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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3인류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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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다. <3인류>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진화'이다. 인류가 어떻게 진화했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뛰어난 상상력을 만나서 빛을 발한 경우라 하겠다. 베르나르의 작품들이야 워낙 기발한 상상력과 방대한 철학, 과학적인 정보들이 버무려진 걸로 유명하다. 제일 처음 만났던 그의 작품인 <개미>때부터 어쩜 이리 기상천외한 생각을 해냈을까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신작은 그의 전작들과 많이 엮여 있다. <개미>에서 주인공의 증손자 다비드 웰즈가 이 작품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가 저술했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자주 인용한다.모든 작품들은 상호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개미』, 『타나토노트』, 『나무』, 『뇌』 등 제 작품은 각자 다른 주제를 논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다 보면 어떤 키워드가 뚜렷하게 잡힐 겁니다."라는 베르나르의 말처럼 말이다. 그래서 기존의 전작들을 이미 읽었던 이들이라면 더욱 반가울 만한 작품이다. 물론 베르나르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거라고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키워드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과학 소설이라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언급이 되는데, 페이지를 멈추고 다시 앞 장으로 돌아간다거나, 주석을 읽어봐야 이해가 된다거나 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는 점이 베르나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여성이 인류의 미래라는 것은 남성을 결정짓는 생식 세포들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건 피할 수 없는 경향이에요. 모든 종들이 저항력과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여성화하고 있어요. 인간이 개미처럼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죠. 개미 사회는 95퍼센트의 암컷과 비 생식 개미, 그리고 수명이 아주 짧은 5퍼센트의 수컷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이야기는 고생물학자 샤를 웰즈의 탐사대가 남극의 빙하 아래에서 8천 년 전에 소멸한 거인들에 대한 기록을 발굴하면서 시작한다. 우리의 첫 번째 인류는 키가 무려 17미터에 달하는 초 거인들이었으며, 그들만의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이룩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중대한 발굴 현장은 의문의 사고와 함께 그대로 묻히고 만다. 나중에 수색대가 그들을 찾아냈을 때는 높이가 2미터쯤 되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 속에 그대로 갇힌 채로 발견이 된다. 그 샤를 웰즈의 아들이 <3인류>의 주인공 생물학자 다비드 웰즈이다. 그는 <진화에 관한 학술 경연 대회>에 참가하지만 최종 선발되지는 못한다. 다비드가 연구한 것은 바로 '피그미, 소형화를 통한 진화'라는 부문인데 콩고에 가서 피그미들을 탐방해 그들이 문명인보다 면역성이 강한 이유를 밝혀보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미개한 과거의 종족인지, 아니면 오히려 미래의 인류에 속하는 사람들인지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여성화가 인류의 미래라고 믿는 내분비학자 오로르 카메러를 만난다. 그리고 심사위원 중의 한 명이었던 나탈리를 통해 대통령 직속 비밀 기관의 지원을 받는 과학자들이 황폐한 환경과 방사능 속에서도 살아남을 신종 인간을 탄생시키려는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초소형 인간인 에마슈이다.

 

제가 지지하는 두 결선 진출 자는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사회성 곤충들은 꿀벌이든 개미든 1 2천만 년 전부터 지상에 존재해 왔고 그런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꿀벌과 개미는 완벽하게 기능하는 사회를 만들어 냈고 전염병과 기아를 이겨 내면서 온 대륙에 도시들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종은 크기를 줄이고 암컷의 비율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지상에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개미와 꿀벌을 볼 수 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베르나르는 이 작품에서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설, 즉 가이아 이론을 전면적으로 등장시킨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지구가 인간처럼 살아 있다고 보는 이들이 붙인 이름이다. 가이아는 독백의 형태로만 등장하며,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전체 소설에서 가이아의 대목만 1인칭 서술로 독립되어 흐른다. 핵무기의 무분별한 사용, 자연재해와 환경 재앙, 자원 고갈, 대전염병, 야만적 자본주의, 종교적 광신 등 인류가 끝없이 어리석은 선택으로 자멸을 향해 치닫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 작품의 배경이므로, 지금처럼 지구 행성을 소모하는 자기 파괴적 생활 방식을 계속한다면 종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인류는 자신을 탈바꿈시켜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메시지다. 인간들의 행동에 분노한 가이아는 바이러스나 기상 이변 등을 통해서 인간을 심판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보고 다비드와 오로르는 이게 바로 바로 우리 부모 세대의 지력과 사고력이 도달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우리 부모들은 잘못을 저질렀고 그들에 앞서 우리 조부모님들도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그런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그런 실수를 이어 간다는 거라고. 우리는 새로운 인류, 새로운 규칙을 가진 신 인류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이다.

