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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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니까 그 해 겨울, 너희가, 셋이서, 무엇으로 맺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선생님이 눈을 깜작깜작 한다. "어떻게 맺어졌는지는 알고 싶지 않아. 무엇이 너희를 덩어리지게 했는지 알고 싶다. 사랑이라고 하면 너무 범속하고."

"담배를 피우면 있지, 조금씩 나를 훼손한다는, 조금씩 나를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사실은 좋다." 선생님이 내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우리도.... 어쩜 그런 거 아니었을까요?

  

소설가 ''의 제자이자, 한때 작가를 지망했고 결혼에 실패한 후 '소소'에 내려와 사는 여자 ''

형과 아버지는 광주에서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요양소에 계시는, 베이스 연주자였던 떠돌이 남자 ''

간신히 국경을 넘어와 신분을 위장하고 살아왔던 탈북자 처녀 ''

이 작품은 ㄱ의 집터에서 남자 ㄴ의 데스마스크와 유골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들 셋은 서로를 '사랑'했다. 이런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말이다.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소소의 집으로 내려왔을 때, ㄱ은 한동안 혼자 사니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ㄴ이 그 집에 들어오고 나서는 둘이 사는 것도 참 좋다고 깨닫는다. 이후 ㄷ이 그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되고 나서는 셋이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삼각관계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질투하고 소유하는 관계도 아닌, 이들 세 사람의 관계가 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들은 섹스를 덩어리가 된다.고 표현한다. 서로 소유하지 않고, 그러니까 각각의 내면에 있는 가시가 훼손되지 않도록 암묵적인 동의가 전제된 '덩어리 되기'라나. 한 남자와 두 여자, 세 몸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글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어쩌면 이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도 살짝 든다. 이들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게도.

남자 ㄴ은 이렇게 말한다. 셋으로 삼각형을 이룬 게 아니라 셋으로부터 확장되어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고. 둘 이선 절대 원형을 만들 수 없었던, 셋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완전한 원형 말이다. 죽음에의 강한 끌림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조건도, 욕심도 없이 스스럼없이 끌렸던 것 같다. ㄱ은 어릴 때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은 기억이 있으며, ㄴ 또한 광주에서 진압군에게 형과 아버지가 모두 살해당했었고, ㄷ은 국경을 넘다가 아버지가 죽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오고, 이겨내고, 지나야 했던 이들이 각자의 선인장 가시를 품고 비로소 '소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ㄱ은 첫 결혼의 실패 이후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란 각자에게 숨구멍이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있어도 '숨구멍'이 따로 있어야 겨우 유지될 수 있는 게 1 1의 관계라는 걸 깨닫는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연적으로 선인장 가시처럼 몸뚱어리 안에 숨겨 간직해야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내가 그 동안 수십 권의 소설을 썼으니 얼마나 플롯에 질렸겠냐. 플롯이란 한마디로 인과론 같은 거 아니냐.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죽는다면 소설은 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그 원인의 진술에 바쳐지는 것. 그리고 인과론은 당연히 시간의 꼼꼼한 관리로써 미학적 균형을 얻는다. 그게 플롯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고 있는 게 작가라고 여기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야.

물론, 플롯 없이 쓰는 게 가능할까 생각하면 머리가 더 아프다. 딜레마야. 하기야 뭐, 소설 쓰기만 그런 건 아니겠지. 우리 모두 근본적인 지향은 자유일 텐데, 삶에서나 사랑에서나, 사람들은 플롯을 만들어 씌워 구조화하려고 평생 안달하거든.

