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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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밀로시 우르반은체코가 낳은 움베르토 에코라고 평가 받는다. 특히 이번 <일곱 성당 이야기> 14세기 중세 시대를 재건하려는 음모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를 연상시킨다는 평도 받았다. 실제 현지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움베르토 에코에게 보내는 체코식 답변!”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 당시의 복잡한 사회적, 역사적 격변을 겪었던 체코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해내어 그를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현학적이고 지적인 추리 소설로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에코에 비견된다는 것만으로 밀로시 우르반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중세 고딕 미스터리라니, 흔치 않은 장르라 더욱 궁금했던 작품이다.

 

체코 프라하 중심가에 있는 중세 성당에서 거대한 종의 추에 매달린 사람이 발견된다. 살아 있는 사람의 발목에 구멍을 뚫고 밧줄로 꿰어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살해된 사람의 다리가 고급 호텔의 깃대에 꽂힌 채 발견되고, 스케이트보드 반쪽이 복부에 박힌 10대 소년의 시신도 발견된다. 엽기적이며 잔혹한 사건들을 목격한 것은 주인공 K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크베토슬라프 슈바흐로  슬라브 민족의 나약한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던 소심한 주인공은 스스로를 K라 지칭하며 주변인들에게도 그렇게 불러달라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다 중퇴했고, 이후 경찰이 되지만 경호를 맡았던 인물의 죽음으로 책임을 물어 경찰에서 쫓겨난 신세이다. 그는 살인 사건 목격 이후로 경찰 서장을 통해 귀족 출신 그뮌드와 조력자 3명을 만나게 된다. 그뮌드는 현대의 프라하 건축물을 중세 고딕 양식으로 되돌리고, 14세기의 법과 정의, 종교적 순수와 엄숙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인물이다. K는 그들과 함께 이어지는 기묘한 사건에 휩쓸리며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체코의 중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성당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여섯 개의 성당은 실제 존재하지만 나머지 하나 ‘7성당은 대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 동안 살해되거나 협박 편지를 받은 이들은 모두 건축가이거나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한 이들로 밝혀진다.

 

 

당연히 독자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을 것이다. 나는 즉각 대답해 줄 수도 없고 직접적으로 대답해 줄 방법은 더더욱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분은 내가 어떤 부분을 일부러 설명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 의심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는. 그러나 계속해서 사건을 여러분의 추측에만 맡기는 것은 내가 진실을 찾아 헤맸듯이 여러분도 진실을 찾아 헤매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확실성, 똑같은 불안감, 똑같은 두려움을 여러분도 느끼기를 원한다. 그런 것 없이 여러분은 절대로 나와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정말로 진실을 찾는다면 이 단어의 미로 사이에서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실 살인 사건의 수사는 독자 입장에서 견딜 수 없이 느리게 진행된다. 그뮌드가 왜 K와 함께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중반이 지날 때까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가끔씩 특정한 환각 증상에 빠지게 되는 K 또한 그가 옛 건축물에 손을 대면 그 건물에 얽힌 과거의 사건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 까지 꽤 많은 페이지가 할애된다. 끔찍한 살인 사건들은 매우 점잖은 문체와 세련된 문장으로 건조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너무도 상세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건축물의 외관과 정제된 문장으로 다듬어진 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페이지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은 사건의 느린 속도만큼이나 더디게 흘러 간다. 5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분량인데, 다 읽기까지 일주일 여의 시간이 걸렸으니 얼마나 천천히 읽혔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단어들을 꼭꼭 삼켜가면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문장들은 매혹적이어서 자꾸만 책장에 손이 가는 독특한 작품이다.