 

신체의 크기를 줄여서 위험에 대처하는 것은 8천 년 전에 거인들이 사용한 방법인데, 저들이 그런 해결책을 다시 찾아낸 것이다. 사실 인간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인간들은 나의 모든 표면을 침범해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그들의 크기가 줄어들면 내게는 그들이 훨씬 덜 성가실 것이다. 크기가 0분의 1로 줄어들면, 그만큼 천연자원과 식량의 소비도 감소할 것이고, 수명도 짧아질 것이다. 요컨대 나를 침해하는 일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3인류>에서는 17cm 초소형 인간에마슈가 등장한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진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에마들은 숫자로 구분이 된다. ‘에마 1’은 제 1대 여왕으로 에마슈들을 다스렸고. ‘에마 666’은 반란을 일으켜에마 1’을 살해했고, 처벌을 받은 뒤 사제로서 활동한다.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에마 109’는 다음 편에서 전개될 이야기에서 어떤 활약을 할 거라는 예고를 한다. <개미>를 읽었던 이들이라면 아마도 그 작품과 연결된 부분들을 캐치했을 테고, 그럼 다음에 이어질 <3인류>이 스토리가 더욱 궁금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에마슈를 보는 가이아의 멘트가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에 대한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거인들은 미니 인간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해결 책은 더 고약한 문제를 낳았다. 미니 인간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그들은 저희를 창조한 주인들을 배신했다.’ 라고 하니 말이다. 베르나르는 아직도 이 작품을 집필 중에 있고, 현재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앞으로 프랑스에서는 4, 한국에서는 8권으로 나올 예정이라고 이라고 하니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보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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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분의 1의 우연]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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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야간에 차량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12톤 탑차 트럭이 넘어지고, 뒤따르던 승용차가 추돌해 불타고, 이어 오던 승용차를 들이받은 중형 승용차. 그 뒤를 추돌한 라이트 밴에 이어 다섯 번째 추돌 차량은 2톤짜리 트럭이다. 그 트럭은 피하려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지만 때마침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중용 승용차와 부딪쳐 모두 대파되고 만다. 무려 6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은 엄청난 대형 참사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교통사고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마침 근방에 있던 아마추어 사진가가 그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게 된다. 그리고 <격돌>이라 이름 붙은 그 사진은 신문사 공모에 출품되고  ‘10만 분의 1의 우연이 만들어 낸 사진이라며 격찬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건 보도 사진은 사고가 발생 한 후 시간이 흐른 뒤, 차량의 잔해나 현장 검증을 하는 모습이나, 멀리서 구경하는 군중을 찍게 마련인데, 이 작품은 사고가 발생하는 그 순간의 섬뜩함을 담아 냈다는 것이다. 세 대의 차량에서 화염이 솟구치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그 불길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을 생각해보자면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이다. 신문사에서는 이 생생한 사진을 통해 운전자들의 경계심을 다잡고 교통사고가 감소하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히며, 이 사진에 연간 최고상을 수여한다. 하지만 그 사진은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친다. 사진 찍을 시간에 사람을 구했어야 하지 않냐. 아무리 보도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끔찍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스마트 폰이 대중화되고, SNS가 보편화되면서 지하철에서 치한을 만나더라도 지나가다 누군가의 다툼을 목격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야마가 처럼 사진 작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 순간이 아니면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거나, 참혹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상황이라던가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스마트 폰을 꺼내 든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도 이러니 야마가 처럼 카메라를 수시로 들고 다니는 사진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생일대의 순간이 누군가 죽어가는 상황이라면 어떻하겠는가. 셔터를 눌러 그 순간을 영원히 포착할 것인가, 아니면 죽어가는 타인을 돕기 위해 다 내팽개치고 달려갈 것인가.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답게 마쓰모토 세이초는 보도와 인명 중에 어느 것이 더 먼저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보도사진은 완전히 우연성에 지배되기 때문에 작품의 우열에도 우연성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것은 아니죠. 때문에 공모하는 측은 일반인으로부터 좋은 보도사진 작품이 많이 모이지 않아 고민입니다.

 

실제로 참혹한 보도 사진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었던 일이 몇 건 있었기 때문에, 보도와 인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걸로 끝냈다면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그냥 사회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야마가는 정말 1만 분의 1 아니, 10만 분의 1의 기막힌 기회를 단지 운이 좋게 만난 것일까.

