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궁박물관 테마 해설 시연 수업은 A조(8명) 차례였고, B조(7명)는 발표자들의 잘한 점이나 그들로부터 배울 점을 말하는 과제를 맡았다. 평이하고 짧게 이야기를 한 조원들과 달리 나는 꽤 구체적이고 상세한 답을 했다. "대상을 고려해 준비한 자료를 현실과 연결지어 차분하고 쉽게 설명한 점이 좋았다.", "'드래곤! 몬 go'라는 제목을 설정해 대상자가 주제를 잊어버릴 우려가 있는 아이들임을 감안해 '용(龍) 찾으러 간다'는 주제어를 거듭 강조한 점이 좋았고 전체적으로 친절하고 명랑해서 좋았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말하면서도 틀을 벗어나지 않았고 드라마틱한 어조로 동화구연을 하듯 전한 메시지가 좋았다.",

 

"예종이 계유정난으로 집권한 수양대군 사후 묘호를 정할 때 창업 공신에 해당하는 조(祖)라는 호칭을 부여하려 한 데에는 계유정난이 재건국에 해당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현대 정치와도 관련지어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서 좋았다.", 등이 내가 한 말이다. 말만 번지르르한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11월 24일 경복궁 단청 시연이 예정된 나는 걱정이 많이 된다. 내용 구성, 시간 안배, 듣는 사람들과의 소통, 자연스러움, 현대적 의미 연결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에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다.

 

나는 어제 미션대로 시연자들의 장점을 말했지만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단어들을 사용해 길게 평을 했다. 심사위원이 하듯 평가를 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싶다. 내 순서 다음에 마이크를 잡은 분은 내 말이 너무 거창해 자신은 말하기가 난감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까지 했다. 선생님께서는 '드래곤! 몬 go'를 주제로 시연한 분을 평하는 시간에 내 말(친절하고 명랑하다.)을 다시 하셨다. 선생님이 하시려던 말씀을 먼저 한 것일까?(a) 아니면 생각을 떠오르게 한 것일까?(b) 물론 선생님께서는 (책임자로서 당연히) 시연자들에게 고치거나 보완해야 할 점을 지적하셨으니 우려할 일(a)도 대수로운 일(b)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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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건축가, 국회의사당과 청와대는 터가 잘못되어 문제가 생긴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심. 청와대의 경우 경복궁을 내려다 보고 있어 문제라는... 근거에 공감하지는 않지만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모두 저자거리의 건축 유형과 크게 차이가 난다는 지적 그리고 현실 진단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물론 지금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의 현실에 대해서는 누구든 그런(문제적이라는) 진단을 할 것이다.

 

요즘 경복궁에 대해 탐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축에 관심이 간다. 한스 샤로운이라는 독일의 건축가는 나치의 선전도구로 쓰인 주요 건축양식들과 다른 소박하고 비권위적인 양식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을 설계했다. 우리에게는 승효상 건축가나 한스 샤로운 같은 분의 상상력과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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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을 부르는 미술관 - 착시와 환상, 신비감을 부여하다
셀린 들라보 지음, 김성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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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들라보의 ‘착각을 부르는 미술관’의 표지를 장식하는 그림은 페레 보렐 델카소의 ‘비평에서 도망가기’란 그림이다. 이 그림은 트롱프뢰유(trompe - l'oeil: 대상을 실물로 착각하게 할 만큼 생생하게 표현하는 미술 기법) 즉 착시 효과만 노리는 그림은 미술 비평가들의 조롱을 산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비평에서 도망가기’란 제목의 그림은 소년이 창을 빠져나오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겁에 질린 채 도망치는 소년은 계속되는 비평에 질려 활동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인 화가의 불편한 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들라보의 책이 예시한 미술에서의 기막힌 거짓말은 트롱프뢰유만이 아니다. 대상을 변형시켜 묘사하는 왜상화법, 이중적이거나 숨겨진 이미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원근법 등도 책이 소개하는 주요 기법이다. ‘눈을 속이다‘, ’또 다른 의미를 담아내다‘, ’형체를 만들다‘, ’시각을 탐구하다‘, ’현실을 초월하다‘ 등 다섯 챕터로 이루어진 ’착각을 부르는 미술관‘은 ’착시와 환상, 신비감을 부여하다’란 부제를 가지고 있다.