 

극중 소설가 ''가 제자인 ㄱ에게 말하는 이 대목은 어쩐지 박범신 작가의 말처럼 들린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가 여전히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 우는 까닭이기도 하고 말이다. 플롯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극중 ''의 이야기는 결국 이 작품 소소한 풍경을 쓰고 있는 박범신 작가의 멘트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반적인 사랑의 서사 공식에서 벗어나있는 독특하고, 이상하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매혹적인,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정의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이니 말이다. 불가능한 관계를 가지고 불가능한 사랑을 완성시키는,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가 발견되어 형사가 수사를 하지만 결국엔 물증도 동기도 찾을 수 없어 완전범죄가 될 수밖에 없는, 자살도 아니지만 범인도 없는 그런 죽음, 우물을 파는 남자와 평화로운 순간에 연탄가스를 피워 죽으려고 했던 여자의 마음은 결코 인과관계에 의한 플롯으로 만들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작가야. 그러므로 나는 평생 늘, 새로운 문장을 쓴다. 그 동안 수십 편의 소설을 썼지만 똑같은 문장을 두 번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새로 쓰는 문장으로 이미 써버린 과거의 문장을 계속 엿 먹인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뻐근하다."

박범신 작가의 언제나 새로운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평범한 플롯도, 인물들의 관계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오로지 그만이 쓸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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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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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은 에단 호크와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98년작 영화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다. 당시 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원작에 충실하기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고전과는 또 다른 섬세하고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주었었다. 분수대의 키스 장면은 오랫동안 명 장면으로 사랑 받았으며, 두 배우 역시 이 작품으로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원작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어진 버전도 있으며, 그 또한 원작만큼이나 매우 흥미롭다

 

 

어린 핍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성질 사나운 누나와 인정 많은 대장장이 매형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마을 묘지를 찾아갔다가 탈옥수와 만나게 되고 그는 핍을 협박해서 줄칼과 음식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다음날 핍은 누나와 매형 몰래 줄칼과 음식물을 그에게 가져다 주지만, 한동안 죄인을 도와주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어느 날 조의 숙부를 통해 거대한 부자인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의 양녀인 에스텔라를 만나게 된다.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미스 해비셤의 놀이 상대를 해주며 핍은 에스텔라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쌀쌀맞은 소녀는 그의 신분을 무시하며 조롱한다.

 

그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 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행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건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 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 번째 연결 고리가 어떤 기억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 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보라.

 

 

자연스레 대장간에서 자라면서 자신도 조처럼 대장장이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핍은,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라를 만나면서 현재 자신의 처지에 조금씩 불만을 가지게 된다. 멋진 도시 신사가 되어 에스텔라 앞에서 당당하기를 꿈꾸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부모도, 스스로 자립을 할만한 그 어떤 배경도 없었기에 그것은 말 그대로 꿈에 불과했다.

 

"나는 이 친구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라는 지시를 받았소".

재거스 씨가 손가락으로 삐딱하게 나를 지목하며 말했다.

"나아가 이 친구가 즉시 현재의 삶의 영역과 이 집을 떠나서 신사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 한마디로 말해서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게 된 젊은이로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현재 그 재산을 소유한 분의 바람이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밤 런던의 유명한 변호사가 그를 찾아오고, 그의 꿈이 실현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다. 터무니없던 그의 공상이 오히려 한술 더 떠 생생한 현실로 실현된 것이다. 그는 새롭게 전개될 앞날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신사 교육을 받고, 비슷한 수준의 이들과 어울리면서 핍은 점점 변해간다. 자신이 사랑하던 조를 사교적으로 미숙하고 어리숙하다는 이유로 불편해하고 창피하게 여기며, 고향의 대장간에도 거의 가보지 않는다. 이제는 에스텔라에게 걸 맞는 위치가 되었다는 자각에 미스 해비셤이 그의 짝으로 자신을 위해 이런 혜택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는 런던의 상류층 속물 청년 들과 어울리며 점점 겉멋이 들어가고 향락과 소비에 찌든 그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기에 이르른다. 아무런 노력 없이, 대가 없이 갑자기 얻은 부와 행운에 현명하게 대처하기에는 핍이 너무 어렸던 탓도 있었겠지만, 누군들 그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달랐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스물세 살이 된 핍에게 어느 날 거칠고 험상궂게 생긴 인물이 찾아오고, 그는 바로 어린 핍이 줄칼과 음식을 가져다 주었던 그 탈옥수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핍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준 당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핍은 미스 해비셤이 아니라 탈옥수 매그위치가 자신의 모든 꿈을 실현시켜주었다는 것을 깨닫자 좌절하고, 낙담한다. 탈옥수의 고된 노동에서 비롯된 유산과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부자의 유산은 애초에 성격부터 다른 것이니 말이다. 거기다 그는 에스텔라의 결혼 소식까지 접하게 되어 더욱 비참해진다.