 

헌데 야마가 씨, 셔터 찬스라는 건 그저 기다려야 하는 거군요.

이렇게 야마가 씨가 카메라를 준비해 놓은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만 분의 1, 0만 분의 1의 우연도 결국 기다리다가 만나는 것이라고요.

 

그 우연이라는 것이 예상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우연, 즉 결국은 필연이었다면 어떨까. 진짜 우연이었다고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사진인데,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면 대체 어떻게 될까. 아무 상관없는 여섯 명의 무고한 죽음이 단지 공모전 수상을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거였다면? 내가 피해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억울하고 분할까. 그런데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 그럼 대체 그에게 어떻게 죄를 고백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대놓고 범인을 밝히고 들어가는 작품이다. 의문의 추돌사고로 약혼녀를 잃은 남자의 분노. 엄청난 참사가 사고가 아니라 연출된 거였다면 그것은 무려 '살인'이었다는 얘기이다. 그는 차근차근 야마가에게 접근해 그의 범행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사회가 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제대로 범인을 처벌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극중에서 벌어지는 개인적인 복수를 어느 정도는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힘없고 무력한 이들은 피해자이면서도 아무런 위로도 대가도 받지 못하는데, 가해자들은 적당한 처벌을 받고 나서 오히려 법적으로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다시는 사건이 벌어진 날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데, 가해자들은 너무도 쉽게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것이 사회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인 복수가 도덕적인 기준에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기에 눈감아주고 싶은 것이다.

 

기적에 가까운 우연이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계획된 필연이냐의 문제의 문제로 진행된다. 스토리는 전혀 복잡하지 않고 술술 읽히는데, 가슴 한 켠이 묵직해지는 잔상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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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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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라는 뭉클한 제목을 가진 이번 작품집은 먼로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작품 집이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 마지막 작품집인 <디어 라이프> 보았는데, 겨우 권을 읽고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수는 없겠지만 가지 분명한 것은 묘사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작가라는 점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 내가 속한 공간의 사물들, 나와 가장 가까운 세계에 대해 이보다 꼼꼼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밀한 그림 같은 묘사가 돋보인다. 보통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의 경우 커다란 이야기 줄기가 있고, 그것에 맞추어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플롯이 생성되고, 반전과 묘사로 세밀한 부분들이 채색되어 그려진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주변 상황에서부터 마치 카메라처럼 정교한 묘사를 통해서 점점 인물에 다가가는 듯하다. 그러니까 성급하게 먼저 말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찬찬히 보여준 다음에 그제야 말을 꺼내려는 사람 같다고 할까. 그래서 우리는 먼로의 작품을 읽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어떤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그녀의 작품에는 길이와 상관없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장면들이, 작품마다 색채를 달리하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장편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밀도를 가지고 있는 아닐까 싶다. 사실 사는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으면서도, 가까이 가서 보면 모두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간단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하나하나 다르고,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으니 말이다. 먼로는 바로 그런 이야기에 집중한다.

 

" 떠납니다." 옆에 앉은,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으나 이제 하지 않겠다고 하는 남자 앨리스터가 말한다." "우리는 떠날 겁니다."

우리. 그가 우리라고 말했다. 잠시 나는 단어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우리 안에 내가 들어갈 마지막.

중요한 것은 '우리' 아니다. 내게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진실은 그가 트럭 운전사에게 말할 때의 남자 남자의 어투, 침착하고 이성적인 사과다.

<아문센> 중에서

 

작품 주인공은 시간(time) 기억(memory)이다. 인물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아문센> 여자는 결혼하기로 남자에게 버림을 받지만, 그래서 날을 평생 기억하며 산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그와 다시 마주치고,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린다. 시간이란 것이 기억을 아무리 마모시켜 닳게 만들더라도, 끝내 변하지 않는 무언가는 남게 마련인 것이다. <자갈> 주인공은 언니가 물에 빠져 죽은 사건에 대한 기억에 평생 사로잡혀서 살고 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난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삶에 주어진 선물로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가. 죄책감과 후회, 연민은 모두 같은 종류의 감정들이다. 결코 기억에서 떼어내 버릴 수도, 모른 수도 없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 죄책감은 회한으로, 연민은 미움으로 연결된다. 모두가 바로 후회하고,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악순환이다. <호수가 보이는 풍경> 에서 의사의 처방전을 받으러 여인은 정신 질환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멀쩡해 보이기도 한다. 노년의 기억이란 그렇게도 힘이 없고, 유약하게 마련이어서 그녀가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은 남편이 아직 살아있던 시절로의 꿈을 꾸고 나서이다.

