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인상덕(玩人喪德), 완물상지(玩物喪志)..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덕을 잃고, 물건에 빠지면 뜻을 잃는다는 뜻.

글감을 찾기 위해서이지만 스마트폰에 빠져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때가 종종 있는 내가 새길 말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뺏기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전통 유가(儒家) 입장에서는 시 짓기는 여기(餘技)로 받아들여졌다. 깊이 빠져서 할 일은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다.

그들에게 시 짓기가 여기였다면 본령은 자기수양이었다. 그런데 16세기 호남의 문인들은 그런 정신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지나치지 않다면이란 전제하에 시 짓기는 물론 물건에 관심을 두거나 탐승(探勝)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 것이다.

16세기 호남 문인이라면 담양 소쇄원(潚灑園)의 주인공 양산보, 역시 담양 식영정(息影亭)의 주인공 임억령 등이 생각난다.

좋은 누정의 주인들이었다. 적어도 400년 이상 전의 문인들이지만 책을 읽으면 쉽게 마음이 통할 것 같다.

‘숨은 듯 있는 별서(別墅)의 앵두나무 두 그루 사이에서 오래 서 있고 싶은 까닭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란 말을 한 조용미 시인의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이란 시를 읽는다.

한 앵두나무는 가득, 다른 앵두나무는 듬성듬성 꽃을 피운 별서. 농막이 딸린 정원인 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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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 선비문화의 산실 조선의 사대부 9
우응순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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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의미한다. 누각보다 간소한 형태가 정자이다. 저자는 현재의 시각에서 조선시대 누정의 존재와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생산된 시조, 가사, 한시 등의 누정 문학을 다시 거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누정은 사대부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물론 여행중인 평민, 여성들도 이용했을 것이다.

 

()는 어원적으로 중첩하여 지은 집으로 당()과 만드는 방식이 비슷하지만 당에 비해 높이가 높다는 특징을 지녔다. ()은 머무른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멀리 여행하는 사람이 잠시 멈추어 쉬는 곳이다. 정사(亭榭)의 사는 높은 언덕 또는 대() 위에 건립한 집을 말한다.

 

누각이 왕족이나 사대부층의 유흥 및 사회를 위한 격식을 갖춘 공간이었다면 정자는 평민과 여행자들의 휴식과 만남의 장소였다. 누정은 대부분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누정의 위치는 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 어떤 누정이든 그 주변에 못<: )>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남원 광한루(廣寒樓)와 함흥 칠보정(七寶亭)은 못 위에 세운 누정이다.

 

누정은 정자라는 점에서 충남 이남에 분포한 모정(茅亭)과 비슷하지만 모정은 주로 농경지를 배경으로 한 소박한 정자이다.(32 페이지) 편액(扁額)은 흔히 현판(懸板)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가로로 걸기 때문에 횡액(橫額)이라고도 하며 글씨를 세로로 쓰기도 한다.(: 띠 모, : 이마 액)

 

정자는 때로 다른 이름의 편액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정철이 담양이 세웠다는 송강정은 죽록정(竹綠亭)이라는 편액이 같이 걸려 있다. 이는 송강정 아래 죽록평야를 끼고 흐르는 송강을 죽록천이라고도 부른 데서 생긴 이칭이다. 양양의 하조대(河趙臺)는 이곳을 찾은 하륜과 조준의 성에서 따온 이름이다.

 

달성의 삼가헌(三可軒)을 비롯, 괴산의 애한정(愛閑亭)과 피세정(避世亭), 담양의 면앙정(俛仰亭), 송강정(松江亭) 등은 각각 박성수(朴聖洙), 박지겸(朴智謙), 조신(曺紳), 송순(宋純), 정철(鄭澈) 등의 호를 누정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누정에 얽힌 고사는 주로 중국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의 이야기에서 가져온 명칭도 있다. 조선조 효종은 북벌계획이 무산되자 그것을 한탄하여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했는데 송시열이 이 이야기에서 괴산 모원루의 이름을 지었다. 서울 종로 세검정(洗劍亭)은 인조반정 때 김류(金瑬), 이귀(李貴)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씻어 칼집에 넣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44 페이지  

 

누정은 유흥상경(遊興賞景)의 기능을 가졌다. 누정은 시단(詩壇)의 모임 장소가 되었다. 유흥상경의 흥취가 시적으로 표현되면 그것이 곧 누정시가 되었으니 누정시단이 형성되었다. 누정에서는 학문을 연마하고 토론하며 인륜의 도를 가르치고 계승했다.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한 사대부들은 고향에 누정을 짓곤 했다. 누정에서는 씨족끼리의 종회나 마을사람들의 동회 또는 각종 계 모임을 가졌다.