 

K는 사건의 배후에 프라하의 찬란했던 과거황금시대를 재건하려는 어두운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중심에 중세 체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개의 성당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카를로프, 성 슈테판, 아폴리나리, 에마우제, 나 슬루피의 성수태고지, 성 카테리나,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성당은 어디인가? 그는 존재를 알 수 없는 그 일곱 번째 성당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한 현대의 프라하 건축물들을 중세의 고딕 양식으로 완벽 복원하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그뮌드는 다시 한 번 과거가 현재가 되도록 만들려는 인물이다. 그의 맹목적 복원 의지는 단순히 건축 양식에서 그치지 않고, 14세기 당시의 급진적인 법과 정의, 결점 없는 종교적 순수함과 엄숙함을 프라하 전체에 입히려는 엄청난 계획이다. 현대 프라하의 모든 상업적인 요소들과 정신의 결여를 일순간 붕괴시키려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화형에는 화형으로, 멍에는 멍으로, 상처에는 상처로 갚으라 했네. 모세가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되돌이킬 때가 되었어. 멍청하고 무능하고 부도덕한 건축가와 관료주의자들이 몇 명 죽는 편이 모두가 파멸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손에 고삐 대신 운전대를 잡을 야만인들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하나?

 

14세기 카렐 4세가 세운 프라하 신시가지의 미학적, 종교적 이상에 빠져 있던 K가 관심 있었던 건 과거에 존재하는 것 그 자체였다. 지금 이곳의 과거, 오래 전에 사라진 시대의 그 순간 말이다. 그뮌드가 복원하려는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 또한 비틀려 버린 과거와 더 아름다울 수도 있었을 현재에 대한 안타까움은 가지고 있다. <눈먼 지도자들이 이끄는 눈먼 나라다. 우리가 길을 잃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눈먼 사람들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유서 깊은 도시를 부수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라는 문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말이다.

 

혼란스럽고 기괴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로와 같은 상황, 이미 지나가 버린 몇 백 년 전의 플래시 백은 독자들이 K의 능력을 깨닫게 되기 전까지는 모호하고 답답할 정도이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를 가진다면 지금도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유럽의 도시 프라하에 실존하는 여섯 개의 대표적인 성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그에 대한 섬세한 묘사 만으로도 자신도 모르게 극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다소 의외인 결말은 매우 놀랍다. 이건 뭐지? 싶어서 후반 몇 페이지를 다시 돌아가서 읽어야 했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결말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색다른 중세 고딕 미스터리를 만나고 싶다면, 꼭 이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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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연인 1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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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방금 자신의 두 눈으로 본 것이 믿기지가 않아 눈만 껌뻑 대며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 역시 선비를 보고 놀랐는지 경직된 자세였다. 달빛을 받은 여인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명주실마냥 희고 가느다란 머릿결은 풀어헤쳐져 있었으나 파도처럼 풍성하게 굽이쳤으며 두 눈은 푸른빛을 뿜었다. 살결은 진주와 같이 은은하였고 입술은 연지 분을 바른 듯 붉고 도톰했다. 봄철 복사꽃이 떠오르는 그림 같은 여인이었다. 과연 생김새가 인간이 지니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것이 필시 사람이 아닐 터였다. 옷차림 새 역시 기묘했다.

 

 

이 책은 교보에서 진행하는 퍼플 로맨스 공모전 1회 당선작이다. 작가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책을 스스로 출판하는 자가출판시스템인 퍼플에서 시행했던 공모전이고, 1, 2차 심사를 거쳐 연재를 하고 독자 반응, 조회수, 심사위원의 의견을 종합해서 선발된다고 한다. 1회부터 1,000편이 넘는 공모 작이 있었다고 하니, 아마추어 작가들의 열기가 뜨거웠던 것 같아요. 주로 이북으로 출간되는 로맨스 장르 소설 류를 그다지 접해본 적이 없는데다, 오글거리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턴 터라 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컨셉이 "선녀가 된 외계인과 나무꾼 선비"라니, 공전의 히트를 쳤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컨셉이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어쩐지 선녀와 나무꾼 컨셉이라 다소 유치할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광해군 1 1609 8 25, 조선의 하늘을 부유하는 거대한 비행물체를 통해서 등장한 소녀 미르는 선비 휘지와 첫 만남을 하게 된다. 도도, 단아, 깐깐한 선비와 명랑, 쾌활, 뻔뻔한 외계 소녀와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다소 뻔히 보이는 전개부터 솔직히 색다른 맛은 전혀 없었다. 미르가 살고 있는 별에서는 성년식의 일환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떠나는 첫 단독 여행이 필수 사항이었는데, 자기 폭풍을 맞는 바람에 설정해 놓은 좌표를 이탈해서 조선으로 추락하게 된 것이었다. 휘지는 모함으로 인해 아버지가 관직에서 물러나고, 현재 유배를 당항 상태로 홀로 산에서 글공부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우주선이 고장 나 어쩌지를 못하는 미르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휘지는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그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유배자의 신분으로 정식 혼례도 치를 수 없는 처지의 휘지와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미르, 두 사람의 로맨스가 좌충우돌, 알콩 달콩하게 펼쳐진다.