 

이번 작품을 읽고 나서 먼로의 작품집에 실렸던 번째 작품 <작업실> 주인공이 문득 떠올랐다. 평범하게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의 치다꺼리를 하며 살면서, 틈틈이 글을 쓰는 작가였던 그녀가 어느 큰마음 먹고 작업실을 얻어야겠다고 남편에게 말을 꺼낸다. 동안 너무 가정에만 얽매여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자아를 찾아보려고 하던 그녀는 그렇게 구한 작업실에서 사회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혔었다. 물론 평범하지 않고 악의적인 사무실 주인이긴 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족의 안에서만 살던 주부가 느끼기에는 사회의 부정적인 쓰디 단면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마지막 작품집에서 만난 주부 혹은 여성 주인공들은 <작업실>에서의 순진하고, 세상을 모르던 인물에서 많이 성숙해진 느낌이랄까. 세상의 풍파를 많이 겪고, 많이 닳고 약해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삶을 관조할 있는 시선을 가진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의 삶에서나 비극은 있으니까. 피할 없다면 정면으로 받아들이자. 그러면 오히려 마음만은 편해질 있다.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같은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서 느껴졌다.

 

"중요한 행복해지는 거야." 그가 말했다.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있어. 하다 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를 거야. 모든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있게 ."

<자갈> 중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소설을 읽을 눈으로 글을 읽지만, 좋은 작품은 실제로 소리와 리듬이 되어 귀로 들리게 만들어준다. 유려하고 단단한 문장들은 생생하고, 아름답게 가슴으로, 머리로, 귀로 삶을 체감하게 한다. 단편을 쓰는 작가들에게 가장 필수적이고 우아한 도구는 '' '쉼표'라고 생각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생의 이면을 엿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빽빽한 이야기로는 절대 전달할 없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무언가가 바로 삶에 대한 관조와 여유가 아닐까. 먼로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들인데도, 문장마다, 낱말마다 마법처럼 많은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자존심>에서 먼로는 세상의 모든 나쁘고 불행한 이들에게 말한다. '의지만 있다면 어떤 일도 좋게 만들 있다'라고. 고통을 겪을 대처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맞서 싸우려고 것이고, 누군가는 웅크리고 회피하며 일단 상황을 모면하려고 것이다. 엎친 덮친 격으로 좋지 않은 일만 연속적으로 생기더라도, 그게 그들의 탓은 아니다. 그야말로 한치 앞도 내다볼 없는 세상이니까.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없다. 물론 대체적으로 어제 혹은 오늘과 같은 삶이 이어진다. 특별히 불행한 일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어느 , 자신의 의지와 노력의 범위를 벗어나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 생길 수도 있다는 거다. 교통사고처럼 재수를 탓하는 외에 달리 있는 별로 없는 그런 일들.

 

나와 가장 가까운 20 지기 친구는 유학 중에 외국인과 결혼을 했는데, 뉴욕, 뉴질랜드를 거쳐 현재 밴쿠버에 살고 있다. 가끔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한번 놀러 오라고 말을 건네는데, 그러면서도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여기는 일반적인 외국 관광지의 풍경을 생각하면 된다고. 도심이 아니고 광활한 자연 풍경이 대부분이라 한국에서 놀러 이들은 지루해하거나 심심해한다고. 하지만 동안 살아본 결과 나는 풍경이 여유롭고 넉넉해서 좋다고. 그러니 너도 번은 놀러 와야 한다고 말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밴쿠버에 유독 오래 살고 있는 보면 괜한 말은 아닐 것이다. 가끔 그녀의 페이스 북을 통해서 사진들도 보고 얘기도 듣고 해서 나에게도 친숙한 나라가 되어 버렸는데, 그래서인지 먼로의 작품 배경들이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먼로의 작품들은 모두 캐나다의 작은 타운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보통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일상적이라 하루하루가 판으로 찍은 같아 보이는 그런 나날들 속에서 먼로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삶의 결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누구든 겪게 되는 일상이기에 공감을 밖에 없는 그런 슬픔과 기쁨, 분노와 안도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마음이 한결 편해진 같아. 내가 비극을 느끼지 않게 되어서가 아니라 비극을 밖으로 꺼내놓았으니까. 그건 그저 인간이기에 저지르는 실수에 불과해. 내가 안타까워할 몰라서 웃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해. 나는 정말로 안타까워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는 말은 해야겠어. 어쨌거나 지금 행복하다는 말도."