 

, 사랑하는 내 단짝. 인생이란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이 하나로 용접되어 결합된 구성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 어떤 사람은 양철공, 어떤 사람은 금세공업자, 어떤 사람은 구리 세공업자인 거야. 그런 식의 구분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게 생기면 반드시 만족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란다.

 

세련된 도시 청년이 보기엔 평생을 대장장이로 일해온 조가 바보 같고, 어리숙해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이 대사를 보면 삶에 대한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직업은 없으며, 인간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모두 주인공이니 말이다. 막대한 재산을 통해서 허울뿐인 가짜 신사가 되고 싶었던 핍은, 자신의 지난 날을 반성하고 진정한 신사로 거듭나게 된다. 순진무구했던 어린 핍이 엄청난 재산을 통해 타락을 하다가, 고난을 겪으며 다시 순수한 영혼을 되찾는 일종의 성장 소설인 이 작품은, 찰스 디킨스 특유의 주제 의식과 결합해 깊이 있는 스토리로 감동을 준다. 단순히 위대한 유산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삶도 자신의 의지대로가 아니라 주어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부모들의 유산대로 그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닌 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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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4 -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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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글 맞춤법부터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열린책들 편집 및 판면 디자인 원칙, 편집자가 알아야 할 제작의 기초 등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사실 책을 쓱 훑어보기만 해도 다들 알 수 있다. 편집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필수 매뉴얼이라는 것을 말이다. 2008년에 시작된 편집 매뉴얼 집은 해를 거듭하면서 수정, 보완이 되었고, 이는 출판계에 종사하는 신입 편집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어문 규정의 얼개를 전달해주는 교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스티븐 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 한다: 라고. 그만큼 편집이란 언제나 100퍼센트의 완성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한글 맞춤법, 외래어 표기, 문장 부호 사용법, 편집 실무와 제작, 납본에 이르기까지..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출간된 책에도 가끔 오자나 탈자가 눈에 띄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틀리기 쉬운 철자 용례를 보자면,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문서를 작성하거나, 회사 업무 관련 이메일을 쓰거나, 혹은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거나 리뷰를 올릴 때 헷갈리기 쉬운 철자들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돼요> <되요> 또는 <결제> <결재> 아직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으니 말이다. 맞춤법이 틀린 게 아니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발음에 따라 사용법이 다른 것도 있어 새삼 한글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참 쉽고 간단한 원리지만, 올바르게 사용하려면 이렇게나 과학적인 규칙을 알아야 하니 말이다.

 

교열 시 순화해야 할 표기 용례를 보면, 국립 국어 원에서 광복 60주년이 되었던 2005년에 일상 언어생활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일본어 투 용어를 순화한 자료집을 발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일상에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순화 해야 하는 단어들이 생각보다 많다. 순 일본어를 사용하거나, 일본어와 한글이 결합되어 있거나, 외래어를 일본식으로 읽거나, 일본어투는 아니지만 순화 해야 하는 단어까지 말이다.