 

"소저, 나를 보세요. 소저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하여 내가 소저를 보낸 것은 아닙니다. 여기 이 마음속에 내 눈과 기억 속에 소저는 영원할 것입니다. 내 수절이라도 하지요."

"싫어요, 도령.... 싫다고요."

휘지가 애써 익살맞은 표정을 지어 미르를 달랬다.

'평생 그대는 나의 각시이고, 나는 그대의 낭군일 것이네.'

 

실제로 <광해군 일기>에도 UFO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포착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것을 계기로 드라마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퍼플 로맨스 공모전이 2012년에 있었으니, 드라마보다 먼저인데 <별에서 온 그대>가 이미 휩쓸고 간 다음에 출간되어서인지 설정 자체의 새로움이 없어 어딘지 맥 빠지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스토리는 로맨스 장르의 공식에 충실하게 진행된다. 양양 도호부사의 여식이자 오라비의 친구인 휘지를 짝사랑하는 수연, 휘지를 모시는 방자 같은 역할의 봉구가 갈등 구조를 전개시켜 주고, 한 쪽에서는 양양 고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도 진행된다. 근데 딱히 미스터리 한 살인사건이 휘지, 미르의 이야기와 상관이 없어 보여 따로 노는 듯한 느낌도 든다. 후반에 휘지가 수사에 뛰어들기는 하지만 정작 두 주인공의 로맨스와는 크게 관련되면서 전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르는 외계에서 온 소녀라기 보다 그냥 조선 여인처럼 느껴진다. 드라마에서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엉뚱하고 신선했는지 떠올려보자면 더욱 미르라는 캐릭터는 평면적이고, 심심하다.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전래 동화의 컨셉을 차용한 것도 성인 대상 로맨스 소설이라기 보다는 청소년 대상 동화로 풀었다면 더 공감을 많이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내가 10, 20대의 감성을 이미 잊어버려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 나이대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유쾌할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의 로맨스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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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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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14(1636). 병자년의 겨울.

임금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다. 이듬해 3월이 되자 조선 원정군의 주력부대는 다시 압록강을 건넜다. 임금은 청의 신하가 되어 궁궐로 돌아왔으며 신료들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더 높은 품계를 받은 신하들도 있었다. 누구도 전쟁에 대해, 패배와 굴욕, 죽음과 상처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꽃이 피고 또 졌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싶어하는 역사, 혹은 무심코 잊어버리고 사는 치욕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의 또 다른 삶을 반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월호 선장과 병자호란 당시 지도자들의 서로 닮았다는 것이다. 배와 승객을 버리고 제일 먼저 도망간 선장과 아무런 방어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백성들을 전지에 남겨두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국왕은 모두 리더의 책임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거울과도 같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오랑캐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의 역사를 만들었다. 인조는 과거 정권을 뒤엎는 데는 성공했지만, 집권 이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는 실패했고, 그 피해는 백성의 피와 눈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을 우리가 다시 돌이켜봐야 하는 이유는, 이것을 비단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현재의 상황이 심상치가 않은 것이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소통과도 같다. 그러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오늘날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조는 피눈물 흘리는 노파의 오열을 듣고서야 병자호란이 끝난 지 1 1개월 만에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4일 만에야 겨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지도자가 무능하면 그 시련이 국민의 처절한 고통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조선 왕이 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한 적이 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무기력한 왕과 그를 둘러싼 권력 다툼속에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은 참담하고 쓸쓸했다. 강희진이 그리는 <이신>에서는 평범한 행복을 꿈꾸었으나 포로사냥의 희생자가 되어 가족을 잃고 인간성조차 말살 당한 남자를 내세워 착한 백성들의 한과 서늘한 분노를 대변한다.