 

누정은 활쏘기 수련장 구실을 하는 등 체력 연마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누정은 한 고을의 문루(門樓)로 방어 기능이 있었다.(문루는 궁문, 성문, 지방 관아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이다.) 누정은 이 밖에 별장, 전쟁 때의 지휘 본부, 재실(齋室), 치농(治農) 및 측후(測候) 시설로도 활용되었다.

 

누정에서 창작된 한시를 누정제영(樓亭題詠)이라 한다. 누정이 시문의 산실이 된 까닭은 누정이 풍광이 좋은 경승지에 건립된 데다가 누정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 시문을 즐기던 식자층으로 그들이 교유한 사람들 대부분 학자이며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고명한 학자이며 이름난 시인이었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는 무등산 밑 소쇄원(瀟灑園)의 주인 양산보와 사돈지간으로 깊은 교유의 정을 나누었다. 식영정(息影亭)의 주인이었던 임억령(林億齡)도 식영정을 중심으로 20곳의 경치 좋은 구역을 선택하여 이름을 붙이고 식영정 20영의 누정시를 남겼다.

 

누정에는 어제시(御製詩)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누정문학에는 한시로 된 누정시문 이외에 시조와 가사 등 국문시가가 다수 남아 있다. 누정제영은 고도의 창작 역량이 없으면 짓기 어려웠다. 전통적인 유가(儒家)의 입자에서는 시는 여기(餘技)이므로 깊이 빠져서 할 일이 아니라 틈틈이 취미로 하는 재주나 소일거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 창작에 몰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자기 수양에 저해된다는 완물상지(玩物喪志)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경(書經)을 출처로 하는 완물상지는 완인은 덕을 잃고, 완물(玩物)은 지를 잃는다는 말에서 나왔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덕을 잃고 사물에 빠지면 심지(心志)를 잃는다는 경계의 의미이다. 하지만 16세기 호남의 문인들은 심미적 욕구의 자연스러운 표출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지나치게 과도하지 않다면 작시에 대한 애착과 관심은 물론 경물에 심미적으로 몰입하는 모습도 어느 정도 허용되었다.(68, 69 페이지)

 

누정은 작가의 현실공간과 이상 공간 사이의 경계 역할을 했다는 특징이 있다. 인위로 조성된 공간이지만 의미적 지향은 세속을 벗어난 탈속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누정은 세속과 탈속, 현실과 이상이 서로 뒤섞이고 길항(拮抗)하는 점이지대의 공간이다.(71 페이지) 누정은 연대(聯隊)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식인들은 각박한 정치현실을 피해 산수가 아름다운 자연을 찾았다. 거기서 정신적 위안을 찾고 위대한 자연의 이치를 배우는 삶의 방식을 추구했다.(83 페이지) 누정제영을 의례적이고 상투적으로 즉흥 창작하는 관행이 지양되고 높은 수준의 작품성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누정문학에 대한 인식이 여기(餘技)가 아니라 문학적 진지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며 적어도 그러한 분위기 내지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완강한 주자학적 문학관의 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문인 학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이 산수미에 심미적으로 몰입하고 자유분방한 호기를 발휘하는 새로운 시풍을 시도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87 페이지)

 

3지역별 주요 누정과 누정문학 관련 자료편에서는 서울, 영남, 호남, 강원 지역의 대표 누정들을 만날 수 있다. 경회루, 압구정, 세검정, 보신각, 팔각정(이상 서울),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이상 영남), 담양 면앙정, 남원 광한루(이상 호남), 삼척 죽서루, 강릉 경포대(이상 강원) 등이다.

