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전 전철 안에서...

단청 문양 자체가 대칭이고, 경복궁 근정전과 사정전이 대칭 구조로 지어졌고, 사정전 좌우의 만춘전과 천추전이 대칭이라는 점과 궁궐을 균형과 비례의 원칙 즉 중용 원리에 따라 대칭으로 지은 이유가 치우치지 않는 바른 정치를 펼치려는 왕권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연결짓고, 음양오행의 원칙에 따라 다섯 색을 사용하는 단청이 바로 그렇게 중용의 원리를 따른 결과라는 점을 입증하는 자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니 피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읽는 콜린 엘러드의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에 수록된 다음의 구절이 나를 위로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옛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여린 몸짓, 가장 어린 시절의 몸짓이 여전히 온전하게 문득 되살아 나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란다. 한 마디로 우리가 태어난 집은 우리 내면에 주거와 연관된 다양한 기능들의 위계를 아로새겼다. 우리는 특정한 그 집에 거 주하는 데 따른 기능들의 설계도이며 다른 모든 집은 단지 기본 주제의 변주일 뿐이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에서 인용한 글이다.

이 글을 읽으니 안락한 집 생각이 피어난다. 눕고 싶지만 지금 여기는 전철 안. 광화문 인근. 지쳤지만(처음에는 키보드를 잘못 눌러 미쳤지만이라는 글자가 쓰였다. ㅎㅎ) 다른 분야의 책 좀 사려고 교보에 간다. 나,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는 하이에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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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사회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르네 지라르의 분석이다. 그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한다는 주장을 했다. 지라르에 의하면 거짓이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함에도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욕망한다고 믿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라깡이 지라르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 역시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란 말을 했다. 이는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욕망한다‘는 의미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한다‘(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어제 마포의 한 주민센터에서 정지은 선생님의 ‘왜 사랑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질까?‘ 강의를 들었다. 최근 나온 ‘헬조선에는 정신분석‘의 공동 필자로 참여한 분으로 정신분석에 기반을 둔 사랑론을 주로 펼치는 필자이다. 결론은 성을 사랑을 위해 사용하는 것, 사랑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것, 그럼으로써 욕망의 주체, 결여의 주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인격 전체가 아닌 대상(부분)에 집착하는 충동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욕망은 만족할 줄 모른다. 스스로를 결핍의 주체로 만들어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욕망이다. 물론 일반적 의미의 욕망과는 구분해야 하는 용어이다.)

일본의 경우 사토리(득도得道)세대가 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태어나 현재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나이에 이른 사람들인 사토리 세대는 현실적 출세와 사랑 등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살고 있다.

만족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안과 우울에 휩싸이기도 하는 그들은 정신분석적으로는 죽음 충동에 근접한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절멸(絶滅)이다. 절멸은 피해야 할 것이다. 정 선생님도 사회적 차원을 언급했다.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 사랑에 적극적인 프랑스 젊은이들을 예로 든 것이다. 그런데 헬조선인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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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난다. 최근의 내 관심거리 안에서만 보더라도 경복궁이란 말, 근정전이란 말, 사정전이란 말, 실록(實錄)이란 명칭 등 중국의 주요 고전에서 유래한 개념어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궁궐을 기준으로 종묘는 좌측에, 사직단은 우측에 배치함을 이르는 좌묘우사(左廟右社), 조정(朝廷)은 궁궐의 전면에, 시장(市場)은 후면에 배치함을 이르는 전조후시(前朝後市) 등 주요 도시계획의 원칙들도 중국의 고전에서 유래했다. 사실 원칙이 유래한 것에 비하면 이름이 유래한 것은 별 것 아닐 수 있다. 다시 경복궁 이야기를 하자면 경복(景福)의 景은 볕 경자이면서 그림자 영이기도 하다. 빛과 그림자가 아닌 볕과 그림자여서 정확히 반대된다고 할 수 없지만 하나의 글자에 대조적인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영으로 쓰이는 景은 영정(影幀)에 쓰이는 그림자 영(影)과 뜻이 같은 글자이다. 