 

도대체 누가 누구더러 절개를 다시 회복하라고 하는가? 김씨 부인이 그 동안 공부한 바로는 조선의 그 누구도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아녀자들에게 손가락질 하거나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고 시비할 자격이 없었다. 혹시 그런 말을 할 선비가 있다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들일 거라고 김씨 부인은 믿었다. 그들이 무슨 권리로 회절강을 만들어, 그렇잖아도 끔찍한 삶을 경험한 여인들에게 또 다른 멍에를 지우는 촌극을 벌인다는 말인가? 또 한번 버린 정절이 물로 씻는다고 회복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회절강이 있다면 그 강물에 가장 먼저 몸과 마음을 씻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교지를 내린 오랑캐의 주구, 즉 임금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시련이 환향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자호란의 희생양으로 청국에 끌려갔던 조선의 아녀자들은 환황녀라는 이름으로 멸시당하고, 정절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죽음에 이른다. 대체 누가 그들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었는가? 참혹한 전쟁을 막지는 못하고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이들이 간신히 살아온 아녀자들에게 정절 운운하는 대목은 기가 찰 정도이다. 사대부들은 심양에서 돌아온 환향녀들과 재결합을 거부하고, 이혼하고 새 장가를 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왕에게 주청을 올렸다. 더러운 몸으로 조상의 제사를 받을 수 없다는 핑계였다. 수많은 사대부가의 환향녀들이 쫓겨나거나 자결을 강요 받았고, 그에 불응할 경우 은밀히 살해되는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염치 같은 것은 애초에 없는 망종들이었던 것이다. 자연히 환향녀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았다. 아녀자들이 전쟁을 벌인 것도 아니고, 전쟁에 진 것도 아녀자들의 잘못이 아니건만 전쟁으로 인한 단죄가 왜 아녀자들의 몫이 되어야 하느냔 말이다.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간 위안부를 두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따라다녔다고 말하는 망언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어불성설의 참담한 책임 회피는 세월호를 둘러싼 현재의 우리 현실에서도 보여지는 모습이라 안타깝고, 화가 난다.

환향녀(還鄕女).. 고향[]에 돌아온[] 여자[]가 뭘 어쨌단 말인가. ‘화냥년이라는, 손가락질의 표적으로 변질된 원통하고 서러운 이름. 나라의 패전으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청국에 끌려간 여인들이다. 당시에 임금은 교지를 내려 한강, 소양강, 금강, 예성강, 대동강 등을 회절강이라 칭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녀자들에게 그곳에서 회절하는 정성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끔찍한 삶을 경험한 여인들에게 임금이 무슨 권리로 회절강을 만들고, 또 한번 잊어버린 정절이 물로 씻는다고 회복이 될 수 있단 말인지. 만일 진짜 회절강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씻어야 할 사람은 오랑캐 황제에게 치욕스럽게 고개를 숙여야 했던 임금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하늘이 정한 이치라면 하늘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인간의 의지뿐이다. 그것만이 천명이다.

나쁜 왕은 죽여야 한다...

이신은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진심이었다. 입 밖에 내고 보니 그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왕을 죽여야 한다.

 

주인공 이신은 칙사라는 높은 지위까지 올랐으나 여전히 서얼이고, 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내이며, 칼잡이이고, 잃어버린 아내와 딸의 꽃신을 만드는 갖바치였다.  이씨 왕조의 신하(李臣)로 살라는 뜻을 담아 이름 지어졌으나, 다른 왕을 섬긴 이신(貳臣)이 된 그를 통해서 국가에 복수하는 것은 평범한 백성들 모두의 염원이 아니었을까. 이신은 청나라의 칙사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와 마찬가지로 청으로 끌려갔던 아내와 딸을 찾으면서,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을 향해 복수를 계획한다. 이신(李臣)에서 이신(貳臣)으로 그의 삶이 바뀌게 만든 그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이들에게 말이다.  '평범한 남자'를 통해 17세기 조선의 사대부를 단죄하는 일은 물론 그리 쉽지도, 만만치도 않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야기라서, 병자호란을 전후로 한 인조와 서인 세력의 무능과 전쟁의 후유증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하룻밤도 편하게 잠들어본 적 없는, 고독하고 고독한 남자 이신.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그의 통탄한 마음은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도 할 수 없이 죽어간 백성들의 그것과도 같다.