 

저자는 조선의 누각과 정자가 지녔던 다양한 기능이 근대화 과정에서 휴식의 공간으로 산정되어 인식되고 지금은 관광의 일정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150 페이지)

 

누각과 정자에 참 많은 인물, 사연, 의미, 배경이 얽혀 있음을 알게 된 것이 소득이다. 조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한문을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도 그렇다. 시사(詩社)라는 말을 음미하게 된다. 기록하지 않았지만 경회루를 설명하며 주역의 중천건괘를 인용한 부분, 완물상지, 여기(餘技)와 주자학적 질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부분에 대한 설명 글 등이 인상적이었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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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도봉(道峯) 답사일은 낮에는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밤에는 진눈깨비가 날린 시간이었다. 일정에 포함된 두 주인공인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의 묘와 연산(燕山)의 묘가 대비되어 보였다.

 

나는 연산의 묘를 보며 폐군(廢君)의 묘는 일반인의 묘보다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역 중천건괘(重天乾卦)도 생각했다. 중천건괘의 여섯 효() 중 마지막 여섯 번째 효는 너무 높이 날아오른 용이 후회하는 것을 뜻하는 항룡유회(亢龍有悔)의 의미를 갖는다.

 

다섯 번째 효는 날아오른 용이 하늘에 있음을 의미한다. 우응순 교수는 경복궁(景福宮) 경회루(慶會樓)의 경회(慶會)를 군신간에 서로 덕()으로 만나는 것이라 전제한 뒤 주역 중천건괘()의 구오(九五)가 그 대덕(大德)으로써 구이(九二)의 대덕을 보고, 지기(志氣)가 서로 맞아서 그 도를 행하는 것 같이 하면 모든 어진 이가 부류대로 나와서 국가가 창성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용이 구름을 따르고 범이 바람을 따르는 것으로 설명한다.(‘누정(樓亭), 선비문화의 산실’ 95 페이지)

 

삼가 한번 논해보건대란 단서를 달고 말한 이 부분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구오(九五)와 구이(九二)를 설명 없이 인용했다는 점이다. 주역에서 구()는 양을 뜻한다.(; 은 음을 뜻한다.) 구오(九五)는 다섯 번째 양효(陽爻), 구이(九二)는 두 번째 양효(陰爻)인데 저자가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은 것은 그 정도는 다 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중천건에서 다섯 번째 효는 날아오른 용이 하늘에 있음을 뜻하고 여섯 번째 효는 너무 높이 오른 용이 후회하는 것(항룡유회: 亢龍有悔)을 뜻하니 당연히 군주는 다섯 번째 효에 배당되어야 하리라. 연산(燕山) 같은 경우가 항룡유회일 것이다. 연산은 재위 10년인 1504년 갑자(甲子) 1125일 이런 시를 지었다.

 

<덕도 없이 외람되게 왕업을 이어받아/ 백성에게 임한 지 십년이 넘네/ 매양 밝지 못해 부끄럽고/ 항상 교화가 하소함을 한하노라...> 이름을 가리고 보면 영락 없이 겸양의 시로 읽히지만 안타까운 후회의 글이 아닐 수 없다. 쓸쓸해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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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리(羑里)라는 곳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박상륭 작가의 장편 ‘죽음의 한 연구’에서이다.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는 것이다.(羑는 착한 말 할 유라는 글자이다.)

어떻든 유리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 잡혀간 곳이다.

다산(茶山)의 둘째 형인 정약전(丁若銓)은 흑산도에서 귀양 살이를 하는 중에 다산의 ‘주역사전(周易四箋)’을 읽고 이런 서문을 지었다.

<..사마천이 말하기를 “문왕이 주왕(紂王)에 의해 유리(羑里)에 갇혀 있을 때 ‘주역(周易)’을 연역하였고 공자가 궁액(窮厄)에 빠졌을 때 ‘춘추(春秋)’를 지었다.”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적하게 맺힌 것이 있어 자기의 도를 통할 수 없으므로 지난 일을 서술하고 앞일을 생각한 것이니 이 말도 또한 울분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럴 말한 이치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가령 미용(美庸: 정약용의 字)이 편안히 부귀를 누리며 존귀한 자리에 올라 영화롭게 되었다면 반드시 이런 책을 저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박석무 지음 ‘다산 정약용 평전’ 467 페이지)

멋지다. 난형난제(難兄難弟)이다. ‘주역(周易)’은 은주(殷周) 교체기라는 난세에 쓰인 책이다. 다산도 난세에 ‘주역사전(周易四箋)‘을 썼다.