 

붙여쓰기와 띄어쓰기의 경우는 더 어려워진다. 성과 이름, 성과 호 등은 붙여 쓰고, 이에 덧붙는 호칭어, 관직명 등은 띄어 쓰고, 지명이나 그에 준하는 고유 명사는 외래어에 붙을 경우 띄어 쓰고, 한자어나 고유어에 붙을 경우에는 붙여 쓴다. 컴퓨터에서 문서 작성 시에 자동 띄어쓰기 검열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들 웹 상에 바로 글을 올릴 때 가장 많이 틀리는 경우가 바로 붙여쓰기와 띄어쓰기일 것이다.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 법 등등 외에도 실제 편집자들이 알아야 할 제작의 기초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책의 판형, 본문 편집과 판 굽기, 인쇄 제작비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내용들이 있어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던 이들이라면 매우 재미있을 만한 대목이다. 이 책은 마치 사전처럼 세세한 내용들과 색인 구분이 바로 되어 있어 찾아보기도 쉽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사전에 비해 일반 소설처럼 글자 크기가 크고 알아보기 쉽게 정리가 되어 있어, 틈날 때마다 들춰보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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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패키지 - 성공의 세 가지 유전자
에이미 추아.제드 러벤펠드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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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세가지 유전자라는 부제만큼 이 작품은 특정 집단이 성공을 거두게 되는 원인을 낱낱이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부모의 경제력, 교육 수준, 지능, 제도 등과 무관하게 높은 학업성취와 물질적 성공을 거두는 그룹들을 분석하여 트리플 패키지를 아래와 같이 추출한다.

우월 콤플렉스 SUPERIORITY COMPLEX 우수한 집단과 전통에 속한다는 자부심

불안감 INSECURITY 아웃사이더의 불안한 정체성/과도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충동 조절 IMPULSE CONTROL 미래를 위한 부단한 노력과 인내

우선 "우월 콤플렉스"는 집단의 특별함, 비범함, 혹은 우월성에 대한 깊이 내면화된 믿음을 의미한다. 이는 종교적인 이유나 역사와 문명에서 비롯된 믿음, 혹은 사회적 신분 제도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다. "불안감"은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초조함과 불안, 근심을 말한다. 불안감은 우월감 콤플렉스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이루는데, 이 긴장되고 불안정한 조합은 "내 능력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강한 성공 욕구를 낳는다. 충동 조절 능력은 시련이나 어려운 과제 앞에서 포기하고픈 유혹을 이겨내는 능력으로, 온갖 난관을 뚫고 나갈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한다 

평등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우월 콤플렉스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소수민족들은 편경과 차별까지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성공한 집단들은 주변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우월함을 계속 믿을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낸다고 한다. 대중심리학에서 불안감은 제거해야 할 병균이다. 한편, 가슴을 후벼 파는 결핍의 느낌은 성공의 욕구를 부채질한다. 사회적 멸시와 부모의 압박이 만들어낸 불안과 집단적 우월 콤플렉스는 강한 불만, '모두에게 보여주고 말겠다'는 승부욕, 그리고 결국엔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진다. 성공하는 사람들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실패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동기 부여, 뜨거운 출세욕만 가기고는 성공할 수 없다. 불운이 닥쳤을 때 의지를 잃지 않고 참을성있게 버티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가장 성공한 집단들은 후손들에게 충동 조절에 관한 이런 메세지를 전한다. "너희는 우수한 집단에 속하지만, 너희들 각자는 그리 훌륭하지 않다. 자제하고 유혹을 이겨내고 너의 능력을 증명해라."

스티브 잡스는 말할 것도 없고 게이츠와 저커버그는 동종업계 사람들 중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의욕적인 인물들이었다. 분명 창의성을 키우려면,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할 수 있는 자유 (이런 자유가 부족한 중국은 이제껐 창의력에서 미국에 뒤져 있었다), 호기심을 갖고 자유롭게 연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초 지식을 습득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을 투자할 의지가 없다면, 실패를 딛고 일어서지 못한다면, 구글이든 페이스북이든 아이팟이든 발명할 수 없다.