경위(涇渭)란 말이 있다. 역시 중국에서 비롯된 말이다. 중국의 경수(涇水)는 흐리고 위수(渭水)는 맑아 뚜렷이 구분된다는 데서 나온 말로 사물의 이치에 대한 옳고 그른 구분이나 분별을 의미한다.(사전은 경수는 항상 흐리고 위수는 항상 맑다고 말한다.) 문제는 ‘항상’이라는 전제이다. 세상에 항상 흐리거나 맑은 물이 없다는 점에서 경위는 문제적인 말이다. 물론 항상이란 말을 빼도 문제이다. 흐린 물과 맑은 물이 구별되어 있다면 세상 살기는 참 쉽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흐린 물과 맑은 물로 선명히 나뉘지 않는다. 그런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한 필자는 “서양의 책과 과거를 배우는 데만 열을 올리는 우리는 모두 서양귀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2016년 11월 7일 세계일보) 나는 우리가 서양 사상들을 그렇게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 말은 지나치다 생각한다. 그 필자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대통령이 영락없는 선무당이 되어버렸다고 전제한 뒤 한국의 국민의식은 아직 하위단위인 지역과 문중과 당파와 기업에 머물러 있고, 야당과 운동권의 민주주의 혹은 민중주의 운동도 굿판의 성격이 강하기에 우리 국민 모두 자신의 귀신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지적 사대주의를 샤머니즘이라 말함으로써 본의가 어디에 있든 흐린 물과 맑은 물을 한데 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의도는 우리 모두 흐린 물이라 말하려는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청(丹靑) 공부를 하다 발견한 자료들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단청은 중국에서 발달한 오행설과 중국 문양의 영향을 받아왔지만 표현 방법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내용이다.(김의식 지음 ‘그림으로 만나는 부처의 세계 탱화’ 22 페이지) 도안화된 머리초 문양 및 극채색의 대비를 강조한 휘(暉) 문양이 차이점들이다. 머리초는 서까래 등의 부재(部材)의 끝에 장식하는 단청무늬를 말한다. 휘는 머리초 주문양의 둘레를 감싼 색실에 접하여 장식하는 다양한 색대(色帶)를 말한다.(暉: 빛 휘) 그렇다면 오늘 서양에서 받아들인 사상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예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부지런히 탐구해 그런 예들을 알아내거나 직접 그런 예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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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를 위하여 - 작가 츠바이크, 프로이트를 말하다
슈테판 츠바이크.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양진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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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보다 스물 다섯 살이나 어린 동료이자 제자였던 스테판 츠바이크는 쉬운 설명으로 프로이트 사상의 탄생 배경을 풀어낸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프로이트를 위하여는 그가 쓴 프로이트 평전, 그리고 그가 프로이트와 나눈 편지들을 묶은 책이다. 19세기를 윤리적으로 지배한 것은 칸트(Kant)가 아니라 위선(cant)이라는 말로 운을 뗀 츠바이크는 그렇게 100년 동안 모두가 모두에게 자기를 감추고 자기를 말하지 않은 결과 심리학은 정신적으로 뛰어난 문화의 한복판에서 전례 없는 침체기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츠바이크는 프로이트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 프로이트의 센세이셔널한 데뷔에서부터 자세히 서술해 나간다. 프로이트는 모든 신경증은 성적 욕망을 억압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선입견 없이 자명하게 규명했다. 프로이트는 예의범절이 아니라 솔직함을 중요시했다. 츠바이크는 프로이트를 창조적 정신의 소유자(58 페이지), 거물급 파괴자, 우상 파괴자(62 페이지), 섬세한 관찰자(70 페이지), 환상 파괴자(76 페이지), 무미건조함의 천재(79 페이지)라 부른다. 그리고 프로이트 이전의 심리학을 낡은 심리학이라 부른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근본적 갈등을 위선에서 학문으로 변모시킨 사람이다. 70세가 되었을 때 프로이트는 개인을 검사했던 자신의 방법을 신에게까지 시도하는 최후의 과업을 수행했다.(63 페이지) 프로이트는 자기만의 심연에 이르는 위험한 길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프로이트는 항상 단계를 밟아 내려가면서 모든 불확실한 지점들을 주의 깊게 또한 전혀 도취 없이 진술한 첫 번째 사람이다.(76 페이지) 츠바이크의 프로이트 평전을 읽으면 프로이트가 자신의 소신을 버리지 않고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어려운 길을 자초한 신념의 사람임을 알게 된다.