<기차> 중에서

 

<기차>에서 남자는 사람들이 책을 쓰고 읽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에 이미 나와 있는 수많은 책들이 있는데, 지금도 자리에 앉아 다른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 먼로의 작품 남자들이 거의 대부분 어딘가 결함을 가지고 있거나, 결핍된 인물이라는 것을 감안해보자면 이건 그녀 나름의 유머 일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책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통해 소통하고 위로 받고 성장할 있는 것이고, 바로 이유 때문에 새로운 책이 계속 쓰여 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언젠가 배우 브래드 피트가 내한했을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나이 드는 좋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지기 때문이다. 젊음과 지혜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물론 지혜다." 라고.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 지는 것은 비단 외국의 미남 배우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작가들이야말로 진정,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고, 깊어지며, 섬세하게 빛나는 존재들이 아닐까.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심장을 쿡쿡 찌르는 문장들을 읽어가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곪아터진 상처와 흉터, 여인이면서 사람이기도 하나의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애정. 우리의 머릿속에서 매일 같이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이지만 번도 제대로 밖으로 표현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집어 글로 새겨놓은 문장들. 먼로의 작품이 가진 힘은 바로 그런 아닐까. 가슴을 후벼 파는 같은 절절한 클라이막스나, 독자들의 심장을 움켜쥐는 반전과 거대한 서사는 아니지만, 그저 잔잔하게 독자들의 정서에 호소하는 행간의 여백들 말이다.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상처, 관계와 회한에 대한 것들은 무엇 하나 같지 않은 장면이 없었다. 이번 작품집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편은 먼로의 자전적인 요소가 반영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녀가 처음 죽음을 접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성에 대해 눈뜨게 되는 순간이 그려져 있고, 어린 시절 가졌던 최초의 나쁜 마음에 대한 기억도 만나볼 있다.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의미 없는 충동으로 나쁜 마음을 가질 수도, 누군가에 대한 지독한 증오가 악의로 이어질 수도, 불쾌한 일을 겪어 그것이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바뀔 수도 있다. 문제는 생각의 옳고 그름보다, 도저히 멈출 없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과연 어떻게 대처 하느냐. 아닐까 싶다. <>에서 누구보다 사랑하는 동생의 목을 조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린 그녀에게, 아버지는 당황하거나 놀라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는다. 덕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사라질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것은 아버지가 어떤 경멸이나 놀라움도 내비치지 않은 덕분이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어떤 생각이 <거기, 마음에 걸려 있어> 꺼내버릴 수가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오롯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너무도 고단하고, 내일 당장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이어진다. 때로는 삶이 보여 지는 것처럼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럼 조금 견디는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일 세상이 어떻게 되어도 후회가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일하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하고 싶은 , 해야 일들을 미루지 말고,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럼 순간이 생애 가장 특별한 시간이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상 과거에 얽매여 있지 말고, 현재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다가올 내일을 설레 이며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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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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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순간부터 내가 보는 세상은 더없이 아름답게만 느껴질 것이다. 모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고, 어딜 가도 내가 주인공인 것만 같고, 평소에 마음에 안 들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음악처럼 들리고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예뻐 보이고, 매 순간 설레 이는 것이 바로 연애를 시작할 때의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미 결혼을 했거나, 혹은 나처럼 한 사람과 오랜 기간 만나고 있다면, 어쩌면 앞으로도 이런 풋풋한 두근거림을 느끼게 될 일은 없을 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진 순간, 연애를 시작할 때 즈음에만 우리는 그 감정에 도취되어 어딘지 멜랑콜리한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는 거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설레이는 기분을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곤 한다. 이상하게도 매번 그의 새로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람과 연애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하는 것이다. 그가 쓰는 책들이 항상 연애 소설인 것만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책들이 모두 연애 소설 같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문장들이 아름답고, 이야기가 공감되고, 소재를 통해 형상화되는 장면들이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쓴 단편들을 모아 놓은 작품집이다. 그리고 이 중에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2005년쯤에 썼던 단편으로. 원래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쓰였었다고 한다. 당시에 완성을 하지 못해서 발표를 못했고, 이 제목을 다른 글에 쓰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동명의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소설집을 이미 읽었던 터라 이번 작품에 수록된 단편을 읽으면서 기분이 묘했다. 사실 제목이야 작가 마음이라 이런 사연을 모르고 있었다면 별 생각이 없었겠지만 말이다. 제목에 대한 말이 나와서 말인데, 국내 소설가 중에서 아마도 가장 제목을 멋지게 짓는 사람이 김연수 작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작품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도 그렇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등등. 어쩌면 제목에 낚여서 책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을 만큼 제목이 아름답다. 지난번 문학동네 팟 캐스트에서도 제목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이 됐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 <깊은 밤, 기린의 말>은 원래 제목이 <심야 기린 통신>이었다고 한다. 약간 복고풍의 느낌을 주기 위해 지은 제목이었는데, 주변 반응이 별로라서 그냥 한글로 바꿨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구체적인 단어들로 바꿔놓으면, 단어들이 부딪히니까, 부딪히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는데, 작가의 겸손이겠지만 비단 그 이유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김연수 작가가 유독 다른 작가들에 비해 제목 짓는 감각이 남다른 게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모의 꿈은 '미국 놈 마누라'가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모의 꿈은 소박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죽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모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다들 이모보다 먼저 죽었다. 너무 너무 너무 많은 고통과 너무 너무 너무 많은 눈물로 범벅이 된 이모의 얼굴을 보면서. 이모가 병상의 폴에게 읽어준 그 시는 원래 이모가 출연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읽어달라고 했던 시였다. 제일 먼저 그 사람이 죽었고, 그 다음에는 이모의 뱃속에 있던 아기가 이 세상에는 어둠만이 아니라 빛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폴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이모에게는 죽어가면서 봐야 할 얼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거기에, 자기 삶에, 엄마의 얼굴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아기처럼, 폴이 숨을 거뒀을 때, 이모는 처량하고 불쌍한, 말하자면 고아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중에서