 소설가이자 의사인 할레드 호세이니는 의과대학을 무사히 졸업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자제력, 인내심. 끈기. 밤샘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 믿음과 자신감이 흔들리는 시기를 잘 헤쳐나가는 능력. 극도의 피로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라고. 결국 획기적인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위한 진정한 처방 또한 트리플 패키지라고 볼 수 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행복을 포기해야하고, 더 높은 수준으로 스스로를 힘겹게 밀어붙일 때 희열과 자부심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트리플 패키지가 의미있는 인생을 약속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런 인생을 가능하게 해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트리플 패키지를 갖춘 사람은 시간을 잘 통제하면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생각하고, 소박하게든 거창하게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주석이 무려 책의 3분의 1에 해당될만큼 두터운 것만큼이나, 두 저자가 20년간의 연구로 밝혀낸 성공의 결정적 비밀에 대한 이 책은 그럴듯 하다.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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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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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인 파울에 대해 저자인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향상시켜준 사람, 그의 삶 자체가 가능하도록 빈번하게 자신을 지탱시켜준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 작품은 베른하르트의 친구인 '파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그의 인상을 옮기는 것이 전부'라고 스스로 말하듯이, 그것이 다이다. 그들의 기이한 우정과 친구가 죽고 나서도 베른하르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삶의 방향을 어떻게 가르쳐주었는지 말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고, 그것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우정이 있다.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유별나고, 기이한 어떤 우정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단락 나누기 없이 길게 이어지는 단조로운 모놀로그가 다소 지루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그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평범하지 않은 우정에 귀를 기울이게 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비트겐슈타인이란 이름은 높은, 아니 최고의 수준을 보장했다. 미치광이로서 파울의 수준은 철학자로서 루트비히의 수준을 분명 따라잡았다. 우리가 철학을 철학이라 부르고 정신을 정신이라 부르며, 그런 어휘들이 지칭하는 것, 즉 도착된 역사 개념을 광기라고 부른다면, 그러면 한 명은 전적으로 철학과 정신의 역사에서 최고봉에 도달했고 다른 한 명은 전적으로 광기의 역사에서 최고봉에 도달한 것이다.

 

베른하르트의 기존 작품들은 사생아라는 축복받지 못한 탄생부터,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과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어두운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작가, 문화계 인사들에 대해 지독하게 냉소했고, 실제 그가 수상을 할 때 수상소감으로 크게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게 시작된 그의 생은 고스란히 작품 세계에도 이어졌고, 그런 그의 삶이 반영된 자전적인 작품들은 곧 그라는 인물에 대한 보고서와도 같다. 누구나 자신의 생에 '결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배우자나 연인이 될 수도, 혹은 친구나 형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숱한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고, 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우정을 나누고, 결별을 한다. 잠시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도 소중하지 않을 리 없겠지만, 대부분은 기나긴 삶 속에서 그저 흘러가거나 잊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중 몇몇은 죽는 그 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마음 속에 남아있게 된다.

 

우리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듯이 사람은 나이 들어 갈수록 나날이 더욱더 노련한 술책으로 있는 묘안 없는 묘안을 짜내서 적당히 견딜 만한 삶의 상태를 스스로 조성해야 한다. 그런 병적인 추가 부담이 없이도 이미 한계치에 다다를 만큼 지쳐 버린 머리를 더욱 혹사해서 말이다. 그런 견딜 만한 상태에 이른 다음 간혹 우리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 서너 명의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장기간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 우리 존재의 결정적인 순간과 시기에 모든 것을 의미했으며 그리고 실제로 전부이기도 했던 사람을 말이다.

 

폐병으로 늘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던 베른하르트는 질병과 고립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렸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광기로 정신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만나면서 독특한 우정을 쌓아갔다. 그들이 만났을 때 파울은 이미 죽어가는 시점이었지만, 그들의 우정으로 인해 베른하르트는 살아갈 힘을 회복한다. 12년간 죽음에 하루하루 가까워져 가는 한 친구와 그 친구가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친구의 기이한 우정은 어떻게 보면 그로테스크하고, 어떻게 보면 매우 독특한 재미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독백하는 듯한 베른하르트 특유의 문체는 문단 구분도 없고, 플롯도 없이 반복적으로 서술되고 있어, 초반에 집중하기가 좀 어렵긴 하지만, 이것이 베른하르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부드럽고 인간적이며 유머러스 한 작품으로 꼽힌다고 하니, 그의 세계에 입문하기에는 딱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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