강희진은 이토록 참혹한 비극이 있었다면 전쟁을 부른 당사자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흐지부지 끝나버린 400년 전의 역사에 주목해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17세기 조선 사대부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사회지도층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40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진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만화경처럼 눈에 비춰질 뿐, 무엇이 비춰지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바로 권력이었다. 중요한 것은 백성들에게 그들이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게끔 만드는 것이다. 임금은 그 일을 아주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강화도 나루터에서 몸을 던진 여인들, 청으로 끌려가 모진 매질과 고신에 죽어간 사람들, 가족과 모든 것을 잃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죽어간 수많은 백성들의 원한은 아무도 갚아주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을 벌인 임금은 여전히 임금이고, 사대부들은 여전히 사대부였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허구인데 더 끝까지 가버리지, 결말이 조금 허무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작가의 이런 시도만으로도 어쩐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과오는 있으나 책임이 없는 그들에게 보란 듯이 이신처럼 그런 존재가, 현재의 세상에서도 언젠가는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치욕스러운 역사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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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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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 여름 가장 기다리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군도>이다. 하정우, 강동원 두 배우의 시너지 효과 뿐만 아니라 기존의 사극과는 달리 백성의 시각에서 그려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스토리적인 재미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달에 개봉하게 될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는 조선 후기,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망할 세상을 통쾌하게 뒤집는 의적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다가 극중 하정우 배우가 맡은 역할이 평범한 인물에서 도적떼에 들어가게 되면서 의적으로 변모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적 메메드>와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겠다. 의적이란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의로운 도적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지배 계층의 핍박을 통해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의 울분과 한이 쌓여 만들어낸 영웅 캐릭터라 하겠다.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핍박하고,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그런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나서는 이들이 의적인 것이고, 우리의 홍길동, 일지매, 장길산, 임꺽정 등이 바로 그런 시대가 만들어낸 히어로였다. 의적 메메드 역시 그런 영웅 캐릭터인데, 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가 초인적인 능력이 있는 특별한 인재가 아니라 빼빼 마르고 평범한 청년이라는 점이다.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라거나, 어떤 거룩한 소명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메메드는 친근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라 하겠다.

메메드는 충격에 휩싸였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갖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밀려왔다. 머릿속엔 온통 이 넓은 세상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도 넓을 수가 있을까? 물방앗간 마을은 이제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다. 그 대단한 지주 압디도 개미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랑과 연민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메메드는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지주 압디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야......"

 

 

매일매일 땀 흘려 일하지만 가난과 배고픔을 면하기 힘들고, 지주 압디의 핍박과 횡포에 시달리는 터키 민중의 삶은 먼 옛날 우리 민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메메드는 고된 노동과 매질에 지쳐 어머니를 두고 옆 마을로 도망을 치지만, 곧 압디의 수하들에 의해 잡혀오고 만다. 그 일로 메메드와 그의 어머니 데네는 농사를 지은 만큼의 곡식을 배당 받지 못하고 며칠을 계속 굶어야 했다. 말라깽이 메메드는 어릴 때부터 얼마나 고생이 심했던지 어깨도 다리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 키가 작았고, 팔과 다리는 삐쩍 마른 나무토막 같고, 얼굴은 까맣게 탄 상태였다. 그는 다른 세상으로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지내던 어느 날, 친구인 무스타파와 함께 시내 구경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도시에는 지주 따위는 없었고, 가게와 땅들은 모두 개인 소유라는 것이다. , 자신이 일을 하는 것만큼의 소득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 자체에 충격을 받게 된 것이다. 지주 압디의 핍박 아래 살았던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어린 그에게는 지주가 없는 마을도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지 못한 탓이다. 재미있는 점은 함께 갔던 친구 무스타파는 너무 고단해서 시내에 갔던 것을 후회하면서 집으로 돌아간 반면에, 메메드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기쁨에 들떠 있었다는 것이다. 별다른 재능 없이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주인공이지만, 역시 사고 방식 하나는 남달랐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말라깽이 메메드라고? 그가 어린 소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용기로 가득한 인물이야.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피가 지주 압디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걸. 그리고 사파베이는 바이바이 마을에서 저질렀던 만행의 대가를 피할 수 없을 거야."