프로이트는 평생 무의식을 탐구한 사람이다. 프로이트 이전에도 무의식은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알지 못했다. 프로이트는 모든 심리적 활동이 무의식의 산물이라고 단호히 역설했다.(98 페이지) 책상이 어둠 속에 있어 보이지 않거나 빛 아래 있어 보이거나 여전히 책상이듯 심리학에서 무의식은 의식과 똑같이 심리 공간에 속한다.(99 페이지) 프로이트에 와서야 무의식이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왔다.(99 페이지) 츠바이크는 결정을 내려야 할 모든 상황에서 무의식적 의지를 고려하지 않는 사람은 착오에 빠진 사람이라 설명한다.(100, 101 페이지)


무의식은 근원적 의지(102 페이지)이며 각 사람들의 가장 깊은 비밀(105 페이지)이다. 매순간 일거수일투족에서 무의식의 술렁임을 억눌러야 한다고 말하는 츠바이크는 어떻게 그 무의식이라는 어스름의 나라로 내려갈 것인가에 대해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심리적 영역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거나 우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109 페이지) 프로이트는 실수는 생각 없음이 아니라 억압된 채 밀려들어가 있던 생각의 자기 관철이라 보았다.(109, 110 페이지) 츠바이크는 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프로이트 방법론이 새로운, 일종의 성격학적 의도에서 꾀한 것은 꿈 언어를 사고 언어로 변환하는 것이다.(115 페이지) 꿈속에서는 시간이 통용되지 않는다. 우리였던 것과 우리인 것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이다.(115 페이지)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짐작하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우리는 꿈을 통해 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이라는 공식은 구슬처럼 가지고 놀 수 있었다.(119 페이지) 프로이트는 꿈이 이야기하는 것을 섣불리 진짜 내용으로 간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121 페이지) 꿈은 내적 체험을 상징을 통해 고백한다.


꿈 작업과 꿈 내용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꿈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이 원래 말하려던 것이야말로 심리 생활의 무의식적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프로이트는 꿈이 우리의 심리적 균형을 안정시키는 데 필수적임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온종일 갇혀 있던 우리의 욕구들을 꿈이라고 하는 안전지대에 풀어놓을 때 우리는 감정생활로부터 그 악령들을 떼어내고 잠이 피로라는 독성 물질로부터 신체를 구해내는 것처럼 과도한 압력에 짓눌린 우리의 영혼을 자기 이탈 속에서 풀어준다.(125 페이지)


우리가 꿈이라는 안전지대에 우리의 갇혀 있던 욕구를 풀어놓는 것은 괴테가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로 하여금 자살하게 함으로써 해소한 것을 연상하게 한다.(126, 127 페이지) 인식만이, 오직 적극적인 자기 인식만이 정신분석적 의미의 치유를 가져다준다.(130 페이지) 정신분석은 모든 준비된 고백, 모든 문서화된 것을 거부하고 심리 생활의 기억들을 가능한 한 많이 자유분방하게 내어놓으라고 환자에게 주의를 준다.(136 페이지) 한 사람 안에 자신의 질병을 없애기 위해 정신분석가를 찾아오는 환자가 있고 무의식적으로 병에 집착하는 환자가 있다.(139 페이지)


모든 정신분석은 전투이다.(140 페이지) 한편 정신분석은 예술적 과정이다. 인내력이 중요하다.(141 페이지) 정신분석의 이상적 치료는 환자가 신경증 시위를 불필요하다고 인식해 자신의 감정 에너지들을 망상과 꿈으로 허비하지 않고 생활과 업적으로 해방시킬 때 완성된다.(142 페이지)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기술이 심리 치료 영역에서 최종적이자 결정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146 페이지) 프로이트는 현실 속의 에로틱한 욕구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저지당해 좌절될 때 신경증이 발생한다고 표현했다.(성적병인론)