폼페이 신비의 별장에 있는 유명한 연작 벽화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의식을 연출한 것으로 장면과 장면은 그림 속 기둥에 의해 구분되어 있는데 워낙 기둥이 교묘하게 그려져 있어 현실 공간에 속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야기에 속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초의 트롱프뢰유로 볼 수 있는 사례는 기원전 7세기 에트루리아(이탈리아)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그리자유(grisaile) 기법은 착시 효과를 내는 뛰어난 기법이다. 이는 채도가 낮은 한 가지 색의 농담(濃淡)과 명암만으로 조각 같은 입체감을 내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모습을 똑같이 재현하면서도 예를 갖추어 표현해야 하는 종교적 인물을 묘사하기에 특히 적합했다. 얀 반 에이크는 석상처럼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그리자유 기법에 더해 벽감(壁龕) 같은 구조물을 흉내낸 그림을 더해 입체감을 끌어올렸다.


착시 효과의 대가로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미켈란젤로이다. 그가 뛰어난 천장화(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린 비결은 시점(視點)을 하나로 두지 않고 연속적인 다수의 소실점(消失點)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감상자는 착시 효과를 사방에서 받음으로써 그림 속 장면들에 둘러싸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존 드 안드레아의 ‘마그다(Magda)’는 주목할 만하다. 실물 크기로 실제 사람과 비슷한 그의 작품은 이상적 인체 비례에 관한 법칙과 상관 없이 모델에 따라 인체 비율이 달라진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이미지에 전적으로 휘둘리는 사회 속에서 사진의 거짓된 면이 진실의 근거가 되어버렸음을 지적하는 한편 촛불을 극사실주의적 방식으로 묘사해 바니타스(vanitas; 세속적인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유리잔, 거울, 촛불, 깃털 등을 그리는 것) 장르를 조롱하기도 했다. 르네 비르츠는 사물을 10배로 크게 그림으로써 관람객을 착각의 함정에 걸려 들게 하면서도 그 사실을 곧바로 알려주는 기법을 썼다.


스티커, 포스터, 스텐실, 도자기 등을 이용한 새로운 거리 미술을 주목하게 된다. 이는 그래피티에 비해 회화적인 성격은 크고 그래픽적인 성격은 덜해 때로는 거대한 트롱프뢰유를 연출했다. 독일 화가 에드(1968 - )가 뮐러가 대표적이다. 카예타노 페러(1981 - )는 단순한 형태의 사물을 그것이 전시된 장소나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이상 ‘눈을 속이다’)


대상의 모습을 변형시켜 묘사하는 왜상(歪象) 화법은 그림 실력을 보여주는 방법이었을 뿐 아니라 종교와 권력을 풍자하는 이상적인 수법이기도 했다. 에르하르트 쇤이 대표적이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代謝)들’은 바니타스의 의미를 띤다. 이 그림은 여러 저자들에 의해 언급된 유명한 그림이다. 유명한 윌리엄 힐의 ‘아내와 장모’는 심리 테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 마녀처럼 보이는 노파의 이미지를 교묘히 병치시킨 이 그림은 두 형태를 동시에 지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오래 들여다 보면 그림이 저절로 변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데 이는 시각 현상이란 원래 기만적이라는 사실과 관계된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그림을 이용한 착시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합리적인 현실을 초월하고 전복시키는 세계,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전능함을 격찬하는 이 새로운 세계의 지배자는 살바도르 달리였다. 그는 초현실주의 예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


저자는 초현실주의 그림을 해독하고 싶다면 그것이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키는 연상 작용을 따라가 보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정신분석의 자유연상을 생각해보게 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언어, 자유연상을 강조했다. 자유연상은 환자로 하여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모든 생각, 감정, 바람, 감각, 이미지, 기억 등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하는 정신분석 기법이다.(이상 ‘의미를 부여하다’)


미국의 사진 작가 신디 셔먼(1954 - )은 스스로 사진 모델이 되어 살아 있는 사람을 작품에 바로 삽입하되 의상과 과도한 분장, 인공 보철구, 조악(粗惡)한 보석 등을 이용해 생명이 없는 마네킹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보는 사람이 곧 알아차릴 수 있는 인위적인 속임수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여성의 미를 숭배하는 고상한 예술의 권위를 실추시키기 위한 것이다. 조각가이자 사진작가인 에반 페니(1953 - )는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속임 효과를 가진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실물과의 유사성을 추구하는 미술의 전통과 우리가 인간의 형체를 지각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마크 젠킨스(1970 - )는 거리의 미술가이다. 그는 공공장소에 엉뚱하면서도 시적인 방식의 작품을 남김으로써 타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인물들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의 설치 작품은 “새로운 형태의 트롱프뢰유라 할 수 있다.“(113 페이지) 일본의 미술가 기미코 요시다(Kimiko Yoshida: 1963 - )는 사진 자화상을 정체성을 숨기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는 이런 작업을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사라지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란 말로 요약했다. 이는 라캉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이상 ’형체를 만들다‘)