바이바이 마을에서도 메메드와 칼라이즈의 전투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그 소식이 마을에 전해진 것은 저녁때였다.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광장에 나가 환호했다. 마침내 영웅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들은 한층 상기되어 말라깽이 메메드에 대해 믿기 힘든 이야기를 지어내 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의 눈에는 메메드가 전설적인 존재로 비쳤다. 사람들이 지어낸 메메드의 무용담은 너무 과장되어 있어서 메메드가 열 명이라도 불가능할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과장된 상상을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시내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메메드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열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후 연인 핫체가 지주의 조카와 강제로 약혼하게 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지주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핫체와 함께 마을을 탈출하려다 압디의 어깨에 부상을 입히게 되고, 그는 그 길로 산적이 되어 마을 전체의 마음을 대변하여 지주 압디에 대항하는 의적이 되어간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메메드가 자신들의 끔찍한 삶을 바꿔줄 수도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되는 것이다. 메메드는 그렇게 지주에게 대항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고, 연인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영웅이 된 메메드는 점차 마을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하게 된다.

야사르 케말은 <한 개인의 이야기를 전할 때, 그를 하늘에 닿아 있는 사람인 양 몹시 숭고하게 그리면 안 된다. 그는 이 지상에 견고하게 발을 붙인 채 남아 있어야 한다. 그는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의 일부분이며 특수한 사회 질서 속에 살고 있고, 그 지역 문화에 고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개인은 그가 사는 특별한 환경의 소산물이다. 때문에 그의 사고를 해부해 보려면 그를 둘러싼 환경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환경을 거짓으로 묘사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이걸 보면 의적 메메드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평범한 그가 의적으로 마을 전체의 영웅이 되기까지의 서사가 구축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천 명의 지주들을 죽인다 하더라도 또 수천 명의 지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테고, 가난한 자들은 영원히 비극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고 했다. 극중 메메드 또한 자신이 지주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완전히 타파할 수 없거나, 어느 정도는 패배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며 싸우려고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없이 희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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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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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의 버즈북 시리즈를 좋아한다. 현재까지 출간된 시리즈는 두 권으로 로베르토 볼라뇨와 조르주 심농 편이었다. 버즈북buzzbook은 문이 자자하다는 뜻의 buzz book의 합성어로, 중요 작가의 신작이나 저술을 펴내기 전에 '저자나 책에 대해 미리 귀띔해 주는 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볼라뇨 편은 가격이 무려 660, 심농 편은 750원이었다. 신작이 출간되기 전에 작가의 삶과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흥미롭게 조명하는 시리즈이다. 사실 가격대비 퀄리티가 너무 훌륭해서 이런 시리즈가 작가 별로 모두 다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살짝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은 그런 버즈북의 심화편 같은 격으로 그의 유작인 <2666>을 기려 가격도 2666원이다. 그 동안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이 전 12 17권으로 4년 만에 완간 된 것을 기념으로 국내외의 작가, 비평가, 번역가, 그의 주변 인물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로베르토 볼라뇨를 주제로 작가론, 작품론 등의 비평과 더불어 그에 대한 에세이와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오마주 작품을 담은 책이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들을 탐독하다가 일정 대목에 이르면, 독자들은 누구나 그 작가 자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진다. 이 충동이 남들보다 일찍 찾아오든 늦게 찾아오든, 이미 너무 늦은 것이 되리라. 볼라뇨는 2003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전기적인 사실들(기본적으로 필자가 위에 소개한 것들과, 때 이른 죽음에 관한 언급들)은 각각의 책 표지에 인색하나마 조금씩 실려 있다. 때로 출판사가 요약한 연보에는 죽음의 원인이 <간 질환>이라고 밝혀져 있다.