 

이번 작품 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굳이 꼽아 보자면, <벚꽃 새해>, <동욱>, <우는 시늉을 하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표제작인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죽는 것이 꿈이었던 이모의 지난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 스토리만 보자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인데 김연수 작가의 손에 의해 들려지는 이모의 사랑 이야기는 뭐랄까. 매혹적이다. 흔해 빠진 불륜 스토리가 아니라, 어딘지 가슴 먹먹하게 남아 있는 고귀한 누군가의 첫사랑에 대한 고백 같다고 할까. 젊은 시절 배우 였던 이모는 영화 감독과 사랑에 빠져 제주도로 둘만의 도피를 떠나 3개월 동안 그렇게 살림을 차리고 살았었다. 물론 감독의 부인이 찾아와 남편을 데려갔고, 이모는 그 뒤로 미국 사람과 결혼해 외국에서 살다가 그가 죽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저 죽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죽는 것이 소박한 꿈이었던 이모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남자들을 모두 먼저 떠나 보내야 했다. 실제 모델이 되는 인물은 문숙이라는 배우이고, 그녀가 삼포 가는 길의 이만희 감독과 보낸 1년의 시간에 대해서 출간했던 책을 읽고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물론 실제 이야기보다 김연수 작가가 그린 스토리가 더욱 매혹적이다.

 

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이 작품의 제목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데, <함석 지붕 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라는 대목이다. 사월에는 미였다가 칠월에는 솔까지 올라갔다던 빗소리라니, 어쩌면 이런 문장을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예쁜 단락이다. 미래가 없던 두 연인이 3개월 동안 살았던,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의 함석 지붕 집이라는 설정은 스팅의 새 앨범 중에 ‘Practical Arrangement’의 가사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머리 위에 하나의 지붕이 생기고, 우리가 돌아갈 따뜻한 집이 생기겠죠>라는 대목. 결혼을 사랑하는 두 연인이 하나의 지붕 아래서 산다는 의미로 표현한 가사가 참 좋았는데, 역시나 김연수 작가의 글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도 그와 같아 나를 다시금 설레게 만들어주었다. <매일 밤, 밤새 정감독의 팔을 베고 누워서는 혹시 날이 밝으면 이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자다가 깨고 또 자다가 깨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러다가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또 움직이면 그가 깰까 봐 꼼짝도 못하고 듣던, 그 빗소리 말이다> 인생을 한번 더 살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사랑의 기억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닐까. 지금 현재가 행복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여러 번 읽으면서 또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

 

나는 그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도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그 아이를 안아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담임과 학생이라는 우리의 관계가, 그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인연이, 그리고 순진한 태도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나의 초라함과 무능함이, 아니, 그보다는 거기까지 찾아갔으니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그 아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두 손이 어색했던 모양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동욱중에서

 