’주역‘의 경문을 어떤 원리 원칙에 의하여 일관되게 해석한 예는 정약용의 ’주역사전‘을 빼고서는 달리 말할 수가 없다.(박주병 지음 ’주역반정: 周易反正‘ 참고)

머리 식히기 위해 고미숙 님의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 2013년 출간)‘를 읽자.

고미숙 님은 용신(龍神)이건 글쓰기건 그걸 하다 보면 팔자가 일그러진 원천이 탐진치(貪瞋痴)에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22 페이지)

사주명리학에 근거해 견해를 밝힌 글이다.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이 나온 지 5년이 지났으니 이제 2탄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 책에 다산의 주역론이 포함될까? 다산과 연암은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으니 주역에 통달했던 다산과 달리 연암은 주역을 도외시했을까? 아니면 다른 주역론을 폈을까?

기록에 의하면 연암은 “..’주역‘에 이르기를 ‘하늘이 초매(草昧: 혼돈)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성인이 ’주역‘을 지을 때 코끼리 ‘상(象)’자를 취하여 지은 것도 만물의 변화를 궁구하려는 까닭이었으리라.“ 등의 말을 했다.(2008년 그린비 출간 ‘열하일기’ 하권 319, 321 페이지)

물론 이것만으로는 연암이 어느 정도 ‘주역’ 공부‘를 했는지 판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연암이 단지 주역 일반에 대해 공부했는지 상당히 전문적이고 구체적이었는지 알 수 없다. 관련 자료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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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 인류 고전 15권에 묻고 스스로 답하다
박병기 지음 / 인간사랑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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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는 칸트의 세 물음(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을 연상하게 하는 명제이다. 이 명제를 제목으로 한 박병기 교수의 책은 '인류 고전 15권에 묻고 스스로 답하다'란 부제를 가졌다.

 

저자는 '금강경', '수심결(修心訣)' 등의 책들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의 관점으로, '꾸란', '니코마코스 윤리학', '윤리형이상학 정초' 등의 책들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의 관점으로,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노자 '도덕경', '장자' 등의 책들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맺기 등의 관점으로 분류했다.

 

고전 읽기는 삶으로부터의 거리두기의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고전과 가까워지려면 내 안의 보편적 지향 즉 삶의 의미 물음을 꺼내드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그 물음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삶과 무관해 보이지만 인간으로서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할 때 반드시 만나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만나고 있는 친근한 것이기도 하다고 결론짓는다.

 

세 챕터로 구성된 책의 각각이 관계맺기(자신과,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이거니와 이 부분에서 생각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파스칼의 말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의 근원은 홀로 조용히 방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이란 말이다. 조용히 방에 머무는 것은 자아 성찰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부끄러움, 욕망, 불안 등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관계 맺기에 실패하면 다른 사람 및 공동체, 더 나아가 다른 초월적 존재와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관계 맺기의 중요성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전이(轉移)라는 개념을 통해 알 수 있다.(자세한 설명 생략)

 

자기와의 바른 관계 맺기는 삼가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동체 및 다른 존재들을 헤아리고 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일반적인 독해와 저자 특유의 독해가 반영된 '우리는 어떤 삶을 만날 수 있을까'를 읽음으로써 훌륭한 인류의 고전들과 만나는 방법을 제시받게 된다.

 

행복한 일이지만 그렇게 제시받은 방법을 참고하며 해당 고전들을 또는 다른 고전들을 직접 읽어야 하는 과제 앞에 서게 된다. 저자는 '금강경'을 이야기하며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등 깨달음의 네 단계는 순차적으로 도달하는 것이기보다 어느 순간에 문득 도달하는 것으로 본다.(34 페이지)

 

'금강경'은 소유와 관련된 모든 상()의 허망함을 일깨우는 책이다. 저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갖는 것을 상()을 세우는 것으로 본다. 수다원은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은 사람을 의미하거니와 저자는 수보리에게 보내는 부처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일상의 작은 깨침을 출발점으로 삼아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바라보고자 노력하면서 그 노력을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을 향하는 친절과 미소와 실천으로 연결시켜갈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수다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39 페이지.. ‘금강경은 부처와 수보리라는 제자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다.)