 

 

문학은 물론 범죄라는 도덕적 악과 칠레의 정치적 상황 같은 사회적 악, 어둠, 죽음, 역사, 기억, 인간관계, , 행복, 광기 등 인간을 둘러싼 실로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독특한 글쓰기 형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볼라뇨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남미 최고의 작가로 추앙 받으며 1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너무 이른 죽음 이후 오히려 전세계적으로볼라뇨 열풍을 불러온 그는 사실 1992년에 치명적인 간 질환을 진단받은 상태였었다. 그의 작품 출간 연보를 보자면, 결국 거의 모든 소설이 죽음의 위협 속에서 쓰였다는 뜻이 된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내기로 결심한다. 이때 그는 필생의 역작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걸작 <2666>을 써 내려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후, 작품 <2666>을 마치기 위해 간 이식 일정을 미룬 건 아닌지 추측이 무성했을 정도이니 볼라뇨가 얼마나 쉼 없는 열정으로 글을 썼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C형 간염으로 인한 간 부전으로 사망할 당시 그의 나이 겨우 쉰이었다. 병은 그의 말년을 시들게 하고 그늘을 드리웠지만, 일찍 죽게 되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볼라뇨의 자각은 문학 에너지의 놀라운 폭발을 일으킨 촉매이기도 하다. 불과 10여년 만에, 그에게 문학적 불멸을 안겨준 10여 편의 소설, 수많은 단편과 100여 편의 비평 에세이를 써냈으니 말이다.

 

10대 시절은 에드거 앨런 포만 읽으면서 보냈어요. 훌륭한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포. 프랑스에선 보들레르가 포를 번역했고 중남미에선 코르타사르가 포를 번역했죠. 각자 주력 분야는 다르지만, 보들레르와 코르타사르가 프랑스어 권 문학과 스페인어 권 문학에서 각각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상 포는 단편 작가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언제나 이 사실을 생각해야 하죠. 어쨌거나 중요한 건 계속해서 읽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것은 쓰는 것보다 항상 더 중요하니까요.

 

볼라뇨는 읽는 것이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소설을 쓰기 위해선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자신은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머릿속에 매우 정교한 구조를 짜놓는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 스타일을 떠올려보자면 전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이렇게 인터뷰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작가, 비평가, 번역가, 그의 주변 인물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로베르토 볼라뇨를 주제로 작가론, 작품론 등의 비평과 더불어 그에 대한 에세이와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오마주 작품을 담고 있어, 볼라뇨라는 작가에 대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도 든다. 기존 로베르토 볼라뇨 특집 판으로 구성된 프랑스의 잡지 『시클로코스미아CYCLOCOSMIA 3호의 내용과 국내 필진의 글을 함께 실어 구성이 되었는데,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는 스페인 작가 에두아르도 라고, 작가 장정일, 서평가 금정연, 그리고 볼라뇨의 작품을 번역한 이경민까지 다양한 필진의 글들은 볼라뇨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도 하지만, 오마주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 연보 

1993 40세 소설 『아이스링크』  
1994 41세 소설 『코끼리들의 오솔길』  
1995 42세 시집 『낭만적인 개들』  
1996 43세 소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먼 별』  
1997 44세 단편집 『전화』  
1998 45세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 출간 1999년 로물로 가예고스상 수상
1999 46세 소설 『부적』 『코끼리들의 오솔길』 개정판인 『팽 선생』 출간
2000 47세 소설 『칠레의 밤』, 시집 『셋』  
2001 48세 단편집 『살인창녀들』  
2002 49세 소설 『안트베르펀』, 『짧은 룸펜소설』  
2003 50세 단편집 『참을 수 없는 가우초』 사후 출간 사망
2004   유작 『2666』 출간  
2010   유고 『제3제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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