개인적으로는 단편 보다는 장편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플롯이 복잡하고, 등장하는 인물이 많을수록 더 많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이야기보다는 관계 도를 메모해가면서 읽어야 하는 스토리에 더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몇몇 작가들의 단편은 매우 훌륭하다. 김연수 작가도 그 중 한 명인데, 단편이지만 거의 장편으로 확산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에 밀도가 있고, 그만큼 풍성한 이야기의 볼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수 작가는 <작품이 망하더라도 장편이 훨씬 더 좋다>고 밝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단편도 매우 사랑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편은 일상의 삶에 가깝고, 단편은 일종의 여행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장편은 지루한 일상을 계속 보여주고 클라이막스 때 사건을 터뜨려야 감동이 오는 거라면, 단편은 제일 중요한 장면만 딱 떼어내서 보여주는 거니깐 말이다. 그는 <삶의 모순된 걸 보여주면서 충돌되는 걸 보여 줘야 하는데, 단편은 그게 어렵다>며 장편을 선호하는 이유를 밝혔는데, 작품마다 장편, 단편의 장점이 각각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단편을 통해서도 이야기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깊은 울림을 남겨주니 장편만큼 밀도가 있는 단편일 수밖에 없다. 그의 작품을 항상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소재 자체가 특별하지도 않고, 스토리가 복잡하지도 않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그것이 어떻게 풀어지는 지 그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범한 소재를 통해서 절대 다른 이야기로는 환원 불가능한 스토리, 김연수 밖에 쓸 수 없는 그런 스토리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그가 만들어내는 문장의 호흡과 행간의 여백이 나는 참 좋다. 그래서 그의 책은 꼭 여러 번 다시 읽게 된다.

 

작가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쓴다.

독자들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읽는다.

 

김연수 작가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든지 간에, 우리가 책을 읽을 때는 그것을 통해서 사소하더라도 깨달음을 얻게 되니까 말이다. 책을 통해서 몰랐던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때로는 상처를 치유 받는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가끔은 위로 받는 기분도 들곤 한다. 극중 인물과 나를 동일시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내 주변의 누군가와 비슷한 인물을 발견하는 경우도 생기며, 지긋지긋한 현실을 탈피해 잠시나마 설레 이는 꿈을 꿀 수도 있다. 전적으로 캐릭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그 인물이 나에게만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고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김연수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삶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하는 객관적인 서술자가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작품 속으로 매번 빠져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란 그렇게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에 대한 현재의 관점에서 진행하는 해석이어야만 하니까. 그래야 우리는 덜 상처받고, 덜 고통 받고, 위로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살면서 숱하게 부딪히는 모순과 진실을 찾아가는 것은 실제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작품은, 김연수밖에 쓸 수 없는 글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렇게나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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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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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는미쓰다 신조란 이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작가시리즈와 방랑 환상소설가 도조 겐야를 화자로 한도조 겐야시리즈를 집필했다. 밀실살인으로 대표되는 본격추리의 틀에 토속적이고 민속학적인 괴담을 접목시킨 독특한 작풍으로, 국내에서 출간된 도조 겐야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특히나 도조 겐야 시리즈가 재미있는 건 정교한 트릭이 돋보이는 본격추리 방식에, 비현실적인 괴담을 접목시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종종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하고, 등골이 오싹해지게 만들기도 하면서 종횡무진으로 달려나간다. 미스터리미스 요소가 돋보이면서도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괴기스러운 배경은 극에 더욱 매력을 부여해준다. 미야베 미유키가 그려내는 에도시대의 풍경도 흥미롭지만, 미쓰다 신조가 그려내는 쇼와 시대 (쇼와6년에서 쇼와32)의 시대적 분위기도 미스터리라는 작품의 성격을 너무도 잘 보여주어 극적인 재미를 더해준다 하겠다. 미쓰다 신조가 애초에 이 시리즈를 구상할 때 <호러풍의 미스터리, 또는 미스터리풍의 호러가 아니라,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읽는 내내 호러인지 미스터리인지 알 수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는데, 의도에 부합되는 완벽한 작품인 셈이다.

 

<도조 겐야 시리즈>

 

 

시리즈의 주인공 도조 겐야는 도조 마사야라는 필명으로 괴기환상소설이며 변격탐정소설을 발표하는 작가이다. 옛날부터 괴담, 기담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인데,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글을 써 유랑하는 괴기 소설가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에 그가 구로 선배를 통해 소식을 알게 되어 방문한 깊은 산골 마을에선 또 어떤 괴기스러운 사건이 생길지 초반부터 흡입력이 엄청나다. 이번에는 도조 겐야를 담당하는 여성 편집자 소후에 시노가 여행에 동행하는데, 도조 겐야 만큼이나 엉뚱한 매력을 선보이는 그녀와의 알콩 달콩한 에피소드들도 유쾌하다.

