사랑을 할 때는 조금 다르다. 사랑을 할 때만은 교집합의 세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랑에 빠진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교집합의 세계를 가지게 되고, 그 관계가 점점더 많이 발전할 수록 그 교집합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완벽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저 하나가 되었을 뿐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지 않을까.

나오노 보라의 신간『돌고 도는 세계의 너와 나』는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교집합의 세계를 넓혀가는 이야기이다. 물론 어린시절의 인연이 있던 커플도 있지만 대개는 새로운 만남에서 시작되어 상대의 세계안으로 들어가는 걸 허락받고, 상대가 나의 세계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이야기라 하면 될 듯 하다. 이 작품집에는 총 4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읽었던 나오노 보라의 책은 죄다 단편이었던듯한...

첫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돌고 도는 세계의 너와 나>는 어린시절 같은 유치원에 다녔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나게 된 고교생들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학원물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공수 캐릭터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그랬던 작품이다. 단지 조금 재미있었던 건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케이토에게 결혼하자고 했던 토모야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크면 우리 결혼하자라는 등의 헛약속을 남발하지. 어떻게 보면 가장 순수한 시절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어린 시절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게 성장한 케이토를 못알아보는 토모야에게, 그리고 일언반구없이 야반도주해 버린채 자신을 혼자 남겨둔 토모야에게 케이토가 마음을 쉽게 열리는 만무. 하지만 어설프게 끝났던 인연이 새로 시작되면 그 어설픈 이별의 아픔보다는 즐거운 추억에 매달리게 된다. 케이토도 멋지게 성장한 토모야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을까.

<예상밖의 두 사람>은 표제작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단편이다. 어휴, 도대체 왜 이런 전개가 되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과 키스하면 짜릿하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근데, 그 대상이 왜 그 사람이 되어 버린 거지? 일단 아키토가 왜 그 사람을 선택했는지 난 참 궁금하달까. 굳이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지 않았나??

<럭키 아이템>은 나오노 보라 캐릭터의 특성 중 하나인 중년 아찌가 나오는 작품이다. 전직 보디가드, 현직 소바가게 아저씨인 야자와와 야자와의 친구의 아들 소타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좀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기에 수록된 것 중 제일 낫더이다. 솔직히 말해 여기에 등장하는 캐릭터중 소타가 제일 안된 캐릭터다. 아버지 빚때문에 학교도 못다니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신세였으니... 그래도 소타가 마음을 줄 곳을 찾은 건 그중 다행이랄까.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한 남자와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소년이 만들어 가는 알콩달콩 이야기. 덤으로 탐정 아찌도 만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특이하게도 요괴가 등장한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의뢰하는 일처리도 하며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요괴 이야기를 엄청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매력이 없는지. 기대는 컸지만 기대에 못미쳤달까.

나오노 보라의 단행본은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스토리가 조금 빈약하다. 물론 썩 괜찮았던 작품도 있지만 대개는 별로인데, 라는 느낌이다. 오히려 공감하지 못할 씬들은 줄이고 스토리를 좀더 보강하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이래 놓고도 담에 신간 나오면 또 읽을 듯한... 이런 것도 이 작가의 매력인가? (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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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빵 5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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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호쿠 지방의 한 베드타운에 거주하며 여름에는 채원가꾸기, 겨울에는 들새들을 위한 모이터를 개방하여 자연스럽게 들새들과의 교감을 주고받는 작가의 다섯번째 이야기. 이번 표지 모델은 물까치이다. 연한 하늘빛 깃털이 마치 하늘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새 물까치.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살고 있는 텃새라고 하는데, 정작 난 까만 까치외에는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물까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찾아봤는데 정말 하늘빛이다. 어딜 가나 눈에 띌 미조(美鳥)같다.

『토리빵』5권은 여름과 가을 이야기이다. 그렇다 보니 아쉽게도 겨울에 찾아오는 철새들 이야기는 없지만, 채원 가꾸기의 즐거움과 여름새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민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들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중 참새 가족들 이야기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다가 짠해지기도 했다. 원래 여름에는 모이터를 개방하지 않지만, 올해는 지붕밑에 조롱조롱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참새들을 위해 육아지원캠페인을 위해 여름한정 모이터를 개방했단다. 아기를 키우는 건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육아노이로제에 시달리는 듯한 어미 참새의 모습이 묘하게 여운에 남는달까.

한편, 8월말 들새 관찰 시설에 들어오게 된 아기 직박구리(통칭 히요짱)이 사람들 손에서 쑥쑥 커가는 에피소드는 인간이 과연 자연의 선택에 간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아기 히요짱은 둥지에서 떨어져 죽을 운명이었지만 사람손에 의해 구해진 후 약 두달간 시설에서 양육되었다. 어미에게서 자신들의 습성을 배우지 못한 히요짱이 과연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보다 구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손이 먼저 나가 이 히요짱을 구하게 되었다는데 나 역시 이런 상황과 마주하면 구하려고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무사히 자라나 자신을 데리러 온 히요짱들 무리에 섞여 훨훨 날아간 아기 히요짱. 잘 살았으면 좋겠다.

가정 채원 이야기에서는 겨울철 음식물 쓰레기로 버렸던 감자가 싹이 나고 잎이 돋아 감자를 맺었다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한참을 웃었다. 작가님이 감자를 캐니 작은 알감자가 친구가 캐니 커다란 감자가... 물론 우연한 결과로 나온 것이겠지만, 순간 민망하지 않았을까나.

텃밭을 가꾼다는 건 정원을 가꾼다는 것과는 다르다. 너무 공들여 꾸며진 정원은 솔직히 발을 붙이기가 힘들다. 작가님의 말대로 '어떤 집념'이 느껴지지만, 텃밭은 푸근해서 좋다. 텃밭에서 바로 수확한 야채는 온기가 느껴진다. 아마도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겠지. 그런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 바로 텃밭이다. 그곳은 이미 작은 생태계를 구성한다. 그 작은 생태계 속을 들여다 보는 기쁨, 그건 아마도 가꿔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가 아닐까.

이 작품은 4컷 만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들새 이야기나 가정채원 이야기를 비롯해 T마츠 연못 이야기, 가족 이야기, 완코 소바같은 음식 이야기, 과거의 추억담 등이 지루할틈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빵빵 터지는 에피소드 사이사이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특히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작가님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해 주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며, 어두운 밤일지라도 빛나는 달이 있기에 푸른 밤하늘이 보인다는 작가님의 말이 가슴속으로 깊게 깊게 파고 들어 온다. 『토리빵』은 이렇듯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수많은 시간들의 의미를 되짚어 준다. 보려고 하지 않아서 보지 못했던 것들, 제대로 볼 줄 몰라서 지나치게 된 것들, 토리빵은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있으면 작은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우치게 되고, 더이상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지 하는 작은 결심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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