조르주 쇠라의 분할화법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유명하다. 그랑자트란 커다란 잔(盞)을 의미한다, 섬이 잔 모양이기 때문이다. 물감을 혼합하지 않고(분할해서) 원색의 점을 캔버스에 찍어 그린 이 작품은 제작에 1년이 걸렸다고 한다. 쇠라는 결이 있는 캔버스 표면에 순색의 작은 섬을 수없이 찍는 방식으로 그림의 각 부분을 표현함으로써 멀리서 봤을 때 서로 다른 색의 빛들이 섞여 원하는 색깔이 나타나게 했다. 색깔은 팔레트가 아닌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124 페이지)


척 클로스(1940 - )는 40년 넘게 사진에 담긴 얼굴만을 그렸다. 현실과 현실의 재현 사이의 간극(間隙)을 탐구해온 것이다. 재현은 결국 가공된 이미지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조르주 루스(1947 - )는 르네상스 대가들의 눈 속임 그림과는 반대로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그림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야요이 쿠사마(1929 - )는 감상자에게 작가 자신의 환각을 엿보고 체험하게 하는 작품들을 남겼다.(이상 ’시각을 탐구하다‘)


르네 마그리트는 언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폭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우리가 정해놓은 사물의 이름은 꼭 그것일 필요는 없으며 더 적합한 이름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마그리트에게 있어서 미술은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착각을 심어줄 수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이 사실적인 재현의 외관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가시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이다.(158 페이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판화 속 풍경은 원근법의 법칙을 정확히 따른 것처럼 보이며 오로지 규칙에만 집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풍경임을 알 수 있다.(164 페이지) 호안 폰트쿠베르타(1955 - )의 작품에서 사진은 세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세상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166 페이지)


마우리치오 카텔란(1960 - )은 착시 현상을 무례함과 불복종의 도구로 활용한다. 그의 작품들은 모든 형태의 권력과 제도화, 신성화를 조롱하는 새로운 형식의 바니타스라 할 수 있다.(이상 ’현실을 초월하다‘) ’착각을 부르는 미술관‘은 착각을 부르는 여러 기법들을 일람(一覽)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작가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타 작가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기법을 고안해내는 데 상당한 노고와 철학적 마인드가 필요했으리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의 의도가 닿지 않아서이겠지만 현실과 환상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반복되는 바이지만 기원 전 7세기 이탈리아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발견된 트롱프뢰유 기법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그림과 문화 유물 등이 전시된 곳(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한 양가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효과적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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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을 읽는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양국간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따라 일본에서 온 여고생 쇼코가 ‘나’의 집에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가 편지를 보내는 설정,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어지는 상황이 추리소설적 흥미를 유발한다. 일본어 통역을 했던 할아버지와 나에게 쇼코는 각각 다른 상황과 분위기의 편지를 보냈다. 할아버지에게는 늘 밝은 내용의 편지를, 나에게는 어두운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 쇼코를 보며 ‘나’는 그 두 종류의 편지가 모두 진실일 거라 생각한다.

 

쇼코는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어야 그를 친구라 불렀다.... 소설 읽기가 망설여지는 이유 중 하나는 도입부의 낯선 정경과 사람들에게 쉽게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쇼코를 찾아 나선 ‘나’는 쇼코를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자신이 그에게 어떤 의미이기를 바란다. 마음 한쪽이 부서져버린 쇼코를 보며 ‘나’는 이상한 우월감에 흽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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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 최순실 부녀의 등장은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에 나오는 히스클리프의 등장을 연상하게 한다. 물론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아버지 히스클리프씨에게 발견되어 워더링 하이츠(저택)에 오게 된 것이고 최 부녀는 자발적으로 접근한 것이니 경우가 다르다.

 

하지만 파격과 충격적인 양상은 너무 닮았다. 출신을 알 수 없는, 집시로 추정되는 히스클리프는 온갖 파격과 기행을 연출하며 범죄라 불러 마땅한 집요한 복수를 하는데 자신의 인생을 건다.(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힌 힌들리(캐서린의 오빠)에 대한 복수, 캐서린을 빼앗아간 에드거에 대한 복수...)

 

히스클리프씨의 딸이자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공이고 히스클리프에게 반해 파멸의 길을 걸은 캐서린은 ˝나 자신이 히스클리프˝라는 말을 남긴다. 이 부분이 ‘워더링 하이츠’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히스클리프는 ˝곡기를 끊고 밤마다 히스 들판을 정처 없이 헤매며 캐서린의 영혼이 편재하는 자연과 합일하듯 죽어˝(야마모토 시로 지음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학’ 70 페이지)간다. 픽션보다 더한 현실이라 해야 하는지 현실과 픽션의 닮은 꼴이라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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