프로이트는 에로스나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리비도, 쾌감 충동, , 성 충동이라고 표현했다.(153 페이지) 츠바이크는 리비도를 해소되고자 하는 맹목적인 힘, 어디를 겨눌지 모르는 활의 장력, 빠져나갈 어귀를 찾지 못한 강물의 소용돌이치는 힘으로 설명한다.(154, 155 페이지) 프로이트는 성의 개념을 생리적인 성행위에서 분리시켰고 저급한 심리적, 신체적 행위라는 펀견과 모욕으로부터 해방시켰다.(155 페이지) 프로이트는 유아 성욕설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츠바이크는 유아가 걷기 전에 걸을 수 있는 잠재력을 두 다리에 지니고 있듯, 말할 수 있기 전에 언어 욕구를 지니고 있듯 성욕도 목적에 맞는 행동에 대해서는 짐작도 못하는 유아 속에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고 말한다.(158 페이지)


구강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어린이는 자기 신체에 경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161 페이지) 건조하고 직설적인 프로이트의 문체와 달리 츠바이크의 문체는 수사적이고 비유적이다. 가령 젖먹이의 자가 성애 및 범성애 형태와 사춘기의 성애 사이에는 욕정의 겨울잠이 있다는 표현을 보라. 프로이트는 생식 행위 이외의 방식으로 쾌락을 충족하려는 사람들을 성도착자의 범주에 넣었다. 체험이 모든 심리 형성의 형식을 결정하는 정신분석에서는 각 개인을 오직 개별적으로 그의 과거 체험에 근거해 이해한다.(166 페이지)


츠바이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정신분석을 지탱하는 데 중요 역할을 했지만 완공 이후 제거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은 간이 버팀목들 중 하나가 아니라고 본다.(167 페이지) 츠바이크는 프로이트는 쾌락원칙이야말로 세계를 움직이는 유일한 심리적 힘이라고 일원론조로 이야기학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170 페이지) 프로이트는 리비도에 대립되는 충동으로 자아 충동, 공격 충동, 죽음 충동 등을 제시했다.(170 페이지) 학술이론으로서 정신분석은 충동들과 무의식의 우세를 사수한다. 치료방식으로서 정신분석은 이성을 인간에 대한, 인류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로 사용한다. 이것이 정신분석의 모순이다.(187, 188 페이지)


츠바이크는 정신분석의 한계를 논한다. 오로지 개인에 관한, 개별적 영혼에 관한 학문인 정신분석은 공동체의 의미나 인류의 형이상학적 사명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190 페이지) 츠바이크는 정신분석에 정신종합이 더해져야 할 것이라 말한다. 영혼의 은밀한 속박들을 넘어 영혼의 자유를, 영혼이 자기 존재를 넘어 삼라만상을 향해 굽이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192 페이지) 우리는 프로이트 덕분에 처음으로 개인의 중요성을, 모든 인간 영혼의 대체 불가능한 일회적 가치를 새롭고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다.(199 페이지)


프로이트는 츠바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경증을 앓지 않는 러시아인들도 분명 도스토예프스키의 거의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211 페이지) 프로이트는 츠바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에게서 내면의 위대한 겸손함과 예술가에게 드문 성품을 봅니다"란 말을 한다.(238 페이지)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괴테상 수상을 축하하며 그것이 프로이트가 오래 전에 받았어야 할 노벨상을 수상하는 데 길을 마련해 줄 것이라 말한다.(255 페이지)


프로이트는 두 가지 점에서 츠바이크를 비판한다. 자유연상 기법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과 자신이 어린 시절의 꿈으로부터 꿈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는 기술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262 페이지)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에게 자신은 결코 정신분석의 방법과 체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일에 전념하지 않았다며 많은 부분에서 독자적으로, 외부인의 시선으로 고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의 업적 전체에 견줄 만한 인물로 니체를 꼽는다.(264, 265 페이지)


프로이트는 츠바이크의 '예레미아', '감정의 혼란' 등 악마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정신생활을 파헤친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큰 즐거움을 느꼈음을 고백한다.(275, 276 페이지) 츠바이크는 자신의 시대를 정신이 사라진 시대로 보며 그런 시대에는 지적인 권위가 필요하며 자신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소수라 덧붙인다.(291 페이지) 프로이트는 츠바이크에게 자신은 츠바이크가 묘사한 것보다 훨씬 덜 중요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애쓴 츠바이크의 지극한 호의를 기꺼이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307, 308 페이지)