 

문득 깨침<돈오(頓悟)>과 지속적인 닦음<점수(漸修)>을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한 목우자(牧牛子) 지눌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을 설명하며 저자는 깨침을 얻는 과정에서는 스승 즉 선지식과의 관계가, 닦음의 과정에서는 도반과의 관계맺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마음먹기는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49 페이지) 깨침은 마음먹기에 크게 의존하지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저자의 통찰은 반가운 마음을 갖게 한다. 저자는 이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설명하며 일상에서 한 발 물러나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이익이나 자리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윤리의 중요성을 제시한다.(60, 61 페이지)

 

나는 저자가 시민 윤리의 핵심을 의로움과 이익 사이의 균형 잡기로 풀이하는 것을 보며 공자가 말한 군자는 그 균형 잡기에 성공한 사람이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의로움과 이익 사이의 균형은 공자의 논어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제시된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삶의 유형을 향락적인 삶, 정치적인 삶, 관조적인 삶으로 정의했다.(93 페이지) 이 챕터에서 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윤리는 대체로 부담스럽고 답답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한편 완전히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는.(95 페이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게 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우정과 정의임을 강조한다.(‘니코마코스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에게 건넨 가르침을 모은 책이다.) 우정과 정의는 각자에게 맡겨지는 시민윤리를 넘어 필요한 공공의 영역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98 페이지)

 

저자는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리 사회에서 윤리에 관한 단 하나의 정의(定義)를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이미 통용되는 규범의 차원, 그것과 연계되면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마음 속 열망의 차원은 윤리라는 말이 사용되는 맥락에서 일관성 있게 관찰되는 두 차원이라 말한다.(103 페이지)

 

전자는 도덕(道德), 후자는 윤리(倫理)라 불리지만 엄격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맹자처럼 인간의 본성 속에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본능적 욕구와 희미(稀微)한 선의지가 함께 존재한다고 보았다.(106 페이지) 칸트가 말한 준칙(準則)은 주관적인 것, 가언명령(假言命令)이고 법칙은 당위적인 것, 정언명령(定言命令)이다.(107 페이지)

 

칸트의 정언명법은 실현 가능성을 회의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유한한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 물음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109 페이지)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고전은 시대적 한계와 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갖는, 끊임없이 현재적 해석이 이루어져야 하는 텍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요소 요소에서 우리 현실과 연계시켜 고전을 설명하는 비근한 방법을 제시한다. 윤리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마광수 교수 이야기를 하고 플라톤의 국가를 이야기하며 아비투스와 상징폭력을 이야기한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를 이야기한다. 법꾸라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저자는 도덕경편에서 노자의 부드러운 음성은 우리 일상 속에서 과장되고 왜곡된 모습을 하고 있는 강함과 단단함의 허상을 직시할 수 있게 하는 죽비(竹篦)라 말한다.(191, 192 페이지)

 

저자는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이야기하며 한강(韓江)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한 구절을 이야기하고, 목우자(牧牛子)라 불린 지눌(知訥) 스님의 수심결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어릴 적 경험한 소 치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근취저신(近取諸身) 즉 가깝게는 자기 몸에서 진리를 찾는다는 주역 계사전의 구절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저자의 문제의식은 근취저신과 대대(待對)인 원취저물(遠取諸物) 즉 멀리는 만물에서 진리를 찾는 데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고전을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하자고 말한다.(205 페이지) 필요한 것은 우리 일상에서 직면하는 철학적 물음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이다. 저자는 고전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읽으려 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자신의 문제 상황 즉 화두(話頭)와 만날 수 있는 구절이나 행간을 중심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207 페이지)

 

저자는 고전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노력이 시민이 지녀야 할 기본 자세 중 하나라 말한다. 이 부분에서 시민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채효정 저자에 의하면 국민은 정치적 존재가 아니고 시민은 정치적 존재이다.(‘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223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일상의 도도한 흐름에 온전히 내맡기지 않는 거리 유지의 자세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금강경을 이야기하며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은 사람인 수다원을 말한 저자의 의도를 떠올리게 된다. 비판적 성찰의 자세, 지금 여기에 답을 찾고 먼 미래, 근원적인 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치열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발심(發心)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고전 읽기에도 적용되는 덕목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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