 

 

도조 겐야 시리즈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 도라 할 수 있는데, 책의 서두에 인물들은 정리가 되어 있으니, 마을 별로 신사만 정리해보았다. 간단히 배경을 설명하자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골에 마을이 네 개 있다. 처음으로 개척된 사요 촌에 이어, 모노다네 촌, 사호 촌, 아오타 촌 순서로 말이다. 남북으로 펼쳐진 땅 중 북쪽 오 분의 사에 논과 거주 지역이 집중돼 있고, 남쪽 오 분의 일에 신사가 있다. 북쪽하고 남쪽 지역 사이로 미쓰 천이라는 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굽이굽이 돌며 흘러, 이 물을 전답에 끌어 쓰고 또 마을의 생활용수로도 스는 터라 하미의 네 마을에서 대단히 중요한 강이지만, 홍수며 가뭄 같은 재액을 마을에 가져다 주는 것 또한 이 미쓰 천이라는 것. 네 마을의 유지를 위해선 물이라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들은 기우제를 지내고, 물의 정령인 미즈치 신을 모신다. 의식은 네 마을의 네 신사를 순서대로 돌면서 진행이 되고, 신을 모시는 의례에 소홀함이 있었다간 엄청난 노여움을 살 위험이 따르므로 이것은 이들 마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제의라는 것이다.

 

미즈치 님에 대한 압도적인 공포라는 게 대체 뭡니까? 실제로 사람이 죽은 사례가 있어서 그런 건가요?”

그에 관해 뭐라 말할 수 없이 불가해하고 기묘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줄 테니 들어보라고.”

 

23년 미쿠마리 신사의 선대 신관인 다쓰오가 제의 중에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모도다네 촌의 미즈치신사 신관인 다쓰키치로는 제의 중에 물속에서 사람의 팔과 같은 것을 봤다고 한 적이 있다. 이어 13년 전에는 사요촌의 미즈시 신사의 신관 후계자인 류이치가 제의 중에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죽은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13년 만에 다시 기우제가 열리고, 그 과정에 우리의 주인공 도조 겐야가 참석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번 작품의 주요 스토리이다. 수십 년 전에 벌어진 불가해한 사건은 다시 반복되고, 기우제 의식 중에 신남이 사체로 발견되고 만다. 엄청난 공포와 마주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뜬 채 사체로 발견된 신남, 그는 대체 물 속에서 무얼 본 것일까? 물의 정령으로 알려진 미즈치란 뱀 비슷한 생물인데 네 발이 있고 입에서 독기를 뿜어내 인간한테 해를 미치는 것이라 한다. 승천에서 용이 되기 전에 물 속에 사는 것이 바로 미즈치라는 존재라는데, 실제 그 누구도 명확하게 모습을 그려낼 수는 없을 만큼 그 존재에 대해서 압도적인 공포가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더해졌을 것이다.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신음하는 것 같기도, 소리 지르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목소리였다. 아아…… 히이이…….

너무나도 섬뜩한 소리에 순식간에 쇼이치의 목덜미에 소름이 좍 돋았다.

이어서 오한이 등골을 훑었다. 그는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도망쳤다.

 

사건은 그걸로 끝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일어나 신남 연쇄살인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도조 겐야는 사건의 해석을 시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각 마을의 신관을 비롯하여 여러 인물들이 엮이고 섞여 다양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던 호수 위 배 위에서 어떻게 살해당한 건지에 대한 밀실 트릭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속도를 더해가는 스토리는 한 시도 페이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미스터리 고유의 수수께끼 풀이라는 것도 재미있지만, 특히나 돋보이는 것은 바로 장면마다 배어있는 으스스한 분위기와 공포라는 감정이다. 왜 절대 밤에는 읽지 말아야 하는지 공감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피가 난무하고, 끔찍한 것이 등장해서 무서운 게 아니라 조용하지만,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나오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소름 끼치는 그런 공포이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에, 시계 초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밤에 읽으면 아마도 작품에의 몰입도가 배는 될 것 같은 그런 작품이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흉조처럼 피하는 것, 밀실처럼 갇히는 것, 생령처럼 겹쳐지는 것, 유녀처럼 원망하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의 빠뜨릴 수 없는 매력 포인트로 표지에 대한 것을 빼놓을 수 없겠다. 표지 일러스트는 미쓰다 신조와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일러스트레이터 무라타 오사무의 그림이라고 한다. 아직 출간되지 않는 네 작품의 표지 이미지이다. 기존 국내에 출간된 것도 그렇지만, 모두 너무 아름다운데 밤에 보기에는 무서운, 오싹한 표지들로 작품의 분위기를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해주는 멋진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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