프로이트는 전기 작가에게는 정신분석가의 경우와 비슷하게 전이(轉移)라는 개념으로 파악되는 현상이 있다고 말한다.(308 페이지) 츠바이크는 심술궂게도 신이 자신에게 많은 것을 내다보는 재능을 주셔서 지금 몰려오는 일을 4년 전부터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다고 말한다.(311 페이지)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에게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프로이트의 저작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자임을 전하며 그가 프로이트를 무척 뵙고 싶어 하며 프로이트에게 달리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325 페이지)


츠바이크는 달리를 자신들의 시대의 유일한 천재 화가이자 시대를 뛰어넘을 유일한 사람, 자기 신념의 열렬한 옹호자, 프로이트를 따르는 예술가들 중 가장 믿음직한, 은혜를 아는 제자이기도 하다고 소개한다.(328 페이지) 프로이트는 츠바이크에게 "당신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싶었지 파도가 밀려와도 꿈쩍 않는 갯바위처럼 되고 싶진 않았다.고 말한다.(314 페이지) 프로이트는 자신이 초현실주의자들을 바보로 여긴 경향이 있었는데 달리는 다르다며 그의 그림의 기원을 정신분석적으로 탐구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말한다.(334 페이지)


프로이트는 자신은 정신분석 지망생을 난처하게 하는 것을 꽤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가 어느 정도의 의향을 지니고 있는지를 검증하고 헌신성의 정도를 올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335 페이지) 구강암 악화로 고생하던 프로이트는 1939923일 모르핀 과다 투여에 따른 쇼크로 숨을 거두었다.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에게 당신께서도 우리 모두처럼 이 시대만을 아파하고 신체적 고통은 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351 페이지)


츠바이크가 프로이트를 니체에 견준 것은 유명하다. 그런데 프로이트와 니체는 너무 대조적인 문체와 스타일을 보였다. 관심거리이다. '프로이트를 위하여'는 츠바이크의 정신분석적 통찰력이 빛나는 책이다. 문학적으로도 손색없는 프로이트 평전(그리고 두 박사가 주고 받은 편지글, 프로이트에 대한 자료 등)은 정신분석학의 배경과 프로이트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헤아리는 데 꼭 필요한 책이다. 프로이트를 위하여읽기는 츠바이크와 프로이트라는 두 지적 거인의 면모를 다시 확인한 읽기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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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광화문 촛불 집회(100만 촛불 항쟁)에 실업, 여혐, 차별 등으로 분노한 청년과 여성들이 ‘저항’의 중심에 섰다는 글(경향신문)이 눈에 띈다. 꽤 오래 페미니즘의 흐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입장이지만 참 많이 반가운 현실이다. 책세상 문고로 나온 페미니즘 이론서 가운데 이현재 님의 ‘여성의 정체성 - 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김미경 님의 ‘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 등을 읽은 것이 10년 쯤 전이니 이제 다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제는 여성 혐오 셀프 테스트를 받았다. 11개의 항목들 중 나는 10개에 걸쳐 ‘좋아요’란 평가를 받았다. ‘좋아요’ 평가를 받지 못한 단 하나의 항목은 남편도 아내의 집안일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란 물음이다. ‘그렇다‘를 선택했지만 답은 집안일은 한 집안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이니 당연히 남자도 함께 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혹시 그럴 필요가 없어 아니오를 선택한 것은 아니겠지요?’란 물음이다.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는 더 중요한 사회문제를 먼저 해결한 뒤 다루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나는 ‘아니오’를 택했다. 앞에서 언급한 이현재 님의 책은 주요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사상을 일별(一瞥)한 책이어서 내게 큰 도움이 된 책이다. 최근 이 분이 쓴 ‘여성 혐오, 그 이후’란 책이 나왔다. 150여 페이지의 얇은 책이지만 여성 혐오, 비체(卑體) 등의 개념들이 다루어진 의미 있는 책이어서 바로 구입했다.(150 페이지는 책세상 문고보다 얇은 분량이다.) 현대적 흐름을 알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와 함께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의 관계가 정리된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임옥희, 신주진 외 지음)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은 페미니즘에 살모충동을 느끼고, 페미니즘은 정신분석학에 살부충동을 느끼면서도 두 이론이 서로 협상하고 공모하면서 얻어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란 책 소개 글에 눈이 번쩍 뜨인다.(이 책은 지금 읽고 있는 스테판 츠바이크의 ‘프로이트를 위하여’와 함께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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